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신학 지형도 - 조직신학 각 주제에 대한 현대적 개관
켈리 M. 케이픽.브루스 L. 맥코맥 엮음, 박찬호 옮김 / 새물결플러스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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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을 접하고 공부할수록 새로운 질문들이 떠오른다. 그 중에 가장 많이 드는 생각은 '그렇다면 현대 신학 흐름은 어떠한가?'이다. 전통적인 교의를 배우고, 현대신학자들의 사상을 접한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과 자리에서 우리는 어떠한 질문을 던져야하고, 어떤 답을 찾아가야하는지에 대해서는 쉽게 결론내리기 힘들다. 하나님을 알아간다는 것은 흥분되고 가슴벅차지만, 때로는 혼란과 답답함을 느낄 때도 있다. '우리는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하는 의문이다.


현대신학을 이해하기 쉽게 소개하고 있는 책이 있다. 하지만 스텐리 그렌츠와 로저 올슨의 20세기 신학(Ivp)이나 김균진의 『현대신학사상(새물결플러스), 박만의 현대신학이야기(살림)등은 연대기 순서로 특정 신학자들의 사상 등을 소개하고 있다. 현대 신학 지형도 기존의 이러한 흐름을 탈피하여 조직신학의 각 각론을 다루고 있다. 이와 비슷한 형식으로 편집된 책은 티퍼 C. 하지슨과 로버트 H. 킹이 엮은 현대기독교조직신학(한장사)이 있다.


이 책(현대 신학 지형도)은 원래의 목적을 잘 성취하고 있다. 이는 고전적 교리들의 큰 주제와 세부주제의 흐름에 맞추어, 각각의 교리들이 형성되었던 영역에서 발생했던 중요한 발전들을 제시하는 것이다. 또한 현대신학자들이 다루어왔던 모든 교리들을 숙고하며, 근본적인 질문들과 마주할 수 있는 것이다. 


사회학적으로는 자본주의와 칼 막스, 정치적으로 마키아벨리와 프랑스 대혁명, 자연과학적으로는 코페르니쿠스, 철학적으로는 데카르트 등이 현대로의 역사적 전환점이었다. 하지만 신학은 이러한 모든 것들과 관련되지만, 이 요소들 중 어느 것으로 환원될 수는 없다. 1장에서 브루스 L. 맥코맥은 '현대성'을 어떠한 신학적 개념으로 이해해야할지를 제시하며 대장정의 시작을 알린다. 


삼위일체와 하나님의 속성, 성서와 해석학, 창조, 인간론, 그리스도의 인격, 속죄, 섭리, 성령론, 구원론, 기독교 윤리학, 실천신학, 교회론, 종말론의 순서로 이 책은 조직신학의 전통적 각론을 대부분 다룬다. 주목할 점은 최근의 조직신학에서 분리되었던 기독교 윤리학과 실천신학이 포함되었다는 점이다. 이들 학문이 이전에는 조직신학에 포함되었다는 사실과 각 분과의 전문성을 인정하면서도 학제 간 대화와 교류가 중요한 최근의 흐름을 보아도 매우 의미심장하다.


각 분야의 전문가가 자신의 전문 영역을 집필하여 높은 수준의 완성도를 보이고 있는 것은 아주 큰 장점이다. 하지만 전체적인 통일성과 집중도가 떨어지는 부분은 어쩔수 없이 감수해야하는 아쉬움일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을 통해 각 각론의 최근 연구 방향과 흐름을 잡는다면, 본래의 역할을 충분하게 감당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매우 훌륭한 조직신학 입문서임에 틀림없다.


p.s 이 책의 제10장은 '성령론'이다. '성령론'을 기고한 교수는 웨스트몬트 대학의 델포트 워크(Telford Work)다. 아쉽게도 책 뒷 부분의 집필진 소개에 빠져있다. 흥미로운 점은 한국신학이나 아시아신학에 대한 소개의 문맥이 아니라, 전체적인 성령론을 개괄하면서, 다양하게 한국신학자를 소개한다는 것이다. 칼뱅의 후예로 개혁파 사상을 소개하는 신학자를 거론하며, 찰스 하지와 헤르만 바빙크, 루이스 벌코프 다음으로 박형룡을 꼽고 있다. 다음으로는 서구의 은사주의적 기도사역에 대한 소개를 하면서, 길선주에게서 시작된 한국의 새벽기도 운동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해외저자의 책을 읽으며 한국 신학자나 목회자, 혹은 한국의 신학에 대한 소개를 들으면 그 내용은 뒤로하고, 일단 아주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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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의 아이 (양장) - 정답 없는 삶 속에서 신학하기
스탠리 하우어워스 지음, 홍종락 옮김 / IVP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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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 힘겹게 삶을 살아간다. 한 사람의 삶을 평가함에 있어 그 사람의 능력이나 실적, 혹은 결과물만을 놓고 평가하기가 쉽다. 특히 책을 저술해야하는 사람일수록 그 사람의 배경보다는 저서의 내용에 의해 모든 것을 평가받게 된다. 어떻게 보면 매우 자연스럽지만, 무미건조하게 한 사람을 대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보게 된다. 『한나의 아이』를 통해 다시금 결단하게 된 사실은, 어떤 사람의 책을 읽을 때 그의 평전이나 회고록 등을 함께 봐야겠다는 것이다.

스탠리 하우어워스(Stanley Hauetwas)를 처음 만났을 때 매우 놀라웠고, 감사했다. 그동안 혼자 고민하며 끙끙되던 문제들을 먼저 고민하고, 매우 구체적으로 대안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그의 책 『하나님의 나그네 된 백성』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아가는 교회 공동체의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삶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이후에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주여, 기도를 가르쳐 주소서』, 『십계명』, 『교회됨』등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는 교회 공동체는 어떠한 삶을 살아야하는지를 지속적으로 말해주었다.

『한나의 아이』는 그의 회고록이다. 그는 가난한 벽돌공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건축현장에서 일을 도왔고, 그 흔적은 그의 삶 곳곳에 배여있었다. 특히 매순간을 귀하게 여기며, 성실하게 살아가는 습관을 그 현장으로부터 배우게 되었다. 무엇보다 위대한 신학자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담담하게 그려가는 모습에서, 가슴 벅참과 설레임, 뉘우침 등 묘한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 그는 오랜 시간동안 수많은 책을 탐독하고 정리했다.

또한 아내의 질환과 그녀와의 관계에서 그가 어떠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지속적으로 회고하는 장면에서, 힘겨웠던 그의 삶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이 사람의 무게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여러 친구들을 통해, 특유의 성실함과 에너지로 잘 이겨내었다. 이러한 모든 과정이 현재의 하우어워스를 만들지 않았을까 생각해보았다.

한 사람의 내면과 그의 삶의 흔적이 이렇게까지 감동으로 다가올 줄은 몰랐다. 더불어 치열하게 살아가면서도 주위 사람들을 향한 애정을 끝까지 놓지 않고, 신실한 관계를 유지했던 그를 통해서 느끼는 점도 많았다. 그가 계속 말했던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는 그저 추상적이고 명제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의 삶에 버팀목이 되었던 구체적인 삶의 실제였다.

저자는 '한국의 독자들에게'를 통해 이 책이 미국 남부의 문화에 대한 선이해가 없이는 읽기 어려운 책이라고 말한다. 그런 점에서 많은 분량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지나가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더불어 스탠리하우어워스 같은 훌륭한 신학자들이 이 땅에서도 많이 배출되기를 기대하며 기도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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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뒷조사 복음서 뒷조사
김민석 지음 / 새물결플러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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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술술 읽히면서도, 신학적으로 탄탄하고,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이 모든 목표를 하나의 책으로 달성하기란 쉽지가 않다. 어려운 내용을 쉽게 전달하는 능력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갖고 싶어하겠지만, 쉽게 획득하기 어렵다. 학문적인 내용을 현실의 삶 가운데 적절하게 조화시켜 적용시키는 것 또한 매우 어렵다. 저자는 이 모든 것을 능수능란하게 해낸다.

먼저 매우 쉽다. 웹툰이라는 형식과 대화를 통한 구성방식은 어려운 신학 내용이지만, 독자들이 흥미있게 다가가게 만든다. 첫인상 뿐만 아니라 책을 끝까지 읽어나가게 만드는 흡입력이 있다. 중간중간 삽입된 깨알같은 최근의 유행어들이나 멘트들은 자칫 지루해질수 있는 독자들을 배려한 흔적이 아닐까? 다양한 매체로 정보를 받아들이기를 원하는 젊은 세대와, 신학에 접근하기 어려운 많은 성도들에게 아주 유용하고도 적실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둘째로 신학적으로 탄탄하다. 쉽다고해서 내용이 가볍지 않다. 깊이 있는 내용으로 무장되어 있으며, 최신의 신약학을 반영하고 있다. 역사적예수 연구의 최근 연구동향을 머릿속으로 그려볼 수 있게 만드는 훌륭한 책이다. 참고도서를 보면 더욱 놀랍다. 사전이나 주석류를 제외하고서라도 제임스 던과 톰 라이트, 불트만, 리처드 보캄, 데이비드 웬햄, 리처드 미들턴 등 굵직한 신학책을 인용하고 있다. 역서를 기준으로 보면 대부분의 책이 500페이지 이상의 양장본으로 출간된 책들인데, 저자의 독서력과 신학적 사고가 대단하다. 신학을 전공하지 않았음에도 이 모든 내용을 종합하여 적실하게 풀어내는 그의 능력이 놀랍고 부럽기까지 하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감동적이다. 곧 구체적이며 실제적이다. 현실의 삶 가운데 적용가능하다. 사판검사의 삶과 그의 고민은 흡사 한국교회의 많은 성도들의 고민을 대변하는 듯하다. 우리가 살아가며 하나님과 성경, 신앙 등에 많은 질문이 떠오르지만, 정작 교회 안에서 그 해답을 속시원하게 듣기가 어렵다. 순수하고 정직한 질문 임에도 신앙이 없는 것처럼 판단하거나 비판하는 분위기를 만들지는 않았는지 돌아보게 된다.

책의 제목만 봤을 때는 마가복음의 배경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룰 것이라고 생각된다. 물론 마가복음의 저작 목적이나 방식 등이 잘 설명되고 있다. 하지만 마가복음의 배경 뿐만 아니라 이 복음서의 내용과 핵심 메시지까지 친절하게 전달한다. 특히나 하나님 나라의 관점으로 복음서를 해석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현실의 삶에서 어떻게 적용되어야하는지를 밝히는 부분에서는 큰 감동을 느끼게 되었다. 이 책의 마지막 구절은 매우 심오하면서도 감격스럽다. 

"오늘날 그 하나님의 행동이 개시되는 곳은 어디일까? 그곳은 십자가의 외형만 남은 성공과 번영의 현장일까? 아니면 때론 두려움에 흔들리고, 고독하고, 생채기가 나는 비루한 현실 속에서도, 끝끝내 견디며 예수 따르기를 포기하지 않는 자들의 그 '길 위'일까?"(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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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영과 거절 사이에서 - 동성애에 대한 복음주의의 응답
스탠리 J. 그렌츠 지음, 김대중 옮김 / 새물결플러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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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신학으로의 초대』, 『20세기 신학』, 『기독교 윤리학의 토대와 흐름』등으로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스탠리 그랜츠(Stanley J. Grenz)의 책이다. 건강한 관점(성경적, 역사적, 상황적)으로 '동생애 이슈'에 접근하기 위한 믿을 수 있는 저자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물론 존 스토트(John Stott)도 그의 책 『현대사회문제와 그리스도인의 책임』16장에서 '동성애'를 주제로 한 챕터1를 할애하고 있다. 여러 부분에서 스탠리 그랜츠와 존 스토트는 유사한 관점으로 논지를 전개하고 있다.   
  
스탠리 그랜츠는 서론에서 이 책을 저술한 목적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내 목표는 교회가 모든 사람을 환영하듯이 동성애자들도 마찬가지로 환영하는 것이 우리 주님의 명령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데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교회가 동성 간 결혼은 물론, 동성 간 성행위 자체도 용납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 역시 우리 주님의 명령이다"2

저자는 먼저 어떤 부분에서 동성애가 쟁점이 되고 있는가를 밝힌 후, '동성애'에 대한 다양한 정의를 소개한다. 이러한 정의 가운데 저자는 핵심적인 2가지의 질문을 통해 논지를 전개하고자 한다. 하나는 동성애 선호가 취하는 윤리적 견해이며, 다른 하나는 행위에 관한 윤리적 질문이다. 동성애를 찬성하는 입장과 반대하는 입장의 결정적인 문제는 두 그룹 모두가 자신들이 복음에 충실하다고 확신함에 있다. 따라서 저자는 적절한 기독교 신학의 방법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려한다. "적절한 신학적 방법은 성경의 메시지, 교회의 역사 속에서 발견되는 성찰의 유산,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살아가게 하시고 사역하도록 부르신 현대 문화, 이 셋의 상호 작용으로 이루어지는 3인극(trialogue)이어야 한다."3

먼저 이 책은 현대 문화로 시작한다. 1장에서는 동성애에 관한 오늘날의 견해를 탐색한다. 심리학과 의학, 사회학 등에서 동성애의 원인과 본질이 무엇인지를 밝히고 있다. 이러한 과학적 시도에서 언제나 핵심적인 질문과 이슈는 '인간이 "자연"(nature)의 산물이냐 혹은 "양육"(nurtrure)의 산물이냐'하는 것이다. 이는 곧 동성애가 유전적인가, 학습에 의한 것인가 하는 중요한 질문으로 연결된다. 

심리학은 초기부터 동성애의 원인을 규명해왔고, 프로이트를 기초로 하여 활발하게 연구해왔다. 비록 프로이트가 동성애가 질환이라는 사실을 부인했음에도 불구하고, 동성애 논쟁을 심리학의 영역으로 들고옴과 동시에 질환으로 이해하게 하는 새로운 문을 열어놓았다. 이후에 많은 학자들이 프로이트의 견해를 따르기도하고, 비판하기도하면서 동성애에 대한 심리학적 견해를 밝혔다. 명확한 결론을 내릴 수 없지만, 이 모든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로마 가톨릭 학자 제럴드 콜먼(Gerald Coleman)은 중립적인 결론을 내렸다. "이 정신분석학적 가설을 증명할 충분한 증거는 없는 것 같지만, 현재 너무나 많은 증거가 있기에 이를 부인할 수도 없다."

의학적 차원에서 생물학자들은 동성애의 생물학적 근원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이는 세 가지 방향으로 전개되었는데, 유전자 구조, 출생 전의 (또는 출생 후의) 호르몬 수치, 그리고 뇌 구조 분석을 통해서였다. 여러 연구가 진행되었지만, 결정적으로 단일하게 합의될 수 있는 연구결과는 없다. 따라서 동성애가 유전과 환경 모두의 산물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과학자 내의 합의라고 할 수 있다. 동성애 지향이 어떤 원인을 통해 유발되는지는 확실하게 알 수 없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이전에 알았던 내용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신비하다는 사실이다.

동성애적인 성적 지향은 변화 가능한 것일까? 이것은 정적인가 동적인가? 이러한 질문도 고정된 현실이며, 정적이라는 주장과 유동적이거나 동적이라는 주장으로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모든 연구자가 동의하는 사실 하하나는 어떤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거기에는 큰 어려움이 따른다는 사실이다. 

지금까지 동성애에 대한 과학적 접근(심리학, 의학, 사회학)은 명확한 결론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논의가 있는 것은 결국 이 논쟁의 핵심에 "인간성"(humanness)에 대한 이해가 필요함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곧바로 인간의 목적을 규정하라는 요구에 직면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요구는 종국에는 과학의 경계를 넘어, 우리 자신이 인간이자 하나님의 백성임을 이해하게 하는 초월적 시각의 영역으로 이끈다."4

동성애의 다양한 원인들과 성적 지향의 본질에 관해 고찰한 뒤, 2장에서는 성경 텍스트로 옮겨간다. 성경의 저자들은 동성애에 대해서 어떠한 견해를 가졌는지 살펴보고 있다. 전통적으로 논의되어 왔던 동성애에 관련된 다양한 본문들(예를 들어 롯과 소돔의 이야기, 기브아에서의 사건, 성결법 등)을 입체적으로 주해한다. 

이 장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성경이 기록될 당시의 여러 정황들과 본문에서 말하고자하는 핵심적인 메시지일 것이다. 즉, 성경 저자의 의도를 명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주해의 참 목적일 것이다. 스탠리 그랜츠는 이 부분에서 아주 신중하고도 조심스럽게 성경 본문에 접근한다. 그 가운데서 명확한 결론이 도출될 경우 분명하게 자신의 의견을 밝힌다. 동성애에 대한 전통적인 본문의 해석에 반대하는 새로운 해석들을 소개하고, 그 의견이 어떤 점에서 그릇된 의견인지, 혹은 우리가 받아들여야하고 새롭게 해석해야 하는 부분은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개진한다.

3장은 교회 전통에 초점을 맞춘다. 기독교 지도자들은 교회가 동성 간에 행해진던 성행위를 직면할 때마다 그 행위를 비난했다. 교회 지도자들 사이에 차이가 있기는 했지만 그들은 동성애 행위를 도덕적으로 전혀 허용하지 않았으며 그것에 무관심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반대로, 기독교 전통은 한결같이 동성애 행위를 도덕적으로 부당하다고 여겼다. 저자는 교부시대로부터 중세를 거쳐, 종교개혁 이후까지 기독교의 역사 가운데에 동성애 문제를 교회가 어떻게 대처해왔는지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4장은 오늘날 교회 생활에서 성경이 가진 지위에 대해 질문한다. 즉, 기독교 성윤리와 관련해서 성경의 권위에 대해서 말한다. 이는 성경이 우리에게 동성애에 관해서 무엇을 가르쳐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 저자는 성경이 오늘날의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는지에 대한 관점을 4가지로 제시한다. 

먼저는 완벽하게 침묵한다는 입장이다. 이는 성경이 어떤 유형의 동성애 행위도 언급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두번째로는 부분적으로 침묵한다는 제안인데, 이는 성경이 일부 동성애 행위만을 정죄하지만 그러한 금지 규정의 대상이 특정한 성적 학대로 한정된다고 말한다. 세번째 제안은 부정확하다는 관점이다. 이는 성경의 금지 규정을 심각하게 여길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의 증거가 신빙성이 부족하며, 성경 저자들에게 동성애란 아주 하찮은 문제였기에 우리에게도 중요한 문제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네번째의 선택사항은 성경을 규범으로 여기는 것이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규범이 된다는 것이다.

동성애를 포용하는 사람들은 성경의 특정 본문도 중요하지만,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전체적인 흐름에서 동성애를 인정함을 인식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들은 언약과 사랑, 정의, 해방 등의 특정 개념이 자신들의 주장을 지지한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러한 개념들은 성경 전체를 해석하는 관점에 따라 다르게 이해되어질 가능성이 있다. 동일한 주제와 개념을 가지고, 반대하는 입장에서도 얼마든지 자신들의 논리를 펴나갈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참된 사랑과 정의가 무엇인지, 해방이 무엇인지를 성경적으로 고찰해야 할 것이다. 저자는 그런 점에서 이러한 개념들을 균형잡힌 시각과 성경적인 통찰로 새롭게 정의내리고 있다.

5장은 동성애 문제에 대한 기독교의 윤리적 반응에 논의의 초점을 맞춘다. 스탠리 그랜츠는 지금까지 논의를 정리하면서 성경의 저자들이 동성애 행위에 대한 금지 규정은 "자연스러움"에 대한 목적론적인 이해 속에서 만들어졌고, 기본적으로 이 목적론적 이해는 다름 아닌 성경 이야기에 묘사된,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의도를 전망해봄으로써 얻을 수 있다라고 말한다. 

인간의 섹슈얼리티에서 중요한 본질은 인간으로서의 근본적인 존재성이다. 즉 남성과 여성으로 세계와 관계하는 우리의 존재방식을 포함한다. 무엇보다 섹슈얼리티는 생물학적 성이 상징하는 불완전성, 즉 육체를 지닌 피조물인 인간의 불완전성과 관련되어 있다. 따라서 인간은 남성성과 여성성을 통해 부분적으로 이성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우리의 정체성을 발견하거나 형성해간다. 결혼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하나님과 맺는 교제가 다른 관계를 배제한다는 특성을 보여주는 그림이다. 남편과 아내가 나누는 배타적인 사랑은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서 피조물을 향해 흐르는 거룩한 그분의 사랑을 반영한다. 저자는 이러한 섹슈얼리티의 본질을 바탕으로 섹슈얼리티와 성교, 동성 간의 성교  등을 다룬다. 또한 기독교 윤리의 관점에서 동성애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를 말한다. 

6장은 기독교 성윤리에 대한 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실제적인 쟁점들을 다룬다. 이는 현재 교회가 당면하고 있는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사안들이다. 곧 동성애자와 교회 회원권의 문제, 게이와 레즈비언의 결혼에 대한 문제, 동성애자들의 성직 임명 문제 등이다. 저자는 이러한 모든 논의들을 세밀하고 조심스럽게 진행해가면서 마지막으로 결론을 내리고 있다. 이는 이 책의 제목에 이미 드러났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구하는 모든 사람을 우리는 편견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제자도 공동체에 합류하려는 사람들이 자신의 방식을 고수할 수는 없다. 우리는 하나님의 방식에 따라 공동체를 이루어야한다. 하나님의 방식은 우리가 거룩한 백성이 되기 위해 죄악된 관습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 중에 중요한 관행이 성행이이며, 동성애 또한 포함된다. 이러한 이야기는 우리에게 세우라고 요구하는 환대 공동체는 언제나 모든 것을 긍정하는 공동체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 책은 동성애에 대한 균형잡힌 관점이 돋보이는 책이다. 그 동안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동일한 주장("죄는 미워하지만 사람을 미워해서는 안된다")을 해왔지만, 동성애에 대한 심도 있는 이해가 바탕이 되지 못했던 경우가 많았다. 다소 혐오스럽게보면서, 다른 죄와는 다르게 접근을 해왔을수도 있다. 스탠리 그랜츠는 기독교윤리학자답게 자신의 기독교윤리학적 방법론을 구체적인 이슈에 적용하여 매우 깊이있고, 풍성한 논의로 우리를 이끌고 있다. 다소 싱거운? 결론일 수도 있지만, 그의 논의에 집중하여 따라왔다면 동일한 말도 다른 의미와 울림으로 들려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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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윤리 개혁을 향하여 - 공공신학과 교회윤리
문시영 지음 / 대한기독교서회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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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한국 개신교는 안팎에 걸쳐 큰 위기에 직면해 있다. 여러 부정적인 요소들이 맞물려 시너지 효과를 내며 개신교를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목회자와 성도들의 추문들, 교단과 신학교의 다툼과 분열들, 교회 권력과 명예를 둘러싼 싸움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언론에서 오르내린다. 지금 한국 교회의 위기는 개신교 전래 이래 가장 큰 위기라고 여겨진다. 더 큰 문제는 교회을 향한 비판은 교회 지도자들의 도덕성에 대한 비난으로 시작하여 기독교 교리에 대한 의심과 공격을 거쳐 종국적으로는 기독교의 하나님 자체에 대한 부정에까지 이르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교회는 교회 안의 문제에 매몰되어 한국 사회에 어떠한 예언자적 목소리도 내지 못하고 있다. 사회의 여러 문제에 대해서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주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어려움 가운데 저자는 공공신학과 교회윤리의 통합을 모색하며, 한국교회에 새로운 윤리적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먼저는 스택하우스의 공공신학이다. 이는 공공성을 요청하는 시대적 필요에 반응하는 신학이다. 스택하우스는 아브라함 카이퍼의 ‘영역주권론’과 라인홀드 니버의 ‘기독교사회윤리’의 신학전통으로부터 강한 영향을 받았다. 공공신학의 관심은 사회구조와 공공의 이슈 등이다. 이는 이러한 것들을 통해서 시민 사회 속에서 교회의 윤리적 성숙을 도모할 수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반면 하우어워서는 교회의 정체성 회복을 강조한다. 이는 교회가 교회되어야함을 말한다. 교회는 복음에 충실하게 거듭나야 한다. 그 때에야 비로서 공적신앙에 대한 노력도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하우어워스의 교회윤리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교회됨과 정체성의 근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며, 예수 내러티브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고 복음의 증인이 되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최대 과제이기 때문이다. 


 공공신학과 교회윤리의 회복은 대조되는 것으로 보인다. 스택하우스와 하우어워스 또한 서로의 신학에 대한 부정적 의견을 피력한 바 있다. 그럼에도 저자는 공공신학과 교회윤리의 통합을 모색한다. 왜냐하면 이 두 신학 모두가 한계를 지니고 있고, 한국적 상황에서 이 둘의 통합은 매우 적실한 문제해결 방향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를 아우구스티누스의 사회윤리에 대한 해석을 통해 도모하고 있다. 이를 통해 교회의 공공성과 정체성 사이의 변증법적 상호보완의 단초를 보고 있다. 


 저자는 이 둘의 차이점보다 공통점에 관심을 가진다. 이는 바로 교회에 있다. 공공신학과 교회윤리가 교회의 윤리적 기능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대안의 공동체’가 ‘섬김의 공동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며, 이 두 관점은 공유할 수 있고, 내용과 방향이 다를뿐이라는 것이다. 공공신학과 교회윤리는 개혁되어야 할 교회의 방향성을 제시해주며, 복음적 정체성을 바탕으로 소통과 공공성 함양에 헌신하는 교회의 모습을 개혁된 교회의 윤리적 비전으로 보여준다. 따라서 공공성과 교회윤리의 통합은 한국교회의 위기 가운데 적실한 대안과 방향을 제시해주며, 구체성과 실제성을 도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교회의 문제를 새로운 관점 가운데 해결하고자 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매우 소중한 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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