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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인문학 - 인간의식의 진화에서 꿈의 역할은 무엇인가
싯다르타 히베이루 지음, 조은아 옮김 / 흐름출판 / 2024년 3월
평점 :
인생의3분의1을 잠으로 보내고도 우린 수면과 꿈에 대한 지식이 너무나 얕다. 꿈을 해부하는 매스가 이렇게나 많다니.인문학이라고 묶을수밖에 없었겠다 싶다.
+책을 읽고 실습(?)후 소감
아쉽다 자각몽에 대한 실습을 맨 앞에 넣어야했다!
나자신을 탐구하고 이책을 탐독했을것이다
전날 자기암시 후 잠들었고 거짓말처럼 새벽 1시에 일어났다
그리고 꿈을 의식했다
아침, 흐릿하지만 어떤꿈을 꾼 기억이 있고
이게 뭐지 싶을 정도로 자신감이 생겼다(!!)
작가 이름을 다시 찾아봤다 싯다르타라니...!
어쨌든 결론을 먼저 보여줬더라면 훨씬 흥미로웠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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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설하고
먼저 꿈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밤에 꾸는 영상 또는 이미지라고 알고 있다.
외에도 어떤 소망을 말할 때도 우린 ’꿈‘이라는 단어를 쓴다. 외국에서도 마찬가지로 (예로 아메리카 드림을 들 수 있다) 바라는 바를 ’드림‘이라고 표현한다.
어쩌다 이렇게 쓰이게 되었을까부터 질문을 던진다.
뇌과학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꿈은 우리가 낮동안에 경험했던 것들이 전파로 뇌의 어떤 부분에 저장되는데, 그 중 강렬한 기억 또는 바람을 서사로 묶은 자극이라고 할 수 있다. 이걸 전파의 특정 궤적이라고 표현했다.
전기적 활성이 신경망을 거쳐 뉴런 집단에 위치한다고. 하하
(소뇌에 운동피질을 포함하는 특정 궤적이 그려져 있다면 꿈은 대뇌에 존재하는 궤적인거다. 다만 꿈을 관장하는 영역이 근골격계와 분리되어서 꿈을 꿀때 행동을 방해하지 않는거라고..말할수록 어려워지는데..)
꿈에도 여러 종류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당일 낮의 감정, 인상, 생각 등과 연결이 되는 것, 즉 주간잔재를 이야기한다. 그런데 상상이라는건 낮에도 할 수 있지 않은가.
그래서 꿈을 ’별‘에 비유했다. 항상 존재하지만(우리가 깨어있을 때도 존재한다) 다른 형태로 즉, 창조적 몽상을 낮에 구는 꿈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럼 꿈은 단순히 ’기억‘인가?
아니다. 그런 꿈도 있지만, 전혀 듣도 보도 못한, 현실적이지 않은 꿈도 있지 않은가?
그 꿈은 어디에서 왔을까.
이걸 역사적인 관점에서 풀수 있다.
우선 꿈은 언제부터 존재했을까. 오스트랄로 피데쿠스도 꿈을 꾸었을까. 언어가 별로 없잖아? 그리고 경험이란게 되게 한정적인데 그들도 용을 꿈꾸고 ai를 예견했을까?
2억2000만년전, 포유류의 진화가 렘수면 기간을 조금 (면분정도) 늘리면서 전파의 궤적이 서사를 만들기 시작한다. 이것이 전기적 활성으로 바뀌고 경험한것에서만 국한되는게 아니라
경험하고 싶은 것도 반영해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경험은 구전 설화와 노래, 묘비 그림, 그밖의 상징물을 통해 지식의 형태로 문화와 섞여 대물림 되었다.
잠 자거나 깨어있는 중에 나타난 표상은 예지몽으로 이어졌고, 이 표상들은 자의적이거나 비자의적인 모든 기억에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종에 따라 또 꿈이 나뉜다. 포유류 중에 우리는 ’언어‘가 있는데, 우리말고 또 누가 언어를 갖고 있을까? 녹색원숭이를 예로 들었다.
그들은 호랑이를 뜻하는 울림, 독수리를 뜻하는 울림이 달라서 포식자의 위치를 알릴 수 있다. 독수리가 나타나면 나무밑으로 숨어야하고, 호랑이가 나타나면 나무 위로 숨어야 한다는 것.
하지만 그것 자체가 논리가 되진 않는다.
논리를 만드는 것이 인간이 유일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렘 수면을 통해 가능하다. 렘수면은 성찰의 상태라고 한다. 단순 기억이라고 한다면, 해마가 자극 되었을 것이다. 해마는 회상에 필요하고 서술기억의 습득과 처리를 관장한다.
렘수면은 그럼 무엇을 할까? 기억의 중요도를 따지고 선정 위원회 역할을 한다. 기억의 전달에 중요한 역할이다.
하지만 문화가 발전함으로써 어휘가 증가하고 밈이 더 풍부해지고, 다양하게 발달하면서 삶의 범위가 확장되었고 꿈의 예언은 그 어느때보다 많아진 변수를 고려해야 했다. 그래서 앞서 2억2000만년전에 꿈은 생겨났겟지만,지금으로부터 4500년전부터 문서 리고을 통해 더욱 꿈은 정교해지고 해몽이 뒤따랐다.
사람들이 꿈의 예언을 의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자, 왜 꿈의 ’인문학‘인지 알 것이다.
어떤 한 학문만으로 재단할 수 없는 영역이 바로 꿈이다. 생물의 종에 따라 다르기도 하고, 또 수면의 종류에 따라 꿈이 나타날지 안나타날지도 정해진다. 언어의 유무에 따라 꿈의 유무도 갈리고, 역사적인 관점에서 꿈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과학이 발전하면서 꿈을 그저 우연으로 생각하는 풍조가 생겼다가 이젠 정신의학적으로 사람을 치료하는데 중요한 실마리로 해석하고, 꿈을 대하는 태도도 많이 바뀌었다(융은 심리치료를 외과적 비유로 이야기했는데, 저자는 기억의 마사지, 생각과 몸 또는 한계와 욕구에 대한 자각을 돕고 기억을 재조정하고 마음의 염증을 줄일 수 있는 일종의 감정적 물리 치료라고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이렇게 심층심리학이 재탄생하게 되었다.
이 장황한 글을 우리는 왜 읽어야할까.
결론은 ’자각몽‘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다. 자각몽은 렘수면과 각성 사이에서 꿈의 균형을 잡는 ‘의식적인 노력’이다.
(자각몽을 꾸기 위한 연습같은걸 이야기했는데 솔깃하다. 꿈일기를 써보고, 잠들기 전에 자기 암시를 하고, 렘수면 문턱에 있을 때-대략 새벽1시- 일어나서 다시 자기 암시를 통해 꿈을 조정한다. 강력한 자기 통제의 방식에 접근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ㅎㅎㅎ 말이 쉽지..) 그렇게 자각몽을 통해 우리는 무엇이든 해볼 수 있게 된다.
저자는 자각몽을 의식의 미래로 향하는 문이라고 표현했는데,
문화적 래칫이 전 세계의 붕괴를 향해 걷잡을 수 없이 굴러가는 것을 막으려면 결국 우리는 ’시야‘를 넓히는 수밖에 없다.
우리 몸에 가장 깊이 밴 습관이 가져올 최악의 결과를 상상하는 능력(=자각몽)을 한시라도 빨리 회복해야 한다고.
어려운 문제에 대한 해법을 생각해내는 정신 공간이 될 포텐셜이 있다고 ’자각‘을 촉구한다. (하지만 여기에도 조건이 붙는다. 자각몽을 통해 어떤 행동을 선택할 것인지는 그 꿈을 꾸는 사람의 의지에 달렸다)
책을 다 읽으면서 ’분류‘의 영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리저리 뜯어보고 이게 서지적인 관점으로도, 책을 배가하는 물리적인 관점으로도 나뉠 수 있는데, 꿈이라는 건 컨텐츠가 되기도 하지만 많은 학문분야를 아우르는 잣대, 분석의 틀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문헌정보학 과목 중에 ’분류‘가 그 전공의 꽃이라고 한다. 책을 어떻게 분류하는지에 따라 책을 찾기 쉽게도, 더 많이 사용하게도 된다.
책을 DNA라고 한다면, 독자는 RNA이다. 소화가 음식을 위한 것이라면, 수면은 새로운 기억을 위한 것이다.)
최근에 ‘삼체’라는 넷플릭스 시리즈를 봤는데, 주제가 꿈의 인문학과 되게 맥이 닿아있다. 삼체에선 외계인을 뜻했지만 꿈을 삼체로 비유하면 그럴 듯하다.
산소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것이 아닌것처럼, 꿈의 가능성을 꿈의 인문학에서 과학수업처럼 ㅎㅎ하나하나 상세히 설명하면서
세상의 공격?에 수동적인 자세를 취할게 아니라(삼체의 공격에 반응만 할 것이 아니라) 결국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 보이지 않는 것을 인정하고(우리가 구해야할 것을 정확히 인식하고) 이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관건이다.
꿈을꾸자,왜냐고 묻는다면 이책보다 자새히 설명해줄순 없을것이다.
다만 아쉽다고 느끼는건,
쉽지않은 자각몽을 촉구하는데 분량면에서도 소심한 촉구?그리고 그렇게나 구미가 당기진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