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기술
안셀름 그륀 지음, 김진아 옮김 / 오래된미래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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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저녁 밥상을 두고서 대화를 나누었다.

"당신은 '노년의 기술'을 뭐라고 생각해?"

"무식이"

짧은 말로 즉답을 하는 아내에게 그게 뭐냐고 재차 물었다.

 

나이든 아내가 최고로 꼽는 남편상이 '무식이'란다. 집에서 밥상을 한번 받는 남편을 '일식이', 두번 받으면 '이식이', 그리고 세번

받으면 '삼식이'라고 부른다는 설명이었다. 눈치 빠른 사람은 벌써 알았을 것이다. 그렇다. 집에서 식사를 하지 않는 남편을 '무식이'라고 한다. 그래서, 아내는 매일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찾고 아침상을 보라고 주문하는 나는 기술이 없는 노년이란다. 졸지에

두식이가 된 나는 아내의 개그콘서트에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부터 늙기 시작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날은 점점 줄어든다. 즉 평생을 두고 늙는 것이다. 그러나, 이 늙음은 기우는 것이 아니라 성숙의 과정이다" - 성 아우그스티우스 (8 쪽)

 

자연은 사계절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계절별로 나름의 의미를 지닌다. 우리들의 삶도 유아기, 청년기, 중년기, 노년기를 거치며 그 시기별로 각각의 의미를 갖는다. 청년기엔 자신의 삶에 대한 정체성을 찾는 때이며, 노년기에는 삶의 열매를 거두는 시기이다. 노년은 성장과 성숙, 탄생의 과정을 위해 삶이 우리에게 주는 마지막 기회인 것이다.

 

세계적으로 명망높은 영적 조언자인 안젤름 그륀 신부는 이 책을 통해 시간, 깨어남, 도전, 사랑, 내려놓음, 화해, 그리고 이별이라는 일곱 가지 주제어로서 노년에 대한 그의 명상을 이야기한다. 그의 말은 한마디로 오래 동안 그 향기가 남는 산사의 차와 같은 느낌을 준다.

 

시간

 

아이들에겐 시간이 느리게 간다. 반면 노인은 시간이 빨리 간다고 느낀다. 대부분 나이가 들면 들수록 점점 더 시간의 유한함을 느낀다. 우리는 소위 동안童顔이 최고인 시대에 살고 있다. 외모의 경제란 생각때문에 지난 10년간 미국의 미용성형이 무려 450% 증가했다고 한다. 그러나, 외관을 젊게 만든다고해서 젊어지지는 않는다.

 

'자기가 느끼는 만큼이 그 사람의 나이'란 말이 있다. 내면의 젊음은 나이에 상관없이 평생 가져야 할 마음자세이다.

 

깨어남

 

겉으론 나이가 들었지만 마음만은 젊은 노인의 경우, 우리는 오히려 존경심을 표하게 된다. 누구나 늙는다. 그리고 다르게 늙어간다. 늙는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갈수록 더 성숙해지려는 마음자세가 필요하다. 노년도 '퇴직 - 사회참여 - 병들어 죽음을 기다림' 이라는 단계를 거치게 된다.

 

노인들은 의지할 데 없는 처지, 외로움, 쓸모없다는 생각, 병으로 타인에게 의지해야 하는 상황이 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요즈음은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건강하게 사는 노인들이 많다. 몇 시간씩 등반을 할 정도로 정정한 사람도 있다. 그러나, 건강하다고 해서 자신의 한계를 도외시하거나 젊은이를 이기려는 욕심을 내어선 안된다. 단축 마라톤대회에서 젊은이를 추월했던 과거의 내 모습이 부끄럽기만하다. 건강은 선물일 뿐이다. 등산할 때 힘든 코스에게는 이젠 작별을 고하자.

 

오늘 날 오십대 후반의 직원에게 명예퇴직을 권유하는 것은 너무도 흔한 일이다. 이는 나이든 직원의 잠재력을 못 알아 보았기에 발생하는 처사이다. 그들은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문제의 핵심을 꿰뚫어보고 머릿속에 문제의 개념도를 그려낸다 (80 쪽)

 

도전

 

노년은 자신의 진짜 모습과 대면해야 하는 도전의 시간이다. 상상조차 하기 싫었던 노화를 수용하고 타인의 도움에 의지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이는 자신의 처지를 목도하는 때이다. 자신의 참모습을 대면함으로써 스스로 사랑하고 스스로에게 너그러울 수 있게 된다.

 

사랑

 

노년의 사랑은 다른 느낌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더 이상 감정의 격한 동요에만 그치지 않고 상대를 지켜봐주는 것, 있는 그대로의 그 사람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113 쪽)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사랑에 대한 낭만적인 환상을 갖고 산다. 노년의 사랑은 이런 환상과 작별하는 것이다. 늙은 부부들은 부부관계에 환멸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재미없다, 할 이야기가 없다 등의 넋두리를 늘어 놓는다. 이런 경우 두 사람은 지루한 관계가 되었음을 당당하게 인정해야 한다. 또한, 서로에게 매력적이지 않음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내 삶에 활기를 불러넣어야 할 사람은 바로 자기자신이다.

 

내려놓음

 

"바보들에게 노년은 겨울이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에게는 수확의 시간이다" (131 쪽)

 

진정한 의미의 수확은 나 스스로가 열매를 맺는 것이다. 노년에는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존재하느냐'가 중요하다.

지금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자. 지나간 실수와 상처 주위를 맴돌지 마라. 만일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한다면 이는 내적으로 더욱 그 사람에게 구속됨을 의미할 뿐이다. 자존감에 해를 끼친다. 상처에서 벗어나야 한다.

 

"사람은 자신감의 키만큼 젊다" - 알베르토 슈바이처 (144 쪽)

 

화해

 

만일 하루가 잔소리와 짜증, 말다툼으로 채워진다면 이는 엄청난 시간낭비이다. 성과에 얽매이지 마라. 시간이 아깝다고 최대의 성과를 얻기 위해 최대로 많은 일을 하는 것은 과연 현명할까? 더 많은 일을 더 잘해야 하다는 강박감으로부터 벗어나라. 의식적으로 시간을 느끼려고 노력하라. 온전히 순간을 느끼기, 대화속에 빠져들기, 사람들과의 만남을 즐기기, 타인을 위한 시간을 남겨두기는 노년에 습득해야 할 새로운 기술이다.

 

이별

 

살면서 우린 많은 이별을 경험한다. 정든 학교를 졸업하고, 먼곳으로 이사하면서 동네 친구와 헤어지고, 더 좋은 직장을 찾아 다니던 회사를 떠난다. 또한, 사랑하던 이와 크게 다툰 후 영영 헤어지거나 나이든 부모가 노환으로 생과 이별하는 것을 목격하기도 한다. 죽음은 우리에게 삶의 유한성을 일깨운다. 심리학자 융은 죽음을 자각하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우리가 죽음과 친구할 수 있다면 삶의 기술이 최고조에 달했음을 말해준다. 삶은 죽음에서 끝난다. 삶과 죽음은 한 줄에 꿰어진 진주알과 같다.

 

"지금 아무도 당신이 한 일, 당신이 살아온 삶에 감사하지 않는다고 해도 당신의 삶은 값지다" (197 쪽)

 

 

노년은 우리에게 더욱 성숙해질 것과 점점 더 내면을 향할 것을 요구한다. 자신과 타인에게 너그러워지고, 새로운 삶의 자세를 배우고 터득할 것을 요구한다. [늙어가는 사람을 위한 기도]를 소개하면서 책의 끝을 맺는다.

 

오, 주님, 내가 하루가 다르게 늙어가고 있다는 것, 언젠가는 노인이 된다는 것을 당신이 더 잘 아십니다. 어디에서든 내가 나서야 일이 된다는 착각을 하지 않게 하여 주소서. 타인의 일에 끼어들고 싶어하는 나의 과한 열정을 다스려 주소서..... (중략)...........

다른 사람에게서 뜻밖의 재능을 발견하는 능력을 갖게 하소서. 그리고 오, 주님, 그 재능을 입 밖에 내는 훌륭한 재능도 겸비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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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도 내 삶은 눈부시다 - 마지막 하루까지 행복하기 위해 '하프타임'
이병욱 지음 / 코리아닷컴(Korea.com)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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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에 미쳐 그 해 전국을 돌며 열 세번의 마라톤 대회에 참가한 적이 있다. 반환점을 돌아 운동장에 들어서 결승 테이프를 끊는 순간 마침내 완주했다는 희열에 'Runners high' 라는 오르가즘이 느껴진다. 장거리 뛰기에 있어 후반부는 전반부에 비해 훨씬 더 힘이 든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이다.

 

이 책은 28년간 암만을 치료해 온 전문의사가 암은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며, 건강에 이상 신호가 감지되면 이때가 바로 하프타임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그는 나이 마흔에 포천 중문 의대에 스카우트되어 '암치료엔 메스가 최선일까?' 란 의문을 안고 살았다. 아무리 암을 깨끗이 제거해도 다른 부위에서 암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암세포의 근원을 찾아 없애고 싶었다고 한다.

 

"나는 하프타임을 '스스로를 알아가는 시간',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 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하프타임의 주인공은 '나' 자신이다."(20쪽)

 

깜빡하면 놓친다.

 

하프타임은 각자의 처한 상황에 따라 그 시점이 다양할 것이다. 방송에 골든타임이 있듯이, 의학에도 골든타임이 있다. 치료 효과가 가장 좋은때가 골든타임이다. 예를들어, 뇌경색이 되어 한쪽 몸이 마비되어도 3 시간안에 치료를 받으면 정상으로 돌아갈 확률이 매우 높다. 이 3 시간이 바로 골든타임이다. 30대 중반부터 하프타임을 계획하여 마흔에 실행으로 옮기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심리학자 융은 35세에서 40세 사이에 청년기와 젊은 성인기가 끝나고 중년기로 접어들며, 중년기에 접어든 사람은 새로 정립된 가치관에 의거하여 자신의 삶을 수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새로운 가치를 깨닫기 위한 틈새, 이것이 하프타임이다." (31쪽)

 

많은 시한부 환자들이 건강했을때, 올바른 길을 가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 말기 폐암 환자로 병상에 누워 온 국민을 대상으로 '절대금연'을 홍보했던 코메디언 이주일씨도 자신의 하프타임을 놓친 것을 후회했다. 늦기전에 선택하여 후회대신 희망의 에너지를 듬뿍 받도록 하자. 하프타임에도 규칙은 있다. 소리내어 알리고, 속 먼저 살피고, 절대 조급해 하지 말며, 무조건 즐기고, 사방을 살피라는 것이다.

 

쉼표가 필요해

 

2002 월드컵 4강 쾌거는 알려진 바와 같이, 히딩크 감독의 체력 훈련 때문이다. 인생이라는 마라톤을 완주하려는 우리에게도 체력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저자도 40세에 만병의 근원이 되는 만성 피로상태였지만 하프타임을 통해 '5기 건강법'을 실천했단다. 이를 간략히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1. 제대로 먹고 제대로 배출하기

2. 제대로 숨쉬기

3. 제대로 움직이기

4. 제대로 쉬고 잠자기

5. 제대로 마음 다스리기

 

건강에는 비법이 없다. 기본을 충실하게 실천하는 것이 최고이다. 얼짱을 위한 무리한 다이어트는 '살빼기'가 아니라 골다공증을 유발하는 '뼈빼기'가 될 수 있다.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아주 작은 아픔에도 민감해야 하고, 술 담배 등 수명을 단축하는 나쁜 습관을 바꾸어야만 한다. 중국 한나라 말기의 명의 화타도 가장 좋은 의사는 병에 걸리지 않게 하는 의사라고 말했다.

 

마음도 건강진단이 필요하다.

 

건강한 정신에 건강한 육체가 깃든다. 사춘기를 지나 중년 초입에 또 한차례의 성장통이 찾아온다. 사추기이다. 흰 머리가 늘고, 머리털이 빠지고, 시력이 떨어지고, 생리량도 줄어든다. 이런 혼란을 자연스럽게 수용하고 새로운 가치를 모색해야 한다. 잘못하면 우울증으로 이어질 수 있기 떄문이다. 4-50대에 우울증이 가장 많이 생긴다. 신경정신과에서는 이를 '마음의 감기'라고 표현한다. 감기는 가벼운 질환이다. 그러나, 우울증은 암 다음으로 많은 40대의 사망 원인이다. 연예인의 자살 소식을 자주 접한다. 대개는 우울증을 정신적으로 나약한 사람이 걸리는 마음의 병으로 인식하기에 적극적으로 치료도 하지 않고 병을 키워 자살로 이어진 것이다. 세계 보건기구는 '인류를 괴롭히는 세계 3대 질환'에 우울증을 선정하기도 했다.

 

긍정적인 마음은 병도 이겨낸다. 암을 이겨낸 사람의 공통점은 첫째 나을 수 있다는 마음, 둘째 긍정적인 마음, 세째 가족의 관심과 사랑이다. 아무런 이유없이 몸이 욱신거리고 가슴이 답답해서 병원에 가면 신경성이란 진단을 내린다. 이처럼 몸과 마음은 매우 밀접하다. 대표적인 사례가 '플라시보 효과'이다.

 

외로움에 떠는 유아독존

 

아파트라는 주거문화의 탄생과 함께 우리에게 찾아온 핵가족은 현대인의 관계를 이상하게 만들었다. 가족에대한 배려, 사랑, 존경심은 사라지고, 무관심, 외면, 그리고 개인주의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자녀도 한 두명만 낳아서 이들 자녀도 이기적으로 자란다. 대가족의 풍성한 관계가 핵가족의 단촐한 관계로 바뀌어, 인성은 아예 멀리 출장가고 말았다. 40대의 경우 일과 가정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직장과 가정 중 우선을 선택하라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절대 포기 할 수 없는 것을 선택하라면 누구나 가정을 택할 것이다.

 

미국 South West 항공은 1주일에 하루를 '생각하는 날'로 정하여, 직원은 사무실에서 벗어나 호젓한 호수가를 거닐며 자기 자신을 생각한다고 한다. 한국의 모은행도 매주 수요일을 '가족의 날'로 정하고 야근금지령을 내렸다. 다산 정약용은 살아 생전 자녀들에게 정신적 유산, 근勤과 검儉을 주었다.

 

"나는 논밭을 너희들에게 남겨줄 만한 벼슬을 못했으니, 오직 두 글자의 신비로운 부적을 주겠다. 그러니 너희들은 이것을 소홀히 하지 말라" (181쪽)

 

아낌없이 살자.

 

랜디 포시 교수는 자신의 베스트셀러인 [마지막 강의]의 말미에 "사실 이 강의는 여러분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세 사람, 나의 자식들이 자라서 보기 위해서입니다.", "저는 곧 죽습니다. 하지만 남은 날동안 신나고 재미있게 살겁니다"라고 고백한다. 그는 45세에 췌장암으로 시한부 삶을 선고 받았고, 2008년 여름 47세로 생을 마감하였다.

 

약 3개월 전에 나의 아버지도 89세의 생으로 삶을 마감하였다. 간,폐,뼈 등 다발성 말기 암이었다. 사실 아버지는 아픈 허리를 치료키 위해 병원에 입원했다가, 말기암 판정을 받았었다. 아버지의 유품 정리를 하다가 '모리와 함꼐 한 화요일' 이란 책을 발견하였다. 아버지는 이 책 영향을 받았는지, 성당에 열심히 다녀 요셉이란 세례명도 받았었다.

 

최근에는 품위있는 죽음에 대해 강의와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그 요점은 'Well Dying'이다. 품위있는 죽음을 위해서는 몇 가지의 기술이 필요하다. 사람을 대할 때 오늘이 마지막이란 마음을 가지거나, 유언장이나 묘비명을 미리 써 놓는 것이다.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 버나드 쇼의 묘비명

 

 

하프타임은 행복한 인생 후반기를 위한 시간이다. 많은 환자들이 암에 걸리고 나서야 자신의 행복을 깨닫듯이, 인생이 배움의 길이란걸 인정한다면, 하프타임은 꼭 필요하다. 저자는 독자들에게 이렇게 질문한다.

 

"지금 우리는 인생의 작전 타임을 알리는 휘슬을 불 때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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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하성란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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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8월 29일 경기도 용인시에 위치한 오대양 주식회사의 구내식당 천장에서 사체 32구가 발견되었다.

오대양의 공예품 공장인데 식당 천장에서 대표 박순자와 가족, 종업원 등 32명이 손이 묶이거나 목에 끈이 감긴 채 시체로 발견된 희대의 사건이었다.

조사결과, 1984년 공예품 제조업체인 오대양을 설립한 박순자 대표는 '종말론'을 내세운 사이비 교주 행세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도와 자녀들을 집단시설에 수용하고 신도들로부터 170 억원의 사채를 조달했다는 발표로 사건을 종결했다. 이후 1991년 7월 당시 신도였던 김도현 등 6명이 자수하면서 의문점이 얼마간 밝혀지기도 했다. 경찰이 발표한 집단자살극인지 외부인에 의한 집단타살극인지는 결국 밝혀지지 않았다.

 

소설 [A]는 오대양 사건을 모티브로 구성된 소설이다. 화자(話者)인 '나'는 머리통이 크고 못생긴 여자로 엄마는 누군지 알지만 아버지는 독자로 하여금 누군인지 추측하게 한다. 이야기는 신신양회의 시멘트 공장 구내식당에서 화자가 출생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자연의 대청소'시간인 비가 내렸다. 나이가 엇비슷한 일곱 명의 이모들이 식당에서 일을 한다. 엄마는 나를 23살에 낳았다. 나는 엄마의 두번 째 아이였다. 조산사가 도착할 때까지 식당에 딸린 방에 엄마는 혼자 누워 있었다.

 

공장은 어머니라 불리는 여인에 의해 운영되었다. 그녀가 이곳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던 1962년만 해도 구획정리되지 않은 논뙈기, 밭뙈기로 겨우 연명해가던 농부들만 있었다. 공장터를 다지고 대형트럭이 드나들면서 일년 넘게 공사를 시작했다. 농부들의 생활패턴이 바뀌었다. 농사는 아내에게 맡기고 공장 현장의 잡역부로 취직했다. 이곳의 상점 이름은 온통 '신신'일색이었다. 신신이발소, 신신문방구, 신신다방, 신신삼겹살 등 마을은 그야말로 신신공화국이었다.

 

조악하기 그지없는 관광상품을 만드는 공예품 공장은 86 아시안 게임을 겨냥해서 전문가를 초빙하여 자개입힌 보석함, 한국전통복장을 입은 인형, 유명화가의 그림이 들어간 쥘부채 등을 생산하고 있었다. 공예품 공장은 서울에 있었다. 신신양회의 아이들은 중학생이 되면 모두 서울로 진학했다. 교육만큼은 서울에서 받아야 한다는 어머니의 신조때문에 신신의 아이들은 공예 공장의 기숙사에서 생활했고 인근의 중고등학교에 다니다 대학에 진학했다.

 

"신신이라고 전해주세요. 급히 할 말이 있다구요" (48 쪽)

 

팔월이었다. 다락방에 숨어 지낸지 사흘째 되는 날이었다.사건이 발생하기 열흘 전부터 어머니와 두 공장 책임자를 포함하여 나와 이모들까지 모두 25 명은 다락방에 숨어 지냈다. 19살인 나는 뇌수술후 시력이 회복되지 않아 볼 수가 없었다. 다락방 안은 묘한 정적에 휩싸여 있었다. 누군가가 무거운 부대 자루 같은 것을 질질 끌고 있었다. 갑자기 누가 내 손목을 개구리 잡듯 잡아챘다.

 

"그 앤 그냥 둬. 아무것도 못 봐. 아무것도 몰라. 그냥 둬" (51 쪽)

 

1978년 남미의 가이아나 공화국에서도 어린아이 276 명을 포함한 총 914 명의 사체가 인민 사원에서 발견되었다. 독약을 탄 오렌지 쥬스를 나눠 마시고 교주 짐 존스는 마지막에 권총으로 자살한 사건이었다. 신도들은 교주를 '아빠'라고 불렀다. 

신신양회도 전대미문의 사건으로 남았다. 사망자는 모두 24 명이었다. 누구의 몸에서도 저항한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비좁은 다락방이 파리떼의 날개짓 소리로 시끄러웠다. 나는 파리떼가 엄마 몸에 알을 슬지 못하도록 연신 파리떼를 내쫓느라고 나중엔 울지도 못했다" (117 쪽)

 

13,000 톤 급의 사일로 증축을 위해 백 억원대의 공사비가 필요했다. 과욕이었다. 사채에 손을 댄 것이 화근이 되었다. 사채업자들의 성화를 못이겨 다락방에 피신한 사십대의 이모들은 그날, 그곳을 자신들이 죽을 시간과 장소라고 믿었던 것같다. 다락방 모서리에서 어머니는 어딘가로 계속 연락을 취했다.

 

 

"창립 42 주년 기념 행사 개최

 다 모여라 손에 손잡고

 사일로는 넓고 아이들은 부족해" (73 쪽)

 

명함 크기의 광고가 2 주 간격으로 석 달 동안 신문에 나갔다. 신신양회 아이들에겐 쉽게 눈에 뜨일 광고였다. 이미 죽은 이모들의 자식들이 신신을 되찾기 위해 뭉쳤다. 만나기로 한 날, 폭우가 쏟아졌다. 김보라, 서다희, 김준희, 김보람, 어둠 속에서 하나, 둘 모습을 나타냈다. 매일 아침 독특한 분위기의 처녀들이 커다란 가방을 들고 우르르 나와서 뿔뿔이 흩어졌다 저녁이면 다시 모인다고 아파트 단지에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다단계 판매망의 거점이라느니 신흥 종교 포교자들이라느니 하는 소문이 꼬리를 물고 퍼져 나갔다. 어느 날, 벨이 울리고 현관에 기태영이 나타났다. "신신을 되찾았어"

 

6년이 흘렀다. 서울과 신신양회의 딱 중간 쯤에 위치한 기태영이 마련해 둔 집으로 이사를 했다. 기태영은 재력가의 아들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이미 알아 내었다. 신신출신이라해도 여자들에 비해 남자들의 마음은 여전히 관망세였다. 하늘이 무너져도 결코 쓰러지지 않을 것으로 믿었던 신신의 몰락을 그들은 보았기 때문이리라.

우린 젊은 피가 필요했다. 젊고 명석하며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건강한 새 식구가 필요했다. 종족을 불리기 위해 자신의 딸들을 많은 남자에게 선물로 보냈다는 아마조네스 부족처럼 신신을 부흥시키기 위해선 사람을 늘려야 했다. 봉투에 주홍글씨로 'A'를 표기한 편지를 보냈다. 잘 나가는 가수 김준에게도 전해졌다. 김준의 의상담당은 안은영 언니였다. 정인 언니의 배가 불러 왔다. 

 

중국 오지에 있다는 여인국 모쒀족 여자들처럼 아이들은 엄마의 성을 따르고 집안의 모든 재산은 딸이 물려 받는 그런 삶을 희망했다. 이들에게는 당연히 '아버지'란 단어가 없을 것이다. 여자들은 남자들을 만나고 사랑하지만 결혼은 하지 않는다. 결혼이 없기에 이혼도 없다. 그에 따른 상처도 없다. 그녀들은 욕심없는 삶을 살아간다.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고 사랑이 식으면 그 사랑을 붙잡지 않는다. (164 쪽) 

 

쉰이 한참 넘은 마을 사내에게 저녁밥을 짓다가 부엌에서 봉변을 당했다. 수치를 느낀 그녀는 깔린 채 두 손을 더듬었다. 부엌 칼이 잡혔다. 주저하지 않았다. 공장에서 돌아온 엄마는 피투성이의 이 광경을 목격했다. 딸이 다치지 않은 것에 안도했다. 서정화는 고작 16살, 여중 3년생이었다. 엄마는 딸을 위해 대신 감옥으로 갔다.

"무슨 일이 있어두 이곳에 오지 말어. 설령 니 엄마가 죽었다고 해도 오지 말어" (225 쪽)

 

기태영은 건설업체 인수계획을 세웠다. 이사회를 소집하고 인수자금 마련을 위해 유상증자를 실시했다. 그의 행보가 아슬아슬했지만 정인 언니도 은영 언니도 두 손 놓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도 집단자살로 생을 마감한 어머니와 별반 다를게 없었다. 떠오르는 젊은 CEO로 언론에 보도되었지만 어느 날 한 사내의 자수는 아버지의 도움을 끊게 만들었다. 신문은 특종을 보도했고, 미처 보도하지 못한 기자들이 속속 공장으로 몰려 왔다. 자수한 사내는 살인방조죄로 구속되었다. 전대미문의 사건으로 죽은 여자들의 자식들이 이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우리를 '그 에미에 그 자식'이라는 식의 사교 무리로 생각하는 눈치들이었다. 직원들도 기태영과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신신의 화려한 시절은 막을 내렸다. 누가 신신을 무너뜨리려 했는지 그 이유는 숙제로 남았다.

 

경찰의 보고에 의하면 기태영이 중년 남자와 서울의 한 공원에서 만났고, 이 둘은 고성을 주고 받으며 싸웠다고 한다. 다음 날 새벽 운동 나온 노인이 양복 차림의 오십대 사내가 죽어있다고 신고했고 경찰은 기태영을 용의자로 지목하고 전국에 수배령을 발동했다. 다음 해 봄 나는 아기를 낳았다. 머리통이 큰 딸이었다. 아기의 아버지인 기태영은 여전히 잘 도망다니고 있다. 사건의 공소시효 만료가 얼마 남지 않았다. 결국 신신양회는 버려졌다. 아무도 인수하려고 하지 않았다.

 

저자는 공동체로 삶을 살았던 신신의 여성들이 천사(Angel)인가, 아마조네스(Amazones)인가, 아니면 간통(Adultery)한 자들인가 하는 질문을 독자들에게 던진다.

호손의 주홍글씨로 유명한 'A'의 낙인은 평생 품고 살아야 했던 헤스터 프린의 사랑의 증거였다면, 이 소설의 'A'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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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는 기업 - 위대한 기업을 뛰어넘는
최상철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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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에 임원으로 재직하면서 소위 유통 선진국인 일본의 소매업체을 벤치 마킹하러 몇 차례 출장간 적이 있었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것이 이미 유통업계를 떠났지만 나에겐 과거로의 시간 여행인 셈이었고 익숙한 지명과 당해 

회사와 관련한 기억들이 추억에 묻혔을지라도 오히려 정겹게 다가왔었다.

  

버블 경제의 절정이었던 1989년 말 일본 니케이 평균주가는 3만 8,915 엔이었지만 1999년 말에는 1만 8,934 엔으로

반토막이 되었고, 도심부의 맨션 가격은 그 이상으로 폭락했다. 문제는 이러한 1990년대 버블 붕괴에도 불구하고

백화점, 종합양판점 등 당시의 주력 소매업체는 신점포 개발을 이유로 오히려 매장 면적을 확대하는 우를 범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30 쪽)

 

저자는 세 가지 사항에 주목하고 이를 중심으로 사례들을 설명하고 있다.

 

첫째, 일본 유통업의 소매업태인 엔터테인먼트형 전문점, 백화점, 편의점, 종합 양판점 등을 살펴보고 다이소, 세븐 일레븐 재팬 등 혁신적인 소매업을 영위하는 기업의 비즈니스 모델과 경영자의 결단을 분석하여 소개한다.

 

둘째, 가격결정권을 둘러싸고 격렬한 대립을 취함과 동시에 상생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이들의 관계를 살펴본다.

 

셋째, 혁신적인 소매 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 발전하는데 필요한 투철한 상인정신을 강조한다.

 

 

다이소

 

"스스로 목을 매어 죽지 않도록 하기 위해 존재한다" (61 쪽)

 

괴짜 경영인 야노에 의해 창업된 다이소는 경상도 사투리로 온갖 물건이 '다 있소'란 느낌을 갖게 했다. 야노는 본디 처가에 얹혀 어류 양식업을 하다가 망해서 야반도주했다. 이후 길거리에서 싸구려 잡동사니 좌판 행상을 경험으로 현재의 잡화 소매업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국내에도 다이소 점포가 많이 늘었다.

 

부부가 처음 시작한 100엔숍 균일점은 트럭에 상품을 싣고 길바닥이나 슈퍼마켓 입구의 공터에서 단기간 개점하는

이동식 판매였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싼게 비지떡이라는 이미지와 함께 이동식 가게라는 불안감때문에 매상이 늘지 않았다.

 

기회가 찾아왔다. 1973년의 오일쇼크와 인플레는 인건비, 운임 등 코스트 푸쉬현상을 가져왔지만, 야노는 좋은 상품을

100엔에 파는 전략을 고수했다. 이후 고객들의 호평과 함께 제조업자들도 직거래시 납입가를 낮추어 주었다.

1977년, 야노는 자본금 300만 엔의 주식회사 다이소산업을 설립하여 가족형 기업에서 탈피했다. 자본도 확충되면서

도쿄, 규슈, 오사카 등지로 영업소를 개설하여 전국을 대상으로 이동판매업을 확대해 나갔다. 한창 때 다이소의 트럭이

90대를 넘기도 했다.

 

상설점포체제로 바뀌는 계기가 생겼다. 1987년 종합양판점업체인 유니가 요코하마시에 20평 정도의 상설매장을 제안했던 것이다. 그러나, 상설점으로 업태를 변경하지 않고 시범점포로만 운영했다. 1991년 '대규모소매점포법'이 개정되어

종합양판점, 슈퍼마켓 등의 영업시간이 연장되자 상설점포를 늘리고 이동점포의 비중을 줄여 나갔다. 이후 1995년 버블 경제가 붕괴되고 디플레가 도래하자 완전 상설체제로 자리 잡았다. 그 결과 2008년에 일본 소매기업 30위라는 성적표를 거뒀다.

 

승승장구하는 다이소에게도 아킬레스건이 있다. '불량 재고'의 처리를 신설점포에서 해결했지만 성숙기에 접어든 최근에는 출점 속도가 매우 둔화되었기에 재고가 계속 쌓이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디플레의 시대가 거하고 인플레가 도래하면 100엔숍의 경영이 어렵다는 것이다. 이에 대비하여 다이소는 대형 종합양판점, 슈퍼마켓, 백화점에 상품을 공급하는 벤더로 남는 방안이나 200엔, 300엔 등 다양한 가격의 상품군을 개발하는 등 진화를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포스트 야노의 청사진이 없다는 것이 불안 요소라고 하겠다.

 

세븐 일레븐 재팬

 

정치에 꿈이 있던 청년 스즈키는 선배의 충고로 경제학을 전공했지만 사회 초년병은 출판사에서 시작했다. 당시 조사와 홍보업무의 경험으로 이토요카도에 상품관리와 판촉 담당으로 전직했다. 종합양판점 업계의 급성장과 함께 이토요카도도 확대되기 시작했다. 참고로 본인의 출장 경험에 의하면 양판점의 특징은 4층 건물에 옥상은 주차장인 일종의 중형 할인점이었다. 1971년 그는 39세의 나이로 홍보 및 인사 담당 이사로 취임했다. 또한, 신설된 업무 개발실의 리더로서 미국의 신업태를 연구하고 있었다. 일본의 상점이 쇠퇴하는 이유가 생산성의 문제라고 파악하고 있던 그에게 미국의 세븐 일레븐은 구세주같았다. 왜냐하면 오전 7시에 개점하여 저녁 11시까지 영업하는 시스템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사내에서의 많은 반대에 봉착했지만 뚝심으로 밀어 부쳤다.

1973년 11월 30일, 이토요카도와 미국 사우스랜드 간에 일본 프랜차이저 방식으로 편의점 사업에 대한 계약을 체결했다. 그는 15명의 초보자를 데리고 7평짜리 사무실을 얻어 신설회사 요크 세븐(이후 세븐 일레븐 재팬으로 개칭)을 신설했다. 더구나 설립 자본금 1억 엔중 반만 이토요카도가 출자했기에 그는 심복인 시미즈와 함께 자신들의 적금을 해약하고 은행에서 융자를 받아 개인 출자를 감행했다. 대단한 결단력이다.

 

1호점 개설에 몰두하고 있을 때 그는 주류 판매점에서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1974년 1월 1일, 그는 시미즈와 함께 눈길을 걸어 이 가게를 찾아갔다. 조선소의 자재 창고와 공장이 드문드문 있을 뿐 거의 공터인 구석에 '야마모토 시게루 상점'이 있었다. 야마모토는 당시 23세로 막 결혼한 부인은 임신 중이었고 홀로 된 어머니와 두 명의 동생을 부양해야 하는 가장이었다. 야마모토는 전근대적인 육체노동이 요구되는 주류 판매점을 계속할지 고민하던 중 우연히 신문에 난 세븐일레븐 기사를 보고 업종 변경을 결심했던 것이다.

 

야마모토 상점은 겨우 24평으로 미국 세븐 일레븐 표준 매장의 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주차장도 없어 고민이 필요했다. 그러나, 스즈키는 야마모토를 선택했다.

"저희들과 함께 도전해봅시다. 만약 3년 후의 결과가 실패라면 제가 책임을 지고 점포를 원 상태로 돌려드리겠습니다" (96 쪽)

 

1974년 5월 15일, 일본 최초의 편의점 도요슈점이 문을 열었다. 물론 지금도 그 자리에서 야마모토는 성업 중이다.

집념으로 완성한 단품 관리 시스템의 개발과 소량 배송 등이 정착되면서 세븐 일레븐의 체인점은 날로 늘어갔다. 겨우 2년이 지난 1976년 5월 당초 목표였던 60개를 훨씬 넘어 100호점이 개설되었다. 미국에선 25년이 걸려 100호점이 생겼으니 놀랄 만한 사건이었다.

 

1990년 세븐 일레븐 재팬의 점포 수가 4,000 개에 이르렀다. 미국의 사우스랜드가 경영 위기에 처하자 1991년 3월, 이토요카도는 사우스랜드의 지분 70%를 확보했다. '일미역전', 일본 언론들은 대대적인 보도를 했다. 파산직전의 사우스랜드는 3 년만에 흑자전환했고, 1999년 사명을 '7 - Eleven Inc.'로 바꾸고, 2007년 7월 뉴욕증권거래소에 재상장되었다.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 교재인 [Creating Modern Capitalism]에 세븐일레븐재팬의 유통혁명이 일본 기업의 경영방식 사례로 소개되기도 했다.

 

 

세계 최초의 터미널 백화점을 만들어 낸 한큐백화점의 천재적인 경영과 고바야시의 경영비전과 시장 창조전략을 소개하고 있다. 또한, 일본의 종합양판점 기업인 다이에도 설명되고 있다.

1974년 6월 다이에가 서울에 대형 소매점 출점을 발표했다. 그러나, 롯데의 신격호 회장은 다이에의 나카우치 사장에게 이왕이면 백화점 사업에 협조해 달라고 요청했다. 남대문시장과 동대문시장을 다니며 서울 시민의 쇼핑 습관과 구매력을 분석한 결과, 다이에는 대형 백화점의 출점은 시기상조이며 종합양판점이 적합하다고 판단하고 1976년 4월 롯데와의 계약을 파기하고 말았다.

 

건실한 기업 경영보다 유통혁명론을 전면에 내세웠던 나카우치는 천문학적인 부채와 경영악화의 책임을 지고 2001년 1월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독재자가 되었던 카리스마 경영자의 말로였다. 출장기간 중 후쿠오카 돔에 들러 일본프로야구를 관람했었다. 다이에의 상징인 호크스 동상이 위용을 자랑했던 기억이 새롭다. 

 

일본은 중국과 한반도에 영향을 받아 유교 사회임에도 불구하고 사농공상의 위계질서가 심각하지 않았다. 상인이 수행하는 상업기능의 중요성과 이윤취득의 정당성을 가르치는 석문심학(石門心學)이라는 종교에 가까운 교의가 탄생하여 상인의 지위를 부동의 것으로 인식하였다. 근대 이전의 일본국부의 축적도 상인들에 의한 것이었다. 전후 일본 제조업의 성공도 근면한 일본 상인의 시장개척정신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판매의 질곡에서 벗어나 생산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는 것이 일본 유통연구자의 공통된 견해이다.

 

과거와 같은 프론티어정신의 회복없이는 상인국가 일본의 실질적인 부흥은 기대하기 힘들 것이다. 소매업태야 말로 일본판 모험상인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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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작용 - 복잡한 세상의 단순한 법칙
장순욱 지음 / 창과샘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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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저녁으로 집 화장실에서 내가 만나는 삽화이다.

매사의 결과는 인과응보의 탓임을 자각하라고 아내가 나를 위해 준비한 것이다.

한 때 사업이 잘 나가서 큰 돈을 벌었다. 이후 어찌된 탓인지 꼬이는 일이 많아지고 사기를 당하는 일들이 생기면서 결국 나의 사업은 실패로 마감되고 말았다.

 

’호사다마’란 말을 떠 올리며 그러려니 하기엔 너무도 울화통이 터져 뜨거운 콧바람을 연신 불어낼 당시 아내의 권유로 난 모 선원(禪院)에서 마음 공부를 시작했다. 이 기간에 많은 것을 깨우치고 모든 것의 결과가 내 탓임을 수용하고 나니 한결 몸과 마음이 개운해지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공교롭게도 이 책에서 주제로 다루고 있는 ’반작용’이 내가 경험한 바로 그것이다.

 

’새옹지마,塞翁之馬’란 고사가 있다. 말 그대로 새옹의 말에 얽힌 일화이다.

 

새옹은 국경에 사는 노인이란 뜻이다. 어느 날 이 노인의 말이 도망쳐 국경넘어 오랑캐 땅으로 가버렸다.

이에 대해 동네 사람들이 위로하자 노인은 대수롭지 않게 반응했다. ’이게 어떤 안 나쁜 일을 가져올지 모른다’ 정말로 몇 달 후 집나간 말이 다른 말 한 마리를 데리고 돌아왔다. 이번엔 동네 사람들이 축하인사를 하자 노인은 반대로 즐거워하지 않았다.

’이게 어떤 안 기쁜 일을 가져올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집에 있던 아들이 그 말을 타고 놀다가 낙상하여 장애인이 되고 말았다. 동네 사람이 위로하자 노인은 오히려 낙심하지 않고 ’이게 복을 가져올지 모른다’는 말만 했다. 세월이 흘러 변방에 북소리가 울리고 오랑캐와의 전쟁이 벌어지자 강제 징병이 벌어졌다. 노인의 아들은 불구자라서 징병을 면했다. 그런데, 전쟁터에 나간 대부분의 아들은 죽어서 돌아왔다. 그야말로 전화위복,轉禍爲福인 셈이다.

 

이미 눈치를 채었을 것이다. 좋은 일은 같은 크기의 안 좋은 일이 벌어질 반작용을 만들고, 나쁜 일은 안 나쁜 일이 생길 반작용을 생성한다는 의미이다. 길을 가다 길에 떨어진 만원 권 지폐를 한 장 주었다면 추후 1 만원 상당의 재산적 손실이 생기는 반작용을 경험한다는 얘기이다.

 

현진건의 소설 [운수좋은 날]에서는 반작용이 뒤통수를 때리는 일을 만든다. 아픈 아내가 인력거를 모는 남편 김첨지에게 일을 나가지 말라고 해도 그는 그 청을 거절하고 일을 나간다. 오늘 따라 인력거를 타는 손님이 엄청 많아 수입이 꽤나 올랐다. 일마치고 기쁜 마음에 술 한 잔 걸치고 아내를 위해 설렁탕 한 그릇 포장해서 귀가했더니 마누라는 이미 차가운 시신이었다.

 

얼마 전에 본 영화 [코러스]에서도 규율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교장은 ’작용 - 반작용’의 신봉자이다. 어린 학생들이 사고를 치면 그에 상응하는 체벌을 가했다. 그의 교리는 ’액션 - 리액션’이다. 사리사욕에 치우친 학교 행정때문에 억울한 일을 당하는 학생도 생겼다. 이러한 행동의 반작용은 교장직에서의 해고라는 결과를 만들고 만다. 그토록  숭배하던 ’액션 - 리액션’의 덫에 자신이 걸려 들고 만 셈이었다.

 

한편, 자살을 앞 둔 사람들 대부분은 가장 친한 이에게 전화를 건다고 한다. 생을 마감하려는 이의 행동이 어째이상하지 않은가? 그렇다. 죽음을 앞두자 생에 대한 욕구가 반작용으로 생기기 때문이다. 수화자가 상대의 마음을 읽고 잘 응대하면 자살을 포기하기도 한다. 국민 여배우 최진실은 정말 안타깝다. 그녀의 마지막 통화 대상자는 코디였다고 한다.

 

"질그릇을 걸고 활을 쏘면 잘 쏠 수 있지만, 허리띠의 은고리를 내기로 걸고 쏘면 마음이 흔들리고, 황금을 걸고 활을 소면 눈 앞이 가물가물하게 된다" - 장자 (39 쪽)

 

’반작용’은 몇 가지의 특징을 보인다.

 

첫째, 동시성을 갖는다. 동전의 앞 면이 있으면 동시에 뒷 면이 있듯이 길거리에서 만원을 줍는 순간 만원을 잃어버릴 반작용을 동시에 들어올린 셈이다.

 

둘째, 잠재성을 갖는다. 영화 [코러스]의 교장처럼 향후 자신에게 피해를 미칠 반작용이 생기게 된다. 잠복기간은 길 수도, 짧을 수도 있다.

 

셋째, 대칭성을 갖는다. 작용과 반작용은 대칭을 통해 변화와 함께 안정과 균형을 유지한다.

 

넷째, 모순성을 갖는다. 불교 경전 [반야심경]에 ’색즉시공 色卽是空, 공즉시색 空卽是色’이란 말이 있다. 있는 것은 빈 것이고, 빈 것은 있는 것이란 의미이다. 있음 안에 안 있음이란 반작용이 있고, 비었음 안에 안 비었음이란 반작용이 함께 존재한다는 것이다.

 

’공짜 좋아하면 대머리가 까진다’는 속담이 있다. 공짜인 줄 알고 챙겨도 결국 머리카락이란 대가를 지불한 것이다. 길거리에서 주는 홍보용 샘플 화장품도 사실 공짜가 아니다. 우리가 부담하는 가격에 샘플도 이미 포함되어 있다.

공짜 점심을 즐기는 회사 동료도 귀빈(귀찮은 빈대)으로 대접받는 반작용을 얻게 된다. 이렇게 반작용은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셈이다.

 

"공짜 치즈는 쥐덫 안에만 있다" - 지그 지글러의 [정상에서 만납시다] 중에서

 

영국의 과학자 프란시스 골턴 경은 연구과정 중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아버지의 키가 평균보다 훨신 크면 아들은 아버지보다 작고, 평균보다 훨씬 밑도는 경우에는 아들의 키가 아버지보다 큰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평균으로의 회귀’라고 명명하고 신비한 힘이 작용해서 사람의 키를 양극단에서 평균으로 움직이게 만든다고 결론지었다.

이렇게 ’평균으로의 회귀’는 일방적으로 키가 자라거나 지능이 좋아지는 발전이 있을 수 없다는 내용이다. 따라서, 내 자식이 나보다 못하다고 야단치지 말자.

 

인간은 자유가 주어지면 어딘가에 구속되려 하고 구속되면 자유를 갈망한다. 백수시절엔 노는 것도 지겹다고 취직에 발버둥치다가 막상 취직하고 나면 자유를 부르짖으며 사표를 내려고 까분다. 이것이 바로 반작용이 만든 모순된 삶의 모습이다.

 

오늘 오전 TV 생중계로 박태환 선수가 수영 400 미터 결승에서 우승하는 장면을 시청했다. 그도 얼마 전까지 나락으로 추락하는 실패를 맛보았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한다. 실패가 바로 안 실패란 반작용을 쌓아가는 과정인 것이다. 오히려 실패를 너무 안하면 망하게 된다. 경영의 귀재라고 불리는 스티브 잡스도 애플에서 해고 당하는 실패를 경험하지 않았다면 오늘의 아이폰 같은 대박을 터뜨리지 못했을 것이다.

 

복잡 다난해 보이는 세상이지만 알고 보면 단순한 법칙이 있다. 모든 것은 크기가 같고 방향이 반대인 반작용을 만든다.

불행해야 행복하고, 단점이 곧 장점이며, 불안해야 편안하고, 지저분해야 건강하고, 고통스러워야 즐겁다는 것을 우리에게 소개하는 저자의 통찰력과 지혜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모든 것이 ..... 나로부터 나와서 나에게로 돌아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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