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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바퀴 아래서 ㅣ 코너스톤 세계문학 컬렉션 3
헤르만 헤세 지음, 박지희 옮김, 김선형 해설 / 코너스톤 / 2016년 6월
평점 :
품절
<수레바퀴 아래서>를 처음으로 읽었던 때는 아마 초등학교 3-4학년 정도였던 것 같다. 이 책이 기억에 남았던 이유는 아동용 문학책으로 읽지 않고 어른들이 읽는 소설로 읽었기 때문이다. 열 몇 살짜리 아이가 어른들을 위한 소설을 읽었으니 얼마나 지루했겠는가. 그때까지 읽은 책 중에서 가장 지루한 책으로 기억할 수밖에 없었다.
지루하다는 잘못된 첫 느낌 때문이었을까, 그 이후로 <수레바퀴 아래서>를 두 번 다시 읽지 않았다. 그러다 이번에 다시 읽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이유는 순전히 코너 스톤에서 출간하는 코너스톤 세계문학 컬렉션이 이전 작품들부터 내 마음에 쏙 들었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이 책을 포함해 3권 밖에 출간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코너스톤 컬렉션을 좋아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3권의 작품들을 번역한 솜씨가 매우 깔끔해서 읽는 데 부자연스러운 느낌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한 때 번역 일을 한 사람으로, 또한 한 명의 독자로서 어색한 표현의 번역이 얼마나 짜증스러운지 모른다. 그런 점에서 코너스톤 세계문학 컬렉션은, 내 기준으로 판단했을 때, 최고의 번역 작품들이다.
여하튼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 읽은 <수레바퀴 아래서>는 여러 가지 생각에 빠지게 만들었다. 이 책을 읽는 대부분처럼 교육의 문제, 기성세대의 권위주의에 관한 문제, 청소년 시기의 사랑, 우정, 성 등에 관한 문제 등 이 책에는 여러 가지 화두가 담겨있다.
교육에 관한 문제는 예나 지금이나, 동양이나 서양이나 별반 차이가 없는가 보다. 물론 우리나라만큼 교육 문제가 그렇게 심각한 나라는 많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교육이 문제를 일으키기 위한 과정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문제의 원흉이 되어가는 이유는 뭘까? 이 소설에서도 언뜻 내비치듯이, 얼마 전에 읽은 책의 저자는 신자유주의 사상에 의한 경쟁력 구도가 결국 교육이 곪아가는 가장 큰 이유라고 주장하였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기성세대의 권위주의에 관한 문제도 깊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권위적이라는 말에 담긴 부정적인 이미지처럼 소설 속 인물들의 모습에서 기성세대의 억압적이고 강압적인 모습이 결코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없다는 사실은 너무나 당연하다. 하지만 권위라는 말이 사라져가는 오늘날의 현실에서는 어떨까? 어른의 권위가 사라지고, 스승의 권위가 사라지고, 부모의 권위가 사라진 오늘날에는 또 다른 권위의 문제가 생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헤세의 자전적 소설 <수레바퀴 아래서>는 청소년의 성장 소설이기도 하지만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어른들의 위한 소설이기도 하다. 청소년들을 어떻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지 고민하게 하는 그런 소설이다. 그들은 결국 우리의 미래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