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트웨인의 미스터리한 이방인
마크 트웨인 지음, 오경희 옮김 / 책읽는귀족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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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인간이라는 존재가 그런 걸까? 인류가 살아온 그 오랜 세월 동안 이룩한 것이 단순한 번식일 뿐 그 외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만 있었던 걸까? 인간은 도덕관념이라는 틀에서 선과 악을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는 존재일까? 잠깐의 행복을 위해 평생을 불행하게 사는 존재가 인간일까?

 

소설은 1590년 겨울 오스트리아. 정신적·영적으로 믿음의 시대에 있다고 조롱받는 곳. 그곳에 사는 테오도르 피셔, 니콜라우스 바우만, 세피 볼마이어는 어느 날 한 소년을 만난다. 그런데 이 낯선 이방인, 뭔가 심상치 않다. 불을 피우는 것도, 온갖 열매가 열리는 나무를 만들어내는 것도. 너무나 궁금해진 그의 정체는 천사. 오호, 하는 순간 바로 독자의 뒤통수를 친다. 소년은 자신의 이름이 사탄이라고 말한다. 물론 그 옛날 아담과 하와를 유혹한 사탄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 낯선 그 이방인은 그 사탄의 조카란다. 허걱, 이게 도대체 뭐야 하는 순간 점점 더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이 사탄이라는 놈이 하는 짓을 보고 있자니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사람 목숨을 파리처럼 여기지 않나, 인간이라는 존재를 아주 하찮게 여기지 않나, 설상가상으로 신의 권위를 끌어내리는 모습까지. , 지 삼촌이랑 똑같다.

 

문제는 그런 놈에게 일격을 가하지 못하는 우리 인간의 모습이다. 그 놈이 하는 짓이 너무나 밉상이지만 그 놈이 하는 말이 우리를 부끄럽게 만들기 때문이다. 군중 심리에 휩싸여 잘못된 행동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악한 행동에 동참하기도 하고, 항상 거짓말을 일삼으면서 지키지도 않는 도덕을 요구하고. , 할 말이 점점 없어진다.

 

소설 전반에 걸쳐 사탄이 던지는 도덕관념에 대한 이야기는 더욱 우리를 불편하게 만든다.

 

너는 도덕관념이 뭔지 아니? 그것은 물론 선악을 구별하는 개념이야. 하지만 무엇이 선악인지 선택하는 자유는 모든 개인에게 있어. (p.82)

 

개인에 따라 선악이 달라진다면 선악이라는 것이 정말 의미가 있는 걸까? 선악에 대한 개념을 모르는 없어 사람의 생명을 가볍게 여기는 사탄과 우리가 전혀 다른 존재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인간에 대한 통렬한 비난과 비판이 담긴 이 소설의 저자는 누구일까? 바로 마크 트웨인이다. <톰 소여의 모험> <허클베리 핀의 모험> 등 희망과 모험을 이야기하던 그였는데 어떻게 된 것일까? 옮긴이의 설명에 따르면 이 소설을 쓸 당시 마크 트웨인은 사랑하는 딸들과 아내를 먼저 저세상으로 보냈다고 한다. 그래서 이런 소설을 쓴 것일까?

 

한동안 불편한 마음이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숨기고 있던 내 모습을 들여다본 것 같아서 말이다. 하지만 마음 한견에는 마크 트웨인의 말에 반발하는 마음이 꿈틀거린다. 결코 인간이라는 존재가 그렇게 악하고 경박한 존재만은 아니라는. 저자처럼 철저하게 고민하고 반성하는 사람들이 수많은 희망을 그려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정말 그렇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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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그에게 휘둘리는가 - 내 인생 꼬이게 만드는 그 사람 대처법
크리스텔 프티콜랭 지음, 이세진 옮김 / 부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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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년 간 무인도에서 산 로빈슨 크루소나 비행기 사고로 4년 동안 아무도 없는 고립된 섬에서 지낸 캐스트 어웨이의 주인공 척 놀랜드가 아니라면 사람은 누구나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간다. 문제는 상대방에 대한 영향력을 지나치게 발휘하고자 하는 사람들과 그런 사람들에게 휘둘리며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의외로 우리 주변에서 이런 사람들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매 맞고 사는 아내,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는 아이들, 상사의 부당한 명령을 거부하지 못하는 부하직원, 상하 관계에서 벌어지는 성희롱 등등 정상적인 관계를 벗어난 채 상대방에게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하는 것을 저자는 심리 조종이라는 용어로 설명한다.

 

조종이라는 말을 듣고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꼭두각시이기 때문일까, 심리 조종이라는 말에 섬뜩함이 느껴진다. 이 용어는 누군가의 심리를 조종하는 자가 마치 완전무결하고 전지전능한 신처럼 행동한다는 생각이 들게 하기에 더욱 무서운 느낌을 갖게 한다.

 

그런데 문득 이런 옛말이 떠올랐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 , 조종하는 사람만으로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조종 받는 사람의 암묵적인, 무의식적인 동의가 있기에 우리가 말하는 크나큰 문제가 생긴다는 그런 생각.

 

그렇다. 이런 모습이 바로 우리가 주변에서 자주 보는 조종하는 자와 조종 받는 자의 모습이다. 사랑한다면서 폭력을 행사하고 그런 사람을 미워하고 무서워하면서도 조그마한 선물하나에 그를 선뜻 다시 받아들이는 사람도, 도저히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는 상사의 지시에 자신의 미래를 생각하며 저항하지 못하는 사람도, 모두 이런 관계에 빠진 이들이다.

 

그렇다면 이들의 관계는 어떻게 풀어야 하는가? 이에 대한 해결책 또한 우리의 현명한 선조들의 조언, ‘지피지기면 백전백승말에 담겨있다. 저자 역시 그렇다고 한다. 심리 조종자의 가면 속 어린아이를 확인하는 일이 이들과 맞서 싸우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말한다. 그를 전능자로 보지 말고 오히려 자기 것만 챙기며 때로는 아무 거리낌 없이 잔인한 행위를 하는 미성숙한 어린이로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 후에 자신을 돌아보아야 하다. 자신의 두려움이 어디에서 시작되고 어디에서 끝나는지. 심리 조종자의 의심, 두려움, 죄의식을 불러일으키는 생각들에서 벗어나고자 스스로를 변화시켜야 한다. 그러면서 평온하면서도 단오하게 자기주장을 펼쳐야 한다.

 

타인과의 관계에 있어서 가장 올바른 관계는 무엇일까? 사람마다 그 답이 다르겠지만 이런 관계가 가장 올바르지 않을까 싶다. 서로를 서로의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는 관계. 그런 관계가 이루어질 때 조종하는 일도, 조종을 받는 일도 없는 행복한 관계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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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바꼭질 버티고 시리즈
이언 랜킨 지음, 최필원 옮김 / 오픈하우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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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팔리는 범죄소설의 10%를 차지하는 작품. 그 작품은 바로 이언 랜킨이 쓴 존 리버스 컬렉션이다. 리버스 형사를 중심으로 사건을 풀어나가는 이 컬렉션은 첫 작품 <매듭과 십자가>에 이어 이 책 <숨바꼭질>로 이어지고 후속 작품은 <이와 손톱>이다.

 

컬렉션의 두 번째 작품이기는 하지만 앞 작품과의 연계성은 그렇게 많지는 않아 보인다. 별개의 작품으로 전작을 읽지 않아도 사건을 이해하는데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물론 전작을 읽었다면 리버스의 성격이나 사건 해결 방법에 대한 이해가 좀 더 빠르기는 하겠지만.

 

숨바꼭질(HIDE AND SEEK)이라는 제목이 이미 수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숨는 자와 찾는 자. 과연 누가 무엇 때문에 숨는 것일까? 찾는 자는 당연히 사건을 해결하려는 리버스 형사일 테고.

 

빈민가에서 발견된 마약중독자의 시체. 신고를 받은 리버스 형사는 새로운 파트너 브라이언 홈스와 함께 수사를 시작하지만 모든 것이 모호하기만 하다. 단 하나의 단서는 피해자가 죽기 전에 외친 숨어(Hide)”와 최상위층들만 출입한다는 클럽 하이드. 이제 하이드를 둘러싸고 이를 숨기려는 자와 찾으려는 자의 숨바꼭질이 시작되는데..

 

전체적으로 다이내믹한 느낌의 작품이라기보다는 잘 짜인 추리소설을 읽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일단 리버스 형사의 매력이 소설 전반을 아우르고 있기에 이야기 속으로 푹 빠져들 수밖에 없다. 특히 리버스 형사가 온 몸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이 조금은 더 인간적인 느낌으로 다가온다. 게다가 마약, 비밀클럽, 카지노 등 불쾌한 현실을 직설적으로 표현하여 사실감을 더욱 높여준다.

 

다만 추리소설을 읽으며 생각지도 않았던 마지막 반전을 기대하는 독자들은 조금 실망할 수도 있다는 점, 또한 너무 많은 것을 아우르려고 했다는 느낌의 단서들이 조금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래도 오늘날의 많은 작품들과 비교해 상당히 적은 분량이지만 물 샐 틈 없는 이야기를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존 리버스 컬렉션의 다른 작품들을 읽지 않았는데 그 작품들에는 어떤 리버스의 모습이 담겨있을까? 지금은 잊힌 무언가를 떠올리게 아날로그적인 그의 매력적인 모습을 볼 수 있을까? 무척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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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옹 혹은 라이스에는 소금을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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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친구 집에서 놀고, 먹고, 자고 하는 일이 빈번했다. 그러다보니 친구의 부모님들을 자주 보았기에 잘 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친구들과 이런 얘기, 저런 얘기 하다보면 내가 아는 친구네 부모님과 친구가 말하는 부모님이 전혀 다른 분이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결국 내가 아는 친구네 집안은 그저 겉에 드러난 모습이었지 깊숙이 담긴 이야기는 알지 못했던 것이다.

 

에쿠니 가오리의 <포옹 혹은 라이스에는 소금을>이 전하는 부분도 바로 가족에 대한 이야기, 어쩌면 다른 사람이 봤을 때는 평범하지 않은 또한 결코 알지 못하는 이야기이다. 그래서였을까, 책 띠지에 담긴 글도 이런 뉘앙스를 풍긴다.

 

3세대, 100년에 걸친 언뜻 보면 행복한가족 이야기

 

언뜻 보면 행복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행복하지 않은 가족 이야기라는 것인가? 아니면 언뜻 보는 외부인들은 그저 행복한 부분만 본다는 이야기라는 것인가?

 

소설은 3세대가 함께 사는 야나기시마 일가의 이야기이다. 오래된 서양식 대저택에서 사는 이 가족의 구성이 굉장히 특이하다. 일단 할머니가 러시아인이다. 지금이야 외국인과의 결혼이 별다른 일은 아니지만 60년대 후반이라면 아무리 일본이지만 평범한 이야기는 아니다.

 

이 집안의 특이점은 이뿐만이 아니다. 3대가 함께 사는 것이야 당연히 수긍할만한 상황이지만, 이모와 외삼촌까지 함께 산다? 또한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는다. 소위 홈스쿨링을 한다. 내 주변에서도 초등학교까지는 대안학교다 홈스쿨링이다 해서 정규 교육을 시키지 않는 부모님들이 있었지만 중학교를 넘어가면서부터는 여러 가지 이유로 결국 제도권 학교에 보내는 게 현실인데, 이들 가족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학교에 가려고 시도했던 아이들이 결국 몇 달 못 다니고 학교를 그만두어도 별다른 제재를 가하지 않는다.

 

또한 아이들 4명 중 두 명은 아버지 혹은 어머니가 다르다. 물론 이런 일은 적지 않은 가족들이 겪었던 일이다.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봐도 우리 할아버지 시대에는 어쩌면 드러내지 않았을 뿐 흔히 볼 수 있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이런 일은 쉬쉬거리며 숨기기 바쁜 일인데 이들 집안의 사람들은 그러지도 않는 것 같다. 정말 평범하지 않은 집안이다.

 

그렇지만 시간을 오가며 화자를 오가며 들려주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상하기만 이 모든 일들에도 다 나름의 이유가 있다. 다만 우리가 어쩌면 가족들조차도 그런 이유까지는 알 수 없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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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크 픽션
배상민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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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크 픽션>이라는 제목이 눈길을 끈다. 페이크라는 단어도 그렇고, 픽션이라는 단어도 그렇고 모두 거짓, 가짜라는 의미인데 저자는 이 두 단어를 사용해 제목으로 사용하였다. 무슨 의미일까? 가짜와 가짜가 만난 진짜 가짜라는 의미일까, 아니면 소위 말하는 강한 반어법적인 의미로 결코 가짜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저자의 의도가 담긴 장치일까?

 

소설을 모두 읽고 나자 제목이 주는 느낌이 새롭게 다가왔다. 저자가 말하듯이 이 작품은 소설이 아니라 페이크 픽션이라는 느낌이. 어쩌면 모두가 거짓이라고 말하며 잊어버린 이야기가 가짜 소설로 진실에 더욱 다가갔다는 느낌이.

 

영화감독이라고 말하기에도 그런 3류 영화감독이지만 영화를 향한 꿈만은 그 누구보다도 큰 황 감독. 프로듀서와 후배에게 시나리오를 빼기고 제대로 입봉도 못한 그가 드디어 영화를 찍는다. 하지만 결코 기뻐할 일이 아니다. 연인인 성숙의 빚 대신 사채업자의 제안대로 액션영화를 찍기로 한 것이다.

 

연인의 빚도 갚을 수 없는 그에게 제대로 된 장비가 있을 리 없다. 휴대폰을 이용해 영화를 찍기로 한 그는 주인공으로 냉면집 배달원 삼룡을 캐스팅한다. 액션 신을 찍기 위해 철거촌 현장에 삼룡을 투입한 황 감독. 그런데 삼룡은 철거민의 비참한 현실을 본 후 그들의 편에 서서 용역업체에 고용된 이들에 맞서 싸우고 황감독도 철거민들에 대한 동영상을 찍어 유투브에 올린다. 그러다 폭발사고가 나면서 삼룡은 행적이 묘연해진다. 5년의 시간이 흐른 후 철거와 관련된 사람들이 연이어 테러를 당하는데..

 

소설은 제목처럼 모든 내용이 가짜 소설이라고 하면서 지나간 이야기를 다시 우리에게 들려준다. 하지만 그 가짜 소설에서 무엇이 가짜이고, 무엇이 가짜 소설, 즉 진실일까? 어쩌면 진실은 여전히 묻혀있는지 모른다. 가짜 소설이라는 이름하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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