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SMC와 트럼프 이펙트: 대격변 예고
콜리 황 지음, 이철 옮김 / 경이로움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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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MC는 다수의 거대 기술 기업들이 더 큰 가치를 창출할 수 있도록 돕는 조력자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현재 균형 잡힌 수급 시스템이 붕괴되어 글로벌 산업 혼란이 발생하면 가장 큰 피해자는 엔비디아, 아마존,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테슬라, 구글, 메타와 같은 미국의 기술 기업이 될 것입니다. 진정한 가치는 ‘누가 게임의 규칙을 정하느냐’에 있습니다. - '서문' 중에서


책의 저자 콜리 황은 IT 전문 언론기업인 디지타임즈의 창업자이자 40년 경력의 글로벌 ICT 산업 분석가이다. 대만의 씽크탱크인 MIC의 주임을 역임했으며, 대만 경제부, 타이베이시 정부, 이란현 정부 등의 정책 고문과 대련회, 타오위안 공항, 항공발전화, 외국무역협화 등의 기관 이사를 역임했다.  


책은 총 2부로 구성되어 대격변의 예고, 반도체 100년 여정이란 주제로 다섯 개 장에 걸쳐 바람은 불고 비는 내린다, AI와 소요유, 선택된 나라, 중국굴기에서 동승서강까지, 반도체와 대만의 미래 등에 관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이제 그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본다. 


먼저 TSMC의 생산능력을 살펴보자. 2024년까지 TSMC는 13개의 12인치 웨이퍼 팹, 9개의 6인치 및 8인치 팹을 보유하게 된다. 이에 더하여 OSAT 기능을 갖출 공장 5개를 보유하고 있으며, 2025년까지 전 세계에 최소 10개의 신규 공장을 설립할 계획이다. 


이 공장들은 다양한 공정 요구 사항을 가진 528개 고객사에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다. “모든 이들을 위한 파운드리가 되겠습니다”가 TSMC의 모토이다. 이에 7만 6천명의 TSMC 직원들은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킴으로써 업계에 무해한 파트너임을 알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TSMC는 약 1만 명의 R&D 직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일반적으로 매출의 8%를 R&D 비용으로 지출하고 있다. 2024년 매출 비중에서 컴퓨터, 통신, 자동차 관련 매출은 대부분 제자리 걸음을 할 것으로 추정되지만, AIoT는 7~9% 성장하고 첨단 제조 공정을 사용하는 AI 가속기는 최대 2.5배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2024년 TSMC의 매출은 900억 달러(2023년, 693억 달러)가 될 것으로 추정된다. 매출총이익률은 53%, 순이익률은 40%에 가까운 수준이다. TSMC의 요구를 충족하는 장비, 소프트웨어 또는 지식 서비스 하청업체가 되는 것은 회사의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러한 TSMC의 대외 영향력은 TSMC의 선도적 입지를 가속화하고 확장하는 데 중요한 요소이다. 이는 한국의 유망 중소기업들이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의 아웃소싱업체로 등록되면 회사의 미래성장이 담보된다는 논리와 동일한 맥락이다. 


저자는 1985년 한국 전담 산업 연구원으로서 대만에 부임한 이후 40년에 걸쳐 한국 전자 산업의 발전 과정을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분석해 왔다. 이 기간 동안 오명, 배순훈, 진대제 등 세 명의 한국 과학기술부 장관들과 수차례 만났으며, 삼성의 고위 임원진인 이준우, 진대제, 그리고 경계현 사장이 대만을 방문할 때마다 비공식적인 교류 자리를 유지했다. 


대만과 한국의 산업 발전 경험은 서로에게 벤치마킹의 기회를 제공해 왔다. 특히 1993년 삼성이 추진한 '신경영' 계획을 중심축으로, 글로벌 브랜드 구축과 핵심 기술 역량 확보에 집중하는 시차적時差的 발전 전략을 체계적으로 추진함으로써 한국 전자 산업은 지난 30년 동안 경제적으로 번영해 왔다. 이러한 발전 과정은 오늘날 대만-한국 간 경제 및 무역 관계에 새로운 협력 기회를 창출하는 기반이 되었다. 


2024년 대만의 대외 무역 구조에서 주목할 만한 중요한 변화는 한국이 처음으로 대만의 무역 흑자 국가로 전환될 것이라는 예측이다. 이러한 무역 구조의 변화는 대만이 SK하이닉스와 삼성 같은 한국 기업들로부터 고성능 메모리 반도체를 대량으로 수입하여 이를 서버, AI 가속기 등의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조립한 후 미국, 유럽 등 제3국 시장으로 수출하는 복잡한 가치사슬 구조에 기인하고 있다. 이는 전통적 산업과 첨단 정보 전자 산업의 본질적 차이를 명확히 보여주는 사례이다. 


전통 산업이 대체로 제로섬 게임의 성격을 띠며 구매자와 판매자 간의 관계가 단순한 상하 선형 구조를 형성하는 반면, 정보 전자 산업은 교차 매트릭스 관계를 바탕으로 한 복잡한 생태계를 형성한다. 따라서 이러한 생태계의 상호의존성과 시너지를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기업과 국가가 긍극적인 승자가 될 수 있다.

세계 5대 국제 항공화물 공항인 홍콩, 인천, 푸동, 타오위안, 나리타 공항이 모두 대만 인근 동중국해에 위치해 있으며, 전 세계 해상 교통량의 48%가 대만 주변 해역인 서태평양을 통과한다는 사실은 대만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지표이다.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동서양의 문화와 무역 교류의 중심지로 발전한 대만, 전 세계 첨단 칩, 서버, 노트북의 80% 이상이 대만 제조업체에서 생산되고 있으며, 전원 공급 장치, 커넥터, 인쇄 회로 기판, 전자 회로 등 IT 산업의 모든 분야에서 대만 기업인들은 뛰어난 기술력과 경쟁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같은 대만의 현위치는 우연이 아닌 필요에 의한 선택과 노력, 그리고 지정학적 압력의 결과물이다. 1965년 미국의 원조가 종료되었을 당시, 대만의 1인당 국민소득은 248달러에 불과했으며, 연간 5천만 달러의 외환 부족은 국가 경제에 심각한 부담으로 작용했다. 이러한 경제적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 대만 정부는 대만 중앙에 위치한 가오슝 가공수출구를 설립하여 새로운 경제 발전의 돌파구를 모색했다. 대만 전자 산업의 초창기에는 일본 기업과 미국 기업이 인재 양성의 요람 역할을 담당했다. 이러한 기반 위에서 1971년에 화타이 일렉트로닉스와 델타 일렉트록닉스가 각각 설립되었고, 잇따라 1974년에 컴퓨터 회사인 폭스콘과 미탁이 설립되었다. 


1970년대는 대만에 다중적 위기가 닥친 시기였다. 미국의 원조 중단과 함께 대만은 유엔에서 탈퇴하고 일본, 미국과의 외교 관계가 단절되었으며 두 차례의 석유 파동으로 국민 경제는 심각한 공황 상태에 빠졌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1974년 반도체 산업을 개발해야 한다는 혁신적인 제안에 부응한 대만 정부의 지원에 따라 후팅화胡定華 박사가 이끄는 연구팀이 반도체 기술과 경영을 배우려고 미국으로 파견되었다. 이 팀의 구성원들이 이후 TSMC 등 주요 반도체 기업의 창립자가 되었던 것이다. 


엔비디아의 CEO 젠슨 황익히 알려진대로 대만계 미국인으로 "AI가 소프트웨어를 지배하고,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지배할 것"이라고 예측했지만, 하드웨어 제조의 근본적 가치를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없으며, TSMC가 주도하는 대만의 반도체 제조 산업은 국가 경제에 막대한 영광과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이 대목에서 한국인이 선도적으로 AI 세계를 펼치지 못한 것이 못내 유감이란 생각이 든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말처럼 젠슨 황의 입장에선 같은 값이면 붉은 치마라는 판단하에 TSMC 제품을 선택하는 것이므로, 삼성전자가 이를 극복하려면 TSMC보다 압도적으로 기술력 우위의 제품을 개발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으며, 이는 피할 수없는 숙명인 셈이다.


미국과 중국의 거대한 무역 전쟁으로 인해 수많은 대만 기업들이 중국 내의 생산 공장(기지)들을 중국업자에게 매각하고 AI와 생산-판매 동기화라는 새로운 시대를 수용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하기 시작했다. 2019년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과의 분쟁을 촉발한 이후 서구 진영에 속한 대만은 산업 전략을 근본적으로 조정하면서, 더 많은 대만 기업인들이 본국으로 귀환해 새로운 스마트 제조 생태계의 상호 연동 및 다각화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이제 마지막으로 중국은 어떤 움직임을 보이는지 살펴보자. 중국은 주변국들에 독자적으로 정한 게임의 규칙을 무조건 수용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지만, 정작 중국 자신은 보편적인 국제 규범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중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미국 정부 대변인이 “중국의 말을 진지하게 경청하지만 모든 것은 반드시 객관적으로 검증되어야 한다”라고 신중하게 말한 것도 바로 이러한 중국의 이중적 태도 때문이다. 


오히려 중국 공산당 정권은 주변 이웃 국가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일본 정부는 대만해협에서 무력 충돌 사건이 갑자기 발발할 경우를 대비해 자국민들의 피난 비상 계획을 시뮬레이션했으며, 특히 오키나와 주민들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참혹한 상황이 재차 반복될 것을 걱정하며 심지어 대만해협 유사시를 대비한 특수 대피소까지 건설하는 선제적 조치를 취했다. 이럴진대 대만 국민들이야 오죽 하겠는가. 


자본 시장에서 전 세계 준비 통화의 62%는 미국 달러이다. 위안화는 2% 미만(그나마 중국인구가 워낙 많음에 기인한 결과로 보임)으로 유로화의 10분의 1, 영국 파운드와 일본 엔화의 절반에 불과하다. 이를 익히 알고 있는 중국 공산당 정부는 원유 수입량이 많다는 이유를 내세워 위안화로 결제 가능하게 만들고자 사우디 아라비아와 밀착 관계를 유지하려 애쓴다.


중국은 산유국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디지털 화폐와 전자 거래를 통해 자국 통화의 양상을 바꾸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디지털 화폐는 양날의 검이 될 가능성이 높다. 위안화가 디지털화되면 중국은 위안화의 흐름을 추적하여 중국인들이 자유롭게 해외로 돈을 밀반출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그래서 새로 취임한 트럼프 행정부는 필연적으로 미국 달러를 무기로 사용할 것이며, 미국 달러를 포기하는 국가는 미국 정부의 강력한 압력에 직면해야 할 것이다. 비록 TSMC가 높은 전세계 시장점유율을 유지할지라도 트럼프 정부의 눈밖에 나지 않으려 노력할 수밖에 없는 처지임에 분명하다.


#경제경영 #TSMC와트럼프이펙트 #콜리황 #반도체기업 #경이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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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23 - 피아니스트 조가람의 클래식 에세이
조가람 지음 / 믹스커피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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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팽의 Op.23은 발라드 1번, 차이콥스키의 Op.23은 피아노 협주곡 1번, 슈만의 Op.23은 밤의 노래, 라흐마니노프의 Op.23은 전주곡, 그리그의 Op.23은 페르귄트. 이 아름다운 사람들의 Op.23 즈음도 자신만의 매혹이 피어나던 어귀였습니다. - '작가의 말'중에서

책의 작가 조가람은 유럽 각지의 언론에서 호평받으며 음악성을 인정받은 피아니스트로 서울대학교 움대를 졸업한 후 독일 베를린 국립음대 '한스 아이슬러'에서 최고 연주자과정을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졸업하였다. 또 러시아 피아노의 거장 타티아나 니콜라예바의 계보를 잇는 가브리엘레 쿠퍼나겔 교수에게 사사하였다. 

그로아티아 피아니스트 이보 포고렐리치 

1980년 폴란드 바르샤바,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 현장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마치 쇼팽의 젊은 시절을 연상시키는 창백한 가녀림, 타협 없는 눈빛을 지닌 잘생긴 청년이 무대로 걸어 나왔다. 이질적이면서도 묘한 조화를 자아내는 그는 쑥스럽게 인사한 뒤 피아노 앞에 앉았다. 

예술에 맞고 틀림이 있겠냐마는, 콩쿠르의 세계에는 '정正'과 '誤'가 존재한다. 표준적인 시각에서 보면 그의 연주는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릴 수밖에 없었다. '정격 연주'의 반대편에 서 있는 듯한 그의 파격적인 해석에 1980년의 바르샤바는 시끄러웠다. 결국 그는 결선에 오르지 못했다.

그의 당시 실황 연주는 지금도 온라인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흐름의 예상치를 뒤엎는 그의 연주를 들으면 어떤 이는 신경이 거슬릴지도 모르고, 또 다른 누군가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고마워요’라고 말하며 바보처럼 울지도 모른다. 저자는 후자後者였다.

끝없이 과거를 복원하고, 모방하고, 학습하여 재현하는 클래식 음악의 세계. 그 안에서 그는 여전히 창작과 창조성의 가능성을 열어 보였다. 그가 펼쳐낸 새로운 지평은 아름다웠다. 모두가 지쳐버린 예술의 불모지에서 다시금 불씨를 지핀 그는, 클래식 음악이 여전히 확장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백건우가 연주하는 쇼팽의 '밤의 노래'

백건우는 음악의 정도正道에 다다르고자 지성의 신을 신고 한길을 걸어왓다. 그 길 위에서 정성 어린 진의의 음악으로 타인의 눈물을 닦아왔다. 이제 일흔셋, 그가 쇼팽의 일기장을 폈다. 그리고 쇼팽의 생각을 더듬어 따라가 본다. 

1964년, 23세의 나이로 부조니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세계 무대에 등장한 그는 '한국인 최초'라는 수식어에 가둘 수 없는 범세계적인 거장의 길을 걸었다. 청년 백건우는 이미, 한 세대를 대표하는 전설적인 업적을 세웠다. 그런데, 아마도 저자가 착각한 듯하다. 1969년 부조니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4위(특별상 수상)입상한 것으로 나타난다.   

쇼팽이 살았던 19세기의 속도가 21세기보다 두 배쯤 느렸다면, 그래서 사유의 양이 두 배쯤 많았다면, 쇼팽의 영혼은 일흔셋의 백건우와 동갑내기라 해도 괜찮을까? 그래서 그의 밤의 노래(야상곡夜想曲)는 이토록 깊이 스며드는가.

아니면, 이 바쁜 시대 속에서 홀로 모든 문화적 빠름을 뒤로 하고, 오로지 음악에 몰입한 세월을 살아낸 그의 삶의 정결함이, 쇼팽의 야상곡을 이해할 수 있는 문지방을 넘을 수 있었던 걸까. 그래서 그의 야상곡이 이토록 깊이 파고드는가.

프란츠 리스트의 '사랑의 꿈' 

리스트((1811~1886년)는 헝가리계 독일인 피아니스트로 아이돌에 필적하는 인기를 누린 남자였다. 뛰어난 문필가이자 위대한 작곡가였으며 숱한 여인들과 스캔들을 뿌렸던 인물이다. 그럼에도 불멸의 찬사를 받아 마땅한 비범한 음악가임에 틀림없다. 

37세의 리스트는 러시아 출신의 문인, 공작부인, 유부녀였던 캐롤린 비트켄슈타인과 이룰 수 없는 사랑에 빠졌다. 이전 연인戀人인 열정적인 다구 부인과 달리 그녀는 이지적 매력으로 그을 사로잡았다. 결국 그들의 사랑은 우정으로 변했지만 그 깊이는 더욱 단단해졌다. 40년 동안 정서적 교류를 이어갔다. 

이곡은 독일 시인 프리드리히 프라일리그라트의 시詩에 선율을 더하고, 이후 피아노 독주곡으로 편곡되었다. 제목은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하라!". 리스트는 사랑을 꿈꾸었고, 그 꿈을 영원히 잠들지 않는 노래로 남겼다. 아름다운 그 꿈을 음표 하나하나에 새겨 넣었다. 

오 사랑하라. 그대가 사랑할 수 있는 한! 
시간이 오리니, 그대가 무덤가에 서서 슬퍼할 시간이. 

오래도록 잠들지 않은 그의 사랑 이야기, 이백 년의 시간을 건너서도, 여전히 우리의 이야기처럼 마음을 파고드는 이 사랑 노래. 사랑 앞에 비범한 사람도 평범해지고, 바로 이 평범함이 한 인간의 고귀한 깊은 내면의 고유한 비범함을 이끌어 낸다는 진실을 리스트는 노래한다. 그가 비트켄슈타인을 만나 수많은 내면의 음악을 세상에 내어놓을 수 있었듯이.(117쪽)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곡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저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처음 보면 아름답고, 가까이하면 엉킨 실타래가 보이고, 오래 보면 논리가 보이는 곡"이라고 말이다. 이어서 겉으로는 가슴 아픈 로맨틱 영화의 배경음악처럼 노골적으로 아름다운 선율이 있고, 그 아래 다층적으로 첩첩이 숨겨진 멜로디들이 있다고 첨언한다. 

그는 오랜 고뇌 끝에 낭만성과 대중성을 큰 맥으로 잡고, 그 아래에 흐르고 있는 복잡다단한 당대의 러시아 인간사가 섬세하게 얽힌 모습을 그려냈습니다. 제국주의적 시선이나 정치적 시선을 담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저 불안한 시대를 살아내고 있는, 지극한 한 사람으로서 그려냈죠. 그래서 이 곡은 어쩌면 교향곡 1번보다도, 피아노 협주곡 2번보다도 가장 라흐마니노프 자신에 가까운 곡이 아닐까 싶습니다.(172쪽)

1악장은 러시아를 횡단하는 기차에 탑승하며 시작한다. 제1차 세계대전 직전의 러시아를 둘러보는 여행기가 시작된다. 여행에서 여러 사람 사는 모습들을 본다.

2악장은 1악장의 여행에서 둘러본 삶과 불가항력적인 시대적 아픔에 대한 사무치는 번뇌와 신에게 고함이 진하게 우러나온다.

3악장은 인간의 한계를 ㅅ시험하는 듯, 끝나고 연속적으로 펼쳐지는 각종 테크닉 때문에 마냥 인간적이지는 않다. 피아니스트들끼리는 라흐마니노프가 실수로 악보에 모래를 쏟았다고 농담할 정도로 까만 음표가 빽빽하다.

#에세이 #클래식에세이 #조가람 #피아니스트 #믹스커피 #원앤원북스

쇼팽의 Op.23은 발라드 1번, 차이콥스키의 Op.23은 피아노 협주곡 1번, 슈만의 Op.23은 밤의 노래, 라흐마니노프의 Op.23은 전주곡, 그리그의 Op.23은 페르귄트. 이 아름다운 사람들의 Op.23 즈음도 자심낭의 매혹이 피어나면던 어귀엿습니다. - '작가의 말' 중에서 



책의 저자 조가람은 유럽 각자의 언론에서의 호평과 함께 음악성을 인정받는 피아니스트로 서울대 음대 기악과를 졸업한 후 독일 베를린국립음대 '한스 아이슬러' 최고연주자과정을 졸업했다. 국제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독일 정부 주최 학술 교류 연구소 DAAD 상을 수상했다. 


크로아티아 피아니스트 이보 포고렐리치


1980년 폴란드 바르샤바,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 현장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마치 쇼팽의 젊은 시절을 연상시키는 창백한 가녀림, 타협 없는 눈빛을 지닌 잘생긴 청년(1958년생)이 무대로 걸어 나왔다. 이질적이면서도 묘한 조화를 자아내는 그는 쑥스럽게 인사한 뒤 피아노 앞에 앉았다. 


예술에 맞고 틀림이 있겠냐마는, 콩쿠르의 세계엔 '정正'과 '오誤'가 존재한다. 그의 연주는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릴 수밖에 없었다. '정격 연주'의 반대편에 서 있는 듯한 그의 파격적인 해석에 1980년의 바르샤바는 시끄러웠다. 결국 그는 결선에 오르지 못했다. 


그의 당시 실황 연주는 지금도 온라인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흐름의 예상치를 뒤엎는 그의 연주를 들으면 어떤 이는 신경이 거슬릴지도 모르고, 또 다른 누군가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고마워요’라고 말하며 바보처럼 울지도 모른다. 저자는 후자에 속했다. 그는 클래식 음악이 여전히 확장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한국인 최초로 국제 콩쿠르에 입상한 피아니스트 백건우


"1964년, 23세의 나이로 부조니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세계무대에 등장한 그는 '한국인 최초'라는 수식어에 가둘 수 없는 범세계적인 거장의 길을 걸었다"고 저자는 밝힌다. 그런데, 이는 저자의 착각인 듯싶다. 서울 태생의 백건우(1946년생)는 1968년 콩쿠르에서 4등으로 입상했다. 물론 한국인 최초로 입상했다. 이탈리아 페루초에서 거행되는 세계적 권위를 지닌 이 콩쿠르는 피아노 부문만 개최되는 대회이다.


쇼팽(1810~1849년)이 살았던 19세기의 속도가 21세기보다 두 배쯤 느렸다면, 그래서 사유의 양이 두 배쯤 많았다면, 쇼팽의 영혼은 일흔셋의 백건우와 동갑내기라 해도 괜찮을까? 그래서 백건우가 연주하는 쇼팽의 '밤의 노래'는 이토록 깊이 스며드는가.

아니면, 이 바쁜 시대 속에서 홀로 모든 문화적 빠름을 뒤로 하고, 오로지 음악에 몰입한 세월을 살아낸 그의 삶의 정결함이, 쇼팽의 야상곡夜想曲을 이해할 수 있는 문지방을 넘을 수 있었던 걸까. 그래서 그의 야상곡이 이토록 깊이 파고드는가.


리스트의 '사랑의 꿈' 


프란츠 리스트(1811~1886년)는 아이돌에 필적하는 인기를 누린 남자이다. 뛰어난 문필가이자 위대한 작곡가였으니 무수한 여인들과의 염문을 뿌리고 다녔다. 37세의 리스트는 러시아 출신의 문인이자 공작부인인 캐롤린 비트켄슈타인과 이룰 수 없는 사랑에 빠졌다. 전에 사귀던 열정적인 연인과 달리 이지적인 매력을 지녔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사랑은 결국 우정으로 변했지만, 그 깊이는 훨신 더 단단해졌다. 두 사람은 40년산 정서적 교류를 이어갔던 것이다. 음악가 리스트의 수많은 멸작들이 그녀와의 정신적 교류 속에서 탄생했다. 리스트는 연인에 대한 사랑을 음익으로 바쳤다. 바로 '사랑의 꿈'이다. 


오, 사랑하라. 그대가 사랑할 수 있는 한!

시간이 오리니, 그대가 무덤가에 서서 슬퍼할 시간이.


이 곡은 독일 시인 프라일리그라트의 시에 선율을 더해 피아노 독주곡으로 편곡되었다. 제목은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하라!". 리스트는 사랑을 꿈꾸었고, 그 꿈을 영원히 잠들지 않는 노래로 남겼다. 아름다운 그 꿈을 음표 하나하나에 새겨 넣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오래도록 잠들지 않은 그의 사랑 이야기, 이백 년의 시간을 건너서도, 여전히 우리의 이야기처럼 마음을 파고드는 이 사랑 노래. 사랑 앞에 비범한 사람도 평범해지고, 바로 이 평범함이 한 인간의 고귀한 깊은 내면의 고유한 비범함을 이끌어 낸다는 진실을 리스트는 노래한다. 그가 비트켄슈타인을 만나 수많은 내면의 음악을 세상에 내어놓을 수 있었듯이.'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곡'으로 알려져 있다. 저자는 '처음 보면 아름답고, 가까이하면 엉킨 실타래가 보이고, 오래 보면 논리가 보이는' 곡이라고 평한다. 이어서 겉으로는 가슴 아픈 로맨틱 영화의 배경음악처럼 노골적으로 아름다운 선율이 있고, 그 아래 첩첩이 숨겨진 멜로디들이 있다고 첨언한다. 총 3악장으로 구성되었는데, 각종 콩쿠르에서 이 곡을 시도하는 연주가자들이 종종 있다. 


1악장은 러시아를 횡단하는 기차에 탑승하며 시작된다. 기차가 서서히 움직이는 소리 같다. 제1차 세계대전 직전의 러시아를 둘러보는 여행이 시작된다.


2악장은 여행에서 둘러본 삶과 불가항력적인 시대적 아픔에 대한 사무치는 번뇌와 신에게 고함이 진하게 우러나온다.


3악장은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듯 마냥 인간적이진 않다. 연속적으로 펼쳐지는 각종 테크닉 때문이다. 피아니스트들끼리는 라흐마니노프가 실수로 악보에 모래를 쏟았다고 농담할 정도로 까만 음표가 빽빽하다.


#에세이 #클래식에세이 #Op23 #조가람 #믹스커피 #원앤원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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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5-05-07 2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등록하던 글이 사라져서 재작성했더니 사라진 글이 다시 나타났네요.ㅠㅠ
 
김옥균, 조선의 심장을 쏘다
이상훈 지음 / 파람북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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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묻는다. 다만 목숨을 걸고 옳은 일을 시도한 이가 누구인가? 오늘날 자신의 이익과 사리사욕을 위해 국가를 팔고 국민을 파는 사이비 정치인 그리고 사이비 지식인에게 김옥균의 일생이 작은 울림을 주기를 바랄 뿐이다. - '저자의 말' 중에서 


이 소설의 저자 이상훈은 KBS 공채 PD
출신으로 SBS 개국에도 참여했고, 채널A 제작본부장까지 거치는 동안 수많은 히트작을 제작했다. 동아방송예술대 교수로 재직할 당시 첫 소설 <한복 입은 남자>로 문단에 등단한 이후 세 번째 소설 <김의 나라>로 제16회 류주현문학상을 수상함으로써 역사소설가로 인정받게 되었다.


김옥균이 살았던 당시의 조선은 안동김씨의 세도정치에 이은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치로 근대화를 외면한 '우물안 개구리' 격의 왕조였다. 뒤를 이은 고종의 우유부단함과 무능, 그리고 민비의 탐욕과 국정농단은 조선을 점점 위기 속으로 몰고가는 형국이라 호시탐탐 조선을 노리는 청나라, 일본, 러시아 등 주변 국가들뿐만 아니라 서구의 열강마저도 군침을 흘리고 있었다. 이런 조선은 그들에게 좋은 먹잇감이었기 때문이다. 

김옥균(1851~1894년)은 조선 말기의 관료, 정치가로 급진개혁파였다. 문과 장원급제 후 주요 보직을 두루 거친 그는 개화사상 확산에 힘썼으며, 임오군란 후 일본식 급진 개혁을 주장했지만 이같은 그의 행보에 민씨 외척 세력은 번번히 발목을 잡았다. 참다 못한 그는 갑신정변(1884년)을 일으켜 정권을 손에 쥐었으나 '3일 천하'로 막을 내리고 만다. 이후 일본으로 정치적 망명, 재기를 노렸으나 그의 꿈은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다.

옥균은 아버지 김병태와 어머니 은진송씨의 장남으로 충청도 공주시 정안면 광정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안동김씨 후손이었지만 몇 대 째 벼슬을 하지 못하고 시골에서 훈장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다섯 살이 지나자 천자문을 뗄 정도로 영특했던 옥균은 여섯 살 때 옥천으로 이사, 행복한 유년 시절을 보내던 중 옥균에 대한 소문은 안동김씨 가문에 널리 퍼지고, 한양의 명문가로 자리잡은 육촌 형 김병기는 슬하에 자식이 없자 옥균을 양자로 입적했다.

입양 후 어린 옥균의 학문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했다. 명문가의 후계자 수업을 받으며 안목을 더욱 더 키워나갔다. 강릉부사가 된 양부를 따라 강릉에서 자라며 노론의 학통도 몸에 익혔다. 16세에 다시 양부를 따라 한양으로 복귀했다. 이때 옥균은 연암 박지원의 손자로 개화파를 이끌던 박규수를 만나게 되었다. 박규수는 1864년부터 병조참판과 이조참판을 거치며 능력을 인정받아 1865년에는 한성판윤, 예조판서를 거쳐 1866년 2월 평안도 관찰사로 부임했다. 제너럴셔먼호 사건 5개월 전의 상황이었다. 

대원군이 천주교를 박해하고 프랑스 신부를 죽인 것을 빌미 삼아 프랑스함대가 군함 여러 척을 이끌고 조선으로 침입해왔다. 바로 '병인양요'였다. 이때 박규수의 제자 오경석이 대원군에게 프랑스함대의 약점을 보고하면서 적을 유인해 약점만 공격하면서 장기전으로 간다면 승리할 수 있다는 건의를 수용, 대원군은 결국 승리할 수 있었다. 박규수와 오경석은 대원군의 부국강병을 기초로 개화를 이룬다면 일본을 곧 따라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대원군은 승리를 기회로 더욱 더 쇄국정책을 펼쳤던 것이다. 

철종의 부마로 고종의 매제였던 박영효(1861년생)와 첫 만남을 가진 옥균은 비록 자신보다 10살이나 아래이지만 지위가 높았기에 영호를 존대했다. 박규수의 북촌집 사랑방 모임은 일본의 메이지 유신 주역을 길러낸 요시다 쇼인의 사숙과 비슷했다. 안타깝게도 박규수가 뿌린 조선의 개화사상은 갑신정변의 실패로 무너진 반면 요시다 쇼인의 제자들은 메이지유신을 성공시켜 일본을 근대회화 이끌었다. 

이 소설은 이렇게 시작한다. 

1894년 3월 25일 나가사키 항구에는 상해행 사이쿄마루(西京丸)증기선이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정박해 있었다. 한편 부둣가에는 상하이로 떠나는 김옥균을 배웅하기 위해 수십 명의 사람이 줄지어 섰다. 그는 청나라의 리홍장을 만나기 위한 목적이었다. 그의 일행엔 일본인 와다 엔지로, 통역을 맡은 청국공사관 서기 오보인, 그리고 갓을 쓴 조선인 홍종우가 있었다.

운명적 만남

역관 출신인 오경석에게는 김옥균과 동갑인 딸이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오경화였다. 경화는 장신에다 힘도 세어 여장부의 풍모가 있었다. 오경석은 딸이었음에도 경화에게 서양의 학문과 역관의 지식을 전해주었다. 경화의 어머니는 당시의 보수적인 여성들이 그렇듯 좋은 남자를 만나 시집 가는 게 행복인 여자에게 왜 학문를 가르치냐며 남편을 핀잔했다. 

오경석이 중국에서 돌아오면 옥균은 항상 오경석의 집으로 찾아가 자연스럽게 옥균과 경화의 만남은 이루어졌다. 옥균에게 호감을 가진 경화는 아버지와 옥균이 나누는 대화를 옆방에서 몰래 엿들었다. 해박한 옥균의 지식에 겅화는 점점 빠져들고 있었다. 그러나, 둘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었다. 신분차별이 분명한 조선이기에선 장원급제한 양반 남성과 중인 계급의 여성을 양가 부모 모두 불허했던 것이다.

1877년 스승인 박규수가 죽자 스승의 유언대로 오경석과 함께 개화 사업에 더욱 몰두했다. 여자 한 명 때문에 개화 사업에 차질이 생기면 안 되기에 결국 옥균은 양부모가 주선한 유씨 집안의 딸과 혼인했다. 유길준의 먼 친척되는 집안이었다. 또 다른 스승인 오경석도 폐병이 깊어져 각혈을 토해내다가 유언도 남기지 못하고 절명하고 말았다. 정신적으로 방황하던 경화는 양학에 밝고 영특하다는 소식을 들은 조대비가 곁에 두고 싶다는 제안을 해옴에 따라 옥균 외의 남자와는 결혼 의사도 없고 개화 사업에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아 조대비의 상궁이 된다.  

태극기의 탄생

주역에 관심이 많았던 김옥균은 영국 공사의 말을 듣고 주역 64괘 중에서 지금 조선에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했다. 백성을 한마음으로 모으고 나라를 부강하게 만든다는 염원을 담아 김옥균은 먼저 왼쪽 위아래에 건괘(乾卦)와 리괘(離卦)를 그렸다. 그리고 오른쪽 위에 감괘(坎卦)를 그리고 아래에 곤괘(坤卦)를 그렸다. 

태극기의 왼쪽은 64괘 중 천화동인天火同人, 오른쪽은 수지비水地比의 괘가 완성되었다. 천화동인에는 ‘하늘과 불이 서로 만나니, 군자는 뜻이 같은 자들을 모아 일을 완성하고 처리한다.’라는 의미가 담겼고, 수지비에는 ‘비가 땅에 촉촉하게 내려 만물을 적시고 만국을 세워 하나가 되게 한다.’라는 의미가 담겼다. 따라서 태극기의 사괘에는 모두가 듯을 모아 부강한 나라를 만들고 그 은혜를 만백성에게 고루 스며들게 한다는 염원이 담겨있었다. 

고종의 윤허

김옥균의 집에 박영효, 홍영식, 서광범, 서재필 등 핵심 인사들이 모여 거사 계획을 짜고 있었다. 

(김옥균)"전하의 윤허를 얻었습니다. 문서로 우리 개화파를 밀어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이루려고 하는 것은 나라를 뒤집는 것이 아니라 조선을 개화해 자주독립 국가를 만드는 것입니다." 

(홍영식)“전하의 우유부단한 성품을 봐서 언제 또 입장이 바뀔지 모릅니다.”

(김옥균)“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전하의 동의를 구해놓지 않으면 명분이 약해지기 때문에 전하를 이 거사에 끌어들인 것입니다. 우리의 거사는 군사를 동원한 폭동이 아닙니다. 정치를 바로 세우자는 것입니다.”

(서광범)“그래도 거사에 힘이 없으면 성공하기 힘듭니다. 군사들 동원 계획은 문제가 없습니까?”

(서재필)“일단 광주군영의 신식군대 지휘관들은 우리 편입니다. 그들이 비록 민씨 일당의 군영에 속해 있지만 오백 명 정도는 우리가 거사를 일으킬 때 함께 돕기로 했습니다.”

(박영효)"아직도 청의 군사 천오백 명이 조선에 남아있습니다. 만약 원세개가 눈치채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김옥균)"청의 나머지 군사도 안남으로 이동시킬 것이라 들었습니다. 거사일까지 이동하지 않으면 부득이 일본의 사백 명 정예군대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에 대해선 이미 일본공사 다케조에와 밀약을 했습니다." 

그렇다. 군의 도움이 없다면 성공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고종은 갑신정변을 인정했음에도 민비의 꼬드김에 솔깃해서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김옥균은 고종의 부탁에도 불구하고 민비의 지시로 계속 소란을 일으키는 환관 유재현을 본보기로 살해할 수밖에 없었다. 

고종의 변심

경기감사 심상훈과 민비의 말을 듣고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한 고종에게 또 하나의 사건이 발생했다. 경우궁에서 창덕궁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고종은 환관 유재현을 죽이지 말라 수십 번 외쳤건만 김옥균 일파가 처단하는 것을 보고 자신도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겁이 났다. 

이미 많은 정승이 죽어 나갔다는 소식에 마음이 바뀌기 시작했는데, 갑신정변의 정강과 인사를 자신과 의논도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발표하는 것을 보고 고종은 속으로 화가 치밀었다. 갑신정변의 정강을 읽어본 고종은 김옥균에게 격하게 화를 내며 말했다. 고종은 마지막까지 권력의 끈을 놓고 싶지 않았다.

“이 임금을 허수아비로 만들려고 이런 정변을 일으켰다는 말인가?"

자객의 그림자

고종과 민비는 김옥균을 오사카 사건의 배후호 지목하고 일본 정부에 강력하게 항의하는 한편, 김옥균을 죽이려고 두 번째 암살단 파견을 결정했다. 고종은 한때 개화파의 일원이었으며 김옥균과 친분이 있는 지운영을 궁궐로 호출해 권총 한 자루와 돈을 내어놓으며 당장 일본으로 떠나라고 명령했다. 

1886년 3월, 지운영이 일본에 도착했다. 그는 종두법을 조선에 보급한 지석영의 형이다. 일찍 개화에 눈을 떠 김옥균 수하에서 일하기도 했다. 먼저 일본에서 의학을 공부하던 동생 석영을 만나 자신의 계획을 밝히자 역사의 죄인이 된다며 극구 만류했다. 그럼에도 어명을 거역하면 집안의 몰락이 불보듯 뻔하다며 고종에게서 받은 돈 정반을 동생에게 내놓고 사라졌다. 

김옥균 주위를 맴돌던 지운영은 한양 김옥균 집에서 만난 적이 있던 유혁로를 만나게 되었다. 눈치를 챈 유혁로가 지운영을 술집으로 데려갔다. 취중진담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유혁로는 김옥균을 욕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에 장단을 맞춘 유혁로는 김옥균과 미리 말을 맞춘 후 지운영을 김옥균에게 인사시켰다. 김옥균은 일부러 유혁로를 종 부리듯 하며 짜증을 냈다. 유혁로를 포섭하면 거사의 성공은 따논 당상이라고 판단한 지운영은 진실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지운영)“나는 김옥균을 죽이기 위해서 전하의 명을 받고 조선에서 왔소. 그대가 도움을 주면 전하께서도 큰 상을 내리실 것이요.”

(유혁로)“전하께서 큰 상을 준다는 말을 내가 어떻게 믿겠소. 전하께서 그대에게 내리신 증표라도 있으면 내가 믿겠소.”

유혁로의 말에 지운영은 품 안에 있던 고종의 친필 신표를 보여주었다. 그것을 본 유혁로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참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한 후 술을 마시자고 제의했다. 지운영은 그날 진탕 마시고 술에 취한 채 잠에 골아 떨어졌다. 유혁로는 지운영의 품 안에서 고종의 친필 신표를 꺼내어 유유히 사라졌다. 이후 고종의 밀서가 일본의 언론을 통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되었다.

총탄에 쓰러지다

1894년 3월 28일, 숙소 앞 강가에선 폭죽놀이가 벌어지고 있었다. 옥균은 홍종우에게 상하이 은행으로 가서 어음을 현금으로 교환하라고 지시했다. 홍종우가 들고 간 어음은 가짜였다. 상하이 거리를 배회하면서 홍종우는 머리가 복잡해졌다. 가짜 어음이 탄로나기 전, 김옥균을 암살해야 하는데 좀처럼 기회가 포착되지 않았다. 

옥균은 이홍장을 만나 중국 역사를 들먹이며 대화를 풀어나가려고 방에서 <자치통감>을 읽고 있었다. 일본인 와다 엔지로는 이런 옥균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상하이 은행으로 갔던 홍종우는 돌아와 은행 지배인이 출타중이라 바꾸지 못헸다고 거짓으로 보고했다. 

와다 엔지로가 잠시 자리를 비운 틈에 홍종우는 이일직이 준 리볼버 권총을 들고 김옥균의 방으로 한 발짝 한 발짝 움직였다. 권총을 쥔 그의 손이 땀으로 미끈거렸다. 급기야 자고 있는 옥균을 향해 권총 한 발을 발사했다. 그러나 땀에 젖은 손에 권총이 미끄러져 총알은 김옥균을 스쳐 지나갔다. 눈을 뜬 옥균이 홍종우를 쳐다보았다. 두 번째 총알이 옥균의 어깨를 관통했다. 옥균은 피를 쏟으면서 홍종우의 다리를 잡고 소리쳤다.

“나는 여기서 죽으면 안 된다. 내가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나를 죽이더라도 이홍장을 만난 이후에 죽여라. 너는 역사가 두렵지 않으냐?”

겁이 난 홍종우는 세 번째 총알을 옥균의 심장에 쏘았다. 밖에 있던 와다 엔지로가 총소리를 득고 급히 계단을 올라왔으나 홍종우가 그를 밀치고 도망쳤다. 고종이 김옥균 암살에 병적으로 집착했음이 <고종실록>에 나와 있다.

하늘이 나라를 도와주어 비로소 죄인이 죽었다. 온 나라에 대사령을 내리는 것을 어찌 주저하겠는가? 이달 27일까지 잡범으로서 사형수 이하는 모두 용서해주어라.

#소설 #이상훈장편소설 #김옥균조선의심장을쏘다 #서평단 #파람북 #오인환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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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점을 디자인하라 (표지 3종 중 1종 랜덤) - 없는 것인가, 못 본 것인가? (50만 부 개정증보판: ABC Edition)
박용후 지음 / 쌤앤파커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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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일을 겪고도 어떤 사람은 해결 방법을 찾아내고 어떤 사람은 문제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 어떤 사람은 하나의 장면에서도 순식간에 수많은 것을 읽어내지만, 어떤 사람은 수많은 의미가 담긴 장면에서도 아무것도 읽어내지 못한다. 그 차이는 어디에서 시작될까? 바로 ‘관점’이다. - '프롤로그' 중에서


책의 저자 박용후는 수많은 성공과 실패의 경험과 원칙을 바탕으로 여러 기업의 필요에 맞는 자문 역할을 하고 있으며, 그 결과 '한 달에 13번 월급 받는 남자'로 알려지면서 대중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그 숫자는 현재 33번으로 불어났다. 고정적으로 출근하는 곳은 없지만, 세상 어느 곳이라도 스마트폰과 노트북만 있으면 그의 행복한 일터가 된다.

책은 총 6개 파트로 구성되어 보는 것과 아는 것의 차이, 관점은 관성 밖의 것을 보는 힘이다, 관점을 바꾸면 '산타클로스'가 보인다, 나를 상품을 기업을 판다는 것, 인생을 '주관식'으로 풀어내는 법, 미래는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다 등의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저자기 독자들에게 전하려는 메시지는 이와 같다.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해석하는 방식이 달라지고 전혀 다른 결과에 다다른다. 사람들 사이에서 발견되는 능력의 차이는 바로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았느냐?’에서 기인한다. 관점을 바꾸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당연함'을 의심하라, 그러면 미래가 보인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오직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는 것만이 변하지 않는 진리다."

이 명언은 이미 수천년 전에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불제자들에게 설법說法했던 '제행무상諸行無常'이란 가르침과 닮아 있다. 그렇다.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가르침이야말로 진리인 것이다. 이럴진대 그 무엇이든 아무 생각 없이 당연하게 받아들인다면 이 사람은 늘 세상의 변화를 뒤따라가는 추종자일 수밖에 없다. 

게을러서 추종자가 되는 게 아니다. '당연함'에 대해 전혀 의심을 갖지 않고 그대로 수용한다면 그렇게 된다. 지금 당연하다는 것을 의심하고 부정하고 비판함으로써 다가올 미래에 당연해질 것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생각의 씨앗이 자라나 남들과는 다른 자신만의 생각이 자리잡게 되는 것이다. 하루가 달리 변해가는 디지털 세상에서 아날로그만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면 성공할 수 있을까?  

습관의 코드를 읽어내라

물길을 단순히 물의 흐름으로만 생각한다면 물길의 흐름을 바꿀 생각은 않게 된다. 우리들 주변의 성공한 리더로 인정받는 리더들은 그 흐름을 바꾼 사람들이다. 습관의 코드라는 패턴을 읽어내는 사람만이 성공의 대열에 합류할 수 있다. 

세상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세상의 흐름이 만들아낸 관성대로 사는 사람과 성공을 위한 자신만의 관성을 만드는 사람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이런 습관 코드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네이버는 정보를 검색하는 습관을, 카카오는 커뮤나케이션의 습관을, 배달의민족은 배달 음식을 주문하는 습관을 장악하고 있다. 새로운 습관을 만들어낸 놀라운 통찰임에 틀림없다. 

많은 관점을 가지면 성공한다

많은 관점을 갖는다는 것은 많은 '다양성'의 문과 '가능성'의 문을 열어놓는다는 의미다. 많은 관점을 가진 사람은 많은 것을 볼 수 있고, 많은 것을 들을 수 있고, 많은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이런 사람이 당연히 성공하는 법이다. 책의 저자가 이토록 관점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24시간 꺼지지 않는 스마트폰으로 인해 우리들은 시간과 공간의 모든 제약을 넘어서게 되었다. 그럼에도 제약이 있었던 과거의 방식대로 계속 일할 필요가 있을까? 오피스리스워커 또는 디지털 노마드형 인간이 점차 더 늘어날 것이 분명해 보인다. 꺼지지 않는 컴퓨터의 시대는 더욱 더 비약적으로 발전할 것이다.

링크를 보낼 이유를 만들자 

세계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보이그룹 BTS를 만든 것이 바로 SNS 마케팅, 링크 투 링크 마케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BTS는 데뷔 전인 2012년부터 유튜브 방송을 시닥해 자신들의 재능을 소개하면서 팬층을 키워나갔다. 이들의 춤과 노래는 유튜브를 통해 자연스레 퍼져나갔다. 팬클럽 또한 자연스레 만들어졌다. '아미'라는 팬클럽은 SNS 마케팅 전략을 짜 국가별로 활동했다. 기존의 음악 소비 네트워크 도움 없이도 지금의 자리에 우뚝 설 수 있었다. 

이제 링크를 보낼 이유를 만들 수 있다면, 콘텐츠를 공유하고 싶게만 만들 수 있다면, 사람이든 동물이든 상품이든 서비스든 뜰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링크를 보낼 이유를 만들어라. 이리 된다면 자신의 가치는 수직 상승이 보장될 것이다. 단순한 홍보 영상보다 훨씬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다.


(사진, 김치찌개레시피, 231쪽)

삼인행 필유아사三人行 必有我師

이는 <논어>에 나오는 귀절이다. 만남의 중요성을 이토록 잘 표현한 말이 있을까 싶다. "세 사람이 길을 나서면 반드시 내 스승이 있다"는 명언이다. 즉 세 사람 중 한 명에게서는 반드시 배울 점이 있다는 이야기인 셈이다. 어쩌면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이 나의 스승일 것이다.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사공자四公子로 알려진 제나라 맹상군, 초나라 평원군, 위나라 신릉군, 초나라 춘신군의 집에 각각 수천 명의 식객食客이 기거했다고 한다. 쓰임새가 있을 듯한 인재들을 모두 받아들인 까닭이다. 사마천의 '사기열전'엔 식객들의 활약상이 소개되어 있다. 

<탈무드>에도 "만나는 사람 모두에게서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는 사람이 가장 현명한 사람이다"라는 말이 실려있다. 만나는 사람 각자에게서 한 가지씩만 배워도 열 명을 만나면 열 가지 장점을 지닌 사람이 되고, 100명을 만나면 100가지를 더 알게 되며, 1,000명을 만나면 1,000명의 장점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 만나는 모든 사람이 스승이라고 생각하면 이 세상 전체가 배움터가 된다.

#자기계발 #관점을디자인하라 #박용후 #쌤앤파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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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지능 시대 - 차가운 AI보다 따뜻한 당신이 이긴다
김희연 지음 / 이든하우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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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를 살아갈 모두가 의식적으로 키워 나가야 할 전략적 역량으로 공감력을 키우는 것이다. 단순히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인간적인 공감력'을 넘어 실질적인 가치를 만들어 내는 '잔략적 공감 지능'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 '프롤로그' 중에서


책의 저자 김희연은 한국씨티은행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해서 노무라증권, 현대증권 등에서 IT 애널리스트를 거쳐 LG디스플레이로 전작해 그룹 최초로 여성 CSO이자 전지 계열 전략 그룹장을 지냈다. 현재 경영/AI 관련 강연 및 칼럼니스트와 롯데 글로벌 로지스 사외이사로 있다. 

총 5부로 구성된 책은 '공감 지능은 태도가 키운다, 일상의 신호를 읽자, 시대의 변화를 읽자, 본질을 재정의하라, 함게 더 큰 공감으로' 등의 주제로 이야기를 펼치며 일상 속 구체적 경험들이 어떻게 공감 지능으로 발전하는지, 이를 어떻게 포착하고 키워 나갈 수 있는지를 다룬다. 책의 마지막 부분은 개인의 공감 지능이 팀플레이를 통해 어떻게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는지 구체적 방법을 다룬다. 책 속 인상적인 부분을 소개하면서 도서 서평에 갈음하려 한다.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만 온다

공자의 손자 자사子思가 쓴 '중용中庸'은 사서四書 중 하나로 책 속 23장 문구는 '비록 작은 일일지라도 최선을 다하라'는 가르침을 담고 있다. 조선 후기의 개혁 군주 정조가 이를 즐겨 읽었다고 알려지는데, 특별한 이유는 하찮아 보이는 일상의 정성精誠이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지 연결 고리를 보여 주기 때문이다.


(사진, '중용' 23장, 50쪽)

모든 여정은 결국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모름을 인정할 때 다른 사람의 지식과 경험을 받아들일 수 있고, 집요한 배움의 과정에서 타인의 다양한 관점을 이해하게 되며, 위기의 순간에도 그것을 바라보는 다른 시각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정성스러운 태도는 진정성이 되어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타인의 마음을 움직인다. 

우리의 태도가 만드는 이러한 상호 작용과 이해의 과정은 상호 간의 공감을 통해 더 큰 힘을 만들어 낸다. AI 시대를 살아가며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최첨단 지식이 아닐지도 모른다. 작은 일에도 정성을 다하는 태도, 그리고 정성이 만들어 내는 변화에 대한 믿음이야말로 차가운 시대를 이기는 가장 따뜻한 무기가 될 것이다.


(사진, 통찰 박스, 68쪽) 


변화의 방향성 파악하기

사람들은 맥도날드 대신 불닭볶음면과 김밥과 같은 저렴한 집밥 메뉴를 즐기기 시작했다. 소비자들의 마음 속에서 레스토랑이나 패스트푸드점의 진정한 경쟁자는 이제 집밥이 되어 가고 있다. 

주식 시장은 이러한 변화를 예리하게 포착했다. 맥도날드의 실적이 성장함에도 불구하고 주가는 하락하는 반면, 월마트와 삼양식품의 주가는 급등했다. 그렇다면 이 변화는 얼마나 지속될까? 일시적 현상이라면 집밥의 번거로움 때문에 오래가지 못하겠지만 여기엔 더 깊은 변화의 신호가 보인다.


(사진, 문화적 변화 만들기, 91쪽)

변화의 방향성은 산업 데이터나 시장을 분석하는 것만으로는 찾아내기 어렵다. 추가적으로 사람들의 일상을 섬세하게 관찰하고 그들의 마음을 읽어 내는 것이 가미돼야 한다. 소비자의 선택은 편리함, 경제성, 즐거움이 만나는 지점에서 이루어진다. 불편을 피하고 즐거움을 찾아가는 인간의 본질적인 심리가 만드는 변화가 바로 공감 지능으로 읽어 내야 할 시그널이다.

새로운 불편, 혁신의 기회

요즘은 안경을 쓰듯 모두가 이어폰을 끼는 세상이다. 통화하기와 음악듣기를 넘어 이젠 오디오북 서비스를 통해 책을 듣고, 유튜브도 듣는다. 하지만 사용 시간의 증가로 인해 청력 악화와 귀 질환의 우려라는 새로운 고민도 생겨났다. 

스마트폰 사용으로 시력 및 수면의 질 관련 약품 판매가 급증한 것처럼 청력 개선 시장이 꽃 피울지도 모르겠다. 최근 귀에 꽂지 않는 '뼈 전도 이어폰'의 유행도 이런 흐름의 반영이리라. 어쩌면 다음 후보는 보청기 기능이 탑재된 이어폰의 출시일지도. 또는 AI가 건강 상태를 감지해서 적절한 음악과 조언을 들려주는 웰빙 디바이스나 동시 통역기가 될 수도 있겠다. 


(사진, '새로운 불편, 혁신의 기회', 115쪽)

느림과 불편함의 가치

요즈음은 정성精誠을 보여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단순히 좋은 결과물을 내는 것 이상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의 정성과 철학을 보여주는 것이 새로운 소통 방식이 되고 가치로 이어지는 것이다. 로스터리 카페의 성공이 이를 대변한다. 대형 프랜차이즈처럼 미리 로스팅된 원두를 사용하는 대신, 매장 한 켠에 로스팅 기계를 두고서 직접 원두를 볶는다. 심지어 투명한 공간 너머로 로스터의 정성스러운 작업, 신선한 원두 향, 날씨와 습도에 따른 맛의 차이까지 느낀다. 


(사진, 느림과 불편함의 가치, 159쪽) 

역사의 공감

산업 혁명이 알어났을 때 사람들이 보인 반응은 지금의 AI에 대한 우리들의 반응과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 증기 기관이 등장하자 사람들은 일자리가 사라질까 두려워했고, '러다이트 운동'이란 기계 파괴 행위가 나타났다. AI가 우리의 일자리를 위협한다는 우려와 너무나도 흡사하다. 그 당시에도 육체노동은 기계에게 넘기고, 인간은 더 창의적인 영역으로 이동했다. 지금은 어떠한가? 오늘날 지적 노동의 일부를 AI에게 넘기고, 더 인간적인 영역으로 나아가는 과정에 있다. 

산업 혁명 시대엔 기술에 적응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간에 격차가 벌어졌다. 증기 기관과 전기를 활용하는 방법을 배운 이들은 새로운 기회를 잡았고, 그렇지 못한 이들은 뒤쳐지고 말았다. 오늘날 AI를 활용하는 능력이 새로운 격차를 만들어 내는 것과 일맥상통하다.  

미래도 과거와 현재의 연장선에 있다. 과거의 사람이나 지금의 사람이나 미래의 사람 모두가 같은 사람이다. 기술, 제품, 환경은 진화하지만 변화를 마주하는 인간의 본성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과거의 역사적, 산업적 상황의 정서적 맥락을 깊이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은 현재를 극복하고 미래의 변화를 헤쳐 나갈 수 있는 지혜를 얻는 지름길이다.

"과거를 알면 현재를 이해할 수 있고, 현재를 알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 - 윌리엄 펜


(사진, 통찰 박스, 222쪽)

AI 속에는 미래는 없다 

우리는 지금 거대한 물결 앞에 서 있다. AI 시대는 필연이다. 이제는 선택해야 한다. AI가 주는 답을 추종하며 살 것인가? 아니면 그것을 참고하되 나만의 방식을 설계할 것인가? 미래를 읽고 현실을 주도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선 나만의 생각을 기준으로 타인의 생각에 공감하고 사회의 흐름을 읽어 내며 그 속에서 함께 더 나은 변화를 만들어가는 역량이 필요하다. 그 핵심이 공감 지능이다.

#경제경영 #공감지능시대 #김희연 #AI #도서서평 #이든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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