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인권이 있었다 - 구약 율법에 나타난 인간 권리 선언
민경구 지음 / IVP / 202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많은 사람들이 구약을 신약에 비해 어려워합니다. 더하여 구약에 묘사된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이해도 있습니다. 구약은 공의의 하나님, 신약은 사랑의 하나님이 드러난다고 말하곤 합니다. 물론 일정 부분 사실이기도 하지만 성경을 세심하게 관찰해 보면 구약에서도 풍부한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합니다.


특히 구약에서의 율법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많은 오해를 받아왔습니다. 율법 안에 숨어 있는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마치 '믿음'과 '율법'을 대립각으로 세워, 둘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율법의 정신을 재해석해 주셨는데도 말입니다.


성경의 말씀을 세밀하게 들여다보아 그 안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발견하기를 원하는 민경구 교수는 이 책 『태초에 인권이 있었다』를 통해, 율법과 인권을 섬세하게 연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신 법은 인간을 뜨겁게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먼저 저자는 율법이 구약성서를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고 강조합니다. 오경의 핵심은 율법이며, 예언서는 율법의 해석을 담고 있습니다. 성문서는 율법의 순종을 주제로 합니다. 또한 율법은 신약을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예수의 산상수훈이 율법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 그중 하나입니다.


율법의 필요는 창조까지 거슬러올라갑니다. 무질서에서 질서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창조를 유지하고 보존하는 방식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적 의지를 가지고 심사숙고하여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에게 동등한 권리와 책임을 부여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습니다. 고대 근동에서는 왕과 통치자는 신의 형상을 닮은 자로 해석이 되었고, 이는 그들의 지배적 우월함을 보여주므로 그들의 통치를 정당화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인간을 신의 모양과 형상으로 만들어졌다고 선언함으로 모든 인간이 신 앞에 동등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자는 고대 근동의 문화와 법을 성경 말씀과 비교하여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이는 구약의 언약이 고대 근동에서 어떠한 위치에 있는지를 보다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이러한 비교는 말씀을 입체적으로 만들어주므로 율법의 짧은 한 문장에도 하나님의 애정과 섬세함을 엿보게 합니다.


율법은 당대의 법에서는 찾아볼 수 있는 독특함과 차별성이 있습니다. 가령, 자유인의 기본 권리를 넘어서 종에게도 기본권이 보호되어야 함을 피력하고 있습니다. 안식일과 같은 경우, 스스로 쉼을 선택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은혜가 되겠지만, 자유인에게는 불편함을 요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듯 율법은 연약한 사람들에게 시종일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약한 자를 사랑하십니다. 더하여 우리에게 그 사랑을 요청하십니다. 율법에서는 사회적 약자들을 돌보라는 윤리적 메시지를 넘어서, 그들의 권리까지도 명시하고 있습니다. 개인적 책무인 윤리를 뛰어넘어, 사회적 책무인 권리로 보호하시는 것이죠.


또한 율법은 일상에서의 태도와 하나님을 진지하게 믿는 것을 연결시킵니다. 이는 우리 삶의 태도가 믿음을 반영하는 것임을 나타냅니다. 율법은 거창하고 추상적인 내용보다 삶의 작은 부분에서 지켜야 할 기본적인 마음가짐과 행동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저자의 섬세한 성경 해석으로 인해 우리는 그저 문자로 지나쳤던 성경의 문장들이 살아남을 경험합니다. 성경의 말씀은 진정으로 힘이 있어 우리 가슴 깊숙하게 다가옵니다. 저자는 '지금 이곳'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계속 질문합니다. '보물과 같은 성경 말씀이 여전히 우리에게 있는데, 여러분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습니까?'라고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교회교인가 그리스도교인가 - 그리스도인의 현실과 이상에 관하여 비아 시선들
안토니 블룸 지음, 양세규 옮김 / 비아 / 202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는 수많은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살아갑니다. 우리에게 전달되는 진리는 살아 숨 쉬고 있어 우리를 가슴 뛰게 합니다. 하나님의 꿈이 우리에게 들려질 때 너무도 가슴 벅차 한없이 울고 기뻐했습니다. 하나님의 비전을 깨달았을 때, 그 안에 우리가 감당해야 할 사명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진리대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 믿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라는 원대한 꿈은 우리의 작은 가슴에 제대로 담기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일하신다는 것을 믿었지만, 실제적으로는 늘 우리가 앞장 서려고 노력했습니다.


교회는 더욱 그러합니다. 아름다운 공동체를 기대했지만, 세상보다도 더 세속적인 모습에 놀라곤 합니다. 제대로 소통되지 않음에 답답했고, 비민주적인 의사결정에 분노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교회의 모습, 성도의 모습대로 살아야 한다고 강조는 하지만, 오히려 더 어긋난 우리의 모습에 실망하곤 했습니다.


정교회 성직자이자 수도사이며, 사상가였던 안토니 블룸(Anthony Bloom). 저자가 직접 저술한 책은 존재하지 않지만, 그동안 했던 강연들은 감사하게도 녹취와 기록으로 남아있습니다. 이 책 『교회교인가 그리스도교인가』는 1990년에 했던 아홉 편의 강연을 녹취한 것입니다.


블룸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교회를 살아가고 있는지, 아니면 형식적인 종교인으로서 교회를 다니고 있는지 질문합니다. 우리가 신경을 외우고, 고백하며, 교회에 출석하는 삶 자체가 우리를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만들어주진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구원도 필요하지만, 열매도 절실합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모습을 인식하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병들었다는 사실에 대해 받아들여야만, 제대로 된 치료가 가능합니다. 성령 하나님께 우리를 맡길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힘으로 무엇인가 할 수 없다는 사실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만 의지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살아내는 교회로 나가는 길은 분투입니다. 저자는 우리가 손쉽게 온전한 교회가 될 수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이 길이 힘겨운 길임을 인정합니다. 그럼에도 한 걸음씩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우리의 여정에서 미끄러지고 실패할 수 있지만, 그러면서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로 빚어져갑니다.


우리는 공동체를 이루어가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이웃을 사랑하고 배려하며 환대할 때 진정한 공동체가 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제대로 사랑하는 법부터 배워야겠죠.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방식이 아니라, 나 자신을 정직하게 바라보고,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사랑하시고, 교회를 아름답게 세우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열려있기만 한다면,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지지하시고 도와주시며, 함께해 주십니다. 우리가 교회답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우리를 내어놓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며, 작은 걸음부터 시작해 보는 것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반드시 익혀야 합니다. 이때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나‘의 기분을 좋게 하고, ‘나‘의 욕망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나‘ 자신을 들여다보고, 하느님이 나에게서 보시는 그 아름다움을, 나에게 새겨진 그 아름다움을 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 P17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예민해서 더 빛나는 너에게
성유나 지음 / 모모북스 / 202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누군가 조금만 강하게 말해도 손이 떨리고 호흡이 가빠졌습니다. 머리가 새하얘졌습니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가늠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논리적으로 정돈된 말보다 감정적인 언어로 대응을 했었죠. 그 상황이 지나고 나면 '이렇게 말했으면 되는데'하고 후회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입이 거친 사람이나 배려 없는 사람은 멀리했습니다. 문제는 그런 사람들은 더더욱 저의 삶에 개입하려 했습니다. 자신의 말을 들어주기를 원했고, 자신의 힘겨움을 알아주기를 바랐습니다. 그 사람들과 잠시만 시간을 보내도 저는 녹초가 되었습니다. 예민한 저의 성격이 싫을 때가 참 많았습니다.


모태 예민 보스라 자신을 칭하는 이 책 『예민해서 더 빛나는 너에게』의 저자 성유나. 저자는 자신의 육체적이고 정서적인 아픔을 솔직하게 풀어냅니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된 예민함의 역사를 우리를 마주할 수 있습니다. 저자는 매우 담담하게 이 이야기들을 우리에게 전해줍니다.


온갖 통증으로 인해 작은 움직임도 힘겨웠던 시절, 저자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자신의 상태를 서서히 발견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상황과 상태를 인정하게 됩니다. 이러한 고통의 원인이 무엇인지 모색합니다. 바로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죄'였던 것입니다.


예민한 사람들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자존감의 결여입니다. 외부적인 원인에 의해 자신이 힘겨움을 경험하더라도 이것이 자신의 문제로 인해 발생한 것이라 해석합니다. 존재와 행위를 분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존재는 굳건하게 세워나가고, 행위는 상황에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게 열어두는 것이 필요합니다.


저자 또한 그런 어려움을 토로합니다. 행위에 대한 질책에 존재까지 무너지는 경험을 하는 것이죠. 공허한 외침, 습관적인 거친 언행에 마음 깊숙하게 상처를 입습니다. 상대방에게 물어보면 사실 큰 의도가 없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배려가 아쉬운 대목이긴 하지만요.


당연히 보다 따뜻하고 너른 사람이 주위에 있으면 참 좋습니다. 우리 또한 그러한 사람들을 옆에 두도록 많은 노력을 하긴 해야 합니다. 내가 따뜻하고 넉넉한 사람이 되면, 그런 사람들이 조금씩 오게 됩니다. 무심하고 무례한 사람들도 있지만, 선하고 아름다운 사람들도 있습니다.


홀로 있는 것을 아무리 좋아하더라도 결국 우리는 관계할 수밖에 없습니다.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하는 것이 궁극의 대안은 될 수 없는 것이죠. 그렇기에 우리는 다양한 사람과의 관계에서 삶의 주도권을 잃지 않고, 나의 존재를 잃어버리지 않는 대안을 찾아야 합니다.


저자는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강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자신의 삶 속에서 자기가 경험하고 느낀 바를 조용히 전해줍니다. 요란하게 승리나 성공을 요청하지 않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면서, 자신이 조금 더 단단해지고 있는 현재 진행형의 상황을 우리에게 나누어줍니다.


생각보다 우리는 우리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나 자신이 너무 높은 기대를 가지고 있는지도요. 조금만 더 편하게 힘을 빼고 주위를 둘러보는 것은 어떨까요? 으르렁거리는 사람들도 알고 보면, 그 사람의 상처와 약함으로 그러는 것이니까요. 우리는 그저 천천히 우리의 길을 걸어가 보는 것이에요. 아름답게요.


*이 리뷰는 모모북스(@momo_books__)으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불안한 현대 사회 - 자기중심적인 현대 문화의 곤경과 이상
찰스 테일러 지음, 송영배 옮김 / 이학사 / 201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를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대입니다. 자기중심성의 문화인 것이죠. 언뜻 보면 각자가 자신이 원하는 바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듯 보입니다. 매우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자기실현에만 관심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의 퍽퍽함과 무례함을 경험한다면 이러한 문화의 파괴력에 대해 고민하게 됩니다.


'나'를 위해 사는 사람은 '너'에 대한 관심이 없습니다. 타인에 대한 진지한 의무에 의미나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지요. 평상시에는 큰 갈등이 없지만, 자신의 이익과 상대방의 상황이 부딪힐 때 결정적인 문제가 발생합니다. '너'에 대한 무관심이 무시와 무례함으로 발전하는 것입니다.


헤겔 연구가이자 정치철학자이며, 현대 공동체주의자로 잘 알려진 찰스 테일러 (Charles Taylor). 그는 이 책 『불안한 현대사회』를 통해 사회와 문명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경험하는 불안과 상실감의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또한 그 원인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을 제시합니다.


저자는 현대 사회에서 자기실현을 인생의 주요 가치로 삼고 살아가는 것에 대해 "나르시시즘의 문화"라 명명합니다. 자기중심적인 생활 양태는 자기 진실성의 이상에 비추어 본다면 정도에서 벗어난 삶이며, 매우 천박한 삶의 양태에 불과하다고 강조합니다.


저자는 현대사회가 안고 있는 불안의 원인을 세 가지로 제시합니다. 첫 번째는 개인주의의 만연으로 인한 삶의 의미의 상실입니다. 두 번째는 '도구적 이성'(주어진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수단을 경제적 논리로 생각하는 것)의 지배입니다. 셋째는 정치적 자유의 상실입니다.


옳고 그름의 기준에 대한 '자기 진실성'은 외부적 요인에서 내면의 원인으로 그 자리를 옮겼습니다. 즉,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 것이죠. 테일러는 자기 진실성에 대한 문화를 전적으로 부정하거나 있는 그대로를 옹호하는 형식이 아닌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길 원합니다.


도구적 이성의 지배 또한 저자는 양극단을 피하여 제3의 길을 찾기를 원합니다. 그것이 바로 '실천적 온전의 윤리'입니다. 기술을 적절하게 활용하되 기술은 살아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온정의 윤리를 떠받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술은 인간존재의 진귀하고 경탄할 만한 성취입니다.


우리의 상황은 매우 복잡합니다. 사회는 점점 파편화되어 갑니다. 이러한 다층적인 투쟁에서 중요한 것은 현대 사회의 문화 속에 있는 위대함과 위험함을 동시에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위대함과 비참함을 모두 포용하며,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홀로 자신만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개별화된 존재가 아닙니다. 다른 인간들과 함께 상호 소통하며, 성장하고 발전하는 존재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자신의 목소리에 충실하면서도 다른 사람을 돌아볼 수 있는, 그 안에서 의미 있는 삶의 지평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