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알레르기
고은규 지음 / 작가정신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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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규 작가의 작품들은 언제나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소설에서 다루는 문제가 결코 가볍지 않음에도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솜씨가 남달라서였을까, 무거운 느낌 속에서도 웃으면서 우리의 짐을 덜어놓을 수 있는 이야기들이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이번 작품도 그런 그의 성향이 드러나지 않을까 기대하며 읽었는데 전작들과는 무언가 다르다. 이 책에 실린 일곱 편의 이야기들은 전작들과는 달리 삶의 무거움이 그래도 전해지면서 침울한 기분이 들게 한다.

 

일곱 편의 작품들 중에서도 <차고 어두운 상자>는 제목이 주는 느낌이 그대로 전해지는 작품이다. 납치되어 차고 어두운 상자의 갇힌 주인공은 을 애타게 기다리지만 그녀를 찾아온 것 그녀를 어두움 속으로 더욱 깊이 끌어당기는 일 뿐이다.

 

이 소설이 특히 가슴에 와 닿았던 이유는 나도 그녀와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벗어나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더욱 깊이 빠져들었던 그 어둡고 어두웠던 이라는 구렁텅이. 결코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과거이다.

 

문제는 그런 구렁텅이에서 빠져 나오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아니, 그런 구렁텅이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 채 살아가는 이들이 더욱 많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나 혼자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가난의 대물림, 빚의 대물림.

 

이런 어두운 세상에는 빛이란 결코 찾아볼 수 없는 환상 속의 산물인 것일까? 모든 이들에게 골고루 빛을 비출 수 없을 만큼 세상은 어두운 곳일까?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지금도 여전히 살아가고 있는 것만 보더라도 말이다.

 

누군가는 아파하고, 누군가는 힘겨워 무너져 내리기도 하지만 그래도 어딘가에는 우리를 이끌어줄 희망의 빛은 존재하지 않을까? 그럴 거라고 굳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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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리자 바이러스
티보어 로데 지음, 박여명 옮김 / 북펌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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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는 말 그대로 광풍이었다. 소설이 가진 파급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준 작품이었다. 소설 <다빈치 코드>로만 끝난 것이 아니다. 영화로도 수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을 뿐 아니라 한 동안 다빈치 코드를 분석한 전문 서적들도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을 정도로 대단한 열풍이었다. 그런 광풍을 일으킨 댄 브라운의 뒤를 이은 작가라면 당연히 기대감이 높을 수박에 없다.

 

제목에서 바로 알 수 있듯이 이 소설 또한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소재로 한다. 그것도 모나리자와 함께 한 이야기. 인류사에서 천재라고 손꼽히는 인물들 중에서도 천재라고 손꼽히는 레오나르도의 이야기이니 이 소설 또한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 것이라는 예측은 예측이라고 하기에도 뭐하다. 당연한 반응이라고 보는 게 맞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이 소설은 단순히 재미로만 읽기에는 독자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너무 강렬하다. 저자는 아름다움이라는 누구나 선으로만 보아온 가치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를 묻고 있다. 누군가는 아름다움을 선으로 받아들이지만 누군가는 아름다움을 선이 아닌 악으로 바라본다고 하면서.

 

일견 이해가 되는 부분들이 적지 않다. 아름다움을 향한 인간의 욕망을 사실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지만 어느 순간부터 찍어낸 듯 비슷비슷한 얼굴을 가진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아름다움을 향한 욕망에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물론 오늘날에 나타난 아름다움으로 인해 생긴 문제를 조선시대를 살았던 이들에게 물어본다면 모두가 이를 악이라고 말할 것이다. 신체란 부모님이 주신 것이니까. 그렇지만 오늘날을 사는 사람들에게 아름다움을 위한 성형은 결코 악이 아니다. 당연한 본능이니까.

 

이처럼 아름다움에 대한 관점은 서로 다르다. 그렇기에 옳고 그름, 혹은 선과 악으로 딱 잘라 구분할 수 있는 그런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들은 소설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 중에서 가장 나의 생각과 비슷한 부분은 라마니 박사가 매들린을 보고 느낀 그 감정이다.

 

소녀의 눈은 끝까지 저항하고 있었다. 자존심이었다. 그랬다. 소녀는 이 모든 수치에도 자존심을 잃지 않았다. (p.288)

 

자존심과는 조금 다른 의미이기는 하지만 아름다움은 자존감에서 나오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자기 자신을 존중하는 마음이 표현되는 상태, 그 상태가 진정한 아름다움의 열매가 맺히는 순간이 아닐까?

 

가볍게 읽기 시작했던 이야기 속에 담긴 화두에 깊이 고민한 시간이었다. 아직 그 정확한 답을 찾지는 못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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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관우의 인성인문학
나채훈 지음 / 보아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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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우라고 하면 적토마를 타고 긴 수염을 휘날리며 청룡언월도를 휘두르는 모습이 먼저 떠오른다. 아마 많은 남성들의 로망이 되는 멋진 모습이 아닐까 싶다. 이처럼 관우는 무장으로써의 모습도 멋지지만 그보다 더 멋지게 다가오는 것은 관우의 품성이 아닐까 싶다.

 

관우라고 하면 의리의 대명사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유비가 덕이라는 의미지로, 장비는 걸걸하면서도 단순한 이미지라면 관우는 진정한 남자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그런 이미지가 강하다. 목숨을 버릴지라도 결코 배반하지 않는 그런 남자.

 

그런 인물이었기에 중국에서는 관우를 신으로까지 모신다고 한다. 한 사람의 장수가 신의 위치로 격상된 것은 관우가 가진 이미지가 그만큼 민초들에게 강하게 다가왔다는 것을 뜻한다. 관우의 무엇이 백성들의 마음을 파고든 것일까?

 

저자는 백성들이 관우를 신으로 모신 이유가 바로 관우의 인품 때문이라고 말한다. 선량하고 가식 없는 성품, 불의와 모략을 보면 거침없이 단칼에 배는 용기, 재물이나 명예에 흔들리지 않는 충직함. 이 정도면 누구라도 그를 우러러보지 않을 수 없지 않을까?

 

물론 관우를 보고 성품이 교만했다고 평하는 책도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 말하는 교만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관우가 교만하게 대한 이들은 일반 민초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권력욕, 명예욕, 사리사욕에 빠진 인물들 혹은 인간을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인물들 혹은 대의를 빙자해 신의를 지키지 않는 자들이었다. 이런 모습에서도 관우의 진정한 성품을 찾을 수 있다.

 

책에서 살펴본 관우의 모습을 이미 알고 있던 모습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또한 관우의 삶을 보여준 내용들도 익히 알고 있던 내용들이었다. 이미 알고 있었던 모습이지만 다시 돌아본 관우는 사람들이 신으로 간주할 만큼 높은 인격을 갖춘 인물이었다.

 

우리나라에까지 불어 닥친 관우에 대한 이미지는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관우와 같은 인물을 찾기 어렵다는 반증일 것이다. 모두가 바라는 지도자의 이미지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지금 우리에게 관우와 같은 인물은 어디에 있을까? 정말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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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마지막 그림 - 화가들이 남긴 최후의 걸작으로 읽는 명화 인문학
나카노 교코 지음, 이지수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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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그리는 화가는 분명 자신의 생각을 그 속에 온전히 담아내길 원할 것이다. 또한 그가 속한 세상, 그가 살아온 시대의 모습도 담기를 원할 것이다. 그렇다면 화가가 남긴 최후의 작품은 그의 모든 것을 집대성한 작품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이 책은 화가들이 남긴 최후의 걸작으로 읽는 명화 인문학이라는 부제처럼 화가들이 삶의 마지막 순간에 남긴 작품들을 통해 그들이 세상에 말하고자 했던 것이 무엇인지, 그 그림을 그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무엇인지를 알려주고자 한다.

 

마지막 작품이라는 말에 담긴 의미는 앞선 모든 시간들 속에 쌓여있던 삶, 지식, 생각 등이 온통 어우러져 나온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마지막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화가가 살아온 삶과 그의 생각 등을 전반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렇지만 마지막 작품은 전성기의 작품과는 다를지도 모른다. 생각이 바뀌었을 수도 있고, 그림을 그리는 방식이 달라졌을 수도 있고, 삶의 전환점을 맞이해 심경이 변하면서 변화가 생긴 걸지도 모른다. 그런 변화를 살펴보는 것도 나름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저자는 화가와 신, 화가와 왕, 화가와 민중으로 나누어 모두 15명의 화가의 작품들에 대해 설명하는데 화가의 삶과 작품들을 세세히 설명한 후 각 화가의 마지막 작품을 보여주면서 그림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부분들을 간략한 설명을 곁들여 독자의 이해력을 높여준다.

 

누군가를 이해하는 일은 쉽지 않다. 작품으로 이해하는 일은 더욱 어렵다. 그렇기에 얼마 안 되는 분량으로 한 사람의 생애와 작품관을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화가의 작품은 우리에게 여전히 들려주고 있다. 화가가 어떤 생각의 변화를 겪었는지, 그 시대의 요청이 무엇이었는지 한 번 들어보라고. 그리고 자신을 이해해보라고.

 

그림이란 화가의 삶의 방식 그 자체라는 저자의 말이 무엇인지 조금이나마 깨달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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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도우 - 비밀을 삼킨 여인
피오나 바턴 지음, 김지원 옮김 / 레드박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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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에서 놀던 아이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범인을 추적하던 경찰이 드디어 용의자를 찾지만 그의 범죄사실을 객관적으로 증명할 증거가 없다. 게다가 그의 범죄를 입증할 수 있는 그의 아내는 결코 경찰에 협조적이지 않다.

 

범죄 용의자와 그의 아내는 분명 일반적인 관계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남편의 억압 속에서 살아가는 듯한 그녀. 그의 억압에 눌려서일까? 그녀는 남편의 조종에 따라 움직이는 꼭두각시처럼 보인다. 그녀 자신의 생각은 결코 드러내지 않는.

 

그런데 용의자인 남편이 죽었다. 경찰도, 언론도 이제 홀로 남겨진 그녀를 주목한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할지. 남편의 범죄 사실을 입증할만한 증언을 할지, 그렇지 않으면 여전히 남편의 그림자 속에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을지.

 

소설은 용의자의 부인, 그녀를 취재하는 기자, 사건 담당 형사, 유괴된 아이의 엄마의 시선을 따라가며 과연 사건의 진실이 무엇인지를 하나씩 파헤쳐나간다. 용의자 가정의 상황이 조금씩 드러나면서 범죄 사실에 대한 확신이 점점 커지지만 이를 증명할 방법은 여전히 찾을 수 없다.

 

이 소설은 사건을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각 인물들의 심리묘사가 탁월한 작품이다. 특히 남편의 사랑과 억압, 아이에 대한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용의자 부인에 대한 묘사가 남다르다. 그녀의 모습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아줌마이기에 그녀의 심리상태에 깊이 공감하게 된다.

 

심리묘사에 더해 과연 남편이 범인인가에 대한 추측과 유괴된 아이의 생존여부도 마지막 순간까지 선뜻 결론내릴 수 없다. 뿐만 아니다. 사건을 쫓는 형사와 특종을 위한 기자의 행동도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게 좋은 의미인지 나쁜 의미인지는 차치하고서라도.

 

엄청난 반전이 있는 소설은 아니지만 다 읽을 때까지 손을 놓을 수 없을 정도로 매력적인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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