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바람으로 그린 그림
김홍신 지음 / 해냄 / 2017년 8월
평점 :
김홍신 작가하면 머릿속에 바로 떠오르는 작품이 바로 <인간시장>이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장총찬이라는 인물이 준 강렬한 인상이 김홍신 작가와 겹치면서 왠지 김홍신 작가하면 마초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작품만 쓸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러다 이런 고정관념을 버리게 된 작품이 전작 <단 한 번의 사랑>이었다. 생각지도 않았던 사랑이야기에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사랑이라는 가장 아름다운 단어를 풀어낸 그의 이야기는 아련하면서도 애틋한 감정에 사로잡히게 했다.
이 시대의 로맨티스트라고 불러도 좋을만한 작가의 성향을 알게 되었기에 <바람으로 그린 그림>이라는 이번 신작 역시 당연히 사랑을 주제로 한 작품이라고 추측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만 제목이 풍기는 이미지를 그려내기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걸까?
가장 먼저 ‘사랑과 용서로 짠 그물에는 바람도 걸린다’라는 글을 써서 책상에 붙여놓았다는 작가의 말이 눈에 들어온다. 바람마저 걸릴 수밖에 없는 사랑과 용서로 짠 그물? 왠지 모르게 아픔이 느껴지면서도 그 속에 담긴 무언가가 강렬하게 독자를 끌어당긴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소설 속 목차를 들여다보면 이런 인상이 결코 나만의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제1부 철조망 또는 성벽
1부 제목에서 풍기는 이미지가 벌써 작가가 그린 사랑이 일반적인 사랑이 아님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사랑 이야기를 한다고 하면서 철조망 혹은 성벽이라니 말이다. 사랑하는 두 사람 사이에 일반인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벽은 무엇일까? 여기에서 작가가 말하는 벽은 두 사람 사이에 놓인 연령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마음속에서 서로를 존중하기 위한 벽이기도 하다.
2부와 3부에서 작가가 그린 내용들도 마냥 행복한 사랑 이야기가 아님을 암시한다. ‘사랑은 얼마나 오래갈 수 있을까, 이제 내게 남은 사랑은 없다’라는 문구들은 달달한 사랑 이야기 대신 아픔과 고통이 넘쳐나는 사랑을 얘기하고 있음을 명확하게 드러낸다. 물론 리노와 모니카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모니카와 이준걸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마지막 4부 ‘깊은 용서’에서 작가는 아무리 쓰라린 상처라도 용서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치유될 수 있다는 생각을 드러낸다. 책을 읽으면서 어느 정도 예상한 내용이었기에 별다른 거부감 없이 읽었지만 현실에서 이런 일이 생긴다면 어떨지는 솔직히 아직은 모르겠다. 과연 모니카와 리노의 가족에게 일어난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는.
사랑과 용서로 짠 그물이라는 말이 주는 이미지가 아직은 모호하지만 사랑과 용서로 짠 그물이라면 바람조차 걸릴 수밖에 없다는 작가의 생각에는 어느 정도 공감하게 된다. 실제 내 삶에서 그런 일이 쉽게 이루어질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