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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실시 기담괴설 사건집 ㅣ 허실시 사건집
범유진 외 지음 / 고블 / 2023년 7월
평점 :
역시 여름엔 기담이나 괴담만큼 더위를 식혀줄 소설은 없는 것 같다.
사실 기담괴설 사건집이지만 표지를 보고 있노라면 '아잉 귀여워~'란 말이 절로 나올 만큼 앙증맞은 유령 그림에 절로 기대치가 높아진다. 마냥 무섭지만은 않으면서 유쾌한 요소도 들어가 있을 것 같아 책을 펼치기 전부터 즐거움이 느껴졌던 <허실시 기담괴설 사건집>은 총 5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모두 허실시에서 일어나는 괴이한 사건들을 다룬 이야기로 흉악한 귀신이 인간들을 괴롭히는 이야기라기보다 늘 그렇듯 헛된 욕망에 사로잡힌 인간들에 무게가 더 실리는 이야기들이다.
기담 하면 무더위를 날려줄 납량특집 같은 이야기를 흔히들 떠올리기 일쑤지만 아무래도 그런 선입견 때문에 어디서 들은듯한, 다소 문장의 흐름에 기대치를 두지 않는 느낌이 강한데 이 소설은 다섯 편 모두 확실히 인상적이면서 재미있다. 같은 주제로 작가들의 여러 이야기가 담긴 소설은 그동안 여럿 읽어보았지만 이 소설만큼 케미가 잘 맞는다는 느낌은 실로 오랜만에 느껴본 듯하다. 그만큼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바통터치하듯 매끄럽게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것이 쉽지 않은데 다음 이야기로 넘어갈 때마다 앞에 나왔던 인물 누군가가 등장하지 않을까 싶어 숨은 그림 찾듯 읽을 수 있었다.
어린 시절 화재사건을 막은 신통함에 허실동의 아이라고 불렸던 지연이는 방학을 맞아 고향을 찾았고 동네에서 제일 좋아하는 김말자빵을 먹기 위해 허실당을 찾았다가 최근 허실당이 귀신들린 빵집으로 유명세를 탄다는 것을 전해 듣게 된다. 하루가 멀다 하고 귀신을 찍기 위해 모여든 매체를 보며 지연이는 귀신이 아닌 인간의 짓거리라 생각해 빵집에 잠입하게 되는데...
허실당의 한 고등학교, 체육실과 교장실이 호랑이 발톱 자국 같은 기이한 모습으로 파손된 흔적으로 난리 법석인데 야간 자율학습이 끝나고 제일 마지막으로 학교를 나갔던 주인공이 범인으로 지목되자 억울했던 주인공은 귀신이든 사람이든 범인을 찾기 시작한다.
허실당의 어느 상가, 들어가는 모습은 찍혔는데 도무지 상가에서 나오는 모습이 찍히지 않은 세 사람은 그렇게 실종이 돼버린다. 도대체 이들은 어디로 사라져버린 걸까? 예전에는 무당이었지만 자신의 전직을 숨기며 살아가는 미령에게 말 못 할 고민이 있다며 경희가 어떤 이야기를 들려준다. 정작 사람들이 사라져버린 상가에는 뱀과 관련된 옛이야기들이 얽히며 사람들 입으로 전해지는데....
대학을 가기 위한 열정이 모여드는 곳, 학교 교실과 학원 강의실은 공부에 짓눌린 괴로움의 기들이 집약된 장소 중 한곳이 아닌가 싶다. 그러하기에 교실 괴담은 차고 넘친다. 그리고 이곳 아랑 에듀학원에서도 간격을 두고 학생과 선생이 실종되는 사건이 일어난다. 이들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마지막은 여우누이 설화가 등장하는데 두 번째 이야기에 삼국유사 김현감호 설화와 같이 실제 하는 이야기라 더 흥미로움을 느낄 수 있다. 젠더 의식으로까지 번질 수 있는 설화에서의 여성의 한을 다룬 이야기는 아무래도 맘 편하게 넘겨질 이야기가 아니라서 더 곱씹게 되는데 결국 귀신보다 무서운 것은 사람이란 말에 이의를 달 사람은 없을 듯하다. 최근 일어나는 극악무도한 사건만 봐도 귀신보다는 확실히 인간이 더 무서우니 말이다. 그럼에도 처음 접해보는 작가님들의 단편들이 인상 깊어 다음엔 어떤 이야기들로 이분들을 만나게 될까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