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선비의 서재에 들다 - 고전에서 찾아낸 뜻밖의 옛 이야기
배한철 지음 / 생각정거장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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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록 밖에도 역사의 원천은 무수하게 존재한다. 성리학의 도입과 함께 학문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사대부들은 개인 문집 등 방대한 저작물을 양산해냈다. 시와 수필, 상소, 행장, 비문 등 형식이 다양할 뿐만 아니라 사상과 정치, 제도, 과학, 역사, 세태, 풍속 등 다루는 분야도 실로 광범위하다. 이들 저작에는 실록에서 다루지 않은 사건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고, 더러는 내용이 전혀 다른 경우도 많다. 양반 사대부만 기록을 남긴것도 아니다. 조선 후기에 접어들면서 경제가 발전하고 이에 따라 신분제도가 완화되면서 일부지만 여성은 물론, 중인 이하의 하층민들도 기록물을 생산하여 우리의 문화를 더욱 풍성하게 했다. - '머리말' 중에서

 

 

실록 밖의 기록물에서 찾은 감춰진 역사

 

이 책의 저자 배한철은 구미 출신으로 1995년 〈매일경제〉에 입사했다. 정부 부처를 출입하면서 정책 기사를 주로 써왔다.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고 경영학으로 내리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저널리즘이 유명한 미국 미주리대학교에서 방문연구원으로 공부하기도 했다. 그러나 고등학교 시절부터 그의 오랜 꿈은 역사학도였다. 당시에는 역사가 단순히 연대를 나열하고 사건이나 제도를 암기하는 지루한 과목이었지만 고등학교 시절에 만난 국사 선생은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풀어내는 수업을 진행함으로써 그를 매료시켰던 것이다.

 

2012년 우연찮은 기회에 문화재 관련 취재를 맡으면서부터 묻어두었던 역사학도의 꿈을 마음껏 펼치고 있다. 현재 〈매일경제〉와 네이버에 한국사와 고미술, 고전 등을 주제로 다양한 칼럼을 쓰고 있다. 역사는 재미있어야 한다고 믿으며, 이를 위해 오늘도 고전과 문화재를 찾아 기자수첩을 들고 박물관과 종갓집을 종횡무진 누비고 있다. 저서로는 <한국사 스크랩>(2015년 세종도서 선정), <얼굴, 사람과 역사를 기록하다>(2016년 이달의 읽을 만한 책 선정, 2017년 세종도서 선정) 등이 있다.

 

조선 왕조는 '기록의 나라'라는 찬사를 받을 수 있는 명예로운 기록물을 남겼다. 즉 조선은 왕이 죽고나면 왕이 재위했던 기간에 일어났던 모든 일들을 왕조실록으로 후손들에게 남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가치를 알아본 유네스코는 <조선왕조실록>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했는데, 이는 태조부터 철종까지 25대 470여 년 동안 시간순으로 역사적인 사건들을 기록한, 1893권 888책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양의 역사서다. 이를 역사학계에선 '정사正史'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이처럼 비교적 객관적인 사료로 평가받는 '정사'만이 올바른 내용일까? 소수의 사관들이 저술한 이 기록물이 과연 형평성에 기울지 않고 정확성에 기초했다고 볼 수 있을까? 당파로 나뉘어 정치적 대립과 갈등을 표출했던 시대상을 감안해 볼 때 자기 편에게 유리한 내용을 다루었음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한 예로 저자는 임진왜란 대 전소된 경복궁을 거론한다. 실록은 한양에 침입한 왜군들이 궁궐을 약탈하고 불태웠다고 기록한다. 반면에 조선 중기의 문신이 저술한 <송와잡설>에는 왕이 한양을 버리고 도망가자 백성들이 몰려나와 경복궁에 불을 질렀다고 말한다. 진정 올바른 역사는 무엇인가? 이 책은 48권의 고전에 기록된 우리의 역사를 들춰내고 있다. 

 

 

    

 

 

세종의 황당한 돌출행동

 

우리 역사상 최고의 성군聖君으로 꼽히는 세종은 궁궐에만 머물며 집현전 학사들과 한글 창제에 몰두했을까? 그렇지 않다. 세종도 밖에 나다니길 좋아해서 한 달 이상 궁궐을 비우기 일쑤였고, 술에 취한 날이 많았다. 믿기지 않은가? 선조 때의 문신 박동량의 야사집 <기재잡기>에 따르면 세종은 친히 안성, 평택, 용인, 여주, 이천, 경기 광주 등지로 사냥을 다녔는데 한 달이 지나서 환궁했다가 이튿날 또 떠나곤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황당한 돌출행동도 있다. 죽천 이덕형은 <죽창한화>에서 세종이 형 효령대군의 증손녀를 지방의 한미한 집안 선비와 강제로 결혼시킨 비화를 거론한다. 세종은 여러 대군, 왕자들과 함께 제천정(한남동에 있던 정자)에서 잔치를 벌였다. 마침 선비들이 과거를 보기 위해 한강을 건너느라 강어귀가 꽉 찼다. 세종은 그들 중 유독 의관이 남루하고 얼굴이 수척한 한 유생을 불러오게 했다. 세종은 예를 다해 선비를 맞고 이름을 물었다. 선비는 "영남의 현석규"라고 답했다.

 

세종은 주위를 둘러보며 "여기 누가 혼기를 맞은 여식이 있소"라고 물었다. 형인 효령대군이 나서 "제 손자 서원군에게 혼기가 찬 딸이 있다"고 답했다. 그러자 세종은 "만일 사위를 얻으려면 이 사람보다 나은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에 효령대군은 "가문이 대등하지 못하다"고 거절했지만 세종은 "영웅이나 호걸인 선비들이 초야에서 많이 나왔으니, 이 선비집 아들과 정혼하도록 하시죠"라고 고집을 피워 결국 혼인이 성사됐다.

 

다행스럽게도 현석규는 훗날 세조 때 별시 문과에 을과(3등급 중 2등급)로 급제, 이후 정2품 우참찬까지 벼슬을 했다고 한다. 과연 세종의 안목이 남달라서 백 보 밖에서 우연히 한번 본 사람을 영웅이나 호걸로 판별할 수 있었을까? 결코 믿을 수 없는 행동이다. 명문가의 훌륭한 자제들도 많았을텐데, 왜 시골뜨기를 강압적으로 사위로 삼게 만들었는지 세종의 진의를 알 길이 없다. 

 

 

선조는 반전 종결자였다

 

조선사에서 선조만큼 무능한 왕은 없다. 정치적 판단에서 오류를 범해 임진왜란을 자초했던 왕이었으며, 왜군이 한양까지 올라오는 상황이 생길 것 같으니까 광해군에게 임시 왕을 임명하고 자신은 도성과 궁궐을 버리고 명나라로 피난길에 나선 군주였다. 학교에서 이렇게 국사 공부를 받았으니 이게 전부인 줄 알고 있다. 하지만 선조의 뜻밖의 면모를 보여주는 일화들이 많다.

 

심노승의 <자저실기>에 따르면, 명나라에서 '동방문사東方文士'로 칭송받던 차천로가 젊은 시절 과거시험 감독으로 참여해 고향 사람의 답안을 대신 써주었다가 들통나고 말았다. 더구나 이 사람은 장원으로 뽑혀서 상황이 심각했다. 선조는 차천로를 함경도로 축출한 후, 북병사에게는 따로 "재주가 아까우니 잘 대우하라"고 명했다고 한다.    

 

선조는 공부 잘하는 우등생이었다. 율곡 이이는 "(선조가) 어려서부터 자질이 뛰어나고 외모가 깨끗하고 빼어나다"고 묘사했다. <석담일기>에 따르면 선조는 학문을 즐겨 웬만한 학자들보다 학식이 높았다. 명종도 하성군(선조의 왕자 시절)을 볼 때마다 "덕흥(선조의 친부, 명종의 이복형)은 복이 있도다"라고 말하며 부러움을 감추지 않았다. 선조는 '도학군주道學君主'를 자처하면서 경연에 나오기를 즐겼다. 경연에서 던지는 질문이 날카롭고 깊이가 있어 강관들도 강의를 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박순은 시강하고 나오면서 "임금은 정말 영명한 군주"라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고 <석담일기>는 서술했다.

 

 

반석평은 재상가의 노비였다

유몽인의 <어우야담>은 반기문 전 UN 사무총장의 조상으로 유명한 노비 반석평의 일화도 소개한다. 반석평은 재상가의 노비였다. 비록 신분은 천했지만 성품이 바르고 영특했다. 재상은 그 재주를 아껴 자신의 아들들과 함께 글을 가르쳤으며 반 씨 성을 가진 부잣집에 입양시켰다. 반석평은 과거에 합격해 벼슬이 정2품 지충추부사에 이르렀다.

 

반면, 재상집은 재상이 죽은 뒤 몰락한다. 반석평은 재상의 자식들을 거리에서 만나자 마차에서 내려 절을 올렸다. 반석평은 그러면서 나라에 글을 올려 국법을 어기고 벼슬에 오른 죄를 스스로 실토하면서 처벌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조정에서는 그를 오히려 의롭게 여겨 후하게 장려하고 국법도 파기했다. 이에 대해 유몽인은 아래와 같이 지적했다. 지금은 그렇지 않은지 곰곰히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나라의 인재는 중국의 천분의 일에도 못미치는 데도 이들 가운데 신분이 천한 자는 벼슬을 못하게 견고하게 막고 있으니, 이는 사대부들이 편협하고 배타적이기 때문이다"

 

 

낮에는 존경받는 정승, 밤에는 희대의 호색한

묵재 홍언필(1476~1549년)과 인재 홍섬(1504~1585년)은 '부자父子 영의정'으로 명성을 떨쳤다. 인종 때 영의정을 지낸 묵재 홍언필은 재물을 멀리한 원칙주의자였다. 자식들조차 옷을 갖추지 않고서는 만나지 않을 만큼 법도를 엄격히 지켰다. 선조 때 영의정을 3번이나 중임한 아들 홍섬 역시 경서에 밝았으며 가풍을 이어받아 검소하기까지 해 뭇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그런데, <고금소총>에는 이들 부자의 전혀 다른 모습이 소개된다. 호색한好色漢인 홍섬은 여종들과 무분별하게 어울렸다. 한여름 밤 여종들이 방에 흩어져 자고 있었는데 그는 알몸으로 자신의 방에서 몰래 나와 평소 눈여겨보았던 여종을 찾기 위해 여종들의 방을 살금살금 기어다녔다. 인기척 소리에 잠이 깬 아버지 홍언필이 그 광경을 지켜봤다. 그리고 "아들이 장성한 줄 알았더니 이제 막 기어가는 것을 배운 모양이구나"라고 소리쳤다. 깜짝 놀란 홍섬은 놀라 달아났다. 색을 밝히는데 벼슬이 무슨 소용 있겠는가. 지금도 그렇지 않은가 말이다.

 

 

모자의 나라에 사는 사람들

 

한국드라마가 넷플릭스와 손을 잡고 전세계를 대상으로 동시 개봉한 사극형 좀비물인 <킹덤 시즌1>은 국내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반응이 뜨거웠다. 드라마는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뜻밖에 해외팬들의 반응은 극중 등장인물들의 다양한 모자에 주목한다는 반응이 있었다. 당시 사람들은 신분차별이 명확했기에 사용하는 모자도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가히 조선은 '모자의 나라'였다. 식사를 할 때도 겉옷은 벗더라도 모자만은 반드시 썼다. 그런데 은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다. 이덕무의 <앙엽기>의 한 대목이다. "갓의 폐단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나룻배가 바람을 만나 기우뚱거릴 때 조그마한 배 안에서 급히 일어나면 갓 끝이 남의 이마를 찌르고 좁은 상에서 함께 밥을 먹을 때에는 남의 눈을 다치게 하며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는 난쟁이가 갓 쓴 것처럼 민망하다. …(중략)… 역관들이 연경에 들어갈 때 요동 들판을 지나가다 비를 만나면 양태는 파손되어 달아나고 모자만 쓰고 가니...."

 

모자를 중시하는 풍습이미 고려 때도 존재했다. 송나라 사신 서긍의 <고려도경>은 "고려인은 모자를 쓰지 않은 맨머리를 죄수와 다름없다고 수치스러워했다. 무늬가 들어간 비단 재질의 두건을 소중히 여겨 두건 하나의 값이 쌀 한 섬에 달했다. 가난한 백성은 이를 마련할 길이 없어 죽관竹冠을 만들어 썼다"고 기록했다. 풍습은 생활양식이기에 폐해도 적지 않았던 것이다. 

 

 

건강식으로 평가받는 한국의 쌈

 

드라마와 K-POP으로 촉발된 '한류'라는 문화 코드가 이젠 한국음식, 한복, K뷰티 등으로 확산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문화란 국경이 없는 무형의 자산임에 틀림없다. 이미 우리나라의 사료에 따르면, 중국의 사신들은 한반도로 다녀가는 걸 선호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물 좋고, 공기 좋고, 맛있는 음식을 대접받을 수 있으며, 금수강산으로 풍치도 뛰어났으니 말이다. 

 

세계인들로부터 열광적인 반응을 얻고 있는 한국인의 은 독창적이면서도 건강에도 좋은 식품이다. 우리의 쌈 문화는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상추는 쌈 문화의 대표주자이다. 상추라는 말은 채소를 날 것으로 먹는다는 뜻의 '생채生菜'에서 유래한다. 고구려인들이 상추를 즐겨 먹었다고 한다. 한치윤의 <해동역사>에는 고구려의 상추씨가 중국에서 인기 절정이었다고 서술한다.

 

"고려국 사신이 오면 수나라 사람들이 채소 종자를 구하면서 대가를 후하게 쳐줘 이름을 '천금채千金菜'라고 했는데 지금의 상치다. …(중략)… 고구려 사람들은 생채로 밥을 싸 먹는다"

 

 단원의 <풍속도첩> 중 '점심'

 

 

언더우드 부인의 조선 체험기

 

릴리어스 호턴 언더우드(1851~1921년)는 자신이 모셨던 명성황후고종을 비롯한 여러 왕실 인물들의 비화를 소개한다. 그녀는 기독청년회YMCA와 연세대학을 설립한 선교사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의 부인이자 명성황후의 주치의였다. 사실 그녀는 조선인들에 대해 무한한 애정을 드러냈다. 이는 그녀의 저서 <상투튼 사람들과 한께한 15년>(1904년)에 소개되었다.

 

"조선인은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노동자이다"

 

고종 32년(1895) 위세를 떨치던 콜레라가 잠잠해지던 10월 8일, 경복궁에서 엄청난 참극이 발생한다. 그날 새벽 언더우드 부인은 대궐에서 들리는 총소리에 불길한 징조를 느꼈다. 그리고 왕비가 죽었다. 공격 부대는 총을 쏜 뒤 아무런 저항 없이 대궐 안으로 쳐들어갔다. 의화군(의친왕)이 총소리를 듣고 도망치자고 왕비에게 간청했지만, 대비를 홀로 남겨두고 갈 수 없다면서 의화군의 청을 거절했다. 그러자 정병하"두 분 전하(고종, 명성황후)는 안전할 것"이라고 안심시켰다. 언더우드 부인은 정병하를 가리켜 "천한 사람이 왕비 덕에 출세하고 큰 은혜를 입었는데 의리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어 암살자의 하수인이 됐던 것"이라고 했다. 적의 무리는 가련한 왕비를 찾아내 찔러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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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공부 - 나이 듦에 대한 희망의 여정
토마스 무어 지음, 노상미 옮김 / 소소의책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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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이가 든다는 말을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더 사람이 되고 점점 더 자신이 된다는 의미로 사용한다. 나는 치즈와 와인을 떠올린다. 어던 것은 그냥 시간이 지나면 좋아진다. 그런 것들은 준비가 될 때가지 함쪽에 가만히 두면 된다. 그럼 시간과 더불어 보이지 않는 내부의 연금술이 작용해 맛과 향을 부여하면서 좋아진다. - '서문' 중에서

 

 

점점 더 사람이 되자

 

이 책의 저자 토마스 무어세계적인 영성 지도자이자 심리치료사다. 그의 저서 <영혼의 돌봄>은 뉴욕타임스에서 46주 연속 1위를 기록한 베스트셀러였며, 그밖에도 <영혼의 종교>, < 섹스의 영혼>, < 영혼의 오푸스, 일의 즐거움> 등 스물네 권의 책을 썼다. 그중 세 권은 '더 나은 삶을 위한 도서상'을 수상했다. 또한 융 심리학, 원형 심리학, 신화, 상상력, 예술 분야에서 많은 글을 발표해왔다.

 

그의 주요 경력을 살펴보면, 한때 수도사였고 음악가였으며 대학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심리치료사가 되었다. 열세 살 때 집을 떠나 수도원 생활을 시작했고 드폴 대학교에서 음악과 철학을 접했으며 미시간 대학교에서 음악학 석사를, 윈저 대학교에서 신학 석사를, 시러큐스 대학교에서 종교학으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자신만의 철학을 갖기 시작하면서 그는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를 들여다보았고 많은 사람들이 맞닥뜨리는 삶의 부정적인 요인들도 면밀히 분석했다. 그 결과 그의 글과 책들에서 꾸준히 언급되는, 자기 내면에 잠자고 있는 영혼을 일깨우고 영적인 삶의 길을 찾는 문제로 귀결되었다. 현재 그는 영성, 심리 치료, 생태학 등을 주제로 활발한 강연 활동을 펼치고 있다.

 

나이로는 분명 노인인데도 세상과의 상호작용은 여전히 미성숙한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공감도 사회도 알지 못한다. 타인에게 가슴을 열 줄도 모른다. 어린 시절에 생긴 분노나 힘든 감정을 계속 붙잡고 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많은 경험을 해도 더 이상 성장하지 않는다. 결코 허물을 벗지 못한 애벌레 상태로 머물기 때문이다. 해는 바뀌지만 이들의 나이는 들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 나이를 잘 먹으려면 경험을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경험을 받고 변해야 한다. 감화를 받지 않고 인생을 산다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의식도 못하고 생각도 하지 않게 될 것이다. 따라서 영혼을 키우지 않으면 우리들은 나이가 들지 않는다. 비록 활동적이라 해도 자신을 둘러싼 세상에 대한 깊은 인식과 연결되지 못한다. 진정으로 나이가 든다면 깊은 맛을 보게 되므로 영혼의 선물을 발견할 것이다. 그러면 나이가 드는 것이 즐거운 경험이다. 

 

 

 

 

나이 드는 단계

 

나이 드는 단게

 

1. 불멸의 느낌

2. 나이 듦의 첫맛

3. 성인으로 자리 잡음

4. 노년으로 이동

5. 세상만사 순리대로

 

태어나서 25년 가량은 나이 생각을 별로 하지 않으며 끝을 상상하지도 않는다. 그러다 젊음이 지나가버리면 그 첫맛은 일종의 충격이다. 그다음 단계는 몇 년이 걸리는 점진적 과정으로 인생의 틀을 잡고 어엿한 한 인간이 되는 시기이다. 네 번째 단계는 이제 더 이상 젊지 않다는 사실을 서서히 깨달으며 많은 변화에 적응해야 하는 시기이다.

 

마지막 단계에 이르면 노년을 맞춤 외투처럼 걸칠 수 있다. 그때에는 자신이 어른임을 인정하게 된다. 이 단계는 어찌 보면 불가사의하다. 나이를 잊고 육체적 문제들을 있는 그대로 무덤덤하게 처리하면서 판단이나 다른 제약에서 벗어나게 된다. 인생과 나이 먹는 일에 대해 보다 신비롭게 접근하게 되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는 별로 신경 쓰지 않게 된다.

 

40대 중반인 저자의 동료가 스스로 나이 들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아차리게 되었는지 이야기해주었다. 인쇄물을 읽으려면 팔을 쭉 펴서 읽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마치 작은 비극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그 이야기를 했다. 사실 그것은 첫맛의 경험, 젊음에서 빠져나와 더 큰 시간 감각과 인생의 호弧에 대한 자각 속으로 들어가는 충격적인 경험이었던 것이다. 인생의 이 중대한 변화, 나이 들고 있다는 이 자각은 처방전을 조정하거나 독서용 안경을 구입하는 일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사소해 보여도 깊이 들여다보면 이런 순간들은 진정한 통과의례이다.

 

나이를 먹는 것은 그저 이 지구상에서 몇 년 살았는지에 대한 햇수를 더하는 것이 아니다. 나이를 먹게 되면 진지하게 인생에 임하며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또한 이것은 세숼 속에서 젊음의 희망과 야망이 가치 있는 경험과 뒤섞이는 것이다. 한 인간의 타고난 재능과 잠재력이 미묘한 뭔가가 되는 과정이다. 심리학자 은 이를 '개성화'라고, 영국의 천재 시인 키츠'영혼 만들기'라고 불렀다.

 

 

특정 원료를 다루는 법

 

살면서 경험했던 것들을 반성할 때 우리들은 되돌아보며 자신을 과거에 놓는다. 과거는 현재를 유의미하게 해주는 이미지와 이야기를 쌓아 놓은 저장고이다. 물론 고통이 연상되어 과거가 두렵기도 하지만 우리 모두는 생각보다 강해서 이것이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어떻게 되돌아보며 반성하는가? 열린 대화를 통해 반성을 한다.

 

융은 영혼을 만들거나 원료를 처리하는 과정에 연금술의 이미지를 사용했다. 원료 자체는 라틴어로 '프리마 마테리아'라고 부른다. 여기서 프리마는 '처음'을 의미한다. 달리 말하자면 '원시原始' 혹은 '날것'이라고 뜻할 수 있다. 보통 우리들은 이를 '원료'라고 말한다. 연금술사는 실제 원료를 모아서 유리 용기에 넣고 다른 물질과 혼합해서 가열하고 관찰했다. 이는 바로 우리가 기억과 생각들로 행하는 일이다. 

 

심리 치료는 영혼의 재료에, 즉 기억과 관념과 감정과 관계와 성공과 실패에 초점을 맞추는 매우 강렬한 대화 형식이다. 이 모든 것을 반성이라는 용기에 넣고 강렬한 분석으로 가열할 수도 있고 변형할 수도 있게 된다. 우리들은 인생의 재료를 담아 관찰할 수 있는, 그리고 감정적 열기와 변형을 촉진할 수 있는 용기들이 필요하다.

 

오늘날에는 반성적인 삶을 사는 데 관심을 가진 사람이 많지 않은 것 같다. 현대의 삶은 행동이나 행동 계획에 전념한다. 앞으로 더 나은 행동을 하기 위해 우리가 한 일을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반성이 아니며 진실로 과거를 돌아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과거를 이용하는 것이다. 반성은 평가나 계획에 도움이 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반성은 그 자체로 우리의 존재 상태를 심화시킨다. 우리는 반성을 통해 더 사려 깊은 사람이 되고, 그러한 변화는 나이 듦의 일부이다. 

 

 

건설적인 힘으로서의 분노

 

나이 들수록 화가 점점 심해지고 빈번해자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면 이렇게 해보라고 저자는 권한다.

 

1. 화를 들여다보자.

2. 과거를 들여다보자.

3. 늘 강해야 한다.

4. '영혼의 힘'과 접촉하자.

5. 분노는 긍정적으로 무엇을 원할까?


분노라는 감정에 대해 우리들은 일반적인 편견, 즉 좋지 않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 이유는 단지 유쾌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꼭 그렇지 않다. 분노는 좋은 목적에 유익할 수 있으며, 분노를 긴장의 타당한 표현으로 이해한다면 노인을 상대할 때 분노를 좋지 않게 여기는 선입견을 덜 갖게 될 것이다. 노인들은 자신들을 형편없이 여기는 세계를 향해 분노를 표출할 힘이 필요하다.

 

먼저 전반적으로 분노를 긍정적이고 좋은 감정으로 생각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분노를 포함해 모든 감정은 과장되거나 극단적이거나 부정적으로 표현될 수 있다. 잠재적으로 모든 감정은 문제가 된다. 그렇다고 해서 그 자체가 나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분노는 뭔가가 잘못되었을 때를, 그리고 나서서 불만을 효과적으로 표현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 분노를 보여주는 이 특별한 영혼의 힘에 나이 제한은 없다.

 

 

외로움과 혼자 있는 것

 

나이 들면서 우리는 유연성과 회복력을 요구하는 통로들을 통과한다. 우리는 잃고 얻으며 또다시 잃는다. 저자가 책에서 계속 반복하는 주제는 나이 듦이란 세월이 흘러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인생에 기꺼이 마음을 열고 그 초대를 받아들여서 몇 번이고 변하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 많은 변화가 모여 지켜본 인생이 아니라 살아온 인생이 된다.

 

혹은 미국의 작가이자 사상가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월든>에서 '나는 생각하며 살고 싶어서, 오직 인생의 본질적인 사실만 바라보며 인생이 가르쳐줄 것을 배울 수 있는지 알아보고 싶어서, 죽는 순간이 왔을 때 내가 살지 않았다는 사실을 발견하지 않기 위해서 숲으로 왔다'고 말했던 인생이 된다. 삶이 우리를 나이 들게 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삶을 환영하고 그 연금술에, 영혼의 화학적 성질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그 꾸준한 변화에 마음을 열었기 때문이다.

 

'나이 먹는다'는 말을 세월의 흐름이 아니라 시간이 지날수록 잘 '나이 드는' 와인과 치즈에 관한 말로 이해하면 좋겠다. 이들은 나이 들수록 더 좋아지며, 심지어 나이를 먹음으로써 특별한 가치를 지닌다. 그렇다. 인간도 비슷한 방식으로 나이 들 수 있다. 자신의 경험에 의해 변하면서 더 진짜가 되고 더욱 풍미가 있어지는 것이다. 

 

 

그 모든 작은 죽음들

 

평생 죽으면서 사는 방법 증 하나는 인생에 늘 따르는 '작은 죽음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상실, 실패, 무지, 좌절, 질병, 우울증 같은 것을 말이다. 이런 경험들은 어떤 의미에서 반反생명적이다. 삶의 과정을 중단시키거나 지연시킨다. 우리들은 그런 경험을 피하고 극복하고 통과하고, 결국엔 그런 경험에서 자유로운 삶을 살고자 한다. 또 다른 방법은 그런 경험에 굴복하지 않으면서 이 역시 인생이라고 생각하고 수용하는 것이다.

 

살다 보면 죽음끝남과 실패의 형태로 자주 찾아온다. 나이를 잘 먹는다는 것은 활기찬 인생의 과정에 죽음도 포함시키는 것이다. 더 큰 의미에서 죽음은 사람으로서 우리에게 깊이를 부여한다. 그러나 이 은유적 죽음은 우리 삶의 끝을 위한 실제적인 준비이다. 나이를 잘 먹어서 죽음의 역학에 익숙해지면 병에 걸리거나 오래 살아 실제로 죽음이 닥치고 있음을 알게 되어도 기겁하지 않게 된다. 심지어 노년을 환영하고 귓가에 들리는 죽음의 속삭임을 반길지도 모른다. 죽음은 우리의 일부였기에 다가오는 죽음이 삶을 강렬하게 만들어줄 것임을 아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으로 살아라

 

나이 듦을 다루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 사는 것이다. 나이 들지 않았으면 어떨지 상상하면서 나이 듦을 피하지 말자. 자신보다 형편이 나은 젊은 사람 생각도 하지 말자. 다시 젊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지 말자. 나이 듦의 부정적인 측면들을 부정하지도 말자.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 그리고 자신의 나이대로 살자. 잘 숙성된 명품 와인이나 치즈처럼 말이다.

 

"노인이라는 낯설고 무서운 강을 품위 있게 건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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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드콜 - 행운의 문을 여는 열쇠
이계준 지음 / 더미디어그룹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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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대를 향해 걸어가고 있다. 장내를 둘러보니 부산한 움직임이 감지된다. 다음 패널을 준비하기 위해 음향 설비를 황급히 정비하는 주최 측 직원들, 무대 계단을 내려오는 이전 패널 토론자들, 그들에게 박수를 보내는 수많은 청중들. 하지만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나는 숨을 크게 내쉬고, 혼잣말을 반복하며 나 자신을 세뇌하려고 한다. - '프롤로그' 중에서

 

 

연봉을 150배로 키운 사나이

 

책의 저자 이계준은 서울 출생으로, 연세대학교 건축공학과 졸업한 후 미국 콜롬비아 대학에서 경영학 석사(MBA)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뉴욕 소재 사모 펀드의 파트너이자 아시아 대표로 재직 중이다. 미국에서는 콜드 콜(cold call: 물건 등을 팔기 위해 임의로 사람들에게 연락하는 것)이 여전히 먹지만 한국에서는 성공 확률이 낮다. 그럼에도 그는 콜드콜을 오히려 "행운의 문을 여는 열쇠"라고 정의한다.

 

그에게 콜드콜은 인생 여정의 순간순간을 잇는 중심축이었고, 매번 뜻한 바를 이루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던 것이다. 즉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콘트리트 호스를 잡던 건축기사가 수십억 연봉의 미국 투자사의 고위임원이 된 비결은 단 한가지 바로 콜드 콜이었다. 이는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사전 약속없이 직접 전화해 자신과 상품에 대해 소개하는 것을 말하는데, 미국에선 일반화된 세일즈 기법이지만, 우리나라에선 콜센터 말곤 좀처럼 사용하지 않는 방법이다.

 

 

 

 

건축학도의 선택

 

자기 자신에게 감춰진 보물을 발견하는 일이야말로 새로운 일에 도전할 수 있는 터닝포인트가 될 것이다. 저자는 스스로의 열정이 바로 '끊임없이 도전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인생을 사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고교 3학년 때인 1996년 여름부터 친구의 권유로 권투를 시작, 6년 넘게 해왔다.

 

그는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작품에 심취한 적이 있었다. 또한 건축물에 내포된 건축가의 인생철학까지도 좋아했었다. 세계 건축계의 거장으로 꼽히는 일본인 건축가는 삼류 권투 선수 출신이다. 이런 영향을 받은 저자는 일찌기 권투에 빠진 듯하다. 당연히 그는 권투 산수가 아니라 건축가가 되는 게 꿈이었던 것이다. 

 

잠 못 이루는 수많은 밤에도 불구하고 그의 건축 설계 수업의 학점은 늘 B였다. 아마도 예술가적 기질과 창의력이 부족했을 터이다. 하지만 그의 성향은 열심히 노력하면 언젠가는 결실을 맺는다는 소신파였다. 마침내 그는 졸업 설계 수업에서 A학점을, 그리고 졸업 작품전 우수상을 거머 쥐었다. 이듬해 '대한민국 건축 대전'에 입선함으로써 건축가의 꿈은 더욱 확고해졌다. 

 

 

문전 박대

 

1999년, 그는 대학을 졸업했다. 당시 한국의 경제는 IMF 외환 위기 이후라 대부분의 기업체들은 대졸 신인 사원 채용 규모를 확 줄이고 있었다. 졸업 동기들은 굴지의 대기업 건설사와 대형 건설사에 취직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홀로 남겨진 저자는 학교에 나가 취업 게시판을 이 잡듯이 뒤졌다. 하지만 그에게 기회가 찾아오지 않자, 군 입대를 고민할 수밖에 없엇다.

 

그래서 병무청에 들러 병역 특례 취업에 대해 문의를 했다. 돌아온 대답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격이니 일찌감치 포기하라는 조언이었다. 일단 병역 특례 업체로 지정된 건설사 리스트를 구해서 대형사들로부터 하나씩 취업 여부의 가능성을 노크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문전박대하기 일쑤였다.

 

'그래도 하던 전화는 끝까지 해 보자'

 

마침내 이력서를 보내 보라는 회사가 두 곳 있었다. 대기업 계열사와 최하위급 중소건설사였다. 이는 그가 전화를 걸었던 총 130여 개 기업체 중 약 1.5%에 해당하는 케이스였다. 누군가 '성공이란 99%의 실패에서 나온 1%의 성취'라고 말했다. 기회의 문을 연 것 자체를 성공으로 본다면, 그는 '98.5%의 실패에서 나온 1.5%의 성취'라는 역사적 쾌거를 이뤘다.

 

 

결정적 전환점

 

2005년 초여름, 그는 부동산 컨설팅사에 입사한 지 1개월 정도 되던 날, '화이자 프로젝트'에 참여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당시 화이자는 서울 광장동 주택가에 본사와 공장을 소유하고 있었는데, 시설이 낡고 협소해서 추가로 직원을 채용할 수 없을 정도의 공간이었다. 사업 확장을 위해서 최우선적인 과제가 바로 신사옥 매입이었던 셈이다.

 

한국 화이자와 미팅을 가졌다. 중년의 터키 출신 사장은 필수조건을 제시했다. 을지로, 테헤란로, 여의도 등지와 같은 고층 건물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추가로 필요한 사무 공간 면적을 산출해 주었다. 이에 저자는 바로 작업에 착수했다. 소위 브로커들을 접촉해 오피스 매물 정보를 취합했다. 한편, 화이자는 매주 경과상황을 문의해왔다.

 

추후에 인지한 내용이지만, 화이자는 2년 동안 이 건물 저 건물을 잇다라 '간만 보고' 결정을 못 내렸다는 것이었다. 화이자가 분명 중요한 고객사인 건 맞지만, 이렇게 시간을 허비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어차피 화이자 프로젝트는 안 될 일이었다. 하지만 저자는 낙담하지 않았다. 다들 외면한 프로젝트였다니 그의 실패는 오히려 희망의 상징이었다.

 

 

위험한 자신감

 

저자는 스스로 자랑스러웠다. 지난 1년여 동안 뛰어다닌 끝에 화이자 사옥 문제를 결국 해결해 냈기 때문이다. 이 공로로 회사에서 그의 위상은 과장에서 부장으로 초고속 승진하는 영예를 안았다. 이제 본업이던 리서치 일은 신입 직원에게 넘기고, 투자 자문 팀을 신설했다. 상업용 부동산을 맴하는 일에 전력투구하게 되었다. 주로 매도편에서 일을 했다.

 

실력있는 사람에게는 때때로 불건전한 인물들이 대시하기 마련이다. 저자도 예외가 아니었다. 상업용 건물 매각 입찰 때 유리한 조건을 얻고자 그에게 접근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들은 암흑의 세력들로 그에게 거액의 약속어음을 미리 대가로 제안하면서 자신들의 낮은 입찰액을 수용해 주도록 압박을 가해 왔던 것이다.

 

과연 어디서부터 발을 잘못 들였던 것일까. 처음부터 짜여진 각본이 있었던 걸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어둠의 세계로 끌려들어 간 것 같은 이상한 기운을 떨쳐 낼 수 없었다. 그들의 부당한 요구를 들어줘야 할까 고민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신변에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암시가 있었다. 그렇다고 자존심과 양심을 버리고 싶지 않았다. 이후 그는 녹음기로 그들의 협박을 일일이 녹음 파일에 저장하면서 강경한 태도로 대응했다.

 

 

 

 

2007년 가을, 그는 애경에 입사했다. 부동산 사업을 그룹의 신 성장 동력으로 추진하는 애경이었으니 그에게는 딱 맞는 궁합이었다. 이후 그는 생전 처음으로 미국을 방문하는 기회를 얻엇다. 선진 유통 시설의 벤치마킹을 위해서였다. 동료들과 함께 회사 사장님을 모시고 출강을 떠났다. 로스앤젤레스, 라스베이거스, 시애틀 등지로. 애경 수원 쇼핑몰은 한국 최고수준의 '쇼핑 허브'로 탈바꿈했다. 실천은 진통과 역경을 수반한다. 그러나 끝내는 성공으로 귀결한다.

 

그의 야망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유학길에 올랐다. 콜롬비아 비즈니스 스쿨에서 MBA를 취득하고자. 경영에 대한 정규 교육과 함께 금융과 부동산 관련 이슈 등에 대해 견문을 더욱 넓혀야 겠다는 자신의 판단에 따른 결정이었다. 이후 그는 아무도 가지 않은 길에 도전했다. 어차피 위험이란 말 속에는 기회도 공존하기 때문에. 미국 부동산의 매수에 한국 자본을 연결하는 일을 위해 그는 '콜드 콜'을 이어나갔다.

 

 

13년만에 연봉을 150배로 키우다

 

2015년 4월, 미국 뉴욕 맨해튼의 한 사무실에서 파티가 벌어졌다. 4억달러(약 4500억원) 규모의 자금 유치를 성사시킨 기념으로 마련된 '클로징(거래종결) 파티'였다. 이 자리에 13년 전 건축기사가 주인공으로 서 있었다. 회사 중역들은 가장 큰 공을 세운 그를 '영웅Hero'이라 치켜세우며 슈퍼히어로 '캡틴아메리카'의 방패를 선물했다.그의 연봉은 약 150배 급등했다. 그의 스토리가 궁금하다면, 책을 펼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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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딸들 1
엘리자베스 마셜 토마스 지음, 이나경 옮김 / 홍익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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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은 몇몇 매머드 사냥꾼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처럼 아주 대단한 내용은 아니다. 이야기의 끝에 가서 큼직막한 고깃덩어리를 얻는 내용은 더욱 아니다. 내가 하려는 이야기에 결혼 예물은 나오지만 여자들을 훔쳐가는 이야기는 아니고, 그 예물을 놓고 벌이는 말다툼은 나오지만 전쟁 이야기는 아니다. - '프롤로그' 중에서

 

 

여자들이 겪는 삶의 일생

 

이 소설의 작가 엘리자베스 M. 토마스논픽션과 소설을 넘나들며 동물과 인간의 문화를 관찰하고 생각하고 쓰는 데 평생을 보냈다. 그녀는 미국 보스턴에서 태어나 스미스 여자대학과 래드클리프 여자대학에서 영문학과 인류학을 공부했으며, 1950년대 초 문화인류학자인 아버지를 따라 아프리카 칼라하리사막으로 이주하여 원시 상태에 머물고 있던 그곳 사람들의 삶을 연구했고, 그곳 원주민 인 부시먼을 주인공으로 <무해한 사람들(The Harmless People)>을 발표하여 소수인종에 대한 관심을 일깨웠다.

 

그 뒤 문화인류학적 관점에 기초한 여러 권의 논픽션을 출간하다가 부시먼들과 함께 살며 체험한 깨달음을 시베리아 공간 에 투영시켜 소설 <세상의 모든 딸들(원제; Reindeer Moon)>을 발표하여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가 되었다. 대표작품으로는 <The Animal Wife>, <The Old Way>, <The Tribe of Tiger>, <Warrior Herdsmen>, <A Million Years with You> 등 다수가 있다.

 

인류가 출현해 지구상에서 정착을 시작하던 구석기시대를 배경으로, 세상의 모든 여자들이 먼 과거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어떤 행로를 거쳐 지금 이곳에 와 있으며,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이 시간의 길 위에 어떤 헌신을 통해 어떤 발자국을 남겼는지를 슬픈 서사로 보여 준다. 즉 2만 년 전에 살다간 주인공 야난의 삶을 후손인 우리들에게 보여준다.

 

세상의 모든 여자들이 따라갈 수밖에 없는 숙명의 궤적을 추적하고 있는 데, 소설은 여자이기 때문에 반드시 겪어야 하는 일들, 운명적으로 받아야 하는 고통, 남몰래 감춰야 하는 눈물과 슬픔 뒤의 행복 등 여자의 삶에 관한 모든 것을 담고 있으면서도 여자의 절망을 말하는 비극적 스토리가 아니기에 더욱 감동이 크다.

 

 

 

 

구석기시대를 살았던 우리 인간의 선조들은 달의 모양을 보고서 시간의 변화를 읽을 수 있었고 이를 기준으로 일생을 살았다. 2만년 전 후기 구석기시대, 현재의 시베리아 지방을 근거지로 삼아 살아가던 사람들은 1년을 13개월로 나누고 있었다. 즉 3월의 봄을 기점으로 '얼음을 녹이는 달', '월귤의 달', '망아지들의 달', '여행의 달', '파리 떼의 달', '매머드의 달', '노란 잎의 달', '순록으 달', '눈보라의 달', '오두막ㅇ의 달', '굶주림의 달', '포효의 달', '버려징 순록 뿔의 달'의 순으로 이어진다. 이 소설의 원제목이 '순록의 달'이니 이는 10월 정도에 해당한다. 

 

소설의 주인공은 야난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성이다. 나중에 그녀의 가족은 모두 죽고 어린 동생 메리와 둘 밖에 남지 않는다. 그래서 그녀가 겪게 되는 삶의 질곡이 바로 여자이기에 어쩔 수 없이 그녀의 엄마처럼 살게 된다는 그런 내용이다. 이야기는 차르 강 북쪽 기슭에서 가정 높은 둔덕에 자리잡은 그레이랙의 오두막집에서 시작된다. 이 집은 다른 곳과는 달리 굴뚝이 2개나 될 정도로 크고 널찍했다. 그레이랙과 그의 형제들이 한창 젊었을 때 이 집을 지은 것인데, 이렇게 규모가 큰 것은 그만큼 세력이 강하다는 걸 의미한다. 즉 오두막 바깥의 초원에 형성된 사냥터를 소유하고 있는 실력자이다. 

 

야난의 아버지 아히그레이랙의 처남이다. 아히의 두 누이(틸, 아이너)는 그레이랙의 아내이다. 아히도 부인이 2명(래프윙, 요이)인데, 주인공인 야난과 동생 메리는 래프윙이 낳은 딸이다. 아무튼 야난이 살고 있는 오두막집 부족들은 여름 순록을 따라 이동한다. 사냥터는 풀의 강과 더 멀리 떨어진 불의 강 유역이다. 그레이랙은 이번 사냥은 불의 강으로 간다고 지시했다. 그 이유는 결혼할 여자 셋을 얻기 위해서이다. 야난은 궁금했다. 왜냐하면 오두막집에서 아내가 없는 성인은 4명(티무, 엘로, 스틱, 프록)이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야난은 엄마로부터 자신은 이미 티무의 정혼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원시 부족의 경우 사람이 동물보다는 한 단계 발전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동물적인 생리적 습성을 떨치지 못하고 있었다. 부족의 남자들은 여자의 몸을 탐했다. 오두막집 부족에도 이런 사건이 생겼다. 티무가 요이 이모와 몸을 섞는 일이 생기면서 야난의 아버지는 오두막집의 수장인 그레이랙과 불편한 관계가 발생하자 이곳을 떠나기로 결정했다.

 

새로운 거처를 마련하려고 이동하던 중, 엄마 래프윙이 길에서 출산하다가 사망하고 핏덩이 동생도 며칠 후 먹지 못해 죽고 만다. 아버지 아히도 손을 다쳐 팔이 썩어가는 상황이라 사냥도 할 수가 없는 상황을 겪다가 결국 죽는다. 마침내 남겨진 가족은 달랑 야난과 동생 메리 둘 뿐이다. 어머니가 숨이 끊어지는 상황에서 야난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떠올랐다.

 

"사람은 이렇게 살고, 이렇게 죽는 거란다. 세상의 모든 딸들이 나처럼 이렇게 살았어. 호랑이를 따르는 까마귀처럼 남편을 따르고, 아이를 낳고, 그렇게 사는 법이란다. 야난, 너도 언젠가는 어머니가 되겠지. 세상의 모든 딸들이 결국엔 이 세상 모든 이의 어머니가 되는 것처럼... 너는 티무의 아내로, 메리는 화이트 폭스의..."

 

이후 야난은 생존을 위한 처절한 투쟁을 이어간다. 아버지가 남긴 무기로 사냥에 나서고, 풀뿌리를 캐며 동생과 함께 헤어졌던 오두막집 일족들을 찾아 나선다. 이처럼 힘든 삶의 여정을 거치면서 야난은 전보다 훨씬 강인한 여성으로, 성숙한 인간으로 변모한다. 마침내 부족과 만난 야난, 기쁘기만 할 줄 알았던 그녀의 눈에 부족의 남자들은 영 맘에 들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들은 아이나 여자들을 너무 쉽게 대하고 심지어 폭행까지 가했기 때문이다.

 

"야난, 너도 언젠가는 자라서 한 사람의 어머니가 되겠지. 남자가 고기를 지배하고 오두막을 지배해서 여자보다 월등히 위대 한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남자가 위대하다면, 여자는 거룩하단다. 왜냐하면 세상의 모든 딸들은 이 세상 모든 사람의 어머니이기 때문이란다"

 

야난은 어머니의 이 말을 불의 강으로 떠나기 전에 상기했어야 했다. 한 사람의 어머니로서 부끄럽지 않은 삶이야말로 여자에게 가장 소중한 가치임을 알아야 했고, 남자들의 독단을 욕하기 전에 여자의 삶이라 해서 결코 비루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야 옳았다. 남자와의 잠지리도 거부하고, 임신이나 출산은 더 더구나 원치 않았던 야난이었지만 결국 그녀도 자신의 어머니가 걸어왔던 그런 길을 걷고 만다. "난 엄마처럼 살지 않을거야!"라고 외치던 그녀가 말이다.

 

그렇다. 태곳 적부터 인간은 생존을 위해서 노동을 해야만 했다. 사냥하고, 곡식을 수확하고, 조개나 과일을 채취하면서 말이다. 어디 이뿐이랴? 신석기시대가 도래하면서 부족의 구성원들이 점점 증가함에 따라 오두막집을 너머 도시가 생기고 농업이 발전하면서 더욱 큰 노동력의 투입이 요구되었다. 인간의 수레바퀴는 이렇게 굴러가면서 여자의 위상과 가치는 점점 변하게 되었다. 딸 야난에게 어머니 레프윙이 남긴 유언은 이렇다.

 

"남자가 고기를 지배하고 오두막을 지배해서 여자보다 위대한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남자가 위대하다면 여자는 거룩하다. 왜냐하면 세상의 모든 딸들은 이 세상 모든 사람의 어머니이니까"

 

 

 

 

 

 

여자의 진정한 정체성은 무엇인가?

 

문화인류학자인 작가가 2만년 전에 살았던 야난을 현재로 소환해서 그때의 여성들 삶을 보여주면서 이 소설을 읽는 모든 독자들에게 여자의 진정한 정체성은 과연 무엇인가를 묻고 있는 셈이다. 며칠 전 '세계 여성의 날'이 지나갔다. 먼 옛날에 비하면 여성의 인권이 많이 향상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여성의 가치를 존중하지 않는 그런 곳들이 많다는 사실이 나를 숙연하게 만든다. 여성들에게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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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도록 팔고 싶다 - 억대연봉 안서현의 놀라운 세일즈 성공스킬
안서현 지음 / 이코노믹북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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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20년 동안 자기계발을 쉬지 않고 했고 단 한순간도 게으름 피우며 살지 않았다. 내 인생의 모토는 “막막할 때는 막! 막! 하자”인 만큼 100톤의 생각보다 1그램의 행동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열심히 하고 잘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온다는 말처럼 나에게도 내 지식과 경험을 나눠줄 수 있는 메신저로의 삶을 살게 되었다. 세일즈는 사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사업이다. 사람이 사람을 돈 벌게 해준다는 말은 결코 틀린 말이 아니다. 세일즈 기술을 제대로 배우면 인생의 성공을 거둘 수 있는 날이 반드시 오리라 확신한다. - '프롤로그' 중에서

 

 

억대매출의 세일즈 스킬

 

이 책의 저자 안서현은 탄광촌에서 딸 넷 중 막내딸로 태어나 어릴 적부터 무슨 일을 하든 굉장히 노력했음에도 성과가 잘 나오지 않아 자존감이 낮은 아이로 성장했다. 낮은 자존감을 높이고 열심히 하는 것은 의미가 없으니 잘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이후 20년 넘는 시간 동안 자기계발을 끊임없이 했고, 특별하게 살기 위해 세일즈를 선택했다.

 

에어로빅강사 일을 시작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으며 강원랜드 카지노 딜러로도 일했다. 이후 딜러 일을 과감하게 그만둔 후, 병원 관련 경력이 없음에도 성형외과 상담실장이라는 직업을 선택하여 한 달 동안 매출 1억 원 달성이라는 폭발적인 성과를 냈다. 현재 한국세일즈마케팅코칭협회 대표직을 맞고 있으며 세일즈 강의 및 SNS 마케팅 강의, 퍼스널 브랜딩 강의도 함께 병행하고 있다. 또한 세일즈기술과 매출증대 코치로 활동하고 있으며 최고 동기부여가로 강연을 통해서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다. 그 외에도 13년 동안 병원상담실장 경력으로 여성전문직종인 병원상담실장들을 양성하고 있다.

 

 

 

 

연애하듯 세일즈하라

 

세일즈를 하는 사람들은 누구라도 고객이 제품을 구입할 때 어떤 선물을 할지 고심이 크다. 특히, 특정 고객이 제품을 정기적으로 구입할 때면 그 부담이 더하다. 저자도 마찬가지였다. 개척 영업을 할 때는 첫 인사시 사탕을 하나씩 드렸고, 구매시에는 별도의 선물을 주었다. 이후 고객과의 인연이 깊어질수록 전보다 더 큰 감동을 주기 위해선 고심이 필요했다.

 

100만 원 이상 구입한 고객에게는 가족들이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패밀리레스토랑 상품권을 선물했다. 고객들은 화장품을 구입하면 대부분 컨설턴트들이 화장품 샘플을 주거나 화장품 중에 다른 것을 줬는데 이런 선물을 받으니 너무 신선하고 좋은 것 같다고 칭찬했다. 화장품도 사고 기분도 좋아지고 가족들끼리 같이 식사할 수 있는 시간도 보냈다고 좋아했다. 물론 화장품은 소모품이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일정 기간이 지나면 반드시 재구매를 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고객에 대한 선물도 끊임없이 연구했다. 

 

 

성공한 세일즈는 이유가 있다

 

'세일즈는 무엇을 판매하는가' 보다 '누가 판매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세일즈맨은 스스로가 고객에게 신뢰감을 주도록 노력해야 하며 작은 약속도 지키려고 노력해야 한다. 잘 되는 세일즈에는 무언가 특별한 게 있는 게 아니다. 고객과의 사소한 약속 하나도 철저하게 지켜야 하는 것이 기본이다. 약속을 지키는 것은 비즈니스의 근본이며 세일즈맨은 '신뢰'를 가장 지켜야 할 덕목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고객과의 처음과 끝을 좌우하는 것도 신뢰라는 점이다. 고객과의 신뢰를 저버리는 행동은 스스로를 망치는 행동이라는 것을 반드시 명심하자.

 

 

결국 사람이 재산이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중요한 것이 참 많지만 그 중에서도 사람이 아닐까 싶다. 사람을 중요시하는 사람은 대개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로 중요하게 여긴다. 인간관계란 상대적이므로 모든 사람들과 모두 가까이 지낼 수는 없지만, 관계가 좋다면 당장 간이라도 뻬줄 수 있을 만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려고 한다. 물론 이런 인간관계를 하루아침에 만들 수는 없겠지만 세일즈에 있어서는 반드시 고려해야 할 요소임에 틀림없다.

 

저자가 화장품 세일즈에 처음 나섰을 때 넉넉한 형편이 아니었다. 간절함이 컸기에 시작했지만 주변의 지인들에게 이를 알리는 게 너무나도 부끄러웠다. 즉 '시집 가더니 돈이 없어서 이젠 화장품 세일즈까지 하는구나'라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결혼생활 모습이 초라해 보일까 봐 친구들과도 연락을 하지 않고 지내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가족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마음도 간절했지만 엄마가 속상해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기에 이를 숨기고 싶었다. 당시 옆집에 살던 언니가 여유가 있는 편이라 화장품 세일즈를 시작했다고 문자를 보냈다. 답장이 왔다. 가장 비싸고 좋은 걸로 5개를 사겠다고 말이다.

 

그녀의 첫 세일즈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사실 세일즈는 지인 판매로는 한계가 있다. 가급적 시작 단계부터 마음에 상처를 받을 수 있으므로 이를 피하라는 조언들이 있는 편이다. 하지만 처음 세일즈에 나서는 사람들은 지인 판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그녀도 결혼 전부터 알고 지내던 지인들에게 화장품 세일즈를 시작했다고 알렸다. 흔쾌히 주문을 해주엇고, 아는 사람들까지 소개해 주었던 것이다. 사람이 돈을 벌게 해준다는 어른들의 말이 실감났다.

 

 

옳은 방법으로 세일즈하라

 

모든 고객들은 이미 알고 있다. 세일즈맨의 판매 마진을 말이다. 그래서 고객들은 세일즈맨에게 덤으로 더 많은 것을 요구한다. '나 때문에 돈을 버니까 당연히 그 일부를 돌려달라'는 식이다. 워낙 세일즈맨들이 많다 보니 서로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을 고객들은 결코 놓치지 않기 때문에 갈수록 요구사항이 심해진다.

 

고객에게 세일즈를 하려면 자신이 판매하는 상품과 스스로에게 항상 당당해야 한다. 고객과의 협상을 절대 두려워하지 말고, 고객에게 거절도 할 줄 알아야 한다. 고객과 많이 부딪치면 부딪칠수록 고객의 성향을 더 많이 알 수 있다. 그래야만 나만의 세일즈 능력으로 고객을 리드해 나갈 수 있다. 세일즈맨들은 고객에게 좋은 상품을 안내해 주는 비즈니스 파트너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고객과 협상하지 말고 고객에게 최상의 서비스로 설득을 하는 세일즈맨이 되어라. 세일즈맨들이여, 옳은 방법이 결국 이긴다.

 

 

꽂히는 나만의 언어를 만들어라

 

고객들을 만나고 실적으로 연결시키는 것은 '말'이 핵심이다. 즉 화술이 뛰어나야 하는 법이다. 말과 설득이 없는 세일즈는 세일즈가 아니다. 성공적인 세일즈를 하고 싶다면 먼저 고객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지에 대한 나만의 세일즈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고객을 설득하는 방법에 대해서 저자가 생각하는 정의는 '내가 당신에게 정말 필요한 것을 주려고 설명하는 것이다'라는 방식으로 설명해야 한다.

 

고객에게 설명만 늘어놓으면 오히려 헷갈리거나 독이 될 수 있다. 너무 장황한 설명은 고객이 힘들듯이 자신 또한 힘이 든다. 설명을 많이 하겠다는 욕심이 앞서다 보면 어디서 설명을 마쳐야 할지를 놓치고 만다. 그래서 이런 실수를 미연에 방지하지 위해선 '한 방에 꽂히는 나만의 캐치프레이즈'를 만드는 게 반드시 필요하다. 

 

 

설득하지 말고 선호하게 하라

 

저자는 성형외과에서 상담실장으로 근무할 때 고객들을 상담하는 업무를 맡아 진행하면서 자연스레 상대방을 설득하는 방법을 배웠다. 상대를 설득하는 방법엔 4가지가 있다. '말을 유창하게 잘한는 것', '고객의 말을 경청하는 것', '공감하는 것', '표현하는 것' 등이다. 10년 이상의 상담실장 경력이 갈수록 그녀를 유창한 화술로 변모시켰다. 이는 당연히 매출로 연결되었다. 

 

그녀의 기존 세일즈 방식은 노력이었지만 1인 창업의 세일즈 방식은 그녀를 알리는 브랜딩에 집중하면서 다시 만들어 가기 시작했다. 나 스스로를 스타로, 하나의 브랜드로 만들어 낸 것이다. 고객들은 그녀가 궁금하고 그녀가 가지고 있는 세일즈 방법을 배우고 싶어서 스스로 찾아왔다. 힘들게 설득하지 않아도 고객들은 그녀를 찾아오기 전에 이미 그녀에 대한 정보를 얻어서 왔기 때문에 그녀에 대한 선호도와 신뢰도도 가지고 있었다.

 

 

 

 

누구나 세일즈로 억대연봉자가 될 수 있다

 

이 책의 저자는 20대부터 세일즈를 시작해 성공을 향해 쉬지 않고 달려 성공담을 쓴 맹렬 여성이다. 그녀는 세일즈로 억대연봉이 되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된 노하우를 책에 담았다. 세일즈로 자신의 변화된 삶의 터닝포인트를 잡고 싶다면 이 책을 읽기를 권하고 싶다. 어차피 인생은 세일즈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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