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의 여인들
최문희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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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적 흐름인가? 역사적 인물들을 기존의 시각과는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책이나 드라마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역사적 인물의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시켜 우리네 평범한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요즘 자주 보는 드라마 <신사임당 빛의 일기>도 그런 흐름의 하나이다(이 드라마를 보는 유일한 이유는 친구가 출연하기 때문이다^^)

 

작년에 신사임당의 사랑에 관한 소설, 드라마가 주를 이뤘다면 올해 새롭게 부각시킨 인물은 최문희 작가가 쓴 <정약용의 여인들>의 주인공 정약용이 아닐까 싶다(정약용이 주인공인지 아닌지는 약간 헛갈린다).

 

정약용이라고 하면 실학사상과 더불어 백성들을 진심으로 대한 선각자라는 인식이 강하기에 정약용의 여인들이라는 책 제목은 많은 이들의 반감을 살 수도 있는 자극적인 문구가 아닐까 싶기도 했다. 새하얀 백지 같은 인물에게 먹물을 확 끼얹은 듯한 그런 느낌??

 

그런데 제목과는 책 내용이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여인들이라는 말이 풍기는 뉘앙스 때문에, 혹은 신사임당의 사랑을 다룬 소설이나 드라마의 여파 때문에 정약용의 로맨스를 다룬 소설이라는 이미지가 강했지만 막상 소설에서 다룬 내용은 그런 로맨스보다 정약용과 함께 시대를 살았던 여인들, 그리고 그를 이은 여인들의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정약용의 정실부인인 혜완, 정약용의 유배 생활을 함께 한 진솔, 홍연과 홍임 등 소설에 나오는 모든 여인들이 바로 정약용의 여인들이다. 이들은 그저 단순한 사랑의 관계로만 이어졌다고 볼 수 없다. 누군가와는 삶의 큰 틀에서 함께 한 여인이고, 누군가는 힘들고 어려운 역경 속에서 힘이 되어준 여인이고, 누군가는 그의 삶과 정신을 이어간 여인이다.

 

참으로 이상했던 건, 약용과 함께 본가로 올라온 진솔과 홍임을 강진으로 돌려보낸 혜원이 마음이 이해가 된다. 그러면서 약용을 향한 진솔의 마음과 지극 정성의 모습 또한 이해가 된다. 게다가 두 사람 사이에서 선 정약용의 모습 또한 충분히 이해가 된다. 어쩌면 이 모든 일들이 누군가의 잘못이라고 할 수 없는 그런 사랑이기에 그런 걸까?

 

정약용의 삶과 사랑 모두를 아우르는 이야기를 듣고 나니 또 다른 모습의 정약용이 떠오른다. 소설의 묘미가 바로 이런 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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뫼르소, 살인 사건 - 카뮈의 <이방인>, 살아남은 자의 이야기
카멜 다우드 지음, 조현실 옮김 / 문예출판사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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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시키는 대로 해야 손해를 안 본다. <이방인>과 이 책을 함께 읽어야 한다는 르몽드의 충고를 무시하고 그냥 이 책만 읽었더니, 아이고 머리가 너무 아프다. 까뮈의 <이방인>을 안 읽은 건 아니다. 하지만 너무 오래 전에 읽어서 그런지 자세한 내용도 가물거리고 소설에서 까뮈가 말하고자 했던 내용도 그다지 머릿속에 남아있지 않다.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번역 논란이 한참 일었을 때 다시 보고자 했는데 이리저리 다른 책을 읽느라 다시 들쳐볼 여력도 시간도 없어서 지나쳤던지. 아쉽다.

 

이 책을 <이방인>과 함께 읽어야 하는 이유는 ‘오늘, 엄마가 죽었다’는 말을 반박하는 듯한 첫 구절에서부터 드러난다.

 

오늘, 엄마는 아직 살아 있네.

 

도대체 어떤 작가이기에 이렇게 대놓고 까뮈의 작품에 도전장을 내던진 걸까? 작가의 이력을 보니 알제리 태생의 저널리스트이자 작가라고 한다. 호, 까뮈의 이력과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일단 호기심이 생긴다. 호, 이력을 살펴보니 대단하다. 이슬람 문화를 직설적으로 비판해 이슬람 종교 재판인 파트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단다. 이런 이력을 가진 작가니 대놓고 까뮈와 맞장을 뜨겠다는 생각도 할 수 있었던 거 아닐까.

 

소설은 뫼르소가 어느 이름 없는 아랍인의 동생이 돌아본 뫼르소 살인 사건의 기억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방인을 읽었을 때 뫼르소가 죽인 아랍인에 대한 묘사를 본 적이 없었다. 그저 한 장면의 일부를 채운 단역 배우에 불과했다는 생각만 했을 뿐.

 

그런데 그 사람은 누군가에게는 사랑스런 아들이었고, 자랑스런 형이었다. 물론 그만의 이름도 갖고 있는(묘한 건 무싸라는 이름이 전혀 그렇지 않다는 설정이다). 누군가가 대신할 수 없는 무싸의 죽음은 그의 가족에게 큰 영향을 끼친다. 세상 사람들도, 까뮈도, 뫼르소 사건에서도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지만 말이다.

 

아랍인 무싸의 죽임이 그의 가족, 특히 그의 어머니와 화자인 동생에게 끼친 영향, 알제리의 독립 후에도 여전히 이방인일 수밖에 없는 현실, 아버지로 표현된 신에 대한 부정 등 소설에서 다루는 내용이 너무 무겁고 어려워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다. 그럼에도 묘하게 빠져든다. 바에 앉아 누군가의 독백을 듣고 있는 것처럼. 그러면서 그 사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처럼.

 

<이방인>과 함께 다시 읽어야겠다. 그래야 이 책의 묘미를 진정으로 맛볼 수 있을 것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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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시장의 마법사들 - 연평균 수익률 70%, 90%, 그리고 220% 시장을 이기는 마법을 찾아서! 시장의 마법사들
잭 슈웨거 지음, 김인정 옮김 / 이레미디어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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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2017년 3월 3일) 주식시장이 완전 하락세이다. 중국 정부가 사드 보복의 일환으로 우리나라로 여행하는 사람들을 제한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기사에 대부분의 주식들이 하락세이다. 특히 중국 유커들과 관련이 깊은 화장품, 식품, 면세점 등의 주식이 상대적으로 더 하락세이다.

 

주식시장은 이처럼 어렵다. 단 하나의 발표가 주식시장을 온통 뒤흔든다. 때로는 이런 하락세가 수일 동안 이어져 수많은 개인들이 회생할 수 없을 정도로 피해를 입기도 한다. 예측 불가능한 주식시장에서 수익을 창출하는 이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이들이 주식을 매수, 매도하는 기준과 시점은 어떻게 결정될까? 이들이 주식을 평가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선물 및 헤지펀드 전문가로 유명 금융 서적을 펴낸 잭 슈웨거가 펴낸 <주식시장의 마법사들>은 지속적으로 이익을 이끌어낸 전설적 주식 트레이더들 13인과의 인터뷰를 수록한 책이다. 저자는 13명의 트레이더들과의 인터뷰로 주식 마법사들의 특징을 4개로 나누어 서술한다.

 

마법사는 자신만의 길을 개척한다.

마법사는 시장을 예측하지 않는다.

마법사는 끊임없이 인내하고 시장을 리서치한다.

마법사는 늘 혁신한다.

 

13인과의 인터뷰에는 이들이 주식시장에 들어선 이유에서부터 그들이 겪은 주식시장의 어려움, 매수나 매도 시점을 결정하는 방법, 주식을 선택하는 방법 등이 구체적인 사례들과 간략하지만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들과의 인터뷰만으로 주식시장에서 승리하는 실제적인 전략을 세울 수 있지는 않다. 그보다는 주식시장을 대하는 올바른 인식 혹은 태도 등을 이해하게 된다. 각자가 얻는 교훈이 다르겠지만 내게 가장 크게 다가온 주식은 다른 사람의 말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 자신만의 전략과 리서치로 다가가야 한다는 점이다.

 

이미 알고 있는 조언이지만 다시 한 번 되새겨본다. 전설적인 주식시장의 마법사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식시장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자연스럽게 즐길 수 있는 평범한 개미가 되기 위해서다. 이것이 이 책이 내게 준 가장 큰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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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논쟁! 철학 배틀
하타케야마 소우 지음, 이와모토 다쓰로 그림, 김경원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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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라고 하면 어렵다는 인식을 벗어던지기가 쉽지 않다. 용어도 어렵고 철학자마다 주장하는 사상도 다양하고 책 분량도 만만치 않다. 어렵고 지루한 철학을 조금이나마 쉽게 접근하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걸까?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분이라면 하타케야마 소의 <대논쟁! 철학배틀>이라는 책을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배틀이라는 말이 풍기는 뉘앙스 때문에 무언가 격렬한 사상적 대립을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이 책은 전혀(?) 그렇지 않다. 사상적 대립도 있고, 격렬한 논쟁도 있지만 그 끝에 앙금이 남지 않아 대립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우리가 자주 접하는 어떤 이들의 토론과는 달리 말이다.

 

저자는 철학을 음미(사유)와 대화라고 주장한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던지는 물음이 바로 철학의 첫 걸음이고, 이를 다른 이들과의 대화를 통해 깊게 논의하는 것이 저자가 말하는 철학의 모습이다. 저자는 철학사적 문제, 현대 사회가 안고 있는 시사문제 등을 15가지로 나누어 각 토론에 어울리는 동서양의 철학가들을 소환해 대화형식으로 풀어나간다.

 

소크라테스의 진행으로 시작된 각 토론은 간략하지만 각 철학가의 핵심 사상을 파악할 수 있도록 아주 쉬운 일상의 언어로 이루어졌으며 대화의 내용에 나오는 철학 용어나 중요 사상들은 별도로 설명하여 독자 이해를 돕는다. 또한 이와모코 다쓰로의 일러스트가 곁들여져 있어서 마치 실제 방송에서 진행하는 토론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15가지 토론 주제가 서로 다른 듯 이어진 부분이 있고, 토론에 등장하는 철학가가 한정적이라 내용이 반복된다는 생각에 조금 아쉽기도 했지만 저자의 바람처럼 철학자들의 대화와 논쟁을 읽으면서 독자 스스로 생각할 여지를 주고 있어 사유의 근육을 키우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짧은 분량으로 많은 주제를 다루는 관계로 각 철학자의 사상을 깊이 있게 설명하지 않지만 철학계의 거장들이 논쟁하는 모습을 보는 즐거움이 결코 적지 않다. 이 책이 주는 가장 큰 장점이 바로 그것이 아닌가 싶다. 철학을 생각하면서 부담 없이 웃을 수 있다는 바로 그런 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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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한때 천사였다
카린 지에벨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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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린 지에벨의 소설은 화가가 붓으로 자신이 그리고자 하는 바를 하나씩 덧입혀가며 형상화하듯이 인물 한 사람, 한 사람의 심리 상태에 세밀한 색깔을 덧입혀 등장인물을 구체화시킨다는 생각이 소설을 읽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우리가 일상에서 무심코 넘기는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에 그녀의 손길이 닿으면서 흐릿했던 그들의 모습이 뚜렷하게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는 한때 천사였다>에 나오는 두 인물 역시 그렇다. 뇌종양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은 프랑수아, 마피아 가족의 해결사로 살인을 업으로 삼은 폴. 평상시 이들의 모습은 우리의 눈에 뚜렷하게 들어오지 않는다. 그저 먼 나라 혹은 딴 나라에서 그들만의 삶을 살아가는 별종들일 뿐이다.

 

전혀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았던 이 둘이 서로 만나면서 그들의 색깔이 어우러지고 또 점점 진해지면서 우리의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잘 나가는 변호사인 프랑수아가 시한부인생이라는 판정을 받지 않았다면 과연 히치하이킹을 하는 폴을 자신의 차에 태워주었을까?

 

보색 관계인 두 사람은 예정에 없던 동행의 철로를 따라가면서 점차 서로의 색깔이 섞이며 중성색을 띄게 된다. 범죄하고는 거리가 먼 듯한 프랑수아가 폴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총을 잡고 뛰어드는 장면에서도, 거칠게 사랑하는 법밖에 몰랐던 폴이 서두르지 않고 누군가를 애정으로 손길로 대하는 모습을 보면 이들이 서로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이 소설은 지에벨의 전작들과는 여러 면에서 다르다. 책 소개에서도 나오지만 스릴러 소설이지만 탐정이나 경찰이 등장하지 않는다. 오직 프랑수아와 폴이라는 두 사람의 시선이 번갈아 교차하면서 내면에 숨겨진 이야기와 사건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형식을 취한다.

 

또한 전작들과는 달리 사이코패스 혹은 소시오패스와 같은 절대 악의 상징인 인물이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사회에 만연한 하지만 서로의 이익을 위해 못 본 채 넘어가는 사회적 문제들이 툭툭 튀어나와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모든 문제의 원인이 과연 누구에게 있는지 생각해보라는 듯이.

 

두 명의 주인공이 끔찍한 범죄와 연루되고 마지막 순간에 놀랄만한 반전이 우리를 기다라는 유형의 소설은 아니다. 오히려 어떤 점에서는 스릴러 소설이라기보다는 따뜻한 감정을 찾아가는 감상적인 드라마 같은 소설로 느껴진다. 그래서 더욱 두 사람에게 몰입하기가 좋다. 죽음을 앞 둔 프랑수아의 마음도 지옥 같은 삶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치는 폴의 마음이 있는 그대로 독자에게 다가온다. 간간히 느껴지는 긴장감과 함께

 

전작들과 조금은 다른 느낌이라 생소하기도 했지만 그래서 더 깊이 몰입해서 소설 속 상황으로 빠져들며 두 사람을 응원했다. 지지 말라고, 죽음에. 사회에. 폭력에. 그 모든 걸 밟고 일어나라고. 두 사람 모두 한때 천사였고, 또한 앞으로 천사로 살아가리라 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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