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박민규는 역시 박민규다. 제목부터 내용까지 박민규답다. 이런 작가가 이 시대에 있어 기쁘고 다행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새들에게 인간은 이해할 수 없는 동물이다. 어째서 날지 못하고 자동차나 비행기를 타야 하는지, 왜 그렇게 많은 집이 필요한지, 거기다 전쟁을 일으켜 서로를 죽이는 인간들을 어찌 이해할까. '자칭' 고등동물들은 왜 이렇게 복잡하게 살아야 하는 걸까. 새들 편에서 보면 인간은 참 쓸데없는 일에 몰두하며 산다. 인간들 사는 게 얼마나 복잡한가.

 요즘 읽고 있는 책,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윌든]에서 옮겨 본다.

 

 

 차나 커피, 우유도 마시지 않고 버터와 고기도 먹지 않으니 그러한 것을 사기 위해 일할 필요는 없다. 또 별로 일하지 않으니까 그다지 먹을 필요도 없고, 따라서 식비는 많이 들지 않는다, 그런데 당신은 처음부터 차나 커피, 버터, 우유, 쇠고기 등을 먹고 마시고 있기 때문에 그것들을 사기 위해서는 필사적으로 일할 수밖에 없고, 필사적으로 일하면 체력의 소모를 보충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먹지 않으면 안된다.

 

 

 새처럼 날아다닌다는 게 얼마나 간편한가. 날기 위해서는 가벼워야 하기 때문에 뭘 소유할 수도 없다. 집도 필요 없다. 짐이 없으니 이고 지고 다닐 것도 없다.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면 그만이다. 신선이 따로 없다. 인간은 나는 걸 포기하는 대신 힘들여 걸어야 했고 자동차를 만들어야 했고 집도 지어야 했고 직업을 구해야 했다. 걷는 것과 동시에 고행이 시작된 것이다. 새들에게 인간은 가장 진화가 덜 된 동물일 것이다.....,

 

 

 나는 다시 태어난다면 새가 되고 싶다. 새는 무위진인 無位眞人이기 때문이다.

 내가 사는 곳의 뒷산 높이는 해발 700미터이고 그 뒤 지장봉은 해발 870미터나 된다. 독수리나 말똥가리는 이렇게 높은 산을 휘감으며 비행을 한다. '구글어스' 위성지도로 70미터 위에서 내려다 보면 자동차는 약 3밀리미터 크기로 보이고 사람은 자세히 봐야 보일 듯 말 듯 하다. 겨울철 눈이 쌓이고 한파가 계속되면 독수리 먹이로 쇠기름을 놓아주는데 새들은 이렇게 높은 곳을 날며 지상의 먹이를 찾아낸다.

 나는 가끔 '구글어스' 위성지도를 열어놓고 '새놀이'를 즐긴다. 항공기는 대개 비행 효율이 가장 좋은 지상 10킬로미터 상공을 비행하지만 새가 나는 높낮이는 자유롭다. 500미터 상공을 날기도 하고 1천 미터 상공을 날기도 하고, 대륙과 대륙을 이어 날기도 하며 세계의 거의 모든 도시를 날아다닌다.

 '새놀이'를 하다 보면 새들이 이동할 때 자력을 이용한다는 말이 곧이들리지 않는다. 예를 들어 63빌딩에 올라 서면 멀리 인천 앞바다가 보이는 것처럼 지상 1천 미터만 올라 가면 목적지가 어디든 집을 잃을 염려는 없어 보인다. 산맥이나 강을 따라가면 반드시 바다에 도달하게 된다. 해안을 따라 이동하면 지구 어디든지 갈 수가 있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는 말엔 아주 단순하면서도 깊은 진리가 숨어 있다.

 

 

                                          -도연스님, <나는 산새처럼 살고 싶다>(p.236~239)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꽃은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 - 도종환의 나의 삶, 나의 시
도종환 지음, 이철수 그림 / 한겨레출판 / 201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도종환 시인의 시문학과 삶의 궤적. 삶은 추상화일 수없고 어느 아름다움도 사람의 일과 떨어져 있는 것은 없음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인은 시적으로 지상에 산다

 

 

 

            고료도 주지 않는 잡지에 시를 주면서

              정신이 밥 먹여주는 세상을 꿈꾸면서

              아직도 빛나는 건 별과 시뿐이라고 생각하면서

              제 숟가락으로 제 생을 파먹으면서

              발 빠른 세상에서 게으름과 느림을 찬양하면서

              냉정한 시에게 순정을 바치면서 운명을 걸면서

              아무나 말할 수 없는 것들을 말하면서

              새소리를 듣다가도 '오늘 아침 나는 책을 읽었다'*고 책

              상을 치면서

              시인은 시적으로 지상에 산다

 

              시적인 삶에 대해 쓰고 있는 동안

              어느 시인처럼 나도 무지하게 땀이 났다

 

              * 연암 박지원의 글 [답경지(答京之]에서.

 

 

                                        

 -천양희, <너무 많은 입>중에서-

 

 

 

 오늘 천양희(千良姬)詩人의 이 詩集이 내게로 왔다. 시집 몇 장을 넘기다 이 시가 눈에 들어 오다. 문득, 읽기를 멈추고 청소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성일씨처럼 책을 읽기前 손을 씻지는 못해도 이문재詩人의 말씀처럼 척추를 곧게 세우고 읽어야 할 것 같아서. 房을 깨끗히 청소를 하고 주변을 고요하게 잠재운 뒤 시집을 읽기 시작했다.'

 첫 詩로 나오는 -구르는 돌은 둥글다- 중, '모서리가 없는 것들이 나는 무섭다 이리저리/구르는 것들이 더 무섭다'에 마음이 박히다. -마음의 달-,  -물결무늬고둥-, -너무 많은 입-, -산에 대한 생각-, -썩은 풀-, -뒷길-, -수락시편-, 等等..시인의 詩들를 읽으며 질팍했던 정신을 추스린다. 얇고 가볍고 분주한 世間을 걸어가다가. < 내 인생의 절밥 한 그릇>을 읽으며 공선옥님의 글과 더불어 시인의 글이 깊어서 인상깊었었는데 오늘 이 시집을 읽으니 더욱 충만하다. 1942년生으로 올해로 등단 47년을 맞은 천양희(千良姬)詩人. 시집의 맨 마지막에 나오는 '시인의 말'로 시인의 詩에 대한 소감을 대신한다.  좋은 날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저것은 맨 처음 어둔 땅을 고 나온 잎들이다

         아직 씨앗인 몸을 푸른 싹으로 바꾼 것도 저들이고

         가장 바깥에 서서 흙먼지 폭우를 견디며

         몸을 열배 스무배로 키운 것도 저들이다

         더 깨끗하고 고운 잎을 만들고 지키기 위해

         가장 오래 세찬 바람 맞으며 하루하루 낡아간 것도

         저들이고 마침내 사람들이 고갱이만을 택하고 난 뒤

         제일 먼저 버림받은 것도 저들이다

         그나마 오래오래 푸르른 날들을 지켜온 저들을

         기억하는 손에 의해 겨울을 나다가

         사람들의 까다로운 입맛도 바닥나고 취향도 곤궁해졌을 때

         잠시 옛날을 기억하게 할 짧은 허기를 메꾸기 위해

         서리에 맞고 눈 맞아가며 견디고 있는 마지막 저 헌신

 

 

                                                        -<시래기>- 도종환.

 

 

 

 

B에게.

 

 

 

 저녁으로, 무화과브래드에 딸기크림치즈를 잔뜩 발라 먹고..또..카스테라가루가 어찌나 탐스럽게 뿌려졌는지, 풍만한 자태을 뽐내고 있던 케익도넛을 또 하나 먹어 주고..그리고 자기만 빼놓으면 괜히 서운해 할까봐 '예의상', 하나 남은 생크림이 바삭한 파이에 잘 숨겨져 있는 '초코쇼콜라'까지 마저 먹고 헤즐럿커피를 머그컵 가득 뜨겁게 담아 마시고 있는..거의 '식신(食神)'의 경지에 올라..이 겨울 이후 부쩍 심하게 몸이 난 스스로에 대한 민망함을 ...(흐흑)

 

 세발가락나무늘보에 대해서는, 김영하의 -랄랄라 하우스-를 읽다가 '생존의 기술'이란 챕터에서 알게 됐는데 쫌 재밌다는 생각이 들어 옮겨 봅니다.

 

-얀 마텔의< 파이 이야기>라는 소설에 보면 세발가락나무늘보 이야기가 잠깐 나온다. 늘 잠만 자고 게으르고 동작이 굼뜨기로 유명한 이 동물은 몇 번을 건드려야 겨우 졸린 눈으로 물끄러미 사람을 쳐다본다고 한다. 귀도 어두워서 총소리쯤 돼야 겨우 반응을 보이고 그나마 낫다는 후각도 나뭇가지가 썩었는지 안 썩었는지 판별하는 수준이라고 한다. 그러나 동물학자 블록에 의하면 적지 않은 나무늘보들이 썩은 나뭇가지에 매달렸다가 땅으로 떨어진다고 한다.

그럼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바로 그 어찌할 수 없는 수면벽과 천성적인 게으름이 나무늘보 생존의 비밀이다. 너무 느리다 보니 위험한 길은 아예 가지를 않고, 늘 가만히 잠만 자고 있으니 제규어나 표범, 독수리 같은 포식동물의 주의도 끌지 않는다는 것이다. 털도 무성하여 멀리서 보면 꼭 흰개미집을 연상시키기도 하고 그렇지 않을 때에는 그냥 대수롭지 않은 나무의 한 부분처럼 보인다고 한다. 그들은 평화를 사랑하는 '채식주의자'이며 자연과 완벽하게 동화되어 살아간다.

항상 흐믓한 미소를 짓고 있다는 그 세발가락나무늘보. 가끔 어떤 사람은 너무 바쁘게 살아서 문제다. 그가 바쁘면 바쁠수록 세상은 어지럽고 어수선해진다.-

 

 

 오늘 같은 날은 문득, 독일 슈투트가르트쳄버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Bach의 -골드베르그변주곡 Bwv 788-이 듣고 싶어지고, 문득 음악을 잊은지 오래됐다는 기억이 되살아나고...고요하고 서늘한 실내에 앉아..자신과 내면의 대화를 手話로 나누며 ,적요하고 다정한 時間을 삶의 쉼표처럼 나눌 수 있게 해주던,,글렌골드가 치는 피아노연주도, 여름날의 비내리는 저녁처럼 그립고요.

 같은 곡의 音樂이라도 연주하는 사람에 따라 그 느낌이 다 다르고, 그것은 그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의 내면이나 삶의 지향, 테크닉에 따라 다 달라서 이겠지요.  -양들의 침묵-, OST에 나오는 안소니 망길라의 골드베르그변주곡은 제게 왠지 밋밋한 느낌이 들어 맘에 들지 않았습니다.

 가장 많은 연주자들이 연주한 곡으로는, 역시 Bach의 무반주첼로조곡이겠고..1악장의 -프롤류드-가 갑자기 듣고 싶네요.

 천의무봉(天衣無縫)이라는, 파블로카잘스의 장중하고 심오한 연주, 엄격하고 적요한 피에르 푸르니에의 연주, 화려하고 세련된 미사 마이스키의 연주, 다정하고 부드러운 요요마의 연주等等..音樂을 食糧처럼 들었던..수많은 時間들이, 지금 이 時間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처럼 악수를 請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