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는 어디든지 갈 수 있다 트리플 31
장아미 지음 / 자음과모음 / 202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16*183판형의 얇고 가뜬한 양장본 트리플 시리즈의 이번 장아미 작가의 연작소설은, 생과 사. 꿈과 현실. 인간과 (귀)신의 영역이 공존하는 세계의 이야기들을 ‘웃으며 송곳니를 드러내는 밤. 귓것들이 홀리는 밤‘처럼 홀연히 홀려들어가는 小說. 그러나 그 안에는 서로의 안녕을 기원하는 다정한 안부와 응답들이 내재되어 있다. ‘우리는 떠내려가지 않을 것이다. 서로에게 속해있는 이상 그 무엇도 우리를 무너뜨릴 수 없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안네, 성당에 가다 - 나의 개종 이야기
정 비안네 지음 / 바오로딸 / 202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새벽에 별을 바라보다가 신의 존재를 느낀 군인에서, 극단적 성향의 개신교 (예비) 해외 선교사에서 우연히 <다미안 신부> <교부들의 신앙> <사하라의 불꽃>等과 여러 여정을 통해 가톨릭 (예비) 신자로 입교하게 되고 뜨겁고 기쁜 삶을 살아가는 이야기들과 참신한 캐릭터와 멋진 作畵로 즐거운 몰입감이 컸던 冊. 가톨릭 교회가 궁금하신 분들이나, 기존 신자들에게도 자신의 신앙 생활을 돌이켜 보게 되는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기억 공장 노는날 그림책 22
안오일 지음, 신진호 그림 / 노는날 / 202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4.3이라는 명칭은 1948년 4월 3일에 발생한 대규모 소요 사태에서 유래한다. 4.3사건은 반군 진압을 명분으로 사실상 지구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학살의 유형이 총집합되었다. 제주 4.3의 기억을 담은 주정 공장이 부르는 노래 ‘이어도사나 이어도사나/ 이어도사나 이어도사나/ 우리 배는 잘도 간다 어서 가자/ 저어라 저어라 파도를 넘어간다‘를 기억하며 다시는 이런 비극적인 역사가 있어서는 안되리라. ˝2,000여 명의 수감자가 오래된 창고에서 살고 있는 것이 발견됐습니다. 여성 수가 남성보다 대략 3배나 많았고 팔에 안긴 아기들과 어린이들도 많았습니다. ˝ (1949년 5월 11일 주정 공장을 방문한 UN위원단)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제야 보이네 - 김창완 첫 산문집 30주년 개정증보판
김창완 지음 / 다산북스 / 202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11년 구판을 읽었을 때의 100자평 소회는 여전하지만, 작가의 구판과 개정증보판 너머의 프롤로그가 더욱 깊어졌듯이 독자로서도 그간 건너온 시간의 무게로 한층 의미 있고 두터워진 마음으로, 참 좋은 그림들과 詩와 조곤조곤한 문장들로 어지러운 세상을 사는 힘든 마음을 달래 준 귀한 冊 이었다. 김창완밴드의 <열두 살은 열두 살을 살고, 열여섯은 열여섯을 살지>를 다시 듣는 밤.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든 삶을 자신에게 다시 선물하세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감자의 멜랑콜리






잠시 눈을 감는다

이건 기도하는 자세와 같구나



하지만 내겐 손이 없다



슬픔과 기쁨의 날개를 달고

뒤뚱거리는 늙은 새처럼



나는 울퉁불퉁한 얼굴로

눈을 감고



그건 어쩌면 기도하는 자세와 같고

아무려나 내겐 손이 없으니



어느날 꼭 맞잡았던 두개의 손

검게 벌어진 시간의 틈새로 흘러나간 건



기쁨의 젖은 입술인가

희게 굳은 너의 슬픔인가



죽기 전에

눈을 꼭 감은 채



나는 더 둥글어지고

조금 더 밤에 가까워졌다  (P.64)






망각






 많은 것들이 사라졌다 그리고 모든 것이 돌아오는 밤이 

있다



 영혼이라는 말을 들으면 검은 돌처럼 가슴이 뛰는 것



 금지된 책들이 여기 있었다는 걸 뒤늦게 아는 경이로운 

밤처럼



 내게 영혼이란 것이 있다면 흰 종이처럼 무한할 것이고



 마지막 문장에 찍힐 검은 점처럼 한없이 떨며 차가울 것

이었지만



 이제 아무도 책을 가졌다고 잡혀가지 않으니 책들도 나도

영혼을 잊었다



 종이처럼 부스러지는 나의 얼굴에서 사라진 것이 무엇인

지 영영 알지 못한다   (P.68)







작별






작별 인사를 하지 말자, 눈송이야

이제 사랑은 끝나고

작은 상자 속에 넣어둔 망각이

먼지에 덮인 채 검게 굳고 있다

어느날 그것을 한점 떼어 입에 넣으면, 눈송이야

그건 오래된 음악, 흑백사진, 낡은 종이 위에 쓴 시

천천히 사라지는 너의 맨발

이제 죽음의 새하얀 혓바닥 위에서

희게 녹아버리자, 눈송이야   (P.79)




이기정 詩集, <감자의 멜랑콜리>에서










대형 쇼핑몰에서 2+1으로 산 오뚜기 '마포식 차돌된장찌개'속 감자를 건져 먹으며 저녁을 먹은 후, <감자의 멜랑콜리>를 읽는다. 어떤 시집은 펼치기도 전에 알 수 없는 '떨림'이 오기도 하는데 이 詩集도 그런 시집 중의 하나였다. 


'해설' 중,


1970년 재단사의 죽음은 성큼 다가와 있다. 우리는 그때와 얼마나 달라져 있을까. 전태일의 죽음은 어떻게 우리의 삶에 스며들어 있나."입안 가득한/ 재의 맛"을 지금 여기서 감각하는 한, 전태일은 역사적 기억의 대상이 아니라 지금 나의 얼굴이 된다.


 지나간 슬픔과 상처를 기억하고 싶지만 기억할 수 없는 까닭은 단지 물리적 시간의 흐름 때문이 아니다. 아직 구현되지 못한 근로기준법, 규명되지 못한 도청의 학살, 치유되지 못한 여공의 희생은 기억 속에 파묻혔고, 기계적 노동과 무심한 일상은 계속 되고 있기 때문이다. 혹은 그 상처의 생생한 감각 대신 과거의 사건을 관념화하면서 낭만화하는 까닭이다. 한순간에 지상의 모든 것을 검은 구멍 속으로 쓸어 넣는 싱크홀처럼. (P.80-81)


어두운 창고 구석에서 힘없고 말없이 그저 존재할 뿐인 것. 그래서 알아차리기 어려운 것. 그래도 가만히 귀 기울이면 그것이 거기에 틀림없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는 것. 그래서 가만히 숨소리를 듣고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그것이 거기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가끔 목이 멘다. (P.91)



"눈이 녹은 뒤에도 남아 있는 것 파도가 사라진 뒤에도 남/은 것 네가 떠난 뒤에도 남은 것 어둑한 너의 눈동자처럼 아/

직은 있는 것" '한 시에 남아 있는 것'(P.49)



앞으론 감자를 먹을 때마다, "정작 쓰지 못한 마음은 주머니 속에서 쓰디쓴 돌멩이처럼/ 굴러다닐 때 시계는 정지하고 남아 있는 것은 박동하지 않/는다"를 생생히 기억하게 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