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1단어 1분으로 끝내는 금융공부 - 똑똑한 경제생활을 위해 금융을 이해하는 가장 쉬운 방법 1·1·1 시리즈
이혜경 지음 / 글담출판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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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신문을 읽기 시작한 지 이제 세 달쯤 되어간다. 꼼꼼하게 밑줄 쳐가며 읽는 기사도 있고 제목에만 눈길을 주고 넘어가는 기사도 있지만, 신문을 읽으면서 세상 돌아가는 걸 전보다는 조금 더 알게된 느낌이다. 여러 분야의 기사들 중 제일 부담스러운 건 역시 경제 분야다. 개념을 전혀 모르는 건 아닌데 누가 물어보면 시원하게 대답을 해줄 수는 없는 정도로 어렴풋이 알고 있어서 기사를 읽다가 검색을 할 때도 제법 있다. 단지 단어 뜻풀이만으로는 행간을 읽을 수 없어서 맥락을 파악하려면 검색이 줄줄이 이어질 때도 종종 있어서 경제 기사는 조금 어렵다 싶으면 그냥 넘어갈 때도 꽤 많다. 

그래도 경제활동을 하는 어른으로서 내가 이렇게 애매하게 알고 있어도 되나 싶은 부담을 느끼다가 이 책의 출간 소식을 접했다. 아예 모르는 개념을 처음 배운다기보다는 어설프게 알고 있었던 개념이나 이름만 들어본 사건과 인물들을 확실히 정리할 수 있겠다는 기대를 가지고 읽기 시작했다.


책의 차례를 펴고 100가지 주제를 훑어보면서 내가 남에게 설명할만큼 잘 알고 있는 개념은 많지 않다는 걸 알고 놀랐다. 책은 모두 아홉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금융 개념과 역사, 주요 사건과 인물들, 미래 등을 각각 담고 있다. 장의 끝부분에 읽을거리가 있어서 가벼운 마음으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책의 서문을 읽다가 와닿았던 부분이었다. 어릴 때는 어른이 되면 자연스럽게 부모님만큼 경제 기사도 이해할 수 있고 여러 금융 개념들도 알 수 있을 거라고 막연히 기대했는데, 어른이 되고도 한참이 지났는데 내 경제 지식은 고등학생 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관심을 두고 배우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체득할 수 있는 범위가 아주 제한적이라는 걸 평소에 느끼다가 서문에서 이 부분을 읽으면서 반가웠다. 다 읽고 나서 보니 주요 독자층일 중고등학생에게 이 책은 금융 지식의 기초를 잡아줄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이번에 발간된 금융공부 이전에 ‘1일 1단어 1분으로 끝내는 경제공부’가 이미 나왔다. 이 책을 읽기 전에 경제공부를 읽으면 큰 그림을 먼저 파악하고 나서, 실생활에 더 밀접하게 닿아있는 금융 개념들을 배울 수 있어서 더 이해가 쉽지 않을까 생각했다. 



책의 마무리 부분에 디지털 취약 계층에 대한 이야기가 있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내 또래들에게도 그렇지만, 미취학 아동일 때부터 이미 디지털 환경이 익숙했을 중고등학생들에게는 금융 서비스의 디지털화가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환경이 너무 빠르게 변해서 뜻하지 않게 소외되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이 소외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할 필요도 있다는 점을 짚고 넘어가서 나도 그 부분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계기가 되었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책이라고는 하지만 나처럼 경제 분야 중에서도 특히 금융쪽 개념이 약한 어른들이 읽어도 좋을 내용이었다. 어렴풋이 알고 있던 개념들을 한번 제대로 정리해서 이제 신문의 경제면이 이전처럼 부담스럽지는 않다. 초등학생에게는 살짝 어려울 것도 같아서 중학생부터 읽으면 좋을 것 같다.

*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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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직 워드
조나 버거 지음, 구계원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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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거나 말을 할 때 어떤 내용을 전달할지는 이미 구상을 마쳤는데, 어떤 표현이나 단어를 사용할지 고민스러워서 머뭇거리게 될 때가 있다. 글은 숙고해서 쓰면 더 나은 글로 완성될 수도 있지만, 말은 그렇지가 않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니 되도록 상대방이 오해하지 않으면서도 효과적으로 생각을 전달할 수 있는 표현을 빠르게 골라내야 한다. 

회사에서도 그렇지만 개인적인 일로 생각을 전할 때도 나중에 ‘그때 다르게 말했으면 더 좋았겠다’고 후회할 때가 종종 있다. 가족이나 친구에게도 그렇지만 회사에서 소통할 때, 특히 설득을 해야하는 상황이라면 조금 더 효율적으로 의견을 전할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게 된다. 그러던 중에 같은 생각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상대에게 주는 영향이 달라진다는 내용을 담은 “매직 워드”를 발견했다.

매직워드는 일곱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앞의 여섯 장에서는 설득력 있는 글쓰기와 말하기를 위한 기술을 담고 있다. 장이 끝날 때마다 읽은 내용을 실천해볼 수 있도록 ‘매직 워드 활용하기‘ 코너가 있었는데, 읽은 내용을 다시 한번 정리해볼 수 있어서 좋았다.




책에서도 지적한 내용이지만 돌이켜 보면 나도 전달하려는 ‘내용’에 더 집중하고 그 내용을 표현할 ‘단어’에는 상대적으로 신경을 덜 썼다. 어떻게 보면 단어는 도구의 역할을 하는 것뿐이니 본질인 내용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어떤 도구를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결과가 크게 달라진다는 걸 책을 읽으며 깨달았다. 저자가 제시하는 문자 데이터 분석, 논문 연구 등 객관적인 지표들을 보면서 책 내용에 더 설득되는 기분이었다.



나에게는 1장의 내용인 정체성과 능동성을 북돋으라는 내용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하면 안된다’는 금지 표현을 ‘하지 않는다’로 바꾸면 더 효과적이라는 부분은 다른 사람을 설득할 때도 그렇지만, 내가 스스로 결심한 것들을 실행할 때 적용하고 싶은 내용이었다.



이것도 앞서 본 ‘하지 않는다’와 비슷한 내용이다. ‘해야 한다’보다는 ‘할 수 있다’는 관점에서 생각하고 표현을 고르는 게 더 효과적이라는 걸 여러 예시를 통해 읽으면서 앞으로 활용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준비된 내용은 또박또박 잘 말할 수 있지만 임기응변이 필요하거나 조금이라도 자신이 없는 자리에서는 어물어물 말끝을 흐리게 되는 나에게 도움이 많이 되었던 내용이었다. 제목만 보고는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 아닌가 싶었지만, 예시들을 읽으면서 확실히 알고 있는 게 아니었고 이 내용들을 실제로 어떻게 활용해야 할 지 정리할 수 있었다.



말을 끝까지 듣게 만들려면 듣는 사람의 기분을 좋게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이 부분을 읽으면서 알 수 있었다. 그런 감정적인 부분도 물론 그렇지만 적절한 타이밍에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그것을 유지하며 듣는 사람의 관심을 붙잡아두는 것도 중요하다는 내용이었다. 뒤에 어떤 내용이 이어질지 궁금해하도록 만들어야 하는 건 드라마나 웹툰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책에 소개된 방법들은 세부적인 것들까지 합치면 꽤 가짓수가 많다. 이 모든 걸 한꺼번에 다 적용하거나 모두 활용해서 말을 할 수는 없겠지만, 내가 가장 취약하다고 생각하는 부분부터 하나씩 실천해보기로 했다. 특히 일을 하면서 만나는 사람들과 대화할 때 고려할 부분들이 많았다. 이미 잘 쓰고 있었던 표현들은 좀 더 자연스럽게 만들 방법을, 고쳐야 할 부분들은 조금씩 바꿔나가면서 더 효율적으로 생각을 전달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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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자꾸 내 탓을 할까 - 내 마음 제대로 들여다보는 법
허규형 지음 / 오리지널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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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라인이든 온라인이든 서점에서나 책 플랫폼에서 책들을 둘러보다 보면 홀린듯이 이끌리게 되는 제목을 가끔 마주친다. 처음 밀리의 서재에서 이 책을 봤을 때 그랬다. 요즘은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내덕네탓'을 구호처럼 외치면서 내 탓이 아니라고 우겨보기도 하지만, 나는 어떤 문제가 생기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 끝에 결과적으로는 내 탓이라고 결론을 낸다. 정말 내가 잘못해서 내 탓일 때도 있고 남 탓이지만 이게 다 태어난 내 잘못이라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내 탓이 될 때도 있다. 

그런 상황이었기 때문일까, 이 책 제목을 보고는 끌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책을 읽고 나서 뭔가가 드라마틱하게 변화할 수 있는 해결책을 바라기보다는 내가 어떤 일을 내 탓으로 결론내는 저변에 어떤 원인이 있는지, 나랑 조금 더 잘 지내보려면 내가 어떤 노력을 할 수 있는지를 궁금해하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에는 크게 4파트로 나누어 마음을 들여다보며 돌볼 수 있는 26가지의 이야기를 담았다. 차례를 훑어보면서 이미 흥미로운 주제들을 몇가지 발견했다. 주제들 중에 책을 함께 만든 사람들의 pick을 체크해둔 것이 독특하고 재미있었다. 책을 다 읽고 나면 나는 어느 이야기를 고르게 될까 궁금해 하며 첫 장부터 읽었다. 책을 읽다가 마음에 남았던 문장 몇 가지를 남겨본다.


책을 읽으면서 이번에 처음 알게된 사실들도 많았고, 비슷한 의미일 줄 알았는데 알고보면 다른 개념인 말들도 알 수 있었다. 집중력과 주의력이 그랬다. 옮겨 적은 문장 만으로는 의미가 명확하게 와닿지 않을 수도 있는데 나처럼 예를 들어주지 않으면 이해를 잘 못하는 사람을 위해서 적절한 예가 바로 이어진다. 자존심과 자존감도 어렴풋이 무엇인지는 알겠지만 정확히 어떻게 다른지 설명하자면 막막했는데 이번에 책을 읽으면서 다시 뜻을 명확하게 이해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는 내가 늘 하고 있는 생각이라서 뜨끔했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과는 별개로 내 역량을 그렇게 높게 평가하고 있지는 않은 편인데, 어떤 성취를 해냈을 때 내가 해낸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고 다만 나는 운이 좋았을 뿐이라는 생각은 거의 매번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하는 생각이다. 겸손과는 결이 다른 이런 생각이 이어지면 나타날 수 있는 일들을 읽으며 앞으로는 내 능력을 조금 더 인정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나만 그렇지는 않을 것 같은데 책을 읽으면서 맞아맞아 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대목이 여러 번 있었다. 이 부분도 그랬는데, 나 이상한 사람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이유는 실제로 내가 이상해서가 아니라 '이상하다고 생각'해서 그렇다는 말에 위로를 받았다.


나는 이직이 제법 잦은 편인데, 그럴 때마다 앞에 옮겨놓은 문장처럼 내가 이상한가, 다른 사람들 다 참고 사는 일을 나만 못참는 것일까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 상황을 알고 쓰신 책도 아닐 텐데 책의 중간중간 내 상황을 알고 쓰신 건가 싶은 문장들을 자주 만났다. 아마 나와 비슷한 고민을 안고 전문가를 찾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겠구나 싶어서,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에 안도 비슷한 걸 했다.


작심삼일의 과학적 근거도 책에서 보고 반가운 마음이었다. 내가 지나친 의지박약이 아니라 세로토닌 때문이었군! 하면서 괜히 의기양양해졌다. 책에서 읽은 대로 너무 무리한 목표를 세워서 쉽게 무너지기보다는 지킬 수 있는 목표부터 차근차근 밟아나갈 수 있도록 계획을 잘 짜봐야겠다.


그걸 안다는 게 당장 어떤 해결 방법이 되지는 않겠지만 내가 처한 상황이 스트레스 상황이라는 걸 알고 모르고는 큰 차이라는 걸 책을 읽으며 알게 되었다. 당장 스트레스의 원인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상황이라하더라도 내가 스트레스로 인해 몸이 상할 지경이라는 걸 알게 되면 적어도 전문가의 도움을 구할 수는 있게 될테니까. 내 마음을 들여다 보면서 내가 어떤 상황에서 스트레스를 받는지 견딜 수 있는 역치는 어디까지인지 차차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다 읽고 나니까 내 탓을 하지 않는 방법이나 마음가짐을 찾았다기보다는 내가 나를 조금 더 인정하고 아껴줄 수 있는 방향을 찾은 기분이 들었다.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나서 다시 차례 페이지로 돌아가서 내 마음에 제일 와닿은 이야기를 골라보려고 했다. 하나만 고르기가 쉽지 않았지만 '해야하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읽으면서 독서 노트에 옮겨 적은 문장들이 제일 많았다. 누구든 적어도 한 가지는 깊이 와닿는 이야기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아서, 요즘 마음이 힘들거나 무기력한 사람들이라면, 그렇지 않더라도 내 마음을 조금 더 깊이 알아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한번쯤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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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리 드링크 - 인류사 뒤편에 존재했던 위대한 여성 술꾼들의 연대기
맬러리 오마라 지음, 정영은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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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술을 잘 못한다. 합법적으로 술을 마실 수 있게 된 후부터 주량에 대해 질문받는 일이 많아졌는데, 그때마다 나는 주종 상관 없이 2cm라고 답한다. 애초에 주량이라는 건 무엇이 기준일까 애매해서 나는 내가 기분이 딱 좋을 정도가 되는 시점을 기준으로 정했다. 아빠를 닮아서 술을 한 방울만 마셔도 들통으로 마신 것처럼 얼굴이 빨개져서 밖에서 술을 마시면 항상 취하기 전에 같이 마시는 사람들에게 술잔을 빼앗기곤 했다. 다행히 술을 썩 좋아하지도 않아서 아쉬울 때는 별로 없지만 가끔 기분을 내고 싶을 때는 집에서 조용히 혼술을 한다.

그렇게 나름 드문드문 혼자만의 음주 생활을 즐기던 중에 드라마 술꾼도시여자들을 재미있게 보고 술을 자유자재로 마시는 모습을 살짝 동경하게 되었다. 드라마를 볼 때 나는 병 단위로 술을 마시려면 다시 태어나야겠군...하면서 제로 맥주나 느린마을 막걸리를 (2cm) 따라 놓고 기분을 냈다. 그 술꾼도시여자들의 웹툰과 드라마 작가의 추천을 받은, 여성 술꾼들의 역사이야기를 담은 책이 어느날 내 눈에 띄었다. 술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 쓴 책을 술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이 추천했다니, 술에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던 나도 한번쯤 읽어보고 싶어졌다. 



아직 본문이 시작되기도 전에, 역사 속 어느 시대에 술잔을 잡았어도 결과가 화형으로 수렴되었을 거라는 추천사를 읽으면서 도대체 이 책에 무슨 내용이 담겨있는 건가 슬슬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술의 역사를 담고 있는 책답게 그 기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알코올은 발명이 아니라 발견되었을 거라는 내용도 흥미로웠고, 함무라비 법전이 만들어지기 이전에는 여성이 술과 관련된 분야에서 주체적인 입장이었다는 것도 새로웠다. 책에서는 15개의 챕터로 나누어 문명이 시작되는 먼 옛날부터 최근까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책에서 다루고 있는 역사 속 인물들 중에서는 처음 보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흥미진진했지만 아무래도 내가 이름을 한번쯤은 들어본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올 때 더 집중하며 읽게 되었다. 과음을 하는 건 아니지만 술을 정말 좋아하던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가 주축이 되어 만든 '흉내 낼 수 없는 간'이라는 단체 이야기도 흥미로웠고, 내가 대강만 알고 있었던 클레오파트라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조금 더 알고 싶어졌다. 클레오파트라에게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은 로마 역사가들의 입장에서 서술된 이야기만을 읽어왔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중국 시인 이청조의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다. 그당시에 금기시 되던 술과 욕망을 소재로 삼은 시를 지어서 남성 평론가들에게는 괴물 취급을 받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평론가들조차 이청조의 능력은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는 내용을 보면서 이청조의 시를 읽어보고 싶어졌다. 책에도 인용된 시가 있었는데 이정도면 서정시 아닌가 싶을 정도로 잔잔한 시였다. 



클레오파트라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느꼈지만, 음주 자체가 아니라 과음이 문제라는 걸 예카테리나 챕터를 읽으며 다시 한번 느꼈다. 책 속에는 이렇게 모르는 사람이 드물 정도로 정말 유명한 인물들의 이야기도 있지만, 술의 전반적인 역사를 다루면서 낯선 인물들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아픔을 이기기 위해 데킬라를 마시겠다는 멕시코 가수의 이야기도, 금주령의 시대에 술을 만들고 마시고 팔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도 흥미진진했다. 



책을 처음 손에 들었을 때 생각했던 것보다 분량이 많아서, 술에 대해서는 완전히 문외한인 내가 끝까지 다 읽을 수 있을까 살짝 쫄았는데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책의 머리말만 읽어도 저자가 술에 얼마나 진심인지, 그리고 그 좋아하는 대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얼마나 좋아하는지 느껴졌다. 역사, 술, 여성이라는 키워드가 자칫 딱딱하고 무겁게 느껴질 수 있지만 책을 읽는 내내 그냥 술자리에서 박학다식하고 말빨좋은 재미있는 언니가 알쓸신잡 스타일로 이야기를 늘어놓는 느낌이었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읽어보면 좋겠다.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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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설계자 - 장르불문 존재감을 발휘하는 단단한 스토리 코어 설계법
리사 크론 지음, 홍한결 옮김 / 부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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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말하면 너무 mbti에 과몰입하는 느낌은 있지만, 네 자리 중 두 번째 자리가 N인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공상에 가까운) 생각을 많이 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나는 mbti 검사를 최초로 했던 대학생 때부터 최근까지 계속 같은 유형이 나온다. infp인데 p와 j는 그럭저럭 60:40 정도로 반반 느낌인데, n과 s는 80:20 정도로 n의 비중이 월등히 높다. 심지어 가족 구성원 전원의 둘째 자리가 다 n이라 기본적으로 다들 쓸데없는 상상들을 많이 해서, 나는 다들 이렇게 들숨에 공상을 하고 날숨에 망상을 하며 사는 줄 알았다. 

그러다가 어느날 이렇게 공상만 할 게 아니라 이야기로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막연히 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아이디어 노트를 쓰기 시작했다. 막상 써놓으려니 너무 평범한 것 같고 재미가 없을 것 같아서 아이디어를 써놓는 것도 쉽지 않았다. 아이디어가 10개쯤 모이면 그중 하나는 써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고, 올해 초 10개가 찼다. 그리고 공상을 하는 것과 그 공상을 짧게 적어놓은 아이디어로 한 편의 이야기로 완성하는 건 완전히 다른 차원이라는 걸 한글파일을 켜는 순간 깨달았다. 마감이 있는 것도 아니니 이건 천천히 생각해보자고 슬쩍 미뤄놓고 지내다가 스토리 설계자 출간 소식을 듣게 되었다. 어쩌면 미뤄놓은 이야기를 완성할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 읽기 시작했다.


스토리의 축은 외적 투쟁이 아니라 내적 투쟁이다. 주인공이 '외적' 플롯으로 인해 발생한 문제를 풀기 위해 '내적'으로 무엇을 깨닫고 무엇을 극복하고 무엇을 감당해야 하는가가 중요하다.

책을 펴고 들어가는 글을 읽으면서 이미 '아 나는 시작부터 완전히 잘못 쓰고 있었구나'라고 느꼈다. 아무리 매력적이고 흥미진진한 사건들을 꽉꽉 채워도 그걸 관통하는 하나의 '내적' 투쟁이 뚜렷하지 않으면 독자들에게 크게 와닿지 않을 수 있다는 내용을 읽으면서 그동안 내가 읽었던 매력적인 이야기들이 대부분 그랬다는 걸 깨달았다.


작가들이 골치 아플 수밖에 없는 게, 스토리에 반응하는 행동이야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아무 생각 없이 할 수 있지만, 독자의 뇌를 장악하는 스토리를 '쓰는' 능력은 처음부터 타고 나지 않는다.

이 부분도 공감하며 읽었다. 가끔 스토리나 소재는 평범한데 작가가 글을 너무 잘 쓰는 바람에 필력에 멱살 잡혀서 끝까지 읽는 경우가 드물게 있지만, 반대로 소재가 너무 독특하고 스토리가 참신해서 글 자체는 살짝 아쉽지만 끝까지 읽게 되는 경우가 더 많다. 책에서 예로 든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는, 빈말이라도 작가가 글을 잘쓴다고 할 수는 없는 수준이지만 스토리의 힘으로 1억부가 넘는 판매고를 올렸다고 한다. 문장을 갈고 닦는 일도 물론 중요하지만 스토리를 체계적으로 만드는 노력이 우선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토리텔러로서 당신이 할 일은 주인공이 무엇을 깨닫는다고 말로 일러 주는 게 아니라, 주인공에게 그 깨달음을 가져다주는 사건 속에 독자를 떨어뜨려 놓는 것이다. 작가들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가 장면 속으로 너무 늦게 뛰어드는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이런 내용을 마주칠 때마다 '정말 그랬나?' 하며 그동안 재미있게 읽었던 문학 작품들을 떠올려 봤는데 거의 예외없이 들어맞아서 신기했다. 독자한테 하나부터 열까지 다 설명하지 말고 주인공의 머리, 주인공이 겪는 사건 속에 떨어뜨려 놓으라는 말이 와닿았다. 구구절절 설명을 하는 게 이미 개연성이나 설득력이 약하다는 증거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읽었다.


작가들이 가끔 저지르는 실수가 있다. '아이의 생각'을 지나치게 단순하고 피상적이며 뻔하게 그리는 것이다. 전혀 그렇지 않다. (...) 아이들 생각은 더 원초적이기에, 어른들 생각보다 훨씬 정직할 때가 많다. 사고의 깊이도 어른보다는 깊지 않을지언정 어른 못지 않다.

이야기를 쓰려고 이것저것 작법서를 찾아보며 캐릭터를 잡아가려고 할 때 나한테는 '어린이'가 가장 어려웠다. 내 어린이 시절은 너무 한참 지나버렸고, 가까운(!) 어린이가 없어서 기준을 잡기가 쉽지 않은가 싶었는데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내가 어린이를 너무 뻔하게만 그리고 있지 않았나 반성했다. 책에서도 언급한 <앵무새 죽이기>,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은 나도 정말 좋아하는 소설인데, 다시 읽으면서 어린이를 어떻게 그렸는지 살펴야겠다고 생각했다.


"왜?"라고 질문하면서 뿌연 안개를 몰아내고, 스토리의 인과경로를 머릿속에 명확하게 그려 금방이라도 생동할 것처럼 만들 수 있다.

그리고 그 물음의 답은 항상 과거에 있다.

드라마나 책을 볼 때 처음에는 도대체 누가 이런 (긍정적으로) 미친 생각을 했을까 소름끼쳐하며 읽다가 끝날 무렵에 수습이 안되는 걸 보면서 안타까웠던 적이 가끔 있었다. 물론 처음에 뿌려놓은 떡밥 회수까지 싹 다 하고 깔끔하게 끝나는 작품도 있지만, 개연성 어디갔냐고 안타까워하게 만드는 작품도 있다. 후자가 되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왜?"를 물으면서 쉽지는 않겠지만 인과관계를 탄탄하게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컨대, 주인공을 항상 더 힘들게 해야 한다. 절대 봐주지 말자. 나쁜 일이 일어날 만하면, 일어나게 하자. 주인공이 상상한 최악보다도 더 나쁘게 만들자. 한마디로, 작가는 끊임없이 주인공의 발목을 붙잡을 의무가 있음을 잊지 말자.

이건 사실 작법보다는 내용 자체가 와닿아서 옮겨 적은 부분이었다. 주인공도 몰랐던 깊숙한 내면의 힘을 최대한 끌어내는 상황을 만들기 위해 작가는 주인공을 봐주면 안된다는 내용을 읽으면서, 나도 주인공이긴 한가보다...하면서 위로 아닌 위로를 받았다. 이야기를 쓰게 되면 내 주인공도 너무 봐주지 말고 필요하면 가차없이 굴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책을 다 읽고 나니까 내가 이야기를 쓰려고 다짐한 후에 왜 막막했는지, 어디에서 막혔는지를 알 수 있었다. 물론 진짜 도움이 되려면 읽는 걸로 끝내지 않고 적용을 해야겠지만, 적어도 쓰기 전에 큰 방향을 잡아준 느낌이다. "왜?"와 "그래서?"라는 질문을 아끼지 않으면서 인과관계가 탄탄한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주인공이 외적 목표를 달성하도록, 그리고 내적 변화가 뚜렷하게 보이도록 잘 궁리해봐야겠다. 언젠가 아이디어를 한 편의 이야기로 완성하고 싶은 사람들이 읽으면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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