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하신 하나님 - 모든 것을 나누시는 성부 하나님, 순종하며 내주시는 성자 하나님, 친밀함을 이루시는 성령 하나님
마이클 리브스 지음, 장호준 옮김 / 복있는사람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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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우리는 하나님을 떠올리면서 능력 많으시며 만물을 다스리는 분으로 생각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할 수 없는 것이 하나도 없으십니다. 그러한 하나님께서 모든 백성과 나라를 통치하십니다. 그분의 성품은 강하고, 정의로우시며, 틀림이 없으신 분입니다.


일면 옳은 측면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온전한 설명은 아닙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은 철학적인 신과는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성경에서의 하나님은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이십니다. 성부이신 하나님과 성자이신 예수님, 성령 하나님은 혼합되지 않지만 분리되지도 않습니다. 영원토록 삼위일체 하나님은 함께 하시며, 함께 일하십니다.


종교개혁 신앙을 현대적 감각으로 소개하는 이 책 『선하신 하나님』의 저자 마이클 리브스(Michael Reeves). 그는 어느새 기독교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교리의 중요성이 사라짐을 매우 안타까워합니다. 그리하여 이 책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기독교의 핵심적 교리임을 다시금 강조합니다.


저자는 교부와 종교개혁자들, 청교도들의 신학을 바탕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의 풍성함을 설명합니다. 특히 우리는 저자를 통해 존 칼빈(John Calvin), 존 오웬(John Owen),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의 삼위일체론을 심도 있게 살펴보게 됩니다.


무엇보다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내적 친밀함과 관계의 풍성함입니다. 사랑이신 하나님, 선하신 하나님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근거로 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합니다. 영원토록 지속된 충만한 관계는 그 자체가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은 아버지 하나님입니다. 그분은 창조와 통치 사역 이전에 아버지로 존재하셨습니다. 그 말은 아들을 사랑하는 관계적이며 인격적인 존재임을 나타냅니다. 그분은 아버지로서 창조하시며, 아버지로서 통치하십니다. 풍성한 사랑으로 충만한 존재입니다.


그렇다면 성자이신 예수님은 사랑받는 자로서 존재합니다. 성자는 아버지의 생명과 존재를 받으십니다. 아버지의 정체성은 성자로부터 찾을 수 있으며, 아들의 정체성은 아버지로부터 찾을 수 있습니다. 성자는 성부로부터 아버지의 영광과 충만함을 받습니다.


생명의 하나님이신 성령님은 우리에게 자신을 허락하십니다. 그분은 우리 안에 인격적으로 거하십니다. 그로 인해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친밀한 교제로 초대받습니다. 우리는 성령님을 통해 회복해야 할 열망을 소유하게 됩니다. 이제 우리는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을 성령님을 통해 새롭게 보게 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풍성하고도 친밀한 사귐은 그 안에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그 사랑은 흘러넘치는 사랑입니다. 우리를 그 사랑 한가운데로 초대하는 사랑입니다. 그리하여 우리 또한 홀로 머무르게 하지 않습니다. 흘러가게 하십니다. 서로 교제를 누리도록 하십니다. 나누도록 하십니다.


차고 넘치는 사랑은 자연스럽게 모든 만물로 흘러갑니다. 이것이 곧 하나님의 선교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풍성하고도 선하신 사랑은 참을 수 없는 기쁨의 교제를 흘려보내게 합니다. 하나님의 정의와 위엄은 사랑의 정의와 위엄입니다. 모든 것은 사랑 안에 조화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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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도의 언어 - 내 삶을 단단하게 만드는 마음의 말들
김지은 지음 / 헤이북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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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을 평가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태도입니다. 그 사람의 따스한 눈빛과 경청의 모습만 보아도 진실한 사람임을 단번에 알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을 존중하는 태도는 오랫동안 영글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런 태도는 단숨에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한 사람의 태도를 보면 그 사람의 인격과 삶의 여정이 그려집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과 고통을 경험합니다. 하지만 그 과정을 어떻게 보내며 해석하는지가 중요합니다. 누군가는 동일한 고통에 공감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다른 누군가는 '나도 당해봤는데'라는 생각으로 오히려 힘겨워하는 사람의 마음을 무시할 수 있습니다.


내가 해석하여 적용하는 작은 순간들이 켜켜이 쌓여 결정적인 순간에 태도로 드러납니다. 공감과 배려의 태도는 개인적인 성향과 환경의 영향도 있습니다. 하지만 부단히 노력한 삶의 결과물입니다. 자신을 성찰하고, 주위를 돌아보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선물과도 같습니다.


한국일보의 기자로, 여러 인터뷰를 통해 마음 다해 사람들을 대했던 김지은 기자. 태도를 소중하게 여기며, 글을 사랑하는 그녀의 첫 에세이 『태도의 언어』는 그동안 만났던 사람들과의 대화와 그들의 태도를 통해 다시금 깨닫게 된 통찰과 따뜻함이 묻어나는 책입니다.


인터뷰는 짧은 만남 가운데 한 사람의 삶과 서사를 담아야 합니다. 그만큼 서로에 대한 신뢰와 진실한 자세가 중요합니다. 저자는 자신이 경험한 여러 이야기와 기자 생활 가운데 만났던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그 사람을 파악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가 '태도'였음을 말합니다.


비록 아무것도 내세울 것 없는 모습이지만, 상대방의 따뜻한 말 한마디에 모든 것을 얻은 것 같은 경험을 할 때가 있습니다. 반대로 차갑고 딱딱한 상황이 될 수도 있는 환경에서도 조심스레 건넸던 공감과 배려의 말 한마디에 상대방이 마음을 열어주었던 때도 있습니다.


저자는 자신을 칭찬하거나 비판하는 모든 순간에서도 배움의 태도를 유지합니다. 그렇게 한 사람이 자라나고, 마음의 품이 넓어지는 것을 우리는 보게 됩니다. 다른 사람을 통해 배우겠다는 태도는 여전히 부족하고 무지하다는 끊임없는 성찰의 표현이며, 그 누구보다 낮은 자세로 경청하겠다는 겸손의 모습입니다.


저자가 만난 사람들의 모습과 저자의 태도를 통해 우리는 여전히 사랑이 세상을 움직이게 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비록 두려운 상황과 악해 보이는 사람들이 많은 듯 보여도, 조용히 이 세상은 사랑으로 가득 차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리하여 우리도 배움과 공감, 배려의 태도로 세상을 살아가야겠다는 작은 결심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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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우리는 넘어질 수밖에 없다. 피겨 선수에게도 피해갈 수 없는 과정이다. 넘어질 때의 충격을 그는 어떻게 받아들일까.
"호흡을 하려고 해요. 넘어지면 경기의 흐름이 끊길 수 있는데, 호흡이라도 원래대로 가져가려고 노력하죠. 그리고 넘어질 때 의미 부여를 하지 않아요. 나는 길 위에 있고, 어차피 이건 과정이니까." - P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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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 타자 혐오 시대, 그리스도인의 사랑과 환대에 관하여
윌리엄 윌리몬 지음, 송동민 옮김 / 죠이북스(죠이선교회)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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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우리'를 위해 '너'를 멀리하는 시대입니다. 나와 많이 다르다는 판단이 들면, 우리는 재빨리 선을 긋습니다. 누군가에게 우리 또한 약자이지만, 또 다른 약자 앞에 한없이 매정해지는 우리입니다. 이웃이나 친구로 대하려는 마음보다 나에게 불이익을 줄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웃을 사랑하라'라는 명령에 순종해야 하는 그리스도인들조차 높은 장벽을 쌓는다는데에 있습니다. 교회는 적극적으로 이웃을 환대하고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경험하게 해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혐오와 배제를 오히려 더욱 부추기지는 않았나 돌아보게 됩니다.


설교자들의 설교자로 불리는 윌리엄 윌리몬(William Willimon)은 이 책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를 통해, 교회 안에 만연해 있는 타자를 향한 혐오와 배제의 문화를 질타합니다. 이러한 모습은 극적인 사랑으로 타자인 우리를 아낌없이 포용해 주신 그리스도의 사랑과는 정반대입니다.


미디어를 통해 보이는 소수의 폭력적이며 비도덕인 행동을 우리는 일반화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타자에 대한 막연한 오해와 거짓 정보들로 인해 많은 사람들은 두려움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한 불안은 타자를 온전한 모습으로 대하지 못하게 합니다.


저자는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타자'가 아니라 '하나님'임을 분명하게 밝힙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에게 명령하셨습니다. '이웃을 사랑하라.' '원수를 사랑하라.' 하지만 우리는 그 명령보다 나의 안위에 대한 걱정에 사로잡혀, 타자를 무시하며 거리를 둡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또한 타자였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방인이었습니다. 우리는 죄인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이신 예수는 끊임없는 악순환을 깨뜨리기 원하셨습니다. 복수의 연결고리를 부수셨습니다. 모든 장벽을 허무셨습니다. 그리스도는 화목과 연합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습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그리스도인과 교회는 이웃을 사랑해야만 합니다. 이것은 명령입니다. 초기 교회에서의 복음 전파는 '타자'를 향했습니다. 지울 수 없을 것 같은 짙은 선을 말끔하게 지워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들은 이방인에게, 로마인에게, 죄인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전했습니다.


저자는 '강도 만난 사람을 도와준 사마리아인' 비유를 통해 과감하게 질문합니다. 누가 우리의 이웃입니까? 우리는 내가 누구에게 이웃이 되어줄까 물어봅니다. 하지만 내가 원하지 않는 바로 그 사람, 두려워하는 그 사람이 나에게 다가온다면 우리는 그 사람의 손을 붙들 것인지를 고민하게 만듭니다.


사랑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매우 두렵습니다. 우리 안에 이미 세워져 있는 많은 것을 부수어야 합니다. 나를 포기해야 할 때도 있고, 어려움에 처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은 계속 우리에게 물어보십니다. '나'와 '우리'가 아닌 '너'를 먼저 사랑할 수 있겠느냐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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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참된 문제는 ‘서로 사랑하라‘고 분부하시는 하나님보다 ‘타자‘를 더 두려워하는 데 있다. - 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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