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철학과 자퇴생의 나날 - 2015년 제11회 세계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김의 지음 / 나무옆의자 / 2015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을 덮고도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도대체 내가 지금 뭘 읽은 거지? 이게 뭔 내용인 거야? 이런 생각들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흔들었다. 어찌 보면 별 것 아닐지도 모른다. 한 남자를 둔 두 여자의 사랑. 그 사랑이 야기한 불행한 결말. 주변에서 흔히 듣을 수 있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 여자 둘의 정체를 알면서 상황이 완전히 바뀐다. 그녀들이 바로 트랜스젠더이기 때문이다.

 

끝없이 인우를 괴롭히는 17세 불량청소년 밤색 머리 남자아이도 그렇다. 그저 단순히 인우를 괴롭히는 정도라면 말이다. 하지만 인우를 괴롭히는 그의 모습은 말 그대로 악마와 같다. 게다가 인우 엄마와의 관계가 사실이라면.

 

필균이 아저씨는 또 어떤가? 예전에 텔레비전에서도 실제 일어났던 사건을 다룬 적이 있었는데, 필균이 아저씨가 바로 그 사건을 대변하는 현대판 노예 그 자체다. 인권 자체가 완전히 사라진 그런 노예.

 

이들 뿐만이 아니다. 인우가 사는 15층에 사는 주민들, 늙은 영화 누님 등등 모든 인물들의 인생이 참으로 고달프다. 뭐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작가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불운한 존재들을 다 끌어 모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맥없이 당하기만 하는 인우를 대신해 그를 괴롭히는 악마에게 분노의 일갈을 터뜨리고 싶었던 걸까? 철학과(철학과로 표현한 삶이라고 해야 할까)를 자퇴한 인우의 삶은 그럴 수밖에 없었음을 알리고 싶었던 걸까?

 

모르겠다. 트랜스젠더라는 말 하나로 시선이 바뀌고 아무리 악마와 같은 행동을 해도 누구하나 나서서 말리지 않는 세상(물론 1504호 아줌마는 여기에서 제외한다)이라면 누구라도 인우와 같아지지 않았을까?

 

인우의 외침이 또 다시 들린다.

 

세상은 무슨 이유로 저 악마를 내버려두는지 모르겠다. 응당한 형벌을 가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인간으로 만들려고 노력하지도 않는다. 세상도 악마가 두려운 것일까. 아니면 애초부터 악마에겐 관심조차 없었던 것일까 (p.266)

 

어렸을 때 보았던 어르신들이 떠오른다. 동네 아이가 잘못하면 나서서 혼을 내시던. 그런 어르신들은 다 어디로 가신 걸까? 이 땅에 더 이상 어르신들은 없고 자신만을 위해 웅크리고 살아가는 나이든 아저씨와 노인들만 남아 있는 것 같으니. 대쪽 같았던 그 분들의 자태가 너무나 그리워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달라이 라마의 행복
달라이 라마.하워드 C. 커틀러 지음, 김미나 옮김, 황중환 그림 / 자음과모음 / 2015년 10월
평점 :
품절


씨앗을 보면 그 크기가 참으로 자그마하다. 쌀 한 톨 만한 크기의 그렇게 작디작은 씨앗이 어느 순간 자라 커다란 나무가 되어 풍성한 열매를 맺는다. 이처럼 씨앗이 싹을 틔우고 나무가 되어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자연의 보살핌 혹은 농부의 보살핌이 필요하다.

 

모든 인간에게도 하나의 씨앗이 있다. 행복이라는 씨앗이. 그 씨앗이 싹을 틔우고 나무로 자라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이 땅의 모든 씨앗들처럼 보살핌이 필요하다. 행복이라는 씨앗을 품은 각 사람의 보살핌이.

 

<달라이 라마의 행복>은 나에게 그렇게 속삭였다. 행복이란 그 누구만의 것이 아니라 모든 이의 것이라고. 그리고 그 행복은 그 씨앗을 품은 이가 어떻게 가꾸느냐에 따라 나무가 되기도 하고 풍성한 열매를 맺기도 한다고.

 

어떻게 싹을 틔워야 할까? 먼저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달라이 라마의 말을 그대로 빌리자면 연민을 가져야 한다. 누군가를 좌지우지하는 마음이 아니라 애착에서 벗어난 순수한 연민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이런 연민은 스스로 고통을 원하지 않고 행복할 권리가 있음을 아는 것에서 출발한다.

 

종교적인 관점에서 동의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었지만 사람을 향한 달라이 라마의 따뜻한 마음이 전해졌다. 그 마음이 마음과 마음으로 이어지면서 얼마나 커질 수 있는지, 또한 그 마음이 스스로를 얼마나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게 아니다. 내 자신 안에 이미 자리를 잡고 있다. 이를 놓치고 있는 것은 내 눈이 세상의 욕망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내 귀가 유혹의 목소리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다. 내 몸이 타인의 고통 위에 서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다른 사람의 생각에 눈을 돌리고, 다른 사람의 고통에 귀를 기울이고, 내 위에 타인의 권리를 세워야 할 때다. 서로의 위하며 내 속에 든 행복의 씨앗을 싹 틔우고 위해서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 봉 로망
로랑스 코세 지음, 이세진 옮김 / 예담 / 2015년 10월
평점 :
절판


좋은 소설, 좀 더 넓은 의미에서 좋은 책은 어떤 것일까? 많은 사람들이 읽는 베스트셀러일까? 아니면 누구나 추천해주는 고전이 좋은 책일까? 아니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게 만드는 책일까?

 

사람마다 좋은 책에 대한 기준이 다를 것이다. 누군가는 많은 사람들이 추천하는 책을, 누군가는 생각의 깊이를 넓혀주는 책을, 누군가는 너무나 재미난 책을 좋은 책으로 추천할지 모른다. 누군가는 좋은 책을 전혀 추천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루에 출판되는 책이 너무 많다보니 좋은 책을 고를 여력이 없기 때문에 말이다.

 

이런 점에 오 봉 로망은 꿈의 서점이다. 오 봉 로망의 의미인 좋은 소설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딸을 잃고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프란체스카에게 위안이 되는 것은 책이다. 삶의 패배자로 살아온 이방에게도 삶에 기쁨을 주는 것이 책이다. 이 둘이 만나 의기투합해 만든 서점이 바로 오 봉 로망이다. 8명으로 구성된 좋은 소설 위원회에서 추천한 책을 파는 곳. 오호, 이런 서점이 있다면 나라도 매일 같이 가서 좋은 소설을 사고 싶을 것 같다.

 

승승장구하던 초반과 달리 서서히 오 봉 로망에 암운이 깃들기 시작한다. 그곳에서 모든 소설을 팔지는 않기 때문이다. 결국 좋은 소설에 대한 논쟁이 일고, 이는 비극적인 사건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런데 자신의 소설이 좋은 책이 아니라고 말한 저자가 있을까? 자신의 출판사에서 출간한 책이 잘 팔리기를 원하지 않는 사장이 있을까? 아니 독자의 입장에서도 그렇다. 자기가 감명 깊게 읽은 책을 좋은 책이 아니라고 말할 사람이 있을까? 이런 상황들을 보면 좋은 책이란 결코 몇 사람에 의해 결정될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책을 읽는 내내 좋은 책이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많은 책을 읽지는 않았지만 나름 오랫동안 독서를 해왔다고 자부하지만 막상 좋은 책을 추천하려니 결국은 내 중심적인 시각만이 남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게 잘못된 방법일까? 좋은 책이란 결국은 읽는 자에게 좋은 책이니까.

 

남들이 아무리 좋은 책이라고 말해도 내가 읽지 않은 책은 결코 좋은 책이 될 수 없다. 좋은 책은 손을 내밀어 읽은 책, 그래서 마음이 움직이고, 생각이 움직이고 삶이 움직여 나를 변화시킨 책, 그런 책이 좋은 책이 아닐까?

 

그래도 오 봉 로망과 같은 서점이 있으면 좋겠다. 나도 모르는 또 다른 세계로 빠져드는 즐거움이 있는 곳일 수 있으니까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묻힌 도시의 연인
한지수 지음 / 네오픽션 / 2015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폼페이. 서기 79년 베수비우스 화산의 엄청난 폭발로 사라져버린 도시. 그 불행의 흔적만큼 수많은 영화, 드라마, 다큐멘터리 등에서 다뤘던 어쩌면 그렇게 새롭지만은 않은 소재이다. 하지만 이런 평범한 소재인 듯한 폼페이가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왔다. 저자 한지수의 작품 <파묻힌 도시의 연인>으로.

 

저자는 호텔 객실에 걸려 있던 소녀의 초상화를 본 후 작품에 대한 구상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이 소설에서는 화산 폭발이 일어나기 전 폼페이에서 생활하던 사람들이 생생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소설의 여러 요소 중에서 캐릭터에 쏟아 부은 작가의 정성이 느껴진다.

 

소설은 갈리아(프랑스)에서 아름다운 금발의 창녀가 시체로 발견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사건을 수사하는 중에도 여러 사람들이 독살을 당하면서 도시는 점차 알 수 없는 미묘한 분위기 속으로 빠져든다. 이처럼 도시에 만연한 열락 속에서 오줌을 나루는 일을 하는 베루스는 세탁소 여주인의 노래 소리에 반하지만 그녀와의 신분 차이로 끝없는 고통 속으로 빠져든다.

 

한편 베루스의 주인이었던 에우마키아는 왠지 모르게 베루스를 편애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로 인해 그녀의 아들인 프론토는 어머니에 대한 분노를 가슴에 품은 채 자꾸만 엇나가기만 하고 딸인 클라우디아는 그녀의 어머니를 시샘하여 근거 없는 헛소문을 퍼뜨리기도 한다.

 

살해 사건이 해결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무덤이 파헤쳐지고 사체를 훼손하는 범행이 계속되고 사체의 얼굴을 그린 초상화가 암암리에 유통되기도 한다. 독살 염려증에 걸린 세탁소 주인 스테파누스는 자신만의 독살 치료를 하던 중 아내 플로시아에게 보낸 베루스의 연서를 발견하는데..

 

저자의 손끝에서 살아난 모든 인물들이 참으로 매력적이다. 사랑에 빠져 검투사의 길을 걷는 베루스와 그의 사랑에 빠져든 플로시아 뿐만 아니라 한 도시의 정치, 경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폴리비우스, 스테파누스의 끝없는 욕망, 결코 표현할 수 없었던 에우마키아의 가슴 아픈 사연까지 모든 장면들이 참으로 매력적이다.

 

그래서일까? 이 작품에서는 화산 폭발로 사라진 후 쾌락의 도시라는 오명을 품은 폼페이가 아닌 어쩌면 우리 주변에서 찾아볼 수 있는 평범한 군상들이 살았던 도시라는 느낌이 묻어난다. 사랑도, 질투도, 미움도, 음모도 모두 함께 뒤엉켜 있는 그런 도시 말이다.

 

소설 중간에 수록된 고대 폼페이의 모습이 더욱 생동감 넘치는 상상의 세계로 이끌어준다. 어쩌면 저자가 다 말하지 못한 그런 상상의 세계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라 없는 나라 - 제5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이광재 지음 / 다산책방 / 2015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하나의 국가를 구성하는데 필요한 3요소는 국민, 영토, 주권이다. 만약 세 가지 요소 중 하나라도 없다면 이는 결코 국가라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광재의 <나라 없는 나라>는 결국 이 세 가지 요소 중 하나가 없다는 의미이리라. 세 가지 요소 중 무엇이 없다는 것일까, 그리고 나라 없는 나라는 어느 때를 가리키는 말일까?

 

상당히 흥미로웠다. 책 제목도 흥미롭고, 전봉준과 흥선대원군을 중심으로 동학 혁명을 풀어나간 관점도 흥미롭다. 고뇌하는 젊은 관료의 모습에 같이 마음 아파했고, 개혁이란 미명하에 일제를 끌어들여 나라 없는 나라를 만든 개혁파 인물들에게는 말로 표현 못 할 분노를 느꼈다. 무엇보다 끝까지 자신의 길을 감당하며 걸어간 전봉준의 모습에 깊은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소설은 한국의 혼을 일깨우는 우리시대 대표소설 <혼불>의 작가, 최명희의 문학정신을 기리며 전주문학방송이 제정한 혼불문학상 2015년 수상작품이다. 문학상의 의도처럼 이 책에는 이 시대에 꼭 필요한 대한민국의 혼을 깨우는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다. 한 문장 한 문장을 곱씹으며 지금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깊이 생각하게 한 소설이다.

 

소설 곳곳에서 나라를 이루는 근간인 백성에 대해 그리고 백성이 모여 이룩한 나라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문장들을 만났다.

 

조선을 삼키되 면면촌촌의 백성이 다 죽여라 나서면 덤비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망해도 그만이라 냉소하면 나라는 사라질 것입니다. 대감 말씀대로 사명에 불타는 백성이 많아져야 합니다. (p.102)

 

이 글을 읽으며 얼마나 가슴 답답했는지. 이 시대를 그린 듯한 모습이라 더욱 그러했는지 모르겠다. 주변을 둘러봐도 헬조선이니 개한민국이니 하며 나라가 망해도 그만이라는 냉소가 곳곳에서 넘쳐난다. 어쩌다 이런 상황에까지 이르렀는지.

 

누가 물리쳐야 할 적인지는 머리와 마음으로부터 얻어지는 게 아니라 백성이 일러주고 있었다. (p.253)

 

순검들이 막아야 하는 것은 몇몇 특정 자객이 아니라 둑이 터져 물밀어 내려오는 어떤 흐름이며 민심이었다. 개명에 관한 자부심은 크고 노선이 옳다는 믿음 또한 굳건하였으나 그 오만을 뒷받침할 권세며 무력이며 백성의 신뢰 중 무엇 하나 제대로 갖추지 못한 사람들은 도리어 뭐라도 붙잡아 기대지 않을 수 없는 허약한 집을 지은 셈이었다. (p.263)

 

이 문장들은 또 어떠한가? 백성의 소리를 듣지 않는 작금의 현실을 들려주고 있는 것 같지 않은가? 민심을 저버린 위정자들의 모습이 떠오르지 않는가? <나라 없는 나라>의 모습이 지금 우리에게서 보이지 않는가?

그래도 전봉준의 마지막 말로 위안을 삼으려고 한다.

 

- 선생님, 저 재를 넘으면 무엇이 있습니까요?

- 몰라서 묻는 게냐? 우리는 이미 재를 넘었느니라. 게서 보고 겪은 모든 것이 재 너머에 있던 것들이다.

- 그럼 이제 끝난 것입니까?

- 아니다. 재는 또 있다.

- 그럼 그건 어쩝니까요?

- 그냥 두어도 좋다. 뒷날의 사람들이 다시 넘을 것이다. 우린 우리의 재를 넘었을 뿐. 갈이 멀다. 가자꾸나.

 

전봉준과 동학혁명의 이름 없는 민초들이 그들의 재를 넘어갔듯이 우리는 우리의 재를 넘어가야겠다. 우리의 역사가 끝없이 흐르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