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밤늦도록 우리는 지난 얘기만 한다
산골 여인숙은 돌 광산이 가까운데
마당에는 대낮처럼 달빛이 환해
달빛에도 부끄러워 얼굴들을 돌리고
밤 깊도록 우리는 옛날 얘기만 한다
누가 속고 누가 속였는가 따지지 않는다
산비탈엔 달빛 아래 산국화가 하얗고
비겁하게 사느라고 야윈 어깨로
밤새도록 우리는 빈 얘기만 한다 (P.70 )
신경림
-신현림의 라이팅북, <글쓰고 싶은 날>-에서
건달불
1887년 경복궁에서 처음 켜진 전깃불은 물불이거
나 묘화(妙火)였다 향원정 연못의 물을 이용한 화력
발전이었기에 물불이라 했고, 기묘함 탓에 묘화란
이름을 얻었다 하지만 자주 켜졌다 꺼졌다 하면서
하릴없이 애를 태워 건달불이라는 비웃음도 얻었다
게다가 이 전깃불은 대국이 아니라 오랑캐의 물건이
라던.
납작하니 낡은 등이 나에게 왔다 묘화라는 시치미
에는 에디슨 전등 회사의 상표도 짐짓 끼어들었으니
그게 젊은 날 내 곁에서 깜박거리는 백열등의 계보
인가 복화술 하는 나를 보며 묘화의 텅스텐 눈썹은
찡그릴 뿐 쉬이 불을 켜지 못한다 혹 잠깐 불을 밝혀
도 방은 여전히 어둡고 묘화의 내부만 터럭 한 올까
지 환하다 백년을 기다려도 건달의 속내는 무심하
니 건달불 없이 하, 시절을 구불구불 지나온 사람의
심정과 마찬가지더라 (P.37 )
-송재학 詩集, <검은색>-에서
치즈토마토햄버거와 뜨거운 커피를 먹으려 꺼내 놓고, 새로 받은 책의 내부를
'아무도 열어보지 않은시간/ 새도 아니고 나뭇잎도 아닌 낯선 노래들이 수런수런
모여' 드는 모습을 골몰히 들여다 보며, 아름답고 따뜻하고 다정하고 슬프고 맛있
는 책들 덕분에, 나비족이 되어 오늘도 백일몽을 꾼다.
'티스푼 같은 나비의 두 날개를 펴본다/ 날개가 전부인 고독의 구조가 단단하다
찢어지지도 접히지도 않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