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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보복대행전문주식회사 세트 - 전2권
이외수 지음 / 해냄 / 2017년 5월
평점 :
책 내용과는 그다지 상관없지만 주인공 정동언이 수목원을 운영하는 화천군 다목리는 내가 군 생활을 했던 곳이다. 돌이켜보면 화천에 대한 첫인상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오지 중에 오지라 인적도 드물고, 마을이라고 해봐야 전방 100미터 보고 후방 100미터 정도 보면 끝인 동네. 날씨는 또 어찌나 춥던지, 5월에도 눈이 내릴 정도이니 오죽 했을까?
그다지 좋지 못한 인상을 준 화천이지만 확실하게 좋았던 것이 하나있다. 바로 자연이다. 청정지역이라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를 분명하게 알게 해 준 곳이 화천이다. 물 맑고, 공기 좋고, 푸르른 숲이 주는 상쾌함은 그 어떤 곳과도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이다. 이런 점에서 주인공 정동언이 화천에서 수목원을 운영한다는 설정(작가의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이 이해가 된다. 추악하고 음침한 인간들 대신 깨끗한 환경에서 자란 식물들이 자라는 곳, 그런 곳에 보복대행전문주식회사를 설립한 의미를.
사설이 길었다. 이제 책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이외수 작가의 작품은 빼놓지 않고 읽는 독자로써 이번 작품에 대한 기대감도 남달랐다. 어떤 이야기가 담겨있을까? 보복대행이라는 말이 주는 느낌이 묘하다. 그렇게 좋은 의미라고 할 수 없는 ‘보복’이라는 단어가 이 소설에서는 어떤 의미로 사용된 걸까?
주인공 정동언은 친일파의 손자다. 하지만 그는 세상의 다른 친일파 후손들과는 달리 할아버지가 저지른 죄와 아버지의 탐욕을 부끄러워하는 인물이다. 친일파 후손으로 느꼈던 열등감, 수치심 등으로 인해 그는 은둔형 외톨이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특이한 능력이 있었으니 바로 식물과 대화가 가능하게 해주는 채널링이라 불리는 능력이다. 이런 능력을 그는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의 앙갚음을 대행해주는 일에 사용하기로 한다. 이를 위해 세운 회사가 바로 ‘보복대행전문주식회사’이다.
세상을 어지럽히는 악당들에게 시원하게 응징하는 보복대행전문주식회사. 현실에서는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이기에 그들이 행한 일들에 더 큰 통쾌함을 느꼈던 걸지도 모르겠다. 가끔, 정말로 아주 가끔이지만 악한 사람들, 특히 국민을 끝없이 우롱하면서 자신은 죄가 없다고 오리발을 내미는 인물들을 볼 때면 확 한 대 때려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들의 활약이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특히 4대강 사업 관련자들을 빗대어 처벌하는 모습(그들에게 녹차라떼를 마시게 하는 장면, 그들의 뇌를 자극해 환상을 보게 만들어 강에 뛰어들게 하는 장면 등)은 통쾌함을 넘어서 온 몸이 짜릿해지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한다.
물론 ‘한 사람의 개인이 행하는 보복이 과연 정당한가’라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저자는 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보복도 일종의 사랑이라고. 자신의 죄를 깊이 뉘우치고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게 하는 방식이라고. 유익현의 경우를 보면 이 말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환상과 현실을 엮어 오늘의 모습을 꼬집는 작가 특유의 기발함과 유쾌함, 촌철살인의 풍자가 살아있는 작품을 만나 현실의 답답함과 불쾌함을 어느 정도 잊을 수 있었지만 여전히 가슴 한 쪽이 답답하다. 언제쯤 화천 다목리처럼 맑고 상쾌한 나라가 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가시질 않아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