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은 더디 온다 - 말씀에서 말씀으로 살아 낸 사막 교부와 교모의 인생 가르침
사막 교부와 교모 지음, 이덕주 엮음 / 사자와어린양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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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가 중시되는 사회입니다. 빠르게 결과물을 만들어야 합니다. 먼저 선점하지 않으면, 뒤처진다 말합니다. 그리하여 과정은 무시됩니다. 사람에 대한 관심은 중요하지 않게 됩니다. 윤리도 우선순위에서 한참 뒤에 있습니다. 오로지 경쟁 우위를 통해 승리를 쟁취하고자 합니다.



이러한 사회는 인내가 없습니다. 성실함은 도외시됩니다. 일상은 무너집니다. 효율만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에서는 참된 교육과 배움의 공간이 줄어듭니다. 고민하고 질문하고 사유하기보다는 더 빨리 답을 찾는 방법을 배웁니다. 인생에 대한 진지한 접근보다 순간적인 처세술만이 난무합니다.



신앙의 영역까지 이러한 현상이 보입니다. 진득하게 말씀 앞에 기다리기보다, 재빨리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말씀을 찾습니다. 자신에게 더 유익하고 편한 말씀을 들으려 합니다. 하나님의 임재에 잠잠하게 잠겨있으면서 그분을 누리는 것을 추구하기보다는, 강렬하게 찾고 울부짖는 매달리는 기도를 선호하는 듯합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침묵의 영성, 사막의 영성, 기다림의 영성이 필요합니다. 우리에게 참 어른이 절실합니다. 그럴듯하고 번지르르한 말만 하고 뒤에서는 탐욕을 채우는 사람이 아니라,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발버둥 치는 믿음의 선배 말입니다.



사막의 교부와 교모는 '압바'(abba)와 '암마'(amma)로 불립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뜻하는 단어인데, 묘하게 우리의 말과 비슷합니다. 그러니 더 친밀하게 느껴집니다. 이 책을 엮은 이덕주 교수는 교부와 교모를 한 마디로 정의합니다. '말씀에서 말씀으로' 산 사람들이라고요.



이들의 중심은 간단합니다. 오로지 주님과 가까이하고 싶은 열망입니다. 어떻게 하면 주님과 더욱 친밀해질 수 있을까? 하는 고민입니다. 그러한 질문 앞에 정직하게 반응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리하여 말씀에 순수하게 순종합니다. '떠나라'라는 말씀을 따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훈련받는 곳은 대부분 광야나 사막입니다. 모세와 엘리야, 다윗과 예수님까지도 말입니다. 바울 또한 아라비아 사막에서 3년간 은둔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 장소는 하나님을 경험하고 누릴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사막의 교부와 교모는 이러한 깨달음 가운데 그들 또한 하나님 한 분만 바라고 그곳으로 갑니다. 다른 모든 것은 그들에게 무의미했습니다. 오로지 하나님 한 분이면 족했습니다. 그들은 모든 것이 부족한 광야의 상황에서 하나님과의 더욱 풍성한 교제를 갈구했습니다.



그들의 가르침을 이덕주 교수가 엮어내고 해설한 이 책 『깨달음은 더디온다』는 속도와 결과를 중시하는 우리들에게 매우 소중한 가르침을 줍니다. 참 어른을 찾아보기 힘든 현실에서, 말씀대로 살아냈던 혹은 끊임없이 말씀대로 살아내기 위해 노력했던 사막의 교부와 교모를 만납니다.



이 책은 사막의 교부와 교모들의 가르침을 20가지의 주제로 엮었습니다. 포기와 영적 훈련, 의식주와 기도생활, 노동과 시련, 죄의식과 순종 등 이 모든 주제들은 우리 삶에서 핵심입니다. 우리가 생각하지 않으려 밀어냈던 것이었지만 실제로 우리 삶을 좌우하는 것들입니다.



다시금 우리는 조용히 하나님 앞에 섭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주님께 무릎 꿇습니다. 번잡스러운 세상을 뒤로하고 말씀에 귀 기울입니다. 그 가운데 작은 깨달음들은 우리를 크게 요동치게 합니다. 더디지만 천천히 말씀대로 살아보고자 합니다.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 주는 깨달음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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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는 질문이다 - 예수의 정체성에 대한 현대적 탐구 비아 제안들 시리즈
웨인 A. 믹스 지음, 김경민 옮김 / 비아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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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빨리 답을 찾으려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무엇인가 명확한 방법을 통해 명징한 정답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오랜 연구를 통해 얻게 되는 것은 '답'보다는 '질문'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여정임을 깨닫습니다. 신학의 언어도 고정된 것이 아니라 과정에서 얼마든지 변화되며 통합되고, 재해석됩니다.



신앙과 신학의 언어를 이야기와 은유로 받아들인다면 우리 삶을 더욱 폭넓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고통과 고난의 순간 진심이 담기지 않은 상투적인 말 한마디는 깊은 상처를 줍니다. '하나님의 뜻'은 단정 지을 수 없고, 그것은 고통의 당사자가 오랜 시간 해석의 과정을 거치며 고백하는 탄식 어린 찬송과 같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성경 텍스트를 교리 모음집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문자적인 해석으로 타인을 비난하고 정죄하는 도구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반대로 종교적인 행위를 통해 자신의 의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자신을 과시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성경의 텍스트는 고정불변의 실체라기보다 우리가 끊임없이 대화하며 적실하게 적용하고 해석해야 할 살아있는 말씀입니다. 죽어있는 문자가 아니라 생동감 있게 지금도 역사하는 실체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성경의 이야기에 함께 동참하여, 질문하고 대답하는 과정을 반복해야 합니다.



초기 그리스도교의 사회사 연구로 한 획을 그은 『1세기 기독교와 도시문화』의 저자 웨인 A. 믹스(Wayne A. Meeks). 그는 이 책 『그리스도는 질문이다』를 통해 예수의 정체성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지에 대해 심도 있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역사적 교리들이 그 적실성을 잃어간다고 주장합니다. 즉 신경의 언어라는 것은 그 시대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현재의 상황에 적합한 언어로 새롭게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경은 다른 세계에서의 질문에 대한 답이기에 우리는 현재의 배경에서 새로운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많은 신약학자들은 근대 역사학의 발전을 통해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발견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역사적 예수 연구'는 지금도 여전히 다른 방식으로 우리에게 가까이 있습니다. 성경을 좀 더 과학적이고 역사적으로 보아야 하며, 그 가운데서 주어지는 새로운 증거들은 큰 힘이 되곤 했습니다.



하지만 웨인 믹스는 이 책을 통해 '서사로서 성경을 읽어야 함'과 동시에 '상호 교류 모형'을 제안합니다. 자신의 내밀한 심리나 상태는 자신도 명확하게 모를뿐더러, 그 누구도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주변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자신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믹스는 예수도 인간과 동일하게 상호 작용을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소명을 가졌는지를 파악했다고 말합니다. 이는 복음서에 등장하는 수많은 질문을 통해 유추할 수 있습니다. 답은 정해져 있지 않고, 계속해서 만들어져 갑니다. 복음서 저자들은 독자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합니다.



예수의 정체성은 점차적으로 형성되는 과정입니다. 다른 인간들이 사회적인 소통과 상호 작용으로 자신을 발견하듯, 예수도 철저하게 사회적이었음을 저자는 강조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우리를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반대로 우리가 들려주는 이야기도 우리를 형성합니다.



사도 바울 또한 예수를 새롭게 재해석합니다. 그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복음의 기본적이며 핵심적인 메시지로 상정합니다. 또한 이 메시지는 보다 풍부하게 은유적으로 해석됩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인들이 따라야 할 삶의 모범이자 표본으로 제시합니다.



이런 점에서 믹스는 성경이 고정 불변의 텍스트라기보다 은유가 가득한 모호한 책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모호함에 우리의 마음을 열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자는 그런 점에서 성경은 '하나님의 편지'라 강조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가득 넘치는 편지입니다.



우리는 너무도 급하게 정답을 구합니다. 하지만 세상도 인생도 질문과 질문이 연달아 이어지는 여정입니다. 무엇인가 해결하고 나면 또 다른 문제가 다가옵니다. 급변하는 세상에서 여전히 성경은 우리에게 적실한 언어로 다가옵니다. 우리가 마음을 열고 그 이야기에 동참하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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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메쉬
옌스 하르더 지음, 주원준 옮김 / 마르코폴로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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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우리에게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이야기는 신비롭습니다. 평범하지 않습니다.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합니다. 그리하여 또 다른 수많은 이야기를 낳습니다. 근원적 이야기는 새로운 이야기를 통해 더욱 풍성해지고 다양해집니다.



이야기 중의 이야기인 ’길가메쉬‘. 가장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점토판 12개에 새겨진 ’길가메쉬‘는 성경,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천일야화, 반지의 제왕 등의 이야기에도 줄곧 등장합니다. 이 서사시의 모티브는 여전히 많은 영화나 이야기에서 각광받습니다.



특별히 옌스 하르더(Jens Harder)의 ’길가메쉬‘는 ’그래픽 노블‘로 제작되었습니다. 마치 고대의 토판을 보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합니다. 그림체나 표현방식이 독특합니다. 거친 듯한 그림이지만 등장인물의 세세한 감정 표현들은 여실히 드러납니다.



작가는 ’길가메쉬‘의 주된 인물을 우르크의 왕 길가메쉬가 아닌 엔키두로 설정합니다. 이는 이 책의 표지를 보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앞면 표지에 길가메쉬가 아닌 엔키두가 나옵니다. 길가메쉬와 여러 면에서 대조적인 인물인 엔키두. 그는 자연으로부터 태어난 땅의 사람이자 야생의 존재입니다.



그런 면에서 왕으로서 권력과 자만심을 대표하는 길가메쉬와 엔키두는 출생이나 성품이 참으로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엔키두는 난폭하며 억압적인 길가메쉬를 안정적으로 길들이는 역할을 감당합니다. 엔키두도 완벽한 인물은 아니지만, 길가메시와의 대조를 통해 우리에게 희망을 보여줍니다.



훔바바의 향백나무 숲에서 길가메쉬는 매일 꿈을 꿉니다. 분명 악몽이었지만, 엔키두는 길가메쉬의 꿈을 새롭게 재해석합니다. 악몽을 길몽으로 바꾸어줍니다. 그리하여 길가메쉬는 자신을 괴롭히던 염려와 두려움에서 점차 벗어나고, 크나큰 용기와 희망을 얻게 됩니다.



엔키두는 왕도 아니고, 원래부터 성읍에 있었던 존재도 아닙니다. 그저 나그네요 도망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엔키두가 없었다면 길가메쉬의 영웅적인 활약도 없습니다. 엔키두 없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길갈메시는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각박한 현실을 바라보면 부한 자는 더 부하고,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것을 역전시켜주거나, 약하고 소외된 사람이 함께 행복해지는 것은 요원하게 보입니다. 하지만 이야기는 우리에게 희망을 줍니다. 함께 할 수 없어 보이는 길가메쉬와 엔키두가 서로 동료가 되어 신뢰하며, 한 목표를 이루어가는 것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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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믿음
헤르만 헤세 지음, 강민경 옮김 / 로만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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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변하는 세상, 부유하는 존재들. 진지하게 인생에 대해 고민하고자 하지만 삶의 현실에 이리저리 휘둘립니다. 몸과 마음은 지쳤고, 영혼은 방황할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이 변한 것인지, 우리가 나약한 것인지조차 모르겠습니다. 그저 시간과 상황의 흐름이 우리를 맡깁니다.




우리가 손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은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 일시적이고 자극적인 것들입니다. 어느새 그러한 것들이 우리에게 우상이 되어 있습니다. 어떠한 이유도 없이 맹목적으로 숭배하고 있습니다. 그 우상들은 여러 모습을 띄고 있습니다. 돈이나 권력, 명예와 같은 여러 모양으로 말입니다.




시대의 정신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줄 것처럼 유혹합니다. 하지만 그런 우상은 추구할수록 더 많은 것을 요구합니다. 만족은 일시적입니다. 더 크고 강한 것을 필요로 합니다. 감각적인 것들은 잠시의 즐거움을 줍니다. 하지만 우리 영혼은 점점 병들어갑니다.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는 우리에게 '믿음'이 필요하다 말합니다. 시대의 가치를 쫓아 살아가는 것은 우리를 참된 만족을 줄 수 없습니다. 헤세는 '믿음'을 언급하지만 그것을 특정한 종교나 교리에 제한하지 않습니다. 다양한 전통과 사상을 통해서도 열린 자세로 많은 것을 받아들입니다.




『데미안』이나 『싯다르타』에서 작가의 종교성과 믿음이 어렴풋하게 드러납니다. 이 책 『나의 믿음』은 자신의 작품에서 보였던 사상과 전제가 구체적으로 어떠한 것이었는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자신이 생각하고 추구하는 '믿음'이 무엇인지를 그만의 필치로 펼쳐나갑니다.




그렇다고 하여 이 책은 믿음이나 영혼을 정의하는 책은 아닙니다. 작가는 그저 자신의 삶에서 경험했던 바를 소소하게 밝히면서 자신의 생각을 나누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때로는 한 개념과 다른 개념이 충돌하기도 합니다. 여러 종교의 가르침이 혼재하기도 합니다.




이는 헤세의 삶을 보면 충분하게 납득할 수 있습니다. 그는 경건한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습니다. 외할아버지와 아버지, 어머니는 인도에서 선교활동을 했기 때문에 인도의 종교나 사상을 자연스럽게 접하게 되었습니다. 기독교는 자신에게 가장 밀접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가장 미심쩍었던 종교입니다.




아무래도 자라면서 경험한 여러 가지 실제적인 다툼과 분열들을 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는 인도의 철학과 중국의 철학에 관심을 가졌고, 이후로 중국의 전통적 덕에 대한 개념에 몰두했습니다. 이 책에서도 공자와 노자의 사상이 소개되고 있는 것처럼, 동양의 사상에 깊이 심취했습니다.




이후에 신실한 가톨릭 신앙을 가진 친구와의 교제로 인해 다시금 교회와 기독교에 관심을 가졌습니다만 현실의 교회 모습에 환멸을 느끼는 것은 여전했습니다. 그럼에도 자신의 종교의 전반적인 영향은 기독교라고 말합니다. 교회보다는 영성을 중요시하고, 다양한 아시아의 사상이 어우러져있긴 하지만 말입니다.




이 책은 '믿음'이라는 주제로 선별한 미공개 원고의 모음집입니다. 그리하여 책 전체적인 흐름이 일관되지는 않습니다. 단지 단편들이 쓰인 시간순으로 배열되었기에 형식적으로 큰 의미를 발견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작가의 글은 충분히 우리에게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다양한 통찰과 깨달음을 우리에게 줍니다.




저마다 자신의 세계관으로 세상을 살아갑니다. 분명한 정답을 말하기는 어려울 수 있지만, 시대가 따라 변하는 근거 없고 불확실한 사상으로 우리네 한 번뿐인 삶을 산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것 같습니다. 보다 분명하고 흔들림 없는 믿음의 반석 위에 우리 삶을 세워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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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내게 잘 지내냐고 물었다 - 인생이 힘겹고 외로울 때 꺼내 읽는 김경집의 인간학 수업
김경집 지음 / 그래도봄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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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은 그 사람의 내면을 대변하는 것 같습니다.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은 세상이 지옥이라고 합니다. '믿을 인간 하나도 없다'라고 입버릇처럼 말합니다. 세상이 투박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따뜻하고 다정한 사람들이 주위에 있는 것을 느끼지 못하나 봅니다.



반면에 품이 너른 사람에게는 친절하고 겸손한 사람이 모입니다. 그런 분들에게는 여전히 세상을 살아갈만하다고 고백할 수 있겠죠. 그저 허황된 이상을 품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려운 현실 한가운데서도 희망을 발견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끝까지 내 품을 다른 사람에게 허락합니다.



인문학자인 김경집은 많은 저술을 통해 차디찬 세상에서 사람 냄새나는 따뜻함을 소개했습니다. 직접 대면하지 못했지만 저자는 분명 후자의 사람일 것입니다. 각박한 현실 속에서도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이야기를 찾아 나섭니다. 여전히 우리들에게 사랑과 친절과 섬김과 덕이 있음을 굳건하게 믿는 것 같습니다.



저자가 만났던 사람들, 들었던 이야기, 자신의 삶 등이 얽혀서 아름다운 노래가 됩니다. 지쳐 포기하고 싶을 때, 아직은 아니라고, 여전히 '너'의 옆에 내가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품 넓은 사회를 조금씩 만들어가자고 도닥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것이 부족하다 아우성입니다. 더 채우려고 치열하게 살아갑니다. 남이 어떻게 되든지 상관없다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자는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 목소리를 높입니다. 진정한 행복은 채움이 아니라 비움에 있습니다. 그것을 나누고 흘려보내는 것이 우리에게 훨씬 더 오랫동안 지속되는 기쁨을 준다 말합니다.



홀로 모든 것을 누리기보다 조금씩 덜어내어 모두가 조금씩을 누리는 것이 어떻겠냐고 되물어봅니다. 그때 표면적으로는 부족하고 모자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에 보이지 않았던 '너'를 보게 됩니다. '너'의 슬픔을 공감하며 그 슬픔을 덜어줍니다. 그리하여 함께 기쁨을 누립니다. 그것은 나만을 위해 채웠던 즐거움 이상의 행복입니다.



'관심'을 가지는 것만으로도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하지만 마음에만 머문다면 나에게는 조금의 위안이 되겠지만 타인에게는 그 어떤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관심을 드러내어 '배려'로 표현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의 실천입니다. 때로는 그것이 미련해 보일 때가 있겠지만, 사랑의 흘러감만이 세상을 윤택하게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이 각박해 보입니다. 하지만 쥐고 있던 손을 펴보면, 차가웠던 세상이 조금은 따뜻해짐을 느낍니다. 생각보다 가까이 우리의 이웃이 있습니다. 작은 위로와 응원의 말로, 때로는 실제적인 도움의 손길로 우리 곁에 있습니다. 그렇기에 삶이 내게 잘 지내냐고 물을 때, 그래도 아직 살만한 세상이라고 대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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