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라. 모른다네. ‘지금 저 사람이 피를 흘려서 얼마나 아플까?
그건 자기가 아픈 거야. 자기 마음이 아픈 거지. 우리는 영원히 타인을 모르는 거야. 안다고 착각할 뿐, 내가 어머니를 아무리 사랑해도 어머니와 나 사이에는 엷은 막이 있어, 절대로 어머니는 내가 될수 없고 나는 어머니가 될 수 없어. 목숨보다 더 사랑해도 어머니와나의 고통은 별개라네. 존재와 존재 사이에 쳐진 엷은 막 때문에.
그런데 우리는 마치 그렇지 않은 것처럼 위선을 떨지. 내가 너일수 있는 것 처럼.

"컵에 달렸으니 컵의 것이겠지만, 또 컵의 것만은 아니잖아. ‘나잡아주세요‘라는 신호거든, 손잡이 달린 인간으로 사느냐. 손잡이없는 인간으로 사느냐. 그게 중요한 차이를 만들어. 그런데 또 한편 컵에 손잡이가 아니라 자기 이름이 쓰여 있다고 생각해봐. 갑작스럽게 내 것이 되잖아. 같은 사물인데도 달라지는 거야. 유일해지는 거지. 이런 생활 속의 생각이 시가 되고 에세이가 되고 소설이되고 철학이 되는 거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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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장자 사상이 권력에 봉사한다는 부정적 평가가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은 결과적으로 그렇게 원용되었을 뿐이며 『장자』는 권력그 자체를 부정하는 근본주의적 사상으로 평가됩니다. 이러한 긍정적평가가 장자에 대한 일반적 평가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유묵儒墨의 천명天命 사상이나 천지론志論에 대한 장자의 비판은 높이 평가되고 있습니다. 장자 사상은 반체제적인 부정 철학否定哲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체제 그 자체를 부정하는 체제 부정의 해방론이라는 평가가 그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장자의 시대가 아니더라도 오늘날 우리에게는 기계와 효율성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반성이 효율성 논의에 그치지 않고 근대 문명에 대한 반성으로 이어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계보다는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효율성보다는 깨달음을 소중하게 여기는 문화를 복원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절망적인 것은 우리의 현실이 그러한 반성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장자가 우려했던 당시의 현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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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2022-05-22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게 했는지, 왜 그랬는지를 들었다. 조니가 내게 마음을 털어놓으면서 긴장하던 모습, 그의 부드러운 음성, 그 안에 담겨있는 진심, 그리고 나도 모르게 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던생각들을 마치 들여다보듯 이야기하던 조니의 모습, 조니는어쩌면 지금 나에게 꼭 필요한 사람인지도 모른다. 내가 이슬픔을 극복할 수 있게 해주는 힘을 가진 사람. 내 삶의 빛같은 것이 되어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매일 침대에서 일어나 하루를 시작할 이유 같은 것, 오빠는 죽었는데 나는 살아있다는 사실만으로 감사해야 할 것 같지만 그렇지가 않다.
나를 레오 오빠의 여동생이 아닌 나 자체로 봐줄 사람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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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풀무질을 하면 할수록 책임감이 커진다. 자유를 쫓는 만큼 자유를잃는다. 명상을 한다. 나와 타자가 결국 하나이고, 타자의 자유 없이 나의자유도 없다고 믿으면, 타자의 해방을 목표로 삼을 수밖에 없다. 그러는순간 나의 자유란 곧 책임이다. 공장식 축산이야말로 현대 인류의 원죄다.
매일이 홀로코스트다. 막연한 죄의식이 나를 옥죄어 온다.


인지부조화란 신념과 행동 간의 불일치를 뜻한다. 인간은 이러한 부조화를없애기 위해 신념을 행동에 맞춘다. 동물을 좋아한다는 수많은 사람이동물을 먹는 것도 인지부조화 때문에 가능하다. "사람은 고기를 먹어야힘을 써", "고통 없이 죽었을 거야" 등 궁색한 변론으로 행동을 정당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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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도 눈치챘겠지만, 방금 나는 ‘중국에 충성‘이 아니라 ‘베이징에충성‘한다는 표현을 썼다. 해외 이주민과 그 자녀들이 고국을 사랑하는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호주에 사는 ‘애국적인‘ 중국인들은 수십 년간지속된 선동으로 ‘베이징‘과 ‘중국‘, 다시 말해, 공산당이 철권 통치하는중국 정부와 국가 개념의 중국을 동일시하도록 만들었다.


베이징은 한국과 미국의 관계를 갈라놓기 위해 다양한 수단을 동원하고있다. 한미동맹을 약화시키지 않는 한 한국을 지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알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사용하는 주요 무기는 교역과 투자다.
베이징은 ‘경제 책략‘, 정확히 말해서 ‘경제 협박‘의 명수다. 중국에경제적으로 의존하는 것을 이용해 다른 나라의 정치적 양보를 받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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