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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캡슐 - 15년 만에 도착한 편지
오리하라 이치 지음, 김윤수 옮김 / 문학수첩 / 2023년 11월
평점 :
15년 뒤에 배달되는 우편이란 발상에서 시작된 <포스트 캡슐>, 예전 만국박람회에서 편지를 15년 뒤에 배달해 주는 기획이 있었고 아마 이 기획을 떠올린 사람은 15년 뒤에 우편을 받은 사람들의 잔잔하면서도 가슴 시리지만 그럼에도 훈훈한 이야기로 남게 되는, 그야말로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기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예상을 빗나가는 이야기들이라면 기획한 사람은 그런 발상을 떠올린 자신을 저주하지 않았을까?
회사 거래처를 방문할 때마다 안내 데스크에 있던 가타오카 유미를 보고 호감을 품게 된 이치카와 다이스케는 그녀에게 4월 1일 오와리야 서점 1층에서 만나자는 편지를 보낸다. 설렘을 가지고 만남 장소로 향했던 다이스케는 결국 그날 유미를 만나지 못했고 우연히 직장 동료인 나나코를 만나 유미 대신 나나코와 저녁을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되고 그렇게 다이스케는 나나코와 부부 사이로 발전하게 된다. 지점을 옮기며 더 이상 유미를 만날 일이 없었던 다이스케는 그렇게 유미를 잊고 지낸다. 그렇게 15년이란 세월이 지난 어느 날 유미에게 4월 1일에 만나달라는 다이스케의 편지가 도착하는데...
남편이 있는 유부녀를 좋아하게 된 다미야 시로, 남편으로부터 폭력을 당하던 유부녀는 시로에게 마음을 열고 둘은 그렇게 깊은 관계로 발전하지만 시로는 어머니에게 유부녀의 남편을 죽인 후 자신도 자살하겠다는 유서를 쓴 편지를 부치고 이 편지는 15년 후 어머니에게 배달된다. 아들의 생사를 전혀 알 수 없었던 시로의 어머니는 편지의 단서를 찾아 시로가 좋아했던 유부녀를 찾아 집을 찾아가게 되지만 뭔가 석연찮음을 감지하게 되는데....
아버지 회사의 후배에게 온 감사 편지, 이직을 하였지만 전 직장에서의 가르침을 소중히 여기겠다는 감사의 인사처럼 보이지만 편지를 받은 나쓰미는 왠지 모를 위화감을 느낀다. 아무리 사회 초년생이라고 해도 첫머리와 맺음말에 쓰는 인사말에서 어이없는 실수를 적어놓는가 하면 감사의 내용을 담은 듯하지만 묘하게 조롱하는 듯한 느낌을 받은 나쓰미는 15년 전 회식 후 전철에 치여 생을 달리한 아버지의 사건이 이 일과 연관이 있는 게 아닌지 의심하기 시작한다.
주식을 하며 제법 돈을 번 사타케 겐스케는 직장을 다니지 않고 주거용으로 쓰는 맨션 1층에 사무실 전용으로 따로 방을 임대해 일하고 있다. 그런 그에게 다카쿠라 유키코의 돈을 빌려달라는 우편이 도착한다.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던 유키코가 오래전 자신이 다니던 바 호스티스였고 부모님의 빚을 갚기 위해 호스티스로 일했다는 것을 떠올린다. 그런 그녀에게 호감을 품었던 것을 기억하게 되지만 바에서 채무가 있던 그녀의 손가락을 담보로 한 협박성 편지에 겐스케는 답장을 쓴다.
고등학교 선생이었던 아버지, 작가를 희망했지만 꿈을 이루지 못한 어머니, 그런 부모님 밑에서 작가의 꿈을 키우며 출판사에 많은 작품을 공모했지만 입상되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한 아들 에이고에게 오래전 공모한 작품이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는 편지를 받게 된다. 하지만 벌써 15년 전의 편지로 어느 기한까지 연락이 없으면 수상이 취소된다는 내용도 같이 있었으므로 에이고의 부모님은 낙담한다. 하지만 낙담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법, 에이고의 아버지는 자초지종을 듣기 위해 출판사로 찾아간다.
다마이 가나에는 어릴 적 돌아가신 어머니 대신 아버지와 재혼한 새엄마, 의붓 남동생에게 시달리며 전문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도망치듯 집을 나와 도쿄에서의 생활을 시작한다.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는 어머니와 남동생의 학대가 심하지 않았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집안의 경제력이 새어머니에게 넘어가면서 가나에에게 향하는 폭언과 학대는 수위를 넘어섰고 자신에게 잘해주는 할머니만을 의지하기에는 너무 지쳐 도망쳤지만 할머니가 늘 걱정이었는데 그런 할머니에게 자신을 구해달라는 편지를 받게 된다.
포스트 캡슐, 이런 다양하고 기묘한 사건들과 얽혀 있다면 정말 소스라치게 놀랄 것 같다.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거미줄처럼 얽혀서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다른 편 이야기에 등장했던 인물들이 얽혀 있기도 하고 15년이란 세월을 오가며 이야기가 진행되다 보니 아차 하면 놓치게 되는 경우도 생긴다. 결국 나는 끝부분과 앞부분을 다시 읽으며 등장인물의 연결고리를 정리해야 했는데 이야기들을 잇느라 고심했을 작가님의 고뇌를 엿본듯한 기분도 든다.
지금은 좀처럼 보기 힘든 편지에 담긴 섬뜩함이라니... 편지에 대한 향수에 마냥 젖어들 수만은 없을 것 같다. 이 소설을 읽은 후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