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400년 - 쉽고 재미있는 신구약 중간사 이야기
강학종 지음 / 세움북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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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중에 말이 없으면 답답합니다. 그런 때는 상대방의 의중을 파악하기가 참 힘듭니다. 불편한 상황인지, 그냥 잠시 쉬어가는 시간인지,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되물어보기도 하고, 여러 맥락이나 비언어적 요소를 통해 상대방의 심정을 파악하기도 합니다.


성경에서도 이런 지점이 있습니다. 구약과 신약 사이의 400년의 시간입니다. 물론 제2성전기 시기에 기록된 문헌이나 이를 배경으로 하는 성경 말씀이 있습니다. 외경과 유대 문헌의 도움을 받는다면 조금 더 구체적으로 400년의 시기에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우리가 가진 정경에서는 세부적으로 알 수 없지만, 다양한 문맥을 통해 우리는 그때 당시의 상황을 알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하시는지, 무엇을 원하시는지에 대해서 유추할 수가 있죠. 다소 불편하긴 하지만 이 시기 또한 매우 중요합니다. 여백 또한 예술의 완성을 위해 꼭 필요한 것처럼요.


강학종 목사는 『잃어버린 400년』을 통하여 신구약 중간사를 이야기로 쉽게 풀어냅니다. 학문적이거나 신학적인 접근보다는 목회적인 시각을 더 담았습니다. 즉 어떻게 하면 보다 더 쉽게 중간사를 전달할지에 대한 고민을 이 책에 녹여냈습니다.


저자는 다양한 유대 문헌을 참고하지만 무엇보다 성경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미처 우리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본문이지만 역사적인 관점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구절들입니다. 여러 선지자들을 통해 선포되는 메시지에서 모든 나라의 흥망성쇠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엿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선택한 이스라엘 백성이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질책과 징계의 방법을 사용하시더라도 이스라엘 백성이 다시금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간절하게 바라셨습니다.


이스라엘은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끊임없이 하나님만을 신뢰해야 하는 나라로 선택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생각한 계략이 최선의 방법이라 생각하는 어리석은 백성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 나라를 통해 메시지를 던지십니다. '너희는 나의 백성, 나의 나라'라고 말입니다.


선지자의 메시지가 사라지고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지 않는 캄캄한 순간일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이스라엘을 사랑하시며, 그들을 위해 일하고 계셨습니다. 오히려 더욱 극적인 장면을 위해 잠시의 여백을 마련한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중간사는 바로 이스라엘의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기 위한 무대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여러 정치적 · 사회적 혼란은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도래하기 위한 모판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아무것도 없는 진공 상태에서 온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발 디디고 있는 현실 가운데 온 것입니다.


저자는 이러한 중간사의 배경을 능수능란하게 이야기로 풀어냅니다. 사실 자체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매 장마다 '역사가 주는 묵상'을 통해 객관적인 역사적 사실이 우리 삶에 실제적으로 적용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여전히 일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의 도우심을 깨닫게 하는 유익한 문장과 질문이 정리되어 있습니다.


비록 어렵게 보이는 복잡다단한 이야기 속에서 우리가 발견하고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말씀하시지 않는 답답한 상황 가운데서도 여전히 일하시고 계셨던 그 주님께서 지금 역시도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신실하신 주님께서는 우리를 너무도 사랑하셔서 끊임없이 사랑의 역사를 아직도 써 내려가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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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몰랐던 1세기 교회 - 오늘의 그리스도인을 위한 사회사적 성경 읽기
박영호 지음 / IVP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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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텍스트라도 수신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그 메시지는 다양한 의미를 지니게 됩니다. 예수와 사도들이 권면하는 윤리적 메시지들은 자신이 처한 구체적 삶의 정황에서 그 의미가 매우 달라집니다. '이웃 사랑을 실천하라'는 명령은 마땅히 이해하지만, 당장 하루를 걱정해야 하는 서민들에게 그 메시지는 무거웠을 것입니다.


이렇듯 텍스트는 구체적인 삶의 현장과 함께 읽혀야 합니다. 사회 경제적 상황과 동떨어질 수가 없기 때문이죠. 당대의 사회 문화적인 배경을 깊이 알수록 텍스트는 더욱 다채롭게 다가옵니다. 무감각하게 읽어왔던 한 문장이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저자인 박영호 목사는 초기 교회사 연구인 자신의 논문 『에클레시아』를 통해 학계에 새로운 화두를 던졌습니다. 이 책 『우리가 몰랐던 1세기 교회』는 그동안의 연구를 대중들이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접근하고 설명한 책입니다. 특별히 바울의 편지를 받는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삶의 자리'를 파악하기 위한 시도입니다.


저자는 오랫동안의 역사연구가 '정치사'에 치중되었음을 아쉬워합니다. 이는 '위로부터의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치와 권력, 외교 등도 우리네 삶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지만 실제적인 삶에서 동떨어져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백성들의 상황은 소수의 권력자들이 경험하는 환경과 매우 다르기 때문입니다.


정치사와 대비되는 개념은 바로 '사회사'입니다. 사회사는 '아래로부터의 역사'입니다. 평민들의 삶이 주축을 이루는 것이죠. 실제 대다수의 비율을 차지하는 사람들이 경험하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정치적인 사건과 분리되지는 않지만 훨씬 더 큰 흐름에서 다양한 목소리를 담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저자는 사회사의 연구 방법론을 토대로 바울의 편지를 받는 공동체가 처한 환경에 집중합니다. 이들이 어떤 계층의 사람이었으며, 이들의 교육 정도는 어떠했는지, 그들의 예배는 어떤 장소에서 이루어졌으며, 어떤 형식으로 진행되었는지와 같은 질문들이죠.


더하여 당대의 사회 문화적 배경에서 공동체의 상황을 폭넓게 조망합니다. 조합과 교회, 철학과 신앙, 회당과 교회 등은 유사성과 차이점이 있습니다. 이 둘을 비교하여 보면 교회의 특이점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이런 차별성을 알게 되면, 교회의 존재 자체만으로 당대 사회에 어떤 파급력을 지녔을지에 대해 유추할 수가 있습니다.


당시 교회의 정황에 대한 깊은 연구는 교회에 전해졌던 메시지들을 입체적으로 바라보게 만듭니다. 무감각하게 읽었던 성경의 한 문장이 색다른 형태로 우리에게 건네집니다. 단순한 윤리적 지침으로 여겼던 메시지들은 보다 전복적이고 변혁적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저자는 단순히 교회 공동체의 정황에 대한 분석으로 끝내지 않습니다. 당시 교회가 경험했던 여러 문제들은 지금도 비슷하게 존재합니다. 더욱 깊어지고 입체적인 메시지는 또 다른 질문을 우리에게 던집니다. 지금을 살아내는 교회들에게도 묻습니다. 정말 교회가 교회다운지 말이죠.


우리는 당대의 교회가 처한 상황 가운데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그 문제에 어떻게 대처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추상적인 초대교회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보다 구체적인 삶으로 성경의 메시지를 끌어왔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 메시지를 끌어안고 '지금 이곳'에서 우리의 삶으로 복음을 드러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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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은 인간의 내면세계에서 일어나고 완결되는 것이 아니다. 구체적 삶의 정황 속에서 일어나고 현실 관계 속에서 사회적 의미를 갖는 언어를 통해 표현되는 것이다. - P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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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중재 - 계시, 화해, 성육신에 관한 과학적?삼위일체적 탐구
토마스 F. 토렌스 지음, 김학봉 옮김 / 사자와어린양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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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라고 고백합니다. 하지만 그 '믿음'은 자신의 위치나 가치관에 의해 여러 가지 형태로 드러납니다. 특히 개인적이고 내세적인 구원에 국한된 '믿음'은 우리를 옹졸하게 만듭니다. '나'를 위한 복음은 '너'를 돌아보지 않게 합니다. 그런 복음은 자신의 유익과 만족만을 위한 한낱 도구일 뿐입니다.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며,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향한 풍성한 지식은 우리의 눈과 가슴을 열어줍니다. 여전히 부족하고 약하지만 '너'를 향해 손을 펴게 만듭니다. '너'의 아픔에 귀 기울여주며, '너'의 고통에 뛰어들기도 합니다.


20세기의 위대한 신학자 중 한 명인 토마스 F. 토렌스(Thomas Forsyth Torrance)는 그리스도의 사역을 과학적인 방법으로 분석합니다. 이론적인 그의 방법론은 신기하게도 신비의 영역을 합리적으로 설명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계시와 화해를 향한 끝없는 사역이 보다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저자는 먼저 분석적 사고 전통에서 나타나는 이원론적 방법론을 문제 삼습니다. 이러한 이원론적 전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하는 것에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존재와 행위를 나누는 인식론으로 인해 역사적 사실은 추상화되었습니다.


현대 과학은 사물의 내적 관계를 중심으로 통합적인 방식을 발전시켰습니다. 이제 존재와 관계는 개별적으로 분리되지 않고 상호 관계하에 이해됩니다. 이러한 방법론을 통해 보다 더 깊게 신학적 탐구가 가능해졌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통전적 지식에 더 다가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적절하게 계시하셔야만 했습니다. 그분은 자신을 알리시기 위한 열망으로 온 인류 가운데 한 민족을 택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신적 계시가 인간에게 적절하게 전달되고 수용될 수 있는 방법임과 동시에 인간은 자신들의 언어로 하나님의 계시에 응답하는 방법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자기 계시 도구인 이스라엘은 하나님과의 지속적인 관계 가운데 끊임없이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자는 이를 하나님의 거룩함과 자비와 진리가 인간과 상충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계시는 본질적으로 인간의 사고와 이해에 반하였고, 갈등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the Word of God)은 이미 예비되었음과 동시에 이러한 강렬한 필요에 의해 이 땅에 내려오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계시와 인간의 이해는 비로소 완전하게 일치될 수 있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말씀과 인간의 완전한 응답이 중재자 예수를 통해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을 완전하게 계시하셨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예수 안에서 인간에게 친밀하게 다가오셨고 자신에게로 이끄셨습니다. 하나님과 본질적으로 갈등하며 고통당할 수밖에 없는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친밀한 화해로 초대됩니다. 진정한 연합과 친교를 누리게 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계시와 화해는 이렇듯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중재됩니다. 예수는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하나님의 존재와 동일하신 분입니다. 그러한 이해가 있어야만 지상에서의 사역이 참된 사역이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이며, 그분께서 선포하신 죄의 용서는 참된 용서가 되는 것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바른 이해는 속죄의 사역을 통해 보다 분명해집니다. 저자는 속죄의 삼위일체적 근거를 제시하며 삼위일체 하나님을 설명합니다. 죄인인 우리는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해 성령 안에서 성부에게 나아갑니다. 우리는 값없이 주신 속죄와 화해의 근거 위에 믿음의 응답으로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중재를 삼위일체적인 관점에서 풀어낸 이 책을 통해 교회는 보다 더 깊고 넓은 신학적 자원을 가지고 삼위일체 하나님을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더하여 삼위일체 하나님의 연합 가운데로 초대된 우리는 '나'만이 아닌 '너'를 향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것이 곧 '우리'를 통해 세상과 화해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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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교부들은 인간이 하나님의 생명과 사랑에 참여하는 경험을 ‘신화‘(theopoiesis/theosis)라고 불렀는데, 이는 소위 ‘신성화‘(divinisation)를 의미하지 않는다. 신화는 하나님이 우리의 인간 본성을 신성으로 바꾸는 방식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또한 성령을 통해 우리에게 자신을 내어 주시고 우리를 그분의 신성한 생명과 사랑의 친교 안으로 받아들이시는, 하나님의 전적으로 경이로운 행위이다. - P120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는 단순히 외적 근거에 머무르지 않고, 성부, 성자, 성령으로서 존재하시는 하나님의 삼위일체적 관계 안으로 포용되기 때문이다. - P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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