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흄 - 경험이 철학이다 지혜의 씨앗 씨리즈 3
아네트 C. 바이어 지음, 김규태 옮김 / 지와사랑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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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여 페이지의 짧은 책으로 한 사람의 삶과 사상, 그것도 위대한 철학자의 삶과 사상을 모두 들려줄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흐릿하게나만 그려볼 수는 있다. 이 책이 바로 그런 역할을 한다.

 

데이비드 흄이라는 위대한 철학자의 삶과 사상을 모두 아우르는 책이라고 해서 상당히 어렵지 않을까라는 두려움이 있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상당히 친근하고 재미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런 느낌을 받은 이유는 이 책이 흄의 자서전을 토대로 그의 삶과 사상을 설명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흄의 삶을 유년기부터 <인간 본성에 관한 논고>를 쓴 시기와 그 이후의 삶, 사서이자 역사가로서의 삶을 살던 시기, 유명인으로 지내는 삶과 말년의 삶, 마지막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시기로 구분해 각 시기마다 흄의 독백을 먼저 들려준다. 그의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듣는 듯한 느낌 때문일까, 그와 인간적으로 무척 친밀해졌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보니 그 뒤에 덧붙인 저자의 설명도 내가 아는 누군가에 대한 이야기라는 생각에 귀에 쏙쏙 들어온다.

 

그렇다고 이 책이 흄과의 인간적인 접촉만을 전달하는 것은 아니다. 그 가운데 그의 철학적인 이야기들을 덧붙이고, 그가 유년기에 기독교 신앙을 저버리는 과정과 평생을 통해 기독교 신앙에 칼을 들이대는 이야기들이 나름 심도 깊게 다루어진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으로서 흄이 하나님을 떠나간 과정이 참 마음 아팠다. 편견에 사로잡힌 종교인들의 모습, 기독교 교리에 대한 오해, 사랑을 내세우면서 증오를 발하는 종교 도당의 양면적인 모습. 어쩌면 흄이 여러 면에서 회의주의자가 되고, 저자의 말처럼 불가지론자에 가까운 모습을 보인 것도 이해가 된다.

 

이 책을 통해 데이비드 흄이라는 매력적인 존재를 만났다. 첫 만남이지만 상당히 깊은 관계를 맺은 느낌이다. 이젠 그와 좀 더 가까워지고 싶다. 그 몫은 오로지 내게 달려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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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반합 - 절대 흔들리지 않는 경영의 본질
오윤희 지음 / 비즈니스북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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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정반합>이라는 책 제목을 보고 헤겔의 변증법 논리를 토대로 경영 분야를 설명한 책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어느 면에서는 그 말도 맞을지 모르겠지만 책 제목으로 사용한 정반합은 위대한 기업들의 선택과 관련해 저자의 생각을 토대로 한 분류 방법이다.

 

이 책에서는 저자가 조선일보 위클리비즈에서 해외 유명 기업인과 석학들을 만나 취재한 내용을 토대로 각 기업들이 택한 경영 전략을 정(), (), ()이라는 세 가지 법칙으로 구분해 설명한다. 위대한 기업들이 선택한 세 가지 법칙 중에서 정은 경영의 기본을 추구하는 법칙, 반은 역발상의 정략을 구사하는 법칙, 합은 끊임없이 변화하며 제3의 길을 모색하는 법칙을 가리킨다.

 

저자는 다양한 기업들의 사례들을 예로 들어가면 각각의 법칙을 설명한다. 현재 선두 기업으로 세계 경제를 이끌어가는 기업들과 기업 총수들의 이야기를 그대로 전달하고 있기에 생동감과 현실감이 넘쳐 각 기업들이 선택한 경영 전략의 강점을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 게다가 이런 정반합의 법칙을 기업에만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삶에까지 적용할 수 있는 방법도 제시한다.

 

물론 저자가 말하는 위대한 기업에서 추구하는 원칙들이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새로운 원칙들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너무나 자주 듣는 원칙들이다. 친구들과 함께 회사를 운영하는 내 입장에서도 늘 생각하는 원칙들이다. 기본에 충실해야지, 때로는 새로운 시각으로 시장이나 사업을 돌아봐야지, 내가 가진 것만을 고집하지 말고 새롭게 덧붙일 것은 덧붙여야지. 이런 생각을 안 하는 기업가는 없을 것이다.

 

문제는 생각에만 그친다는 것이다. 편하다는 이유로, 눈앞에 보이는 이익을 핑계로 머릿속 생각과는 다르게 돌아가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런 모습은 회사에 관련해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내 삶도 역시 그렇다. 가족과의 관계, 사회와의 관계, 나 자신과의 관계 그 모두가.

 

이 책은 그런 내 모습을, 그런 기업의 모습을 꼬집으며 살아있는 신화들을 들려준다. 이제는 그런 고질적인 모습을 버리고 생각이 아닌 행동에 나서라고. 일에서도, 가정에서도, 자신의 삶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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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규나 소설
김규나 지음 / 푸른향기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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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늘하다! 소름이 돋는다!

 

이 표현이 얼마나 어울리지는 책을 읽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정말 서늘하다. 정말 소름이 돋는다. 그런데 그 느낌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각 단편의 마지막에 이르면 서늘했던 느낌이, 소름이 돋는 놀라움이 알게 모르게 사그라진다. 사라진 그 느낌 대신 무언가 따뜻한 온기가 자리 잡는다.

 

김규나의 <>에는 단편 11편이 수록되어 있다. 놀라운 사실은 11편의 단편 하나하나가 상당히 강렬하게 다가온다는 것이다. 그 여운이 쉽게 사라지지 않을 정도로. 그 중에서도 은 정말 놀라웠다. 이 작품이 2010년에 발표하였다는데 왜 그 당시 알지 못했는지 안타까운 마음이 들 정도였다.

 

팽팽한 삶의 줄이 끊어져버린 바이올리니스트, 의사였던 아버지가 의료사고로 무너진 후 진로를 바꿀 수밖에 없었던 부검의. 상처 입은 이 둘이 만났다. 서로의 상처를 알아보고 같이 한 순간을 보낸다. 그러다 다시 이 둘이 다시 만난 곳은 부검실. 시체와 부검의로 다시 만난 것이다.

 

몸 구석구석을 살피고 가슴을 열어 장기를 살피면서 바이올리니스트의 삶을 들여다보며 그의 외로움과 절망과 고통을 절절이 느끼는 부검의. 그에 대한 공감은 부검의만의 것이 아니었다. 책을 읽는 모든 이들의 공감이었다.

 

삶이란 팽팽하게 조여진 줄이 하나씩 끊어져 나가는 것을 견디며 살아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p.27)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느끼는 삶의 모습을 이보다 더 잘 설명할 수 있을까? 직장에서, 가정에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우리는 매 순간 얼마나 긴장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이외의 작품들도 살아가면서 보게 되는 삶의 여러 단면들을 그리고 있다. 서늘하게, 소름 돋게, 그렇지만 그 속에 다시 따뜻함을 담아주는 그런 마음을 담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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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좋으면
마광수 지음 / 어문학사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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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광수 교수의 작품을 모두 읽지는 않았지만 새 작품이 출간될 때마다 관심을 가지고 읽는 편이다. 이전에 발표한 작품들이 사회적 커다란 반향을 일으킨 작품이어서 이기도 하지만 과연 그가 말하는 예술이 무엇인지 아직은 잘 모르겠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담겨 있을까, 무엇을 상상하며 쓴 것일까, 과연 그가 말하는 예술을 이번에는 제대로 느껴볼 수 있을까, 라는 마음으로 책을 읽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정말 실망했다.

 

이번 작품들에서는 예술과 외설의 경계에 있는 새로운 상상의 세계를 만나지 못했다. 오히려 지나온 자신의 삶을 들려주며 애써 변명하는 이의 모습만을 보았다. 물론 이는 전적으로 나만의 생각이다. 다른 이들은 또 다른 모습을 보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랬다. 외설 작품을 썼다는 이유로 구속되는 중에도 결코 당당함을 잃지 않았던 그의 모습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이, 자신의 삶이, 자신의 작품이 예술이라고 말하는, 하지만 결코 공감이 가지 않는 이의 모습을 보았다.

 

마광수 교수는 자신의 작품(?)에 도덕을 들이대는 이들을 반동분자요 잔인한 마녀사냥꾼이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그들이 상상의 자유를 제약하려 들며 예술에 있어서의 일탈적 백일몽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도대체 예술의 기준이 무엇일까? 무엇이 예술이고, 무엇이 외설일까? 이에 대한 설명은 없다. , 이전 작품들과 마찬가지다.

 

그렇게 생각과 상상의 자유를 외치던 그가 나만 좋으면에서는 문장이 너무 현학적이라 이해하기 어려운 글을 쓰는 작가들, 혹은 비문을 쓰는 작가들에게 일침을 날린다. 그러면서 가볍고 쉽게 읽히는 자신의 작품이 탁월하다고 말한다. 물론 소설 속 인물 사라의 생각을 통해서 말이다.

 

일견 그의 말에 공감되는 부분도 있다. 한국 문학이 어렵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상상의 날개를 핀 예술에서 비문이면 어떻고 좀 난해하면 어떤가? 비문을 쓰면 좀 어떤가? 그저 쉽게 읽히는 글이 좋은 글이라면 만화책이 최고일 것이다(물론 만화책이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현학적으로 으스대는 글이면 좀 어떤가? 그 속에서 상상을 펼치는 사람들도 있는데. 내 것이 좋다는 말을 하기 위해 다른 것을 깎아내려야 한다면, 글쎄다.

 

어떤 의미에서 그가 이런 말을 던졌는지는 이해하지만 그의 말이 썩 깊이 다가오지는 않는다. 나는 도덕주의자도 아니고, 문단이나 학계의 대가도 아니다. 그렇지만 사람마다 소설을 읽으며 느끼는 재미는 다르다. 그렇기에 만화를 그리는 이도, 무협지를 쓰는 이도, 대중 문학 혹은 장르 소설을 쓰는 이도 그가 말하는 훈민문학을 쓰는 이도 모두 존중해야 한다고 믿는다. 마광수 교수의 작품을 존중해야 하듯이 말이다.

 

한 때 마광수 교수를 자신의 색깔을 뚜렷하게 가진 이 시대의 아웃사이더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는??? 글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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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철학과 자퇴생의 나날 - 2015년 제11회 세계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김의 지음 / 나무옆의자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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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고도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도대체 내가 지금 뭘 읽은 거지? 이게 뭔 내용인 거야? 이런 생각들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흔들었다. 어찌 보면 별 것 아닐지도 모른다. 한 남자를 둔 두 여자의 사랑. 그 사랑이 야기한 불행한 결말. 주변에서 흔히 듣을 수 있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 여자 둘의 정체를 알면서 상황이 완전히 바뀐다. 그녀들이 바로 트랜스젠더이기 때문이다.

 

끝없이 인우를 괴롭히는 17세 불량청소년 밤색 머리 남자아이도 그렇다. 그저 단순히 인우를 괴롭히는 정도라면 말이다. 하지만 인우를 괴롭히는 그의 모습은 말 그대로 악마와 같다. 게다가 인우 엄마와의 관계가 사실이라면.

 

필균이 아저씨는 또 어떤가? 예전에 텔레비전에서도 실제 일어났던 사건을 다룬 적이 있었는데, 필균이 아저씨가 바로 그 사건을 대변하는 현대판 노예 그 자체다. 인권 자체가 완전히 사라진 그런 노예.

 

이들 뿐만이 아니다. 인우가 사는 15층에 사는 주민들, 늙은 영화 누님 등등 모든 인물들의 인생이 참으로 고달프다. 뭐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작가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불운한 존재들을 다 끌어 모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맥없이 당하기만 하는 인우를 대신해 그를 괴롭히는 악마에게 분노의 일갈을 터뜨리고 싶었던 걸까? 철학과(철학과로 표현한 삶이라고 해야 할까)를 자퇴한 인우의 삶은 그럴 수밖에 없었음을 알리고 싶었던 걸까?

 

모르겠다. 트랜스젠더라는 말 하나로 시선이 바뀌고 아무리 악마와 같은 행동을 해도 누구하나 나서서 말리지 않는 세상(물론 1504호 아줌마는 여기에서 제외한다)이라면 누구라도 인우와 같아지지 않았을까?

 

인우의 외침이 또 다시 들린다.

 

세상은 무슨 이유로 저 악마를 내버려두는지 모르겠다. 응당한 형벌을 가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인간으로 만들려고 노력하지도 않는다. 세상도 악마가 두려운 것일까. 아니면 애초부터 악마에겐 관심조차 없었던 것일까 (p.266)

 

어렸을 때 보았던 어르신들이 떠오른다. 동네 아이가 잘못하면 나서서 혼을 내시던. 그런 어르신들은 다 어디로 가신 걸까? 이 땅에 더 이상 어르신들은 없고 자신만을 위해 웅크리고 살아가는 나이든 아저씨와 노인들만 남아 있는 것 같으니. 대쪽 같았던 그 분들의 자태가 너무나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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