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혀 있는 한국 현대사 - 조선인 가미카제에서 김형욱 실종 사건까지, 기록과 증언으로 읽는 대한민국사
정운현 지음 / 인문서원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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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년의 삶을 살다보니 옛일이 이제는 가물거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생각이나 삶을 바꿀 정도가 아니라면 한 자락의 기억조차 남기지 못한 사건들도 적지 않다. 개인적인 삶에서도 그럴진대 한 나라의 역사에서 묻혀버린 이야기들은 얼마나 될까?

 

누군가의 의도에 의해서 고의로 묻힌 역사도 있을 것이다. 혹은 일방의 의견만이 반영된 잘못된 역사가 있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우리가 알지 못한 채 묻혀 버린 역사들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이 책의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바로 우리가 알지 못했던, 묻혀 있던 한국의 현대사에 관한 것들이다.

 

저자가 새롭게 드러낸 19개의 역사는 너무나 놀라웠다. 정말 이런 일이 있었는지 인터넷을 검색해서 찾아볼 정도였다. 물론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들도 있지만 이번에 처음으로 들은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이 든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한 번도 듣지 못했던 걸까? 도대체 우리가 알아야 할 이런 역사가 묻혀 있던 이유가 무엇일까? 과연 우리의 후손들은 올바른 역사를 배울 수 있을까? 아니, 우리나라에 제대로 된 현대 역사가 남겨지기는 할까?

 

인터넷으로 모든 것이 기록되는 세상이기에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이 시대의 이야기는 어떻게든 자료로 남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의 말처럼 어떤 역사들은 세상에 제대로 드러나지도 못한 채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저자의 바람처럼 후대에 사실을 기록하여 전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깨끗한 이미지로 우리 모두가 존경하는 유한양행의 숨겨진 모습, 우리 문화와 역사를 살려낸 일본인 민예학자, 을사오적보다 더 먼저 친일 행적을 보인 친일파 1호 김인승. 이 모든 이야기들이 우리 역사에서 오랫동안 묻혀 있었다. 이런 역사가 영원히 묻혀 있었다면 어땠을까? 누가 아군이고 누가 적군인지도 모른 채 싸워야 하는 그런 혼돈의 전쟁이 생기지 않았을까?

 

역사는 과거의 이야기이지만 미래를 세우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렇기에 역사는 있는 그대로 후대에 전달되어야 한다. 그것이 지금을 사는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 할 책임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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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
휴버트 셀비 주니어 지음, 황소연 옮김 / 자음과모음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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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기억해보면 1990년에 개봉한 <브루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라는 영화는 사람에 따라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린 영화였다. 누군가는 1950년대의 시대상을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한 뛰어난 작품이라는 평을 남겼고, 누군가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이야기들로 이루어진 혐오스러운 영화라고 평했다. 모든 이들이 공통으로 좋아한 부분은 영화의 주제곡 정도였다.

 

이 영화와 관련해서 지금 내가 떠올릴 수 있는 부분은 여주인공의 연기가 정말 탁월했다는 것, 마지막 장면에서 울컥할 수밖에 없었던 것,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모습이 이렇게 다를 수 있는가라는 궁금증 정도였다.

 

20년도 훌쩍 넘긴 세월이 흐른 후 원작으로 이 작품을 보니 또 다시 새롭다. 영화와는 다른 원작이 주는 색다른 재미랄까. 물론 처음 책을 펼치고 읽기 시작했을 때는 상당히 힘들었다. 내용이야 이미 어느 정도 아는 부분이라 그렇다하더라도 오늘날의 작품들과는 달리 주인공들의 대화를 별도로 처리하지 않고 계속 이어나가다보니 가끔씩 누가 얘기하는 것인지 순간적으로 판단하지 못할 때도 있었다. 그만큼 읽는 게 쉽지는 않았다. 이 또한 책이 주는 색다른 매력이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이 작품이 주는 아픔은 여전하다. 영화를 보고도 울컥했지만 이 책을 보면서도 역시나 울컥했다. 우리 사회의 한 부분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이 아프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 때로는 받아들이기 힘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작품은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무대로 펼쳐진 이야기는 아니다. 이 작품의 배경은 1950년대 미국 브루클린이다. 누군가 시대적으로, 지리적으로 다르기에 우리 사회와 완전히 다르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왜 그렇게 느껴지지 않을까. 왜 그 시대의 모습에 우리 사회의 모습이 겹쳐지는 것일까?

 

약물, 동성애, 폭력, 파업.... 이런 단어들이 풍기는 모든 이미지가 이 작품 속에 담겨있다. 비열하고, 더럽고, 잔인한, 그러면서도 애잔한 그런 분위기 말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굴레에서 벗어나려고, 벗어나려고 애쓰며 찾은 마지막 탈출구가 브루클린이었던 그들의 삶이 너무나 안타깝다. 결코 내 삶이 그들과 다르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어쩌면 나도, 우리도 그들처럼 그 어딘가에서 벗어나고자 애쓰지만 결국은 브루클린으로 들어가고 있는지도 모르기에 말이다.

 

지금도 어느 곳에선가 비니, 해리, 토니, 조제트, 트랄랄라의 삶과 같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이들이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그들은 또 어디로 향한 탈출구를 찾아 나아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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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주기철 목사 생애 - 진달래 필 때 가버린 사람
김충남 지음 / 은혜출판사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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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장을 펼치면서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이신 김충남 목사님이 첫 페이지에서 언급한 명신익 목사님 때문이다. 그 분은 현재 내가 다니는 교회를 개척한 초대 목사님이시다. 명신익 목사님과 주기철 목사님의 관계를 전혀 알지 못했던 내게 이 책의 첫머리에 실린 두 분의 관계와 그 분께서 이 책의 집필을 이끄셨다는 이야기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두 분의 관계 때문이었을까? 주기철 목사님이 조금 더 가까운 느낌으로 다가왔던 이유가.

 

일사각오의 신앙을 몸소 보이신 주기철 목사님의 생애는 어렸을 때부터 남달랐다. 저자는 시기별로 주기철 목사님의 삶을 보여주는데, 특히 내 눈을 사로잡은 목사님의 행보는 조국의 독립을 위한 민족주의자로서 살아갈지 아니면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위해 살아가는 주님의 종이 될지 선택하는 장면이었다.

 

어쩌면 그 당시의 모든 이들이 무엇보다 조국의 광복을 원하였을지 모른다. 그렇기에 믿는 자들도 하나님의 나라보다 조국의 광복을 우선시하였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주기철 목사님은 그러지 않으셨다. 그 어떠한 인간적인 바람보다 먼저 앞세우신 것이 하나님 나라의 일이셨다.

 

주기철 목사님의 모습을 보며 하나님 나라의 일보다 내 자신의 일을 우선시하는 모습을 깊이 반성하고 회개하였다. 눈앞에 보이는 일이 우선이 아니다.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나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는 것도, 나라를 위한 것도 아니다. 오로지 하나님 나라가 우선시되어야 한다.

 

주기철 목사님의 삶도 대단하지만 그 옆에서 목사님을 보필하신 안갑수 사모님과 오정모 사모님의 헌신 또한 대단하다. 나라면 어땠을까? 자신 없다. 머릿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현실에서는 아마 그러지 못할 것 같다.

 

그렇다면 주기철 목사님과 사모님들이 보이신 흔들림 없는 신앙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하나님이 주신 은혜이다. 또한 끝없는 기도와 말씀 묵상의 결과이다. 다른 게 없다. 오로지 기도와 말씀이다. 이렇게 쉬운 방법이 있지만 목사님처럼 기도와 말씀으로 생활하는 일은 어렵다. 정말 어렵다.

 

일사각오의 신앙을 이어갈 수 있을까? 어려울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주기철 목사님이 알려주신 방법이 있다. 기도와 말씀. 다른 방법은 없다. 오로지 기도와 말씀으로 성령 하나님이 내 안에 함께 하시면 일사각오의 신앙이 그렇게 어려운 일만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기쁨의 신앙으로 너무나 쉽게 이루어질 것이다.

 

목사님이 하신 설교 말씀으로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나에게는 오로지 일사각오가 있을 뿐입니다.

여러분! 예수는 살아 계십니다. 부디 예수로 죽고 예수로 살으십시다.

                                                                  - 19392월 첫째 주일 평양 산정현교회

                                                                     목사님의 마지막 설교 <나의 5종목의 기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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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어 수강일지
우마루내 지음 / 나무옆의자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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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업무 때문에 터키에 간 적이 있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특히 친절했다. 알고 보니 6.25 전쟁 때 파병한 나라가 터키로 그곳 사람들은 우리를 형제의 나라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후 이런 사실들이 알려지면서 우리도 터키를 형제의 나라라고 부르고 있다.

 

형제의 나라라고는 하지만 터키어와 우리나라 말이 엄연히 다르다보니 의사소통하는 일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았다. 이 책의 제목이 <터키어 수강일지>인 것도 그런 의미가 아닐까 싶다. 자신을 나타내는 수많은 표현들이 있지만 상대방이 이 표현들을 이해하는 일이 그렇게 간단한 일만은 아니라는 것, 또한 표현하고 싶지만 실제로 표현할 수 없는 상황이 있을 수 있다는 것, 작가는 이런 얘기가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싶다.

 

소설은 처음부터 생뚱맞게 다가온다. 존나 카와이라는 어찌 보면 조금은 비밀 클럽 같기도 한 그런 모임에 대한 설명과 낚시가게 주인아저씨의 엉덩이를 보고 마음이 흔들린 열다섯 살 소녀의 이야기, 거기에 존나 카와이에서 끝없이 게시물을 올리지만 대부분의 멤버에게서 외면을 당하는 한스 요아힘 마르세유의 이야기까지.

 

조금은 어지럽다. 처음에는 작가가 무슨 이야기를 펼치려고 하는지도 뚜렷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그저 무언가 소통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는 막연한 느낌만이 있을 뿐이었다. 자신들만의 세계를 가진 십대들이 자신을 찾아가는 성장 소설이라고 보아야 할까? 아니면 소통의 부재를 말하는 사회 소설로 보아야 할까?

 

어떤 의미이든지 간에 처음에 느낀 불편함이 소설을 읽으면서 조금씩 사라진다. 이해하기 어려운 모습들에 여전히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했지만 그 또한 그들 나름의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본다면 이해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니까.

 

교회에서 중고등부 교사로 활동하다보니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가 많다. 지금의 아이들은 분명 내가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와는 전혀 다르다. 모든 표현에 ~~’를 붙이는 그들의 언어 습관도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하지만 이 또한 그들이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의 하나일지도 모른다. 또 다른 아이들이 영상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춤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노래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듯이 말이다.

 

젊은 신인작가의 소설이라 색다르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앞으로 작가가 어떤 작품을 선보일지 상당히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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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혼 살인 아르테 누아르
카밀라 그레베 지음, 서효령 옮김 / arte(아르테)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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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인가부터 북유럽 출신 작가들의 작품을 접하게 되었다. 작년에 우리나라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오베라는 남자>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등 사회를 풍자한 소설에서부터 스티그 라르손, 요 네스베 등이 쓴 스릴러 소설에 이르기까지 장르도 상당히 다양하다.

 

북유럽 소설을 읽다보면 우리네 정서 혹은 사회적 분위기하고는 조금 다른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하지만 거친 듯하면서도 섬세한 이야기의 흐름에 한없이 빠져 들어간다. 이 책도 그런 점에서 북유럽 스릴러 소설의 장점을 극대화하고 있다.

 

이 소설의 특징은 다른 여타의 스릴러 소설과는 다르게 피해자가 뚜렷하게 제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피해자가 뚜렷하지 않다보니 독자가 사건의 전반적인 내용을 추론하는 일이 쉽지 않다. 이 책의 작가 카밀라 그레베는 피해자와 가해자를 추리해가는 과정보다는 등장인물들의 심리 묘사에 치중해서 글을 풀어나간다.

 

작가는 엠마, 한네, 페테르의 시선을 통해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사건을 설명한다. 그런데 이들의 모습이 참으로 묘하다. 이들은 정상적인 사고나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아닌 것 같다. 물론 각자 나름의 이유는 있겠지만 평상시 스릴러 소설에서 보는 인물들과는 조금 다르다 보니 아무래도 낯선 느낌에 당황스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인물 면에서 색다른 느낌을 받은 것은 좋았지만 어느 정도 읽으면 사건의 윤곽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조금은 아쉬웠다. 물론 나름의 반전이 있지만 이미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던 터라 조금은 김빠진 느낌이 든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소설 전반에 걸쳐 드러내는 사람들의 관계와 음울하고 무거운 분위기가 나름 색다르고 신선했다. 또 다른 스릴러의 유형을 만난 기분이랄까, 평상시 좋아하는 유형은 아니지만 별미를 만난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녀가 여동생과 함께 집필했다는 범죄 소설들은 또 어떤 분위기일까? 상당히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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