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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비 - 2017년 제13회 세계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정미경 지음 / 나무옆의자 / 2017년 9월
평점 :
내가 어렸을 때만 하더라도 동네에서 굿을 하는 모습을 종종 보았다. 굿은 동네 축제라고 할 수는 없지만 동네 사람들이 모두 모이는 공통의 일 같은 느낌이 강했다. 함께 모여 굿하는 이를 위해 마음을 쏟는 모습은 내가 믿는 신앙과는 다르지만 그 마음이 무엇인지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굿, 무당이라는 말이 낯설게 느껴지는 오늘날 제13회 세계문학상 우수상으로 선정된 정미경 작가의 <큰비>는 잊어버린 무언가를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다. 아주 어렸을 때 굿을 하는 모습을 몇 번 본 것이 전부라 소설에서 묘사한 장면들이 쉽게 눈에 들어오지는 않지만 어렴풋이 옛날 보았던 모습이 떠오르면서 묘한 추억에 빠져들기도 하였다.
새로운 세상을 열기 위해 한양으로 향한 원형을 통해 그려낸 <큰비>는 단순히 무녀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 속에 억눌렸던 여성들의 모습이, 또한 세상을 바꾸고자 했던 민초들의 모습이 오롯이 담겨있다.
소설의 배경은 조선 숙종 때 경기도 양주의 무당들이 도성에 입성하여 미륵의 세상을 맞이하려 했다는 역모 사건을 토대로 하고 있다. 용녀인 원향의 이야기는 작가의 상상력에 의한 것이지만 그 배경에는 실제 역사가 자리 잡고 있다는 말이다.
그들은 왜 역모를 꿈꿨을까? 그들은 왜 큰비가 온 후에야 모든 일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원형과 여환은 왜 동상이몽의 관계가 될 수밖에 없었을까? 소설을 읽는 내내 궁금증이 가시지 않았다.
신앙적인 면은 차치하더라도 원형이 만난 하랑의 이야기는 모든 이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복수는 너의 방편이 아니다. 원망과 분노가 너를 지배하도록 두어서는 아니 된다. (p.240)
오늘을 사는 많은 사람들이 분노에 가득 차 있다고 한다. 그런 분노가 사회를 향해 혹은 다른 이들을 향해 폭발하면서 점점 더 세상은 흉흉해진다. 하랑의 말은 오늘날의 우리에게 그러지 말라고 말하는 듯하다. 복수는, 원망은, 분노는 우리의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말이다.
오늘도 누군가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고 있을 것이다. 그 세상이 원망과 분노의 세상이 아니라 베옷을 짜는 노동과 보살핌의 세상이길 진심으로 바라 마지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