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은 부산물이다 - 문명의 시원을 둘러싼 해묵은 관점을 변화시킬 경이로운 발상
정예푸 지음, 오한나 옮김 / 378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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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예푸는 결혼제도, 농경, 문자, 종이, 조판, 인쇄라는 여섯 가지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가 자랑하는 인류의 문명은 목적적인 행위로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그려낸다. 문명은 결코 위대한 업적도 아니고, 구성원의 행복을 위한 과정도 아니었다. 인류는 생존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구사했고, 그 와중애 그들이 선택했던 수많은 과정이 서로의 작용으로 후대에서 말하는 '문명'이라는 결과물로 나타났다. - '추천사' 중에서

 

 

문명은 생존을 위한 결과물이다

 

우리들은 학교에서 세계 4대 문명과 발생지, 즉 이집트문명(나일강), 메소포타미아문명(티그리스, 유프라테스강), 인더스문명(인더스강)과 중국의 황허문명(황허강)를 배워왔고 이것이 기존 문명에 대한 통설이었다. 더구나 4대 문명이 세계 각지로 전파되어 계몽되었다고 가르쳐왔다. 하지만 이젠 이는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무수히 많은 고대 문명이 있었고 그 유적들이 속속 출토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후기 구석기시대에 해당하는 터키의 괴베클리 테페에서 고대 문명의 흔적이 출토되었고, 동아시아에서도 구석기시대에 이미 토기가 사용되었다는 사실은 벌써 상식적이다. 이처럼 인류의 역사는 4대 문명 기원설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거대한 기념물과 위대한 왕이 인도한대로 흘러간 게 아니다. 오직 다양한 사회적 관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이 책은 문명 진화에 대한 새로운 메커니즘으로 인류 역사의 기원과 탄생을 재정의한다. 책의 저자 정예푸鄭也夫는 1950년 북경 출생으로, 베이징사범대학교와 사회과학원 대학원을 거쳐 철학 석사학위를 받았고, 이후 미국 덴버대학교 사회학과에서 공부했다. 베이징대학교의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수십여 권의 책을 출간한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강연가로 유명세를 떨친다. 현재 중국에서 영향력높은 사회학자이자 인문학자로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아직도 사람들은 과거 역사의 찬란함에 경외심을 갖고 자기 나라에 이런 문명적 요소가 많을수록 자국과 자국민의 위대성이 증명된다고 어리석게도 믿는다. 이와같이 올바른 역사관이나 문명관을 갖지 않을 경우 커다란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문제점이 발생한다. 현재 중국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시진핑 주석이 의욕적으로 펼치는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 또한 그릇된 인식이 저변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자국의 위대함에만 초점을 맞추다보면 심지어 역사의 조작까지 서슴치 않는다는 사실이다. 중국 영토에 위치하고 있는 고구려 유적지를 자기들의 역사로 만들려는 동북아공정 프로젝트가 이를 대변한다. 이는 통치권자의 잘못된 역사관이 빚어낸 심각한 오류의 결과물인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책의 한국어판 서문에서 이렇게 지적한다.

 

"민족에게 자존심은 필요할까요? 당연히 필요합니다. 하지만 날조된 역사관 위에 자존심을 세워서는 안 됩니다. 이는 믿을만하지 못합니다. 잘못된 역사적 평가는 맹목을 불러옵니다. 제대로 된 역사를 읽어야 현명해지고, 현명해져야만 미래를 제대로 개척할 수 있습니다"

 

 

왜 족외혼제를 추구했을까?

 

원시 인류와 침팬지나 고릴라 같은 유인원들의 조상은 일부다처제였다. 쉽게 말하자면 육체가 타고난 무기였던 힘쎈 수컷이 암컷을 차지하기 쉬웠던 것이다. 그렇다면 무기는 왜 발명했을까? 이는 더욱 힘쎈 맹수들과의 싸움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무기는 양날의 검이었다. 인간 내부에도 영향을 미쳤다. 나중에는 주로 외부보다 내부에만 영향을 끼쳤다.

 

이런 변화의 즈음에 일부일처제가 자리잡는다. 본디 흉폭한 맹수에 대한 압박감으로 인해 발명되었던 무기가 인류 진화사에 한 획을 긋는 중요한 급변을 초래한 셈이다. 일단 일부일처제가 형성되자 이후에는 이를 다시 번복하기 어려웠다. 그 이치는 다른 남자가 차지한 아내를 되찾아오기가 어렵고 일부 지역의 권력자는 혼외로 둘째, 셋째 부인을 두는 것에 만족할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족외혼을 얘기할 때 우리들은 근친교배가 자손을 체질적으로 퇴화시킨다는 인식을 앞세운다. 물론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 먼 옛날 인간이 어떻게 근친교배의 심각성을 먼저 알고서 족외혼을 도입했겠는가 말이다. 이는 설득력이 한참 뒤떨어진다. 족내혼과 족외혼의 후손들을 비교해서 그 결과를 수용할 때보다 훨씬 전에 족외혼이 이미 발생했기 때문이다.

 

인류가 근친통혼에 빠지지 않은 이유는, 다른 영장류 동물의 새끼들처럼 하루아침에 성숙해서 부모를 떠나는 메커니즘을 따라서도 아니고, 근친상간으로 인한 퇴화의 법칙을 인식해서도 아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원인이 있다. 하나는 구성원 상호 간의 성적 충동으로 인한 내부 질서의 파괴를 막기 위해 근친상간을 금기시했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인류의 기질상 같이 자란 이성에 대한 '성적 관심'이 낯선 이성에 대한 그것보다 약하기 때문이다. 외부에 대한 '성적 취향'은 내부의 금기가 시행될 수 있게 했다. 퇴화 여부는 종의 존폐와 직결되지만, 근친상간에 대한 금기는 근친교배가 자손의 체질적 퇴화를 초래한다는 인식으로 인해 생긴 결과는 아니다. 이처럼 족외혼은 이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동기와 행동으로 인한 부산물이다.

 

 

어떻게 농업은 시작될 수 있었을까? 

대량의 야생자원을 두고 재배를 한다면 이는 매우 어리석은 짓이다. 그렇다면 이 '결정적 한 걸음'은 무엇 때문에 내딛게 된 것일까? 필자는 인구의 압박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일상적으로 나타났던 인구 압박은 농업의 기원과 아무런 연관이 없고, 특이한 상황에서의 인구 압박만이 영향을 끼친다. 즉 '수확민' 집단에서만 일부 사람들이 인구 압박으로 인해 '결정적 한 걸음'을 내딛었다.

 

농업은 '수확민' 집단 내 이민자들이 시작했다. 우리는 이런 상황을 한번 상상해볼 수 있다. 풍요로운 야생곡물 지역을 따라 정착한 수확민 집단은 하늘이 내린 자원으로 인해 놀라울 정도로 지속적인 수익을 거뒀고 이로 인해 인구가 급증했으나, 끝내 식량 공급이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게 된다. 그리하여 단체 내에서 타협을 하게 되는데, 일부 사람들이 상당한 곡물을 가지고 주변 지역으로 이주하여 재배, 채집, '수확'을 하는 복합적 경영을 시작한다. 농사를 일단 시작한 후에는 멈추기가 어려웠다. 인류가 농사를 시작하면서 그 농사가 오히려 인간을 길들였다고 봐야 한다. 

 

 

생물진화와 문화진화

 

다윈의 진화론은 그 핵심이 '적응''자연선택'이다. 적응은 생존과 번식을 뜻한다. 치타와 영양은 생존을 위해 여러 세대의 선별을 거치면서 빠른 다리라는 특징을 갖게 되었다. 같은 종은 생존을 위해 다른 지역으로 옮겨간다. 장시간의 세월이 흐르면 원래 같은 종이엇던 것이 아종으로 분열하고 심지어 다른 종이 된다. 그래서 지구상의 종이 다양해진 이유다.

 

문화란 무엇인가? 인류는 역사의 발전 속에서 점차 다른 동물이 갖고 있지 않는 의식과 이성을 발달시켰다. 이는 인류의 생존수단이 되었다. 의식과 이성의 산물인 문화 역시 생존수단이며 나아가 나중엔 인류의 생존방식이 되었던 것이다. 문화가 장족의 발전을 거둔 덕분에 인류는 다른 종을 통제하는 자연선택이라는 칼날을 피할 수 있었다.

 

생물진화와 문화진화는 오랜 진화 과정에서 나타난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닮았다. 생물진화의 긴 과정에서 더 많은 종과 같은 종 내의 다양한 형질이 발전했다. 36억 년의 생명사와 비교하면 문화사는 고작 100만 년밖에 안 됐지만 인류가 의식주와 오락을 생산하면서 나타난 다양성은 눈부실 정도다. 생물진화에서 '상위'의 개념은 의심을 받고 있지만, 문화진화가 상위로 나아간다는 데는 거의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문화진화의 메커니즘에는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이 적용된다. 문화에서 일종의 신기술과 신제도가 나타나면 실천, 연구, 반성을 통해 그 안의 잠재력을 발굴해내야 한다. 기술과 제도의 모든 장점은 만들어지면서부터 갖춰진 것이 아니며 끊임없이 개발한 결과이다. 문화의 후천적 획득형질은 전달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문화진보의 메커니즘이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을 '수용'했다는 것은 곧 그 메커니즘 내에 다른 성분이 존재함을 암시한다. 생물진화에도 존재하는 새로운 인자, 즉 변이에 대한 의존이다. 변이가 발생하지 않는 인자는 생물에서든 문화에서든 진화하지 않는다.

 

 

 

 

민족주의적 역사관에서 벗어나자

 

이밖에도 우리는 인류가 글자를 발명함으로써 위대한 발전을 가능케했다고 해석했다. 심지어 글자를 사용하지 않는 민족은 미개하다고까지 했다. 하지만 저자는 이에 반론을 제시한다. 흉노족의 사례를 예로 든다. 즉 흉노는 문자를 몰라서 사용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정착민인 중국에 대항하고자 일부러 글자를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들의 국가 체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견해를 내놓는다.

 

우리는 고려의 인쇄술을 구텐베르크의 활판술과 비교하면서 우리의 인쇄술이 세계 최초하는 사실에만 주목한다. 이에 대해서도 저자는 독특한 시각으로 접근한다. 고려 때 활자가 등장한 동기는 재료의 부족, 조판을 위한 조각가의 부족, 양반 중심의 제한된 수요 등으로 인해 발생된 창조물로 한국에선 한민족의 위대한 발명품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아무튼 기원에 대한 흑백논리에서 벗어나 구텐베르크의 활판인쇄술이 발전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알파벳이라는 서양문명의 특징이 있었기에 순식간에 유럽 전역에 파급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가히 지식 정보의 혁명이었다.

 

총 7장에 걸쳐 써내려간 저자는 편협한 민족주의를 초월해야 함을 강조한다. 예컨대 인장印章, 석비石碑, 청동靑銅에 필요한 제련 기술은 모두 서양에서 중국으로 전해졌는데 이때엔 실크로드도 개설되기 이전이라는 사실을 언급하면서 중국 역시 서양의 진귀한 보물과 정교한 수공예품을 부러워했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이렇듯 민족주의적 역사관에서 벗어나자는 메세지를 우리에게 던지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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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억 월급쟁이 부자들 - 투자의 고수들이 말해 주지 않는 큰 부의 법칙
성선화 지음 / 다산북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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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여의 재테크 팀장 생활을 청산하고 새롭게 투자은행 부서로 옮기게 됐다. 생소한 시장 적응에 안간힘을 쓰고 있을 무렵, 귀가 쫑긋해질 만한 뉴스가 들려왔다. "최근 모 사모펀드가 성과 보수로 수백억 원을 받았어요" 전두엽에 짜릿한 충격이 전해졋다. 근로소득만으로 그러니까 정확히는 연봉과 성괴급만으로, 수백억 원대 부자가 된 '화이트 칼라(근로소득자)'들이 존재했다. - '프롤로그' 중에서

 

 

투자업계의 성공신화들을 만나다

 

저자 성선화는 더이상 재테크 전문기자로 불리기를 원치 않는다. 재테크라는 작은 시장에 갇히기엔 기대하는 꿈이 너무 크다. 해를 거듭할수록 기자가 천직임을 알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이미지로 현상을 인식한다. 알지 못한다고 해서,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함부로 평가하여 말하고, 진실로 오도하는 이들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녀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신시장의 존재를 알리고자 이 책을 썼다고 한다. 믿고 보고 노력하는 사람에겐 이 시장은 희망의 빛이 될 것이다. 기자로서의 그녀의 역할은 여기까지다. 그 이후는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의 몫일 것이다. 2006년 한국경제신문에 입사, 2012년 이데일리 신문으로 자리를 옮겨 사회부, 건설부동산부, 금융부, 증권 시장부를 거쳐 현재는 투자은행(IB) 시장을 취재 중이다.

 

독자와의 접점을 넓히기 위해 블로그, 특강, 방송 활동 등을 하고 있다. SBS <좋은아침>, tvN <쿨까당>, JTBC <슈퍼리치> 등에 출연했다. 저서로는 <빌딩부자들>, <월세의 여왕>, <재테크의 여왕>, <결혼보다 월세> 등이 있다. 새로운 정보에 늘 목말라 있기에 신시장이 열리는 그 길목에, 남들보다 한발 앞서 가 있고자 한다. 그녀가 발로 뛰며 인터뷰한 투자업계의 동향들을 만나보자.

 

 

 

 

1년 동안 고구마줄기 캐듯 100여 명을 만나 취재하면서 저자는 월급쟁이 부자들의 실체를 파헤쳐 보았다. 그런데, 이 부자들은 일반적으로 말하는 그런 월급쟁이는 아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투자업계에서 대체불가능한 인재로 인정받으면서 개념설계 능력이 가능했고, 마치 프로축구계의 몸값 높은 스타 플레이어처럼 거액의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너무 비관적일 필요는 없다. 이들이 모두 금수저 출신은 아니었다. 비록 흙수저 출신일지라도 '대체투자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는 특화된 DNA를 가지지만 하면 되기에 말이다. 그렇다면 무슨 특별한 능력을 가져야 할까? 책은 서문에서 이런 흙수저 인재의 다섯 가지 '꼴', 즉 끼, 깡, 이미지, 끈, 꾼 등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한다.

 

첫째, 왠지 잘될 것 같은 촉이 발동하면 이 거래를 절대로 놓치지 않는 하이에나 근성

둘째, 부딪혀야 할 이해관계자들의 십자포화를 견뎌낼 맷집

셋째, 좋은 분위기를 이끌어낼 수 있는 호감

넷째, 수적數的이 아닌 질적質的으로 유익한 인맥

마지막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프로 정신

 

 

아낌없이 주는 '기버giver'가 성공한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트랜스링크캐피탈과 과학기술인공제회의 출자로 설립된 법인 세마트랜스링크의 박희덕 대표는 좋은 투자처의 발굴이 투자 수익률을 결정하는 핵심이라면서 클럽딜club deal을 설명한다. 이는 투자자들끼리 연합해서 공동 투자를 하는 행위이다. 평소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에게 '굿딜이 있는데 같이 가자'고 제안하는 것이다. 결국 '사람'과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셈이다.

 

미국의 심리학자 애덤 그랜트<기브앤테이크>에 따르면 인간의 유형을 '기버giver'와 테이커taker'로 나누고 이 둘의 중간 형태로 '매처matcher'가 있다고 한다. 기버란 남에게 베풀 때 행복을 느기는 사람이며, 테이커는 남보다는 자신의 성취가 달성될 때 기쁨을 느끼는 사람이다. 중간 형태인 매처는 손해와 이익의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내 돈처럼 투자하라

 

정장근 JKL 파트너스 대표 선량한 관리자의 의무를 매우 중시하는 말을 한다. 국내 최대의 닭고기 가공업체인 하림은 자회사인 NS홈쇼핑 매각에 나섰다. 이를 의뢰받은 정 대표는 이번 매각은 전적으로 하림에게 불리하다면서 더 이상 딜을 진행하지 말자고 제안한다. 이는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인 셈이다. 그는 하림 회장으로부터 신뢰를 얻었기 때문이다.

 

 

장기투자에 꽃 길은 없다

 

대체투자는 최소 5년 이상 걸리는 장기 투자이다. 일반적으로 펀드 설정 이후에서 만기 청산까지 5~10년 이상 소요된다. 사모펀드는 '자금 모집-딜소싱deal sourcing-투자-투자회수'의 4단계로 진행된다. 매 단계가 최소 6~12개월 이상 걸린다. 이런 상황이니 어디 만만한 투자가 있겠는가 말이다. 

 

을지로 파인애비뉴 투자로 1400억 매각차익을 달성한 김형석 미래에셋자산운용 부장(현재, LB자산운용 대표)는 전날 과음을 했다. 1,500억 펀딩 중 150억만 승인이 나고 나머지 기관들은 모두 부결이 났기 때문이었다. 이 딜은 부동산 자산운용업계 최초로 착공전 선매입 형태로 추진되었다. 더구나 임차인이 확정되지 않은 오퍼튜니스틱 투자였기에 리스크가 큰 편이었다.

 

또한 평당 가격도 1,500만 원으로 주변 시세보다 높았다. 2006년 당시 오피스 임대료 시장은 연 5~10% 상승하고 있던 때였다. 그래서 장기적 안목으로 평가했을 때 개발로 인한 시세차익의 기대감은 컸다. 왜냐하면 당시만 해도 을지로 인근은 개발이 덜 된 재개발 대상 예정지였기 때문이다. 김 부장은 포기하지 않고 밀어붙여 결국 보험사 3곳, 은행 1곳의 투자승인을 이끌어냈다. 이후 빌딩은 순조롭게 착공, 2014년 8년 만에 외국계 투자자에게 성공적으로 매각되었던 것이다.

 

 

'위닝 프라이스'에 베팅하라

 

2014년 4월 30일, 글랜우드 PE와 NH농협 연합군은 법정관리 중인 동양매직의 매각 입찰에 참여했다. 예정 입찰가보다 높은 3천억 초반 가격에 베팅하여 관련 업계를 놀라게 했다. 사십대 초반의 이상호 글랜우드 PE 대표는 첫 딜에서 '위닝 프라이스'로 승부수를 던졌던 것이다. 그는 동양매직을 일반적인 시각과는 달리 제조업이 아닌 우통업으로 접근했다.

 

인수후 동양매직이 내놓은 직수형 정수기는 렌털 시장에서 대성공이었으며, 나아가 정수기에 사물인터넷을 탑재함으로써 제품의 경쟁력을 한층 강화시켰던 것이다. 그 결과 구조조정을 통한 일반적인 바이아웃 딜과는 달리, 인수후 동양매직의 직원 수는 오히려 증가했다. 경영성과는 전 직원의 의기투합으로 급속히 개선되었다. 2016년, 동양메직은 SK그룹에 6,100억원에 매각되었다.(실제 인수가는 2,900억원으로 알려짐)

 

 

연봉 체계가 다르다

 

국내의 대표적인 흙수저 출신인 송인준 대표의 IMM PE의 연봉체계는 기본보수, 성공보수, 투자보수의 3단계로 구성되어 있다. 기본보수는 펀드의 운용보수로 수령하는 위탁자산의 1~2%를 수령하는 수수료이며, 성공보수는 게인별 성과애 따라 송 대표가 판단해서 지급하는 것이며, 투자보수는 담당 펀드의 투자성과에 따른 보수인데 통상 기관투자자는 투자금을 출자할 때 운용사 매니저들에게 일정 금액을 투자하도록 요구한다.

 

이는 기관투자자의 투자금을 자기 돈처럼 책임감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다. 통상 직급이 높은 파트너들이 투자하는데, IMM은 파트너와 직원 모두 일정액을 투자하도록 한다. 목돈이 어려운 직원들에게 저금리로 대출까지 해주는 제도를 확립하고 있다. 투자 성과에 따른 인센티브가 거액이기에 100억 부자들이 탄생할 수 있는 배경인 셈이다.

 

 

최고급 인재들이 펼치는 두뇌 전쟁

 

대한민국 상위 0.01%의 월급쟁이 세상을 바라보았다. 재테크로 부를 일구어 보겠다는 재태크족들에게 어쩌면 상대적 허탈감을 안긴다. 심지어 투자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일지라도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저자가 원했던 바는 가난하지만 똑똑한, 그래서 부자가 되려는 열정을 가진 사람들에게 이런 세상도 있음을 알려주고 더욱 정진하라는 것이었을 테지만 말이다. 투자업계의 생리가 궁금한 사람이라면 이 책을 펼쳐 읽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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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진 사다리 - 불평등은 어떻게 나를 조종하는가
키스 페인 지음, 이영아 옮김 / 와이즈베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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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내 난동 연구가 보여주는 또 다른 인상적인 사실은 불평등과 가난이 동의어가 아니라는 것이다. 아주 비슷하게 느껴지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나는 이 책에서 바로 이 현상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불평등이 심해지면 가난하지 않은 사람들가지 빈곤감을 느끼고 가난한 사람처럼 행동하게 된다. 머릿속에 불평등과 가난은 빼닮이 있기 때문이다. - '들어가는 글' 중에서

 

 

불평등과 가난은 동의어가 아니다

 

비행기 이코노미석의 승객이 더 좋은 좌석으로 업그레이드되는 불평등을 목격할 경우 기내에서 소동을 벌릴 확률이 훨씬 커진다고 말하는 저자 키스 페인은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에서 심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불평등과 차별이 인간의 마음을 형성하는 원리에 관한 연구를 선도하고 있는 미국 심리학계의 차세대 리더이다.

그가 주로 연구하는 주제는 사람은 '왜 불평등이 심할수록 자멸적인 의사결정을 내리는가?', '왜 가난하다는 느낌이 실제 가난만큼이나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가?', '왜 공정하려고 노력해도 편향될 수밖에 없는가?'로, 실험심리학을 이용하여 그 이면에 숨겨진 감정적, 인지적인 메커니즘을 밝혀내고 있다. 그의 연구들은 불평등이 사람들을 예측 가능한 방향으로 바꾸는 방식에 대한 중요하고도 새로운 통찰을 보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가난을 개인의 인격적 결함으로 보는 잘못된 시각을 바로잡아 주었다.

책 제목'사다리'는 불평등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즉 사다리를 올라갈수록 더 나은 지위와 소득, 건강, 안전, 미래를 누릴 수 있으며, 그 사다리의 아래쪽에 있다면 죽음조차 불평등하다. 책의 내용에 소개된 심리학, 신경과학, 행동경제학 분야에서 이루어진 다양한 연구들은 불평등이 경제적으로 우리를 분열시킬 뿐만 아니라, 도덕적 개념에 대한 시각까지 바꿔놓는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일반적으로 불평등은 가난 때문이라고 단정하기 쉽다. 하지만 저자는 이와같은 섯부른 단정에 철퇴를 가한다. 불평등의 문제는 소득 불균형이 아닌 상대적 평가 내지는 인식과 관련이 깊다고 주장한다. 즉 중산층이나 부유층이라 할지라도 상대적으로 스스로 빈곤감을 느낀다면 자신이 마치 가난한 사람인 것처럼 행동하며 나아가 이런 행동은 사고방식은 물론이고 건강, 기대수명, 정치성향, 신앙심 등에까지 전반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설명이다.

 

 

 

 

 

무상 급식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

 

무상無償은 말그대로 '공짜'를 의미한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는 우스개소리가 있을 정도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짜를 좋아한다. 하지만 엄정한 잣대로 따져볼 때 사실상 이 세상에 공짜란 없다. 우리들은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기 때문이다. 저자 또한 무상 급식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았을 때 친구들 간의 계층 차이가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고 고백한다.

 

그렇다. 똑같은 학교 유니폼을 입었지만 급식비를 내고 식사를 하는 아이들은 왠지 더 잘 차려입은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신발도 양말도 헤어스타일도 달라보이기 시작했다. 가정 형편이 넉넉치 못해 집에서 대충 가위로 머리카락을 자른 것과 비싼 미용실에서 스타일리스트가 멋지게 꾸민 헤어컷이 같을 리가 없다. 심지어 말투조차 다름을 느꼈다. 무상 급식자들은 특유의 느릿느릿한 말투를 구사했고, 급식비를 내는 아이들은 마치 뉴스 앵커 같은 목소리로 말했던 것이다.

 

그렇찮아도 내성적이었던 저자는 이후부터 학교에서 거의 입을 닫다시피했다. 그의 눈에 계층의 사다리가 보이기 시작하면서 층층의 계층이 그의 위로 쭉 펼쳐져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사다리가 내보내는 메시지를 해독하는 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신발, 헤어스타일, 말의 억양에 따라 아이들은 각기 서로 다른 사다리 층에 위치해 있었다. 물론 그의 주변에는 그 어떤 것도 변하지 않았다. 단지 그의 시각이 바뀌었을 뿐이다. 보이는 것만큼 안다고 했다. 이제 그는 가난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

 

사실 오래전 먼 옛날부터 인간 사회에는 계층의 사다리가 존재해왔다. 그런데, 빠른 속도로 세상이 변하면서 작금의 사다리는 초고층빌딩만큼 높아졌다. 바라만봐도 아찔하다. 아무튼 인간은 높은 지위에 도달하려는 욕망을 지녔다. 점점 더 높은 곳으로 말이다. 한편으로는 자신의 위치가 어디쯤인지 생각해본다. 여기에서 비교의 문제가 등장한다. 나아가서 상대적 빈곤감을 느끼게 된다. 이런 주관적인 인식은 향후 자신의 삶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

 

 

왜 더 많이 버는 사람들의 만족도가 더 낮을까?

 

고전 경제학에서는 노동을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특정가격에 매매할 수 있는 상품으로 취급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 적은 시간 동안 일하고 더 많은 돈을 받을 때 더 만족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하지만 경제학자 앤드루 클라크앤드루 오즈월드는 소득과 만족도 간의 상관관계를 분석햇더니, 이상하게도 소득 상위 20%에 속하는 사람들이 하위 20%에 속하는 사람들보다 만족도가 약간 낮았고, 근무 시간은 만족도에 그리 영향이 미미함을 밝혀냈다. 사실 이해하기 어려운 결과였다.

 

 "가난뱅이는 백만장자를 질투하지 않는다. 더 잘 나가는 다른 가난뱅이를 질투한다"

- 버트런드 러셀

 

왜 더 많이 버는 사람들의 만족도가 더 낮을까? 한 가지 이유는 사다리를 올라갈수록 사회적 비교도 변하기 때문이다. 상위 20퍼센트의 고소득자는 더 높은 곳을 비교 대상으로 삼을 것이다. 1년에 20만 달러를 버는 가정의학 전문의는 100만 달러를 버는 뇌 외과의와 자신을 비교하면 불만이 생길 것이다. 물론, 돈보다는 상대적 비교가 만족감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가정 하에서 그렇다.

 

 

더 이상 잃을 게 없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존재는 '더 이상 잃을 게 없다'고 마구 덤비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피하는 게 상책이다. 한 연구에 따르면 마약 조직원들 대부분은 최저임금을 벌면서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왜 그들은 많은 돈을 버는 것도 아니면서 이처럼 위험천만한 일을 택했을까? 일반 조직원들은 서로의 생활을 들여다 보기에 자신들이 힘든 일을 한고 있다고 생각치 않는다. 비록 성공 가능성이 낮지만, 성공애 대한 희망 때문에 큰 위험도 감수하는 것이다.

 

오늘 집세 1000달러를 내지 않으면 집을 잃게 될 경우를 당했을 때 어떻게 하겠는가? 도박에서 500달러를 딸 수 있는 확률이 90퍼센트, 1000달러를 딸 수 있는 확률이 40퍼센트라면 어느 쪽을 택하겠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확률은 낮아도 1000달러를 딸 수 있는 쪽을 택할 것이다. 따기만 하면 집세 문제가 해결될 테니 말이다. 이는 기대효용의 관점에서 보면 비합리적이지만, 다른 의미에서는 합리적이다. 수학적으로 최선인 거래보다 기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더 중요할 때도 있다.

 

 

정치 성향에도 영향을 끼친다

 

우리는 자기와 의견이 같은 사람은 똑똑하고 통찰력 있다고, 의견이 다른 사람은 현실을 제대로 못 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나는 절대로 옳고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은 어리석다고 믿는 성향이 갈등을 부추긴다. 심리학자 리 로스가 주장했듯이, 내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 있다고 굳게 믿는 이상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의 행동을 편협한 시각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그가 무능하거나 비합리적이거나 아니면 악한 인간일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니 어떤 논리적인 설명으로도 그를 설득할 수 없을 거라고 단정 지어 버린다.

 

"알고 있었나요? 나보다 천천히 차를 모는 사람은 멍청이, 나보다 더 빨리 달리는 사람은 미치광이라는 걸" - 코미디언 조지 칼린 


이런 경향이 자신을 부자로 느끼는 사람들에게 특히 강하게 나타난다면, 불평등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염려되는 점이 있다. 소수의 최상류층이 수많은 노동자들에게서 점점 더 멀어질수록, 그들의 정치적 견해도 바뀔 가능성이 높다. 그들은 사리사욕을 진정한 원칙과 혼동하고, 자기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무시할 것이다. 무능하고 비합리적이며 비도덕적인 인간으로 보이는 상대와는 타협하고 싶은 마음도 생기지 않게 마련이다.

 

높은 지위에 있다는 우월감이 생기면, 자신은 현실을 제대로 보는 반면 상대방의 생각은 잘못됐다는 느낌이 다욱 커진다. 사회적 사다리의 꼭대기와 밑바닥이 서로 멀어질수록 정치는 점점 더 분열될 것이다. 정치학자 놀런 매카티와 그의 연구진은 1947년 이후 미국 의회에서 얼마나 양극화되어 왔는지 측정했다. 소득 불평등을 측정한 지니계수와 미 하원의 정치적 양극화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궤도를 그려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불평등은 건강에도 영향을 미친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미국을 비롯한 경제 선진국의 사망률은 꾸준히 떨어졌지만, 눈에 띄는 예외가 있다. 1990년 이후 중년 백인 미국인들의 사망률은 상승한 것이다. 이런 현상은 대학 학위가 없는 백인 남자들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동일 연령대 흑인 미국인들의 사망률이 더 높긴 하지만, 다른 소수 집단들의 경우처럼 서서히 감소하는 추세였다.

 

저학력의 중년 백인 남자들은 무너진 기대 때문에 죽어가고 있다. 고등학교까지 졸업한 백인들은 비슷한 학력의 흑인들보다 평균적으로 더 많이 벌긴 하지만, 백인으로서 예부터 누려온 특권이 있기 때문에 더 많은 것을 기대하는 경향이 있다. 경제학자 앤 케이스앵거스 디턴은 소득 불평등이 점점 심해지고 사회 계층 간 이동이 정체되어 있기 때문에 지금 이 세대는 미국 역사상 최초로 그 부모 세대보다 부유하지 못한 세대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불평등과 신앙심의 상관관계

 

종교가 널리 퍼지는 데에는 소득뿐만 아니라, 국가 특유의 역사와 문화 같은 다른 요인들도 작용한다. 예를 들어, 미국은 종교적 박해를 피해 달아난 이민자들의 손에 세워졌으니 이례적인 수준의 독실함도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최근의 연구 결과를 보면 더 강력한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정치학자 프레더릭 솔트는 광범위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여 여러 국가의 종교성 수준을 조사한 후, 일반적인 동향과 예외적 경우를 모두 설명할 수 있는 길을 찾았다.

 

공산주의 국가들과 비공산주의 국가들 간의 차이를 고려하자 중국은 더 이상 예외 국가에 속하지 않았다. 훨씬 더 중요한 요인은 소득 불평등이었다. 불평등이 심한 국가일수록 평등한 국가보다 종교성이 훨씬 더 강했다. 불평등은 실제 소득만큼이나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종교와 소득 불평등 간의 관계로 그래프를 작성하자 미국 역시 정상 분포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가난과 불평등을 함께 고려하면 국가들 간의 종교성 차이를 대부분 설명할 수 있었다.

 

 

 

흑과 백의 불평등

 

흑인 남성, 흑인 여성, 백인 남성, 백인 여성의 얼굴에서 골라낸 특징들을 합쳐 합성사진을 하나 만들었다. 이 얼굴에 시각적 소음을 더했다. 이 과정을 수백 번 반복해서, 서로 약간 다르고 약간 흐릿해 보이는 수많은 얼굴들을 만들어냈다. 그런 다음 연구 참가자들에게 사진을 두 장씩 짝지어 보여주며, 두 사람 중에 복지 수혜자처럼 생긴 사람을 골라보라고 했다. 우리는 '복지 수혜자'로 평가받은 모든 이미지들을 결합한 다음, '비수혜자'로 선택된 이미지들끼리 또 따로 결합하여 두 장의 새로운 합성 사진을 만들어냈다.

 

새로운 참가자들에게 그 두 사진을 보여주자 그들은 복지 수혜자의 사진을 흑인으로, 비수혜자의 사진을 백인으로 묘사하며 수혜자는 게으르고 무책임하고 적대적이고 무식해 보인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인간 같아 보이지 않는다는 오싹한 평가를 내린 사람도 있었다. 비수혜자는 눈이 선명하게 보이는 반면 수혜자의 눈은 움푹 꺼져 있다. 인종과 불평등은 아주 단단하게 뒤얽혀 있다. 경제적 불평등은 지위에 근거하여 '우리'와 '그들'이라는 이분법을 만들어내고, 인종 편견도 한층 강화시킨다.

 

 

소득의 증대가 불평등을 해소하는 게 아니다

 

사람들은 불평등과 가난을 자주 혼동하고, 불평등 감소라는 목표를 경제 성장의 목표와 혼동한다. 하지만 불평등이 사람들의 건강과 선택, 정치 및 사회적 분열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 결과들을 보면, 경제 성장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지니계수와 관련된 통계를 보면, 불평등을 조장하는 가장 큰 요인은 부자들의 부유함이다. 누군가가 하룻밤 사이에 모든 사람들의 소득을 2배로 만드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내놓는다면, 불평등 문제는 나아지기는커녕 더 심각해질 것이다. 1년에 1만 5000달러를 버는 사람의 소득은 3만 달러가 되겠지만, 백만장자들의 소득은 그보다 훨씬 큰 액수로 늘어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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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작의 미술사 - 미술사를 뒤흔든 가짜 그림 이야기
최연욱 지음 / 생각정거장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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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3대 범죄를 꼽자면 마약 유통, 총기 및 묵 거래, 그리고 미술 범죄다. 미술작품은 실제로 그림 제작에 들어간 비용에 비하면 엄청난 이윤이 남는다. 유통 단계도 복잡하지 않아서 작품이 준비되면 구입하겠다는 고객을 찾아 넘기고, 돈을 받으면 된다. 문제가 있다면 '돈이 되는 작품'을 구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위작이 등장한다. 위작은 원작에 비해서 구하기가 훨씬 쉽다. - '시작하며' 중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위작은 유통되고 있다

 

이 책 <위작의 미술사>는 지금까지 일어난 위작 사건들을 소개하며 그리스부터 현대까지의 서양미술사를 위작을 통해 바라본다. 원작과 똑같이, 혹은 원작보다 더 원작같이 그리기 위해 사용한 기법을 통해 미술사조별 특징을 알아보고, 미술과 위작이 우리 일상에 끼친 영향도 재미있게 풀어봄으로써 미술사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책의 저자 최연욱은 미국 마샬대학교에서 순수미술과 시각디자인을 전공했고, 부전공으로 종교학과 미술사를 공부했으며 '동양미술의 성모 마리아의 도상학적 분석(2002)'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졸업 후 3년간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다가 전업 화가로 전향했으며, 전시회를 열기도 했고 공모전에도 수차례 입상했다.

 

2007년부터 2010년까지 온라인 카페를 통해 매월 한두 번씩 미술초보자들과 전시 탐방 모임을 가졌다. 2007년부터는 전 세계 30여 개국의 미술관과 박물관을 직접 다니며 모은 자료를 바탕으로 추천할 만한 국내외 미술관과 박물관 130여 곳을 선정해, 블로그에 '미술관 가는 길'이라는 제목으로 업데이트하고 있다. 유럽 각지를 여행하며 빈센트 반 고흐의 발자취를 찾아다녔고, 우키요에 거장 카츠시카 호쿠사이의 후카쿠 36경을 답사하기도 했다. 2014년부터는 블로그에 '서양화가 최연욱이 들려주는 재미있는 미술 스토리'를 매일 연재하고 있으며, 그 중 반 고흐 스토리는 현재 약 70편 가량 된다. 저서로는 <비밀의 미술관>이 있다.

 

위작僞作은 매우 흥미로운 주제이다. 이는 속임수이며, 불법과 합법, 모방과 창조의 선을 넘나드는 뒷이야기들이 마치 탐정물을 대하는 것처럼 짜릿한 긴장감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책의 내용은 거장 위주로 또는 시대 순으로 주요 작품을 나열하며 구구절절 설명하는 기존 방식에 비해 100배는 더 즐겁다. 그럼에도 여전히 미술은 어렵다는 선입견이 있기에, 위작을 이용해서 서양미술사를 풀다 보면 '어느 순간 알게 돼버리는' 놀라운 경험을 맛보게 된다.

 

 

 

 

위작, 모작, 그리고 대작

 

일반적으로 위작의 방법으로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이미 존재하는 작품을 똑같이 그리는 것이고, 둘째는 위작할 화가의 스타일을 습득해 마치 원작 화가가 그린 것처럼 새로운 작품을 만드는 것이다. 기존 작품과 똑같은 그림을 그리는 것은 상대적으로 쉬운 일이다. 미술학도들도 거장들의 작품을 모작하면서 자신의 실력을 배양하니 말이다. 얼마 전에 물의를 일으킨 가수 조영남의 경우는 다른 사람이 대신해서 그림을 그려서 문제가 되었던 것이다.

 

모작模作~ 취미 또는 연습용, 타인의 작품을 그대로 본떠서 만든다

위작僞作~ 어떤 의도를 갖고 다른 작가의 작품을 그댜로 본떠서 만든다

대작代作~ 작가를 대신해서 작품을 만든다

 

아래는 베네수엘라 카라카스 현대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붉은 바지의 오달리스크〉로, 앙리 마티스 작품이다. 얼핏 보면 비슷하면서도 많이 다른 두 점의 작품이다. 하나는 진품이고 하나는 위작이다. 어느 작품이 진품일까? 앙리 마티스의 원작은 왼쪽이다. 그런데 위작이 더 잘 그린 것 같지 않은가?

 

 

 

고작 한 살에 조각을 할 수 있을까?

 

르네상스 조각의 거장 미노 다 피에솔레가 조각한 1430년에 죽은 마리아 카타리나 사벨리의 대리석 무덤, 석관에 누워있는 여인과 그 주변에 화려한 문양 그리고 기둥과 장식 등 어느 부잣집 부인의 무덤이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1924년 4월 3일에 미국 보스턴 미술관은 이 작품을 미술관 입구에 전시했을 정도였다. 대리석 무덤 하단에는 라틴어로 '서기 1430년 마리아 카타리나 사벨리가 죽었다'고 새겨져 있었다. 그러나 이 작품은 4년도 못되어 반품되고 말았다. 하단에 새겨진 라틴어 문장 때문이었다. 

 

마리아 카타리나는 교황 오노리오 4세를 배출 한 로마의 명문 사벨리 집안 며느리였다. 미노 다 피에솔레(1429~1484년)가 그녀의 무덤을 만들었을 당시 그의 나이는 고작 한 살이었다. 아무리 천재 거장 조각가인들 한 살에 기저귀를 차고 대리석을 깎았을 리도 없고, 라틴어를 구사하지도 못한다. 사실 이작품은 당초 뉴욕의 대형 미술관인 프릭 컬렉션의 창립자 헨리 클레이 프릭의 딸 헬렌 클레이 프릭에게 팔려고 했지만 그녀의 안목에 차지 않아서 거래가 성사되지 않았다고 한다.

 

 

 

위작은 물감 때문에 탄로난다

어떤 경로로 이탈리아에서 영국으로 오게 됐는지 불분명하고, 그저 르네상스 시절의 산드로 보티첼리가 그린 것으로 피렌체 메디치 집안에 걸려 있던 걸작이라고만 알려진 <베일을 쓴 마돈나〉는 '판넬'에 그려진 작품으로, 작품 중간 중간에 벌레가 나무를 파먹어서 뚫린 구멍이 있었다. 하지만 엑스선으로 찍어보니 반듯한 일자 형태의 구멍이었다. 벌레는 이리저리 꿈틀거리며 다니므로 구멍이 곧게 뚫릴 수 없는데 말이다. 결국 누군가 인위적으로 못을 박아 구멍을 냈다는 얘기였다.

 

시간이 한참 더 지나 1994년에는 학자들이 작품의 재료를 분석하는 기술인 EDX로 이 작품을 샅샅이 분석했다. 그 결과 짙은 코발트블루, 노란색에 가까운 징크 크로메이트 , 크롬 옥사이드 그린 등의 염료가 사용된 것이 확인됐다. 짙은 파란색인 코발트블루는 1800년대 초 물감으로 처음 만들어졌고, 녹차색인 크롬 옥사이드그린은 1860년대까지는 없던 색이다. 산드로 보티첼리는 1445년에 출생, 1510년에사망했으니, 타임머신을 타지 않은 이상 19세기 화방에서나 살 수 있었던 안료로 그림을 그릴 수가 없는 것이다. 이 작품은 위작 화가이자 이탈리아 시에나 미술대학교 강사였던 움베르토 준티가 그린 것으로 밝혀졌다.

 

 

 

프란시스코 데 고야의 2층 벽화는 진짜일까?

 

말년에 고야는 <아들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를 포함한 총 14점의 작품을 방과 거실, 부엌 등의 벽에 유화물감으로 그렸다고 한다. 워낙 어두침침한 그림이라서 이를 '검정 그림 시리즈'라고 부른다. 그런데 원래 고야가 살았던 시절에는 1층 집이었다고 한다. 고야가 손자 마리아노에게 유산으로 물려준 1830년 서류에는 1층 건물로 등록돼 있다. 즉 2층은 고야가 죽고 나서 증축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2층의 7점은 누가 그린 것일까? 2층이 완공되고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 돌아와 그리진 않았을 것이고 누군가가 고야의 스타일로 2층의 7점을 그렸다는 얘기가 된다.

 

여기에 대해서는 아직도 학계에서 많은 조사가 이뤄지고 있다. 서류가 잘못 기록됐을 수도 있다. 집을 유산으로 물려줬을 때는 고야는 이미 정신병이 심해서 2층을 1층으로 표기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퀸타 델 소르도는 워낙 외지에 있어서 기록 역시 충분하지 않아 누구 하나 작품의 진위 여부에 대해서 시원하게 말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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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 경제학 - 우리 일상을 지배하는 생활밀착형 경제학 레시피
유성운.김주영 지음 / 21세기북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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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한 장의 지도에서 시작됐습니다. 인터넷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소위 '걸그룹 세력도'라는 지도입니다. (중략) 솔직히 소녀시대의 팬으로서 생각보다 소녀시대의 영토가 작다는 불만이 없었던 건 아닙니다. 결국 지도를 직접 만들어 보기로 했습니다. 빅데이터를 분석한 통계를 바탕으로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지도를 말입니다. - '들어가는 말' 중에서

 

 

생활밀착형 경제 기초상식

 

책의 저자 유성운은 현재 중앙일보 정치부 기자다. 어린 시절 인디아나 존스를 꿈꿨으며,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입사한 언론사에서 10년 넘게 버티고 있다. 중앙일보에서 현재 정치부 기자로 국회에 출입하고 있는데, 이 책을 계기로 머지않아 다른 부서로 보내질 것 같다. 공저자 김주영은 다음소프트 데이터 엔지니어로 대학을 졸업한 후 우연히 입사한 이 회사에서 소셜 빅데이터를 분석하고 전달하는 일을 해왔다.

 

흔히 십이십대가 아닌 아저씨 팬을 걸그룹은 '삼촌팬'이라고 부른다. 소위 걸그룹 덕후인 두 저자는 2007년 소위 2세대 걸그룹의 시초라 불리는 소녀시대와 원더걸스가 등장한 뒤 마음 한구석에 궁금증으로 남아 있던 의문을 각종 사회경제학적 이론의 틀을 빌려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 생활밀착형 경제원리 중 반드시 알아야 31개의 사회경제법칙을 풀어나간다.

책의 설명에 따르면 걸그룹 멤버수가 점점 증가하는 이유는 링겔만 효과 때문이며, 걸그룹이 시청률 3%의 가요 프로그램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버핏 효과 때문이다. 걸그룹에도 8020의 파레토 법칙이 적용되고, 레임덕이 있으며,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프로듀스101'의 'PICK ME' 노랫말에는 지프의 법칙이 적용된다.

 

걸그룹 세력도는 단순히 인기의 척도를 말하는 게 아니다. 그 속에는 수많은 경제 이론과 고도의 심리전이 담겨 있다. 이처럼 이 책은 경제학에 대한 기본지식이 전무한 사람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복잡한 사회경제문제를 명쾌하게 풀어낸다. 즉 총 31 꼭지의 이야기들 속에 숨어 있는 다양한 경제 이론, 법칙, 원칙, 용어, 그리고 효과 등을 알기 쉽게 설명해 주고 있는 것이다.

 

 

 

 

선점효과

 

유명한 엔터테인먼트 회사는 청담동 주변에 위치하고 있었다. 왜 그럴까? 첫째로 '캐스팅'이다. 과거 강남역이나 가로수길 등에서 소위 '얼짱'을 포함한 유망주들을 픽업하는 케이스가 많았다. 영화배우 정우성, 이정재, 전지현 등이 그런 사례이다. 둘째로 청담동에 엠넷이 있어서다. 엠넷은 가요계에서 가장 큰 파워를 지녓기에 자연스레 엔터테인먼트 회사들이 여기로 모여 들었다. 셋째로, 편리한 협업 때문이다. 작곡가, 프로듀서 등이 강남에 거주했고, 스튜디오를 위시한 각종 시설이 주로 신사동 일대에 분포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비청담동 지역으로 속속 분화되고 있는 중이다.

 

수확체증의 법칙이라는 경제용어가 있다. 스탠퍼드대학교 브라이언 아서 교수가 주창한 이론인데, 이는 도입 초반 시장에서 차지한 작은 우위가 결국 뒤집기 어려운 결과로 자리잡는다는 걸 보여준다. 키보드를 살펴보자. 현재 자판의 배열방식은 비효율적인 것으로 악명이 높다. 자모음 배치가 거의 연결되지 않는 방식으로 되어 있어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엉터리 배열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당시 타이피스트가 자판을 빨리 치면 엉퀴는 문제가 발생했던 것이다. 그래서 1873년 공학자 크리스토퍼 숄스는 모음(a,e,i,o,u)을 멀리 떨어뜨려 놓아 빠른 타이핑시 엉키는 문제를 해결했다. 이후 1932년, 오거스트 드보락이 모음 등을 가운데에 집중적으로 배열한 드보락 키보드를 출시했다. 이 키보드로 타이핑 속도가 혁신적으로 개선됐지만 현재까지 살아남은 키보드는 오히려 종전의 악명높은 키보드(쿼티)이다.

 

왜 그럴까? 타이피스트들은 맨 처음 출시된 쿼티를 줄곳 사용해 왔기에 다소 불편하더라도 이를 수용한 반면 새로 출시된 드보락 키보드를 받아들이는 데에는 매우 인색했던 것이다. 또 다른 예로 비디오 녹화 재생도 이와 유사하다. VHS 방식과 베타 방식이 공용으로 사용되었고, 심지어 베타 방식이 기술적으로 우수하다고 평가받았는데도 시장에서의 최종 승리자는 VHS였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좀 더 먼저 출시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경제학에선 '선점효과'라고 부른다.

 

 

걸그룹도 상위 20%가 지배한다

 

MBC TV는 최근 몇 년간 설과 추석 연휴 때의 특집 방송으로 <아육대>를 준비, 방영해왔다. 아육대란 아이돌 육상대회으 약칭이다. 이 프로그램을 시청하다 보면 걸그룹이 정말 많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소녀시대 같은 최고 인기 그룹은 불참하지만 신인 걸그룹들은 대거 등장해 얼굴을 알린다. 이렇게 많은 걸그룹이 마르지 않고 출현하는 것은 아마도 돈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한 걸그룹의 예를 살펴보자. 걸스데이의 소속사는 드림티엔터테인먼트다. 이 회사의 경영고싱 자료에 따르면 2013년도의 매출액은 31억 9,900만 원, 순이익은 8억 7,600만원이다. 그런데, <진짜 사나이>에 멤버인 혜리가 출연해서 대박을 친 2014년도에는 거의 2배로 증가했음을 알 수 있다(매출 60억 1,700만 원, 순이익 19억 800만 원).

 

한편, 20:80의 법칙이라 불리는 '파레토 법칙'이란 경제용어가 있는데, 이는 상위 20%가 전체 부富의 80%를 보유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법칙은 걸그룹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참고로 이 그래프를 보면 이해하기에 쉽다. 그래프는 각 그룹별 멜론 차트 진입 횟수와 차트의 누적 점유율을 보여준다. 1위인 다비치는 577회, 2위인 소녀시대는 542회 진입했다. 총 212개 발표곡 중에서 트와이스(22위), 달샤벳(23위)까지 상위에 속한 23개 걸그룹이 80%를 차지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10.8%(23/212)가 80%의 비중을 점하고 있다.

 

 

그만큼 걸그룹의 수명은 짧은 편이다. 2세대 걸그룹이 나타나고 2년 동안 원더걸스와 소녀시대로 양분된 걸그룹은 이후 카라-티아라-2NE1(2010~2011년), 에이핑크-걸스데이-씨스타-AOA(2014~2015년) 등 지속적으로 바뀌었다. 소녀시대를 제외하고 상위 5위 안에 들어간 걸그룹이 2년 이상 자리를 유지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최근의 걸그룹 멤버는 왜 9명 이상일까?

 

걸그룹의 멤버는 몇 명이 이상적일까? 이에 대한 정답은 없다. 그런데, 분명한 추세는 최근에 들어 멤버의 수가 점점 증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SES와 핑클이 활동하던 1세대 걸그룹의 경우는 대부분 3~4명이었다. 5인조였던 베이비복스가 가장 많았다. 이후 슈가, 쥬얼리, 밀크, 디바 등 대부분 4명을 넘지 않았다.

 

2세대 걸그룹인 9인조 소녀시대의 등장 후 애프터스쿨(9명), 레인보우(7명), 티아라(7명) 등 다수의 멤버를 자랑하더니 최근 트와이스로 걸그룹 패권이 이동한 3세대에 들어서서는 트와이스(9명), 아이오아이(11명), 우주소녀(13명), 프리스틴(10명) 등 10명을 넘기는 걸그룹이 계속 등장하고 있다. 왜 이렇게 멤버 수가 증가하는 걸까?

 

여기에는 '규모의 경제'라는 원리가 녹아 있다. 멤버 수가 늘어나면 돈이 더 들어간다고 생각하기 쉽다. 늘어나는 것은 맞지만 한 명이 늘어날 때마다 1/n만큼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자동차의 대량생산 시스템과 같은 이치이다. 4인조 걸그룹으로 준비하다가 2명을 더 충원할 경우 이미 정해진 숙소에 2층 침대를 들이면 숙소 문제는 해결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수도세, 전기세 등은 조금 더 증가될 것이다.

 

9인조 소녀시대의 장점을 살펴보면, 윤아는 드라마로, 태연은 라디오로, 티파니는 음악방송 MC 등으로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면서 팬덤의 증가와 함께 이로 인해 반사적으로 매출의 증가로 이어진 것이다. '링겔만 효과'는 프랑스 농공학 교수 막시밀리앙 링겔만이 내린 결론인데, 수레를 끄는 2마리의 말 능력이 한 마리가 끌 때보다 2배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걸그룹에서 모든 멤버가 노래를 잘하지 못하는 이유도,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10여 명이나 되는 멤버가 모두 노래를 잘할 필요가 없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여기엔 비교경제학의 개념이 도입된다. 즉 비교우위의 원칙에 적용해 보면 태연에게는 노래, 효연에게는 댄스를 계속 연습시키는 게 이득이다. 왜냐하면 40일 동안 태연은 노래에서 4단계의 레벨을 올릴 수 있고, 효연은 댄스에 올인하면 역시 4단계를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지프의 법칙

 

미국의 언어학자이자 문헌학자인 조지 킹슬리 지프는 가장 자주 쓰이는 단어에 비해 두 번째로 자주 쓰이는 단어의 사용 빈도수는 절반에 불과하고, 세 번째로 자주 쓰이는 단어의 사용 빈도수는 1/3로 이어지는 식의 규칙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지프의 법칙'이라고 명명했다. 이런 식이라면 평소 많이 사용하는 어휘는 사전에 수록된 단어의 5%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즉 이 정도만 알아도 일상 대화엔 충분하다는 얘기가 된다.

 

지프의 법칙에서 착안해 실제로 2007년 이후 발표된 걸그룹 노래에서 주로 등장하는 단어들을 추려 봤더니 다음과 같은 결과가 나왔다. 단어를 추려 보니 대명사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어느 정도 예상된 결과였는데, 지프의 법칙에서도 그의 연구에 따르면 가장 많이 쓰인 단어는 관사였다. 'the'가 7%가 등장했고, 그다음으로는 'of'로 3.5% 정도 사용됐다고 한다. 대부분의 걸그룹은 '짤막한 음악 구절'을 반복하는 소위 '후크송'으로 팬들을 사로잡는다. 아이오아이의 'PICK ME'처럼 말이다. 이는 바로 지프의 법칙과 연관이 있다.

 

 

걸그룹의 성공과 실패 속에는 마케팅이 있다

 

지금 한국과 일본을 대표하는 걸그룹은 그래도 단연 소녀시대와 AKB48이다. 하지만 두 걸그룹의 위상은 매우 다르다. 일단 두 그룹이 각기 한국과 일본 내에서 1인자 역할을 하는 것은 논외로 하자. 소녀시대가 동남아와 미국, 유럽, 남미까지 팬덤을 갖고 있는 데 반해 AKB48은 일본 밖으로 나가면 인지도가 그다지 높지 않다. 이처럼 한국의 걸그룹이 훨씬 경쟁력이 높다. 이는 혹독한 스파르타식 교육과 훈련이 한 몫을 했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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