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이던가 시간이 남길래 영화관에 가서 시간에 맞는 영화를 찾다가 하이라이즈라는 영화를 봤다. 처음부터 끝까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건지 모르는 기괴한 영화라서 황당했던 기억이 남아서 이것 저것 자료를 찾다보니 원작소설이 있는걸 확인했다. 그래서 소설을 읽고 다시 보고자 하는 마음으로 책을 구입했는데 차일피일 미루다가 2년만에 읽게됐다.스필버그 감독의 태양의 제국이라는 영화의 원작자이기도한 J.G. 밸러드는 공상과학 소설의 뉴웨이브를 주도한 작가로 이미 영국에서 매우 논쟁적인 작가중의 한명이다. 30년대 상하이에서 태어나 2009년도에 사망했고 색다른 S.F 소설을 많이 남겼는데 하이라이즈도 그런 소설중 하나로 볼 수 있다.40층의 초고층 아파트에서 벌어지는 입주민들간의 갈등을 계급구조로 잘 엮어낸 작품이다. 영화를 보기전 소설을 먼저 읽었더라면 참 좋았을텐데 영화를 왜 그리 어렵게 만들었는지 원....영화를 다시 한 번 보기는 해야겠다. 초고층 아파트중 25층에 입주한 의사 랭의 시선으로 소설은 시작된다.2층에 사는 다큐멘터리 제작자인 리차드 와일더, 26층에 사는 매력적인 여인 샬롯 맬빌, 그리고 40층 펜트 하우스에 거주하며 이 아파트를 직접 만든 안토니 로열등이 주요 등장인물이다. 중간 기점이기도한 10층을 중심으로 상층부 주민과 하층부 주민들이 별 문제없이 지내다가 점차 계급화되며 아파트내에 혼돈이 벌어진다.아파트는 스스로 고립되며 주민들간의 전쟁 아닌 전쟁이 벌어지고 인간 내면의 추악한 욕망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계속되는 격한 대립중에 벌어지는 에피소드들이 상당히 흥미롭게 전개되는데 아파트를 배경으로 이런 소설을 썼다는 자체가 놀랍다. 매우 흥미진진한 작품이다. 색다른 소설을 원한다면 한번쯤 꼭 읽어볼만한 소설로 생각된다.
그냥 그저 그런 단순한 자기계발서로 치부하기 어려운 책이다. 무심코 읽어봤는데 가독성도 괜찮고 비지니스에 쓸만한 내용이 상당히 많은 탄탄한 내용의 실용서적이다. 일본식 자기계발서 특유의 실생활을 중심으로 하는 말랑말랑하고 소프트한 내용이라서 접근하기 용이한 스타일이다.첫번째 토픽은 리더로서 부하직원에게 다소 무시 당한 느낌이 들었을때 절대로 웃지말라는 조언으로 시작한다. 사람이 쉽게 그리고 가볍게 보이지 않기 위해서 일종의 어려운 상대라는 느낌을 가지게 하기 위해서 다소 무례한 부하직원의 태도에 동조하지말고 고함은 치지 않더라도 눈빛만으로 불쾌함을 드러내야지 향후 그런일이 자주 발생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누구나 겪게 되는 일이지만 고개를 끄덕거리게 된다.비지니스나 일반관계에서 발생하는 사례 47가지를 상활별로 정리해서 상대방과의 심리전을 성공으로 이끄는 방법을 제시한다. 말을 통해 상대방에게 어떻게 비춰지나 그리고 상대방에게 대응하냐에 따라 더욱 편하고 쉽게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다.코코 사넬이 말한 ˝상대를 겉보기로 판단하지 마라. 그러나 명심해라. 당신은 겉보기로 판단될 것이다˝ 부분을 참고한다면 우리가 살아가며 어떻게 말을 하느냐에 따라 일정부분 자신의 삶을 훨씬 알차게 가꿔나갈 수 있을것이다.특히 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참고하면 좋을만한 내용이 많다. 추천한다.
여행을 갈때 들고갈만한 책중 어떤게 좋을까? 여행을 자주 다니는 편은 아니지만 가벼운 추리소설류의 작품들 그리고 조금 더 나아가면 중단편집들이 딱인것 같다. 이번에 후쿠오카 여행을 갈때 가지고 가서 재미있게 읽은 책이다.악마의 증명은 현직 판사일때 주로 단편류의 추리소설을 발표하다가 이제 변호사로 개업해 본격적인 소설가의 길을 걸을수도 있을것으로 보이는 이색적인 경력의 도진기 작가의 작품이다. 여기저기에서 추천하는 글을 보기는 했지만 본인의 법조계 경험을 잘 살린 이야기들과 일종의 공포,괴기,환상문학의 스타일이 어우러진 작품집이다.˝악마의 증명, 정글의 꿈, 선택, 외딴집에서, 구석의 노인, 시간의 뫼비우스, 킬러퀸의 킬러,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 총 8편의 단편이 실려있으며 각기 다른 성격의 소설을 읽는 재미가 있다.개인적으로 죽음이 갈라놓을때라는 작품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환상문학 스타일에 일종의 기괴한 악취미가 곁들여진 작품으로 결말의 시퀀스가 상당히 독특했다. 그 어디서 만나보기 힘든 결말이 아니었나 생각한다.법조인 출신의 경력을 충분히 활용한 작품들도 괜찮았는데 선택이라는 작품은 매우 슬픈 지점이 있어서 인상적으로 읽었다. 법정 드라마를 더욱 디테일하고 세밀하게 장편소설을 쓴다면 충분히 구입해서 읽을 용의가 있다. 작가의 건투를 기대한다.
한번쯤 생각해봤던 컨셉이었는데 책으로 읽게됐다. 덕분에 27년전 썼던 일기장을 찾아봤는데 어디갔는지 찾을 수 없었다. 학사장교 임관후보생으로 5개월간 훈련을 받으며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상당히 힘들었을때 하루도 안 빠지고 일과 마지막 시간에 일기를 썼는데...특히 4박 5일간 200키로 야간행군을 갔을때도 텐트안에서 부지런히 썼던 알토란 같은 기억인데 아쉽다. 어딘가 있겠지만...아무튼 이 책은 윤슬작가가 대략 20여년전의 일기장을 들춰내서 그 시간에 기록했던 글과 세월이 흘러 40세가 지난 원숙한 상태에서 젊은 시절을 바라보는 느낌을 좌우페이지에 교차로 엮어낸 에세이다.각자가 서로 다른 추억을 가지고 살아가겠지만, 그 개인도 자기의 추억을 온전히 기억해내기는 어려울것이다. 책 곳곳에서도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그때 어떤 심정으로 이런 글을 썼을까하며 기억을 떠올려봐도 도저히 생각나지 않는다는 심정을 토로한다. 그 당시는 그렇게 힘들었을지라도 어차피 시간이 해결해준다는 경구를 스스로 확인하는 지점이 아닐까?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젊은 시절의 고뇌와 고통을 잘 이겨내고 세월이 지나 돌이켜보면 뭐가 그렇게 힘들었을까라고 생각할때가 분명히 온다. 나도 올해 지천명의 나이에 도달했지만 그 어려웠던 순간들이 문득 문득 떠오를때가 있다. 하지만 그때만큼 고통스러운 감정이 살아나지 않는다. 오히려 더욱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느낌이다.요즘도 가끔 생각날때마다 일상을 기록하고 있지만 이렇게 시간이 흘러 자기의 기억을 떠올려가며 상념에 잠길때 보다 더욱 알찬 삶을 살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포켓사이즈에 내용도 심플해서 가볍게 읽기 좋다.
작년부터 한 작가의 소설을 정해서 꾸준히 읽어주고 있다. 일본작가로는 나쓰메 소세키와 무라카와 하루키, 서양작가로는 요 네스뵈와 이언 매큐언의 소설들이다. 작가마다 차별성과 각기 다른 개성의 작품들을 보여주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소설들은 이언 매큐언의 작품이다. 속죄를 읽고 단박에 그의 팬이 된 이후, 최신작인 [넷셀], 데뷔작인 단편 모음집 [첫 사랑, 마지막 의식], [이노센트]에 이어 다섯번째로 체실비치에서를 읽었다.이 소설은 인간의 내면에 감춰진 폭력과 성에 대한 의식을 상당히 묘하게 다루는 그의 스타일이 그대로 묻어나는 작품이다. 소설의 두 남녀가 만나 서로 사랑을 하게 되고 둘이 맞는 첫날밤(실제 첫날밤이기도 하다)에 벌어지는 일들이 내용의 전부이지만 과거와 현재를 교차로 주인공들의 섬세한 심리묘사가 일품이다.이언 매큐언의 소설을 읽는 즐거움중 하나가 그의 서사와 방대한 지식에 대한 편린이 아닌가 싶다. 잘 모르는 단편적인 지식이라도 현학적인 그의 글쓰기 매력에 빠져들게 되면 헤어나오기 힘들 정도이다. 물론 이런 서사법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말이다.50년대의 보수적인 영국을 배경으로 역시나 보수적인 두 남녀가 첫날밤을 치루게 되며 생기는 압박감과 서로에 대한 갈망, 그리고 경계심등등이 화려하게 섞여서 휘몰아친다. 스포일이 될 수 있어 자세한 내용은 말하기 어렵지만 아무튼 200페이지의 두께도 얇지만 아주 금세 읽을 수 있는 재미있는 소설이다.이언 매큐언이 노벨상 수상작가가 되기는 힘들겠지만, 다양한 방면으로 특이한 소재를 아주 특이하게 풀어내는 그의 소설은 서구 소설계에서 오랫동안 족적을 남길 수 있는 훌륭한 소설가임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