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품 (특별판) 작가정신 소설향 11
정영문 지음 / 작가정신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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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떨 때 하품을 할까? 신체적으로 피곤해 졸음이 쏟아질 때가 그렇고, 너무 지루해서 집중할 수 없어 절로 고개가 수그러지려할 때도 그렇다. 하품은 결국 육체 혹은 정신적 노곤함을 이겨내지 못해 무언가에 집중하지 못하는 상태가 아닐까 싶다.

 

정영문의 <하품>은 어떨까? 일단 쉽지 않다. 작가의 말에서부터 시작된 말장난이 작품의 마지막 순간까지 이어진다. 도대체 작가는 왜 이런 말장난을 하는 걸까? 재미있는 말장난이라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두 명의 남자가 툭툭 던지는 말들이 그렇게 재미있게 들리지는 않는다. 그냥 직설적으로 표현해도 될 말들을 돌려한다는 건 결국 그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일까?

 

그럴 수도 있겠다. 무언가 분명하게 주장하기 어려울 때 혹은 강하게 말하기 어려울 때 종종 말을 돌려서하는 게 인간의 습성이 아닐까? 그렇다면 이들에게 삶이란 어떤 것이었을까? 어떤 삶을 살았기에 무슨 말을 하더라도 이렇게 비비꼬아 말할 수밖에 없었을까?

 

두 사람의 대화를 들어보면 평범한 삶을 살던 이들이 아님은 분명하다. 범죄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공범인 두 사람은 평범한 일상에 대한 관심이 그렇게 많지 않은 듯하다. 상대방에서도 마찬가지. 관심을 가진 듯 하면서도 툭툭 던지는 한 마디, 한 마디는 결코 그렇지 않다.

 

아침에 눈을 떠 정신을 차리면, 하루가 시작되는 것을 볼 때만큼 두려운 순간이 없네.

 

이들에게는 하루하루를 살아갈 의욕이 전혀 없어 보인다. 평범한 삶과는 동떨어진 그들의 삶은 무언가에 집중하면서 살아갈 수 없는 상태처럼 보이기도 한다. 별다른 목적도 없이 그저 삶에 권태로움을 느끼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그들에게 이들이 던지는 말들이 결국 무언가 지루함과 권태로움을 느낄 때 저절로 드러나는 하품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건 나 혼자만의 착각일까?

 

짧은 이야기에 너무 깊은 이야기가 담겨서 그런지 아니면 작가의 작품을 처음 읽어서 그런지 제대로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전작과 비교해서 설명한 작품 해설을 읽어도 여전히 어렵다. 무언가 잡히는 듯 하면서도 잡을 수 없는 안개에서처럼 희미한 무언가를 본 듯한 느낌만 들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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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갈자리에서 생긴 일 (특별판) 작가정신 소설향 15
이응준 지음 / 작가정신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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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갈자리의 사람의 성향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비밀’이라고 한다.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아 깊은 인간관계를 맺지 못하는데 이런 면이 어떤 때는 신비한 매력으로 다른 사람의 호감을 불러일으킨다고 한다. 또한 전갈자리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무섭게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고 한다.

 

작가 이응준은 개정판 작가의 말에서 이 소설이 탐미주의를 극단으로 추구한 결과라고 말한다. 탐미주의는 '미의 창조'를 예술의 유일지상의 목적으로 삼는 예술 사조로 '유미주의'라고도 한다. 이 소설에서 작가는 어떤 모습으로 미를 극단까지 추구했다는 걸까?

 

작가의 말을 다시 인용해보자. 작가는 모순 속에서 빛나는 것이 미학이라고 말한다. 그렇기에 이 소설이 눈에 보이듯 그렇게 어둡고 스산한 이야기는 아니라고 말한다. 정말 그런가? 일단 첫 느낌은 으스스하고 어두침침하다.

 

재벌2세로 마약과 섹스에 찌든 채 살아가는 효신도, 그의 약혼녀인 G도, 효신을 잡은 채 결코 놓아주지 않는 T도 모두 스산한 분위기의 존재들이다. 사람들이 바라본 그들은 부러움의 대상이지만 막상 그들의 삶은 희망도, 꿈도, 밝음도 없는 파괴적이고 위험한 순간들을 이어간다.

 

작가는 이들의 모습을 소설 처음에 이렇게 묘사한다.

 

세상에서 가장 끔찍하고 추한 것은 날개 달린 짐승이 바닥에 얼음처럼 누워 죽어 있는 모습이다.

 

‘날개를 단’이라는 어쩌면 너무나 희망적인 표현 뒤에 ‘짐승’이라는 표현을 덧붙여 이들이 보이는 것만큼 밝고 희망적인 존재가 아니라고 말한 후 그들의 마지막이 결국은 죽음이라는 파멸에 이르는 것임을 암시한다. 이런 모습에서 독자는 어떤 미를 찾아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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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올빼미 농장 (특별판) 작가정신 소설향 19
백민석 지음 / 작가정신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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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에 작가정신에서 중편소설의 의미와 가치를 알려주기 위해 특별판으로 출간한 다섯 작품 중에서 세 작품을 연달아 읽었다. 이응준의 <전갈자리에서 생긴 일>, 정영문의 <하품>, 그리고 백민석의 <죽은 올빼미 농장>이 바로 그 작품들이다.

 

세 작품의 분위기가 흡사하다. 뭔가 음산하고 그로테스크하면서 씁쓸한 느낌이 물씬 풍겨난다. 이 작품 역시 그렇다. 제목부터 남다르다. 단어의 조합이 무언가 기기묘묘하다. 묘한 분위기의 이 소설은 작가가 소설가를 그만두기 직전에 쓴 작품이었는데 이번에 일부를 다듬어서 다시 출간하였다고 한다.

 

누군가에서 온 두 통의 편지. 자신에게 보낸 편지가 아니었지만 무언가에 홀린 듯 편지에서 언급한 죽은 올빼미 농장을 찾아 나선 주인공. 마을에 도착해서 농장에 대해 물어보지만 그곳은 이미 30여 년 전에 폐허가 되어 농장의 흔적도 찾을 수 없는 허허벌판이었고, 농장에서 살던 사람들도 이미 세상을 떠났다. 그렇다면 주인공에게 편지를 보낸 이는 과연 누구지? 게다가 그와 함께 하는 인형은 또 어떤 존재인 걸까?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물씬 풍기지만 소설은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지는 않는다. 대신 ‘나’라는 인물의 내면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어른이지만 어른이지 되지 못한 채 어른의 모습을 가진 ‘나’. 그가 집착하는 자장가. 그를 둘러싼 주변 인물들. 이들을 통해 작가는 성장과 소통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한다.

 

한 번 읽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지만 이 소설의 내용을 모두 이해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수많은 질문을 스스로 던지며 하나하나 짚어나가야 작가의 의도를 제대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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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 인 캐빈 10
루스 웨어 지음, 유혜인 옮김 / 예담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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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릿한 유리 사이로 어렴풋이 보이는 여성의 모습, 책 표지에 실린 이미지부터 독자를 사로잡는 이 소설은 <인 어 다크, 다크 우드>의 저자 루스 웨어의 작품이다. 전작으로 강한 인상을 남긴 작가이기에 이 작품에 대한 기대감도 남달랐다.

 

초호화 크루즈 ‘오로라 보리알리스호’의 첫 항해에 상사인 로완을 대신에 승선하게 된 로라 블랙록. 누구나 부러워할만한 행운이지만 로라는 승선 전부터 모든 일이 엉망으로 뒤엉킨 상태다. 집에서 벌어진 강도사건, 남자친구 주다와의 다툼 등 뒤숭숭한 상태에서 승선한 오로라호에서 그녀는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술을 마신 후 어설프게 잠자리에 들었다 듣게 된 비명 소리에 그녀는 생각지도 못했던 살인사건에 휘말리게 되지만 살인자도, 피해자도 찾을 수 없는 현실에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꿈인지 분별하기조차 힘들어진다.

 

소설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공포가 마치 안개가 피어나듯이 스멀스멀 올라온다고 해야 할까? 눈을 돌리고 싶을 만큼 잔인한 장면 묘사은 없지만 계속되는 긴장감에 오히려 공포감은 극을 향해 치달린다. 마치 지금 내 주변에서 누군가를 나를 지켜보며 해를 끼치려는 것처럼.

 

범인이 누구인지, 어떤 트릭을 사용한 것인지는 스릴러 소설 마니아라면 어느 순간 눈치 챌 수도 있겠지만 결코 이 소설을 손에서 내려놓지는 못할 것이다. 당신의 상상을 뒤엎을 놀라운 반전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결론 부분에 조금 아쉬움이 남기도 하지만 흥미진진한 전개에 단숨에 재미있게 읽었다. 더위조차 전혀 느끼지 못할 정도로 이야기 속으로 몰입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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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드 포 라이프
에멜리에 셰프 지음, 서지희 옮김 / 북펌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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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테이너에 숨은 채 밀입국하는 불법 이주민들에 관한 영화나 드라마를 몇 편 본 적이 있다. 지구라는 공통의 공간에서 또한 시간적으로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그들의 삶과 고난에 안타까운 마음이 절로 생겼지만 깊은 공감대를 형성하지는 못했다. 내 삶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에멜리에 셰프의 <마크드 포 라이프>는 우리가 쉽게 지나치는 이런 사회적 문제를 날카롭게 비평한 소설이다. 무거운 주제이지만 추리 소설의 형식을 취하고 있기에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작품으로, 이 작품은 「야나 베르셀리우스 3부작 시리즈」의 첫 작품이자 작가의 데뷔작이라고 한다. 소설을 읽은 후 정말 첫 작품인지 의심이 들 정도로 흥미진진한 스토리와 탄탄한 구성을 갖추고 있다.

 

이민국 관리의 죽음으로 시작하는 소설은 여주인공 어느 불법 이주민 소녀의 과거 기억과 현재의 사건이 번갈아 교차하면서 두 사건이 어떤 식으로 이어지는지가 서서히 드러낸다. 특히 이 작품에 몰입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불법 이주민들과 이들의 겪는 참상을 드러내기 위해 작가가 선택한 소재가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한 아이의 아빠이기에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이 어떤지를 누구보다 잘 안다. 컨테이너에 숨어 밀입국을 시도한 소녀와 그녀를 지키기 위해 죽음 앞에서도 용감했던 그녀의 부모의 모습이 너무나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이 장면이 그렇게 크게 다루어지지 않지만).

 

하지만 그보다 더 아프게 다가온 건 자녀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밀입국을 시도했지만 오히려 그들에게 절망을 주게 된 현실이다. 여주인공 야나의 경우는 아주 특수한 사례일 뿐이다. 소설에서도 그려내듯이 대다수의 아이들은 희망도 꿈도 가지지 못한 채 한 줌 흙이 되어 사라졌을 뿐이다.

 

야나 검사도 행복이라는 것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외견상으로는 누구나 부러워할 아버지와 직업을 가졌지만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못하는 인생, 따뜻한 부모의 사랑을 느끼지 못한 삶, 문제가 생기자 결국 그녀를 포기하는 양부모의 모습을 보면 그녀에게도 행복은 결코 가질 수 없는 한낱 신기루였을지 모른다.

 

불법 이주민들의 약점을 이용하는 이들의 모습이 드러나고 그들에게 직접 벌을 주는 주인공의 모습이 통쾌하면서도 가슴 한 쪽에서 답답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 건 지금도 지구촌 어느 곳에서는 소설 속 사건들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아무도 그들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기에.

 

정답이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정답을 찾으려는 시도조차 않는 우리의 모습, 깊이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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