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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공의 흰옷
구에 반봉 지음 / 동녘라이프(친구미디어) / 1986년 8월
평점 :
절판
사이공의 흰옷 /구엔 반 봉/ 친구
1960년대 베트남 학생운동을 기록한 소설 '사이공의 흰옷' 은 우리가 살아냈던 독재정권 아래 학생운동 현장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 식민지 지배에 의해 매판자본이 판치는 사이공에서 조국, 민족, 혁명에 눈뜨는 젊은이들을 보니 약소민족이 걸어가는 길이 보인다 . 주인공 '홍' 은 시골에서 올라온 여학생이다 . 그는 혠 ,뇽, BB타잉, 호앙, 돗크, 랑같은 친구 혹은 선후배들과 혁명운동에 몸을 던진다 . 처음에는 그것이 뭔지 잘 몰랐지만 무차별 검거에 이어지는 혹독한 고문을 겪으며 강한 운동가로 변모하는 모습은 모든 안일한 삶에 대해서 무서운 질문을 던진다 . '너는 순결한가 ? '
내가 이 책에서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베트남 땅에 미국이 개입해서 전쟁의 지옥을 만들엇듯이 이 땅에서도 그와 같은 일이 되풀이될까봐서이다 . 논(베트남 특유의 삿갓)을 쓰고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사이공의 흰옷을 생각하며 우리의 저 가혹한 시기를 견뎌온, 살아있는 자들 모두에게 조용한 애정을 보낸다 .
83 쪽
그렇게 (공부계산 )하기에는 내가 몸담고 있는 현실이 너무 부도덕했다 .(엄혹한 현실에서 싸우기보다는 빨리 졸업하여 좋은 직장 혹은 진학을 하려는 교우를 보고 )
85 쪽
살아가는 일 전체 -밥 먹고 , 빨래하고 ,공부하고, 행동하고 ,사고하는 것 어느 하나라도 튀어오르거나 처지지 않고 혁명이라는 실에 의해 수미일관하게 꿰어져 자연스럽게 체화되어야 하는데도 나는 혁명의 과업을 무슨 특별한 일로 물신화시켜버리지나 않았던가 ? 그리하여 정작 혁명이 요구하는 바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해야할 시점에서 오히려 혁명의 이름으로 스스로의 발목을 묶어버리지나 않는가 .
93 쪽
이제 저 흘러간 날의 내 온갖 고민들과는 영원히 작별을 고하고 한층 깊고 넓은 혁명의 대하에 몸을 싣는다 . 모든 흔들리는 벗들이여 , 잘 가라 . 나에게는 오직 굳건한 정신과 깨어지지 않는 투지와 넘쳐흐르는 동지애가 있을 뿐이다 .
109 쪽
-민족 전선 -, 좋은 말이지 .그러나 내가 식모나 하인들과 평등해지고 그들을 동지라 부르고 싶지는 않아 . 그들과 한솥밥을 먹는다는 건 참을 수 없는 일이야 . (같이 학생운동을 하지만 홍이 좀 한심하게 생각하는 친구 링의 발언임 )
120 쪽
...피에 물든 혠을 뒤덮고 있는 깃발을 걷어내자 내 사랑하는 동지 혠은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 오열이 북받쳐 올랐다 . 새까만 아스팔트 위에 대낮의 햇살이 내려 쪼이고 있었고 , 혠이 흘린 낭자한 선혈은 햇빛을 받아 번쩍번쩍 빛났다 . 혠 외에도 또 한 명이 사망했고 한 명은 크게 다쳐 중태에 바진 상태였다 . ' 짐승 같은 놈들 ! 무슨 쿠테타야 .동족을 살상하다니!' (혠의 죽음은 이한열의 죽음을 연상시킨다. 크게 다르지 않다 )
135 쪽
' 운동에 투신한다는 것은 평생을 건 일이고 , 그 운동이 인간의 온당한 감정을 저해한다고 생각하는 건 운동을 잘 못 본 것이야 . 오히려 그 반대라고 생각해 . 혁명의 과정이야말로 가장 참다운 의미에서 인간화를 실현해 가는 과정일 수 있어 . 중요한 것은 우리가 올바른 관점을 가지는 일이야 . 그러면 뜨거운 감정도 냉철한 이성과 짝을 이루면서 활동을 촉진하는 힘이 되는 거 아닐까 ? ' (홍을 향한 동지 호앙의 구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