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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집
가와카미 미에코 지음, 홍은주 옮김 / 책세상 / 2024년 10월
평점 :
가와카미 미에코는 일본의 소설가이자 시인으로, 1976년 오사카에서 태어났습니다. 싱어송라이터로 시작한 그녀는 글쓰기로 전향 후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하며 일본 문학계에서 독자적인 입지를 다졌습니다. 그녀의 작품은 인간의 내면을 세밀하게 들여다보며, 삶의 이면과 결핍을 생생히 드러내는 특징이 있습니다. 2024년에는 "노란 집"으로 제75회 요미우리 문학상을 수상하였습니다.
"노란 집"은 1990년대 일본을 배경으로, 사회의 주변부에서 살아가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이 시기는 일본이 버블 경제 붕괴 이후 경제적 침체와 사회적 변화의 시기를 겪던 때로, 이러한 시대적 배경이 작품의 분위기와 인물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작품은 가출 청소년, 유흥업소 종사자 등 사회적 약자들의 현실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며, 그들의 생존과 연대, 그리고 가족의 의미를 되짚어봅니다.
‘집’은 물리적 보호 공간일 뿐만 아니라 심리적 안정과 애착을 형성하는 기반입니다. "노란 집"은 이 상징적 공간을 중심으로, 가정의 붕괴와 새로운 관계의 형성을 궁구합니다. 사회적 약자인 청소년이 집과 가족의 부재 속에서 살아가는 방식을 보여주며, 독자는 ‘가족’과 ‘안전’에 대해 재고하게 됩니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전통적인 가족의 개념을 넘어선 새로운 형태의 '유사 가족'을 조명하고자 했습니다. 또한 사회의 주변부에서 밀려난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담히 그려내며, 독자가 그들의 선택과 삶을 쉽게 판단하지 않도록 합니다. 특히 소녀 하나를 통해 "삶이란 이미 시작된 것을 전력으로 살아가는 것”임을 전하고, 독자가 인물의 내적 갈등과 선택에 감정적으로 몰입하게 만들었습니다.
📌“내가 몇 살이 되고 어디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건, 그녀를 잊을 일은 없을 줄 알았다.”
하나의 삶은 ‘집’과 ‘가족’이라는 두 키워드를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그녀의 집은 보호와 안정을 제공하는 공간이라기보다는 폭력과 방치의 상징에 가까웠습니다. 하나는 이런 집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것이 또 다른 갈등과 혼란으로 이어졌습니다. 작품은 집과 가족이라는 단어가 반드시 따뜻함이나 안식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점을 섬세히 드러냈습니다.
기미코와의 여름방학은 하나에게 처음으로 ‘가족’의 온기를 느끼게 했지만, 그것은 결코 전형적인 가족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기미코는 하나의 엄마 역할을 하면서도, 자신 또한 결핍과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녀의 헌신적이지만 불안정한 모습은 하나에게 기대면서도 보호자가 되려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기미코와의 재회 이후, 하나는 그녀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가족을 만들어갑니다. 모모코, 란, 그리고 주변 인물들이 하나의 곁에 모여들며 형성된 이 조립식 가족은 사랑과 유대의 가능성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갈등과 무너짐의 위험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방치된 삶 속에서 기미코와 만남으로 특별한 여름을 맞이합니다. 노란색은 작품 전반에 걸쳐 하나에게 용기와 위안을 주는 동시에, 그 속에 깃든 아픔과 상처를 상기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개나리색, 병아리색, 바나나색, 레몬색. 노랑에도 여러 노랑이 있었다."라는 문장은 이들의 관계와 ‘노란 집’을 상징하는 핵심적인 감정을 압축합니다. 하나에게 기미코는 따뜻한 노란빛처럼 안도감과 용기를 주는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그 관계는 행복 이상의 복잡한 층위를 품고 있었습니다.
작가는 이 가족의 모습을 통해 전통적 의미의 혈연 중심 가족을 해체하고, 관계와 선택으로 구성된 현대적 가족의 가능성을 탐구합니다. 이 조립식 가족은 사회적 규범에서 벗어난 이들이 서로를 보호하고 의지하는 모습을 그리며,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묻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때로는 안타깝고, 때로는 절망적이지만, 그들이 서로에게 가족이 되고자 하는 노력은 깊은 여운을 남겼습니다.
📌“스스로 결정한 인생을 사는 인간은 세상에 없다는 말이지.”
소설 속 인물들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삶의 무게를 단적으로 드러냅니다. 독자는 그들이 선택할 수 없었던 과거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현재를 동시에 목격하게 됩니다.
하나의 삶은 끊임없는 생존의 연속입니다. 가난, 방치, 사회적 낙인 등으로 점철된 그녀의 환경은 독자가 그녀의 선택을 윤리적 기준만으로 판단하기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누구 땀은 좋은 땀이고 누구 땀은 나쁜 땀이라고 단정할 수 있는 당신은 대체 어디서 그 땀을 흘리고 계신지?"라는 하나의 질문은 사회적 성공과 실패를 규정짓는 불평등한 기준을 직격합니다. 작가는 하나의 도덕적 선택을 옳고 그름의 문제로만 그리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녀가 선택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구조적 배경과 인간적 한계를 동시에 조명하며, 독자에게 그 무게를 함께 짊어지며 여정을 나아가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는 기미코와의 관계를 시작으로 성장하고, 자신의 상처와 맞서며 선택을 통해 스스로의 길을 만들어갑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그녀의 성장에는 항상 상실의 그림자가 따릅니다. 기미코의 체포 소식을 들으며 떠오르는 기억들, 조립식 가족의 해체, 그리고 그녀가 세상의 중심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는 고립감은 한편으로는 성장이란 상처를 동반할 수밖에 없음을 상기시키기도 하였습니다.
결국, "노란 집"은 하나와 그녀의 동료들이 만들어내는 감정적 공간입니다. 이곳에서 그들은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아픔을 공유하며, 결핍을 채우기 위해 애씁니다. 노란 집이 가진 상징성은 독자들에게 가족과 집이란 제도적 개념이 아니라, 관계와 연대 속에서 구성되는 것임을 일깨워줍니다. 삶의 경계선에서 버티고 살아가는 하나의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선택과 도덕적 경계를 재검토하도록 만듭니다.
하나는 끊임없이 자신의 선택을 합리화하며 윤리적 경계선을 넘나들었습니다. 독자들은 그녀의 결정에 공감하면서도,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갈등하게 됩니다. 이는 독자에게 사회적 약자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합니다. 하나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독자는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우리는 진정 무엇을 위해 살아가며, 누구를 가족이라 부를 수 있을까?
📌“모두, 어떻게 살아가는 걸까. 길에서 스쳐 지나는 사람, 찻집에서 신문을 읽는 사람… 어떻게 그쪽 세계의 인간이 되었냐다.
이 질문은 자신의 삶에 대한 의문을 넘어, 현대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보편적인 고민으로 확장됩니다.
"노란 집"은 바로 그 질문을 우리 모두에게 던지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