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복에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우리 삶과 사역, 선교의 중심으로 회복시키는 일도 포함된다. 화해를 가능하게 하는 우정은 좋은 소식의 메시지를 확증해 준다. 우리의 실천은 우리의 메시지와 결코 분리될 수 없다. 각 사람 안에 하나님의 흔적이 남아 있다고 주장할 때, 우리는 우리 안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확장으로서 다른 이들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 P38

성공이라는 관점으로는, 우리를 배반하고 부인하고 저버리고 의심하는 이들에게조차 자신을 내어 주어야 하는 사랑을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성경에 따르면, 친구를 사랑하는 우리의 신실함은 -즉각적인 결과를 얻든지 못 얻든지- 반드시 열매를 거두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함께 하나님의 마음에 더 가까이 다가간다. - P41

만일 복음의 핵심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임을 정말로 믿는다면 선교는 그 사랑에 대한 반응이며,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도록 그것에 충실해야 한다. 즉, 하나님께서 신실해야 하며 하나님이 사랑하는 것, 그분이 사랑하는 사람들, 그분이 사랑하는 방식에 충실해야 한다는 뜻이다. - P84

변두리에서 나누는 우정의 이야기들은, 우리로 하여금 환대와 환대하는 태도가 지닌 힘을 되새겨 보게 해준다. 누군가가 기꺼이 자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함께 식사를 나누고, 자신의 통찰이나 관심을 중요하거나 흥미롭다고 인정해 줄 때 사람들은 변화된다. 그들은 온전한 자존감과 정체성을 회복할 수 있다. 하지만 환대는 양쪽 모두에게 영향을 미친다. 변두리에 있는 이들 역시 누군가가 그들의 환대를 기꺼이 받으들이려고 할 때 자존감은 회복하고 자신이 지닌 선물을 인식하게 된다. - P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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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은 진리를 계시한다. 우정 안에서 우리는, 신뢰와 성실이라는 과정을 통하지 않고서는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알 수 없는, 상대방에 관한 진리를 배운다. 우정 안에서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고 신뢰하는 다른 이들의 눈을 통해 우리의 사랑과 행동을 바라봄으로써 우리 자신에 관해 배운다. 그리고 친구들과의 우정으로 만들어진 관계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랑과 관심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 P12

수단과 목적은 깊이 얽혀 있다. 만일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고 하나님과 더불어 영원히 살기를 원한다면, 그들이 경험하는 우리와의 관계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선함과 아름다움을 미리 맛볼 수 있어야 한다.
복음의 내용 자체가 우리로 하여금 선교와 목적과 수단 사이의 연관성을 간과하려는 유혹에 저항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선교와 전도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복음 자체에 대한 더 온전한 이해를 회복해야 한다. 즉, 복음은 그리스도의 성육신 안에 표현된,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주시는 선물이다. -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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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길을 내는 하루 - 삶의 진정한 관리자에게 보내는 사랑 연대기
장진희 지음, 김주은 그림 / 샘솟는기쁨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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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 가정의 삶은 고단합니다. 대부분 가난 때문이죠. 목회하는 남편을 만나지 않았다면 행복했을 아내에게 평생토록 짐만 지워준 것 같습니다. 아이들에게는 더욱 그러합니다. 아이가 아플 때마다 햇빛도 잘 들지 않던 작은 삶의 공간이 떠오릅니다.


이러한 미안함과 실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목회의 지속 여부를 고민하지 않은 목회자는 거의 없을 것 같습니다. 여러 가지 스트레스로 인해 몸과 마음이 무너질 때라도 기꺼이 사역을 감당합니다. 하지만 가족들이 경험하는 고난 앞에는 혼란스럽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책임 지시기 때문입니다. 무책임한 사람들의 무분별한 언행으로 심각한 타격을 입었음에도, 우리 하나님은 새로운 길을 허락하시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해주십니다.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방법이지만, 가장 필요한 순간 최선을 답을 주십니다.


『마음에 길을 내는 하루』의 저자 장진희는 이 책에서 고단한 인생 한가운데 찾아오신 하나님을 노래합니다. 그 하나님께서는 지속적으로 말씀하시며, 우리의 삶을 인도하십니다. 그녀가 만난 하나님은 책과 사람, 환경을 통해 끊임없이 대화를 건네시며, 손 내미시는 분입니다.


목회자 가정으로서 경험하는 인내의 삶은 마냥 슬픔의 언어로 표현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끊임없이 채우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 때문이지요. 세상의 냉랭함과 막막한 현실조차도 거룩한 부르심 앞에 무용지물이 됩니다. 그 누구도 하나님 자녀의 삶과 사역을 가로막을 수 없습니다.


저자는 고통 가운데서도 사랑을 노래합니다. 따스한 언어는 책 곳곳에 빼곡히 스며들어 찬란하게 빛납니다. 분명 어찌할 수 없는 갑갑하고도 당혹스러운 상황 가운데서도 길을 내시는 하나님을 향한 신뢰의 언어가 넘쳐납니다. 불확실을 기쁨으로, 의심을 희망으로 품는 저자의 믿음과 태도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순종하는 삶이 이러합니다. 한순간에 완벽하게 우리의 인생을 변화시키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히려 매우 더디게 개입하시는 듯합니다. 하지만 그 말씀을 따라 걷다 보면 조금씩 성숙하고 있는 우리를 볼 수 있습니다.


성숙은 공감이며 배려입니다. '나'의 아픔에 집중했던 내가 '너'의 힘겨움에 함께 아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아픔을 그냥 두지 않으셨습니다. 그 고통 가운데로 직접 뛰어들어오셨습니다. 우리는 궁극적인 환대를 삼위일체 하나님께 받습니다. 그분이 우리를 가장 잘 아십니다.


하나님을 경험한 인생은 '너'에게로 향합니다. '나'를 위한 읊조림이 '너'를 위한 간절한 외침으로 바뀝니다. 여전히 부족하고 힘겹지만, '너'에게 손을 건넵니다. '우리'를 열어 '너'를 품습니다. 나의 어떠함이 여기까지 우리를 오게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기에, 하나님의 손길이 우리를 이끌었기에 말입니다.


이제야 조금 알겠습니다. 고통 가운데 흘렸던 우리의 눈물은 우리를 위해 통곡하시던 예수님의 눈물이었음을요. 그리하여 주위의 아픔을 둘러보고 함께 울기를 원하시는 주님의 마음이었음을요. 저자의 삶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순종의 삶은 상상보다 더욱 기쁘고 아름다운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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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별을 존중할게 - 삶의 이정표가 되어 줄 말과 그림
박규현 지음 / 지식인하우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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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놓아주지 않아, 현재를 살 수 없고, 미래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실수와 허점 투성이인데, 그대로의 나를 좀처럼 인정하기 싫습니다. 존재 자체에 대한 존중은 상대방을 향한 배려로 이끕니다. 실은 그 누구보다 자신에게 유익합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온전한 관계가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부박한 사회에 순전한 마음을 유지하기란 참으로 어렵습니다. 휩쓸려가기 싫어 거리를 두니, 홀로 둥둥 떠 있는 것만 같습니다. 세상 속에서 살아가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은 정체불명의 존재인 것만 같습니다. 나에 대한 고민과 삶에 대한 질문이 끊이지 않는 요즘입니다.


예기치 못한 고통의 순간에 어렴풋한 사랑의 기억을 꺼내봅니다. 누군가는 성실과 헌신에도 불구하고 존중하지 않지만, 사랑받을만한 사람이 아님에도 또 다른 누군가는 긍휼과 온정을 베풀었음을 떠올립니다. 그렇기에 누군가의 사랑 없음이 저의 존재를 흔들 수 없고, 이유 없는 사랑에도 우쭐해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 책 『너의 별을 존중할게』의 저자 박규현은 찰나의 소중함을 붙들기 위해 쓰고 그리는 것을 좋아합니다. 저자는 잔잔한 일상의 아름다움을 노래합니다. 그녀의 글과 그림은 오돌토돌한 마음은 평온하게 하며, 한없이 쪼그라든 마음에 따스한 위로를 더합니다.


그러고 보니 누군가에서 받지 못한 배려에 대해 속상해했지, 타인에게 전해주지 못한 따뜻함과 기쁨으로 안타까워한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화사한 미소로 세상을 밝게 해주는 사람들에게 감사의 인사 한번 제대로 건네주지 못했습니다. 그분들에게도 각자의 힘겨움이 있을 텐데 말입니다.


저자는 우리가 무심코 흘려버린 작은 은혜에 생기를 더합니다. 따스함은 스쳐 지나가는 미소와 먼저 건넨 위로의 말입니다. 연결될 수 없었음에도 기꺼이 먼저 손 내밀어 준 넉넉함으로 인해 지금도 우리는 살아냅니다. 퍽퍽해진 마음 한가운데 작은 온기를 전달해 줍니다.


그저 나만을 사랑하고 아끼라 말하지 않습니다. 너를 향해 흘러가라 요청합니다. 고통의 순간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고 이겨내라고 도전합니다. 그리할 때 새로운 자신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끝끝내 아름다운 꽃을 피우듯, 당신도 언젠가 귀한 빛을 발하게 될 것입니다.


용기 있는 삶은 인생의 진실을 알고도 그것을 사랑하는 삶입니다. 인생에 굴곡이 있으며, 양면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삶, 그 가운데서도 희망을 놓치지 않는 삶입니다. 수많은 어둠의 밤을 보내면서도, 누군가의 어둠에 작은 빛을 더하여 주는 삶, 그런 삶을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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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 신학
헨드릭 크래머 지음, 홍병룡 옮김 / 아바서원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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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단하고도 복잡한 세상의 한복판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믿음의 삶을 살아내기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때로는 혼란에 빠지기도 하고 교회와 세상의 간극으로 인해 깊은 좌절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잠깐의 주일예배로는 한주의 영적 전투가 버겁습니다.


교회의 대다수는 평신도들입니다. 이전에 비해 논의가 늘어났긴 했지만 여전히 평신도의 신학적 지위는 중심부에 있지 않습니다. 1958년에 출간된 『평신도 신학』 이후로도 충분하게 후속 연구가 영글지 않은 듯 보입니다. 교회 안에서 경험하는 평신도의 위치 또한 획기적인 개선을 보이지는 못했습니다.


네덜란드의 선교학자인 헨드릭 크래머(Hendrik Kramer)는 불모지와 다름없는 '평신도에 대한 신학'을 과감하게 선보입니다. 그의 저술 5년 전에 가톨릭 신학자인 이브스 콩가르(Yves M.J. Congar)가 『교회 안의 평신도』라는 책을 냈지만, 가톨릭 신학 안에서 저술된 책이 개신교의 교회론과는 다른 지점이 존재했습니다.


크래머는 콩가르의 저술에 대해 가치와 의의를 인정하며, 이 책 『평신도 신학』에서도 그 책을 많이 소개하고 인용을 합니다. 더하여 개신교의 교회론에서 평신도의 신분과 사명에 대해 새롭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책은 교회의 대부분을 구성하는 평신도들에 대한 신학적 조명과 성찰을 개신교 내에서 한 최초의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자는 이미 역사 속에 존재했던 평신도들의 발자취를 훑어갑니다. 우리가 성직자라고 오해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에 속합니다. 테르툴리아누스(Tertullianus), 키프리아누스(Cyprianus),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는 모두 유능한 평신도였습니다.


교부들뿐만 아니라 중세의 수도원 운동을 이끌었던 많은 사람들은 평신도 활동의 실례입니다. 종교개혁 또한 평신도의 역할이 매우 중요했습니다. 특별히 위대한 종교개혁자 칼뱅(Jean Calvin)은 평신도 때 『기독교강요』를 집필합니다. 이를 통해 개혁교회의 기본적이고 중추적인 틀을 마련합니다.


이렇듯 역사적으로 평신도들의 역할이 중차대했지만 교회에서의 지위는 매우 약했습니다. '왕 같은 제사장직'이라는 명제를 들고나온 종교개혁으로 '성직자'와 '평신도'의 구별이 사라진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설교하는 직분의 탁월성을 강조함으로 인해 오히려 더욱 특별한 자격을 요구하는 아이러니가 빚어졌습니다.


평신도 신학이 제대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그것이 하나의 동떨어진 논의로 그쳐서는 안됩니다. 평신도 신학이 진정한 의미를 가지기 위해서는 교회의 소명과 함께 가야 합니다. 평신도 신학이 교회론의 일부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평신도가 책임 있는 동반자 관계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평신도와 동반자 관계를 맺는 교회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교회는 종교 기관으로서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고대하는 공동체입니다. 이러한 교회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신뢰하며 의존합니다. 이것이 세상의 다른 공동체와 구별되는 독특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그 자신이 아니라 세상을 향해 부름받았다는 인식을 항상 가져야 합니다. 그렇기에 교회는 선교적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선교하며 사역해야 합니다. 이러한 본질을 중심에 둔다면 평신도의 책임 있는 참여는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세상의 최전선에서 교회를 대표해 있는 그들이야말로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행위 이전에 존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존재가 되어 우리는 세상 속에 침투해야 합니다. 세상과 소통하고 대화할 수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교회는 교회의 본질과 소명에 입각하여, 증언과 섬김을 위해 세상에 보내진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성도들의 정체성을 근거 삼아 동역을 요청해야 합니다. 세상 가운데 살아가면서도 세상에 속할 수 없는 그들이야말로 교회의 주체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사역자는 그들을 돕고, 또한 도움받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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