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세계기독교고전 20
찰스 쉘던 지음, 유성덕 옮김 / CH북스(크리스천다이제스트)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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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쉘던 목사님의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는 고등학교 졸업했을 때 선물로 받아 읽은 책이다. 이 책을 함께 읽었던 선후배, 친구들 사이에서 논쟁이 벌어졌던 기억이 난다. 어떤 이들은 이 책의 긍정적인 면을 강조했고 어떤 이들은 부정적인 면을 얘기하면서 서로 팽팽하게 맞섰다.

 

긍정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이들의 논리는 말 그대로 예수님의 제자인 우리는 당연히 예수님을 닮고자 노력해야 하고 그렇기에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반면 이를 반대하는 이들은 인간의 생각 안에 예수님을 가둔다는 논리를 펼쳤다. 그 당시 개인적으로는 부정적 견해를 제시한 이들에 조금 더 공감하는 쪽이었다.

 

세월이 흘러 이번에 이 책을 다시 읽으면서 과연 그때 그 생각들이 어떤지를 생각해볼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당연히 우리는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 지를 고민하고 그에 따르는 행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에는 한 가지 전제조건이 있다. 모든 생각과 판단의 근거가 성경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 당시 나누었던 얘기처럼 우리의 생각 안에 예수님을 가두는 일은 잘못된 일이다. 피조물인 우리가 어떻게 그분의 생각을 다 알 수 있겠는가?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성경과 기도로 판단하고 그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러 이야기들 중에서 내게 가장 깊은 인상을 끼친 내용은 예수님이 상점을 운영하는 밀턴 라이트의 입장이라면 어떻게 행하실까 하는 부분이었다. 지금 내 삶과 가장 밀접한 부분이기에 더욱 관심을 가지고 읽을 수밖에 없었다.

 

책에서 제시한 6가지 원칙은 사업을 시작했던 초기에 나 역시 가졌던 생각이지만 어느새 이런 원칙에서 벗어나 나만의 생각으로 사업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서 예수님을 생각하지 않으면 결국 자기 자신만의 생각으로 모든 일을 해결하려는 인간의 나약함을 또 다시 깨닫게 되었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이 질문은 매일의 삶 속에서 자기 자신에게 던져야 할 가장 중요한 질문 중 하나이다. 이 질문으로 나를 포함해 모든 성도들이 삶에서 승리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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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학을 품은 일상
이상윤 지음 / PUB.365(삼육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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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다닐 때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과목 중의 하나가 생물이었다. 여러 과학 과목 중에서 생물을 싫어했던 이유 중 하나는 단순 암기 과목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런 선입견 때문이었을까? 그 이후로 생물학에 관련해서 공부를 한 적도, 심지어는 책 한 권도 제대로 읽은 적이 없었다.

 

두 번 다시 보지 않을 것 같은 생물학 책을 선택해서 읽게 된 이유는 <생물학을 품은 일상>이라는 제목 때문이었다. 생물학과 일상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단어라고 생각했기에 이 두 단어가 연결된 제목이 남다르게 다가왔다.

 

우리가 매일 같이 살아가는 삶의 순간들이 생물학과 연관이 있다고? 어떻게 연결된다는 걸까? 약육강식과 같은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려는 걸까? 여러 가지 궁금증이 생기면서 책을 펼쳐들었다. 그런데 책을 펼치자마자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책 표지 바로 뒷면에 실린 저자의 이력을 보니 99년생 학생이란다.

 

저자에 대한 놀라움을 품은 채 목차를 펼쳐보았다. 저자는 에너지와 생존, 구조와 대사, 안정과 균형, 생식, 관계와 상호작용, 변화와 적응이라는 6가지 주제로 일상과 생물학을 연결해 설명한다. 언뜻 보았을 때 그저 생물학에 관련된 내용을 나열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다시 한 번 놀랐다고 해야 할까? 표현적인 면에서는 조금 부족한 느낌이 들었지만 내용적인 면에서는 상당히 참신하다. 일상의 이야기를 이렇게 생물학과 연결할 수 있다니 말이다. 계엄령, 금수저, 다이아수저, 강남 미인, 사드 문제 등을 생물학적으로 풀어 설명한다니 참 대단하다.

 

그렇다고 생물학적 지식 혹은 정보가 수준 이하일까? 생물학과는 담을 쌓고 살아가는 문외한의 입장에서는 깊이 있는 생물학적 지식을 충분히 만끽할 수 있을 정도이다. 전문가에게는 조금 부족한 내용일지 모르지만.

 

생물학은 어렵다 혹은 재미없다고 생각했다. 그런 내 생각을 완전히 무너뜨린 책이다. 일상의 모습들과 생물학이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배울 수 있었고, 과학과 인문학이 조화를 이루는 시대적 모습이 충분히 반영되어 있어 읽는 즐거움도 상당하였다. 20살도 채 되지 않은 저자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어떤 내용의 책을 내놓을지 무척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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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 책문, 새로운 국가를 묻다 - 개혁군주 정조의 78가지 질문
정조 지음, 신창호 옮김 / 판미동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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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참된 리더가 새로운 국가를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고 있어서 그런지 위대한 인물이 역사를 만드는 것은 아니지만 역사를 새로운 방향으로 흘러가는 길을 내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역사를 돌아보면 그런 리더들이 분명히 존재했다. 가까운 조선 시대를 보더라도 세종대왕, 성종, 영조, 정도 등이 그러한 리더가 아니었을까 싶다.

 

조선 시대 명군이라 불릴만한 임금 중에서 조선의 마지막 개혁군주라 불리는 정조의 78가지 질문을 담은 책 <정조 책문, 새로운 국가를 묻다>는 변화의 시대에 정조라는 한 인물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백성을 위한 정책을 펼쳤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책이다.

 

정조라고 하면 사도세자, 규장각, 탕평책 등이 다양한 역사적 사실들이 떠오르지만 막상 정조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그렇게 깊이 있게 알지 못했다. 아마 이 책의 저자도 그러했던가 보다. 정조의 <책문>을 독해하면서 그동안 제대로 알지 못했던 천재라고 불릴만한 군주의 모습을 발견하고 놀랐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책문은 왕이 신하와 유생들에게 국가의 정책과 나아갈 방향에 관한 연구와 대책을 주문한 시대의 기록이라고 한다. 이런 책문에는 질문을 하는 군주의 사상과 정책이 담겨있을 수밖에 없는데 정조의 책문을 보면 그가 얼마나 백성을 사랑하고 배려했는지, 국가의 지도자로서 어떤 비전과 태도를 가지고 있었는지가 여실히 드러난다.

 

5부에 걸쳐서 저자는 군주로서 정조가 어떤 모습을 보였는지를 설명하는데 각 제목들만 읽어도 정조의 모습과 그가 가진 전략 혹은 비전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올바른 정치를 향한 소망, 지도자의 열정과 그에 걸맞은 인재등요, 문예부흥으로 빛나는 문명국가 건설, 정치지침서를 통한 리더십 함양, 함께 잘사는 나라를 만드는 노력. 분명하게 보이지 않는가, 우리가 꿈꾸는 참된 지도자의 모습이.

 

개인적으로 문화와 관련된 일을 하기에 정조의 문화에 관한 생각이 가장 궁금했다. 유교 중심의 사회였기에 모든 내용을 현시대에 적용할 수는 없지만 ‘시대정신을 정확하게 파악하라’, ‘거짓을 넘어 진실한 학문에 힘쓰라’라는 두 가지 표현을 통해 그의 생각을 잘 파악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민생, 복지, 안보, 역사, 문화, 제도 등을 다루고 있는 책으로 각 기업의 대표, 정부 각료 등이 한 번쯤은 꼭 읽고 시대와 제반 환경에 맞게 응용할만한 정책들을 구상해본다면 좋을 듯 싶다. 또한 그다지 관계없는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들도 책문이라는 형태를 통해 아이들의 사고력을 키워주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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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의 거짓말 인문학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1
박홍규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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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박홍규를 처음으로 알게 해 준 책은 <왜 다시 마키아벨리인가>였다. 다양한 저자들의 책을 읽었지만 박홍규 교수의 책만큼 명쾌하면서도 술술 읽을 수 있는 책은 거의 없었다. 그 후 저자의 책이라고 하면 관심을 가지고 읽으려고 했다.

 

저자가 집필한 책들의 특징 중 하나는 시대를 정확하게 판단하고 분석한 후 이를 날카롭게 비판한 저자 특유의 시각이다. 이 책에서도 그런 특징이 상당히 두드러진다.

 

먼저 인문학 열풍이라는 말이 몇 년 동안 대한민국을 뒤흔들고 있는 시대, 인문학이라면 모든 것을 제쳐두고서라도 읽어야한다고 하는 주장하는 시대에 마치 인문학에 무언가 문제가 있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는 <인문학의 거짓말>이라는 제목의 책이라면 일단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제목만으로 끝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겠지만 저자가 1부 첫 인문 이야기, 2부 고대 인문 이야기에 걸쳐 설명한 인문학의 폐해 혹은 진실은 상당 부분 공감할 수 있는 내용들이다. 물론 보통의 사람들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들 정도의 주장도 있지만.

 

저자가 인문학을 비판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책표지에서부터 주장하듯이, 인문학은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즉, 다수를 위한 인문학이 아니라 특권층의 권력, 이익을 위한 차별적이고, 비민주적인 인문학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인문학이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한 것이라는 저자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니 가장 깊이 다가온 내용도 첫 민주 이야기였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우리가 생각과는 다르게 세계 역사에서 최초의 민주국은 인도라고 한다. 카스트 제도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하면 이해가 되지 않는 듯한 주장이지만 네루의 <세계사 편력>을 보면 인도가 민주 사상, 민주 전통, 토론 전통 등에서 첫 번째임을 알 수 있다.

 

책머리에서 설명하듯이 이 책은 신분 위에 성립한 인문이 여전히 사람들의 생각을 지배하고 그 위에 군림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비판한다. 인문이라는 이름하에 행해지는 비인문적인 행태를 신랄하게 꼬집기도 한다. 이런 저자의 비평 앞에서 다시 한 번 인문학의 본질을 생각해본다. 지금 우리가 열광하는 인문학이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인지 깊이 곱씹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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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탱고클럽
안드레아스 이즈퀴에르도 지음, 송경은 옮김 / 마시멜로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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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 진짜 마음에 안 든다. 현실과 너무 다른, 정말 소설 같은 이야기이다. 교통사고로 다친 데 대한 피해 보상으로 교사를 해달라고 요청한다?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면서 아이들을 맡기겠다고? 그것도 다른 아이들과는 조금은 다른 아이들을? 이게 현실적인 걸까? 이해를 할 수가 없다. 이런 요구를 하는 교장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가버도(물론 회사 오너의 아내와의 관계가 들통 나서 자신의 미래를 망칠까봐 그런 거라는 설정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는 하지만 냉정하고 지극히 개인적인 기업 컨설턴트가 교장과 제대로 붙어보지도 못하다니). 아우, 이런 설정 정말 마음에 안 든다. 그런데 책을 덮으려는데 왜 눈물이 나는 걸까?

 

잘 나가는 기업 컨설턴트 가버. 그에게 다친 시련 아닌 시련은 특수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에게 춤을 가르쳐 여름 축제 무대에서 공연을 하는 것. 가버 자신이야 어렸을 때부터 교습소에서 닦은 춤 실력이라 모든 이의 눈길을 끌 정도로 굉장한 수준이지만 아이들은, 그것도 한 명, 한 명이 육체적인 상처와 심적인 상처를 갖고 있는 아이들은? 쉽지 않다. 게다가 가버는 회사 파트너가 될 기회를 잡기 위해 피 튀기는 전투장으로 나아가야할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을 맡아 가르치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을까? 설령 그들을 맡는다고 해도 진심으로 대할 수 있을까?

 

문제는 가버의 현실을 교장 카트린은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다. 오히려 협박 아닌 협박을 하면서 가버를 옴짝달싹도 못하게 한다. 가버에게 너무 몰입한 걸까? 그녀의 모습에 울컥하는 마음이 생길 정도라면. 교장 카트린이 심술궂은 마귀 할머니처럼 느껴진다. 가버, 힘내라!!!!

 

그런데 서서히 가버의 마음이 변해간다. 마음만 변해가는 게 아니라 일을 대하는 모습도 변하고 춤을 추며 만난 여자들에 대한 마음도 변해간다. 이게 무슨 일이지?

 

아이들을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하면서 가버는 자신의 마음속 깊은 곳에 숨어있던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게 되고, 이제 아이들 한 명, 한 명과 소중한 관계를 맺기 시작한다. 서로를 바라보며, 서로를 신뢰하며, 서로를 의지하는 탱고처럼.

 

작가는 좌충우돌하는 가버와 아이들의 모습을 그려내는 한편 각 아이들이 가진 깊은 상처를 한 명씩 보여준다. 그러면서 그들이 서로가 서로를 어떻게 보듬어 안아주는지를 잔잔하게 그려낸다.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처럼.

 

이런 생각이 든다.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베풀 때 우리가 가진 무언가를 준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우리 자신이 그들로부터 무언가 소중한 것을 받는다는. 가버가 자신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수 있었던 것처럼. 이런 생각이 마지막에 나를 울렸나보다. 힘든 짐을 짊어진 채 살아가는 또 다른 가버인 나도 무언가 커다란 행복을 받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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