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구할 여자들 - 유쾌한 페미니스트의 과학기술사 뒤집어 보기
카트리네 마르살 지음, 김하현 옮김 / 부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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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바로 직전에 블로그 서평을 남긴 책이 이혼 브이로그를 찍는 유튜버 아넵의 책이었는데, 이번에는 페미니스트의 유쾌한 과학 기술사를 담은 책이다. 명절을 앞두면 시댁에 안 가도 되는 요즘도 명절증후군을 앓는 엄마를 봐서 더 그랬는지, 이런 쪽(!)의 책을 많이 읽은 건가 싶기도 했는데, 이 책은 그냥 재미있을 것 같아서 읽기 시작했다.

카트리네 마르살의 전작인 '잠깐 애덤 스미스 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를 재미있게 읽어서 이번 책도 기대를 잔뜩 하고 읽었는데, 역시나 실망시키지 않았다. 이전 책은 경제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면, 이번에는 과학사에 대한 이야기다. 역사적인 내용들도 담고 있지만, ai나 로봇 같은 시의성이 있는 내용들도 담고 있어서 흥미진진했다.



책은 시작부터 나를 놀라게 만들었다. 바퀴가 발명되고 나서 5000년이나 지나서 여행 가방에 바퀴가 달린 것도 놀라운데, 그 배경도 흥미진진해서 시작부터 집중해서 읽어내려갈 수 있었다. 단지 낯선 것에 대한 거부감 같은 게 아닐까 싶었는데, 문제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복잡했다.



충분히 인류 보편적인 점들이 간혹 '여성적'이라고 묶이고, 그래서 인류 전체의 문제가 아니라 여성의 문제로 한정되는 내용들을 읽고 있으니 마음이 답답했다. 과거에 등장했던 전기차의 이야기나, 요즘도 크게 다르지 않은 출산에 대한 이야기가 특히 그랬다. 여자가 낳지 않은 사람은 없는데도 '보편적'이 아니라는 게 놀라웠다.



기술로 바라보지 않는 기술이 되어버린 재봉과 유제품과 관련된 두 개의 자격증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여성이 주도적인 기술들은 중요한 기술임에도 그만큼의 대접을 못받는 과거의 상황도, 그리고 크게 달라지지 않은 요즘 일들도 어쩜 이럴까 싶었다. 바로 아래에 옮겨 적은 문장들을 읽으면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여성의 기술이 제대로 대접 받지 못하는 것과는 또 다른 문제가 과학사에는 여러번 있었다. 테팔은 잘 알고 있었는데도, 테프론 프라이팬은 아내인 프랑스 여성이 발견했다는 건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 알았다. 그리고 영국 정부가 여성 프로그래머들을 몰아내지 않았더라면 영국 컴퓨터 산업의 위상이 달라질 수도 있었다는 것도 처음 알았고, 놀라웠다.



여성이나 피부색이 짙은 사람들, 혹은 아이들의 손을 저렴한 가격에 쓸 수 있다면 그들을 대체할 로봇을 누가 개발하겠느냐는 부분을 읽으면서는, 한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던 일이라서 충격을 받았다.



기계가 우리보다 아직 우월해지지 않은 것보다, 아직 인간 같은 기계를 못만들어낸 우리가 인간을 기계처럼 부린다는 말이 너무 소름끼쳤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여러번 새롭게 깨닫거나, 이렇게 그간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문제를 맞닥뜨리고 심란해진 순간이 있었다.


자칫 무거워질 수도 있는(가볍게 할 이야기는 절대 아니기는 하지만) 내용을 무거운 마음으로만 읽지는 않았다. 작가가 전작에서도 그랬듯이 유쾌한 비꼬기와 유머 감각을 잃지 않고 내용을 풀어냈기 때문이다. 과학 기술사라고 해서 조금 어렵지 않을까 걱정도 했는데, 우리 생활에 아주 밀접한 물건이나 사건들을 다루고 있어서 재미있게 술술 읽었다. 이 작가님이 다음에는 어떤 영역의 책을 쓰실지 벌써 기대가 많이 된다. 그리고 책 마지막에 있는 해제도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해제를 맡은 임소연, 하미나 두 분의 책도 읽어보고 싶어서 체크해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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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장제의 경로를 이탈하였습니다
아넵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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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 낯설기도 하고 왠지 모를 거부감이 느껴져서 나는 유튜브를 꽤나 늦게 보기 시작했다. 몇년 전 회사에서 요즘 애들은 네이버에 검색 안하고 유튜브에 검색해요, 라는 막내 팀원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더 그랬던 같다. 알고리즘의 노예가 된 지금도 나는 유튜브를 그렇게 많이 보는 편은 아니다. 좋아하는 몇몇 유튜버의 채널을 구독하면서 챙겨보는 정도인데, 주로 동물 채널이거나 평화로운 일상 브이로그 채널이 많다. 구독하고 있는 일상 브이로그들은 상황이며 연령이 중구난방이지만, 나랑 개그코드가 맞고 뭐든지 과하지 않다는 공통점이 있다.

유튜브가 주는 안좋은 영향도 많겠지만, 나에게는 꽤나 좋은 영향을 많이 줬다. 여명이를 처음 데려왔을 때 초보 집사에게 많은 수의사 채널들이 도움을 줬고, 혼자 사는 사람들이 뭘 해먹고 사는지 뭘 읽는지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를 보며 동질감을 느끼기도 했다. 유튜브에서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도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연령도 환경도 성별도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만큼만) 볼 수 있다는 게 별세계 같았다.

처음으로 아넵의 영상을 보게된 것은 이혼 브이로그라는 독특한 제목 때문이었다. 몇편 봤더니 소소한 일상도 보기 좋았지만 과하지 않게 웃기는 자막도 너무 재미있었다. 나랑 개그코드가 거의 같은 동생한테도 공유해주고, 지금은 둘 다 아넵의 구독자가 되었다. 어느날부터인가 브이로그 속 아넵은 글을 쓰고 있었고, 새벽까지 잠을 못이루면서 키보드 앞에 앉아있었다. 나는 그 글이 어떻게 완성되어 세상에 나올지 기대하고 있었고, 그래서 이번에 먼저 책을 읽어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어 너무 기뻤다.



아넵의 브이로그들이 그렇듯이, 이번 책에서도 평범한 사람의 결혼과 이혼, 그리고 그 이후의 삶에 대해 들여다볼 수 있었다. 이혼을 조장한다거나, 결혼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한 사람의 일상과 생각을 담고 있다. 평범한 사람이 이혼을 한다고 해서 하늘이 두쪽나거나 평범한 삶이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후에도 평범한 생활이 이어질 수 있다는 걸 읽으면서 결혼도 이혼도 하지 않은 내가 왠지 안도했다.



남의 아빠가 하신 이야기를 듣고 나까지 이렇게 감동할 일인가 싶었다. 물론 책에 나온 시집살이를 읽고 있으면 내가 아빠거나 언니라도 그랬을 것 같기는 한데, 가족의 무조건적인 지지가 이렇게 든든하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든든한 부모님과 노빠꾸 큰언니, 늘 투닥투닥하지만 마음이 넓은 작은 언니가 곁에서 꾸준히 아넵의 평범한 일상을 지키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부분도 공감하며 읽었다. 사랑하기 때문에, 가까운 사이이기 때문에 좀 도와달라는 말보다는 급여나 보상을 잘 챙겨준다는 말에서 더 큰 배려와 존중이 느껴진다. 나에게 아넵의 시집살이가 더 가혹해보였던 이유는 가족이나 사랑이라는 말을 앞세워 한 사람의 노동력과 정신력을 착취에 가깝게 휘둘렀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 아넵의 브이로그를 봤을 때 왜 그런지 1편부터 3편까지는 없는 상태였다. 4편부터 시작되는 브이로그를 보면서 의아했는데, 왜 그런지는 4편에 나와있었다. 이혼 브이로그의 '이혼'이라는 말에 발작 버튼이 눌린 전국의 가부장제 지키미들이 다 아넵의 채널로 몰려와서 무근본 비난을 쌓아올린 것이었다. 이번 추석 연휴에 추석 특집으로 1편부터 3편 영상이 공개(동생이랑 나는 알람을 맞춰두고 바로 감상했다)되었는데, 영상 내용을 보고 나는 좀 허탈해졌다. 이걸 보고 그렇게 욕을 했다고? 싶어서. 이혼을 장려하거나 이혼 만세를 담고 있는 내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냥 이혼한 사람이 이혼 이후에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는 내용이었는데 똥이라는 댓글까지 달렸구나 싶어서 참담한 기분이었다.



내 나잇대가 그럴 시기기는 하지만, 주위 친구들을 보면 정말 제각각이다. 결혼을 한 친구, 안한 친구, 했다가 다시 빛이 나는 솔로가 된 친구, 아이를 많이 키우며 행복하게 사는 친구, 아이를 낳지 않고 남편과 즐겁게 사는 친구 등 정말 다양하다. 각각 다른 형태로 살고 있어도 지지고 볶으며 행복하게 살고 있고, 친구들도 나도 그 삶의 형태에 대해서는 입을 대지 않는다. 나는 결혼을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입장이고, 혼자 살든 누군가와 함께 살든 나에게는 내가 최우선이다. 범죄가 아니고서야, 결혼이나 출산은 개인의 의견이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결혼을 이어갈지 끝낼지에 대한 부분도 마찬가지다. 책에 나온대로 다른 사람이나 다른 가정을 쥐잡듯이 잡을 일이 아니라 내 가정이나 내가 꾸려가게 될 가정에 더 집중하는 것이 건강하게 느껴진다.



동생은 나랑 자매기도 하지만 제일 친한 친구이기도 하다. 우리가 가깝게 지낼 수 있는 데는, 서로 넘지 말아야할 선을 알고 있고 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서로 싫어하는 건 가능하면 하지 않고, 서로 그럴 거라는 걸 알고 있어서 마음의 부담이 없어서일 것이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해달라는 걸 해주는 것보다는 하지 말라는 걸 안하는 게 더 중요한데, 나 자신과의 관계에서도 그렇다는 게 인상적이었다. 그러고보니 나는 요즘 내가 싫어하는 행동은 나한테 너무 많이 하고 있는 것 같다는 반성을 곁들이며 읽었다.



같은 아넵의 브이로그를 보고 있는데도 동생과 내가 좋아하는 장면이 서로 다르다. 나는 주로 아넵이 차를 몰고 나가서 빵과 커피를 즐기면서 일을 하거나 경치를 보는 장면을 좋아한다. 동생은 아넵이 도서관에서 책을 고르고, 빌리고, 반납하는 장면을 좋아한다. 그런 장면을 보고 있으면 동생도 열심히 살고 싶어진다고 했다. 나는 왠지 그게 어떤 기분인지 알 것 같다. 아넵의 도서관 장면에서 인상적인 부분이 있었다. 도서관에서의 실패는 기껏해야 빌린 책이 재미없는 정도의 수준이니, 도서관에서 실패를 해보는 것을 장려(!)하는 내용이었다. 정확한 대사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말들이 굉장히 오래 기억에 남았다. 


제법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는데도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유쾌하다. '지금이니까 웃으면서 이야기하지만'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는 내용들도 더러 있지만, 읽다 보면 사람의 일상은 어떤 일이 일어나도 어떻게 마음 먹느냐에 따라 평온하게 흘러갈 수도, 거기서 무너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도 재미있는 사람이라는 건 브이로그를 보며 알고 있었지만, 힘든 시기에 한 달에 20권 가까운 책을 읽었다는 아넵 작가님의 내공이 책에 그대로 녹아있었다. 문장들이 술술 읽히고, 재미있었다. 

책을 읽는 동안 나에게 뭔가 중차대한 인생의 이벤트가 일어났을 때 나를 무조건적으로 지지해 줄 사람들(주로 가족)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도 가까운 사람들에게 그렇게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 있는, 하지말라는 걸 안해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가까운 주말에 동생이랑 서점이나 도서관에 놀러갔다가 아넵의 브이로그를 보며 깔깔대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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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서의 자부심 소설Q
김세희 지음 / 창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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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제목만 먼저 보고 어느 프리랜서의 에세이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소설이라고 해서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내가 지금 프리랜서의 입장이라서 더 그랬을 것 같다. 소설은 재미있어 보여도 서평단 신청을 항상 망설이게 되는데, 이번에는 크게 망설이지 않고 신청했다. 작가의 이전 작품을 재미있게 읽기도 했고, 프리랜서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설을 읽다가 주인공 하얀과 나의 성향이 무척 비슷해서 여러번 깊이 공감하며 읽었다. 스스로를 어쩌면 프리랜서가 가장 안 어울리는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느끼는 하얀처럼 나도 그렇게 여러번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도 회사를 떠나서 일을 하는게 나에게 가장 잘 맞는 건지 매일 의심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손에 잡은 소설이라서 그런지 한 장 한 장 재미있게 넘길 수 있었다.



부모님은, 특히 한 회사를 30년 이상 다닌 아빠의 눈에는 회사를 자주 옮기다 못해 프리랜서가 되고 만 내가 늘 불안불안해 보이는 눈치다. 직장이 아니라 직업을 소개할 수 있는 동생들에 비해, 회사 이름을 대며 소개해야 하는 내가 부모님을 친구들 모임에서 조금 난감하게 만들지 않을까 걱정을 더러 했었는데, 이제는 그럴 일이 없다. 이게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제는 나도 직장이 아니라 직업으로 소개를 해야할 상황이 되었다. 이 부분을 읽으며 우리 부모님에게 내 소개가 썩 나쁜 일이 아니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누군가의 인터뷰를 읽다가 '오글거린다'는 말이 싫다고, 누군가의 노력 혹은 진심을 너무 가볍게 치부해버리는 느낌이라서 그렇다는 내용을 읽고 공감했던 기억이 났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그 인터뷰가 문득 떠올랐다. 누군가의 큰 꿈, 혹은 작더라도 중요한 꿈이 오글거리거나 쪽팔린 일이 아닌 것으로 분위기가 바뀌어 가면 좋겠다.



회사에서 항상 느끼던 감정이 글로 풀어져 있어서 이 부분을 읽으면서도 그때 생각이 났다. 회사에서는 끊임없이 내가 월급을 받는 만큼 일을 하고 있는지, 성과를 내고 있는지를 생각해야 했다. 아무리 봐도 내가 한 일이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 것 같지 않은 느낌이 항상 들었는데, 회사를 벗어나서 조금 나아졌다. 물론 교정지를 앞에 두면 요즘도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 건지, 더 이상을 해내야 하는 건 아닌지 살짝 불안할 때는 있지만, 예전보다는 많이 나아졌다.



학교를 다니지 않거나, 직장에 소속되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는 여러 길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굳이 그 길을 택하려고 하지 않는 게 내 이야기 같았다. 나도 어딘가에 소속되어서 일하는 게 더 마음이 편한 성향이라서 지금 같은 생활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주인공이 임신서기석을 보면서 느끼는 감정들은 나도 느껴본 적이 있는 감정이라서,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내가 글이나 말로 표현할 수 없었던 감정이 이거였구나, 라고 깨달았다. 



간혹 프리랜서로 작업한 결과물에 내 이름이 들어가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못할 때도 많다. 이름이 꼭 수록되지 않더라도 유독 만족스럽게 일이 마무리 되면 그 '작업이 오랫동안 나의 자부가 되리라는 걸' 나도 어렴풋이 느끼게 된다. 그렇게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좋든 싫든 내가 선택해서 프리랜서로 살고 있는 지금, 이 책을 만나서 유독 더 자주 공감하며 읽었던 것 같다. 소설이 끝나고 그 뒤에 수록된 작가의 말을 읽으며 프리랜서 경험이 묻어난 소설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프리랜서로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섬세하게 담겨있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경험에서 우러난 문장들이었구나, 싶었다. 아직도 내가 프리랜서로 사는 게 나에게 좋은 일인지 가끔 고민스러울 때가 있는데, 프리랜서로 일을 하는 동안은 자부심을 가지고, 이 일이 나의 자부가 될 수 있도록 열심히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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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미식 - 우리가 먹는 것이 지구의 미래다
이의철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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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에 비가 미친듯이 쏟아지고, 그 비 때문에 서울 도심에서 물난리가 난 걸 보고 기후 문제의 예고편을 보는 기분이었다. 아마 본편은 예고편보다 훨씬 더 강력하고 치명적일 거라는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북극의 빙하가 녹고 히말라야의 만년설도 녹고 있는 지금,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선을 넘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망가지고 있는 지구를 다시 원래대로 돌려놓을 수는 없겠지만, 파괴하는 속도라도 좀 줄여야하지 않나 하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환경 문제에 대한 책을 읽고 영상을 보면서 어떤 부분을 실천할 수 있을지 생각하는 하루하루를 보내다가 이책을 발견했다.

이전에도 채식에 대한 책은 여러권 읽었고, 그중 두 권은 후기도 남겼다. <해방촌의 채식주의자>는 제도적인 문제나 동물권 중심으로, <아무튼 비건>은 동물권과 환경, 그리고 비건으로 살아갈 때 겪을 수 있는 일들에 대해 광범위하게 다룬 책이었다. 이번에 읽은 <기후미식>은 환경 문제에 중점을 두고 환경과 사람 몸에 가장 이로운 식사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간다.



기후미식이라는 제목을 보고 그게 기존의 비건식과 무엇이 다를지 궁금했다. 정확한 구분은 어려울 수 있겠지만, 책을 다 읽고 나니 기후미식은 동물보다도 환경과 사람에 초점이 맞춰진 느낌이었다. 단순히 동물권을 위해 채식을 한다기 보다 사람을 비롯한 동물이 살고 있는 지구를 더 해치지 않으면서, 사람 몸에 해롭지 않게 먹을 수 있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였다. 단순히 동물성 식품만 섭취하지 않는 비건보다 조금 더 몸에 이로울 것 같지만, 그만큼 까다로운 느낌도 들었다. 되도록이면 가공하지 않은 음식을 먹을 것을 권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구에도 내 몸에도 이롭다니 실천해보고 싶어졌다.



이미 지구온난화라는 말은 식상하게 느껴질 정도로 많이 접하게 되었고, 이제는 피부로 와닿기 시작했다. 하지만 감귤류가 중부지방인 세종에서 자라고 있다는 이야기는 책을 통해 처음 알아서 충격을 받았다. 커피 가격이 오를 거라는 기사를 읽고 동료들과 언젠가는 한국에서 커피 재배도 할 수 있는거 아니냐는 농담을 하며 웃었는데, 현실로 이뤄질 수도 있는게 아닌가 싶어서 살짝 불안해졌다. 책은 모두 4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중 1장에서는 기후와 환경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 내용이 제법 심각해서 읽는 동안 마음이 무거웠다.



이 부분은 읽기 전까지 생각해본 적이 없는 내용이었다. 온실가스를 엄청나게 배출하면서 사회 인프라를 구축해 온 나라들은 기후위기에도 어느 정도 대처할 수 있지만, 온실가스 배출을 적게 하며 자연 친화적으로 살아온 나라들은 기후위기에 맨몸으로 맞닥뜨리게 된다는 이야기를 읽으며 정말 그렇겠다 싶어서 마음이 안 좋았다. 온실가스를 적게 쓴 사람들이 더 큰 피해를 입게 되다니.



한국의 탄소 발자국이 53년 동안 13.3배 늘어났다는 것으로는 확 와닿지 않았지만, 지구가 0.29개 필요한 수준에서 3.86개 있어야 할 수준으로 늘어났다고 하니 심각하게 느껴졌다. 그중에서 식단이 차지하는 비중이 저렇게 크다는 것도 충격적이었다. 그동안 집에서 내가 실천할 수 있는 부분이 고작 식단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식단은 제법 큰 문제였다는 걸 절감했다.



우영우가 좋아하는 고래는 환경적으로도 아주 이로운 동물이다. 큰 고래는 나무 약 1,500그루가 1년 동안 흡수할 수 있는 양의 이산화탄소를 바다 밑에 저장할 수 있다. 고래뿐만 아니라 해양 생물은 죽은 후에 바다 아래에 가라앉아 몸에 저장되어 있던 이산화탄소를 수천년동안 해저에 저장한다. 이렇게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해양생물이 바다에 저장하는 탄소를 '해양 블루카본'이라고 한다.(91쪽) 해양생물이 하는 일은 바닷속 생태계를 유지하는 일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더 많은 일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그리고 해양생물이 그 역할을 끝까지 해낼 수 있도록, 각자의 방식대로 생을 마감할 수 있게 해주는 게 인간의 역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후위기가 만성질환과 닮았다는 것도 이미 국가적 사고의 범위를 넘어섰다는 것도 공감하며 읽었다. 이미 기후 위기 전조 증상을 여러 차례 겪었고, 또 겪고 있으면서도 아직 눈앞에 심각한 위기 상황이 보이지 않아서 기후 문제에 대한 생각을 일상에서는 잊을 때가 많다. 그렇지만 지금도 이미 빠른 속도로 진행 중이고,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니 좀 더 경각심을 가지고 살아야겠다. 엄격한 자연식물식은 아니더라도 책에서 추천한 식단이나 음식에도 도전해보며, 지속가능하게 먹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봐야겠다.


그동안은 동물성 식품을 피하고 식물식을 하는 것이 환경이나 비인간 동물에게 더 이로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사람 몸에도 그게 좋다는 걸 책을 읽으며 알게 되었다. 되도록 비정제 음식 위주로, 탄소 발자국을 만들지 않는 식단을 고민해봐야겠다. 이 책에는 식단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제철 음식과 요리에 대한 정보도 담고 있다. 부록에서 내가 도움을 많이 받았던 자료는 식물성 식품의 단백질 함유량이었다. 꼭 고기가 아니더라도 단백질을 풍부하게 얻을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지금 당장 고기를 완전히 끊을 자신은 없지만, 식물성 식품 위주로 먹으면서 차차 범위를 더 넓혀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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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크루그먼, 좀비와 싸우다 - 나쁜 신념과 정책은 왜 이토록 끈질기게 살아남는가
폴 크루그먼 지음, 김진원 옮김 / 부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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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전공의 친한 친구가 대학에서 부전공으로 경제학을 선택해서, 나도 따라서 경제학 입문 강의를 함께 들으려고 수강 신청을 한 적이 있었다. 두꺼운 맨큐의 경제학 책을 들고 강의실에 들어갈 때까지만 해도 뭔가 대학생 같은 느낌이 들어서 뿌듯했었는데, 첫 주부터 뭔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다. 진짜 이거 부전공할 거냐고 친구한테 서른 번 물어보고, 나는 결국 강의를 드롭했다. 지금 기억나는 건 맨큐가 58년 개띠라서 우리 엄마랑 동갑이네? 했던 것 정도다. 

그 이후로 경제는 나한테 아주 어려운 분야로만 남아 있었다. 사회에 나와서는 어쩔 수 없이 경제 상황을 어느 정도는 파악하고 있어야 했는데, 강의를 들을 때보다 더 까다로웠다. 경제만 단독으로 파악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고, 반드시 정치나 정책이 끼어들었다. 단독으로도 어려운 분야가 둘이 합쳐지니 파급력이 어마어마했다. 올해 초의 목표는 모든 분야의 책을 고르게 읽기였는데, 한 해의 절반이 지나도록 경제 분야는 스치지도 않았다는 걸 깨닫고, 마침 기회가 닿기도 해서 이 책을 읽어보기로 했다. 우리나라 경제도 아닌 미국 경제에 대한 논평을 담은 책인데 잘 따라갈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두께가 압도적이었던 것에 비해 내용은 이해하기 아주 어렵지 않았다. 



제목에 나온 좀비가 무엇일까 궁금했는데, 차례를 훑어보면서 그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부자 감세 좀비, 기후 변화 부정 좀비 등 나쁜 신념이나 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정책은 사라졌다가도 다시 기어나오는데 이 모습이 흡사 좀비같다. 이 좀비들에 대한 이야기를 18개의 장으로 나누어 살펴본다. 저자가 뉴욕타임스를 비롯해 여러 곳에 게재했던 논평이 중심인데, 발표된 시기가 제각각인데도 흐름이 끊어지지 않게 구성되어 있었다. 저자의 글과 약력을 읽으면서 연구자로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저자가 공적 지식인으로서의 책무에도 충실하려고 노력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경제학자가 쓴 책이라고 해서 어쩌면 원론적인 이야기가 많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책에는 피부로 느낄 수 있는 현실적인 이야기들이 많았다. 어쩌면 경제학의 범위를 넘어선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모든 분야를 조금씩 건드리며 경제와 연관지어 어렵지 않게, 하지만 신랄하게 풀어낸다. 책에서 말했듯 '경제학이 특정 가치군을 반영한 정책에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지 설명'해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경제 정의와 경제 성장은 양립할 수 없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를 읽으며 잠깐 멍해졌었다. 나도 알게모르게 저 둘은 양립할 수 없는게 아닌가 하고 막연히 생각해왔다. 우리나라에서 전후에 고도 경제 성장을 이루며 등장했던 일종의 부작용들이 경제 정의에 관련된 부분이라고 배워왔는데, 이 부분을 읽으면서 사실은 경제 정의도 챙겨가며 성장을 이룰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서는 다양한 분야를 언급하고 있는데, 당연히 언론도 빼놓지 않았다. 언론은 공정하게 사실을 보도해야 하고, 대중은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읽어야 한다는,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지켜지기가 어렵다는 것이 씁쓸했다. 


여러 곳에 게재했던 논평을 중심으로 한 책이다 보니, 글 하나하나의 길이가 짧고 집중이 잘 되도록 구성이 되어 있어서 읽기 어렵지 않았다. 다만, 우리나라 경제 상황이 아니라 미국의 상황을 다루고 있다보니 내가 잘 모르는 인물이나 사회 현상이 등장하면 찾아가며 읽어야 했다. 나는 궁금해서 찾아보긴 했지만, 사실 책에도 배경 지식이 어느 정도는 설명이 되어 있어서 크게 불편한 정도는 아니었다. 8월이 되어서야 손에 잡은 올해의 첫 경제책이 조금 어렵긴 했지만 유익하고 재미있어서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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