오늘 아침에 나는 이런 시를 읽었습니다.
그녀가 죽었을 때, 사람들은 그녀를 땅속에 묻었다.
꽃이 자라고 나비가 그 위로 날아간다.
체중이 가벼운 그녀는 땅을 거의 누르지도 않았다.
그녀가 이처럼 가볍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
을까.
브레히트라는 시인의 [나의 어머니]라는 시입니다. 무심코 펼쳐든 옛날에 읽었던 시집에서 발견한 이 시때문에 나는 온종일 허둥지둥거렸습니다. 바로 코앞에 떨어진 일들을 해결하느라 늘 분주한 생활 속에서 툭 던져지듯 읽게된 시. 내 주변엔 시에 대한 얘기를 할 만한 대상이 없어서 얼굴도 모르는 당신께 이렇게 메일을 쓰고 있습니다. (P.97~98 )
택배를 보낼 일이 있어 우체국 택배에 방문 요청을 했다. 사인된 책 오십 권을 보내는 일이었다. 오후 3시쯤 우체국에서 아저씨가 오셨다. 책 오십 권이 어디 보통 무게인가. 게다가 상자가 뜯겨서 테이프로 다시 붙여야 했고 무게가 넘쳐서 나눠야 하는 등의 수고를 아저씨는 밝은 얼굴로 척척 해냈다.
프랑스의 시골마을에서 우편배달부가 오면 문간에서 포도주나 코냑을 한 잔씩 내놓는 통에 편지를 다 배달한 우편배달부가 마을을 떠날 즈음엔 취해서 간다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났다. 술은 안되겠어서 물을 한잔 드릴까요? 물었더니 좋지요, 하셨다. 덕분에 문간에 앉아서 아저씨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일을 즐겁게 하시네요, 했더니 즐겁지요, 즐겁고 말고요. 이 일 해서 내 자식들 다 공부시켰는데요. 그런데 이 일도 내년까지밖엔 못해요, 하셨다. 왜요? 물으니 정년퇴임이에요, 더 하고 싶어도 못해요. 모자를 벗으며 땀방울을 닦는 모습이 여간 섭섭해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자그마한 키에 짧은 머리, 싱글벙글 웃고 있는 얼굴이 동안이어서 정년퇴임을 앞두고 있는 분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P.71~72 )
물을 다 마시고 무거운 책을 어깨에 턱 짊어지고 문간을 나가던 아저씨가 무엇에 홀린 듯 감동받은 얼굴로 서 있었다.
뭘 보고 계시나? 싶어서 나도 아저씨의 시선을 따라가보았다. 지남봄에 채소 씨앗을 사러 갔던 농원에서 물옥잠이 보이길래(나는 부레 같은데 농원 주인은 한사코 물옥잠이라 했다) 별생각 없이 사다가 버려진 유리그릇에 물을 채우고 담가두곤 잊었는데, 이 무더운 여름날 꽃대를 뚫고 보라색 꽃이 몇 개나 올라와 있었다. 주인의 무관심 속에서도 제 할 일을 끝낸 물옥잠은 우편배달부 아저씨의 한 순간을 밝게 비춰주고 있었다. (P.74~75 )
-신경숙 짧은 소설, <달에게 들려 주고 싶은 이야기>-에서
신경숙님의 신간, <달에게 들려 주고 싶은 이야기>를 읽었다.
봄이라도 창을 조금 열어 놓은, 바람은 찼지만 속을 다 빼어놓은 사람처럼 쓴 글들이 심심하긴 했지만, 그런 것 있지 않은가. 때론 심심한 맛이 더 좋은 그런 때.
봄은 어쩌면 달빛,같은 계절일지도 모른다.
조북조북 새로 돋아나는 것들을 부드럽고 은은하게 내려 비춰주는 달빛.
신경숙님 특유의 중복적이고 함의적인 글이 아니어서 더 먼 산같은 글이 맑게 좋았다면 조금 이상한 소감이지만, 저 멀리의 어느 한적한 세계 푸른 밤하늘 위의 하얀 달빛같은 짧은 소설이다.
저만치 걸어왔던 길, 혹은 잊었던 아니면 마음 속에 고이 간직했던 따스한 동화같은.
방현일님의 표지그림과 본문그림이 글과 어우러져 더욱 좋았던,
다정히 달을 바라보고 앉아 있는 두 마리 고양이의 뒷모습같은 책이었다.
이 책을 읽고나니 이제서야 비로소 봄을 맞은 느낌이다.
초승달, 반달, 보름달, 그믐달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