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강정 부스러기

 

 

 

                       잠든 할아버지의 머리맡에 쌀강정 접시가 비워진 채로

                    있다

                       조용한 잠이 뒤척일 때마다 쌀강정 부스러기들이 이리로

                    저리로 뒤척인다

                       할아버지는 꿈속에서 빈 접시를 들고 이 마을로 저 마을

                     로 느린 걸음을 데리고 다니신다

                       쿨쿨, 주무시는 동안에 당신의 흰 수염이 수긋하게 자

                    란다

                       심심한 쌀강정 부스러기들이 잠드신 할아버지 옷에 송사

                    리떼처럼 붙어 있다

                       할아버지!  (P. 80 )

 

 

 

                                         -이기인 詩集, <어깨위로 떨어지는 편지>-에서

 

 

 

 

 

 

 

        아침에 일찍, 귀한 책선물을 받았다. 먼 남녁의 봄기운을

      담뿍 담은 여러 권이다. 책들을 하나 하나 펼쳐보며 이 책들을

      지으신 분의 아름다운 삶을 헤아리며 또박 또박 즐거이 읽어

      가리라.

       그리고 또 좀 전에 택배가 왔다. 열어 보니 아이구머니, 반듯이

      꽁꽁 뭉쳐 검은 콩과 땅콩 아몬드 해바라기씨앗, 그리고 대추

      까지 썰어 넣은 네모나고 반듯한 쌀강정이 지인의 고운 마음과

      함께 차곡차곡 담겨 있다. 할아버지는 이 쌀강정은 아마 단단

      해서 드시기 좀 힘드실 것 같구나. 그래도 할아버지의 쌀강정

      이나 나의 쌀강정이나 다 참 좋구나.

       오늘은 어제 빌려온 '백남준 굿으로 보는 비디오아트 읽기'와

      오늘 받은 책들을,

      쌀강정을 먹으며 즐겁게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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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09 14: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3-10 00: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보슬비 2013-03-09 16:56   좋아요 0 | URL
정말 오늘 바람은 봄바람이 확연히 느껴지는 바람이었어요. 그래서인지 도서관 다녀오는 길이 즐겁고 행복했어요. 쌀강정 드시면서 즐독하시고 좋은 주말 보내세요. ^^

appletreeje 2013-03-10 00:41   좋아요 0 | URL
저도 아까 저녁에 土曜酒會에 나가는데 공기가 마치, 초여름 같았어요.^^
도서관 다녀오시는 봄바람은 더욱 즐겁고 행복하셨겠지요~~^^
보슬비님께서도 좋은 주말 보내세요.~*^^*

수이 2013-03-10 00:03   좋아요 0 | URL
책선물은 언제나 즐겁지요. ^^

appletreeje 2013-03-10 01:26   좋아요 0 | URL
그치요~^^. 책선물은 언제나 감사하고 즐겁지요.^^
앤님, 좋은 밤 되세요.~*^^*

후애(厚愛) 2013-03-10 20:54   좋아요 0 | URL
쌀강정 저도 좋아하는데 사 먹어야겠어요.ㅎㅎ
소중한 선물을 받으셨군요.
좋으시겠당~^^
좋은 밤 되세요.*^^*

appletreeje 2013-03-11 09:36   좋아요 0 | URL
가까운 데 계시면 나눠 드렸을 텐데요.^^;;
고운 마음이 깃든 맛있는 음식은 함께 나눠 먹어야 더 행복한데요.^^
후애님! 오늘 하루도 기쁘고 좋은 날 되세요.~*^^*

드림모노로그 2013-03-11 11:13   좋아요 0 | URL
우와 좋은 선물 받으셨네요 ㅎㅎ 쌀강정 생각만 해도 정겨운 느낌이 ㅋㅋ
전 주말에 냉이캐러 다니고 ㅎㅎㅎ
좋은 하루 되세요 ^^ 나무늘보님 ^^

appletreeje 2013-03-11 13:56   좋아요 0 | URL
ㅎㅎ 우리 둘 다, 정겹고 추억 어린 주말을 보냈군요.^^
드림님께서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掌篇 2

 

                                                    김종삼 (1921~1984)

 

 

 

                          조선총독부가 있을 때

                          청계천변 10전 균일 상밥집 문턱엔

                          거지 소녀가 거지 장님 어버이를

                          이끌고 와 서 있었다

                          주인 영감이 소리를 질렀으나

                          태연하였다

                          어린 소녀는 어버이의 생일이라고

                          10전짜리 두 개를 보였다  (P.54 )

 

 

 

 

                       이사

 

                                                                서수찬 (1963~)

 

 

 

                            전에 살던 사람이 버리고 간

                            헌 장판지를 들추어내자

                            만원 한 장이 나왔다

                            어떤 엉덩이들이 깔고 앉았을 돈인지는 모르지만

                            아내에겐 잠깐 동안

                            위안이 되었다

                            조그만 위안으로 생소한

                            집 전체가 살 만한 집이 되었다

                            우리 가족도 웬만큼 살다가

                            다음 가족을 위해

                            조그만 위안거리를 남겨 두는 일이

                            숟가락 하나라도 빠트리는 것 없이

                            잘 싸는 것보다

                            중요한 일인걸 알았다

 

                            아내는

                            목련나무에 긁힌

                            장롱에서 목련향이 난다고 할 때처럼

                            웃었다  (P.58 )

 

 

 

 

                        아침

 

                                                                 문태준 (1970~ )

 

 

 

                             새떼가 우르르 내려앉았다

                             키가 작은 나무였다

                             열매를 쪼고 똥을 누기도 하였다

                             새떼가 몇 발짝 떨어진 나무에게로 옮겨가자

                             나무상자로밖에 여겨지지 않던 나무가

                             누군가 들고 가는 양동이의 물처럼

                             한 번 또 한 번 출렁했다

                             서 있던 나도 네 모서리가 한 번 출렁했다

                             출렁출렁하는 한 양동이의 물

                             아직은 이 좋은 징조를 갖고 있다  (P. 86 )

 

 

 

 

                       가슴에 묻은 김칫국물

 

                                                                      손택수 (1970~ )

 

 

 

                              점심으로 라면을 먹다

                              모처럼 만에 입은

                              흰 와이셔츠

                              가슴팍에

                              김칫국물이 묻었다

 

                              난처하게 그걸 잠시

                              들여다보고 있노라니

                              평소에 소원하던 사람이

                              꾸벅, 인사를 하고 간다.

 

                              김칫국물을 보느라

                              숙인 고개를

                              인사로 알았던 모양

 

                              살다 보면 김칫국물이 다

                              가슴을 들여다보게 하는구나

                              오만하게 곧추선 머리를

                              푹 숙이게 하는구나

 

                              사람이 좀 허술해 보이면 어떠냐

                              가끔은 민망한 김칫국물 한두 방울쯤

                              가슴에 슬쩍 묻혀나 볼 일이다  (P.140 )

 

 

 

                                                       -<선천성 그리움>, 손택수 엮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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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모노로그 2013-03-08 11:11   좋아요 0 | URL
오늘은 시들이 모두 미소를 짓게 하네요 ㅋㅋㅋ
때론 김칫국물이 ㅋㅋ
웃을 일 없던 아내의 얼굴이 만원 한장으로 꽃같이 웃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ㅋㅋ
시인들에게는 소소한 일상의 모든 것들이 시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ㅋㅋ 좋은 하루 보내요 ~ 나무늘보님 ㅋ

appletreeje 2013-03-08 11:24   좋아요 0 | URL
예~그렇지요~^^ 이 <선천성 그리움>에는 따스한 詩들이 담겨 있어요.^^
드림님! 오늘도 유쾌하고 좋은 날 되세요.~*^^*

숲노래 2013-03-08 12:06   좋아요 0 | URL
시를 쓰는 분들은
콘서트 말고
잔치를 즐기면 얼마나 좋으랴 싶어요.

노래잔치
시잔치
빛잔치
사랑잔치
......

봄날입니다. 봄잔치를 할 때입니다.

appletreeje 2013-03-08 13:23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책 띠지에 적혀 있는, '상처를 꽃으로 만드는 손택수 시인의 시 콘서트'라는 글귀가 저도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웠어요. 뭘 상처를 꽃으로 만든다는지.;; 그냥, ' 즐겁게 함께 읽는 시 해설집'이라 하면 될텐데요.

잔치,란 말이 참 좋아요.
기쁘게 여럿이 모여~ 즐기는 잔치요.
봄날, 봄잔치를 하고 싶은 그런 날입니다.*^^*

2013-03-08 16: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3-08 22: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후애(厚愛) 2013-03-08 16:54   좋아요 0 | URL
이사 시가 참 마음에 듭니다!
늘 이렇게 좋은 시들을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오후 되시고, 주말 행복하게 보내세요.^^

appletreeje 2013-03-08 22:40   좋아요 0 | URL
이사 하시느라 애쓰셨지요.
마음에 드셨다니 고맙습니다.^^
후애님께서도 좋은 밤 되세요.~*^^*

보슬비 2013-03-08 21:11   좋아요 0 | URL
나무늘보님이 올려주신 시를 읽으면 감성이 풍부해지는것 같아요.
이래서 시를 읽으라고 하는거구나..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시는 어렵다 생각했는데, 나무늘보님 덕분에 시와 가까워지게 되어서 감사해요.

좋은 주말보내세요.

appletreeje 2013-03-08 22:40   좋아요 0 | URL
어디선가로부터 詩集들이 많이 와요.
그 시집들을 한 권씩 읽다가 마음에 와 닿는 시들을 올리는데 긍정적으로 보아
주시니 제가 더 감사합니다.^^
보슬비님께서도 즐거운 주말 되세요.~*^^*
 

 

 

 

 

 

 

 

일주 일 내내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눈물을 흘렸으니 어지간히 많이도 운 셈이다. 나를 그토록 슬픔에 젖게 한 것은 다름 아닌 김수환 추기경이다.

 살아생전에 추기경님과 특별한 인연을 맺은 적은 없다 손꼽아 보면 대여섯 번 뵌 것이 고작일 것이다. 한 번은 신문사 인터뷰로, 두어 번은 여럿이서 함께 나눈 식사 모임에서, IMF 때는 금 모으기를 하던 서초동 성당에서, 마지막으로 어떤 신문사에서 주최한 미술 전람회장에서.

 그때 나는 두 신문에 연재를 하고 있어 몹시 바뻤으므로 관람이 끝난 후 추기경님을 모시고 점심 식사를 하기로 되어 있는 자리에 빠지게 되어 "죄송합니다, 먼저 가겠습니다." 라고 양해를 구했다. 그러자 추기경님은 말씀하셨다.

 "왜 함께 식사를 하지 그래."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굳이 내가 그 자리에 참석하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무리하면 얼마든지 참석하고 늦게 돌아와 원고를 써도 그만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내겐 이상하게도 쌀쌀한 구석이 있어 추기경님이라도 내 시간을 빼앗을 수 없다는 쓸데없는 자존심으로 냉정하게 사무실로 돌아왔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왜 함께 식사를 하지 그래." 라는 말씀은 이 지상에서 추기경님과 나눈 마지막 대화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평범한 인연인데도 일주일 내내 추기경님을 생각하면 눈물이 났다는 사실을 나 자신도 이해할 수 없다. 나는 그때 추기경님의 그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섭섭해 하시던 그 눈빛, 쓸쓸한 그 눈동자, 그 입술은 내 가슴에 선명히 남아 있다.   ( P.242~243 )

 

 

 

 내가 길상사를 찾으려 했던 것은 법정 스님 때문이었다. 성모병원  병상에 누워 있을 때 나는 스님의 열반 소식을 들었다. 뉴스를 전해 들은 순간,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을 뿐 마음은 담담했다.

 그러나 허무하게도 입적하셨다는 뉴스를 입원실 텔레비전을 통해 본 순간 언젠가 보았던 사진작가 주명덕씨가 찍었던 법정 스님의 뒷모습이 떠올랐다. 온다 간다는 문안 인사나 작별 인사도 없이 훌쩍 소매를 떨치고 빈자리만 남기고 사라지던 밀짚모자를 쓴 법정 스님의 뒷모습. 그는 지금 그 뒷모습으로 긴 그림자를 떨치며 이승의 생애에서 피안(彼岸)의 바라밀다로 떠나가고 있는 것이다. (P. 251 )

 

 

 

 경허는 깨닫고 나서 다음과 같은 오도송을 남긴다.

 "세속과 청산은 어느 것이 옳으냐. 봄볕 비추는 곳에 꽃피지 않는 곳이 없구나." (世屬靑山何者是 春光無處不開花)  ( P. 258 )

 

 

 

 

 등단 반세기를 맞은 최인호 작가의 신간, <최인호의 인생>을 읽었다.

 표지부터 고요하고 담담한 이 책의 초입을 읽어가다 이상하게 문득, 목소리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글은 마음의 목소리다. 목소리를 들으면 그 사람이 건강한지, 아픈지, 양호한지 아니면 슬픈지, 짜증이 났는지 금방 알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어느덧, 결국은 남의 말들을 알게 모르게 자신의 생각인 양 '글'에 꿰어 맞추느라 예쁜 가성(假聲)들을 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

 요란하고 세련된 말들의 세상에서 모처럼, 조용하고 나직한, 작가의 종교적 성찰과  인간으로서의 시련을 맞고 그 시련을 다시 새로운 깨달음으로 쓴 글들을 읽으니, 잔잔한 기쁨과 함께  정작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를  생각케 한다.  

 이 책의 1부는 카톨릭 <서울주보>에 5개월간 연재했던 일종의 묵상록(默想錄)이기도 한데, 나는 그 글들을 다시 천천히 읽으며 가파르고 숨가쁜, 그러나 그 가파르고 숨가쁨의 실체는 다름아닌 나자신이였음을, 결코 나를 에워싼  세상이 아님을, 진지한 마음으로 돌이켜 본 시간이다.

  결국은 인생이란 이 책의 표지처럼, 허공에 곧게 서 있는 한 그루 소나무 가지에 매달려 있는 목어(木魚 )처럼 담담함은 아닌가 하는.

  최인호 작가의 <인생>은 조용하고 나직하나, 사람을 살리는 칼 같은 정신이 번쩍인다.

 

 

 - '알고 있는 모든 것으로 눈이 멀어 있는 저'를 볼 수 있도록 제 눈에 흙을 개어 발라주소서(요한 9,6 참조) 그리하여 '알고 있는 모든 것으로부터의 자유'를 허락해주소서. (P. 163 )-

 

 

 나는 이제서야 비로서 내가 만났던 모든 사람에게 감사를 드린다. 그 관계가 기뻤든, 슬펐든 상처가 되었던 관계였든, 바로 그 타인들의 얼굴이야 말로 나를 비추는 거울이자 크나큰 위로였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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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06 23:3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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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07 09: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착한시경 2013-03-07 00:33   좋아요 0 | URL
오래전에 최인호가 샘터에 연재했던 가족을 참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투병을 시작하면서...오랫동안 연재했던 가족을 중단했었는데~딸 다혜와 아들 도단이의 성장과정을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웠어요~ 참 오랫만에 최인호의 신간을 보니..반갑고 읽어보고 싶네요^^ 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appletreeje 2013-03-07 10:19   좋아요 0 | URL
그죠~~샘터에 연재되었던 '가족'. 참 즐겁게 읽었지요.^^
저는 최인호님의 '길없는 길'을 너무 좋아했는데,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이후 이번에 나온 이 책을 읽고 참 좋았어요. 착한시경님께서도 좋아하실 책 같습니다.
지금은 비가 그치고 날이 흐려요. 이런 날은 더 책 읽기 좋은 날이지요.
착한시경님! 오늘도 좋은 날 되세요.*^^*

드림모노로그 2013-03-07 10:54   좋아요 0 | URL
암투병중에도 꾸준히 창작활동을 하시는 모습이 늘 감동으로 다가오는 분 같습니다
한 그루 소나무 가지에 매달려 있는 목어(木魚)를 보니
인생을 저렇게 살아야 겠다는 생각도 드네요.
고독하고 쓸쓸하여 홀로 인듯 보이지만, 타인을 위한 종을 항상 울리는 것처럼요^^
가족은 제 서재 귀퉁이에 먼지먹고 있은지 오래되었는데 ㅎㅎ
오늘 저녁 집에 가서 한 번 들춰보고 싶어집니다 ㅎㅎㅎ
오늘도 좋은 봄 되세요 *^^*

appletreeje 2013-03-07 23:05   좋아요 0 | URL
'고독하고 쓸쓸하여 홀로 인 듯 보이지만, 타인을 위한 종을 항상 울리는
것처럼~' 드림님의 말씀이 너무 좋습니다.^^
드림님! 좋은 밤 되세요.*^^*

프레이야 2013-03-07 11:29   좋아요 0 | URL
최인호의 신간이군요. 예전엔 잘 모르겠던데
나이들어가면서 더 좋아보이는 작가가 이 분 같아요.
김 추기경에 대한 회고담이 진솔하게 들리네요.^^

appletreeje 2013-03-07 22:51   좋아요 0 | URL
예~나이들어가면서 더 좋아보이는 작가신 것 같습니다.
추기경님에 대한 글이 저도 참 맘에 와 닿았지요.^^
프레이야님! 평안하고 좋은 밤 되시길요~*^^*

후애(厚愛) 2013-03-07 17:56   좋아요 0 | URL
제목보고 놀라서 왔네요.^^;;
전 나무늘보님이 우신 줄 알고 말입니다...ㅎㅎ
예전에 역사소설인 유림을 무척 좋아했었는데 이 책은 어떤지 궁금하네요.^^
좋은 오후 되세요~*^^*

appletreeje 2013-03-07 22:56   좋아요 0 | URL
아궁, 죄송합니다.^^;;
'유림'은 저도 참 좋아했습니다.
이 책은 약간 종교적이긴 한데, 인간의 삶에 대한 성찰이 들어있는 책이었어요.
후애님께서도 좋은 밤 되세요.~*^^*

보슬비 2013-03-07 21:01   좋아요 0 | URL
저도 후애님 댓글처럼 나무늘보님이 우신줄 알았어요.^^;;

나무늘보님 말씀처럼 나와 인연이 닿았던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발끈했던 기억조차도 나에게 그런 추억을 주기도하고, 나는 그러지 말아야겠다는 배움도 주니 말이지요.^^

appletreeje 2013-03-07 23:00   좋아요 0 | URL
^^;;;..
이젠 제가 그런 나이가 된 것 같아요.^^ 스스로를 다독이게 되는.
보슬비님! 늘 감사드리오며, 행복한 밤 되세요.~*^^*
 

 

 

 

                      부엉이

 

                                                      박목월

 

 

 

 

                      부엉이가 안경가게를 찾아왔습니다.

                     -아저씨, 낮에도 보이는 안경 하나 맞춰주세요.

                      부수수한 얼굴로 말했습니다.

                     -글쎄, 그런 안경이 있을지 모른다.

                      어디, 이걸 한번 써봐.

                      안경집 아저씨가 새카만 선글라스를 부엉이에게 주었습니다.

                     -어라, 참 잘보이네요. 아저씨 고마워요.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부엉이는 뒷짐을 진 채 배를 쑥 내밀며

                      어슬렁어슬렁 돌아갔습니다.

 

 

                                                      -함민복, <절하고 싶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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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06 10: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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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06 18: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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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06 15: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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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06 18: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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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슬비 2013-03-07 21:03   좋아요 0 | URL
ㅎㅎ

시가 너무 귀여워서 동화를 읽는 기분이 드네요.
뒷짐지고 배를 불쑥 내민 부엉이.. 상상이 되어요.

appletreeje 2013-03-07 23:10   좋아요 0 | URL
ㅎㅎ 저도 이 시를 읽으며 마치 한 편의 동화를 보는 듯해 미소가 절로 지어졌어요~~^^ 게다가, 밤에만 잘 보면 됐지 뭘 잘 안보이는 낮까지 보고 싶어하는지..하는 궁금증까지 생겼어요.^^
 

 

 

 

 

                    시간을 읽으면

 

 

 

 

                       시간을 읽으면

                       심장에 좋다고 생각한다

                       어두운 하늘에 없는 별들이 행간에 보인다

                       별들의 밝기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빛나

                       수평선을 넘는 데 필요한 나침반이 된다

 

                       시간을 읽으면

                       내가 도착할 역이 떠오른다

                       주위에는 향긋한 풀들이 침대처럼 펼쳐져 있고

                       흘러가는 강물이 보인다

                       팔락거리는 숲의 바람을 흠뻑 들이마셔

                       심장을 악화시키는 기운을 씻어내고

                       열차 바퀴를 힘차게 돌린다

 

                       첫사랑을 고백하듯이 시간을 돌리면

                       손톱에 봉숭아 꽃물이 들 듯

                       나의 심장은 밝아진다   (P.26 )

 

 

 

 

 

                          카키색에 대한 편견

 

 

 

 

                        한 백일장 심사에서 최종 두 편을 읽다가

                        나는 카키색 앞에서 멈추었다

                        한 편은 놀라운 표현력을 가지고 있었고

                        다른 한 편은 밀도가 좀 떨어졌지만

                        카키색 작업복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배가 들어올 때마다 짐 내리는 일을 차지하기 위해

                        개떼처럼 몰려드는 카키색 작업복들

 

                        카키색 바닷물이 일렁였고

                        카키색 오후가 흘렀고

                        카키색 담배 연기가 흩어졌다

 

                        나에게 카키색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으로

                        순응이 아니라 체력으로

                        체면이 아니라 그을린 얼굴로 들어왔다

                        나는 카키색 잠바를 입기로 했다  (P.40 )

 

 

 

 

 

                           책을 읽는다고 말하지 않겠다

 

 

 

 

                         책(冊)이란 한자를 찾다 보니

                         부수로 경(冂)이 쓰이는 것을 알았다

                         옛날 사람들은 자신이 살아가는 지역을 읍(邑)이라 했고

                         읍의 바깥 지역을 교(郊)라 했고

                         교의 바깥 지역을 야(野)라 했고

                         야의 바깥 지역을 림(林)이라 했고

                         림의 바깥 지역을 경(冂)이라 했다고 한다

                         그러므로 책을 둘러싸고 있는 경계선은

                         내 시야가 닿기 어려운 거리이다

                         나는 책을 읽어서는 세상을 볼 수 없다고 믿어왔는데

                         책의 경계선 안에

                         산도 강도 들도 짐승도

                         사람도 시장도 지천인 것을 오늘에서야 알았다

                         칸트는 평생 동안 백 리 밖을 나가지 않고

                         서재에서 보냈다고 한다

                         결혼도 하지 않고

                         서재와 같이 책을 읽었다는 것이다

                         벌써 백 리 밖을 벗어났고

                         들쑥날쑥 살아가고 있으므로

                         나는 책을 읽었다고 말하면 안 되겠다

                         책을 읽는다고 말하지 않겠다

                         다만 책이 넚다는 것을 깨달았으니

                         보이는 데까지만 걸어가야겠다  (P.12 )

 

 

 

 

 

                            잘생겼지요?

 

 

 

 

                          돛이네,

 

                          고개를 갸우뚱거리던 마음이 툭 던지는 것이었다

 

                          그제야 눈썹이 보였다

 

                          먼 길을 항해하는구나

 

                          꿈을 달고 가는구나  (P.11 )

 

 

 

                                                -맹문재 詩集, <사과를 내밀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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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3-03-05 11:13   좋아요 0 | URL
날마다 올려주시는 시가 너무나 좋아요. 책, 그런것이군요. 그저 갈 수 있는 데까지 묵묵히 가보렵니다. 가끔 주절대긴 할테지만 그것도 나쁘진 않겠지요. ^^ 좋은하루 보내세요~~

appletreeje 2013-03-05 21:11   좋아요 0 | URL
순전히 개인적인 기호나 상태에 따라, 메모장에 적어놓듯 올리는 시들인데
프레이야님께서 좋다하시니 감사합니다`^^
프레이아님! 좋은 밤 되세요.~*^^*

2013-03-05 18: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3-05 21: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후애(厚愛) 2013-03-05 20:08   좋아요 0 | URL
시간을 읽으면 제목도 그렇지만 시가 너무 좋습니다!^^
고맙습니다!*^^*

appletreeje 2013-03-05 21:13   좋아요 0 | URL
저도 왠지 참 좋았습니다.^^
제가 더 감사드립니다~*^^*

후애(厚愛) 2013-03-05 23:34   좋아요 0 | URL
좋은 꿈 꾸세요~!!*^^*

appletreeje 2013-03-06 09:37   좋아요 0 | URL
후애님 덕분에 어젯밤 좋은 꿈 꾸며 잘 잤습니다.^^
후애님! 오늘도 좋은 날 되세요.~*^^*

드림모노로그 2013-03-06 10:15   좋아요 0 | URL
책이라는 한자에 이렇게 넒은 의미가 담겨 있는지 몰랐어요 ^^
저도 읽으면 읽을 수록 책의 경계가 보이지 않아서 ㅋㅋ
" 책이 넚다는 것을 깨달았으니 보이는 데까지만 걸어가야겠다 "
라는 다짐을 해봅니다 ^^ 좋은 하루 되세요 ^^

appletreeje 2013-03-06 18:36   좋아요 0 | URL
저도 그랬어요. 책이란 한자의 넓은 의미를요.~^^
저도 보이는 데까지만 걸어가야겠습니다.
드림님! 좋은 저녁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