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창조주로 믿는 이들은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것도 우연히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이들입니다. 세상 모든 것 속에 하나님의 숨결이 깃들어 있습니다. 정말 그렇게 믿는다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함부로 대할 수 없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사람들을 존중하지 않는 이들은 이율배반 속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다른 이들은 존중하지도 않고, 아끼지도 않고, 멋대로 배척하고 혐오하고 따돌리는 이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들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내가 존중받아야 하는 것처럼, 다른 이들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대하는 것이 모든 그리스도인의 윤리적 실천의 토대입니다. - P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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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일기가 하늘에 닿으면 - 30년, 10,950일, 38권의 기도일기
이화정 지음 / 선율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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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는 분이 있다는 것은 은혜입니다. 그분이 엄마라면 축복입니다. 쉬지 않고 끊임없이 자식들을 위해 기도하는 엄마들의 기도는 그 자체로 매우 힘이 있습니다. 어려운 상황이 닥칠 때마다 '기도할게'라는 그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습니다.


실은 엄마의 기도로 인해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이 아닐 때도 있었지만, 한참이 지나고 보니 모든 것이 응답되어 있습니다. 인생의 고비마다 금식하시며 며칠이고 기도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 앞에서 최선으로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엄마의 일기가 하늘에 닿으면』은 30년간 기록했던 기도입니다. 저자인 이화정 목사는 신학자이자 목회자, 선교사로서의 직분을 성실하게 감당하시는 분이십니다. 힘겨운 순간이 많았지만, 그때마다 이겨낼 수 있었던 근원적 힘이 어머니의 기도가 아니었나 생각해 봅니다.


저자는 코로나가 한창이던 때, 병원에 입원한 부모님이 비워둔 고향 집을 정리하던 중, 38권의 일기장을 발견하게 됩니다. 엄마의 일기는 무려 10,950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쓰여 있었습니다. 이 일기는 치열하게 몸부림쳤던 삶의 흔적이며, 끊임없이 하나님과 소통했던 기도의 자취입니다.


가난, 사고, 배신, 조롱. 온갖 어려움 가운데서도 저자의 부모님은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움 없는 삶을 살아오셨습니다. 그 어떤 상황도 성실과 믿음의 삶을 꺾지 못했습니다. 어떠한 어려움도 간절한 기도의 끈을 끊어놓지 못했습니다. 고통의 신음은 어느새 하나님을 향한 찬양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저자의 부모님은 그야말로 고난의 삶을 몸소 겪으셨습니다. 경제적, 육체적, 정서적 어려움은 그들의 삶을 옥죄었습니다. 그럼에도 저자의 부모님은 최선의 삶을 사셨습니다. 좌절과 포기는 그들에게 어울리는 단어가 아닙니다. 그렇게 어려운 가운데서도 주위를 돌아보는 넉넉한 품을 가진 분들이셨습니다.


'인내'는 그들을 대변하는 단어입니다. 그들은 소망을 품고 믿음으로 인내했습니다. 결코 고통을 대물림하지 않으리라는 확고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울부짖음이 기도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엄마의 눈물과 신음은 일기에 스며들어있습니다.


엄마의 기도는 모든 어머니들의 모진 삶을 대변합니다. 가난한 삶 가운데서도 영적으로 풍성하기를 원했던 어머니들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때로는 응답되지 않은 듯 보일지라도 끝까지 하나님만을 신뢰하며 나갔던 어머니들의 믿음을 고스란히 볼 수 있습니다.


기도를 받는 자에서 기도를 하는 자로 자라가야겠습니다.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넉넉하게 흘려보내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그 기도는 오늘도 꾹꾹 일기에 담기어집니다. 아프고 힘들지만,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일을 보기 원하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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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식탁 이야기 - 처진 어깨를 도닥거리는 위로와 초대
김호경 지음 / 두란노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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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났을 때의 어색함이 기억납니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합니다. 긍정적인 모습만 보여주고 싶어 경계합니다. 과도한 긴장으로 인해 부정적인 모습이 나올 때도 있습니다. 편안하게 이야기하고 싶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처음의 식탁 자리가 떠오릅니다. 어느새 웃음꽃이 만연합니다. 자연스레 서로의 이야기가 흘러나옵니다. 조심스럽긴 하지만 마음의 장벽이 하나씩 무너지는 순간입니다. 서서히 경계를 없앱니다. 표면적인 사실만을 나열하다 조금씩 더 깊은 이야기들을 하기 시작합니다.


이렇듯 식탁은 단순히 음식을 먹는 자리가 아닙니다. 그 안에는 기쁨과 평안, 수용이 있습니다. 한 식탁에 둘러앉을 때 경계는 사라집니다. 인종, 성별, 지위 등은 그 순간 필요 없습니다. 우리는 한 이웃이 되며, '너'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우리'가 됩니다.


'누가 공동체의 식탁 교제'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이 책 『예수의 식탁 이야기』의 저자 김호경. 저자는 신약학자의 능숙함으로 예수와 함께한 식탁의 의미를 추적합니다. 당시의 시대 상황에 대한 풍부한 배경지식으로 예수의 이야기는 더욱 풍성해집니다.


식탁은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며,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거리낌이 되는 자리입니다. 주님이 손 내미는 그곳에서 없는 자, 가난한 자, 소외된 자, 약한 자들은 큰 평안을 경험합니다. 반면 가진 자, 부한 자, 인기 있는 자, 강한 자들은 예수의 행동이 매우 불편합니다.


일상에서 가장 자주 만날 수 있는 식탁 자리를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은 종교적 · 정치적으로 이용했습니다. 정결법을 엄격하게 지키는 것이 마치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정체성을 잃지 않는 방법이라 가르쳤습니다. 그들은 누구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먹는지를 매우 중요한 문제로 부각시키며, 의인과 기준의 경계로 삼았습니다.


예수는 이러한 당시의 허례허식(虛禮虛飾)을 몸소 고발합니다. 식탁은 죄인과 의식을 가르는 자리가 아닙니다. 그곳은 죄인이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공간이 됩니다. 예수의 밥은 구원의 상징입니다. 밥을 함께 먹음으로 인해 그들은 자유를 얻게 됩니다.


죄인들은 이제 잔치로 초대됩니다. 식탁에서 모두가 하나님의 귀한 피조물입니다. 그 누구도 잔치의 자리를 독점할 수 없습니다. 여전히 자신의 권리를 지키고자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가진 자는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게 됩니다. 결핍한 자를 채울 책임이 너에게 있다고 말입니다.


우리 주님은 서로의 경계를 지우기 위해 결국은 자신을 내어주십니다. 그러니 더 이상 누군가의 잘잘못을 따질 때가 아닙니다. 그저 우리는 다시금 식탁에 둘러앉아 그의 생명을 맛봅니다. 우리만을 생각했던 이기심을 내려놓고, 끊임없이 주님을 기억하며, 그분의 사랑을 살아내야 합니다. 그분의 섬김과 대접을 우리도 행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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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은 내가 찾아가야 하는 곳이라면, 식탁은 나를 찾아온다. 기대하지 않은 때에 기대하지 않은 사람과 함께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의 식탁에서 예기치 않은 하나님의 은혜를 만난다. 그러므로 언제 어디서나 누구와도 가능한 예수의 식탁은 다양한 모습으로 예수의 구원을 준다. 우리를 위한 예수의 자유로운 삶에는 바로 이 움직이는 예수의 식탁이 있다. - P22

예수의 식탁은 규율을 넘어서며, 그 너머에 있는 생명으로 이끈다. 예수는 특정 장소나 특정 사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어느 곳에서든 생명과 구원을 누릴 수 있는 식탁으로 사람들을 초대한다. 그곳에서 예수는 함께 먹으며 위로하고 희망을 전한다. 그것이 진정으로 거룩한 떡이다. -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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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고통
테렌스 E. 프레타임 지음, 조덕환 옮김 / 시들지않는소망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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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도 힘겨워 울부짖습니다. 그 눈물은 기도 시간에 흘러넘칩니다. 말씀을 보고, 찬양을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심지어 독서를 하고, 글을 쓰며, 일상을 살아갈 때도요. 하나님은 우리의 고통에 관심이 없으신 것 같습니다. 몸과 마음이 무너져내릴 때, 당신은 어디에 계시나요?


묵묵부답(默默不答)인 하나님 앞에 그저 앉아 있습니다. 더 이상 질문을 던질 힘도 없습니다. 팔을 축 늘어뜨린 채, 초점 없는 시선은 어디를 향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성실과 최선의 삶이 타인에 의해 무참히 짓밟힐 때, 그 당혹스러움과 무력함에 한숨만 쌓여갑니다.


침묵으로 반항하며, 토라져있는 우리를 향해 조용히 하나님이 손 내미십니다. 그러고 보니 누구든 경험할 수 있는 사건사고와 하나님 없는 사람들이 내뿜는 이기적 욕망이 하나님의 것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의 한숨 소리까지 들으시고 함께 울고 계신 하나님을 이제야 보게 됩니다.


그제야 성경에서의 하나님을 찬찬히 돌아봅니다. 함께 아파하며 울어주시는 그분의 성품을 보게 됩니다. 신실하신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제한하고서라도 자신을 내어주시는 분이심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의 고통에 함께 아파하시며 애통하시는 그분을 경험합니다.


테렌스 E. 프레타임(Terence E. Fretheim)의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고통』은 통상적인 하나님의 이해를 뛰어넘어, 구약 곳곳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내재성을 설득력 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초월적인 하나님은 하늘에 머물러 계시지 않으시고, 우리와 관계하시기 위해 우리에게 성큼성큼 다가오시는 분입니다.


저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사역이 구약에서 이미 내포되어 있음을 강조합니다. 즉 구약의 하나님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구약과 신약의 연속성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연속성을 발견할 수 있는 중요한 방법은 하나님에 대한 핵심 은유를 분석하는 것입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의 자녀를 잊지 않으시는 특별한 아버지이자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구약에서 등장하는 이스라엘의 고백을 들어보면,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자비롭고 은혜로우신 분입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 행하신 하나님의 일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관계를 맺으신 이유는 더 큰 세상을 구속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이스라엘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피조물인 세상과 화해하고 싶어 하십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이스라엘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위한 것이며, 세상으로 확장됩니다.


구약에서 발견하는 하나님은 인간의 역사에 참여하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과 관계 맺기를 원하시며, 직접적으로 세상과 결속됩니다. 시공간과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움직이시는 것이죠. 그럼에도 하나님은 초월적이시며 신실하시며, 그 사랑은 영원토록 지속됩니다.


경험적으로도 그렇지만, 온전한 관계는 서로를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손 내미셨다는 것은 강압이나 힘의 압도를 통해 우리를 좌지우지하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의 관계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시며, 일부분의 권력을 포기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관계를 위해 자신을 제한하십니다. 전적으로 자유로운 자기 제한은 자기를 비우며, 희생하는 행위입니다. 즉 창조로부터 이미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공간을 우리에게 내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에 들어오셨고, 우리와 관계하시길 원하십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필연적으로 고통을 경험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고통받으시는 것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피조물과 함게 하시며, 임재하십니다.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함께 움직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진정하고 온전한 관계에 수반되는 모든 위험을 감수하십니다. 능력의 하나님께서는 피조물을 위해 한없이 낮아지십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슬픔에 압도되거나 비통으로 인해 좌절하지 않으십니다. 참으로 하나님께서는 상처받으시며, 감격하시기도 하십니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변함없습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감정으로 인해 통제불능의 상태에 빠지거나 무력해지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구약의 이야기를 통해 세상과 관계 맺길 원하시는 하나님을 만납니다. 그분은 인간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인간 가운데 임재하시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체현하는 예언자의 삶 또한 깨어지고 불완전합니다. 우리는 완전하게 이 문제를 해결할 대안과 해결책을 기다립니다.


그렇습니다. 결국 말씀이 오십니다. 하나님은 온전한 방식으로 육화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일어난 일은 결코 구약과 단절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에서 볼 수 있는 하나님의 행동, 인간과 함께 하시며 세상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내어주시는 관계의 정점입니다.


이스라엘과 세상을 위해 기꺼이 고통 받으시기를 감내하시는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말씀하시며, 함께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역사 속에 면면히 하나님의 사랑은 이어졌고, 그 신실하신 은혜는 지금도 계속됩니다. 가슴 치며 울부짖을 때 함께 아파하시는 그분을 오늘도 만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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