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이기는 힘 - 그들은 어떻게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는가
이지훈 지음 / 21세기북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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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리더의 고민은 그리스 로마 고전에 등장하는 영웅, 정치인, 군인 등의 고민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함께 공부하던 리더들이 수천 년 전의 이야기에 웃고 우는 모습을 보면서, 케케묵은 고전의 어떤 면면이 저들의 공감을 자아내는지 궁금했다. 공감의 코드를 풀어낸다면 다른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고금의 고민을 병렬하고 비교함으로써 리더의 덕목에 대한 지혜를 입체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 '저자 서문' 중에서

 

 

위기를 넘어서면 성공의 기회가 보인다

 

책의 저자 이지훈 경제학 박사는 <조선일보> 경제부 금융팀장과 증권팀장, 경제부장을 거쳤으며, '위클리비즈' 편집장을 지냈다. 프리미엄 경제섹션인 위클리비즈를 통해 그는 전 세계 경영의 대가들을 인터뷰하고 글로벌 뉴스를 심층적으로 분석함으로써 우리나라 1% 오피니언리더들의 멘토로 자리매김했다. 현재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같은 학교 최고경영자과정 '혼창통 아카데미'의 주임교수로서 기업 CEO 및 임원진들에게 필요한 강의를 엄선하고 있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이야기를 전하는 탁월한 비즈니스 스토리텔러인 저자는 특히 현장과 체험을 중시하는 데, 시대의 흐름에 대한 예민한 시각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이야기를 발굴하고 있다. 경제, 경영 분야의 다양한 이슈와 인물들을 직접 취재하며 얻은 인사이트와 교수로서 경영 분야에 몸담으며 체득한 지식 등을 경영 이론이나 수식이 아닌 스토리로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기업의 사례에 특유의 해석을 담아 감동과 교훈이 담긴 이야기로 재구성, 우리 시대 비즈니스맨들에게 통찰과 영감을 선사한다.

 

그는 책의 '인트로'에서 "우리 모두는 어떤 의미에서 영웅이다. 자신의 노래를 부르려는 자, 자신의 시를 쓰려는 자, 자신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를 찾아나서는 자, 그들이 바로 영웅이다. 버티는 자, 그도 영웅이다. 아무리 안온한 삶을 원해도 삶은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시련은 늘 닥쳐오기 마련이고, 도전은 종종 우리의 등을 떠민다. 버티고 뛰어넘어야 한다. 그때 우리는 영웅이 된다"고 말한다.

 

나아가 총 9장으로 구성된 책을 통해 마치 '길찾기 앱'처럼 '영웅들의 여정'을 제시하면서 우리들 모두 쉽게 영웅이 될 수 있는 길로 인도한다. 즉 그는 영웅의 여정을 10단계로 나누어, 영웅이 모험을 떠나기 전 단계인 1단계부터 정신적 스승을 조우하는 4단계, 항해를 떠나는 5단계, 거듭되는 시련을 마주하는 6단계 등을 거쳐 최후의 투쟁에서 승리하는 마지막 10단계까지의 과정을 차근차근 우리들에게 설명한다.

 

 

 

 

주어진 일을 사랑하라

 

많은 사람들이 성공의 문을 두드리기 전부터 상당한 고민에 빠진다. 과연 지금 자기 자신이 수행하고 있는 일이 적성에 맞는 천직일까?라고 말이다. 왜냐하면 우리들 대부분은 좋아하는 일을 해야 보람과 기쁨을 느낄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선택해 이를 평생 직업으로 삼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이에 대해 일본 교세라의 창업자이자 명예회장인 이나모리 가즈오는 "처음부터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를 선택해 평생 자신의 직업으로 삼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애석하게도 그런 사람은 1000명 중 한 명이 될까 말까다"라고 대답한다. 이어 그는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추구하기보다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좋아하는 것부터 시작하라"고 조언한다.

 

사실 이나모리 가즈오는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지도 못했고, 원하는 직업도 얻지 못했다. 어렵게 취직한 회사는 도산 직전이었으니 일에 재미를 붙일 수가 없었다. 탈출구가 전혀 보이지 않아서 그는 입에 불평과 불만, 그리고 변명을 달고 살았다. 이후 그는 이런 자기 자신을 버리고 눈앞에 놓인 일에 집중하기로 결심했다.

 

당시 회사 연구소에서 파인세라믹이라는 신소재를 연구하고 있었는데, 결심한 그날부터 연구소 한켠에 솥과 냄비등 취사 도구를 갖다 놓고 불철주야 연구에 몰입했다. 물론 이 업무는 자신의 전공도 아니었고, 이미 대기업엔 이 분야의 전문가도 많았기에 한마디로 무도한 도전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일에 몰두하면서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즉 놀랄만한 실험 결과가 연달아 나타났던 것이다. 이로 인해 그는 한동안 지녔던 향후 진로에 대한 의심과 방황이 한꺼번에 사라지고 말았다.

 

 

생각의 씨앗을 포착하라

 

유명 광고인에서 책방 주인으로 변신한 최인아 대표, 그녀는 광고계의 살아 있는 전설로 "그녀는 프로다. 프로는 아름답다"라는 유명한 광고 카피를 만든 장본인이다. 그녀는 삼성 그룹 공채 출신 첫 여성 임원으로 제일기획 부사장을 역임했었다. 이후 그녀는 변신을 시도했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최인아책방'이라는 서점을 차린 것이다. 이곳에선 북콘서트, 강연회, 다양한 프로그램 등이 진행된다.

 

카피라이터로서의 그녀가 창의적인 생각을 할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그녀는 창의성은 흔히 생각하듯 아주 기발한 데서 나오는 게 아니며, 또한 "이 세상 모두가 아이디어의 재료"라고 말한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내게 신호를 보내는데 단지 내가 알아차리지 못할 뿐이다. 그것을 알아차리고 내 것으로 취하는가, 아니면 그냥 흘려보내는가 하는 점이 창조자가 되느냐, 범인凡人으로 남느냐를 결정한다.

 

문화부 장관을 역임했던 배우 김명곤 씨도 "절름발이 배역을 맡고 나니 거리에 절름발이가 그렇게 많이 보이더라"라고 어느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는 영화 <바보 선언>(1984년)에서 절름발이 배역을 맡아 절름발이의 삶을 유심히 관찰했던 것이다. 그렇다. 생각의 씨앗은 우리가 "보고, 듣고, 읽고, 행동한 모든 것"에 있는 거다.

 

 

나영석의 '혼,창,통'과 '소통의 리더십' 

 

국민 PD로 불리는 나영석은 KBS 공채 출신으로 현재는 CJ E&M에 몸담고 있다. 자리를 옮기자마자 그는 <삼시세끼>, <꽃보다 할배>, <윤식당> 등 히트작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대학 시절 경영학도가 아니라 행정학이 전공이다. 그럼에도 경쟁이 치열한 예능 분야에서 연이어 히트작을 낼 수 있는 비결은 뭘까?

 

그는 성공하는 프로그램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요소가 만나 스파크가 터질 때 나온다고 말한다. 이순재, 신구, 백일섭, 박근형 등 노령의 배우들이 해외로 여행을 떠나는 프로그램 <꽃보다 할배>가 바로 이런 케이스다. 당초 '해외 배낭여행'이란 주제로 아이디어 회의를 하다가 기존의 예능 출연자는 모두 젊은 가수, 배우, 개그맨, 전문 MC 등이 주류인 점을 깨고 "할아버지는 어떨까?"를 누군가가 말했고, 이를 웃음으로 넘기지 않고 그는 진지하게 생각하고 살을 붙여 이 프로그램을 탄생시켰던 것이다.   

이렇게 나영석 PD의 남다른 성취의 이면에는 혼창통이 작용하고 있다. 그는 신선함과 보편성, 새로운 것과 익숙한 것을 하나로 버무리는 데 지혜가 있으며, 일의 목적과 핵심 콘셉트를 정한 뒤 흔들리지 않고 집중한다. 또 타인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겸손함과 후배들에게 기회의 장을 열어주는 리더십을 갖추고 있다. 그래서 저자는 우리들에게 나영석을 우리들의 멘토로 강력하게 추천한다.

 

 

내리막길에서 도약하다

 

2009년, 발뮤다에 최악의 위기가 도래했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직원이라곤 고작 3명인 이 회사를 피해가지 않았던 것이다. 발뮤다는 주로 매킨토시 사용자를 대상으로 틈새 고가 제품을 소량 판매하는 업을 영위하고 있었다. 경기가 바닥이니 그나마 있던 주문이 제로 상태가 되었다. 회사 패망은 바로 눈 앞에 있었다. 이에 창업자 테라오 켄어차피 망할 거라면 해보고 싶었던 제품을 만들기나 해보자고 결심했다. 즉 이판사판 정신인 셈이다. 

 

꼭 해보고 싶었던 제품이 선풍기였다. 여름에 사용하는 선풍기가 늘 시원하지 않다고 느꼈던 그는 어린 시절 딱정벌레를 잡으려고 나무에 다가갔을 때 느꼈던 그 시원한 바람을 재현하고 싶었던 것이다. 바로 '자연풍'이다. 이후 선풍기 바람와 자연풍의 차이를 밝히려고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신발이 닳도록 드나들었던 한 공장의 직원들이 선풍기를 벽 쪽을 향하도록 설치한 것을 보고 깨달았다. 바람이 벽에 부딪히면 쇼용돌이 기류가 파괴되어 돌아오는 바람이 부드러워 진다는 사실을.

 

테라오 겐은 이렇게 말한다. "인생이란 뚫고 나갈 수 있다. 아무리 불리한 상황에서도 역전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이에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가 떠올랐다. 조르바는 "인생이란 가파른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는 법이지요. 분별 있는 사람이라면 브레이크를 써요. 그러나 나는 브레이크를 버린 지 오랩니다. 나는 꽈당 부딪치는 걸 두려워하지 않거든요"라고 말한다. 그렇다. 언제나, 누구나 그 가능성을 갖고 있다.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큰 잘못이다.

 

 

적에게서 이익을 얻다

 

플루타르코스<도덕론>에는 '적에게서 어떻게 이익을 얻을 수 있는가'라는 대목이 있다. 그는 적이라는 존재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우리를 향상시킨다는 논리를 편다. 물론 경쟁 상대와 적은 다르다.  경쟁 상대는 선의의 경쟁을 벌이는 반면 적은 내 목숨까지 내놓으라고 한다. 그런데, 이런 적에게서조차 얻을 게 있다고 시인한다면 경쟁 상대에게서 느끼는 압박감은 훨씬 줄어들지 않겠는가 말이다.

 

플루타고라스가 생각하는 적의 가장 큰 덕목은 바로 '우리를 늘 경계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적은 우리의 약점을 살피면서 언제든 우리를 덫에 빠뜨릴 궁리를 한다. 스스로 건강체라고 자랑하는 사람이 오히려 중병에 걸릴 확률이 높다고 말하는 것처럼, 병이라는 적을 항상 경계하는 약골은 미리 대비하므로 잔병은 치를지 몰라도 상대적으로 큰 병엔 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플루타르코스는 비난의 여지없이 당당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둘 중 하나가 필요하다고 한다. 정직한 친구를 두는 것이 하나이고, 분노한 적을 두는 것이 다른 하나다. 친구는 솔직한 충고로, 적은 험담과 욕설로 내가 죄를 저지르는 것을 막는다. 그러나 문제는 정직한 친구를 찾기가 힘들다는 데 있다.  마치 남과 북의 대치 상황처럼 말이다. 그에 대해 플루타르코스는 이렇게 말한다.


"이 시대에 우정은 거의 침묵으로 바뀌었고, 예전에 갖고 있던 자유로움을 잃어버렸다. 그것은 아첨에는 달변이지만, 충고에는 눌변이다. 결국 우리는 적의 입을 통해서만 진실을 들을 수 있다" 

 

 

진짜 여행은 지금부터

 

용기를 내어 모험을 떠나긴 했지만 언제든지 우리들은 위험에 처할 수 있다. 또한 실패의 가능성도 상존한다. 그렇다고 이를 포기하는 것은 이제껏 읽은 독서를 내팽개치는 것과 같다. 우리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도전해 보는 것, 내면의 경게를 허물고 나 자신을 확장하는 것, 진정 살아 있다는 느낌을 갖는 것이 아닐가 싶다. 그 어느 때보다 도전이 절실한 시기이다. 자, 진짜 여행은 이제부터다. 영웅의 길로 떠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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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는 언제나 거기에 있어
존 그린 지음, 노진선 옮김 / 북폴리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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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소설 속 인물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았을 때 나는 평일이면 인디애나폴리스 북쪽에 위치한 화이트 리버 고등학교에 다니는 중이었고, 정부의 지원을 받는 이 학교에서 나보다 훨씬 거대하며 정체를 짐작조차 할 수 없는 힘에 의해 특정한 시간, 다시 말해 오후 12시 37분 부터 1시 14분까지 점심을 먹어야만 했다. - '첫 도입부' 중에서

 

 

마주보는 것은 누구하고든 할 수 있다.

하지만 나와 같은 세상을 보는 사람은 흔치 않다.

 

저자 존 그린은 미국도서관협회가 수여하는 마이클 L. 프린츠 상과 에드거 앨런 포 상 등 여러 차례 권위 있는 상을 수상했으며, 타임지 선정 '세상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뽑힌 베스트셀러 작가다. 첫 작품 <알래스카를 찾아서>로 일약 유명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한해 가장 뛰어난 청소년 교양도서를 선정, 수여하는 프린츠 상과 가장 뛰어난 미스터리에 수여하는 에드거 상을 동시에 수상한 것은 그가 뛰어난 재주꾼임을 증명하는 셈이다.

 
그는 글을 쓰는 재능에만 그치지 않고 다방면에서 활약을 펼치고 있어서 21세기형 지식인으로 불릴 만하다. 동생 행크 그린과 함께 운영하는 교육 채널 크러쉬 코스와 블로그브라더스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온라인 동영상 프로젝트 중 하나이며, 블로그 '너드파이터'와 SNS로도 팬들과 활발히 소통 중이며, 특히 그의 트위터는 팔로어가 540만 명을 넘는다. 작품으로는 <알래스카를 찾아서>, <종이 도시>, <렛 잇 스노우>, <윌 그레이슨, 윌 그레이슨>,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 등이 있다.

 

현대인들은 우울증, 강박증, 공황장애 등 심리적인 문제를 안고 살아간다. 공황장애로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도 매년 증가하는 추세이며, 불안증세와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도 점점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책은 바로 저자 자신이 어릴 적부터 겪어 온 개인적인 경험, 즉 불안 장애를 바탕으로 불안에 떨고 있는 현대인들을 위로하기 위한 글이다.

 

줄거리는 정신 장애로 고통 받는 한 소녀, 에이자 홈스가 평범한 삶을 지탱해 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겪는 우정과 사랑, 가족에 관한 이야기인데, 에이자가 친구와 함께 한 소년의 아빠이자 현상금(10만 달러)이 걸린 수배범 러셀 피킷을 찾아나서는 모험담으로 진행된다. 이런 행동에 나선 이유는 수배범이 어린 시절 에이자가 호감을 가졌던 데이비스 피킷의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인디애나폴리스에 살고있는 16살의 고등학생 에이자 홈스는, 극도의 불안감과 강박적인 생각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힘겨운 하루하루를 보낸다. 물론 에이자도 보통의 십대들과 마찬가지로 같은 관심사에 몰두하며 사춘기의 통과 의례를 겪고 있는 중이다. 즉 대학 진학 문제로 고민하고, 지나치게 염려 많은 엄마를 진정시키며, 불만 많은 단짝 친구를 달래는 동시에 남자친구와 설레는 사랑을 키워 가는 중이다. 하지만 이런 평범한 모든 일상이 강박증과 불안 장애를 갖고 있는 에이자에게는 마치 전쟁과 같다는 사실이다. 


에이자는 자신이 세균에 감염되어 목숨을 잃게 될 거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실수로 손가락에 상처가 생기면 병균에 감염되어 죽지 않을까 몹시 걱정하고, 이런 불안감으로 인해 남자친구와 스킨십하는 것조차도 어려워한다. 심지어 증세가 심해지면서 키스로 세균이 감염됐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사로잡혀 손 세정제를 마시기 시작한다. 

 

"집에 도착해 욕실로 가서 상처를 확인했다. 아까보다는 덜 부푼 듯했다. 아마도. 욕실 조명이 약해서 잘 안 보이는 걸 수도 있지만. 비누와 물로 상처를 씻고 잘 말린 다음, 다시 살균제를 바르고 반창고를 감았다. 늘 먹던 약도 먹고, 몇 분 뒤에는 공황 발작이 일어날 때마다 복용하라고 한 길쭉한 하얀색 알약도 먹었다. 혀에 알약을 올렸더니 희미한 단맛과 함께 녹아내렸고, 나는 약효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무언가가 날 죽일 것이라고 확신했다. 당연히 그렇겠지. 언젠가는 무언가가 날 죽일 것이다. 다만 그날이 오늘인지 아닌지 모를 뿐이다"(148 쪽에서) 


이처럼 주인공 에이자를 괴롭히는 것은 세균뿐이 아니다. 그녀는 때때로 자기 자신이 허구일지도 모른다는 의문을 품는다. 자기가 스스로의 생각을 통제할 수 없다면 '나'를 움직이는 건 도대체 누구일까라는 의문 속에 빠진다. 이렇게 불안하게 하루를 살아가는 이 소녀는 과연 자신과의 전쟁에서 이길 수 있을까?

 

"그냥 내 몸 안에서 살아야 하는 게 싫어. 이게 말이 되는 소린지 모르겠지만. 난 그냥 산소를 이산화탄소로 바꾸려고 존재하는 도구 같아. 그리고 소위 내 '자아'라는 것을 내가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도 무서워. 예를 들어서, 너도 분명 눈치챘겠지만, 지금 내 손에서는 땀이 나고 있어. 땀이 나기에는 너무 추운 날씨인데도 말이야. 그리고 일단 땀이 나면 멈출 수가 없고, 땀을 흘리고 있다는 생각밖에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 싫어. 자신의 생각이나 행동을 선택할 수 없다면 어쩌면 나는 진짜가 아닐 수도 있잖아, 안 그래? 어쩌면 난 그냥 나 자신에게 속삭이는 거짓말일지도 몰라"(118 쪽에서)

 

사랑으로 극복하라

 

불안 장애를 가진 십대 소녀의 심리 변화, 정신적 문제, 그리고 심적 갈등 등을 읽을 수 있다. 이는 장애를 가지지 않았다고 해도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는 것들이다. 갈수록 핍박해지는 현대인의 삶과 연동해서 불안감은 점점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런 장애를 극복하려면 결국 스스로를 사랑하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 아닐까 싶다. 특히, 지금 장애를 겪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책의 일독을 권하고 싶다.

 

너무도 놀랍고, 감동적이며 또 진솔해서 감정을 주체하기 힘들다!

에이자처럼 불안 장애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 해도 공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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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어디 나는 누구 - 오늘도 헤매고 있는 당신을 위한 ‘길치 완전정복’ 프로젝트
기타무라 소이치로 지음, 문기업 옮김 / 매일경제신문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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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세상에서 방향치가 완전히 사라졌으면 하는 바람을 갖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다만 자신이 방향치라는 사실에 콤플렉스를 느끼는 사람들이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 나의 목표다. - '들어가는 글' 중에서

 

 

방향치 극복을 위한 처방

 

책의 저자 기타무라 소이치로는 어디에나 있을 법한 평범한 40대 남성이다. 단 하나, 평범하지 않은 한 가지가 있다면 '방향 감각이 매우 좋다는 것'이다. 이에 뛰어난 방향 감각을 더욱더 갈고닦아 세계 최초로 방향치를 개선하는 방법을 만들어, 스스로 방챵치 콤플렉스를 느끼는 사람들이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 목표다. 일본에서 '길치 교정 강연'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일본에만 약 4천만 명. 이는 바로 방향치, 즉 길치 또는 길치가 될 가능성이 농후한 사람들의 숫자다. 쉽게 말해 주변 사람들 5명 중 2명은 방향 감각이 매우 둔하다는 의미이다. 어쩌면 실제론 이보다 더 많지 않을까 싶다. 요즘 자가 운전자 대부분은 내비게이션을 이용함에 따라 이게 없으면 아예 목적지로 찾아갈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문명의 이기利器가 오히려 우리들을 길치로 만드는 셈이다.

 

몇 번씩이나 놀러 온 집인데도 불구하고 찾아올 때마다 길을 묻는 친구

노래방에서 놀다가 금방 화장실 다녀온다더니 노래방 안을 헤매고 있는 친구

늘 약속 시간에 1시간 정도 늦게 도착하는 친구

 

위의 사례에서 보듯이 방향 감각이 떨어져 일상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많다.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단지 남보다 능력이 좀 쳐지는 정도로만 이해한다면 이는 절대로 고쳐지지 않을 것이다. 저자는 이런 사람들을 위해 방향치를 고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왔고, 이런 그의 노력 덕분에 이 책이 탄생한 것이다. 방향감에 다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이 큰 도움을 줄 것이다. 

 

 

 

 

지도를 '보는' 게 아니라 '읽는' 거다

 

방향치인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지도는 그림이나 사진처럼 '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지도는 원래 그림이나 풍경처럼 감성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다. 즉 지도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냥 그림 감상을 하듯 바라보는 게 아니라 지도에 담긴 의미를 읽을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지도는 정보의 전달 수단과 동시에 실재實在하는 특정한 광경을 축소해놓은 것, 즉 현실 세계를 모형처럼 스케일 다운하여 2차원으로 간략화한 것이기 때문에 '바라보지 말고' 정보를 수집하고 이용하기 위해 '읽어야' 하는 것이다. '바라본다'와 '읽는다'의 차이는 라디오에서 흐러나오는 뉴스나 정보 프로그램을 멍하게 듣고 있는지, 아니면 메모를 하며 경청하고 있는지의 차이와 같다. 

 

 

지도를 번역하라!

 

길치, 즉 방향치는 지도를 읽는 게 매우 어렵다. 이는 나이와도 상관없다. 마치 교차로에서 떨어뜨린 콘텍트 렌즈를 찾는 것처럼 절망감을 호소하는 어른들도 매우 많다. 왜 이런 차이가 있을까?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지도를 읽는 행동을 '번역 작업'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는지 없는지가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방향치는 지도에서 현실을 잘 번역하지 못한다. 지도를 읽는 행동은 다음의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1. 지도를 보고 자신이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 필요한 정보를 추출한다.
2. 추출한 정보를 머릿속에서 시각화한다.
3.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의 행동을 시뮬레이션한 뒤 목적지를 향해 출발한다.


1에서 2로의 이행 즉, 평면상의 기호나 명칭 등을 현실 세계에 있는 건물과 표식 등으로 바꾸는 작업을 특히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이것은 2차원에서 3차원 또는 3차원에서 2차원으러의 '번역'이 자연스럽게 되지 않는 상태인 셈이다. 예를 들자면 전달하고 싶은 말을 상대의 언어로 바꾸지 못해 외국인 앞에서 쩔쩔 매는 그런 느낌이다.

 

 




뇌 속 지도: 지켜야 할 규칙은 세 가지 뿐이다!

 
1. 자신의 기억에 남아 있는 것만을 그릴 것
2. 틀렸거나 불확실한 것이 있어도 신경 쓰지 말 것
3. 즐기면서 가벼운 마음으로 그릴 것

 

뇌 속 지도를 그릴 때 지켜야 할 규칙이 세 가지 있다. "그게 무슨 규칙이야?"라고 생각하겠지만 실제로 지도를 그려보면 그런 점들을 상당한 장벽이라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왜냐하면 '정확하게 그리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 작업 목적은 설정한 앵커의 기억을 '체감'하기 위한 것이다. 뇌 안엔 설정한 앵커가 기억으로 남아 있지만, 기억이라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종이에 직접 그려보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지리를 정확하게 지도 위에 재현하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누구나 길을 헤맬 때가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방향을 헤매지 않는다면 이런 사람은 가히 '방향 감각의 달인'이다. 여행사 직원이 가이드하는 해외 여행을 나갔을 때 자유시간을 즐기다가 길을 잃고 헤매는 경험을 한 사례들이 있을 것이다. 이런 경우는 대부분이 가이드가 있기에 길을 기억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케이스이다. 아무튼 자주 길을 잃고 헤매는 사람이라면 '길치 완전정복' 프로젝트에 동참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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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라이프 - 내 삶을 바꾸는 심리학의 지혜
최인철 지음 / 21세기북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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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 관한 책이면서도 제목을 '굿 라이프'라고 정한 이유는, 행복을 '순간의 기분'으로만 이해하는 경향성을 바로잡기 위해서다. 행복은 순간의 기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삶'의 행복이기도 하다. 좋은 음식이 좋은 맛 이상의 것인 것처럼, 삶의 행복은 순간의 행복 이상의 것이다. 행복이 좋은 기분과 좋은 삶의 두 가지 의미를 모두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대인들은 좋은 기분으로서의 행복만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좋은 삶'으로서의 행복까지 균형 있게 생각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기 위해 책의 제목을 의도적으로 '굿 라이프'로 정했다. - '프롤로그' 중에서

 

 

좋은 삶을 찾아서

 

이 책의 저자 최인철은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이자 서울대학교 행복연구센터 센터장으로 재직 중이다. 서울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으로 건너가 미시간 대학에서 사회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미국 일리노이 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를 지냈고, 국제 학술지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BULLETIN>의 ASSOCIATE EDITOR를 역임했다.

 

2000년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로 부임한 이래, 2010년 서울대학교 행복연구센터를 설립하여 행복과 좋은 삶에 관한 연구와 함께 초, 중, 고등학교에 행복 교육을 전파하고 전 생애 행복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 행복의 심화와 확산에 매진하고 있다. 2017년 제8회 홍진기 창조인상을 수상했다. 저서로 40만 독자가 선택한 스테디셀러 <프레임>, 역서로 <생각의 지도>,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 등이 있다.

 

'굿 라이프'란 바로 좋은 삶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좋은 삶이란 뭘까? 이는 재미와 의미, 성공과 행복, 현재와 미래, 자기 행복과 타인의 행복 사이의 균형을 추구하는 삶을 뜻한다. 저자는 지금까지 자신의 연구팀과 함께 해온 다양한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마치 하늘의 뜬구름을 잡는 듯한 행복 개념을 재정의하고, 행복뿐 아니라 의미와 품격을 더한 '굿 라이프'의 구체적인 방법론과 굿 라이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깊이 있는 통찰을 현실감 가득하게 펼쳐놓는다.

 

저자는 행복에 관한 개인들의 생각은 다양하지만 대체로 '순간의 기분'으로만 이해하는 편향이 있음을 지적하면서 행복은 '순간'이기도 하지만 '삶의 차원'에서 계획되고 실행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즉 고요함, 몰입감, 유능감 등 행복한 감정을 느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행복'이라는 특수한 감정을 느껴야 비로소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경향, 자신이 불행한 것은 유전적 기질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경향, 행복을 가볍다고 여겨 이를 천시하는 경향 등 행복에 관한 오해와 염려들이 세상에 가득하다. 그래서 그는 행복에 관한 오해들을 바로잡고, 행복해지는 것을 염려하거나 두려워하는 우리의 마음을 하나하나 짚어낸다.

 

 

행복은 가벼운 것이라는 오해

 

행복幸福이라는 한자어는 단일한 감정의 존재를 가정하게 하고, 그 감정은 피상적이고 얕은 것이라는 오해를 초래한다. 따라서 이는 삶에 대한 진지한 태도를 지닌 사람들이 추구할만한 감정이 아니라, 천박한 사람들이 추구하는 안락함 정도의 감정이 행복이라는 오해를 불러올 수 있다.

 

행복에는 행복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사실만 알아도 마음이 편해진다. 행복을 가볍다고 경계하는 이유는 행복을 영감이나 관심 같은 상태가 아니라 아이스크림 먹을 때의 즐거움 정도라고만 이해하기 때문이다. 행복에 대한 피로감이 늘어난 이유는 행복이 일상을 벗어나야만 경험되는 '福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행복은 생각보다 훨씬 깊이 있으면서 동시에 지극히 일상적이다. 



유전이 행복을 결정한다는 오해


아무리 노력해도 결국 개인의 행복은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생각이 있다. 마치 쳇바퀴를 도는 것처럼, 쾌락이라는 감정은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일련의 연구를 통해서 지지를 받아왔다. 즉 행복한 사건을 경험한 후 일시적으로 행복감이 상승하거나 또는 불행한 사건을 겪은 후 행복감이 하락하더라도 이 사람의 정해진 행복 수준은 원위치로 돌아온다는 거다. 그래서 굳이 노력할 필요조차 없다는 해석이 된다.

하지만 이처럼 행복의 측면에서든 고통의 측면에서든 결국 원래의 감정 상태로 돌아갈 것이기에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은 지나치게 냉소적인 태도다. 언제 죽음이 찾아올지 모르는 인간 실존의 한계를 감안하면, 우리 삶은 매 순간이 소중하다. 결국 제자리로 돌아갈 것이라는 이유로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무시하는 것은 삶에 대한 현명한 자세가 아니다. 우리에게 가장 확실한 삶은 언제나 지금 이 순간이기 때문이다.


물론 유전이 인간의 행복에 관여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러나 인간의 거의 모든 특성에 유전이 관여한다는 행동유전학의 제1법칙에서 보면 이는 그리 놀랄 만한 점은 아니다. 중요한 점은 유전이 행복에 기여하는 것은 맞지만 유전이 결코 행복을 운명 짓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유전자 결정론, 특히 강한 유전자 결정론은 오류일 뿐만 아니라 행복에 대한 우리의 의지를 약화시키고 행복해지기 위한 개인과 사회의 노력을 과도하게 냉소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위험성을 안고 있다.



행복한 삶의 기술 - 좋아하는 일을 한다 

행복한 사람들의 '마음의 기술'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행복한 사람들이 자신의 일상을 어떻게 구성하는지를 배우는 것도 못지않게 중요하다. 행복한 사람과 행복하지 않은 사람은 같은 일상을 다른 마음으로 살고 있을 수도 있지만, 애초부터 서로 다른 일상을 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행복한 사람들의 마음보다 행복한 사람들의 일상을 분석해보려는 시도가 우선이 되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어떤 음식을 먹더라도 감사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애초부터 맛있고 건강한 음식을 먹는 것이 중요한 것과 같은 이치다. 누구를 만나든 즐거운 마음으로 만나려고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처음부터 좋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중요하고, 지루한 일도 기쁘게 할 수 있는 마음의 비결을 발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처음부터 즐거운 일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행복한 사람들은 좋아하는 일, 잘하는 일 중 무엇을 우선적으로 할까? 좋아하는 일을 먼저 한다. 우리는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에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좋아하는 일만 하면서 살 수 없다는 '어른스러운' 조언이 들려올 때, 늘 잘하는 일만 하면서 살 수도 없다는 주문을 외워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행복한 사람들이 삶을 살아가는 비결이기 때문이다.


되어야 하는 나보다 되고 싶은 나를 본다

비교하지 않는다

돈의 힘보다 관계의 힘을 믿는다

소유보다 경험을 산다

돈으로 이야깃거리를 산다


행복한 사람은 소유보다는 경험을 사는 사람이다. 소유를 사더라도 그 소유가 제공하는 경험을 얻으려고 하는 사람이다. 반대로 행복하지 않은 사람은 경험보다는 소유를 사는 사람이다. 심지어 경험을 하면서도 그 경험을 소유화, 혹은 물화해버리는 사람이다. 사는buy 것이 달라지면 사는live 것도 달라진다. 행복한 사람들이 다르게 사는live 이유는 사는buy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의미 있는 삶


인간만이 추구하는 행복을 좋은 삶으로만 설명하는 데레는 한계가 있다. 인간이란 끊임없이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그 삶에 스토리를 부여하는 존재다. 과거를 회상하고 미래를 계획하여,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연결하는 소위 'connecting the dots'라는 의미 창출 작업을 하는 것이 인간의 특징이다. 이 작업은 삶의 순간순간에 관한 것이 아니라 삶 전체에 관한 것이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이는 세계적인 희극 배우이자 명감독인 찰리 채플린의 말이다. 그렇다. 삶이란 해석과 재해석의 연속이다. 과거의 즐거움이 지금 생각하니 어리석은 일이었다고 후회하고, 과거의 고통이 지금 생각하니 축복이었다고 감사하는 것이 인간이다. 찰리 채플린의 말처럼 순간의 경험들은 그 순간에 종료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재평가된다. 따라서 순간 혹은 기분만을 가지고 좋은 삶을 이해할 수는 없다.


의미에는 무겁고 큰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작고 가벼운 의미도 존재한다. 작은 의미란 일상 속에서 경험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의미를 뜻한다. 아침마다 아이들의 밥을 지어주는 것, 연로한 부모님께 안부 전화를 거는 것, 맡겨진 과제를 제시간에 해내는 것, 아이에게 구구단을 가르치는 것, 식사 기도를 하는 것, 다이어트에 성공하는 것, 화초에 물주는 것, 약속 시간을 잘 지키는 것 등 일상적인 일을 통해서 경험되는 의미다. 자기를 희생해야만 얻어지는 것이 의미가 아니다. 즐거움을 포기해야만 얻어지는 것도 아니다. 작고 확실한 행복 '소확행'이 있듯이, 작고 확실한 의미 '소확의小確意'도 있는 것이다.


의미란 중요성이다

의미는 유용성이다

의미는 이해이다

의미는 정체성이다


의미의 중요한 원천은 자기다움에 있다.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이 자기가 누구인지를 드러낸다고 느낄 때, 인간은 의미를 경험한다. 일이 잘되면 기분이 좋지만, 그 일이 자기다운 일이면 의미가 경험된다. 우리가 성공, 성취, 효용, 효율 등 무엇을 이루는 것에만 집착하게 되면 순간적인 기분의 행복을 누릴지는 모르지만, 의미 있는 삶을 경험할 가능성은 줄어든다. 의미 있는 삶이란 자기다움의 삶이다.



품격 있는 삶


행복은 모든 가치를 뛰어넘는 최상의 가치일까? 이에 우리들은 보다 품격 있는 삶의 필요성을 더 실감하게 된다. 즉 타인의 행복을 침해하면서까지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결코 정당화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행복 지상주의자가 아닌 이상 YES라고 답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우리 모두가 추구하는 행복은 타인의 행복을 침해하지 않을뿐더러, 나아가 타인의 행복을 돕는 행복이어야 한다. 타인을 위한 자기희생의 삶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삶을 진심으로 존중하고 아끼면서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인간의 최고 덕목 중 하나가 타인의 행복을 존중하는 것이라고 보면, 품격 있는 삶을 굿 라이프의 핵심 요소로 끌어안아야 하는 점이 더 분명해진다.


자기중심성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삶

여행의 가치를 아는 삶

인생의 맞바람과 뒷바람을 모두 아는 삶

냉소적이지 않은 삶

질투하지 않는 삶

한결같이 노력하는 삶

"내 그럴 줄 알았지"라는 유혹을 이겨내는 삶

가정이 아름다운 삶

죽음을 인식하며 사는 삶

지나치게 심각하지 않은 삶


품격 있는 사람은 예상치 못한 일에 대해서 솔직하게 놀라는 사람이다. 모두가 빠른 진단과 대책을 앞다투어 내세울 때, 몇 년이고 그 문제를 집요하게 그리고 골똘히 생각해서, 그 문제로부터 마땅히 배워야 할 것들을 배우는 사람이다. 자신의 전문 분야든 아니든 모든 문제에 대해서 늘 답을 지니고 있는 사람을 우리가 경계하는 이유는, 그에게서 자신의 지적 한계를 인정하는 격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인격이란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가정의 격이라고 할 수 있다. 인격은 도덕적 완성의 정도가 아니라 한 개인이 세상에 대하여 지니고 있는 가정들의 정확성과 품격의 문제다. 그러므로 인격 수양이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정들을 점검하여 나쁜 가정을 좋은 가정으로, 근거가 없는 가정을 정확한 가정으로 바꾸어가는 과정을 뜻한다.



좋은 것이 많은 삶


굿 라이프란 '좋은 것이 많은 삶'이다. 물론 좋은 것의 기준이 주관적이긴 하다. 그렇더라도 웰빙과 행복에 관한 다양한 연구들의 결과를 참조한다면 자기 자신만의 '좋은 것 리스트'를 충분히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지나치게 구속되는 것은 분명 저자가 원하는 바가 아닐 것이다. 스스로 좋은 것을 일일이 기록하거나 세지 않더라도 맘 속에 자연히 알려주는 신호를 찾아보면 된다. 행복은 스스로 만들어가는 과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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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서 이불과 논어 병풍 - 이덕무 청언소품
정민 지음 / 열림원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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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무! 그를 생각하면 나는 떠오르는 그림이 있다. 후리후리한 큰 키에 비쩍 마른 몸매. 쾡하니 뚫린 그러나 반짝반짝 빛나는 두 눈. 추운 겨울 찬 구들에서 홑이불만 덮고 잠을 자다가 <논어>를 병풍 삼고, <한서漢書>를 물고기 비늘처럼 잇대어 덮고서야 겨우 얼어 죽기를 면했던 사람. - '서설(지리산의 물고기, 이덕무 이야기)' 중에서

 

 

이 사람보다 글 읽기에 더 미친 이가 있을까!

 

이 책은 18세기 조선 후기 문인이자 대표적인 서얼庶孼 지식인 중 한 명인 이덕무李德懋(1741~1793년)의 청언소품淸言小品을 모아 엮은 것이다. 한양대학교 국문과 정민 교수가 이덕무의 <선귤당농소蟬橘堂濃笑> 전문과 <이목구심서耳目口心書> 일부를 우리말로 옮기고 이해하기 쉽도록 각 편마다 제목을 붙이고 평설을 달았다. 정민의 단상과 해설은 이덕무의 세상살이 이치, 자연의 아름다움, 군자의 면모, 선비의 길, 수신修身의 지혜와 자세, 책 읽는 즐거움 등 깊이 있는 내용을 독자가 다가가기 쉽게 풀어낸다.

이덕무는 정조 때 규장각의 검서관檢書官을 지냈다. 그는 지독한 가난과 서얼이라는 차별적인 신분을 천명으로 알고 살았다. 그래서 추운 겨울밤 홑이불만 덮고 잠을 자다가 <논어>를 병풍 삼고, <한서漢書>를 물고기 비늘처럼 잇대어 덮고서야 겨우 얼어죽기를 면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극히 빈곤한 환경에서도 그가 사랑한 것은 오직 책을 읽고 필사하는 일이었으며, 심지어 풍열로 눈병에 걸려 눈을 뜰 수 없는 중에도 실눈을 뜨고서 책을 읽던 책벌레였다.

<선귤당농소>는 풍경에 대한 세심한 관찰력과 옛사람의 향기로운 삶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산문집으로 고아한 운치와 따뜻한 감수성이 돋보인다. 그리고 <이목구심서>는 말 그대로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입으로 말하고 마음으로 생각한 것'을 글로 표현했기에 당시 박지원, 박제가 등이 여러 차례 빌려가 자주 인용했다고 한다. 이 글을 통해 우리들은 이덕무의 해박한 독서와 지적 편력, 사물에 대한 투철한 관심을 한눈에 들여다볼 수 있다.

 

 

 

 

단 한 사람의 지기知己

 

이덕무는 권세와 명예, 세상 사람들의 명성 따위는 중요하지 않고 오직 단 한 사람의 지기知己만 있다면 족하다고 말한다. 그러면 그 사람을 위해 10년간 뽕나무를 심고, 1년간 누에를 쳐서 열흘에 한 빛깔씩 오색실로 물을 들여 친구의 얼굴을 수놓게 하여, 귀한 비단으로 장식하고 고옥古玉으로 축을 만들어 아마득히 높은 산과 강물 사이에 펼쳐놓고 서로 마주보며 말없이 앉아 있다가, 날이 지면 품에 안고서 돌아오겠다고 말이다.

 

 

해맑은 마음

 

따스한 봄, 모래톱에서 제멋대로 노는 물새들, 물 위에 솟은 바위 위에도 앉고, 물풀도 뜯어먹는다. 또 깃을 닦고 모래로 목욕을 하고 물에 자기 그림자를 비추어 보기도 한다. 이런 천연스러운 자태의 해맑음이 실로 사랑스럽다고 이덕무는 느낀다. 하지만 세상은 웃음 속에 칼날을 감춰두고, 마음속에는 남을 해코지하려는 만 개의 화살을 쌓아둔 듯하다. 이 얼마나 물새들과 비교되지 않는가 말이다.

 

 

거간꾼

 

이덕무는 앎과 실천이 하나되지 않는 삶을 경계했다. 즉, 표리부동한 삶을 경멸했던 것이다. 좋은 글을 익혀 머리론 알고 있더라도 이를 삶에서 행동으로 옮길 수 없다면 죽은 지식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는 공명功名을 얻으려고 하는 독서는 진정한 독서가 아니므로 글을 비판적으로 읽어내고 실제 삶에 적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던 것이다. 선비가 글을 읽으며 공명에만 정신을 쏟고, 마음으로 환하게 비추어보지 않음을 경계했고, 그런 사람이라면 차라리 저잣거리에서 이문이나 챙기는 거간꾼이 되는 편이 나을 것이라고 말한다.

 

 

책 읽는 마음가짐

 

글을 읽었다면서도 시정을 향한 마음을 지녔다면, 시정에 있으면서 능히 글을 읽느니만 못하다. 讀書而有市井之心, 不如市井而能讀書也

 

책을 앞에 두고는 있지만 마음이 콩밭에 가 있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책을 읽기 전에 어디에 써먹을까부터 궁리하는 셈이다. 몸이 비록 산속에 있더라도 그의 마음은 시정잡배와 다를 바 없다. 차라리 티끌 세상에서 이리저리 부대끼며 살아가더라도 그 속에 품은 마음이 가지런하고 책 읽을 여유를 가진 사람이야말로 군자라는 말이다.

 

 

한겨울의 공부방

 

이덕무는 단 한 사람의 지기를 원했다. 그럼에도 그런 지기가 없을 땐 어찌해야 할까? 그는 책을 사랑하는 자기 자신을 친구로 삼는다. 그래서 풀벌레와 붓과 벼루에게 다정히 말을 건다. 붓과 벼루와 도서들은 마침내 자질子姪들이 나와 절하는 것만 같아서 면목이 좀 생소해도 아끼어 어루만져 안아주고 싶은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

 

 

마음의 거울

 

한번은 객이 혀를 차며 말했다.
"문 나서면 온통 욕일 뿐이요, 책을 열면 부끄러움 아님이 없네"
내가 말했다.
"참으로 명언일세. 그러나 작은 낟알처럼 마음을 모으고, 두터운 땅을 밟으면서도 마치 빠짐을 염려하듯 한다면, 무슨 욕됨이 있겠는가? 비록 엉뚱하게 날아오는 욕됨이야 있다 해도 내가 스스로 취한 것은 아닌 것일세. 책을 읽으며 매양 실천할 것을 마음으로 삼고, 골수에 젖어들게 하여, 바깥 사물의 일을 가지고 겉거죽으로 삼지 않는다면 무슨 부끄러움이 있겠는가? 다만 날마다 약간의 부끄러움은 있게 마련인지라 독서가 아니고서는 또한 사람이 될 수 없겠기에 공부를 하는 것일 뿐이라네"

 

 

가난

 

가장 으뜸가는 것은 가난을 편히 여기는 것이다. 그 다음은 가난을 아예 잊어버리는 것이다. 가장 낮은 것은 가난을 꺼리고, 가난을 호소하며, 가난에 짓눌리다가 가난에 부림을 당하는 것이다. 그보다 더 아래는 가난을 원수로 여기다가 가난에 죽는 것이다. 太上安貧, 其次忘貧, 最下諱訴貧, 壓於貧, 僕役於貧, 又最下, 仇讐於貧, 仍死於貧

 

이덕무는 가난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 우리 대부분은 가난을 불편하게 여기지만 그는 이를 편하게 여긴다. 나아가서 이를 아예 망각해 버린다. 가난에 부림을 당하고 이 눈치 저 눈치 보며 사는 인생은 슬프다는 것이다. 이보다 더 하수는 가난을 원수로 여기며 살다가 가난 때문에 죽는 사람이라고 일갈한다. 이제 가난하다는 생각을 머리에서 싹 지워버려야겠다.

 

 

베푸는 마음

 

대장부가 비록 궁한 집에 살면서 하잘것없는 음식조차 대지 못하더라도 제 마음속에는 불쌍히 여겨 베풀기를 좋아하고 궁핍한 이를 구해주려는 생각을 지녀야 한다.       

 

대장부라면 마땅히 궁한 집에 살더라도 마음속에는 항상 남을 불쌍히 여겨 베풀기를 좋아하고 궁핍한 이를 구해주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보다 더 가난하게 사는 이가 있다는 사실을 마음에 두고 이런 사람을 돕고 베풀어야 한다는 마음가짐을 지니고 살아야 자신의 가난이 결코 부끄럽지 않다는 거다.

 

 

밀봉

 

이덕무는 많은 호를 사용했는데 그중 즐겨 사용했던 것은 신천옹(해오라기)을 뜻하는 청장靑莊이다. 신천옹은 맑은 물가에 살며 제 앞을 지나가는 물고기만을 잡아먹는 걸로 알려져 있다. 이는 신분상의 한계 로 인해 자신이 지닌 재주를 제대로 펼칠 수 없음을 애석해하거나 노여워하지 않고 책 속으로 내면을 더욱 넓혀가는 계기로 삼자는 다짐으로도 보인다. 이런 모습은 글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즉 좋은 술은 주둥이를 밀봉해 여러 해를 묵혀두어야만 그 맛이 점점 좋아지니, 재주 있는 자도 이와 같다 하였다. 스스로 뽐내고 내세워 남들이 알아주지 않을까 염려하는 자세, 타인의 칭찬이나 헐뜯음에 일희일비함이 다만 슬퍼할 일이라는 것이다.

 

 

 

 

가난을 아예 망각하고 살아라

 

이밖에도 '명실상부' 편에서는 내가 누구인가는 스스로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달렸을 뿐 남이 나를 어찌 대접해주느냐에 있지 않기에 스스로 돌아봄을 귀하게 여기라고 말하고, '재물' 편에서는 허리에 돈을 두르고 강을 건너다 물에 빠진 사람이 끝내 돈을 버리지 못하고 물에 빠져 죽고 마는 이야기를 통해 무엇이 진정 소중한 가치인지 생각하게 한다. 이덕무의 세상살이 이치, 자연의 아름다움, 군자의 면모, 선비의 길, 수신修身의 지혜와 자세, 책 읽는 즐거움 등은 각박한 세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불러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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