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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백합의 도시, 피렌체 ㅣ 여행자를 위한 인문학
김상근 지음, 하인후 옮김, 김도근 사진 / 시공사 / 2022년 6월
평점 :
개인적으로 여행을 그닥 즐기지 않는편이다. 그래도 국내여행은 가끔씩 가고 있지만, 해외여행은 여태껏 아시아를 벗어나지 못했다. 가장 멀리갔던 나라가 신혼여행으로 갔던 태국이다. 사실 비행기를 타는것도 좋아하지 않지만, 관광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있기에 별다른 욕망이 일어나지 않는편이다. 다만, 한번쯤 기회가 된다면 그리스나 이탈리아정도는 가보고 싶은 생각이 있다.
재작년 30일의 휴가가 주어졌지만, 그나마 코로나로 방콕 생활을 했기에 은퇴 후 가볼 기회가 오긴 할것 같다. 그건 그때가서 생각해보고 이 책은 인문학자인 김상근 교수가 이탈리아의 피렌체에 대해 마키아벨리의 저서 [피렌체사]를 중심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이 분의 강의는 사내특강으로 들어본 기억이 있어 책을 읽는 내내 강의를 떠올렸다.
저자는 연세대학교 신과대학 교수이며, 학장과 대학원장을 역임했다. 미국 에머리대학교를 거쳐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에서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와 명나라 말기의 종교 교류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지만, 저자의 책에는 종교적인 색채가 거의 없어 주제에 집중하기 좋았다.
이 책은 또 한명의 공저자에 해당하는 하인후 작가의 [피렌체사] 번역본을 원고로 읽은 후 집필했다고 밝힌다. 저자는 이탈리아아의 여러 도시를 사랑하고 그에 관한 책들을 써왔지만 그중 피렌체에 대한 오랜 애정을 가지고 있었고, 그의 잠들었던 기억을 일깨워짐에 따라 이렇게 한 편의 멋진 피렌체의 뜨거웠던 역사에 관한 책이 세상에 나오게됐다.
피렌체는 흔히 예술의 도시, 천재의 도시로 알려져있다. 어두운 중세시대를 건너 르네상스의 도시이자, 세계에서 가장 많은 미술품을 소장한 우피치 미술관이 있는 도시이며, 미켈란젤로와 다 빈치의 작품으로 장식된 도시가 바로 피렌체다. 아울러 단테의 명저[신곡]과 마키아 벨리의 [군주론]도 바로 이곳에서 탄생했다.
뿐만 아니라 피렌체는 눈을 돌리는 곳곳마다 예술 작품으로 가득하고, 거대한 브루넬레스키의 붉은색 돔이 가보지 못한 사람들이라도 그 이미지를 기억할만큼 잘 알려진 도시다. 하지만 저자는 피렌체가 단지 아름다운 예술의 도시가 아니라 권력투쟁으로 점철된 정치의 뜨거운 역사를 가지고 있는 도시라고 말한다.
피렌체의 감춰진 이면을 들여다 보기 위해 저자는 가이드로 피렌체에서 태어나 피렌체에서 전성기를 맞았고 피렌체에서 죽은, 이 책을 탄생케한[피렌체사]의 마키아벨리를 활용한다. 너무나 많이 알려진 [군주론]의 저자 마키아벨리는 정치적인 감각뿐 아니라 위대한 저술가의 면목을 곳곳에서 드러낸다.
마키아벨리는 피렌체 사람들의 일상을 통해 당시의 역사적인 상황을 보여준다. 힘들게 살아갔던 하층민들, 넘쳐나는 부를 주체하지 못했지만 어떻게든 세금을 적게 내려고 온갖 꼼수를 부렸던 귀족들, 죽어도 귀족들의 지배를 받지 않겠다고 절규했던 평민들의 이야기를 통해 오늘날의 피렌체가 어떻게 이뤄졌는지 살펴본다.
아울러 권력의 정점에 서서 피렌체를 좌지우지했던 메디치 가문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 중심에 놓여있다. 피렌체는 다른 중세 도시와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는데 그건 바로 귀족들보다 평민들이 더 큰 목소리를 냈다는 사실이다. 유력한 평민들로 불린 직능 조합 출신 평민들로 구성된 행정기관이 피렌체를 통치했다.
메디치 가문이 15세기 중엽부터 권력을 독점하긴 했지만, 메디치 역시 평민 출신이다. 그래서 피렌체는 자유, 특히 평민들이 귀족이나 권력자의 지배를 받지 않을 자유를 소중하게 여겼다. 그리고 귀족과 평민 사이뿐만 아니라 평민들 사이에도, 평민과 하층민 사이에도 지배받지 않을 자유를 향한 권력 투쟁의 순간들을 책에서 만날 수 있다. 텍스트와 텍스트 사이에 지루하지 않게 아름다운 피렌체의 풍광과 예술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도면은 덤이다. 마지막장을 넘기고 나면 자연스럽게 피렌체를 다녀온 느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