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벌
기시 유스케 지음, 이선희 옮김 / 창해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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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하게 기억하기는 어렵지만 아주 어렸을 때(대략 4-5살 정도) 개한테 물린 적이 있다. 친구네 집에 놀러가서 사과나무에 열린 사과를 따는데 갑자기 개가 달려들더니 바로 다리를 물었다. 어찌나 놀랐던지 평생 개에 대한 트라우마를 가지게 되었다. 물론 지금은 어렸을 때처럼 무서워하지는 않지만 말이다.

 

그런 경험이 있기 때문일까? 소설 속 안자이 도모야가 느끼는 공포에 완전히 몰입할 수 있었다. 안자이 도모야는 나와는 달리 말벌에 쏘이면 바로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라 그 공포는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일 것이다. 게다가 도망칠 곳이 많은 개방적 공간도 아닌 산장이라는 폐쇄된 공간에서 자신을 죽일 수도 있는 말벌과 마주한다면 그 공포와 두려움은 극한에 이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작가는 이런 안자이 도모야의 공포를 생생하게 전달한다. 숨 막힐 듯한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가 펼치는 순간의 선택에 독자의 마음도 함께 졸아들기도 한다. 거기에 더해 도대체 이런 일이 생기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누가 이런 일을 꾸몄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더욱 커져만 간다.

 

마지막 순간, 놀라움이 극도로 커졌다. 생각지도 못했던 마지막 반전에 그저 할 말을 잃고 멍하니 있을 뿐이었다. 이럴 수가. 이런 결말을 위해 작가는 나름의 트릭을 사용했구나.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던 작가의 교모한 소설적 장치에 다시 한 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 책이 매력적인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안자이 도모야가 말벌과의 사투를 벌이는 과정을 그린 작가의 세밀한 묘사 때문이다. 거의 전문가 수준에 이르는 내용을 작품 속에 녹여내 사실성을 극대화한다. 이런 점이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더욱 깊이 책에 빠져들게 한다.

 

200페이지가 조금 넘는 길지 않은 작품이지만 내게는 상당한 여운을 남긴 소설이었다. 특히 소설 속 <말벌>의 내용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한 번쯤 고민하고 또 고민했을 만한 내용이다. 그렇기에 누군가는 그 책에 완전히 빠져들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번에 처음으로 기스 유스케의 작품을 읽었다. 작가는 SF, 추리 소설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약하고 있으며 그의 대표작인 <검은 집>은 영화로 만들어 책과 영화가 모두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이 책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지 무척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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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번 죽은 남자 스토리콜렉터 18
니시자와 야스히코 지음, 이하윤 옮김 / 북로드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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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 루프에 관해 처음 알려준 것은 영화 <사랑의 블랙홀>이었다. 영화를 보면서 타임 루프가 내게 일어난다면 어떨까? 똑같은 일상이 반복된다면 너무나 지루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영화 속 주인공처럼 새로운 일을 모두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내게는 결코 일어나지 않을 일이기는 하지만.

 

<일곱번 죽은 남자>의 배경도 역시 타임 루프이다. 다만 여타의 타임 루프와는 조금 다르다. 타임 루프를 경험하는 히사타로는 매일 같이 이 현상을 경험하지 않는다. 어쩌다 한 번씩 타임 루프에 빠져든다. 그렇기에 히사타로는 이를 자신의 능력이라고 하지 않는다. 자신의 체질이라고 말한다. 이는 언제 타임 루프 현상이 일어날지 전혀 알 수 없기에 이런 현상을 이용하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물론 우연히 편입 시험일에 타임 루프 현상이 일어나는 행운을 경험하기도 하지만.

 

그런데 큰 일이 발생한다. 바로 히사타로가 타임 루프에 빠진 그 날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이다. 히사타로가 한 번 타임루프에 빠지면 총 9번의 동일한 하루를 경험한다. 히사타로는 처음에 경험한 오리지널과 다르게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살인범이 누구인지를 추측하여 이를 막기 위한 조치를 취한다. 하지만 히사타로의 예방 조치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데...

 

도대체 살인범이 누구인거지? 자꾸만 빗나가는 히사타로의 예측처럼 마지막까지 살인범을 추측해내지 못했다. 히사타로처럼 나 역시 작가의 트릭에 빠져버렸기에. 마지막 순간 무릎을 탁 치며 감탄사를 연발하면서도 조금은 허무하기도 하였다. 결국 그런 결과라니.

 

그래도 너무나 재미있게 읽었다. 어느 정도 예상한 히사타로의 러브 라인도 흥미로웠고. 이런 책을 20년 전에 발표한 작가의 능력에 감탄도 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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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다가오지 마
루애나 루이스 지음, 김문정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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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뒷면에 실린 평들을 보면 강렬하다, 섬세하다, 아름답다는 말들이 주를 이룬다. 분명히 그런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평보다는 사실적이라는 평이 조금은 더 가슴에 와 닿았다. 정말 그랬다. 마치 지금 내게 일어난 일 같은 그런 느낌.

 

그렇기에 더욱 섬뜩하다. 이런 일이 현실에서 내게 일어난다면? 스텔라처럼 그렇게 행동할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 같다. 3년이라는 시간 동안 꼭꼭 숨어있던 사람이 그런 힘을 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아니 거의 불가능하지 않을까?

 

이렇게 단정적으로 이야기하는 이유는 스텔라와 유사한 상황에 처했던 친구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친구는 3년이 아니라 거의 1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집 밖으로 나온 적이 없었다. 외출은커녕 전화 통화조차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친구를 세상 밖으로 다시 끌어내는 일은 수많은 사람들의 수없는 노력이 있을 뒤에나 가능했다. 그랬기에 스텔라가 맥스와 블루를 뒤따라가는 용기를 낸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가 생생하게 느껴졌다.

 

소설의 구성이 참 재미나다. 블루가 스텔라의 집을 찾아온 시점에서의 묘사, 스텔라와 심슨 사이에 벌어지는 사건에 대한 묘사, 심리 상담을 받는 소녀와 정신과 의사에 대한 묘사가 서로 맞물리면서 과연 이 사건들이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일어난다. 마치 마피아 게임을 하는 듯, 누가 진실을 말하고 누가 거짓을 말하는지를 찾아내는 재미도 솔솔하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힘은 수많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단 한 사람이라도 나를 이해해주고, 믿어주고, 함께 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결코 쓰러지지 않는다. 그 한 사람이 끊어지지 않을 생명의 끈이기에 말이다. 마치 스텔라의 곁에 있던 피터처럼 말이다.

 

데뷔 소설이 이 정도라면 다음 작품은 어느 정도일까? 기대감이 솔솔 피어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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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른 판단의 힘 - 누가 먼저 가져갈 것인가
고세키 나오키 지음, 김효진 옮김 / 어언무미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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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살아가면서 수많은 결정을 내려야한다. 간단하게는 점심 식사에서부터 크게는 진학, 취업, 결혼 등의 결정을 내려야 한다.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완전히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결정을 내릴 때 보통 신중, 또 신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신중하게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있다. 그렇지만 신중한 결정보다 신속한 결정이 필요할 때도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상황에 맞는 적절한 판단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저자는 이에 대해 단호하게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판단에서 중요한 것은 정확성이 아니라 속도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무조건적인 빠른 판단이 필요하다는 것은 아니다. 합리적인 추론을 통해 빠른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저자는 의사결정 도구라는 간단한 사고방식 도구를 알려준다. 바로 트레이드오프, 트리구조, 압축, 게임이론이다. 저자는 이 네 가지 도구를 사용하면 판단하는 속도가 빨라진다고 말한다.

 

저자의 주장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이 적지 않았다. 사업을 하다 보니 타이밍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수도 없이 경험했기 때문이다. 순간의 망설임이 실패로 이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았고 최악의 경우 사업을 접어야 했던 적도 있다.

 

또한 저자의 말처럼 목표 달성을 위해서 포기해야 할 부분은 과감하게 포기해야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이도 저도 아니게 된다.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일은 현실에서 찾아보기 힘든 일일 뿐이다.

 

빠른 판단이 언제나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 시간을 두고 신중하게 고려해야 할 사안들도 분명히 있다. 그렇지만 이성적인 추론 하에 이루어지는 빠른 판단은 분명 남들보다 앞서 나갈 수 있는 강력한 무기임에는 분명하다. 치열한 전쟁터에서 그 무기가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할지, 이제 직접 경험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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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고도 가까운 - 읽기, 쓰기, 고독, 연대에 관하여
리베카 솔닛 지음, 김현우 옮김 / 반비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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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카 솔닛, 익숙하지 이 이름이 이제는 내 가슴 한 견을 차지할 것 같다. 생각지도 않게 좋은 사람을 만났을 때의 그런 기분. 이 책에서 만난 그녀가 바로 그랬다.

 

<멀고도 가까운: 읽기, 쓰기, 고독, 연대에 관하여>라는 제목에서 그녀의 모습을 짐작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멀고도 가까운이라는 느낌이 무엇인지는 어렴풋이 알 수 있었지만 말이다. 그런데 그녀의 에세이는 목차에서부터 이 느낌이 무엇인지를 강하게 내뿜는다. ‘살구에서 시작해 살구로 끝나는 목차. ‘매듭을 중심으로 대칭적인 목차. 이런 목차에 담긴 감겨 있는 상태의 그녀와 풀린 상태의 그녀를 보여준다는 그런 느낌.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느낀 수많은 이야기들도 가슴에 와 닿았지만 이 책에서는 내 마음을 가장 뒤흔든 것은 프랑케슈타인에 대한 이야기였다. 물론 예전에도 <프랑케슈타인>을 읽으며 수많은 생각을 했었다. 작가가 말하는 바와 거의 비슷한 생각. 그런데 그녀의 생각을 글로 읽으며 내가 예전에 생각했던 것들을 다시 한 번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이 부분이

 

깊은 차원에서 보면 괴물은 그의 피조물이면서 동시에, 스스로 마주하고 싶지 않은, 부인하고 싶고, 알지도 못하는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기 때문이다.(p.82)

 

한 때 스스로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 안에는 프랑케슈타인이 만든 괴물이 당연히 없다고 생각했다. 도대체 누가 자신 안에 그런 괴물이 산다는 것을 인정하겠는가 말이다. 그런데 세월이 조금씩 흐르면서 내 안에 나도 모르는 나 자신의 모습이 숨어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괴물이라고 불릴 정도는 아닐지 몰라도 평상시의 나와는 전혀 다른 모습의 나.

 

내 스스로 만들어냈지만 나는 모르는 그런 모습에 스스로 얼마나 놀라곤 했는지.

 

문제는 저자의 말처럼 숨어있던 내 모습이 일상의 작은 행동에서 나도 모르게 묻어나는 경우이다.

 

본인이 완벽히 정당하다고 느끼는 사람, 자신이 해를 끼쳤음을 모르는 사람 등등.

 

저자의 말처럼 자아라는 것 역시 만들어지는 것이다. 삶 전체를 통해 만들어가는 작업이다. 그렇기에 지금 내 안에 숨은 괴물은 또 다른 모습으로 나오게 될 수 있다. 그렇기에 문제는 프랑케슈타인 바로 그 자신이다. 그가 만든 괴물이 아니라.

 

참으로 매력적인 책이다. 그녀가 살아온 삶의 이야기도 그렇지만 여러 분야에 걸쳐 그녀가 들려주는 삶에 대한 단상들이 깊은 사색의 순간으로 이끌어주는 매력은 그 누구도 쉽게 뿌리칠 수 없을 정도이다. 그러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돌아보게 한다. 내가 가진 이야기는 무엇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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