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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심령학자
배명훈 지음 / 북하우스 / 2017년 8월
평점 :
배명훈 작가를 표현하는 한 단어를 꼽으라고 하면 기발함이라고 말하고 싶다. 작가들의 상상력이 대단하다는 것이야 두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배명훈 작가는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소재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전작들에게서 받은 신선한 충격의 여운이 여전히 내 가슴을 채우고 있을 정도니까.
그런 그가 이번에는 ‘고고심령학’이라는 새로운 이야기를 들고 우리를 찾아왔다. 고고학과 심령학을 합친 고고심령학. 배명훈 작가가 아니면 이런 발상이 가능했을까 싶을 정도로 대단하다고 밖에 할 수 없다. 그런데 과학 소설을 지향하는 작가의 방향성이랑 맞는 걸까? 심령학이라고 하면 아무래도 과학적이라고 하기는 좀 그런데.
고고심령학이란 고고학적인 궁금증에 답하기 위해 심령학적인 수단을 활용하는 학문(p.27)이다. 기발하지만 실제 이런 학문이 존재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진위 여부야 우리가 확인할 수는 없겠지만.
여하튼 소설은 고고심령학의 대가인 문인지 박사가 세상을 떠난 후 문인지 박사의 서재를 정리하는 일을 맡은 조은수, 그녀의 친구이자 동기인 김은경, 문 박사의 친구 한나 파키노티를 중심으로 이어나간다.
문인지 박사가 죽은 후 서울 한복판에 검은 성벽이 출현한다. 검은 성벽의 출현 후 자살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사람들 사이에 목격담이 퍼져가는 가운데 조은수는 이 현상이 심령현상인 빙의와 관련이 있음을 알아차린다. 그녀는 한나 파키노티와 함께 스승인 문 박사의 서재를 정리하며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데..
소설 도입 부분은 솔직히 조금 지루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서울에 일어난 요새빙의 현상을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조금씩 드러나는 진실이 마치 퍼즐을 맞추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할 정도로 짜릿함을 더해준다. 특히 장기, 체스와 관련된 내용들은 호기심이 일어 인터넷을 찾아보면 진위 여부를 확인해야 할 정도로 흥미진진했다.
이야기 자체가 주는 신선함도 상당했지만 툭툭 던지는 작가의 질문 혹은 생각들을 읽고 고민하는 즐거움도 상당했다. 특히 학문에 대한 생각이 그러했다.
살림살이에 보탬은 안 됐지만,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은 닫혀 있는 문 몇 개를 열어주는 일이 틀림없었다.(p.103)
평생 교육이라는 말이 있듯이 무언가를 배우는 일은 우리가 나아갈 또 다른 문을 열어준다. 정체된 느낌에 고민스러웠던 내게 이 말은 큰 도움을 주었다.
볼수록 매력적인 작가, 배명훈. 그가 상상력의 끝은 어디일지 정말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