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고통이다 하지만 당신은 고통보다 강하다 - 마음을 다스리는 마스터, 필 스터츠의 내면 강화
필 스터츠.배리 미첼스 지음, 이수경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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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의 사고방식과 접근법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내면에 아직 사용하지 않은 힘을 갖고 있으며 그 힘을 활용하면 자신이 겪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전통적 접근법과 달리, 필은 내담자가 겪는 문제가 그 사람을 나약하고 불리하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보지 않았다. 아직 발휘하지못한 내면의 잠재력을 깨우는 기회라고 본 것이다. - ‘새로운 길에 눈뜨다’ 중에서


책의 저자 필 스터츠는 미국 정신과 의사이자 심리 상담가로 유명 영화배우와 제작자를 비롯한 할리우드 셀러브리티들의 정신적 멘토로 명성을 얻었다. 다큐멘터리 영화 <스터츠: 마음을 다스리는 마스터>를 통해 그의 치료 과정에 사용되는 핵심 도구인 ‘툴’을 소개하면서 주목받았다.


공저자인 배리 마이클스는 명망 높은 로펌에서 잘나가는 변호사로 일하다가 이 길을 과감히 버리고 전문 심리치료사가 되어 환자들을 돌보다 마땅한 해법을 찾지 못해 무력감과 혼란에 빠져 있을 무렵, 한 세미나장에서 필 스터츠를 만나 새로운 전환점을 맞는다. 이후 스터츠의 연구에 동참하여 30년이 넘도록 든든한 조력자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행동 변화가 뒤따르지 않는다면 마음가짐을 바꾸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툴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머릿속의 생각을 뛰어넘은 곳으로 데려간다, 즉 무한한 힘의 세계와 우리를 연결한다. 필 스터츠는 이를 초월적 세계(higher world), 그리고 거기에 담긴 힘은 초월적 힘(higher force)이라고 부른다.


필과 마이클스가 사람들을 치료해온 시간을 합치면 60년 정도 되는데, 이런 경험을 토대로 사람들이 원하는 인생을 살지 못하게 방해하는 네 가지 근본적 문제를 발견했다. 행복하고 만족스런 삶은 바로 이 네 가지 문제에서 얼마나 지혜롭게 벗어나는가에 달려 있다. 그리고 각각의 문제에 가장 효과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툴을 소개하고 있다.


용기의 툴


고통을 피하려 애쓸 일이 일 년에 한두 번 정도라면 크게 문제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 대부분은 몸에 깊이 밴 습관처럼 그런 행동을 반복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벽을 만들어놓고 그 뒤에 숨은 채 바깥으로 나가려 하지 않는다. 그 벽을 넘어가면 고통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편안한 공간이 바로 ‘안전지대’다.


각자의 안전지대가 무엇이든 그 세계를 즐기는 대신 큰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인생에는 무궁무진한 기회와 가능성이 존재하지만, 그것을 얻는 데에는 고통이 따른다. 고통을 받아들일 줄 모르면 의미 있는 삶도 살 수 없다.


만일 수줍음 탓에 사람 만나기를 피하기만 하면, 사람들과 어울리는 데에서 오는 에너지를 얻을 수 없다. 창의성은 뛰어나지만 비판을 찹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의 아이디어를 시장에 내놓기를 꺼릴 것이다. 조직을 이끄는 리더가 당당히 의견을 밝히며 사람들과 대면하는 것을 두려워한다면, 아무도 그를 따르지 않을 것이다.


안전지대는 삶을 안전하게 만들어주기는커녕 오히려 삶의 테두리를 자꾸 좁힐 뿐이다.


(사진, 안전지대)


드물지만 세상엔 제한된 범위의 인생을 살기를 거부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아무리 괴로워도 이를 기꺼이 뚫고 나아간다. ‘전진의 힘’이라는 초월적 힘이다. 상대방에게 거절당하거나 실패하는 것, 창피한 순간을 겪는 것도 개의치 않는다. 자기 훈련을 위해 필요한 작은 괴로움과 지루한 과정도 기꺼이 받아들여, 대체로 남들이 실천하지 못하는 것을 실천해낸다. 예컨대 규칙적 운동, 올바른 식습관, 정리정돈 생활방식 유지 등이다. 그들에겐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주는 게 있다. 바로 ‘목적의식’이다.


목적의식은 그저 생각한다고 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나 자신을 미래로 향하게 하는 어떤 행동을 실천함으로써 생겨난다. 이때 나는 고통을 피하려는 욕구보다 훨씬 더 강력한 힘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우리는 그 힘을 전진의 힘이라고 부른다.


자, 덤벼봐

나는 고통이 좋아

고통이 나를 놓아준다


당신이 고통에 어떻게 반응하는가에 따라 고통을 경험하는 방식이 달라진다. 고통을 향해 정면으로 다가가면 고통은 움츠러든다. 반면 고통에게서 달아나려고 하면 고통은 더욱 커진다. 고통을 피하려고 하면 그것은 악몽 속의 괴물처럼 나를 쫓아오게 되어 있다. 내가 그 괴물과 당당하게 맞서면 괴물은 발길을 돌려 달아난다. 그래서 욕구가 이 툴의 핵심 요소인 것이다. 이 툴은 나 자신이 고통을 향해 나아가게 한다.


포용의 툴


타인이 나를 부당하게 대하거나 상처를 주었을 때, 나는 사랑을 이끌어내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이는 왠지 부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어린아이처럼 사랑을 노력 없이도 할 수 있는 것으로 오해하기 때문이다. 사실은 영靈적으로 성숙하기 위해서는 진정한 사랑엔 노력이 필요함을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툴이 필요하다. ‘능동적 사랑’이다.


첫 번째 단계, 응축~ 사랑의 에너지를 가슴에 응축

두 번째 단계, 이동~ 내 마음을 파이프로 활용헤 이동시킴

세 번째 단계, 침투~ 내 사랑이 상대에게 들어가는 것


(사진, 능동적 사랑)


앞으로 세상이 나를 부당하게 대우한다고 느낄 때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미로에 빠져 과거에 일어난 사건에 갇혀버릴 수도 있다. 그러면 삶은 나를 그냥 스쳐 지나갈 것이다. 아니면 능동적 사랑을 이용해 사랑의 물결과 하나가 되어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도 있다. 뭘 선택해야 할까?


자유의 툴


내면이 불안하고 자신감이 없으면 타인과 관계를 맺기 힘들다. 이런 사람은 경직되어 보이고 호김을 주지 못한다. 또 나를 드러내는 데 인색해지고 뒤로 물러나려고만 한다. 내면이 불안한 사람은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평가할지에 대해 과도하게 신경 쓰기 때문에 내 생각과 감정을 좀처럼 밝히지 않는다. 이러 인해 더욱 더 소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나에게 공감하고 뭔가 통한다고 느낄 때 기회를 준다.


내면의 불안감을 몰아내기는 쉽지 않다. 지식이나 이성적 논리는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내면이 불안한 사람은 종종 특정 목표를 향해 열심히 달려가면 불안감이 사라질 거라고 오해한다. 그래서 살빼기, 고학위 취득하기, 휴일없이 일하기 등으로 승진을 목표로 삼는다. 하지만 결국 자신의 무기력함에 상처받고 만다. 이런 불안은 생명력을 지닌 감정처럼 되살아난다.


마음에서 불안을 없애기가 왜 그렇게 어려울까? 그 답을 들으면 처음엔 고개가 갸우뚱거려질지 모른다. 불안을 없애기 어려운 이유는 나의 내면에 ‘또 다른 자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내가 부끄러워서 숨기고 싶은 자아自我다. 아무리 애를 써도 또 다른 자아는 절대 없앨 수 없다.


(사진, 그림자와 내면의 권위)


그림의 왼쪽 사람은 숨기고 있던 그림자를 끌어냈다. 바깥으로 나온 그림자는 이 사람과 강력하게 연결된 상태다. 이 사람과 그림자는 한목소리로 말하면서 자기표현의 힘을 작동시킨다. 이 초월적 힘은 왼쪽 사람에게 내면의 권위를 부여하며, 그것이 발휘되는 방향은 오른쪽의 청중으로 향하는 화살표가 나타낸다. 청중은 아래쪽에 작은 크기로 그려져 있다. 이는 청중이 더 이상 두려운 존재가 아님을 나타낸다.


뭔가를 잘해내야 한다는 압박을 느낄 때 이 툴(내면의 권위)을 사용하라. 이런 경우는 생각보다 많다. 남들의 평가를 받거나 남들의 반응이 중요한 상황에서는 정신적 압박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구직 면접, 세일즈 미팅, 프레젠테이션, 낯선 사람과 만나는 어색한 자리(소개팅, 중요한 파티) 등이 그렇다. 이럴 때엔 청중에게 인정받는 것을 목표로 삼으면 안 된다. 남에게 인정받으려 애쓰기보다는 툴을 이용해 그런 압박감을 떨쳐내고 자신을 자유롭게 표현해야 한다.


평온의 툴


살다보면 특별히 노력하지 않았는데도 저절로 마음에 감사함이 차오를 때가 있다. 첫 아기가 태어났을 때, 캠핑하면서 별이 쏟아질 듯한 밤하늘을 올려다볼 때 등등. 스스로의 힘으론 만들어낼 수 없었을 무언가를 말이다. 눈을 감고 그런 경험을 했던 때를 떠올려보자.


나에게 일어난 감사한 일을 마음속에 생생하게 그려라. 그때 느낀 감사한 마음에 집중하라. 이제 그 감사한 마음을 믿을 수 없을 만큼 무한히 베푸는 강력한 힘과 연결하라.


감사의 흐름

삶에서 감사할 수 있는 것들을 떠올려라

감사함이 마음에서 나와 위로 올라가는 것을 느껴라

무한히 베푸는능력으로 가득한 힘에 다가감을 느껴라


감사의 흐름 툴을 자주 사용해야 하는 이유는 마음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다. 인간이 진정으로 통제할 수 있는 대상은 자신의 마음뿐이다.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면 결코 영적으로 성숙할 수 없다.


끈기의 툴


18세기 영국의 문인 새뮤얼 존슨은 죽음에 가까워진 상황이 인간을 얼마나 강렬하게 자극하는지를 이렇게 표현했다.


“자신이 2주 후에 교수형을 당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경이로운 수준의 집중력을 발휘한다.”


우리 대부분의 마음속에는 삶을 낭비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숨어 있다. 소비주의 문화가 제공하는 수많은 제품과 이미지는 우리가 그 두려움을 외면하게 도와준다. 위험 자각 툴은 그 두려움을 부인하는 습관을 버리고 두려움 대신 긴급한 위기감을 느껴 행동하게 이끈다. 그리고 위기감은 의지력이라는 불꽃을 만들어낸다.


(사진, 의지력 발휘)


의지력은 나를 창조자로 만든다. 창조하는 능력은 누구에게 받아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창조라는 행위는 자기 자신의 표현이자 내면의 자기 모습을 밖으로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심지어 신조차도 나에게 창조 능력을 줄 수 없다. 창조하는 능력은 나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스스로 노력을 통해 창조 능력을 계발하고 키워야 한다는 얘기다.


선택은 나의 몫이다


이 책을 덮고 어떻게 행동하느냐가 바로 나의 미래를 결정한다. 스스로 창조자가 되고 싶다면 내면에 잠자고 있는 초월적 힘을 깨워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앞서 배운 다섯 가지 툴을 평생 실천해야 할 것이다. 내면의 힘을 키우고 싶은 모든 사람들에게 책의 일독을 권한다.


#자기계발 #세상은고통이다하지만당신은고통보다강하다 #필스터츠 #배리마이클스 #웅진지식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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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孝)와 관련된 격언속담·고사성어·명언명구
고영기 지음 / 지식과감성#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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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孝는 사람됨의 뿌리입니다. 이 뿌리가 깊게 자리 잡이야 나무가 튼튼하게 자라듯, 효는 개인과 가정, 나아가 사회를 지탱하는 근본입니다. 그러나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효의 가치를 자주 잊고 살아갑니다. 삶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부모와 자식 간의 정은 멀어지고, 이기적인 삶의 태도가 만연해지며, 전통의 지혜는 뒷전으로 밀려납니다. - ‘머리말’ 중에서


(사진, 책표지)


이 책을 엮은 고영기 박사는 현재 효와 행복연구소 소장이자 사단법인 한국효도회 문학총재(최고정책위원장)로 재직중이다. 수년간 200권 이상의 효에 관한 책을 읽으며, 시대와 문화를 초월한 효의 가치를 찾아 이를 우리들에게 소개한다.


총 3부로 구성된 책은 1부에선 효孝와 관련된 격언속담(한국, 외국)을, 2부에선 효孝와 관련된 고사성어(한국, 외국)를, 마지막으로 3부에선 효孝와 관련된 명언명구(동양, 서양)를 각각 소개함으로써 이를 통해 효의 실천, 효의 지혜, 효의 보편적 가치 등을 확인할 수 있다.


격언속담(한국)


까마귀는 자라서 어미를 먹인다

눈먼 자식이 효자 노릇한다

매로 키운 자식이 효성 있다

병신자식이 효자 노릇 한다

부모가 착해야 효자가 난다

삼년 간병에 효자 없다

얼러 키운 효자 없다

효부孝婦 없는 효자孝子 없다


격언속담(외국)


의롭지 못한 방법으로 재산을 모아 부친을 봉야하거나 자식을

먹여 살리는 것은 효孝도 자慈도 아니다(유대교)


어린아이에게 자주 화를 내면 쓸쓸히 늙음을 맞이한다(인디언)


부모에 대한 효행은 반드시 미리 해야 하는 것이다(일본)


행복의 근본은 효이다(중국)


고사성어


가빈효자출家貧孝子出(가난한 집에 효자 난다)

노래지희老萊之戱(70세 노인이 부모 앞에서 재롱 부림)

동온하청冬溫夏淸(겨울은 따듯하게, 여름은 시원하게)

매신장부賣身葬父(몸을 팔아 아버지의 장례를 치름)

반포지효反哺之孝(까마귀 새끼, 늙은 어미에게 먹이를)

사친이효事親以孝(효도로써 부모를 섬김)


명언명구


가난한 집안의 자식들이 부유한 집 자식들보다 가족에 대한 사랑이 끈끈하고 부모에 대한 효성이 깊은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커서 어른이 되면 가족에게 이런 가난을 면해 주겠다고 결심하였다. - 앤드류 카네기


돌아가신 뒤에 황소를 잡아 제사 지내는 것이 살아 계실 때에 닭 한 마리 잡아 드리는 것만 못하니라. - 연수약언延壽藥言


무릇 효도는 모든 덕행의 근본이다. 모든 가르침이 효도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 효경孝經


부모가 늙어 기력이 약해지면 의지할 사람은 자식과 며느리밖에 없다. 아침저녁으로 부드러운 말로 위로하고, 따뜻하고 부드러운 음식과 잠자리를 마련해 드리고, 즐겁게 말 상대를 해 드림으로써 노년의 쓸쓸함을 덜어 드리도록 하여라. -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


부모님을 공경하고 사랑하는 것은 인간의 가장 숭고한 의무이다. -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한국문화사 #효와관련된격언속담고사성어명언명구 #고영기박사편저 #지식과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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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 - 히틀러
김종천 지음 / 사유와공감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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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독일에 살면서 이 사회가 참으로 민주적이고, 사람들이 이성적이라는 것을 자주 느꼈다. 그럴 때마다 이곳이 정말 히틀러와 나치 정권이 출현했던 나라가 맞는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 때의 의아함이 히틀러와 나치 정권에 관한 내 관심의 출발점이었다. - ‘서문’ 중에서


(사진, 책표지)


책의 저자 김종천은 문명평론가로 독일 괴팅겐대학에서 경제학학사와 석사 과정을, 뒤스부르크-에센대학교에서 경제학박사 과정을 수료했으며 <민주주의 흥망의 역사를 걷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탐방> 등 다수의 책을 출간했다.


그는 독일에서 살 적에 당시 대중매체나 역사적 사료 및 서적 등을 통해 나치 정권 출현의 사회적 배경과 나치 통치 시대의 실상에 쉽게 접근할 수 있었는데, 자신들의 부끄러운 역사를 솔직히 인정하고 반성하는 독일인의 태도에 감명받았다고 밝힌다. 귀국 후 주변 사람들을 만날 때 자주 받았던 질문이 히틀러와 나치 정권에 관한 것이어서 이에 소설이란 장르로 이를 전하고 있다.


뮌헨 거사


이탈리아에서 무솔리니가 지휘하는 검은 셔츠단이 로마로 진군하여 파시스트당이 정권을 잡았다.


이는 1922년 10월 29일자 <뮌헨인 신문>의 1면 헤드라인이다. 민족사회민주당 중앙당 당사에서 콧수염을 한 한 사내의 손에 들린 신문이었다. 이 사내는 당원으로부터 ‘지도자’로 추앙받으며 현 독일 바이마르공화국을 전복시키려는 꿈을 꾸는 히틀러였다.


패전국 독일이 승전국 프랑스에 전쟁배상금을 지급하지 않음에 따라 프랑스군은 독일의 북서부에 위치한 공업 중심지인 루르지방을 침입하자 독일 정부는 점령군의 명령에 따르지 말라는 정도의 지침을 내렸다. 이같은 소극적 태도에 뿔이 난 독일인들은 거리로 뛰쳐나와 ‘프랑스군은 즉각 퇴각하라’는 시위를 펼쳤다.


이 시위가 전국으로 번져가던 3월 말 프랑스군이 에센에서 발포하는 일이 발생, 13명의 사망자와 30여 명의 부상자가 생김에 따라 독일인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 이에 히틀러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당원들을 동원해 집회를 열고 가두시위에 나섰다. 바이에른 경찰청장의 집회 금지 선포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히틀러는 ‘원하면 발포하라’는 식으로 강경하게 대응했다. 이는 중도파와 대학생들의 지지는 물론이고 나치의 정치적 존재감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다.


‘독일이여 깨어나라’는 히틀러의 연설 주제는 청중들을 흥분으로 몰고가며 큰 함성을 불러일으켰다. 시종일관 바이마르 공화국 정부와 프랑스에 대한 증오로 청중들을 이끌었다. 청중들은 마법에 걸린 듯 열광했다. 덩달아 민족사회주의당과 히틀러의 명성은 하늘로 치솟았다.


1923년 9월 공화국 정부는 프랑스에 굴복해 전쟁배상금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프랑스군이 루르 지방을 점령한지 8개월이 지난 시점이었다. 이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다시 거리로 뛰쳐나았다. 출범 4년 만에 바이마르 공화국은 최대 위기를 맞은 셈이다.


뮌헨 시가지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시위를 지켜보던 히틀러의 눈이 반짝였다. 그날 밤 피냄새를 맡은 상어처럼 히틀러는 공화국 사냥에 나섰다. “무능하고 나약한 바이마르 공화국은 사라져야 합니다”란 그의 말에 청중들은 적극 환호했다. 이후 연속되는 대중 집회를 통해 히틀러는 군중의 선동과 함께 국가권력을 손에 넣을 구상을 했다. 하지만 쿠데타에 함께 나서기로 했던 카르와 로소브 장군의 배신으로 군에 체포되어 특별법정에 서게 되었다.


1924년 2월 뮌헨 블루텐부르크 거리 옛 사관학교 건물에 서 행해진 재판에서 히틀러는 최후진술을 했다. 그는 조국과 민족, 역사의 이름으로 쿠데타를 미화하고 정당화했다. 방청석의 뜨거운 박수갈채는 법관에게도 전해진 듯, 그는 내란죄 최저 형량인 5년의 금고형이 선고되었다. 그는 순교자이자 영웅이 되었다.


히틀러의 가족과 성장사


히틀러의 아버지 알로이스는 빈 북서쪽에 있는 체코에 가까운 농촌에서 사생아로 태어났다. 미혼모였던 그의 어머니가 훗날 가구장이와 결혼하는 바람에 히틀러라는 성이 붙게 되었다. 알로이스는 13살에 고향을 떠나 합스부르크 제국의 수도 빈에 도착, 17살에 직공 시험에 합격한 후 독학으로 공무원 시험을 통과해 세무 관리가 되어 훗날 세무서장으로 승진했다. 학력이라곤 초등학교 졸업이 전부였지만 대단한 신분 상승을 일군 셈이다.


히틀러의 어머니 클라라는 알로이스의 세 번째 부인이었다. 하녀로 둘째 부인의 병 간호를 하다가 알로이스의 아이를 임신했고 둘째 부인이 병사病死하면서 혼인신고를 통해 정식 부인이 되었다. 그런데, 클라라는 알로이스 의붓아버지 동생의 손녀였기에 남편임에도 ‘알로이스 아저씨’라고 불렀다고 한다.


히틀러는 1889년 4월 20일 클라라의 네 번째 아이로 태어났지만, 앞서 태어난 세 명의 자식이 모두 어릴 적에 죽는 바람에 클라라의 첫 아이가 되었던 것이다. 이때 아버지는 52살, 어머니는 28살이었으며, 이후 여동생 파울라가 탄생했다. 세무 관리였던 아버지의 잦은 전근으로 히틀러는 여러 곳으로 이사를 가야만 했지만 아버지 직업 탓에 부유하게 살았다.


엄했던 아버지는 히틀러에게 열심히 공부하길 원했고 초등학교 졸업 후 실업학교에 진학시켰다. 그러나 히틀러는 공부보다 미술에 더 관심이 많아서 두 번이나 낙제를 했고 폐결핵에 걸려 자퇴까지 했다. 아버지는 심장마비로 죽고 이후 어머니는 47세의 나이에 유방암으로 사망했다. 장례를 치른 이복 남매 넷은 함께 모여 엄마의 재산을 정리해 유산을 똑같이 나누었다.


어머니의 유언을 받들어 히틀러는 미술 아카데미 입학을 시도했지만 입학에 번번히 실패했다. 아카데미 원장은 히틀러와의 면담을 통해 다른 길을 선택하라고 권유했다. 히틀러가 미술을 좋아했지만 그림 그리는 실력은 매우 부족했던 모양이다.


이후 히틀러는 계속 빈에서 빈둥거리며 지냈다. 점심 무렵 잠자리에서 일어나 공원을 산책하고 저녁엔 오페라 극장이나 카페에서 시간을 보냈다. 무위도식無爲徒食하는 과정에서 어머니의 유산 중 상당 부분이 바그너 오페라 관람비용으로 지출되었다.


당시 빈에는 유대인의 수가 급증하면서 그들의 영향력이 점점 커갔다. 특히, 언론과 금융산업의 장악에 열심이었다. 독일계 주민의 시각으론 마치 ‘굴러 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는’ 격으로 비칠 수밖에 없었다. 위기와 질투감에서 출발한 반유대주의는 이념의 모습이 되었고, 이에 휘말린 히틀러의 내면에도 그 싹이 트고 있었다.


그림엽서를 그려 팔아 겨우 생계를 꾸려가던 그에게 병무청에서 징집통지서가 날아들자, 비록 오스트리아가 자신이 태어나 성장한 곳일이지라도 그의 마음 속 조국은 독일이었기에 반유대주의자로 거듭 난 그는 오스트리아를 위해 싸울 순 없었다. 1913년 5월, 24살의 나이로 독일 뮌헨에 도착했던 것이다.


집권과 독재


다시 란츠베르크 감옥 때로 돌아가보자. 당시 교도소장과 교도관들은 히틀러와 그의 부하들에게 호의적이었다. 사실상 히틀러는 호사스런 감방 생활을 했다. 지지자들은 그에게 거의 매일 편지와 함께 치즈, 과일 등 다양한 식품들을 보내왔던 것이다.


(사진, 란츠베르크 감옥)


이에 한껏 고무된 히틀러는 자신의 사상을 널리 알릴 수 있는 책을 출간할 계획을 구상했다. 1924년 7월, <나의 투쟁>은 이렇게 집필되기 시작했다. 히틀러는 구술하고 그의 심복 헤스는 타자기를 두드렸다. 오스트리아 병역기피를 이렇게 미화했다.


“나는 합스부르크 왕가를 위해서는 싸우고 싶지 않았으나 내 민족과 독일 제국을 위해서는 언제든지 죽을 각오가 되어 있었다.”


사실 히틀러는 숨기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다. 독일에서 공산주의자들의 폭동이 계속될 때 그는 뮌헨의 공산군에 가입했었다. 그의 삶에 군대 외엔 다른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생업에 투신하거나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는 일은 그의 체질상 맞지 않았기에. 독일 공화국 정부가 대대적인 공산군 소탕에 돌입했을 때 진압군 측 조사위원회에서 일하며 공산군의 신상 정보를 제공했던 천부적인 기회주의자였다.


군복무 시절, 유대인 얘기만 나오면 게거품을 물면서 핏대를 올리던 히틀러에게 붙여진 별명이 ‘몽상가’였다. 훗날 자신의 시대가 도래할 거라고 떠들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는 2급 철십자 훈장과 1급 철십자 훈장을 받음으로써 자신감만은 넘쳐 흘렀다.


감옥에서 지내는 동안 그는 사색을 통해 비정규군을 동원한 폭력적 방법으로 국가기관을 장악하는 게 쉽지 않음을 깨닫고, 합법적인 선거를 통해 정권을 잡기로 결심했다. 모범수로서의 수감생활로 인해 1924년 12월 크리스마스를 곧 앞둔 어느 날, 그는 가석방되었다.


출소 후 지자들과 함께 공식적인 정치 활동을 재개한 그는 민족사회주의당과 함께 ‘새로운 독일의 건설’이란 기치를 내걸고 투쟁을 시작했다. 1925년 7월, <나의 투쟁> 제1권이 뮌헨에서 출간되어 큰 인기를 끌며 점점 히틀러는 주목받게 된다. 이후 괴벨스가 히틀러 진영에 합류, 선동·선전 정치가 그 막을 올렸다. 사회주의를 불신하던 기업가들에겐 마르크스주의와 끝까지 투쟁하겠다면 안심시키고 1928년 제국의회 총선거에서 12개의 의석을 차지했다.


1929년 10월, 미국 주식사장의 붕괴와 함께 세계는 대공황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들어가고 있었다. 독일 경제도 예외가 아니었다. 문을 닫는 기업들이 점점 증가하고 실업자들이 대거 발생했다. 1932년 독일은 결국 전쟁배상금 지급을 중지했다. 마침내 히틀러의 선동 정치에 빛이 찾아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괴벨스의 ‘선전 전략’이 동원되고, 결국 히틀러의 민족사회주의당은 제2 정당으로 올라섰다. 1932년 대통령 선거에서 힌덴부르크와 히틀러 양자 간 대결을 펼쳐 비록 패했지만 그의 이름을 유권자들에게 각인시켰다. 이후 같은 해 7월 31일에 행해진 총선에서 마침내 민족사회주의당은 37.4%의 득표율로 최대 정당으로 우뚝 섰다. 1930년 1월 30일, 히틀러는 독일 수상으로 취임했다. 당시 베를린 주재 영국 대사가 본국에 타전한 전문은 이러했다.


‘오늘 깡패들이 독일에서 정권을 잡았다.’


국가권력 전체를 장악하기 위한 나치의 행보는 착착 진행되었다. 우선 나치에 비판적인 사람들을 정부 기관에서 몰아내고 그 자리를 히틀러 추종자로 채웠다. 경찰지휘부는 나치 돌격대 지휘자들로 대체, 베를린 경찰청장엔 게슈타포로 불리는 비밀경찰 부서가 신설되었다. 언론 및 집회와 결사의 지유가 제한되면서 좌파 정당들은 선거 유세는 물론이고 당 기관지와 집회가 전면 금지되었다. 이 모습은 현재 대한민국 야당에서 의회를 독재하면서 말을 듣지 않는 주요 인사들을 탄핵시키고 언론과 주요 기관장을 자기편들로 채우는 행위와 흡사 닮아 있다.


1935년 12월엔 ‘히틀러 청소년단 법’이 제정되어 10세에서 18세 사이의 모든 남녀 청소년은 의무적으로 청소년단에 가입해야 했다. 나치 정권은 청소년에게 나치 이념을 주입시켜 유사시엔 이들을 총알받이로 사용하고 미래엔 나치의 핵심지지세력으로 키울 계획이었다.


학생들은 교사들로부터 끊임없이 전쟁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그 결과 나치가 주장했던 ‘베르사유 치욕을 씻기 위한 전쟁’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학교 교육은 군국주의 세뇌의 장이었다. 또 교사들의 나치 당원 가입이 봇물이 되어 1934년에는 전체 교사의 30%가 나치 당원이 되었다.


(사진, 목차)


평화와 인류에 대한 범죄


50만 명에 달하는 유대인을 구덩이에 넣고 총살을 자행한 나치 독재는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한다. 1945년 11월 20일부터 뉘른베르크 법정에서 나치 정권의 지도급 인사들에 대한 재판이 진행되었다. 침공을 기획, 준비, 지휘 및 수행한 독일의 정치가, 군인, 민족사회주의당 지도부 인사들은 ‘평화에 대한 범죄’로, 민간인과 전쟁포로에 대한 범죄 및 수용소에서의 대량 학살에 관련된 인사들에겐 ‘인류에 대한 범죄’로 처벌을 내렸다. 히틀러는 영웅을 연기한 광대였을 뿐이다. 독이 있는 나무엔 독이 있는 과일이 달리는 셈이다.


#소설 #역사소설 #독재자 #히틀러 #김종진 #사유와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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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냥팔이 소녀는 누가 죽였을까? - 세상에서 가장 기묘한 22가지 재판 이야기
도진기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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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행동은 무슨 죄가 된다는 식으로 결론만을 알려 주는 법률 정보는 많습니다. 하지만 완성된 레고를 선물 받는 거나 마찬가지로 이런 지식은 거의 값어치가 없습니다. 법의 세계에서는 벽돌 하나만 빠져도 집의 모양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법이 움직이는 원리를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논리를 구사할 수 있고 신문 기사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 ‘들어가며’ 중에서



책의 저자 도진기는 1994년 사법시험 합격을 통해 법관이 되었고, 2010년 한국추리작가협회의 미스터리 신인상을 수상해 작가로 데뷔, 2014년엔 한국 추리문학 대상을 수상했다. 주중엔 판사로, 주말엔 소설가로 지내며 꾸준히 장편소설을 펴낸 인물이다. 2017년 공직을 떠나 변호사로서 강연, 기고, 방송 활동 등을 통해 법과 대중 사이에 놓인 벽을 허물기 위해 노력해왔다.


이 책 <성냥팔이 소녀는 누가 죽였을까?>는 재판의 기본이 될 만한 법 상식을 우화로 재미있게 소개하고 있다. 그래서 청소년도 읽을 수 있는 ‘가장 쉬운 법학 이야기’로 소개되며,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다. 법률가가 추리소설가의 상상력을 동원하여 쓴 기묘한 22가지 재판 이야기를 통해 가장 쉽고 재미있는 법 상식을 배울 수 있다.


성냥팔이 소녀는 누가 죽였을까?(법과 도덕)


추운 겨울날 밤, 굶주린 성냥팔이 소녀가 맨발로 거리에서 성냥을 팔고 있었다.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갈 길이 바쁠 뿐, 아무도 소녀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이에 지친 소녀는 성냥을 하나둘 켜기 시작했다. 성냥 개비 불꽃 속에서 환상을 보았다. 환상 속에서 할머니는 소녀를 안고 하늘로 데려갔다. 다음 날 아침 사람들은 길거리에서 다 탄 성냥개비와 함께 미소를 띤 채 죽어 있는 소녀를 발견했다. 이 사건을 검사가 소개하자 염라 판사는 훌쩍였다. 피고는 행인行人이었다. 소크라테스는 변호사였다.


검사는 소녀를 구하지 않고 그냥 지나갔던 행인의 나쁜 행동을 고발하고 있다. 이에 소크라테스 변호사는 변론을 좀 더 쉽게 하기 위해 ‘착한 사마리아인 사건’을 함께 진행할 수 있도록 동의를 구하자 염라 판사는 이에 동의한다.


그러자 소크라테스 변호사가 사마리아인 사건을 설명했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던 길에서 강도를 만나 큰 상처를 입고 길에 버려졌다. 길을 가던 제사장이 발견했음에도 도와주지 않고 그냥 지나쳤고 두 명의 레위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당시 사람들로부터 가장 천대받던 사마리아인이 지나가다가 상처 입은 사람을 구해 주었다는 내용이었다. 이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어 모두 알고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사건의 피고인은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이었다.


착한 사라미아인 법에 의하면 남을 구하지 않으면 죄가 된다고 규정한다. 하지만 이 법에 반대하는 입장도 있는데 구하지 않은 행동은 나쁘지만 처벌까지 할 수 없다는 주장을 한다. 이 법은 모든 나라에 있는게 아니다. 한국에도 이 법은 없다. 이는 바로 도덕과 법의 구별이라는 어려운 문제인 셈이다.


(소크라테스) 법은 무엇보다 강한 규칙입니다. 이런 법을 함부로 사용하면 곤란하겠죠? 불편한 일이 있다고 해서 무작정 법을 만들어대는 것은 좋지 못합니다. 법은 중요한 일에만 관여하고, 일상생활에서의 도덕은 사람들에게 맡겨야 합니다.


(염라) 맞아. 법이 너무 많아도 살기 힘들 거야.


(소크라테스) 법은 도덕에 일일이 간섭하지 않습니다. 도덕 중에서 중요한 일에만 관여합니다. 예를 들어서 때리거나, 훔치거나, 사기를 치거나 하는 못된 행동은 법이 나서서 못하게 막는 것이죠. 많은 도덕 중에서 ‘최소한 이것만은 어기면 안 된다’는 것들입니다.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란 말은 이런 생각에서 나왔습니다.


(염라) 흠. 그런 기준이면 이제 해결되겠군….

(소크라테스) 그게 또 그렇지도 못합니다.

(염라) 왜!


(소크라테스) 분명하지 않은 경우가 있습니다. 어던 경우에 법이 기어들고, 어떤 경우에 법이 끼어들어서는 안 되는지 사람마다 의견이 갈리는 거죠. 사람들의 생각이 다르고, 정답이 없는 문제입니다. 결국 그 나라의 문화와 국민 다수의 생각대로 정해지게 되겠죠. 그래서 나라마다 다르게 되어 있는 겁니다.


결국 염라 판사는 한국 법에 따라 판결했다. 성냥팔이 소녀를 그냥 지나쳤던 행인, 사마리아인 사건의 제사장과 두 명의 레위 사람 모두에게 무죄를 선고한다. 소크라테스 변호사는 명판결에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반면 사마리아인은 제사장과 레위 사람은 왜 처벌하지 않나며 바보 같은 재판이라고 언성을 높인다.


피리 부는 사나이는 유괴범인가?(인과관계)


13세기 독일의 작은 마을 하멜른에 갑자기 쥐가 들끓기 시작했다. 도무지 퇴치할 방안이 없어 곤란을 격고 있을 때 한 사나이가 피리를 들고 나타나 돈을 주면 쥐를 박멸해 주겠다고 제안했다. 이에 사람들은 쥐를 잡아 주면 많은 상금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사나이가 부는 피리 소리에 쥐 떼들이 뒤를 따르자 그는 쥐 떼를 강물오 유인해 빠뜨려 죽게 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변심해서 돈을 주지 않았다. 마을을 떠났던 사나이가 얼마 후 다시 마을에 나타나 피리를 불자 마을의 아이들이 그 뒤를 따라가 영영 사라지고 말았다. 마을 사람들은 피리부는 사나이의 처벌을 원한다.


이 사건을 맡은 염라 판사가 피리부는 사나이에게 처벌을 내리는 판결을 하려 하자 소크라테스 변호사가 인과관계를 지적하며 결과와 관계없는 행동을 처벌할 수 없다고 피리부는 사나이를 변호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백설 공주 이야기 사례로 설명을 이어 나간다. 백설 공주가 쓰러진 것은(결과) 왕비가 몰래 독이 든 사과를 먹인 데(원인) 있으므로 인과관계가 성립하지만 법에선 상당인과관계가 있어야 히는데, 왕비를 낳은 왕비의 어머니(노파)를 처벌할 수 있을까?란 문제를 제기한다.


(소크라테스) 독을 먹인다는 원인과 쓰러진다는 결과 사이에는 상당인과관계가 있습니다. 하지만, 딸을 낳으면 ‘보통은’ 그 딸이 나중에 커서 다른 사람에게 독 사과를 먹이게 된다고는 할 수 없겠지요? 왕비의 엄마가 왕비를 낳은 일과 백설 공주가 독 사과를 먹고 쓰러진 일에는 ‘상당인과관계’가 없습니다. 따라서 법으로 처벌할 수 없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나이의 피리엔 아이들을 꾀어내는 신기한 능력이 있을지 모르나 이를 증명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상당인과관계를 증명하는 일 또한 불가능하므로 피리부는 사나이는 처벌할 수 없다고 소크라테스는 변론을 마친다.


이밖에 책은 긴급피난의 경우 타이타닉호의 침몰 때 디카프리오가 케이트를 밀치고 혼자 살았을 지라도 처벌할 수 없으며(‘카르네아데스의 판자’), “열 명의 도둑을 놓치더라도 한 명의 억울한 죄인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무죄추정의 원칙 등이 잇달아 소개되면서 흥미진진하게 만든다.



모르면 평생 답답할 법의 핵심 원리


대학시절 고시를 준비할 때 유독 민법, 상법 등 법관련 서적을 읽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 내 뺨엔 침이 흐르고 있었다. 그렇게 재미가 별로라 철학 책만큼이나 나에겐 수면제와 같았다. 하지만 책의 저자는 법률가이면서 작가인 까닭에 22가지 재판 이야기를 통해 딱딱한 법의 핵심 원리를 부드러운 카스테라 맛으로 바꾸어 놓았다. 법의 실체가 궁금한 모든 분들에게 책의 일독을 권한다.


#법 #재판이야기 #성냥팔이소녀는누가죽였을까? #도진기 #추수밭 #청림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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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이라면 군주론
김경준 지음 / 믹스커피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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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의 탁견은 인간 심성과 군중심리의 본질을 이해하는 통찰력에서 출발한다. 그의 관점은 백면서생의 책상머리 공부가 아니라 변화무쌍한 국제정세 속에서 조국의 생존을 위해 필사적으로 분투하는 현장 외교관의 치열한 경험에서 배테되었기 때문에 냉정한 현실 인식에 기인하고 있다. - ‘들어가며’ 중에서



이 책의 저자 김경준은 딜로이트 컨설팅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그는 인문학에 대한 조예가 깊어 이론과 경험을 겸비한 융합형 전문가로 평가받고 있다. 조선일보, 한국경제신문, 이코노미스트 등에 칼럼을 연재했으며, 방송 미디어에 고정 패널로 출연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오십에 읽는 오륜서>, <로마인에게 배우는 경영의 지혜> 등 다수가 있다.


총 6부로 구성된 책은 마키아벨리가 전하는 삶의 본질, 내 삶의 리더가 되는 비법, 사람이 보이기 시작할 때 필요한 것들, 위기에 대처하는 역사의 패턴, 흔들려도 나아가는 힘, 군주론에서 배울 것 등에 대해 이야기를 펼쳐 나간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으로 ‘정치에 대해 과학적으로 접근한 최초의 근대적 인간’으로 평가받았고, ‘근대 정치학의 아버지이자 최초의 사회학자’로 인정받았다. 통상적 오해와 달리 도덕에 있어 마키아벨리가 추구하는 바는 ‘배덕주의’가 아니라 ‘초도덕주의‘였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근대독일철학에서 본격적으로 다루기 전에 마키아벨리는 이미 ‘존재’와 ‘당위’의 기본 개념을 언급하고 있다. 피렌체의 외교관으로 외교 최일선에서 활약했던 그는 경험을 통해 ‘현실에서 존재하는 것’과 ‘당연히 되어야만 하는 것’의 간격間隔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엄연한 현실’을 무시하고 ‘윤리적 공상’에만 매몰된 리더와 조직의 몰락을 현장에서 직접 목격하면서, 현실을 도외시하고 당위성에만 매몰된 군주의 위험성을 절감했다. 마키아벨리는 ‘희망적인 미래’는 ‘냉혹한 현실’의 기반 위에서 만들어 가는 거라고 봤다.


인간의 삶에서 중요한 건 이기심利己心에 대한 공리공론空理空論이 아니라, 이기심의 실체를 분명히 인식하고 합리적으로 갈무리해 개인과 조직의 현재에 대처하고 미래로 나아가는 에너지로 이끄는 것이다. 신선의 경지에나 있는 이들은 상상 속의 인물일 뿐이기에 세속世俗을 살아가는 인간들이 고려할 대상도 아니다.


(사진, 군주론 15장)


숭고한 목적과 효과적 수단이 결합할 때


배신하고 신의 없이 무자비하게 종교심을 저버린 일을 덕德이라고 부를 순 없다. 그런 수단으로는 지배권을 잡을 순 있어도 영광을 차지할 순 없다. - ‘군주론 8장’에서


숭고한 목적과 효과적 수단이 결합할 때 리더는 진정한 영광을 얻을 수 있다고 마키아벨리는 이해했다. 이는 근대 정치학에서 권력은 정딩성과 효율성이라는 두 축軸으로 유지된다는 관점과 동일하다. 목적과 수단은 별개가 아니라 상호보완적이다.


마키아벨리는 시칠리아 시라쿠사 왕국에서 미천한 평민으로 태어나 왕위에 오른 아가토클레스(기원전 361~기원전 289년)를 불명예의 대상으로 지목했는데, 그는 권력을 쟁취하고자 효과적인 수단을 사용했으나 목적이 천박했다. 젊은 시절 방탕하게 생활하던 아가토클레스는 군대에 들어가 시라쿠사 군대의 사령관이 되었다. 이후 시라쿠사의 권력을 장악하기로 결심하고 시칠리아에 주둔하고 있던 카르타고 군사령관 하밀카르 바르카와 은밀히 내통한다.


(사진, 시라쿠사 지도)


그는 중대 사항이 발생한 것처럼 위장해 유력자들을 소집한 뒤 병사들을 동원해 모조리 살해했다. 이후 시라쿠사의 왕이 되었고 카르타고와의 전쟁에서도 이겨 권력 기반을 견고히 다졌다. 그러나 그는 권력욕에 눈이 멀어 군주가 된 사람이었을 뿐 ‘진정한 덕성德性을 갖춘 통치자’라는 평가를 당대에도 그리고 후대에도 얻지 못했다.


현명한 엄격함이 진정한 자비慈悲다


군주들은 잔인하기보다 인자하다는 평판을 받길 원한다. 그러나 이런 온정溫情도 역시 서투르게 사용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해야 할 것이다. 체사레 보르자(1475~1507년)는 잔인한 인간으로 알려져 왔지만, 그의 잔인함은 로마냐의 질서를 회복하고 그 지방을 통일해 평화와 충성을 지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따라서 군주는 시민을 단결시키고 충성을 지키게 하려면 잔인하다는 악평惡評쯤은 개의치 말아야 한다. - ‘군주론 17장’ 중에서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다. 이는 해양동물원의 조련사가 범고래를 훈련할 때 칭찬이라는 당근을 활용하는데서 비롯된다. 하지만 모든 일에서 칭찬이 능사能事가 아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특히, 일반인과 리더는 이 점에서 분명히 구분된다.


리더의 엄격함은 개인적 성향이 아니라 공동체를 위한 리더의 역할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국가지도자는 영토를 지켜야 하고, 군대 지휘관은 규율을 유지해 적군에게 승리해야 하며, 경영자는 경쟁력을 확보해 기업을 생존시켜야 하는 임무가 있다.


엄격 함이 개인 차원의 감정이 아니라 공동체를 위한 공인의식에 기반하고 있다면 리더에겐 오히려 바람직하다. 이런 점에서 마키아벨리는 평면적 자애심이 아닌 ‘현명한 엄격함’이 조직 전체를 살리는 진정한 자비가 될 수 있는 리더의 역설을 꿰뚫고 있다.


위기를 극복한 인간이 더욱 강해진다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조직과 리더의 내공이 드러난다. 위기를 맞은 조직과 조직의 리더는 자신의 힘으로 난관을 극복해야 한다. 이렇게 어려움을 극복하면 위기조차 오히려 조직과 리더의 자산이 된다. 그러나 타인의 도움으로 극복한 위기는 자산이 될 수 없다.


위기대응 체제의 출발점은 핵심 인력으로 컨트롤 타워를 구축하는 것이다. 최고경영자를 포함한 주요 경영진들이 컨트롤 타워를 중심으로 상황을 장악하고 위기 극복을 위한 의사결정을 진행하며 실무진의 실행과 점검을 제어한다.


평상시의 자율경영 등의 구호는 폭풍우가 지나갈 때까지 한편에 치워두는 게 좋다. 비상시에는 그에 맞는 의식과 조직으로 무장해 대처해야 한다.


평상시 바다를 항해하던 배에선 각자 맡은 위치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것으로 충분하지만, 폭풍우를 만나면 선장을 포함한 핵심 선원들이 조타실에 모두 모여 상황을 파악하고 대처해 나가는 것과 마찬가지다. 위기를 맞은 조직은 무엇보다도 통제와 효율을 높여 생존력을 확보해야 하는 것이다.


군주는 절대적 위기에 처했을 때 절대적 권력을 휘두를 여유가 없다. 고난에 처했을 때 군주가 신뢰할 수 있는 건 극소수에 불과하가. - ‘군주론 9장’ 중에서


야심을 가져라


남에게 좋게 보이고 싶어 하는 사람에겐 권력이 필수불가결하지 않지만 뭔가를 이룩하고 싶어 하는 사람에겐 그것을 해내는 데 필요한 힘이나 권력이 필수불가결하다. 그런데, 허영심은 있지만 야심이 없는 사람은 욕심 없는 인물로 여겨진다. 또한 욕심이 없기 때문에 위험하지 않은 인물로 간주된다. 추대되는 건 항상 이런 부류의 위험하지 않은 인물이다. - ‘로마인 이야기 4권’ 중에서


타인에게 좋게 보이고 찬사를 받으려는 욕망이 허영이다. 개인적 성격 차원에서 허영은 최소한 남에게 피해는 주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부류가 리더가 되면 무난하지만 성취는 없다. 모든 사람에게 욕 먹지 않으려면 언제나 어중간한 타협과 현상 유지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성취는 문제의 본질을 통찰하고 해결하는 새로운 생각과 과감한 실행의 결과물이다. 새로운 생각은 기존 질서에 익숙한 사람들에겐 불편하고 거부감을 불러온다. 이런 부분을 감수하지 않으면 성취는 없다.


뭔가를 이루려는 야심에는 힘이 필요하다. 야심은 있으나 힘이 없으면 추진력이 없다. 힘은 있으나 야심이 없으면 깡패로 전락한다. 야심도 없고 힘도 없으면 화려한 언변의 훈수꾼에 불과하다.


야심을 갖고 힘을 확보하려면 권력 의지가 필요하다. 권력을 획득해야 공적 책무를 실행할 수 있다. 먼저 의지가 있어야 힘을 확보하고 뭔가를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탁월한 리더는 높은 이상과 목표를 이루려는 야심을 품고 권력 의지로 힘을 확보해 스스로를 불태워 구체적 성취를 만든다.


역사는 미래학이다


19세기 말 미국이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루고 사회가 발전하면서 대기업이 발달하기 시작했다. 근데 기업의 역사는 100년 남짓이지만 사실 경영의 역사는 길다. 이집트 쿠푸 왕의 피라미드는 기원전 2,500년 경에 건설되었다. 현대의 건설 장비로도 쉽지 않을 대형 건설 프로젝트임에도 석기와 인력만으로 수행한 것은 많은 관리 계급과 시스템, 그리고 유능한 경영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국가든 기업이든 사회단체든 결국 자원을 사용해 목표를 달성하는 점에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동일하다. 경영이란 인력과 물자를 투입해 목표를 이루는 것이고, 리더는 일련의 과정을 책임지고 이끄는 사람이다. 이런 점에서 리더는 모두 경영자다.


“현명한 사람은 역사에서 배우고, 보통 사람은 경험에서 배운다. 그러나 우둔한 사람은 경험에서조차 배우지 못한다.”


이는 격언이다. 경험으로 배우는 게 가장 효과적이지만 개인이 겪을 수 있는 경험의 폭은 한정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타인의 경험을 배우는 간접 경험이 필요하다. 다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경험인 역사가 현재에도 필요한 이유다.


역사는 세상과 인간을 바라보는 호흡을 길게 해준다. 길어야 100년을 사는 인간의 체험은 한계가 있다. 그러나 역사를 접하다 보면 수천 년을 관통하는 세상살이의 본질적 측면, 시공간을 초월하는 조직의 모습, 표면적 양상과 본질적 핵심을 구분하는 통찰력을 키울 수 있다. 역사는 현실의 당면 과제를 헤쳐 나가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인문학의 백미라고 생각한다.


(사진, 군주론 14장)


마키아벨리는 현실론자다


마키아벨리의 사상은 선악을 초월하는 초超도덕을 주장했고, 부정적 비관도 아니고 막연한 낙관도 아닌 긍정적 현실론에 기반을 두고 있다. 즉 현실에 기반한 낙관주의로 평가할 수 있다. 그는 냉엄한 현실에 대처할 수 있는 역량을 확보한 후 숭고한 이상을 추구하라는 현실론을 펼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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