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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고도 가까운 - 읽기, 쓰기, 고독, 연대에 관하여
리베카 솔닛 지음, 김현우 옮김 / 반비 / 2016년 2월
평점 :
리베카 솔닛, 익숙하지 이 이름이 이제는 내 가슴 한 견을 차지할 것 같다. 생각지도 않게 좋은 사람을 만났을 때의 그런 기분. 이 책에서 만난 그녀가 바로 그랬다.
<멀고도 가까운: 읽기, 쓰기, 고독, 연대에 관하여>라는 제목에서 그녀의 모습을 짐작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멀고도 가까운’이라는 느낌이 무엇인지는 어렴풋이 알 수 있었지만 말이다. 그런데 그녀의 에세이는 목차에서부터 이 느낌이 무엇인지를 강하게 내뿜는다. ‘살구’에서 시작해 ‘살구’로 끝나는 목차. ‘매듭’을 중심으로 대칭적인 목차. 이런 목차에 담긴 감겨 있는 상태의 그녀와 풀린 상태의 그녀를 보여준다는 그런 느낌.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느낀 수많은 이야기들도 가슴에 와 닿았지만 이 책에서는 내 마음을 가장 뒤흔든 것은 프랑케슈타인에 대한 이야기였다. 물론 예전에도 <프랑케슈타인>을 읽으며 수많은 생각을 했었다. 작가가 말하는 바와 거의 비슷한 생각. 그런데 그녀의 생각을 글로 읽으며 내가 예전에 생각했던 것들을 다시 한 번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이 부분이
깊은 차원에서 보면 괴물은 그의 피조물이면서 동시에, 스스로 마주하고 싶지 않은, 부인하고 싶고, 알지도 못하는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기 때문이다.(p.82)
한 때 스스로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 안에는 프랑케슈타인이 만든 괴물이 당연히 없다고 생각했다. 도대체 누가 자신 안에 그런 괴물이 산다는 것을 인정하겠는가 말이다. 그런데 세월이 조금씩 흐르면서 내 안에 나도 모르는 나 자신의 모습이 숨어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괴물이라고 불릴 정도는 아닐지 몰라도 평상시의 나와는 전혀 다른 모습의 나.
내 스스로 만들어냈지만 나는 모르는 그런 모습에 스스로 얼마나 놀라곤 했는지.
문제는 저자의 말처럼 숨어있던 내 모습이 일상의 작은 행동에서 나도 모르게 묻어나는 경우이다.
본인이 완벽히 정당하다고 느끼는 사람, 자신이 해를 끼쳤음을 모르는 사람 등등.
저자의 말처럼 자아라는 것 역시 만들어지는 것이다. 삶 전체를 통해 만들어가는 작업이다. 그렇기에 지금 내 안에 숨은 괴물은 또 다른 모습으로 나오게 될 수 있다. 그렇기에 문제는 프랑케슈타인 바로 그 자신이다. 그가 만든 괴물이 아니라.
참으로 매력적인 책이다. 그녀가 살아온 삶의 이야기도 그렇지만 여러 분야에 걸쳐 그녀가 들려주는 삶에 대한 단상들이 깊은 사색의 순간으로 이끌어주는 매력은 그 누구도 쉽게 뿌리칠 수 없을 정도이다. 그러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돌아보게 한다. 내가 가진 이야기는 무엇인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