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영 - 앤드류 머레이의 성령론 세계기독교고전 30
앤드류 머레이 지음, 강연준 옮김 / CH북스(크리스천다이제스트)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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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 모태신앙인 내게 삼위일체 하나님은 너무나 친근하고 가까운 분이시다. 삼위일체가 무엇인지는 인간의 지식이나 지혜로 감히 판단할 수 없는 부분이기에 명확하게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 한 분이심은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다.

 

삼위일체의 하나님에 대한 인식은 분명하지만 각 하나님에 대해 말하자면 상황이 조금 달라진다.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에 대해서는 신약성경, 설교, 신앙서적 등을 통해 자주 접해서 너무나 친숙하다. 성부 하나님도 역시 그렇다. 신구약 성경, 설교 등을 통해 성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어느 정도이지만 알게 된다.

 

성령 하나님에 이르면 상황이 달라진다. 분명 성령 하나님이 삼위 하나님의 한 분이심을 알지만 구체적으로 성령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는 제대로 알지 못한다. 그저 내 안에 계시면서 예수님의 말씀과 삶을 깨우쳐주시고 우리가 말해야 할 바와 기도해야 할 바를 알려주시는 분 정도로만 알고 있을 뿐이다.

 

성령 하나님은 어떤 분이실까? 앞서 설명한 정도면 성령 하나님에 대해 우리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을 알게 된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우리는 성령 충만을 말하지만 성령 하나님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모른다. 성령 하나님을 오해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렇기에 앤드류 머레이의 <그리스도의 영>을 읽어야 한다.

 

이 책은 앤드류 머레이의 성령론이라는 부제처럼 성령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우리에게 확실하게 알려준다. 31장에 걸쳐 예수님이 부활승천하신 후 이 땅의 성도들에게 임한 성령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고,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하시는지를 성경 각 구절을 인용해 설명한다.

 

처음부터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성령세례는 단순히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하고, 거듭나게 하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고자 노력하게 하는 은총이 아니다. 성령세례는 그 이상이다. 바로 예수님께서 하늘에서 다시 오셔서 우리의 마음속에 거하는 임재이며 예수님의 새 생명의 능력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 뿐 아니다.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와 관련해서도 성령의 역사하심을 분명하게 배웠다. 예배는 인간적인 노력이나 생각으로 드리는 것이 아니다. 예배는 말씀 그대로 영과 진리로 드려야 한다. 예배는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이 우리 속에서 사역하심으로써 이루어지는 영적인 것이다.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었는지? 예배를 나의 힘으로, 나의 노력으로, 나의 생각으로만 드리고 있었던 내 모습을 보면서 회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영과 진리로 예배드려야 한다고 생각만 할뿐 막상 나는 오로지 내 생각과 뜻으로 예배를 드렸던 것이다.

 

이만큼 우리는 성령에 대해 무지하다. 다른 말로 하자면 성령이 역사하실 수 있는 토양을 만들지 못했다는 뜻이다. 성령이 역사하실 수 있는 토양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말씀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우리는 끝없이 말씀을 묵상함으로써 성령 하나님이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를 이끄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 책은 그리스도인의 삶 속에서 역사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임재를 확실하게 경험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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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언제나 바보 늙은이였던 건 아니야
알렉상드르 페라가 지음, 이안 옮김 / 열림원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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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적 상황 때문일까? 요즘 소설의 소재로 많이 사용되는 내용 중 하나가 노년층에 대한 것이다. 특히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은 영화로도 만들어져 소설과 영화를 비교하면서 상당히 재미있게 보았다.

 

이 책의 주인공도 역시 노인이다. 요양원에 오게 된 파네크 레옹이라는 인물이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또 다른 관계를 맺어가는 모습과 이전에 그가 삶아온 모습들을 번갈아 보여주면서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어느덧 40대를 넘기다보니 이런 생각을 자주 한다. ‘자네는 누구인가, 레옹?’이라는 잭의 질문은 어쩌면 책을 읽는 모든 독자에게 던지는 저자의 화두일지도 모르겠다. 과연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나는 누구일까, 이렇게 나이 들어가는 나는 누구일까?

 

살아온 시간만큼 수많은 내가 있었다. 그리고 그런 수많은 내가 결국은 지금 이 순간의 나를 만든 것이다. 그런 내 모습을 돌아보기 시작할 때가 바로 나이가 들어가는 순간이 아닌가 싶다. 어렸을 때, 젊었을 때에는 그저 앞만 보고 나아갔다. 무언가 저 끝에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나를 돌아볼 시간이 없었다.

 

그런 내게 이 소설은 지금 자신을 돌아보라고 한다. 과거의 자신이 만들어낸 지금 이 순간의 자신을. 그리고 앞으로 만들어진 미래의 나 자신을.

 

나도 한 때는 바보도 아니었고, 노인도 아니었다. 한 때는 누구보다 총명했고, 누구보다 젊음이 넘치던 때가 있었다. 그렇지만 그 누구도 시간을 비껴가지는 못한다. 그 시간들 속에서 나를 알고,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알아가는 것, 그것이 가장 현명한 삶의 방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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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사회 - 현대사회의 감정에 관한 철학에세이
정지우 지음 / 이경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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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뉴스를 보다보면 심심치 않게 듣게 되는 사건 중 바로 보복 운전에 대한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한국의 수많은 운전자들이 보복 운전이라는 형태의 범죄를 저지르기 시작했다. 자신이 하는 운전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끝없이 경적을 울리거나, 계속해서 브레이크를 밟으며 상대방이 가려는 경로를 가로막거나, 상대방의 차량 앞으로 갑작스럽게 끼어들거나 하면서 상대를 위협한다. 심지어 차에서 내려 물리적인 공격을 가하는 이들도 있다.

 

이들을 보면 오늘날의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에 얼마나 많은 분노가 도사리고 있는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백의민족,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 정이 많은 민족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솟구쳐 오르는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고 범죄를 저지르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다. 이런 현상은 한 두 개의 신문 기사만 훑어보아도 바로 확인할 수 있다.

 

도대체 이런 일이 왜 일어나는 걸까? 저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자아상이 올바로 확립되지 않은 사람들이 자신들만의 관념을 가지고 바라본 사회가 자신들의 기대와는 다르기 때문에 분노를 제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라고.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이런 말이다. 떵떵거리며 잘 살고 싶은 게 모든 이들의 바람이지만 현실에서 정말로 떵떵거리며 잘 사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처럼 현실과 이상에 괴리감이 생긴 이들에게 생기는 관념적 정서가 바로 분노라고.

 

저자는 나르시시즘, 집단 이기주의 등을 예로 들며 분노로 물들어버린 대한민국의 오늘을 분석한다. 주변을 둘러보면 저자가 말하는 유형의 사람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자신의 생각에 빠져 다른 이들의 생각이나 원칙을 전혀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 지역주의, 학벌주의, 좌파, 우파와 같은 집단 이기주의에 빠진 이들은 조금만 자신의 생각과 달라도 쉽사리 분노하고, 때로는 분노가 지나쳐 상대방을 증오하기도 한다.

 

이처럼 분노로 물든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까? 저자의 해법은 어찌 보면 매우 근본적이면서 정말로 간단하다. 사회의 기본이 되는 각 개인이 올바른 자의식을 갖추면 된다. 저자의 표현대로 하자면 자신만을 바라보는 나르시시즘과 정반대로 제3의 시선인 미의식으로 자신을 객관적인 지평에서 끊임없이 바라보아야 한다. 이런 미의식을 가진 개인들이 늘어나면 사회는 조금씩, 조금씩 변하게 된다. 그런 변화 속에서 이 땅에 만연한 분노는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될 것이다.

 

간단하지만 참 어려운 일이다. 자신을 먼저 돌아보고 스스로의 잘못을 바꾸려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저자의 말처럼 사회를 만들어내는 개인이 변하지 않으면 결코 아무런 변화도 이뤄낼 수 없다. 사회의 근본이 바로 각각의 개인들이니까 말이다.

 

바로 나부터 시작해야겠다. 이 땅에 정말로 필요한 새로운 변화를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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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위해 산다
더글러스 프레스턴.링컨 차일드 지음, 신선해 옮김 / 문학수첩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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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위해 산다. 굉장히 역설적인 표현이다. 무슨 말인지 무척 궁금했다. 과연 죽기 위해 산다는 주인공은 어떤 인물인지, 그를 둘러싼 사건들은 어떤 것인지, 그는 왜 죽기 위해서 살아야만 하는지 등등. 모든 것들이 궁금했다.

 

기드온 크루의 아버지와 관련된 소설 초반부를 보면서 무언가 어설프다는 느낌이 먼저 들었다. 어느 날 자신의 눈앞에서 인질극을 벌이다 총살을 당한 아버지. 그 깊은 내막을 알지 못한 채 지내다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 아버지의 죽음에 얽힌 진실을 듣는 기드온 크루.

 

아버지의 복수를 부탁하는 어머니의 유언대로 아버지를 파멸로 이끈 샘블리 터커 중장에게 복수하기 위해 서서히 터커 주변을 탐색하며 방법을 구사하는 기드온 크루의 모습은 현실적인 모습과는 조금 동떨어졌다는 느낌을 버릴 수 없었다.

 

물론 기드온 크루가 살아온 삶의 여정을 보여주지 않은 채 바로 아버지의 복수를 하기에 그가 보여주는 다양한 능력이 가능하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선뜻 마음에 와 닿지는 않는다. 간단한 목소리 흉내로 상대방을 속여 넘기는 모습도, 터커가 보낸 다이코빅과의 관계도. 게다가 성공리에 아버지의 복수를 끝낸 후 얼렁뚱땅 맡게 된 임무. 조금은 억지스럽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소설이 조금씩 진행되면서 나름의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빠른 전개나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기드온이 첩보원으로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 현실에서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전도체라는 소재, 인간살인 병기라는 노딩 크레인과의 숙명적인 대결 등등.

 

첩보물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기에 기대했던 것과는 조금 달랐지만 무더운 더위에 지쳐가는 그 때, 시원한 음료수 한 잔과 함께 읽으며 상쾌, 통쾌, 유쾌한 기분을 충분히 느낄 수 있을만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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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를 본받는 교회 - 데살로니가전.후서 강해집
이영훈 지음 / 교회성장연구소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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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마음 닮아서 이웃을 사랑하는 교회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빛 되신 주님 전하는 교회

사랑의 불꽃이 활짝 피어나 날마다 사랑에 빠지는 교회

주께서 사랑하는 우리 교회가 이런 교회 되게 하소서

 

교회의 참 모습을 들려주는 이 CCM을 자주 부른다. 진정으로 우리 교회가 이 CCM 가사처럼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면서 말이다.

 

성경에는 우리가 본받아야 할 교회가 나온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데살로니가 교회이다.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낸 서신을 보면 이를 알 수 있다. 바울은 서두에서 데살로니가 교회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들의 아름다운 신앙의 모습을 늘 기억한다고 말한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말 그대로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열매가 풍성한 교회였다. 그들은 입술로만 사랑을 외치는 교회가 아니었다. 주님이 말씀하신 그대로 행함과 진실함으로 믿음을, 소망을, 사랑을 드려낸 교회였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은 어떤가? 데살로니가 교회처럼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열매를 맺는 교회들도 적지 않지만 그렇지 못한 교회들도 자주 만나게 된다. 사랑을 말하면서 뒤로는 다툼과 분노를 품고 있고, 믿음을 말하면서 결코 성경대로 행하지 않는다. 소망을 들먹이지만 하늘의 소망이 아니라 현실의 소망만을 간절히 바란다.

 

주님은 그런 교회의 모습을 보시면서 어떤 생각을 하실까? 그 분이 보여주신 모든 것을 따르지 않는 교회들의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아파하실까?

 

이영훈 목사님의 데살로니가 전후서 강해집인 <그리스도를 본받는 교회>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었던 데살로니가 교회의 모습 속에서 오늘날의 교회가 나아가야 할 모습을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한 구절 한 구절을 설명하시는 내용이 어렵지 않아 일반 성도들이 읽고 이해하는 데에 아무런 어려움이 없다.

 

눈을 감고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삶을 그려본다. 그들의 선한 모습이 눈에 아른거린다. 그들 속에 같이 계시는 주님의 모습도 떠오르고. 그들처럼 지금 우리 교회에도, 내 곁에도 주님이 함께 하시며 우리를 이끌어주시길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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