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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빵 굽는 시간·가족의 기원 - 제1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 ㅣ 문학동네 한국문학 전집 33
조경란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11월
평점 :
#도서협찬
이 게시물은 서평단 모집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조경란은 1996년 "식빵 굽는 시간"으로 문학동네작가상을 수상하며 데뷔한 이후, 한국 문학의 중요한 작가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의 작품은 일상적인 소재를 통해 인간의 복잡한 내면과 관계를 탐구하며, 서정적이면서도 강렬한 감성을 담아냅니다. 작가는 가족의 붕괴와 독립을 이야기하며, 홀로서기와 내면의 성장에 대한 화두를 던집니다. ‘지도 없는 삶’을 걸어가야 하는 우리에게, 스스로 삶의 의미를 찾으라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식빵 굽는 시간 / 가족의 기원"은 족의 해체와 자아 탐구를 중심으로, 우리의 내면을 비추는 두 개의 거울과도 같습니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맞닥뜨리는 상실, 고독, 그리고 독립의 여정을 섬세하게 그려낸 두 작품은 따로 또 같이 읽히며, 인물들이 겪는 감정의 진폭을 독자에게 고스란히 전달합니다. 두 장편소설을 통해 느껴지는 조경란 작가의 섬세한 필치와 서사는 따스하면서도 차가운 현실로 이끕니다.
📌“식빵은 모든 빵의 기초다.”
주인공 ‘여진’은 빵을 굽는 과정을 통해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려 하지만, 그녀를 둘러싼 현실은 황량하기만 합니다. 빵을 구울 때 퍼지는 따뜻한 향기가 오히려 가족을 잃은 여진의 고독을 더 깊이 부각합니다. 그녀가 잃은 가족과 사랑 속에서도 홀로서기를 시작하며 가장 기본적인 삶의 원칙을 다시 배우는 과정이 담겨 있습니다. 식빵은 그녀의 상처를 치유하고, 고독을 마주하며 성숙해가는 과정의 은유입니다. 식빵의 구워지는 시간을 통해 그녀는 내면의 불안을 부풀리고, 결국 새로운 자신을 마주하게 됩니다.
작품 전반에 깔린 죽음과 상실의 이야기는 쓸쓸하지만, 그 속에서 새롭게 피어나는 삶의 가능성도 엿볼 수 있습니다. 특히 작중 어머니와의 관계는 더욱 심금을 울립니다. 어머니의 죽음을 떠나감으로 받아들이는 여진의 모습은 "죽음이 아닌 떠남"이라는 새로운 해석을 제시하며, 상실을 넘어서 삶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합니다.
📌“이제, 혼자가 되어서. 사람들은 모두 걸어가야 한다. 지도라곤 없는 자신만의 삶으로”
가족이라는 관계가 단순히 물리적 공간을 공유한다고 해서 완성되지 않는다는 점을 날카롭게 짚어낸 이 소설의 핵심 문장입니다. '가족의 기원'에서는 ‘정원’의 시선을 통해 가족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그 울타리에서 벗어나는 과정에서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되는지를 들여다봅니다. 경제적 몰락과 가족 간의 갈등이 얽힌 가운데, 정원이 자신의 삶을 찾아가는 여정은 누구나 삶의 방향을 잃고 외로움을 느낄 수 있지만, 그것을 자신만의 지도 없이 헤쳐나가는 과정이야말로 성숙의 본질임을 보여줍니다.
정원이 머무는 공간들—‘호수장 삼백육호’, ‘한신연립주택 이백팔호’—은 그녀의 떠도는 삶을 상징합니다. 하지만 그녀가 새로운 날짜들로 채워질 달력을 들고 있는 장면에서는 그녀가 혼자서도 자신만의 삶을 꾸려나갈 수 있음을 희망적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서른 살이면 결코 작은 나이가 아니다”
두 소설은 서른이라는 나이를 중요한 전환점으로 다룹니다. 여진과 정원 모두 서른을 앞두고 자기 삶의 방향성을 모색하며, 이는 보편적인 공감을 불러일으킵니다. 특히 서른을 맞이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막연한 불안과 성장의 기쁨은 삶의 복잡함을 대변합니다.
조경란 작가의 문장은 담백하면서도 섬세합니다. 군더더기 없이 매끄럽게 흘러가는 문장은 독자를 몰입하게 만들며, 등장인물들의 감정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합니다. 빵 냄새와 같은 따뜻한 이미지와 가족의 몰락과 같은 차가운 현실이 대비를 이루며 작품에 깊이를 더합니다.
📌“한집에 기거하고 한방에서 같이 잠잔다고 해서 모두 가족이라 부를 수는 없다”
또한 가족이라는 제도에 대해 비판적이면서도 애정 어린 시선을 동시에 던집니다. '가족의 기원'에서 정원의 말처럼, “한집에 기거하고 한방에서 같이 잠잔다고 해서 모두 가족이라 부를 수는 없다”는 선언은 가족의 의미를 재정의하게 합니다. 우리는 누구와의 관계를 가족으로 정의할 수 있는가? 작가는 그 질문을 던지며 독자가 스스로 답을 찾도록 이끌고 있습니다.
두 소설은 모두 상실에서 시작해 독립으로 나아가는 여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식빵 굽는 시간'의 여진은 자신을 기다리며 상실을 견뎌내고, '가족의 기원'의 정원은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독립을 준비합니다. 이들은 모두 불안정한 서른의 문턱에서 스스로의 삶을 설계하며, 지도 없는 삶의 길을 걸어갑니다.
조경란은 삶의 결핍을 담담히 응시하며, 그 결핍 속에서 성장하는 인물들을 통해 독자들에게 위로와 깨달음을 줍니다. 두 작품을 읽고 나면, 자신만의 삶의 여정을 그려보게 됩니다. 또한 누구나 홀로서기의 순간을 맞닥뜨려야 한다는 사실은 두렵지만, 동시에 자신만의 삶을 살아갈 용기를 줍니다. 이처럼 가족의 의미를 탐구하고, 독립을 향한 여정을 그려낸 이 두 소설은 우리의 내면 깊은 곳을 어루만지며, 각자의 삶의 방향을 돌아보게 합니다.
'식빵 굽는 시간'과 '가족의 기원'은 조경란 작가의 초기작이지만, 이미 성숙한 필치와 깊이 있는 통찰을 보여줍니다. 가족이라는 관계의 의미와 한계를 탐구하고, 상실과 독립 속에서도 삶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이야기는 오늘날 많은 독자들에게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됩니다.
이 작품들은 자신만의 삶의 지도를 그리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조용한 격려가 되어줍니다. 부풀어 오른 식빵처럼, 이 책을 읽고 나면 내면이 따뜻하게 채워지는 느낌을 받을 것입니다. 자신만의 삶의 방향을 묻는 중요한 물음표가 되어줄 이 소설을 특히 상실의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들, 서른이라는 불안정한 시기를 앞둔 젊은 독자들, 그리고 가족과 자아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