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갈래 길
래티샤 콜롱바니 지음, 임미경 옮김 / 밝은세상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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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타르프라데시, 시칠리아, 몬트리올.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세 도시가 눈앞에 그려진다. 그 속에서 살아가는 스미타, 줄리아, 사라의 모습도. 그들이 겪는 일상의 무거움이 내게도 같은 무게로 다가온다. 이 책의 원제인 ‘La tresses’는 ‘세 갈래로 나눈 머리카락을 서로 엇걸어 하나로 땋아 내린 머리’, 혹은 ‘세 가닥을 하나로 땋아 엮은 줄이나 끈’을 의미하는 것처럼 어느새 그들의 삶과 나의 삶이 얽혀 있음을 고백하고 만다.

 

스미타, 줄리아, 사라. 세 명의 여성이 겪는 삶의 무게와 고통과 절망을 남성인 내가 온전히 이해한다고, 공감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전적으로 그들에게 공감한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그렇지만 그들의 삶이 얼마나 무거웠는지,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는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남성으로서의 삶도 그들과 그렇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인도의 불가촉천민으로 태어나 그 누구도 하고 싶어 하지 않을 일을 해야만 하는 스미타. 그런 자신의 삶을 아이에게 그대로 넘겨주기 싫은 그녀의 마음은 어느 부모의 마음과 별반 다르지 않기에.

 

잘나가는 변호사에서 암으로 점차 자신의 자리를 잃어가는 사라의 모습은 여성이기에 갖는 아픔만은 아니다. 그 누군가는 지금 이 순간 그녀와 동일한 아픔과 좌절을 겪으며 오늘 하루를 보내고 있을 지도 모른다.

 

줄리아. 전통과 관습에 얽매인 사회에서 자신의 길과 사랑을 찾아 나선 그녀의 모습은 모든 이들에게 동일한 희망과 꿈을 선사한다. 모두 자신의 길을 걸어갈 수 있다고.

 

세 사람 모두 자신의 길을 자신의 발로 천천히 걸어간다. 때로는 두려움에 넘치기도 하고, 때로는 아픔 속에서 좌절하기도 하지만 그들은 ‘아마존’이다. 결코 삶의 무게에 짓눌려 무너지지 않는 전사이다. 마지막 숨을 내뱉기까지 자신의 길을 나아가는 용사이다.

 

영화감독인 쓴 첫 소설이기에 영화의 장면들을 연상시키는 묘사들이 많다. 그런 점이 소설에 더욱 깊이 빠져들게 한다. 영화 속으로 빠져들고, 그들의 삶 속으로 빠져들고. 또 다시 나의 삶을 그들의 삶에 덧붙여 함께 나아가게 하고.

 

첫 슬픔이 힘차게 날갯짓하는 나비의 펄럭임으로 끝난다. 이 소설이 좋았던 가장 큰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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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한마디에 매료되다
김동주 지음 / 페르소나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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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교사 부패한 사회를 막아내는 최후의 수호자(참고: 선생이 썩으면 세상 전체가 썩기 마련[페르시아 속담])

 

국어사전의 정의가 아니다. 백과사전식 정의도 아니고. 위대한 인물의 명언인 경우도 있고, 앞서 제시한 예처럼 어떤 국가의 속담인 경우도 있고, 화자 미상의 정의인 경우도 있다. 이 책에 수록된 단어들에 대한 짧은 한마디는 그런 글들을 담고 있다.

 

짧은 한마디지만 그 한마디가 우리에게 던지는 영향력은 상당하다. 한참을 웃은 적도 있고, 한참을 들여다본 적도 있지만 마지막 순간엔 결국 깊이 생각하게 된다. 과연 이 짧은 한마디에 내포된 의미가 무엇인지를.

 

선생이라는 단어에 관한 짧은 글을 다시 살펴보자.

 

유치원/초등학교 선생 한때 어린이들을 무척 좋아한다고 생각했다가 무지하게 환멸을 느끼는 교사[화자미상]

 

처음에 이 글을 읽고 순간적으로 크게 웃었다. 너무나 기발한 표현이라는 생각에 말이다. 그런데 다시 뚫어지게 이 글을 쳐다보면서 점점 웃음이 사라져간다. 이게 뭐지? 무엇이 그들을 변하게 한 걸까? 아이들이? 아이들의 부모가? 사회가?

 

끝없는 고민과 의문이 이어진다. 짧은 한마디에 말이다.

 

책 중간 중간에 삽입된 인문학 단편에세이도 지적인 측면에서 상당히 유용하다. 기존에 잘 알지 못했던 분야의 이야기를 새롭게 배운 경우도 있고, 이미 알고 있던 이야기를 조금 더 깊이 알게 된 경우도 있다. 어떤 경우든지 대화를 이끌어나가기에 상당히 유용한 주제임은 분명하다.

 

마지막으로 아버지에 대한 정의를 살펴보고 끝내기로 하자. 웃다, 울다, 어이가 없다 등 다양한 반응을 야기할 단어일지도 모르기에 말이다.

 

아버지 자녀의 돈 줄, 아내의 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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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터베리 이야기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15
제프리 초서 지음, 송병선 옮김 / 현대지성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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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지 않을까 싶다. 그에 반해 제프리 초서는 아는 사람보다는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은 인물이지 않을까 싶다. 제프리 초서가 누군가 하면 셰익스피어를 탄생시킨 영문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인물이다. 말 그대로 어마어마한 인물이지만 영문학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라면 거의 알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그의 대표작품인 <캔터베리 이야기>를 읽은 사람도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것이다.

 

현대지성에서 나온 <캔터베리 이야기>는 일단 삽화가 포함되어 있어 중세문학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어렵지 않게 그 내용을 파악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또한 책 마지막 부분에 ‘작품 해설’을 덧붙여 이 작품에 대한 기본적인 내용, 구조, 의미 등을 파악할 수 있게 한다.

 

<캔터베리 이야기>는 31명의 순례자들이 캔터베리로 떠나기 전에 여관 주인의 제안으로 가장 좋은 이야기를 들려준 사람에게 한턱내기로 한 후 그들이 들려준 이야기를 실은 책이다. 순례자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당시의 유쾌하고 즐거운 이야기에서부터 도덕적이고 교훈적인 내용이 담긴 이야기까지 인간의 본성을 파악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주를 이룬다.

 

보카치오의 <데카메론>를 읽었던 기억이 이 책을 읽으면서 떠올랐다. 아마 둘 다 다양한 인물들이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유사한 구조를 취하고 있기 때문일지 모르겠다. 그것 또한 초서가 후대에 미친 지대한 영향력의 반증일 수도 있고.

 

<캔터베리 이야기>는 원래 운문으로 되어 있지만 의미를 살린 채 이를 운문으로 옮기는 일은 아주 어려운 일이기에 현대 독자의 이해를 위해 완역하여 산문 형태를 취하고 있다. 문화적으로 완전히 다른 중세의 이야기이기에 이를 이해할 수 있도록 각주를 달아 독자의 이해도를 높인 점도 이 책을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 상당히 유용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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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패리시 부인 미드나잇 스릴러
리브 콘스탄틴 지음, 박지선 옮김 / 나무의철학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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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라는 속담이 딱 어울리는 소설이다. 그럴 것이라는 추측을 어느 정도 하고는 있었지만 막상 눈으로 확인하니 통쾌하기도 하고 시원하기도 하다. 그만큼 소설에 빠져들었다는 반증인 걸까?

 

대프니. 상상을 초월하는 부자에 멋진 외모, 박학다식한 지성을 갖춘 잭슨의 부인을 부러워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앰버도 역시 그랬다. 하지만 그녀는 부럽다는 생각만으로 멈추지 않는다. 잭슨의 옆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낭포성 섬유증을 앓다 세상을 떠난 가상의 동생을 만들어내 대프니에게 다가간다.

 

아무것도 모르는 대프니는 앰버의 동생이 자신의 동생과 같은 병을 앓다 숨졌다는 이야기에 앰버에게 동질감을 느끼고 두 사람은 마치 친자매처럼 점점 가까워진다. 물론 이 모든 상황은 앰버의 계획에 따른 것이지만.

 

소설이 이렇게만 전개되었다면 그저 그런 이야기로 끝났을지 모른다. 소설은 이제 전혀 다른 방향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한다. 바로 대프니의 이야기. 모두가 부러워하는 잭슨과 대프니 부부는 보이는 것과는 다른 비밀을 숨긴 채 살아가고 있다. 그들의 비밀이 대프니의 시각에서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독자는 어떤 결말을 향해 흘러갈지 점점 더 깊이 책 속으로 빠져든다.

 

마지막 결말은 대부분이 짐작하는 그대로 이루어진다. 그렇다면 이 소설의 재미는 어디에 있는 걸까? 이 소설의 재미는 결말의 반전에 있다기보다는 앰버와 대프니 두 사람의 심리를 세밀하게 묘사한 장면들과 앰버와 대프니의 두뇌 싸움에 있지 않을까. 또한 권선징악의 행복한 결말도 즐거움을 더해 주기도 하고.

 

긴장을 늦출 수 없는 빠른 전개, 세밀한 심리묘사, 모두가 바라는 행복한 결말. 이 소설이 매력적인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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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영휴
사토 쇼고 지음, 서혜영 옮김 / 해냄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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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가장 아름답고, 가장 소중한 단어. 그렇지만 사랑이 무엇인지 제대로 설명하기는 참 어렵다.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도, 부부간의 사랑도, 친구와의 사랑도. 사람마다 경험하는 사랑이 다르기 때문일까? 아니면 사랑이라고 생각했지만 진정한 사랑을 한 적이 없어서일까?

 

사토 쇼고의 장편소설 <달의 영휴>는 제157회 나오키상 수상작으로 아마존재팬 문학 분야 베스트셀러 1위의 업적을 달성한 소설이다. 이 소설의 소재는 사랑이다. 작가는 사람의 생사를 달이 차고 기우는 과정에 빗대어 ‘영휴(盈虧)’라고 은유적으로 표현하는데, 현재와 과거를 오가면서 끝없이 이어지는 사랑을 그려낸다.

 

이 소설은 단순한 러브 스토리가 아니라 신비스러운 분위기, 어쩌면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독자를 깊이 빠져들게 만든다. 개인적으로 환생을 믿지 않기에 이런 일이 정말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지만 그래도 누군가의 말처럼 “어딘가 분명히 존재할 듯한 기시감을 느끼게 하는 걸작”임은 분명하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얼마나 사랑하면 루리처럼 그렇게 끝없이 달이 차고 기울듯이 사랑하는 연인을 찾아 환생을 거듭할 수 있을까? 솔직히 루리와 미스미의 사랑이 그렇게 강렬할 수 있었던 이유를 나는 여전히 모르겠다. 하지만 환생이라는 과정이 있어서 누군가를 끝없이 그렇게 사랑할 수 있다면, 또한 그 누군가의 사인을 그렇게 오랫동안 기다릴 수 있는 사랑이라면 그 사랑을 누군들 뭐라 할 수 있겠는가.

 

이 소설에서 내 눈길을 끈 또 다른 인물들은 오사나이 쓰요시의 아내 후지미야 고즈에와 미도리자카 유이이다. 어머니라는 이름의 두 사람. 말도 안 되는, 아니 도저히 믿기 힘든 현실을 그들은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받아들였던 걸까? 그들은 또 우리에게 어떤 사랑을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사랑이라는 단어는 참 거대하다. 모든 것을, 때로는 결코 믿을 수 없는 현실을 만들고,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그런 사랑, 살면서 한 번쯤은 꼭 해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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