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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티모어의 서
조엘 디케르 지음, 임미경 옮김 / 밝은세상 / 2017년 10월
평점 :
절판
볼티모어 골드먼 가족에게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은 누구의 책임일까?
너무도 뻔해 보이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알기 위해서는 마지막 장까지 한 페이지도 놓치지 말고 읽어야 한다. 600페이지가 넘는 소설을 한 순간도 쉬지 않고 너무도 뻔한 답을 향해 나아가도록 만드는 힘, 그것으로 이 소설을 쓴 작가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었다.
미스터리 소설의 형식을 취해 볼티모어 골드먼 가에 일어난 비극이 무엇인지 마지막 순간까지 밝히지 않은 채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은 작가는 이렇게 글을 마무리한다.
글쓰기는 우리가 부조리한 삶에 맞서는 복수전을 펼칠 때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어준다. 글쓰기를 통해 우리는 무너지지 않는 성벽처럼 강한 정신,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영원한 생명력을 가진 기억의 힘을 증명할 수 있다(p.640).
작중 화자인 마키를 통해 볼티모어 골드먼 가족의 이야기가 다시 살아난 것처럼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글쓰기의 힘, 어쩌면 작가라는 존재가 가진 힘에 대해 알려주고자 한 것일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소중했던 추억이 한 순간에 흐트러지지 않은 채 이어질 수 있도록.
소설에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이리저리 얽혀있다. 볼티모어 골드먼과 몬트클레어 골드먼 사이에 존재하는 괴리감, 알게 모르게 자리 잡은 힐렐과 우디의 경쟁의식, 누군가를 향해 애틋한 사랑의 마음, 열등감으로 인한 끝없는 추락과 파멸, 죄의식이 야기한 비극적인 사건 등 살아가면서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하는 현실의 이야기들이 이 한 편의 소설에 모두 담겨있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이야기가 진행되지만 시간적 흐름을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복잡하게 얽혀있지는 않다. 오히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구성이 비극적 사건에 대한 궁금증을 더욱 크게 만들어 독자를 이야기 속으로 깊이 끌어당긴다.
소설을 읽은 후 작가의 전작 <해리 쿼버트 사건의 진실>의 내용이 너무 궁금해졌다. 이 소설의 화자와 동일한 주인공이 등장한다는데. 한 치의 고민도 없었다. 다음에 어떤 책을 읽을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