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를 꽃으로 - 유안진 산문집
유안진 지음, 김수강 사진 / 문예중앙 / 2013년 1월
평점 :
품절


날렵하거나 빠른 속도의 글들 속에서, `지란지교를 꿈꾸며`시인의 산문집을 읽었다. 편안하고도 깊이있는 글들을 구들장 위에 앉아서 읽듯, 그렇게 읽었다. 이 책을 읽고 기뻐할, 친구의 마음을 생각하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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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13-02-19 20:41   좋아요 0 | URL
예전에 산문집을 많이 읽었는데 시대물 때문에 멀리하게 되더라구요.ㅎㅎ
제목이 무척 마음에 드는 책입니다.^^

appletreeje 2013-02-20 18:12   좋아요 0 | URL
ㅎㅎ 내용도 무척 좋았어요.
이 책도 후애님 드리고 싶었는데, 선약이 있었기에. 아쉽게도요.
후애님! 행복한 저녁 되세요.*^^*
 

 

 시간이 모여 세월이 되고, 작은 일들이 이어지고 쌓이면서 삶이 되고 인생이 된다. 소천하신 김수환 추기경님 농담처럼, 삶이란 삶은 달걀이지, 삶이라는 글자를 풀면 사람이 되지, 사람이란 살아가는 존재이지, 사람들이 사는 건 다 삶이지. 이런 가소롭고 시답잖은 글을 쓰는 나는, 가소롭고 시답잖은 시도에 대해 고백함으로써, 혹시 나처럼 가소롭고 시답잖게 살았다고 아파할 분들과 공감하고 싶다. 창밖 눈바람 속 앙상한 푸나무들이 열매 없이 살았어도 무의미하게 살았던 게 아니라고 우기면서. (P.19 )

 

 

 노장 피카소의 전시회를 본 한 기자가 "애들 낙서"같다고 남긴 촌평에 "그렇다 아이가 되는데 80년이 걸렸다."고 했다는 그의 재치가 떠올라, 종일 옛동요를 웅얼거리는 날도 있다. (P.54 )

 

 

  나는 지금도 밤이 좋다. 검은 어둠은 밝음으로 핏발 선 눈을 편안하게 해준다. 모든 색깔을 다 받아주어서 검정이다. 그 누구의 어떤 잘잘못도 다 받아주어서 검정이다. 모든 때와 얼룩을 다 받아주면서, 저 스스로 검정으로 바뀔지언정, 비난이나 비판, 평가하거나 비웃고 탓하기를 거부하면서, 뱉어내거나 배척하지 않는 어둠, 그래서 밤의 검은색은 모성이자 신성 같다.

 열정 넘치는 무한경쟁도 때로는 있어야 하지만, 검정의 어둠같이 그 어떤 실수나 실패, 잘못도 포용해주는 잊음과 용서의 밤夜같은 면도 갖춰야 하리라.  ( P.54~55 )

 

 

 추위를 몹시 타서, 겨울은 늘 힘들면서도 이상하게도 좋았지. 왠지 덤으로 받는 휴가처럼, 즐기는 일생 속에서 얻는 휴가나 여유, 유예처럼 느껴지곤 했지. 쉬어가며 살라는, 쉬면서 생각해도 된다는, 안 늦는다는, 그래야 제대로 된다는, 처음으로 돌아가 곰곰 생각하며 살펴보라는, 아무런 조건 없이 얻는 휴가가 겨울인 것만 같지. 우리 민속에도 겨울은 밤과, 비오는 날과 함께 삼여三餘 중에서도 가장 긴 여유였다지. 그래서 바쁘게 사는 이들에게 덕담으로 '잉어 세 마리'를 그린 그림을 선물하는 풍속이 있었으니, 겨울을 공짜 휴가로 느낀 것이 우리 민속의 맥락과도 통했던 게 아닐까. 잉어라는 물고기의 발음이 중국말의 '여유'의 발음과 비슷해서라는 것은 한참 후에 알았지만, 다른 물고기들과는 다르게 잉어의 우아한 기품이나 품위가 상징하는 바도 여유에서 비롯된다는 뜻이라지.

 나는 잠자기를 좋아하고 게을러서 그런지, 밤이 대낮보다 더 좋고, 밝고 맑아서 눈이 부시고 어지럼증이 이는 갠 날 보다는, 시선이 아래로 휘어지고 살갗이 촉촉해지는 비 오는 날이 더 좋고, 겉치레나 바깥으로 확산되기에 바쁜 듯한 봄 여름 가을에는 정신도 산만해지고 헷갈리곤 하여, 한갓지고 호젓한 실내생활을 하는 겨울이 더 좋아졌지. (P. 62~63 )

 

 

 슬리퍼를 끌고 나가서 동네 한 바퀴를 휙 돌다가, 문득 서점이 눈에 들어오면, 동네를 읽고 책을 읽는 이중 즐거움을 누린다. 30년을 한 동네에 눌러 살면서 늘 같은 동네 길을 걷는 것인데도 왜 그런지 늘 좋다. 며칠 사이 헌 주택이 사라지고 새 건물이 고층으로 들어서고 있는데 상가 모양새를 하고 있다. 사유지인지 공유지인지 모를 자리에는 잡풀이 우거져 철마다 시골을 느끼게 하고, 무허가 건물들 옆의 감나무의 감도 붉었고, 텃밭에서 자라는 제철 푸성귀를 보면 쌈밥이 먹고 싶어지기도 하고, 무허가 건물들이 연출하는 짙은 삶의 냄새가 아파오기도 한다. 나물 캐던 어린 시절의 바로 그 나물들이 연두 울타리 너머에서 잘도 자라서 한참 서서 보곤 한다.

 그리고 언제나 마지막 코스로 큰 길로 나가면,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인다고 동네 서점이 눈길을 끈다. 들어가 서가를 훑어보다가 생각나는 책을 주문하기도 한다. 그렇게 수십 년이 되었는데도 모르는 척하는 게 서로 편해서 좋다. 주문한 책이 도착하면 전화해줘서 고맙고 편하다.

 이번에는 전화도 못 받았지만, 주문한 책이 왔느냐고 물어보니 마침 왔다고 해서 [램브란트, 성서를 그리다]를 사 들고 오다가, 개점 이래 한번도 들르지 못한 커피집에 들어가서 커피를 한 잔 주문한다. 나이 들고 홀로 되고 가난해지면서, 세상과 인생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는지, 렘브란트는 신구약 성경의 사건들을 많이 그렸단다. 성경 공부와 그림 공부와 한 예술가의 삶이 한꺼번에 읽히고, 거기에 나 자신의 인생과 예술까지 포개어지기도 한다. 이유 없이 목이 메고, 눈쿨겨워지기도 한다. 특별한 취미나 특기도 없이 살아와서, 책밖에는 동무 되어주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나는 아직도 사람보다 책이 더 좋다. (P. 124~125 )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자>에서 아들을 껴안은 아버지의 한 손은 크고 굵은 손가락의 남자 손이고, 다른 한 손은 여자의 자그마한 손이다. 그것은 아버지이자 어머니인 하느님의 자애를 절묘하게 그린 걸작이다. 우리 엄마도 늘 아버지이자 어머니였다. (P.206 )

 

 

                                                         / 유안진 산문집, <상처는 꽃으로>에서

 

 

 

 

 

 

 

 

 

        책을 보내야 함으로,

        마음에 들어 왔던 문장들을 노트에 메모 대신

        이 공간에 빠르게 자판으로 적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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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19 10: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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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19 11: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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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 작은 시골학교에서 전교생이 출연하는 성탄절 행사를 치르게 된다. 어느 학교에나 지적으로 약간의 발달지체나 장애를 가진 아이는 있게 마련이어서, 그 작은 학교에서도 그런 아이 윌리에게 어떤 역할 하나는 맡겨야 했다. 조금은 모자라는 이 윌리를 두고 선생님은 궁리를 하다가, 가장 간단해서 아주 쉬운 딱 한 마디 대사만 외워서 하면 되는, 여관 주인 역이 적절하다고 판단하고 맡겨 연습시켰다. 무대 위에서 윌리는, 만삭의 성모 마리아를 데리고 여관을구하러 온 성요셉이, "빈방 있습니까?" 하면 "없어요 no room" 딱 한마디만 하면 되는 역할이다. 

  온 마을 학부모들이 다 모인 가운데 어린이 연극이 시작되었다.

 드디어 지적발달 지체아 윌리는 남산만 한 만삭의 배를 안은 마리아를 데리고 찾아온 남편 요셉이 방이 있느냐고 묻자, "없어요"라고 대답해야 하는 장면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아닌가. 주민들은 모두 윌리를 잘 알기 때문에, 역시 모자라서 대답을 까먹은 걸로 생각하고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없어요"라고 귀뜀해주어도, 윌리는 연습 때와는 달리, 만삭으로 배부른 마리아와 요셉을 멀뚱 바라보기만 했다. 참다못한 선생님도 커튼 뒤에서 "윌리! '없어요'라고 해야지"하고 속삭였지만, 윌리는 한참을 그대로 말없이 선 채 생각하다가는, 깊고 따뜻한 목소리로 만삭의 마리아와 남편 요셉에게 "내 방 써요"라고 말했다.  (P.83~84 )

 

 

 

                   멘토스(들) 

 

 

                     짐 값 안 받으니 내려놓고 편히 가세요

                     보따리를 이고 앉은 할머니에게 버스기사가 말했다 

                     공짜로 탔는디 보따리까정이라 안되제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까지 돌려 대라 하셨잖아

                     엉망으로 얻어터진 아이를 엄마가 나무랐다

                     그 형은 왼팔이 짧아 늘 왼뺨부터 때린단 말예요

 

                     정화수는 한 대접만 올리는 거다

                     장독대에 대접 두 개를 본 시어머니가 베트남 자부에게 일러줬다

                     내일밤은 비 온대서 내일 몫까지예요

                     아서라, 하룻밤에 두 번 목욕하시면 달님도 감기 드신다.  (P.114 )

 

 

 

 

                   계란을 생각하며

 

 

                       밤중에 일어나 멍하니 앉아 있다

 

                       남이 나를 헤아리면 비판이 되지만

                       내가 나를 헤아리면 성찰이 되지

 

                       남이 터뜨려 주면 프라이감이 되지만

                       나 스스로 터뜨리면 병아리가 되지

 

                       환골탈태換骨奪胎란 그런 거겠지.  (P.118 )

 

 

 

                                                   -유안진 산문집, <상처를 꽃으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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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18 18: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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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19 00:3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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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슬비 2013-02-18 20:59   좋아요 0 | URL
만삭의 마리아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방을 내어주려는 윌리의 따뜻한 마음이 전해져서 울컥하게 하네요.

나무늘보님 덕분에 항상 좋은글로 좋은마음을 다시 한번 다짐하게 되게됩니다.
좋은밤 보내세요~~ 나무늘보님... ^^

appletreeje 2013-02-19 01:34   좋아요 0 | URL
저도 이 책을 읽다가, 윌리에게 마음이 뭉클 했어요.
신이 보시기에는 모두가 발달지체아가 아닐까요?
저도 약간 모자라도 윌리같이 깊고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보슬비님! 좋은 밤 되세요.*^^*

수이 2013-02-19 22:49   좋아요 0 | URL
한없이 모자른 사람으로 살아가고싶어요.
화내지 말고, 이득 볼 생각 따위 버리면서- 그렇게.

appletreeje 2013-02-20 18:13   좋아요 0 | URL
앤님은 충분히 그러실 분이예요.^^
너무나 지혜로운 분이니까요.
 

 

 

                   신혼 첫날,

 

 

 

                        오지 않은 한 명의 하객을 찾아갔다

                        서운한 마음도 마음이거니와

                        몰래 왔다가 그냥 갔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비행기표를 놓았다

                        돌연 신혼여행도 안 가고 그를 찾아나서는

                        나와 새색시를 의아하게 보던 형이

                        이내 못이기는척 우리의 뒤를 따랐다

                        그냥 제발 신혼여행이나 가라는 형,

                        형만 아니었으면 하면서

                        늘 내 원망의 대상이었던 형이어서

                        따라오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 않았다

                        구월의 밤은 아직 뜨거웠고

                        새 색시는 어질어질 걸음을 떼었다

                        쑥대머리로 앉아 있는 그를 만났다

                        하객을 맞아야 할 사람이

                        하객으로도 오지 않은 미운 아버지

                        형은 그의 검푸른 머릴 자르고

                        나와 새색시는 나란히 절을 올렸다

                        밉기만 하던 형이 산처럼 든든해져 왔던가

                        형과 나와 며느리가 안 보일 때까지

                        아버지는 산 아랫길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구월의 볕만 뜨거웠던 것은 아니어서

                        신혼 첫날밤도 네 번이나 속옷을 벗어 던졌다  (P.82 )

 

 

 

 

                         삼학년

 

 

 

                          미숫가루를 실컷 먹고 싶었다

                          부엌 찬장에서 미숫가루통 훔쳐다                   

                          동네 우물에 부었다

                          사카린이랑 슈거도 몽땅 털어넣었다

                          두레박을 들었다 놓았다 하며 미숫가루 저었다

 

                          뺨따귀를 첨으로 맞았다  (P.10 )

 

 

 

                                                          -박성우 詩集, <가뜬한 잠>-

 

 

 

     늘 가뜬한 잠,을 자지 못했던 내게 여전히 약속한 일의 시간을 따라 끄급했던 내게

     오늘 어디선가 온, '가뜬한 잠'을 읽고  安心을 한다.

     오늘밤, 우리는 속옷을 네 번이나 벗어 던지지는 못하더라도 가뜬한 잠을 잘 듯하다.

     미숫가루를 우물에 사카린이랑 슈거를 넣고 몽땅 털어넣지는 못하더라도,

     미숫가루 아이스크림이라도

     내일은 먹자 생각하여도..오늘은 왠지 가뜬한 잠을 잘 것 같다.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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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16 08:3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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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16 23: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2-16 14: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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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16 23: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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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3-02-16 21:05   좋아요 0 | URL
와, 왠지 눈익은 표지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박성우였군요.
전에 제가 쉬운 시집을 누군가에게 추천해달라고 했는데, 그분께서 페이퍼까지 써가며 여러 권 추천해 주신 목록에 박성우 시인이 있었어요. 지금 시집을 한장 한장 넘기며 시를 읽고 있노라면 서정시, 향토시의 시대는 갔어! 하는 문창과 선배 누나의 새된 꾸지람이 귀에 박히는 듯하지만 그래도 좋은 걸요. 특히 '삼학년'이라는 시는 짧으면서도 강렬한, 소박한 웃음이 걸리는 좋은 글이지요.

저는 이제 시를 난이도 순으로 읽어보려고 해요. 먼저 손택수와 유홍준, 그리고 시의 기본이라는 김기택과 이윤학... 극난이도에는 김경주와 황병승이 있습죠.
어제 글을 몰아서 쓴 탓인지 오늘은 책을 읽고 싶네요. 정미경의 <내 아들의 연인>을 꺼내두었어요.

트리제님, 굳밤, 아직 저녁인가요? 굳 저녁-밤 :D

appletreeje 2013-02-17 00:08   좋아요 0 | URL
소이진님이 오셨군요.^^ 반가워요~~!
저도 어젯밤 이 시집을 읽으며 마음이 순해지고 참 좋았어요.
'삼학년'은 정말 저절로 웃음이 피어났어요.

저에게 처음 시를 알게 해 준 시인은, 고은 선생님이시고
그때는 조태일이나 황명걸,신경림,김명인..김영태, 마종기,황동규 시인 등..
너무나 많은 시인들이 계셨지요.

늘 문학에 대한 빛나는 열정으로 건필하시는 이진님의 모습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정미경님의 <내 아들의 연인>도 언젠가 읽긴 했는데..가물가물하네요.^^;;
소이진님! 굳밤,

수이 2013-02-16 22:30   좋아요 0 | URL
나무늘보님 덕분에 좋은 시 자주 알게 되어 행복해요. 진정.
앞으로는 미숫가루 타먹을 적마다 생각나겠는걸요. 삼학년. ^^

appletreeje 2013-02-17 00:14   좋아요 0 | URL
저도 앤님덕분에 너무나 행복하고 좋아요~~^^
진정으로요~! 미숫가루를 타먹으며 삼학년을 생각하는 우리.^^
앤님! 행복한 밤 되세요.*^^*

후애(厚愛) 2013-02-17 17:35   좋아요 0 | URL
미숫가루 먹고싶네요.ㅎㅎ
미숫가루 무척 좋아하는데...^^

appletreeje 2013-02-18 12:53   좋아요 0 | URL
ㅎㅎ 저도 미숫가루 무척 좋아해요~~
후애님! 오늘도 좋은 날 되세요.*^^*

착한시경 2013-02-17 19:02   좋아요 0 | URL
좋은 시인과 시를 알게 되었네요... 삼학년이라는 시는 절로 미소가 지어집니다. 어쩜 저런 생각을 해낼 수 있을까 ? 지금처럼 음료수가 흔하지 않았던 어린시절..여름이 되면 늘 엄마가 타 주시던 시원한 미숫가루가 생각이 나네요..그때는 학교 끝나면 학원다닐 일도 많지 않아 여유있게 미숫가루 먹구...마룻바닥에 뒹글뒹글하며 쉴 수 있었는데~ 왜 지금은 그 때 맛이 나지 않는지 모르겠어요...

appletreeje 2013-02-18 12:58   좋아요 0 | URL
앗, 착한시경님이 오셨네요~? 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쵸? 삼학년을 읽으면 절로 미소가 ㅎㅎ
저도 마룻바닥에 누워 뒹굴뒹굴 하던때가 그리워요~
착한시경님! 오늘도 행복한 날 되시구요~^^
 

 

 

                      성(聖) 물고기

 

 

 

                       기어이 가야 할 그 어딘가가 있어

                       여울목을 차고 오르는 눈부신 행렬 좀 보아

                       잠시만 멈추어도 물살에 밀려 흘러가버릴것이므로

                       아픈 지느러미를 파닥여야 하네

                       푸른 버드나무 그늘에서조차 눈 감지 못하네

                       오롯이 지켜야 할 무엇이 있어

                       눈 뜨고 꾸는 꿈은 얼마나 환할 것인가

                       그 아득한 향수가 아니고서는 비늘이 온통 은빛일 리가

                    없지

                       뉘우침이 많은 동물이어서

                       평생을 물에 제 몸을 씻으며

                       물고기는 한사코 길을 간다네

                       온몸으로 물을 뚫고 길을 내지만

                       이내 제 꼬리지느러미로 손사래를 쳐 지워버리네

                       지나온 길은 길이 아니라네

                       제 몸 길이만큼만이 길이어서

                       발자국도 그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네

                       화살촉 같은 몸짓으로 말하네

                       살아 있는 물고기만이 비린내가 없다고

                       그러나 그것만이 살아야 할 이유는 아니라는 듯

                       묻고 있네

                       네 가슴에도 천국의 지도 하나쯤 품고 있느냐고

                       낚시 바늘에 얹힌 한 끼 식사에 눈길 주지 않은

                       몇 마리 물고기

                       거친 물살에 제 살을 깎으며

                       강을 거슬러 오르네  (P. 12 )

 

 

 

 

                        한 손

 

 

 

                        간도 쓸개도

                        속도 배알도 죄 빼내버린

                        빈 내 몸에

                        너를 들이고

                        또 그렇게 빈 네 몸에

                        나를 들이고

                        비로서 하나가 된

                        간고등어 한 손    (P.50 )

 

 

 

                                                    - 복효근 詩集, <따뜻한 외면>-에서

 

 

 

 

     집의 어항에서 며칠 전, 새끼물고기가 몇 마리 태어났다.

     그런데 블랙테트라 한 놈이 계속 새끼물고기들 주위를 맴돌며, 주변의 다른 물고기들이

     오면 달려가 쫓아낸다. 신기한 일이다.

     보통 물고기들은 새끼를 낳아도 그냥 별 관심을 안 갖는데

     이 놈은 희한하게도 계속 새끼들을 내려다 보며 끊임없는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치어들은, 따로 산란통에 넣어 베이비먹이를 주고 키우는데 이 블랙테트라의

     유별난 모성애에 그냥 놔두니 하루 이틀이 지나자 두 마리가 죽고, 헹갈레의 특징인

     검은 점이 보였다.  블랙테트라의 새끼가 아닌 것이다. 그래서 따로 남은 새끼들이라도

     살리려고 산란통으로 옮겼는데, 그 블랙테트라는 여전히 새끼들이 있었던 그 자리에서

     먹이도 먹지 않고 새끼들을 찾고 있어 자꾸 마음이 쓰인다.

     왜 그놈은 자기 새끼도 아닌 물고기들을 자기가 엄마인양 그랬을까.

     오늘 복효근의 <따뜻한 외면>,이란 시집이 와서 읽노라니 유독 이 '성(聖) 물고기' 와 '한 손'이

     마음에 스민다.  

     거친 물살에 제 살을 깎으며 강을 거스르지도 못하는 나의 물고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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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14 20: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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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14 21: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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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15 07: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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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15 09: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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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13-02-15 12:30   좋아요 0 | URL
도서관에 가면 있을까요? 복효근이란 시인의 이름도 저 시도 모두 처음이에요.
따뜻한 외면-이라니, 펼치기도 전에 일렁거려요, 나무늘보님.

appletreeje 2013-02-15 18:22   좋아요 0 | URL
시집 신간이라 아직 없을 것 같아요.
희망도서로 신청해 보시면 어떠실지요.^^
복효근 시인의 시는, 몇년 전 '직립'으로 처음 만나 좋았었는데
다시 만나게 됐네요.^^
따뜻한 외면,정말 마음이 일렁여요.*^^*

드림모노로그 2013-02-15 13:03   좋아요 0 | URL
와 역시 시인의 눈은 간고등어 한 손을 보고도 시가 되는군요 ..
모든 것을 비웠을 때 한 몸이 된다는.. 묘한 울림이 전해집니다.
성물고기와 태어난 새끼물고기, 묘한 대조가 이루어지네요
나무늘보님 정말 멋진 조화예요 ^^ 완전 감동 으아 ~ +_+

appletreeje 2013-02-15 18:27   좋아요 0 | URL
우리 드림님의 '눈빛'에 언제나, 경탄을 하고
저야말로 또 완전 감동을 받습니다.~~^^
드림님! 행복한 저녁 되세요.*^^*

2013-02-16 12: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2-17 00:1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