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철학자의 살아 있는 위로
최훈 외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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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를 괴롭히는 고민이 전혀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 혹은 그녀는 정말로 행복한 사람일까? 글쎄다. 아마 정말로 행복한 사람일 수도 있겠지만 정말로 불행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답을 찾을 수 없어 삶을 포기한 경우를 생각한다면.

 

평범한 사람들은 누구나 한두 가지 정도의 고민을 안고 산다. 보통의 사람들은 고민의 무게가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정도를 넘어서면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한다. 대부분은 가족이나 친구에게 말이다. 주변 사람들의 조언이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그저 그런 위로로 끝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 때 내게 진정으로 필요한 조언을 할 만한 사람이 없을까?

 

이 책에서는 우리가 안고 있는 수많은 고민들의 답을 위대한 철학자들을 통해서 해결한다. 철학자가 들려주는 해결책이라서 무척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정말 옆집 아저씨가 이야기하듯이 아주 쉬운 말로,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보통의 언어로 우리의 고민을 해결한다.

 

처음에는 23가지의 사례 모두가 나와 관련이 있는 내용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고부 갈등과 같은 문제나 성형수술과 같은 고민은 나와는 관계가 없는 사례라는 생각이 강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나와는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지만 안사람이나 딸아이와 관련이 있을 수 있는 문제였다. 그렇기에 이 책에 나온 모든 사례는 직, 간접적으로 우리 모두와 관련이 있는 고민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각각의 사례는 먼저 사례자의 고민을 들려준 후 이에 대한 동·서양 철학자의 답장을 통해 각 고민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다. 그 후 사례와 관련 있는 철학자의 기본 사상과 철학자에 대한 간략한 설명으로 마무리한다.

 

책의 의도 자체가 일상에서 느끼는 평범한 이들의 고민을 해결하는 것이기에 철학적인 내용이 그렇게 많이 담겨있지는 않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깊은 철학적 사유를 바라는 독자에게는 적절하지 않은 책이다. 깊은 성찰보다는 간단한 사례를 통해 철학 혹은 특정 철학자의 사상을 간단하게 맛보고 싶은 독자에게 도움이 될 만한 입문서로 읽는다면 예상외로 좋은 공부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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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 처음 읽는 허버트 스펜서의 '교육론'
허버트 스펜서 지음, 유지훈 옮김 / 유아이북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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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버트 스펜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그의 이름이 눈길을 끈 이유는 다윈보다 앞서서 적자생존론을 펼친 인물로 다윈이 자신보다 몇 배나 뛰어난 위대한 학자라고 말했다는 소개 문구 때문이었다. 궁금함에 인터넷을 통해 어떤 사람인지 찾아보았다.

 

그는 영국의 철학자로 장장 36년에 걸쳐 쓴 종합철학체계로 유명한 인물이다. 성운(星雲)의 생성에서부터 인간사회의 도덕원리 전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둔 그는 모든 것을 진화의 원리에 따라 설명하였다. 그의 사상이나 철학을 알지 못하지만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그의 업적만으로도 대단한 인물임에는 틀림없다.

 

그런 그가 교육에 관해 쓴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는 평소 교육에 관심이 많은 내게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진화의 입장, 적자생존 등의 이론을 바탕으로 교육을 말한다면 자칫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인이 가졌던 민족 우월주의 사상과 비슷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고, 150여 년 전에 제시한 교육 이론이 과연 오늘날의 교육에 적용할만할지에 대한 궁금증도 생겼다.

 

‘Chapter 1. 가장 중요한 지식은 무엇인가에서 실제 생활에서 이루어지는 주 활동의 비중에 따라 지식의 우선순위를 정한 후 2-4장에서 지, , 체와 관련해 어떻게 교육이 이루어져야 하는지를 설명한다.

 

저자가 말하는 다양한 이야기 중에서 가장 먼저 가슴에 다가온 이야기는 오늘날의 상황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주입식 교육의 병폐에 관한 내용이었다. 특히, 이 문구는 모든 교육자들이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야 할 내용이 아닌가 싶다.

 

정의, 원칙, 원리가 밝혀야 할 대상이 아니라, 교육해야 할 대상이 된 것이다. (p.48)

 

저자의 말처럼 정의, 원칙, 원리를 교육의 대상으로 바라보면서 아무런 고민 없이 이를 받아들이는 것이 교육 현실이 되었다. 스스로 판단하고 생각한 것이 아니기에 어느 순간 이 모든 정의, 원칙, 원리는 머릿속에서 사라진다. 그런 아이들이 어떤 사회생활을 하게 될까?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 , 체와 관련된 저자의 사상도 오늘날의 우리가 심사숙고해야 할 내용들이다. 과학의 중요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듯한 저자의 생각이 너무 한쪽으로 쏠렸다는 인상을 받기도 하지만 지, , 체로 요약한 저자의 교육 철학은 모든 교육의 토대를 이루는 사상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교육에 정답은 없을지도 모른다. 각각의 아이마다 필요한 교육이 다 다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교육에서 정답을 찾는 일은 쉽지 않다. 그렇지만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일이다. 교육에 담긴 의미는 그 어떤 것보다 더 크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허버트 스펜서의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는 교육의 본질을 찾아가는 모든 이에게 유익한 열쇠임에는 분명하다. 어떤 문을 열게 될지는 각자가 다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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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손에 잡히는 전쟁과 미술
최영진 지음 / 평화서각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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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시작해보자. 책 제목에 한 손에 잡히는이라는 표현이 있다. 무슨 의미가 했더니 진짜로 한 손에 딱 들어맞는다. 여성에 손에는 좀 힘들겠지만 보통 신장의 남성이라면 아마 대부분 한 손에 들고 읽을 만한 책이다. 딱 좋다는 얘기다. 요즘 책들 중에는 크기가 커서 들고 다니며 읽기가 불편한 책들도 있는데 이 책은 그런 점에서 일단 백 점 만점에 백점이다.

 

이제 책 내용을 살펴보자. 제목에 나온 그대로 이 책에는 전쟁 이야기를 그리거나 조각으로 새긴 미술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미술과 전쟁, 자연스러운 조합은 아니라는 생각이 먼저 들지만 전쟁 혹은 전투를 예술적 열정과 직관, 설명할 수 없는 요소가 작용하는 종합 예술로 설명한 저자의 설명을 읽은 후에는 둘의 관계가 그렇게 동떨어진 만남은 아님을 알게 된다.

 

이 책을 읽을 때 반드시 서문을 먼저 읽길 바란다. 물론 대부분의 독자가 그렇게 하시겠지만. 다른 이유라기보다 이 책에 서문에서 저자가 말하는 전쟁그림에 담긴 시대와 그림을 보는 시선을 먼저 배워야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전쟁그림에는 전쟁의 시대와 제작의 시대라는 두 개의 시대와 전쟁 당시의 시선, 현재 의뢰자, 화가의 시선이라는 세 가지 시선이 존재한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저자가 설명하는 미술 작품들을 감상하면 기존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느낌 혹은 생각을 갖게 된다.

 

고대의 전투에서 현대의 전투에 해당하는 한국전쟁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전쟁을 묘사한 미술작품들을 저자의 설명과 함께 들여다보는 재미가 솔솔하다. 단순한 사실적 묘사를 넘어서 작품 속에 그려진 대상들의 마음 상태나 바람, 각 전쟁의 의미 등에 이르기까지 다면체 기구를 보듯이 작품을 다양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

 

특히 작품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부분을 번호를 매겨 설명한 부분이 인상 깊다. 굳이 저자의 설명을 읽지 않고 이 부분만 보아도 각 미술작품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가슴 깊이 다가온다. 다만 번호와 설명이 잘 못 연결된 부분이 있어서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

 

전쟁이라는 급박한 상황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두려움, 열정, 운명 등이 담긴 작품이라 그런지 강렬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마치 한 편의 전쟁 영화를 보는 듯한 기분에 흥분되는 마음이 점점 커지기도 한다. 무엇보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전쟁 역시 삶의 모습 중의 하나임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즐겁기만 한 삶의 모습은 아니지만.

 

삶에서 늘 승리만 하는 사람은 없다. 때로는 패배를 인지하면서도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 삶이다. 그 때 기적처럼 놀라운 결과가 나타난다. 불굴의 의지로 패배를 승리로 이끄는. 마치 이 책에서 설명한 전쟁처럼 말이다. 삶이란 그런 것인가 보다. 전쟁처럼 무언가 예상할 수 없는 결론이 담긴 종합예술과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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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영 - 앤드류 머레이의 성령론 세계기독교고전 30
앤드류 머레이 지음, 강연준 옮김 / CH북스(크리스천다이제스트)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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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 모태신앙인 내게 삼위일체 하나님은 너무나 친근하고 가까운 분이시다. 삼위일체가 무엇인지는 인간의 지식이나 지혜로 감히 판단할 수 없는 부분이기에 명확하게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 한 분이심은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다.

 

삼위일체의 하나님에 대한 인식은 분명하지만 각 하나님에 대해 말하자면 상황이 조금 달라진다.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에 대해서는 신약성경, 설교, 신앙서적 등을 통해 자주 접해서 너무나 친숙하다. 성부 하나님도 역시 그렇다. 신구약 성경, 설교 등을 통해 성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어느 정도이지만 알게 된다.

 

성령 하나님에 이르면 상황이 달라진다. 분명 성령 하나님이 삼위 하나님의 한 분이심을 알지만 구체적으로 성령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는 제대로 알지 못한다. 그저 내 안에 계시면서 예수님의 말씀과 삶을 깨우쳐주시고 우리가 말해야 할 바와 기도해야 할 바를 알려주시는 분 정도로만 알고 있을 뿐이다.

 

성령 하나님은 어떤 분이실까? 앞서 설명한 정도면 성령 하나님에 대해 우리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을 알게 된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우리는 성령 충만을 말하지만 성령 하나님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모른다. 성령 하나님을 오해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렇기에 앤드류 머레이의 <그리스도의 영>을 읽어야 한다.

 

이 책은 앤드류 머레이의 성령론이라는 부제처럼 성령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우리에게 확실하게 알려준다. 31장에 걸쳐 예수님이 부활승천하신 후 이 땅의 성도들에게 임한 성령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고,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하시는지를 성경 각 구절을 인용해 설명한다.

 

처음부터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성령세례는 단순히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하고, 거듭나게 하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고자 노력하게 하는 은총이 아니다. 성령세례는 그 이상이다. 바로 예수님께서 하늘에서 다시 오셔서 우리의 마음속에 거하는 임재이며 예수님의 새 생명의 능력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 뿐 아니다.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와 관련해서도 성령의 역사하심을 분명하게 배웠다. 예배는 인간적인 노력이나 생각으로 드리는 것이 아니다. 예배는 말씀 그대로 영과 진리로 드려야 한다. 예배는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이 우리 속에서 사역하심으로써 이루어지는 영적인 것이다.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었는지? 예배를 나의 힘으로, 나의 노력으로, 나의 생각으로만 드리고 있었던 내 모습을 보면서 회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영과 진리로 예배드려야 한다고 생각만 할뿐 막상 나는 오로지 내 생각과 뜻으로 예배를 드렸던 것이다.

 

이만큼 우리는 성령에 대해 무지하다. 다른 말로 하자면 성령이 역사하실 수 있는 토양을 만들지 못했다는 뜻이다. 성령이 역사하실 수 있는 토양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말씀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우리는 끝없이 말씀을 묵상함으로써 성령 하나님이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를 이끄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 책은 그리스도인의 삶 속에서 역사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임재를 확실하게 경험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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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언제나 바보 늙은이였던 건 아니야
알렉상드르 페라가 지음, 이안 옮김 / 열림원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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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적 상황 때문일까? 요즘 소설의 소재로 많이 사용되는 내용 중 하나가 노년층에 대한 것이다. 특히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은 영화로도 만들어져 소설과 영화를 비교하면서 상당히 재미있게 보았다.

 

이 책의 주인공도 역시 노인이다. 요양원에 오게 된 파네크 레옹이라는 인물이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또 다른 관계를 맺어가는 모습과 이전에 그가 삶아온 모습들을 번갈아 보여주면서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어느덧 40대를 넘기다보니 이런 생각을 자주 한다. ‘자네는 누구인가, 레옹?’이라는 잭의 질문은 어쩌면 책을 읽는 모든 독자에게 던지는 저자의 화두일지도 모르겠다. 과연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나는 누구일까, 이렇게 나이 들어가는 나는 누구일까?

 

살아온 시간만큼 수많은 내가 있었다. 그리고 그런 수많은 내가 결국은 지금 이 순간의 나를 만든 것이다. 그런 내 모습을 돌아보기 시작할 때가 바로 나이가 들어가는 순간이 아닌가 싶다. 어렸을 때, 젊었을 때에는 그저 앞만 보고 나아갔다. 무언가 저 끝에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나를 돌아볼 시간이 없었다.

 

그런 내게 이 소설은 지금 자신을 돌아보라고 한다. 과거의 자신이 만들어낸 지금 이 순간의 자신을. 그리고 앞으로 만들어진 미래의 나 자신을.

 

나도 한 때는 바보도 아니었고, 노인도 아니었다. 한 때는 누구보다 총명했고, 누구보다 젊음이 넘치던 때가 있었다. 그렇지만 그 누구도 시간을 비껴가지는 못한다. 그 시간들 속에서 나를 알고,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알아가는 것, 그것이 가장 현명한 삶의 방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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