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풀꽃도 꽃이다 1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6년 7월
평점 :
역시 조정래 작가다. 처음부터 독자의 시선을 완전히 사로잡는다. 그것도 간단한 문제 하나로. 조정래 작가는 '작가의 말' 끝부분에서 툭 던지듯이 독자에게 하나의 문제를 낸다. 소설의 축을 이루는 강교민이란 이름이 무슨 뜻의 줄임말인지를 맞춰보라는. 호, 이런 문제라면 바로 받아줘야지. 강교민의 무슨 뜻인지 꼭 밝히고야 말리라.
소설은 강교민을 축으로 수많은 사건들이 연결된다. 강교민의 학교에서 벌어진 석차 공개와 학교 폭력 사건, 강교민의 친구인 유현우의 아들에게 벌어진 자살 소동, 김희경(유지원 엄마)의 친구인 최미혜의 딸에게 벌어진 은따, 강교민의 이종사촌인 이소정의 학교에서 벌어진 왕따 사건 등 모든 사건들이 서로의 관계 속에서 들어난다.
작가는 이런 사건의 연속성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아마 지금 우리에게 벌어지는 모든 일들이 다른 누군가에게만 일어나는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모두에게(우리 민족 모두에게) 일어날 수 있는 지극히 일반적인 사건이라는 의미 아닐까? 그렇기에 모른 척 돌리지 말고 똑바로 눈을 뜨고 현실을 바라보라는 말이 아닐까?
1권을 읽는 내내 들었던 생각 중의 하나는 강교민의 ‘교’자에 관한 것이었다. 소설의 축을 이루는 내용 중 하나인 엄마와 자식 간의 바람직한 관계를 ‘교’자로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
‘엄마’하면 세상에서 가장 듣기 좋고, 사랑스럽고, 항상 부르고 싶은 단어이지만 소설 속 엄마는 전혀 그렇지 않다. 세상에서 가장 견디기 힘든 이름, 결코 부르고 싶지 않은 이름, 그 이름으로 인해 죽음까지 생각하게 만드는 이름. 소설 속 아이들에게 엄마라는 이름은 그런 의미였다
그렇다면 엄마들의 마음은 무엇일까? 과다 경쟁 속에서 자신들의 아이들이 뒤처지지 않기를 바라는 엄마들의 마음은 사랑을 토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다만 아이들과의 소통 없는 자신만의 사랑을 토대로 한. 내 아이이기에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엄마와 자식 간의 이런 차이는 결국 서로 간의 교감이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자식에 대한 믿음이 없는 엄마, 자식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엄마, 무겁기만 한 엄마의 사랑을 억압으로, 짐으로, 부담으로, 벗어날 수 없는 굴레로 보는 아이들. 이들에게 필요한 건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소통이다. 그런 의미에서 강교민의 교는 교감이 아닐까 싶다
반면 ‘민’은 앞서 말했듯이 우리 민족 모두에게 바라는 마음이라는 뜻에서 민족으로 보면 어떨까 싶다. 현재까지 내가 추측한 ‘교민’은 ‘교감하는 민족’의 줄임말이 아닐까 싶다. ‘강’은 아직 무슨 의미일지 감이 오지 않지만.
작가는 오늘날의 교육 현실을 거침없이 비판한다. 부모와 자식 간의 문제로만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면에 있는 진정한 원인을 낱낱이 파헤친다. 교육을 교육으로 바라보지 않는 정부와 권력자들, 그들과 공생하며 기득권을 유지하고자 하는 언론, 경쟁을 부추기는 사회적 분위기 등 저자는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의 문제를 객관적 자료와 날카로운 시선으로 그려낸다
1권을 읽다 문득 머릿속에 떠오르는 글이 있었다. 이철수 화백의 <이쁘기만 한데>이다.
논에서 잡초를 뽑는다.
이렇게 아름다운 것을
벼와 한 논에 살게 된 것을 이유로
‘잡’이라 부르기 미안하다.
아이들도 마찬가지 아닐까? 경쟁이라는 틀만 벗어던진다면 모든 아이들은 이쁘기만 한데.
2권이 기다려진다. 강교민의 의미를 맞추고 싶은 마음 때문이기도 하지만 1부의 마지막 자발적 문화식민지라는 또 다른 현실을 고발하는 작가의 이야기를 빨리 듣고 싶기 때문이다. 예전부터 문제가 되던 사대주의가 이제는 어떤 모습으로 뿌리를 내리고 있을 지. 무척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