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괴 - 금융위기 10년, 세계는 어떻게 바뀌었는가
애덤 투즈 지음, 우진하 옮김 / 아카넷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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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2008년의 금융위기는 단지 미국만이 아닌 전 세계가 함께 겪은 위기였으며 다만 그 근원지가 북대서양을 중심으로 한 국가들이었을 뿐이다. (중략) 이러한 상호의존성의 규모와 달러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세계 금융시스템을 분명히 밝혀내는 작업은 (중략) 위험천만한 현재의 상황에 새로운 빛을 던져주기 때문에 중요하다. - '들어가는 말' 중에서

 

 

금융위기 이후 10년, 어떤 변화가 있었는가?

 

책의 저자 애덤 투즈는 현대 경제사 연구 분야의 손꼽히는 학자로 평가받으며, 최고 권위의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가 발표한 '세계의 사상가 100인'에 선정되었다. 그는 1967년 런던에서 태어나 영국과 독일의 하이델베르크에서 성장했다. 케임브리지 킹스칼리지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고 베를린자유대학에서 대학원 연구를 시작하면서 베를린장벽이 철거되고 냉전이 종식되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이후 런던정경대에서 경제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케임브리지대학교와 예일대학교를 거쳐 지금은 컬럼비아대학교의 역사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한편, 역작으로 평가받는 <대재앙: 1차 세계대전과 국제질서의 재편 1916-1931>(2014)에서는 1차 세계대전이 종식된 후 10년 동안 미국의 권력을 중심으로 국제질서가 어떻게 재편되었는지를 서술했다. 그는 울프슨상과 롱맨히스토리투데이상을 비롯한 다수의 상을 수상하고, "위대한 역사가의 탄생"이라는 찬사를 받았으며, <파이낸셜타임스>, <LA타임스>, <포린어페어스>, <이코노미스트> 등 세계 유수의 언론에 의해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는 영예를 차지했다.

 

저자는 금융위기 이후 10년의 역사가 2016년 미국 대선에서 정치적 "이단아" 트럼프의 당선으로 끝맺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결국 1980년대 중반부터 지속된 세계 경제가 크게 안정된 시기(대안정기)는 결국 미증유의 금융위기를 만나면서 정치적 위기로 변모했다. 세계적으로 민족주의와 외국인 혐오의 분위기를 공통분모로 하는 극우 정파가 세를 불렸고 프랑스와 그리스를 비롯한 유럽에서는 온건한 좌파가 몰락했다. 특히 서구사회에서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포퓰리즘 정치가 고개를 쳐들었다. 이런 정치적 변화의 배경에는 은행과 채권자에 유리한 구제금융 방식이 추진되고 위기 대응의 실패가 누적되면서 재정긴축에 따른 복지 프로그램 축소 등으로 삶의 고통이 가중된 대중이 있었다.

 

 

 

 

2008년 금융위기와 통화스와프 협정

 

2008년, 미국의 서브프라임모기지 부실사태로 인해 촉발된 리먼쇼크는 미국의 일로만 그치지 않았다. 이는 글로벌 경제에 큰 영향을 미쳤다. 미국이 사실상 지구촌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세계1위의 경제대국이기 때문이었다. 결과적으로 이 현상은 글로벌 금융위기로 이어졌다. 지금도 당시의 기억이 생생하다. 금융과 투자 관련 비즈니스를 하던 나는 20주년 결혼기념여행으로 스페인에 가있다가 연락을 받고 급히 귀국했었다.   

 

아이로니하게도 2008년에 가장 위기에 몰린 나라는 10년 전 외환위기를 겪은 한국이었다. 당시 한국은 외환보유고도 충분했고 무역실적도 호조를 보이던 때라 한국과는 상관 없을 줄 알았던 미국의 금융위기가 유탄이 되어 한국 금융에 악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한국 경제를 떠받들던 수출전문 재벌인 현대, 삼성, 대우 등이 갑작스레 충격을 받게 된 것이다.

 

"우리는 우리와 상관없는 금융위기이 유탄을 맞은 셈이다"

 

아시아 지역에서 한국만 유별나게 동유럽이나 러시아처럼 취약한 모습을 보였던 건 한국의 금융시스템이 전 세계와 하나로 엮여 있었기 때문이다. 10년 전, IMF 외환위기로 혹독한 시련을 겪었던 한국이기에 이후 외환보유와 축적에 공을 들여 당시 외환보유고가 2,400억 달러나 되었음에도 한국의 금융 시스템이 가진 약점은 극복될 수 없었다.

 

 

2000년대 초반 이후 동북아시아 금융 중심지로 발돋움하려는 기치를 내걸었던 한국은 통화와 자본의 흐름을 자유롭게 풀어주었다. 이에 한국 금융업의 상당 지분을 해외투자자들이 보유할 수 있었고, 한국의 은행들은 글로벌 달러시장에서 단기로 저리자금을 빌려와 한국 국내에서 장기로 고금리 대출을 하고 있었다.

 

반면, 수출로 벌어들인 달러를 환율에 맞서 지키려는 재벌들의 고민이 생겼던 것이다. 이에 달러를 빌려 한국 자산에 투자하고 나중에 환율이 유리할 때 이를 상환한다면 충분한 이익이 생길 수 있었다. 이런 계산하에 한국 기업들이 단기로 차입한 돈이 2008년 6월 기준 무려 1,760억 달러에 달했다. 여기에다 금융업계가 상환해야 할 채무는 800억 달러로 2009년 여름까지는 상환을 연장해야 할 형편이었다.

 

리먼쇼크로 인해 단기성 달러화 대출시장이 그 기능을 멈추자 달러화의 가치는 급등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원화와 달러화의 환율 차이를 이용한 캐리트레이드는 갑자기 역방향으로 움지기이기 시작함으로써 한국 기업들은 손해를 막기 위해 발버등치게 되는 형국이 되고 말았다. 원화 가치는 폭락해 외환보유고조차 심리저지선인 2,000억 달러 선에 간당간당하는 위험한 수준에 이르렀다. 이 당시 금융으로 돈을 벌던 아이슬란드는 국가부도 위기까지 내몰렸다.

 

"2008년 여름에서 2009년 5월 사이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은 1000원에서 1600원이 되었다"

 

2008년 가을, 한국 기업들은 위기 탈출에 나섰다. 포스코, 현대차, 삼성전자 등 주요 수출업체들은 수천만 달러를 외환시장에 쏟아부었다. 원화에 대한 압력을 늦추기 위해서였다. 한국 국민들은 애국심의 발로로 달러 저축을 원화 방어에 활용하려고 환전소에 줄을 서는 풍경을 연출했다. 한편, 한국은행은 외환시장에 적극 개입해 원화 붕괴를 막는 노력을 벌였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도움은 나라 밖에서 도출되었다. 10월 30일 한국은행은 미연준과 300억 달러 규모의 통화스와프 협정을 체결했다고 발표한다. 비로소 외환시장은 공포로부터 벗어났고, 타격을 입은 금융 부문도 복구를 위해 2009년 초 한국 정부는 550억 달러를 은행간 대출용으로 추가 지원하고, 별도로 부실채권 대비용으로 230억 달러를 책정하기에 이르렀다.

 

 

 

그리스와 이탈리아의 민주주의가 붕괴되다

 

2011년 10월 말, 글로벌 금융위기의 후유증은 정치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즉, 그리스의 정치제도는 와해되고 있었다. 실업률이 2008년 8퍼센트에서 무려 19.7퍼센트까지 치솟아 그리스 국내의 분위기는 험악해지고 있었다. 이런 위기가 시작되자 정치적 계산에 빠른 야당은 해외 채권단의 요구에 맞서려는 정부에 전혀 협력하지 않았다. 2009년 10월, 범그리스사회주의운동이 정권을 잡은 후 긴축조치가 실시되자, 그리스 전역은 대규모 시위와 함께 총파업이 발생했다. 

 

한편, 재정위기는 이탈리아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사실상 IMF 긴급자금의 수혈이 필요했다. 실제로 IMF는 800억 유로 규모의 지원책을 제안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프랑스와 독일 정부는 당시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를 자리에서 끌어낼 계획이었으며, 때맞춰 그가 이끄는 내각도 이미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연정 상대인 북부동맹당은 유럽과 IMF가 요구하는 연금제도의 개혁에 협조하지 않았다. 결국엔 유럽공산당원이란 평가를 받는 조르조 나폴리타노 이탈리아 대통령도 베를루스코니에게 사퇴를 종용했다.   

2011년 11월 중순, 정치 경력이 전무한 두 남자 루카스 파파데모스(그리스)와 마리오 몬티(이탈리아)가 각각 두 나라의 수장으로 임명되었다. 이들은 바로 시장 친화적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그리스와 이탈리아의 민주주의를 무너트린 건 정부간 협력주의에 대한 독일 측의 끈질긴 고집과 거대한 재정적 통합이 좋지 않은 방향으로 결합된 결과였다. 베를린의 메르켈 총리 주변에서는 어느 누구도 시장의 강압적인 위력에 대해 비통해하지 않았다. 고위 관료들 사이에서는 "우리가 미국보다 정권교체를 더 잘해낸다"는 자랑 섞인 이야기가 나돌았다.

 

 

브렉시트 이후의 영국

 

영국의 국민투표 결과가 발표되자 영국의 파운드화응 일일 기준으로 역사상 최대의 폭락을 기록했다. 글로벌 주식시장에선 2조 달러 규모의 주가가 증발하고 말았다. 혼란이 있었지만 일시적이었다.  그랬다. 영국의 국내 경제는 어떤 파국도 경험하지 않았다. 브렉시트의 찬성파는 자유와 주권, 그리고 지배구조의 변화를 약속했다. 그렇다면 이후 영국은 누가 지배할까?

 

영국 국민 대부분은 유럽연합 잔류를 찬성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잔류파는 아주 근소한 차이로 패하고 말았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찬성파조차도 자신들의 승리를 점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몇 주의 혼란을 거쳐 테리사 메이가 새로운 수상으로 등장했다. 영국 대기업들과 시티는 국민투표 결과에 대해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각종 유로화 파생상품을 포함, 유로화 거래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시티는 브랙렉시트 이후에서도 글로벌 금융과 유로존 사이를 이어주는 중심축 기능을 유지할 수 있을까? 시티는 런던에서의 금융 시업은 유로존에서의 사업과 사실상 동일한 것으로 인정한다는 기존 합의를 유지하기 위해 총력으로 다해 정부에 로비활동을 펼쳤다.

 

시티에서 의뢰한 연구조사에 따르면 만일 기존 합의를 계속 유지하지 못한다면 유로존과의 각종 사업이 무너지면서 영국은 320억~380억 파운드가량의 세금 손실을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뿐 아니라 일자리도 6만 5000~7만 5000개가 사라져 역시 연간 100억 파운드에 달하는 소득세 수입 손실을 볼 수 있다고 했다. 잔류파들이 국민투표 실시 전 이와 비슷한 연구결과를 제시했을 때는 별다른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그렇다면 과연 국민투표가 끝난 지금은 어떨까? 

 

 

위기에 빠진 경제대국 미국

금융위기로부터 6년, 활동적이고 헌신적인, 그리고 "강력한" 대통령에 대한 도널드 트럼프의 열정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변한 것이 있다면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평가로, 후한 평가와 감탄은 냉혹한 적대감으로 바뀌어 있었다. 바로 이런 태도의 변화가 보수우파와의 접점을 만들어주었다. 선정적인 3류 언론들이 만들어내는 터무니없는 소문과 음모론을 통해 트럼프는 보수우파와 같은 길을 걷는다.

 

2014년, 트럼프는 미국과 멕시코 국경"장벽"을 세우자는 계획을 자신의 대표 공약으로 내세웠고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구호를 자신의 전매특허로 만들었다. 민족주의, 외국인 혐오 등 미국의 현재 상황에 대한 절망적인 진단은 마침내 우파들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그의 구호는 큰 인기를 끌었다. "우리의 미국이 위기에 빠졌다!" 현재까지에도 트럼프의 선동적인 포퓰리즘 정치는 계속 진행형이다. 최근엔 미중 무역갈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며, 북한과의 관계개선도 은밀하게 밀약 중이다. 단지 염려스러운 것은 지나치게 자국 이익주의에 치중한다는 것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제'의 역할은 뒷전이다.

 

 

 

 

스스로 갈 길을 찾아야 한다

 

저자는 한국의 독자들에게 이 책을 읽고 국내의 질서는 물론이고, 국제질서가 어느날 갑자기 흔들릴 수 있는 작금의 상황을 염려하면서 "스스로 갈 길을 찾는 데 도움을 얻었으면 한다"라고 자신의 작은 바람을 내비친다. 외환보유고가 세계 최고 수준이고 무역수지도 흑자 중임에도 미국발 리먼쇼크에 의한 금융위기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한국 경제의 현주소를 다시 한번 되돌아보는 기회가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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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부의 지각변동 - 미래가 보내온 7가지 시그널! 무너질 것인가, 기회를 만들 것인가
박종훈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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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떤 현자나 전문가라도 완벽한 예측은 불가능하다. 경제는 끊임없는 상호작용을 통해 끝없이 발산해 나가기 때문이다. 더구나 경제 위기도 끊임없이 돌연변이를 일으키며 인류를 위협하는 바이러스처럼 진화하기 때문에 과거의 경험만으로 대응했다가는 커다란 낭패를 볼 수 있다. 이 책은 지금 주어진 경제 조건과 상황이 불변이라고 가정하고 불확실한 미래를 섣불리 예단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끊임없이 변화하는 경제 상황 속에서 그 흐름을 읽을 수 있는 정확한 시그널을 안내하고자 한다. - '프롤로그' 중에서

 

 

2020년, 정말 경제위기가 도래할까?

 

책의 저자 박종훈은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서울대 경제학부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 스탠퍼드대 후버 연구소에서 객원연구원으로 지냈다. 한국은행에 입행했다가 1998년 KBS 경제부에 입사하여 대표적인 경제전문기자로 활동 중이다. 2018~2019년 KBS1라디오 <박종훈의 경제쇼>를 통해 보다 쉽고 재미있는 경제 지식을 전달했으며, 지금은 KBS 보도본부에서 경제부장을 맡고 있다. 대표 저서로는 <박종훈의 대담한 경제>, <지상 최대의 경제 사기극, 세대전쟁>, <2015년, 빚더미가 몰려온다>, <빚 권하는 사회에서 부자되는 법> 등이 있다.

금융감독위원회 설립과 함께 긴박하게 진행됐던 외환위기 극복 과정과 9.11테러를 뉴욕 현장에서 직접 취재했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 굵직한 경제 이슈들을 담당해왔다. 다양한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경제/금융 관련 탐사보도와 기획보도를 통해 2007년 제34회 한국방송대상 '올해의 보도기자상'을 수상했으며, 그 외에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한국기자협회 등에서 다수의 상을 받았다.

 

총 3부로 구성된 이 책은 2020년에 경제 위기가 도래할 것인지 분석하면서 쏟아지는 수많은 정보 중에서 가짜 시그널과 진짜 시그널을 가려내는 방법을 알려준다. 즉 '금리, 부채, 버블, 환율, 중국, 인구, 쏠림' 등 7가지 경제 시그널을 소개하면서 이들 신호에서 어떤 변화에 주목해야 하며, 각각의 변화가 어떤 결과를 낳을지 전문가의 시선으로 날카롭게 예측한다. 마지막으로 곧 닥쳐올지도 모를 대규모 경제 위기 속에서 승자가 될 수 있는 투자 전략을 알려준다. 

 

 

 

 

왜 경제 전문가들은 계속해서 위기 시그널을 보낼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휩쓸고 지나간 후 10년 이상 경과했다. 그 사이에 지구촌 여러 나라들은 경기부양을 위해 천문학적인 돈을 풀면서 초저금리를 유지했기에 글로벌 경기는 되살아났다. 보통 사람들은 편하게 되면 배고팠던 시절의 아프고 슬픈 기억을 쉽게 잊어버린다. 그래서일까,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그런데, 단순히 망각에 그치는 게 아니라 곧 닥쳐올 경기 둔화나 위기에 둔감해진다는 게 문제다.  

 

지난 10년간 편하게 호황을 누렸다고는 하나 역대의 그것에 비하면 연평균 경제 성장률은 낮은 편이다. 그럼에도 초저금리와 양적완화로 풀린 돈이 글로벌 부동산 가격과 미국 주가를 끌어올리면서 자산 가격만은 그 어떤 호황 때에 못지않게 팽창했다. 이처럼 성장은 주춤하면서 자산 가격만 치솟아 오르는 기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자산의 버블현상임에 틀림없다. 이에 많은 경제학자들, 세계적인 투자자들, 그리고 투자은행들이 이제 곧 미국 경제의 호황이 끝날 것이라는 경고에 점점 동참하는 추세다.

 

특히 최근에는 단순한 경기 둔화를 넘어 경기 침체나 금융위기까지 겪을 수 있다는

무시무시한 경고를 내놓으면서 2020년을 '위기의 해'로 지목하고 있다.(21쪽)

 

 

 

 

가짜 시그널을 판별하는 원칙

 

탐욕에서 벗어나라~ 방향이 잘못된 탐욕은 이성을 마비시킨다

확증편향에 빠지지 마라~ 최대한 객관적으로 상황을 판단

최악의 순간에도 공포에 사로잡히지 마라~ 공포에 굴복하면 더 이상 기회가 없다

항상 플랜B를 준비하라~ 이 세상에 완벽한 예측이란 없다

 

 

금리 시그널: 멈추는 순간을 주목하라

 

미국 연준은 1994년, 1999년, 2004년 세 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인상햇다. 이때마다 경제가 불안해졌다. 1994년, 물가를 잡겠다고 미국은 연 3%의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이에 개도국으로 유입됐던 자금이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아진 미국으로 다시 회귀하기 시작하면서 제일 먼저 멕시코의 외환위기를 촉발시켰다. 이후 2년만에 태국을 시작으로 동아시아 외환위기로 번졌으며, 한국도 IMF 외환위기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1999년에도 마찬가지로 미국은 물가를 이유로 연리 4.75%의 기준금리를 6.5%로 인상했다. 이는 글로벌 IT기업의 주가가 폭락하는 '밀레니엄 버블 붕괴'의 도화선이 되고 말았다. 미국의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는 3년만에 35% 폭락했고, 나스닥지수는 4,300대에서 1,100대로 무려 4분의 1토막으로 급락했다.

 

이어서 2004년 집값이 유례없이 폭등하는 과열 현상에 대응하고자 미국은 17차례의 금리 인상을 단행해 2004년 초 연리 1.0%였던 기준금리가 2006년 7월엔 연리 5.25%까지 폭등했다. 연준의 금리 인상이 멈추었음에도 2007년부터 미국 부동산의 가격은 하락세로 돌변, 가계 부채가 급증하는 현상에 이어 대규모 금융 부실 사태로 번졌다. 소위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는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로 확산되었다.

 

이와같은 과거의 흐름을 교훈삼아 이에 적합한 대응을 해야 한다. 그렇다. 향후 우리가 주목해야 할 중요한 시그널은 바로 미국 연준이 기준금리 인상을 중단하는 시점이다. 연준이 금리 인상을 중단하면 언론과 증권가는 이제 금리 인상 걱정을 덜었다며 주가 상승을 점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1995년과 2006년에는 금리 인상 중단 이후 주가가 10% 넘게 상승했다.

 

하지만 이 같은 주가 상승은 오히려 불이 꺼지기 직전 타오르는 마지막 불꽃과 같다. 미국 연준의 금리 인상 중단은 결코 긍정적인 시그널로만 볼 수는 없다. 연준이 금리 인상을 멈추었다는 것은 미국 경기의 활황이 끝나고 경기 둔화의 신호가 잡히기 시작했다는 것을 뜻한다.(68-69쪽)

 

미국은 자국의 경제 회복에 대한 자신감을 표출하면서 2018년 네 차례의 기준금리를 인상하더니 자국 및 글로벌 경기의 회복이 더디다는 이유로 2019년에 들어 금리를 동결했다. 최근에는 금리를 재차 인하할 조짐을 내비치고 있다. 이 대목에서 우리들은 우려를 금할 수가 없다. 세계 경제를 호령하는 미국이 더 이상 금리를 인상하지 못하는 것은 자국의 경기 호황은 이미 끝났음을 시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젠 안을 들여다 보자. 한국 경제의 현주소는 한 마디로 최악이다. 글로벌 경기의 위축은 한국 경제를 독감으로 몰고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환율 시그널: 돈의 흐름을 한 발 먼저 읽는다

 

이미 1998년 동아시아 외환위기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원화 가치가 급락하는 현상을 경험했다. 실제로 한 나라의 통화 가치가 크게 떨어지는 것은 매우 중요한 시그널이다. 일단 통화 가치가 급락하면 워낙 속도가 빨라 제대로 대응할 기회조차 없기 때문에 환율 급변이 시작되기 전에 한발 먼저 환율의 시그널을 읽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우선 한 나라의 통화 가치가 경제의 기초체력에 걸맞지 않게 과도하게 높아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과거에는 국가가 환율을 통제하려고 무리한 시도를 하다가 통화 가치가 급변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지금은 중국 등 몇몇 나라를 제외하면 대체로 환율은 그 나라의 외환 정책보다 글로벌 금융시장의 영향을 더 크게 받는다.

 

원화의 미래를 살펴봐야 할 점

 

반도체 호황으로 반도체 수출이 폭발적으로 증가, 원화가 고평가된 측면이 있다

대 중국 수출 의존도가 높아 중국의 위안화 영향을 크게 받아 원화 가치도 급변할 가능성이 있다

중국의 대체투자처인 한국증시는 중국 경제가 흔들리면 해외투자자 자금의 이탈로 영향을 받는다

 

 

쏠림 시그널: 한국 사회, 쏠림이 지나치면 반드시 터진다

 

이미 성장률이 정체되고 더 이상 돈을 벌 곳이 사라진 경제 환경에서 부동산 가격만 오르는 것은 새로운 투자처를 찾지 못한 일시적인 '쏠림' 현상에 불과하다. 경제 성장을 동반하지 않은 부동산 가격 폭등은 마치 촛불이 꺼지기 직전에 잠깐 타오르는 불꽃과 같다. 소득 증가와 경제 성장을 동반하지 않은 과도한 부동산 가격 급등은 '쏠림' 현상의 시그널로 보고 각별히 경계해야 한다.

 

한국 경제의 위험을 알리는 '쏠림'

 

수출 경쟁력의 약화로 수출이 계속 감소함으로써 수출에만 매달렸던 한국 경제는 총체적 난국

반도체 쏠림, 반도체의 호황이 계속 지속되지 않을 경우

건설 경기 부양

자영업 비중이 매우 높다

기계 자산의 부동산 쏠림 현상

 

 

주식투자, 전략이 달라져야 한다

 

고령화의 충격이 찾아온 국가라도 경제구조가 고령화에 적응하기 시작하면 주가가 다시 반등을 시작했다. 일본의 경우 생산연령인구 비중이 줄어든 시기를 전후해 주가가 폭락했지만 다시 반등해 최저점 대비 주가는 10년 만에 3배 정도 상승했고, 이탈리아는 폭락 이후 5년여 만에 최저점 대비 2배 상승했다. 따라서 고령화의 충격이 정점에 이르렀을 때 투자를 시작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또 다른 전략은 해외 투자에 나서는 것이다. 이웃인 일본도 해외 투자 비중이 높아졌었다. 글로벌 경제 위기가 시작되면 엔화의 가치는 늘 올랐다. 그 이유는 일본 투자자들이 해외에 투자했던 자금을 회수, 엔화를 사려는 수요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선진국은 이미 저출산, 고령화가 시작되어 성장동력이 약화되었지만 미국에 투자하는 것이 장기적으론 매력적이다.

 

미국이 매력적인 이유

 

생산연령인구가 감소하고 있지만, 이민자로 인해 그 속도가 매우 완만하다

기술을 선도하면서 세계 표준을 장악하고 있다

기축통화 지위를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원화만 보유하면 이는 분산투자가 아니다 

자산을 주식과 부동산, 현금으로 분산한다고 해도 따지고 보면 다 원화로 표시된 자산이기 때문에 원화 가치 자체가 흔들리는 상황이 오면 분산 투자의 효과는 떨어진다. 따라서 불안한 경제 상황에서 현금 비중을 늘릴 때는 다른 나라 통화도 분산 대상으로 고려한다.

 

현금을 분산할 때 고려해볼 수 있는 통화는 달러화와 엔화다. 물론 유로화도 분산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유로화는 엔화와 상관관계가 높은 편인데다 유로화의 특성상 유로존의 복잡한 정치 상황에 좌우될 수도 있다. 게다가 이자도 없기 때문에 굳이 유로화까지 분산 투자 대상에 넣을 필요는 없다. 현금은 아니지만 현재의 경제 상황에서는 잠시 금을 편입해두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

 

 

 

 

최악의 공포는 또 다른 투자의 기회

 

저자는 2020년엔 다음 3가지를 명심할 것을 주문한다.  첫째, 내일은 결코 오늘과 같지 않다는 점을 명심하고 새로운 경제 시그널을 면밀히 살피면서 미래에 대비할 것을 주문한다. 둘째, 세계를 깊고 넓게 바라보며 투자 및 사업 전략을 짤 것을 주문한다. 셋째, 최악의 공포 순간을 최고의 투자 기회로 삼아 역전의 발판을 잡으라고 주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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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지 않고서야 - 일본 천재 편집자가 들려주는 새로운 시대, 일하기 혁명
미노와 고스케 지음, 구수영 옮김 / 21세기북스 / 2019년 7월
평점 :
절판


대중이 열광하는 콘텐츠란, 골똘히 생각해보면 특정한 어느 한 명에게 강력히 가닿는 콘텐츠다. '30대 영업사원을 위한 비즈니스 서적'처럼 대충 뭉뚱그려 잔재주를 부리는 마케팅으로는 책을 팔 수 없다. 어느 한 명의 영업사원이 점심으로 무엇을 먹는지, 닭튀김 정식인지, 편의점 도시락인지 철저하게 상상하지 않으면 한 사람의 인생을 변화시킬 책을 만들 수 없다. 극단적일 정도로 어느 한 개인을 위해 만든 것이 결과적으로 대중에게 퍼져 나간다. 사람들이 매일 무엇을 느끼는지 냄새 맡는 후각은 앞으로 이야기를 만드는 힘과 더불어 온갖 종류의 상품과 서비스를 만드는 데에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 '들어가며' 중에서

 

 

미쳐야만 성공한다

 

책의 저자 미노와 고스케는 1985년 도쿄에서 태어났다. 와세다대학 제1문학부 졸업 후, 2010년 후타바샤 출판사에 입사해 패션 잡지의 광고영업부에서 제휴와 상품 개발 등을 담당했다. 광고영업부에 적을 둔 채로 잡지 <네오힐즈 재팬>을 창간해 아마존 재팬 종합 순위 1위를 달성했다. 2014년 편집부로 이동해 <전설이 파는 법>(겐조 도루), <역전의 업무론>(호리에 다카후미)을 편집했다.

 

이후 겐토샤로 이직해 2017년 'NEWSPICKS BOOK'을 설립하여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다동력>(호리에 다카후미), <MONEY 2.0>(사토 가쓰아키), <일본 재흥 전략>(오치아이 요이치),  <인생의 승산>(마에다 유지) 등을 편집했으며 창간 1년 만에 100만 부를 팔아치워 '일본을 대표하는 천재 편집자'로 불리게 됐다. 현재 1,300여 명의 회원을 보유한 일본 최대급의 온라인 살롱 '미노와 편집실'을 운영하고 있으며, 기존 편집자의 틀을 뛰어넘어 다양한 콘텐츠를 기획, 편집하고 있다.

 

지금 세상은 하루가 다를 정도로 급변하는 분위기를 연출한다.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생겨나고 이에 발맞춰 사람들의 행동도 바뀜으로써 사회 또한 함께 변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들이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하는 바는 바로 이와같은 이노베이션 현상이 점점 더 많이 그리고 확대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렇게 변화가 심해진다면 미래 자체를 예측하기가 힘들어 진다. 그래서 저자는 이런 시대엔 정답이 없으므로 뭐든 부딪혀 보라고 주문한다.

 

책은 총 6장으로 구성되었는데, 제1장(혼돈 속에 뛰어들어라)은 '생각하는 법'을, 제2장(자신의 손으로 돈을 벌어라)에선 '장사하는 법'을, 제3장(이름을 팔아라)에선 '개인을 세우는 법'을, 제4장(손을 움직여라)에선 '일하는 법'을, 제5장(유착하라)에선 '인간관계를 만드는 법'을, 마지막으로 제6장(편애와 열광으로 승부하라)에선 '살아가는 법'을 우리들에게 각각 제안한다.

 

 

 

 

사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미쳐야 산다'라는 주제어는 과거 선현들의 가르침 속에도 있었다. '불광불급不狂不及', 즉 '미쳐야만 비로소 미친다'고 했다. 어떤 분야든 그 분야에 미친듯이 깊이 빠져들어 최고의 장인이 되어야 비로소 그 분야에서 성공하는 사람으로 자리매김한다는 그런 의미이다. 아마도 선현들이 살았던 그 시대에도 변화의 속도는 나름 빠르지 않았을까?

 

 

재미있는 잡지를 론칭하다

 

인터넷 비즈니스로 큰 돈을 벌어 고급 타워 맨션에 살며 고급 차와 명품 브랜드로 치장하는 신흥 부유층을 일본에선 '네오힐즈족'이라고 말하는 모양이다. 지금 이 순간 나는 희대의 사기꾼으로 판정받고 검찰에 구속된 청담동 주식부자 이희진을 떠올린다. 책에서 거론하는 요자와 츠바사와 청담동 슈퍼리치 이희진은 마치 평행이론처럼 닮아있기 때문이다.

 

"3천만 엔을 주시면 재미있는 잡지를 창간해 책임편집장 자리를 드리겠습니다"

 

텔레비전을 통해 요자와의 존재를 알게 된 일본의 천재 편집자인 저자는 마치 먹잇감을 만난 맹수로 돌변, 만남의 자리를 갖고서 상대에게 이런 제의를 하고 즉석에서 승낙을 받는다. 롯폰기 힐즈에 살면서 롤스로이스 팬텀과 페라리를 번갈아 타고 다닐 정도로 TV에 방영되었으니 이 정도의 투자는 가능하다고 저자는 판단했을 것이다. 그런데, 당시에 요자와는 이미 '사기꾼, 범죄자'라는 정보가 돌고 있었으니 저자의 상사는 그런 위험한 돈을 받을 수 없다고 나무란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상사를 설득하여 기어코 잡지의 론칭을 성사시킨다. 그리고 이런 기획에 동참할 전문가와의 협업도 어렵사리 동의를 이끌어낸다. 사실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이었을 것 같다. 뭔가가 틀어지기라고 하면 그는 허풍쟁이로 변해 한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질테니 말이다. 도박이란 이런 식으로 진행되기에 당사자는 짜릿한 쾌감을 맛보게 된다. 도덕성은 뒷 전이고 말이다. 

 

"누군가에게 허락을 구해가며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사람은 없다. 안전, 안심을 파괴하라"

- 톰 피터스/경영 컨설턴트

 

아무튼 <네오힐즈 재팬>은 완성되어 발매를 앞두게 된다. '호사다마'라고 발매 당일 요자와의 검찰 송치 소식이 속보로 흘러나왔다. 전속 운전사를 폭행한 혐의였다. 책임편집장을 맡은 잡지가 창간일에 폐간할지도 모른다는 기사가 연속해서 인터넷에 등장하고, 텔레비전에서도 보도 기사로 다뤄지기 시작했다. 이때 저자는 이를 '노이즈 마케팅'으로 승화시켜 끝까지 추진한다. 결과는 대만족, 3만부가 완판되었다. 이후 그는 편집부로 이동, 출판계의 풍운아인 겐토샤의 사장 겐조 도루를 다루는 단행본 <전설이 파는 법>을 추진하게 된다.

    

주변에서는 "단행본을 만들어본 적 없는 사람이 겐조 씨의 책을 만드는 건 너무 위험하다",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출판계에서 살아남기 힘들다"라고들 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처음부터 실패할 거라 생각하고 싸우는 바보가 어디 있단 말인가. 결과적으로 겐조 도루와 함께한 나의 첫 단행본은 누계 12만 부의 베스트셀러가 됐다. - '안심을 파괴하라' 중에서

 



'왕은 벌거벗은 원숭이'라고 떠들어라

 

규칙이나 관습은 변하기 마련이다. 그 시절의 실정을 고려하기에. 하지만 소위 '꼰대'들은 마냥 옛 관습을 지키고 싶어한다. 그래서 '보수保守'라는 말이 나온다. 물론 이 말은 상당히 문제가 있는 표현이다. 흑백논리에 사로잡히기 때문이다. 그렇다. 상사들은 자신들이 걸어왔던 길을 걸으면 편하기 때문에 이런 반응을 보이는게 당연할 것이다. 그런 반면, 젊은 사람들의 눈에는 영 맘에 들지 않는다.

 

이에 저자는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회사원으로서 조직생활을 하다보면 자신이 모시는 상사나 거래 기여도가 큰 거래처로부터 무의미한 요구사항을 받아들여야 할 때가 있다. 말하자면 '갑질'이다. 그런데, 이를 계속 수용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게 규칙이자 관습이 되어버리고 만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의 해법을 들어보자.

 

"하지만 자신에게 세 번 거짓말하면 두 번 다시 돌아올 수 없다"



회사원은 노예가 아니다

 

사기업이 취업 규칙으로 부업을 금지하는 것은 의미 없는 짓이다. 당연히 법률은 부업 금지를 인정하지 않는다. 생각을 해보자. 회사는 사원의 인생을 통째로 책임져주지 않을 뿐더러, 갑자기 연봉이 크게 깎이거나 권고사직 또는 명예퇴직을 당할 수도 있다. 또한 자신의 생계를 맡긴 회사가 내일 망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사원을 노예처럼 여기는 회사라면 버려야 한다. 근무시간 외에 개인적인 시간까지 속박하는 것은 일종의 권력남용인 셈이다.

 

열심히 아르바이트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정규직 사원으로 뽑힌다는 생각은 연공서열과 종신 고용이 가능하던 시절의 케케묵은 발상이다. 아예 그런 생각을 버려야 한다. 사양길인 출판 업계에서 아저씨들의 등만 바라보며 순서를 기다리다간 회사와 함께 침몰해버릴 뿐이다. 시대감각이 무딘 사람은 애초에 편집자와 어울리지 않는다. 완전히 새로운 규칙과 질서를 만드는 것이야말로 미래를 살아갈 인간에게 요구되는 일이다. 

회사의 눈치만 살피는 적당주의자가 되어선 곤란하다. 그렇다고 회사에 크게 기여하는 바도 없으면서 무조건적으로 '반골' 기질을 발휘해 회사일에 태클을 걸어서도 안된다. 자기 자신이 새로운 현상을 일으키는 인간이 되려면 그에 합당한 결과를 남기는 동시에 스스로 전설을 만들어야 한다. 노력의 결과로 구축한 '브랜드'에 비로소 사람도, 돈도 따라온다. '미노와가 편집한 책이라면 믿고 살 수 있어'라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무슨 일을 하는지 명확하게 답할 수 있는 인간이 돼라.

자신의 이름을 팔아라"

 

 

팔리지 않는 책을 만들어도 좋다(?) 

이렇게 낭만적인 생각을 하는 편집자들도 있다. 하지만 자신이 소속된 회사에 엄청난 민폐를 끼치면서, 즉 적자를 발생시키면서 '만들고 싶은 책을 만들면 된다'라는 것은 어린아이에 지나지 않는 유치한 발상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단호하게 자신의 의견을 밝힌다. "그럴 거면 본인 돈으로 하라. 그런 사람이 만드는 책은 대개 재미도 없다"라고 말이다. 

 

왜냐하면 이런 부류의 편집자는 남다른 각오가 없기 때문이다. 각오가 야물지 못한 사람의 콘텐츠는 대체로 느슨한 편이다. 이는 비즈니스의 속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생긴 현상이다. 즉 비즈니스로 하는 일이 돈을 벌지 못하면 이는 언젠가 종말을 맞이한다. 이는 진리이다. 그렇다. 진정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만들어 자유롭게 살고 싶다면, 숫자와 싸워서 이겨야 한다. 이에 대해 편집자로서의 저자는 자신의 의견을 이렇게 밝힌다. "이 책을 통해 의식이 달라진다. 시각이 달라진다. 행동이 달라진다. 이런 체험까지 담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위험 따위 없다. 모든 성공도, 실패도 인생을 장식하는 이벤트에 불과하다.

미래는 밝다.

바보가 되어 날아올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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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100권 독서법 - 바쁜데 교양은 쌓고 싶은 어른들을 위한
차석호 지음 / 라온북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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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 독서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창의력을 길러준다. 창의력은 20대에는 취업을, 30대에는 직장에서의 안정을 가져다준다. 40대와 50대에는 좋은 곳으로 스카우트되거나 자기만의 사업을 창업해 인생 제2막을 설계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창의력을 갖추면 불안감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 바로 이것이 내가 파워 독서를 권하는 이유다. - 프롤로그' 중에서

 

 

파워 독서를 권하다

 

책의 저자 차석호는 고등학교는 문과를, 대학교는 컴퓨터과학을 전공한 '책 읽기를 좋아하는 프로그래머'다. 대학 졸업 후 직장에 다니던 중 인문학의 매력에 빠져 10년간 인문학 도서를 1,000권 이상 읽었다. 삶의 고비에서 만난 책 한 권으로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치열한 책 읽기로 독서 내공이 쌓여 어느 순간 발휘되는 독서 효과를 몸소 경험하고 주변에 '1년 100권 읽기'를 권하고 있다.

현재 '인문학 지도사 1급' 자격증을 취득하고 인문학 강의를 하고 있다. 2016년부터 독서토론모임 'Reading부산'을 운영하고 있으며 2019년 4월부터 팟캐스트 '듣도보도 못한 인문학'을 개설해 소통하고 있다. Dream공작소 대표이자 인문학 전문교육기관 애플인문학당 훈장, 부산의 문화협동조합 문화쿱 이사, 최초의 책 협동조합인 부산양서조합 대의원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인공지능의 미래 사람이 답이다>가 있다.

 

창의력 향상에 도움이 되는 것은 역시나 독서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과거에 발생했던 세계 대공황이라는 불황의 시기를 겪으며 이를 극복한 사람의 이야기가 책에 소개되어 있다고 한다면, 우리들은 이를 읽고서 어려운 시기의 극복 방법을 배울 수 있다. 나아가 이를 토대로 자기 자신만의 극복법을 개발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 독서의 궁극적인 목적이 여기에 있다. 과거의 일로부터 배우고, 되짚고, 변화의 길을 모색하는 것을 저자는 '파워 독서'라고 부른다.  

 

저자 또한 인생의 시련 앞에서 한 권의 책을 만나 마음가짐을 바꾸고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이렇게 독서의 효과를 몸소 경험한 바를 토대로 하여 책을 총 일곱 개의 장으로 구성,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우리들이 가진 지식을 창의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독서법을 제안한다. 바로 조금씩 꾸준히 읽는 '1년 100권 독서법'이다. 자, 이를 만나보자.

 

 

 

 

독서는 취미가 아닌 생존 무기다

 

우리들은 흔히 자기소개서의 취미란에 '독서'라고 기입한다. 그런데, 저자의 생각에 의하면 이는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즉, 4차 산업혁명의 시대는 패러다임이 변하는 시기이므로 단순히 취미로 하는 독서는 쓸모가 없다는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창의력이 요구되므로 이런 역량을 키울 수 있는 생존 무기로서의 독서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패를 딛고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 또한 독서를 통해 접할 수 있는 자산이다. 그들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그들이 불황기를 헤치고 생존할 수 있었던 비결을 얻을 수 있다. 또 이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생존법도 찾을 수 있다. 저자가 책에서 알아낸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된 생존 비결은 바로 독서였다. 100일 동안 40여 권의 도서를 읽으면서 자신의 내면에 어느새 '자신감'이 자리잡았고, 마침내 원했던 취업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내면의 소리에 마주하라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건전한 휴식과 더불어 '스스로의 내면을 바라보는 시간'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들이 범하는 가장 흔한 실수는 바로 '자신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자신이다'라고 여기기 때문에 굳이 아까운 시간에 내면의 자기 자신과 마주하는 그런 시간이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선현들에 따르면 자신을 바라보려면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라고 가르침을 준다.

 

이는 주관적인 입장을 버리고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라는 것이다. 대체로 사람들은 진짜 내면의 소리가 어떤 건지를 구분하지 못한다. 그 이유는 이것이 '충동'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가령 스마트폰을 구입한 지 얼마 안 되었음에도 최신 스마트폰으로 바꾸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은 충동이다. 이처럼 충동 또한 내면에서 올라오는 소리다.

 

그렇다면 '진정한 내면의 소리'와 '충동'을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 두 가지를 구분하는 것은 그것이 '사색의 결과'인지를 따져보면 된다. 사색을 거쳐서 나오는 것은 충분한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이 과정을 거친 후에 나온 소리는 '진정한 내면의 소리'다. 그렇지 않고 즉흥적으로 나오는 것은 '충동'이다. 

독서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간접경험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간접경험을 직접경험화해야 한다. 다시 말해 독서를 통해 깨닫고 느낀 것을 현실에 적용하는 것이다. 우리들은 <징비록>을 읽고 전쟁에 대한 예후가 있었음에도 이에 대비하지 못하고 결국엔 전쟁이 발발하게 되었음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나아가서 이런 상황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현실에 적용한다면 깨달은 바를 직접경험으로 바꾸게 되는 것이다.

 

진정한 자아를 찾기 위한 과정에서 책은 '나침반' 같은 역할을 한다. 하지만 나침반을 갖고 있기만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에 그치고 만다. 나침반은 목표 지점을 찾고, 그곳을 찾아갈 때 유용하게 쓰이는 도구이다. 즉 실행할 때 비로소 나침반은 그 가치를 발한다. 독서를 통해 책에서 께달은 내용을 실행에 옮겨야 함을 의미한다. 이것이 '파워 독서'의 완성으로 가는 길이다.

 

 

모든 책을 정독해야 할까?  

사람들이 책을 읽을 때 오해하는 것 중 하나가 '처음부터 무조건 정독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다. 물론 책에 따라서는 처음부터 정독을 해야만 하는 책이 있다. 한강의 <채식주의자>, 김훈의 <공터에서> 등과 같은 소설책이 그런 부류다. 소설책은 처음부터 정독하지 않으면 글의 흐름을 파악할 수 없고, 등장인물이 하는 말과 행동을 이해하기 어렵다.

 

반면에 에세이나 자기계발 서적은 처음부터 정독하지 않아도 된다. 자신에게 필요한 부분만 찾아서 읽으면 되기에 굳이 첫 페이지부터 차례대로 읽지 않아도 된다. 예를 들면,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정호승의 <내 인생에 힘이 되어 준 한마디> 등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이런 도서들은 각각의 장章이 독립적이다. 필요한 부분만 골라서 읽어도 무방하다.

 

 

고전읽기는 한국 고전부터 시작하라

 

어떤 책을 읽는 것이 도움이 될까요?라고 질문을 하면 대체로 '고전읽기'를 권한다. 흔히 '고전'을 오래전부터 내려온 문학, 철학, 역사, 경제학 등의 저서를 가리킨다. 사실상 출간된 지 오래된 것이다. 말 그대로 고전古典이다. 그래서 혹자들은 옛날의 사상과 생각 등을 담은 책이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냐고 회의적인 시각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틀린 시각이다. 고전 속엔 우리들이 지켜야할 본질을 담고 있음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선적으로 우리 고전과 친해져야 한다.  

 

 

고전을 읽을 때는 시간을 넉넉하게 가지는 것이 좋다. 고전은 잘 넘어가지 않는다. 따라서 6일의 시간을 가지고 한달에 5권을 읽는 식으로 계획을 짜면 좋다. 물론 책에 따라 읽는 데만 한 달이 넘는 책도 있다. 초기에는 부담이 없는 책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고전은 대부분 한 번 읽어서는 내용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가능하면 여러 번 반복해서 읽으면서 뜻을 음미해야 한다. 고전은 스무 살에 읽었을 때와 마흔 살에 읽었을 때의 느낌이 다르다. 스무 살 때 미처 보지 못한 면을 마흔 살 때는 얼마든지 볼 수 있다. 바로 이것이 고전 독서의 매력이다.

 

 

오늘부터 시작하라 

옛 속담엔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했다. 어떤 일을 하기로 마음먹었으면 미루지 말고 지금 즉시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미루다 보면 해야 될 일이 쌓이고 쌓인다. 이렇게 되면 쌓여 있는 일이 부담이 되어 아예 시작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또한 한번 미루기 시작하면 미루는 것이 습관이 된다. 독서를 하기로 마음먹었으면 즉시 시작하라. 만약 1년에 100권을 읽기로 결심했다면 지금 당장 카운트를 시작하라. 그러면 3일이 지나 1권을 읽을 수 있게 된다.

 

3개월분 독서계획표를 작성하라~ 구체적으로

독서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라~ 스마트폰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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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cm로 싸우는 사람 - 최초의 디자인 회사 ‘바른손’ 50년 이야기
박영춘.김정윤 지음 / 몽스북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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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바른손 창업주 박영춘 회장의 50년 기업 경영 스토리를 그 뼈대로 하고 있다. 국내 1세대 경영자 중에서는 지금까지도 찾아보기 힘든 사례이기에 그의 디자인 창업 스토리는 기록되어야 할 가치가 있다. 기업가가 자기표현의 수단으로서 회사를 경영할 때 어떤 창조적인 인생을 살게 되는지 알 수 있는 답안지다. - '프롤로그' 중에서

 

 

디자인 기업 바른손의 경영 이야기

 

박영춘 회장은 1939년 춘천에서 출생하여 강원대학교를 졸업했다. 인쇄업이 최신 산업으로 각광받던 1968년, 서울 을지로에서 다른 사람 사무실의 한 귀퉁이를 빌려 인쇄에 들어갈 글씨나 문양을 금속으로 조각하는 일을 시작한다. 1970년 카드 사업 첫해에 '바른손'이라는 이름으로 내놓은 연하장이 130만 장 가까이 판매되면서 을지로 인쇄업계의 블루칩으로 떠오른다. 디자인 산업이 전무하던 한국 산업계에서 남다른 미적 감각으로 전에 없던 디자인 카드를 선보이며 시장을 석권한 것이다.

1980년대 들어 바른손팬시로 영역을 확대해 문구 시장에도 파란을 일으키며 20년 가까이 업계 1위를 고수했다. 바른손의 성업으로 인해 국내에 모닝글로리, 아트박스 등이 생기고 팬시 르네상스 시대가 열렸다. 토건 시대에 먹히던 경영 철학을 고수하는 기업가들 틈바구니에서 그는 처음부터 다른 길을 걸으며 국민 브랜드 바른손을 탄생시켰고, 그 시절 아이들의 일상을 바른손 카드와 문구의 다채로운 디자인으로 채워갔다.

 

1998년 IMF 사태 이후 바른손팬시가 부도 처리되었으나 박 회장은 60세의 나이에도 기업가 정신을 가슴에 품고 온라인 사업, 중국 진출 등 끊임없는 도약을 시도한다. 현재는 박 회장의 자녀들이 국내 카드 1위인 바른컴퍼니, 아트 프린팅 기업 비핸즈, 중국 상하이 법인 위시메이드를 운영하고 있으며, 그는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강원도 인제의 산속에 집을 짓고 자연과 호흡하며 살고 있다.

 

 

 

 

을지로 인쇄골목의 떠오르는 스타

 

1970년대의 인쇄업은 오늘날의 IT처럼 각광 받는 미래형 산업이었다. 을지로 인쇄골목은 성공을 꿈꾸는 사람들로 북적대는 동네였다. 그즈음 국내 최초의 주상 복합 아파트인 풍전상가도 이곳에 들어섰는데, 에스컬레이터도 설치되어 있고 스파게티를 취급하는 양식당이 들어설 정도로 최신 트렌드가 집약되어 있었기에, 당시의 힙스터들이 을지로로 속속 모여들어 경쟁이 치열했다.

 

상경한 지 3년 째인 1970년, 박영춘은 풍전상가 1층에 넓은 사무실을 얻을 정도로 꽤나 잘나가는 인물이었다. 그 시절은 활판 인쇄를 하던 때라 손재주가 좋은 그가 금속판 조각에 있어서 우위를 점하고 있었고 평판도 좋았다. 그래서 한국화장품, 태평양화학 등 뷰티 업계에서 그를 자주 찾았다. 이 때의 조각 사무실 이름이 바로 '바른손'이었다.

 

그 시절, 새해 인사는 연하장이 활용되었다. 이에 박영춘은 연하장에 디자인 개념을 넣으면 승산이 있겠다고 판단했다. 비로소 카드나 연하장은 메시지를 전하는 종이일 뿐이라는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 창의적인 에너지가 움트는 순간이었다. 물론 그에게 새로운 디자인을 제품화할 수 있는 뛰어난 조각 기술이 없었다면 이런 아이디어는 구체화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해 연말, 바른손카드는 시장에 파란을 일으켰다. 첫해에만 연하장 130만 장이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그가 만든 카드를 사기 위해 직접 찾아온 도매상들이 을지로3가 건물 3층에 있던 사무실 복도부터 1층까지 빙 둘러 줄을 섰다. 마치 아이돌 그룹의 캐릭터 문구 상품을 사기 위해 한겨울 새벽부터 줄을 서는 수백 명의 소녀들처럼 말이다.

 

박영춘 회장의 젊은 시절

 

 

성공의 키워드, '아름다움과 정교함'

 

춘천에서 상경, 을지로 인쇄골목에서 금속 조각공으로 인정받고, 바른손이라는 디자인 카드 및 문구 기업을 성공으로 이끈 박영춘 회장의 성공 비결은 아마도 '아름다움과 정교함'일 것 같다. 남보다 더욱 아름답게, 그리고 자신의 마음에 들 때까지 완벽하게 제품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한 번 볼 것을 수십 번 보고 또 보고, 고치고 또 고치는 그 과정 자체에 성공이 이미 녹아들고 있었다. 

 

회사의 성공 가도엔 직원수의 증가도 뒤따른다. 350여 명의 직원을 거느린 회사로 성장하면서 모든 것이 잘 풀릴 것 같은 때에 '호사다마好事多魔'란 말이 맞기라도 하는 듯 뜻밖의 사건이 발발했다.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이었다. 갑자기 정국의 불안감이 팽배해지면서 시장 또한 경색되기 시작했다. 때마침 큰돈을빌려 사업규모를 확장했던 바른손카드의 자금 흐름에 치명적이었다. 마침내 1981년 바른손카드는 부도를 맞았다.

남보다 반보半步 먼저 트렌드를 파악하는 것이 성공의 비결이다. 삼성, LG, 대우 등 대기업을 제외하고 디자인실을 따로 둔 회사가 없던 시절, 박 회장은 '아무도 하지 않았던 것을 시도한다'는 슬로건 하나만으로도 창작하고자 하는 디자이너들의 욕망을 건드린 것이다. 전혀 새로운 분야, 전혀 새로운 시스템, 전혀 새로운 목적으로 무장한 바른손팬시는 1983년 본격적으로 출범했다.

 

 

제조 공장 없는 제조 기업

 

바른손팬시는 설립 첫해에 손에 휴대할 수 있는 작은 다이어리와 노트를 출시했다. 출시되자마자 20만개가 팔렸다. 1년 후 디자이너를 10명으로 확충하고 다이어리 노트 등 종이 제품, 봉제 인형, 포장지, 잡화 상품 등으로 상품 구성을 확대해 나갔다. 수입 디자인 문구만큼 뛰어난 디자인에 적절한 가격대로 출시된 바른손팬시 상품은 소비자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가히 성공적인 데뷔전이었다.

 

처음부터 바른손팬시는 자체 제조 공장이 없었다. 디자인 기획안을 갖고 고품질 제품을 함께 만들어나갈 협력 업체를 발굴, 이들에게 제조를 맡겼다. 하지만 엄격한 품질관리와 유통, 판매 등 모든 과정을 바른손팬시가 컨트롤했다. 자체 공장도 전무한 상태에서 첫 해부터 큰 매출액을 달성할 수 있다는 사실은 관련업계 종사자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바른손팬시가 시장을 강타하고 나서야 사람들은 '한국에서도 이런 일이 가능하구나!'를 깨달았다. 당시만 해도 독자적인 디자인을 개발하는 회사는 거의 없었고, 눈동냥과 귀동냥 만으로 디자인을 흉내 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일본 캐릭터를 살짝 베껴서 토끼 귀를 좀 길게 한 다음 리본을 붙이는 방식으로 소위 '짝퉁' 상품을 양산했다. 사용하는 색깔도 빨강, 파랑, 노랑, 검정 등 몇몇 원색이 고작이었다. 몇몇 현력업체들이 전담팀을 구성, 이런 형태로 팬시 사업에 도전했지만 도저히 바른손팬시의 디자인 감각을 따라집을 수 없었던 것이다.

 

 

아름다움에 대한 집념

 

바른손팬시의 사업목적은 단순히 디자인이 좋은 상품을 만들어 판다는 데 그치지 않고 소비자들, 특히 아이들이 아름다움에 대해 눈을 뜨도록 하겠다는 생각이 밑바닥에 깔려 있었다. 바른손팬시 자체 캐릭터가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는 이야기를 계속해서 풀어낼 수 있도록 했다. 박 회장은 늘 아름다움 그 자체를 즐겼다.

 

'올해 어떤 상품이 히트 칠까'를 두고 다 같이 투표를 한 뒤 결과를 보면 박 회장의 적중률이 가장 높았다고 한다. 그는 트렌드를 감지하는 능력이 거의 동물적이라 다른 사람이 뭘 원하는지 실무자보다도 제일 정확하게 알았다. 프로 디자이너보다 더 예리하고 정확하게 디자인을 짚어내고, 섬세하게 수정을 지시하는 감각이 놀라운 수준이었다고 디자인 고문은 회고한다.

 

바른손팬시가 처음 생길 때만 해도 '디자이너'가 아니라 '도안사'라고 불렸다. 대부분의 기업이 외국 제품의 디자인을 베끼기 바빴는데, 바른손은 자체적으로 디자이너를 모집하고 직접 교육시켜서 시장을 선도했다. 창조적인 작업에 어울리는 예쁜 사무실로 인테리어를 하고, 모든 디자이너에게 매킨토시 PC를 한대씩 지급했다. 이후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대학생들이 가장 가고 싶은 직장으로 바른손이 손꼽혔다.

 

 

위기 상황에도 나다움 잃지 않기

 

1998년, 대출 상환 기한이 점점 다가옴에 따라 20년 가까운 시간을 투자한 바른손팬시가 곧 부도 처리될 상황을 앞두고 있었다. 박영춘 회장은 1981년 바른손카드 첫 번째 부도 사태의 혹독한 경험을 치른 이후 두 번째 겪는 일이었다.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도 박 회장은 나다움을 잃지 않았다. 평소처럼 단전 호흡을 하고, 집에서 크로키도 그리고, 음악도 들으면서 상황을 지켜봤다. 최종 부도 처리되던 날, 그는 바른손팬시의 수장으로서 누리던 기득권을 모두 포기, 타고 다니던 회사 소유의 자동차마저 주차장에 세워두고 택시를 타고 귀가했다.

 

당시 바른손팬시의 매출은 바른손카드의 30배 규모로, 바른손의 주력 사업이었다. 비록 부도가 났을지라도 지속적인 매출로 인해 바른손팬시를 비교적 좋은 조건으로 매각할 수 있었다. 1999년 박 회장은 보유주식 중 10%만 남기고 대주주로서의 모든 권리를 내려놓고 바른손팬시를 매각했다. 약간의 토지, 바른손팬시 주식 10%가 전부였다.

 

"30년 동안 사업을 했는데, 부도 직후 가장 많은 현금을 손에 쥐게 됐어요. 아이러니죠"

 

그런데, 기적 같은 반전이 일어났다. 주식 거래 정지 기간에 바른손팬시를 매입한 사람이 다른 기업에 이 주식을 매각한 것이다. 바른손팬시의 주식이 재상장되자 주가가 엄청난 기세로 상승, 박 회장이 소유하고 있던 10%의 주식이 엄청난 자본으로 돌아왔다. 이제 사업가로서의 인생은 모두 끝난 건가 생각했던 박 회장에게 또 다른 도전을 할 기회가 주어졌다. 당시 목돈을 가지고 있던 부자들이 부동산 투자에 열을 올렸지만 박 회장은 거액의 주식 매각 대금을 평소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IT, 게임 사업에 도전해 또 다른 도약을 꿈꿨다.

 

 

60대 초반의 나이로 중국에 진출, 그리고 파킨슨 증후군

 

60대 초반의 나이에 언어와 문화 모두 낯선 중국에서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는 일은 박 회장에게도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부동산 임대 수익으로 여생을 편안하게 보낼 수 있었는데도, 그는 인생 마지막 순간까지 결과가 아닌 과정으로 살기를 바랐다. 자신이 기획한 대로 새롭게 일이 진행되는 과정 자체를 즐겼던 박 회장은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다가 중국 진출 3년 만에 말이 어눌해지는 언어 장애 증상이 시작됐다. 그때 급격하게 건강이 악화된 이후 파킨슨 증후군이 발병해 현재까지도 투병 중이다. 최근 박회장은 바른컴퍼니를 이끌고 있는 삼남 박정식 대표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내 삶이 성공했다고 보지 않는다. 내 방법이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 개인이 재주가 있어서 첫 시작부터 성공적이었지만, 그 성공은 지속적으로 유지되지 않았다. 뛰어난 개인이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다. 긴 호흡으로 다른 사람들과 함께 무언가를 쌓아나가는 재미를 알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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