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 아파트
엘렌 그레미용 지음, 장소미 옮김 / 은행나무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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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내인 리산드라가 죽었다. 아파트 6층에서 떨어져 죽었다. 경찰은 이해되지 않는 이유들만 대면서 남편인 정신과 의사 비토리오를 용의자로 수감한다. 빠져나갈 길은 보이지 않는다. 도와줄 사람도 없다. 비토리오는 자신의 환자였던 에바 마리아에게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며 도와달라고 호소한다. 비토리오의 결백을 믿는 에바 마리아는 비토리오의 진료 상담 녹취 기록을 검토하며 범인을 찾기 시작한다.

 

비토리오가 남긴 녹취 기록에는 사람들이 숨기고 싶어 하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젊은 사람을 질투하는 나이 든 여인의 모습, 형제를 질투하는 사람, 사랑을 잊지 못해 고통을 겪는 사람, 군사정권 시절 실종된 딸로 인해 삶이 파괴된 여인. 어쩌면 모두가 아픔을 간직한 사람들이고, 비밀을 숨긴 사람들이다. 이들 중에 리산드라를 죽인 범인이 있는 걸까?

 

리산드라를 죽인 범인을 추적해가는 형식을 취했지만 이 책이 던져주는 이야기는, 아니 내게 던져진 이야기는 고통스런 역사와 그 속에서 상처 입고 무너져 내린 사람들의 울부짖음이었다.

 

학살자들에게 스스로 심판할 권리를 주다니! 자기들에 의한 자기들의 자체 정화라니. 위선. 기만적 궤변. 학살자들 스스로가 결정한 사면. 공인된 잔혹함의 극치.(p.161)

 

어디서 많이 보고 들은 듯한 외침이 아닌가? 일제 치하에서 동족을 핍박했던 친일파, 군사독재 시절의 독재자들, 세월호라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을 야기한 정부, 이들 모두에게 외치는 소리처럼 들리지 않는가? 아픔을 치료하지 못한 채 여전히 고통 받고 있는 희생자들의 외침이 이 목소리에 겹쳐서 들리지 않는가?

 

가벼운 미스터리로 생각했다 많은 소리를 들어야 했던, 어쩌면 그사이에 잊어버렸던 내 이웃의 아픈 이야기를 듣고 너무나 가슴 아플 수밖에 없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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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 소년 탐정단 오사카 소년 탐정단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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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들은 작품마다 그 색깔이 상당히 다르다고는 하지만 <오사카 소년 탐정단>은 여태껏 읽었던 작품들과는 또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추리 소설이면서도 주인공 시노부 때문인지 왠지 모르게 <말괄량이 삐삐>의 모습이 떠오르는 이야기이다.

 

오사카 변두리에서 자란 다케우치 시노부. 오사카 오지 초등학교 6학년 5반 담임교사인 그녀는 아름다운 외모와는 달리 조금은 거칠면서 거침없이 돌직구를 날리는 겁 없는 열혈 여선생이다. 그녀가 가르치는 제자들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사건들을 그저 보고만 있을 수 없었던 그녀는 천부적인 추리력과 행동력으로 사건을 해결하고자 한다.

 

소설의 재미는 시노부의 거침없는 모습에 있다. 활력이 넘치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독자 역시 절로 즐거워진다. 또한 은근슬쩍 드러나는 신도 형사와의 밀당도 소설의 재미를 더해준다. 이 작품은 그녀가 등장하면서 살인사건이지만 침울하고 무겁고 무서운 느낌이 들기보다는 가벼우면서도 활기 넘치는 느낌을 준다. 그러다보니 읽으면서도 크게 부담감이 없다.

 

5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이야기들이기에 각 단편이 주는 추리 소설의 치밀함은 조금 떨어지는 것이 아닐까 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작품의 배경이 되는 살인 사건들은 간단한 것처럼 보이면도 아하, 그렇구나라는 감탄사를 던질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필력이 다시 한 번 느껴지는 플롯이다.

 

<오사카 소년 탐정단>이라는 제목과는 달리 교사 시노부의 활약을 주로 다룬 이야기이지만 아이들과 시노부와의 관계가 또 다른 의미에서 흐뭇한 미소를 짓게 한다. 사람 간의 따뜻함이 더욱 그리워지는 이 때 유쾌함과 짜릿함과 따뜻함을 동시에 줄 수 있는 책으로 이 소설만큼 좋은 작품이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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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 모험 - 빌 게이츠가 극찬한 금세기 최고의 경영서
존 브룩스 지음, 이충호 옮김, 이동기 감수 / 쌤앤파커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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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을 하다보면 수많은 선택의 상황에 부딪친다. 한 순간의 선택이 경영자는 물론 회사에 속한 사람들과 그 가족 모두에게 치명적일 수도 있기에 선택의 순간마다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나 역시 어린 나이부터 사업을 시작해 숱한 선택의 순간들을 넘기고 이 순간까지 왔다. 돌이켜보면 참으로 험난한 길이었다. 그렇지만 만약 내게 다시 시간이 주어진다면 난 또 다시 사업의 길을 선택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사업을 하던 그때처럼 아무런 준비 없이 시작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업이란 당연히 여러 준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자본, 네트워크, 기술 등 여러 가지가 필요하겠지만 사업 혹은 경영에 꼭 필요한 부분은 바로 경험이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쌓인 지혜는 사업을 해가면서 알게 모르게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하지만 수많은 일들을 직접 경험하기에는 거의 불가능하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다른 사람들의 경험을 통한 간접 체험이다.

 

이런 면에서 <경험의 모험>은 사업 혹은 회사 경영을 꿈꾸는 자라면 반드시 읽어보아야 할 책이다. 워렌 버핏이 추천하고 빌 게이츠가 극찬한 책이라는 말이 거짓이 아니다. 이 책을 읽어보면 경영자로서 갖춰야 할 여러 가지들을 배울 수 있다.

 

그렇다고 이 책이 경영의 비법이나 전략을 가르쳐주는 것은 아니다.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어떤 인재를 구해야 할지, 어떤 상황에서 배팅을 해야 할지, 이런 것들을 알려주는 책은 아니다. 이 책은 나를 경영자로 만들어주는 책이다. 내가 보아야 할 시각을 넓혀주는 책이다.

 

책의 구성은 다양한 사례를 중심으로 관계자들의 이야기나 객관적인 상황 등을 보여준다. 이 책은 마치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하다. 시대적으로 60년 이상이나 전에 있었던 사례들이지만 이 속에 담긴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상황 그대로이다. 에드셀의 실패에서 찾아볼 수 있는 사람들의 선택과 본성, 오늘날에도 여전히 문제가 되는 내부자 거래, 기업 내 소통의 문제 등은 여전히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다. 그 중에서 나의 눈길을 끈 사례는 기업가의 본질을 얘기한 릴리엔설의 사례였다.

 

새로운 일에 대한 도전과 희열이라는 표현처럼 경영은 늘 새로운 일을 구상하고 도전하는 일이다. 그러면서 자신을 늘 점검해야 하는 일이다. 문득 나는 어떤가 싶었다. 잘못된 방향으로 새로운 도전을 꿈꾸는 것은 아닌지, 고정된 생각 속에서 도전을 잃어버리지는 않았는지.

 

기업 경영이나 경제도 결국 인간이 하는 일이다. 그렇기에 경영을 꿈꾸는 자라면 인간의 본성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가장 기본적인 사항임을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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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시간 2008-2013
이명박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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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친구가 있다고 생각해보자.

 

그거 알아, XX는 내가 다 한 거야. 나 아니면 될 수 없던 건데 내가 힘 좀 써서 만들어 낸 거야!

내가 하는 일에 잘못된 일이 어딨냐. 글구 혹 잘못 된다고 하더라도 다 널 위해서야.

내가 얼마나 준비가 철저한지 알지. 난 오늘이 아니라 100년을 내다보면서 준비한 거야.

너희들, 내가 원하는 건 너희들이 잘 되는 거야. 그래서 오로지 내 한 몸 희생해서 너희들만을 위해 살아왔어.

 

이런 친구가 있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글쎄, 다른 사람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지 잘난 맛에 사는 친구가 있다면 난 바로 절교하고 두 번 다시 보지 않는다. 지 혼자 잘나고, 지 혼자 똑똑하고, 지 때문에 모든 일이 잘 되고, 눈앞의 이익이 아니라 미래를 보는 선견지명을 가지고 있다고 떠들어대는 그런 친구는 있으면 더 괴롭기만 하고, 열만 받을 뿐이다.

 

이 책이 딱 그런 느낌이다. 각각의 사건이나 업적이 옳은지 아니면 잘못된 것인지는 일단 논외로 하자. 오로지 책의 분위기만 보자. 딱 앞에서 설명한 사람을 찾을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면 초인을 만날 수 있다. 어떠한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절대 틀리지 않으며, 모든 일의 미래를 볼 수 있는 초인. 그런 초인을 만날 수 있다.

 

그렇지만 이 초인은 절대 사람들의 경외심이나 존경을 받기 어려울 것이다. 어찌 자기 얼굴에 스스로 금칠하는 사람을 사람들이 존경하고 경외할 수 있을까? 설령 그 모든 업적이 우리에게 정말로 좋은 것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우리가 존경하는 인물들은 어떤 사람인가? 겸손한 사람이다. 수없이 많은 업적을 남겼음에도 자신이 한 일은 하나도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높이는 사람이다. 성경에도 나오지 않는가. 잔칫집에서 가서 상석에 앉지 말라고. 상석에 앉아있다 쫓겨나는 창피를 당하지 말고 뒤에 앉아 있다 주인이 상석으로 모시고 가는 사람이 되라고.

 

뭐 때문에 이렇게 급하게 회고록을 쓴 것인지 모르겠다. 어떻게든 자기 업적을 정당화하고 싶었던 걸까? 그런 의미라면 최소한 나에게는 역효과만 주었을 뿐이다. 딱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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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5-05-03 1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대로 자뻑질이었단 말씀이었군요.ㄷㄷㄷ

종이달 2022-05-07 0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아자젤
아이작 아시모프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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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원하는 무언가를 들어주는 초자연적인 존재가 옆에 있다면 어떨까? 마냥 좋기만 할까? 아니면 무언가 예상치 못했던 일이 생겨 오히려 삶이 불편하고 힘들어질까? 최근에 읽은 <헬로 미스터 찹>에 이런 존재가 나오지만 일상의 삶에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존재이다.

 

이번에 읽은 <아자젤>에도 그런 존재가 등장한다. 2센티미터짜리 악마. 그렇게 크지 않은 악마라서 그런가, 아자젤이 보여주는 능력은 대단하기는 하지만 왠지 무언가 조금은 부족해 보인다. 그 뿐 아니다. 아자젤이 인간들을 도와준답시고 행하는 일들이 처음에 기대했던 것과는 정반대로 흘러가 소원을 빈 사람에게 복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화가 되어버린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아자젤>은 아자젤이라는 어찌 보면 귀엽기도 하고, 어찌 보면 어이가 없는 듯한 존재가 펼치는 이야기들이 실린 단편 모음집이다. 각각의 단편들은 작가를 대변하는 나와 아이작을 소환할 수 있는 조지라는 인물이 대화를 나누다, 조지가 자신과 아이작에게 벌어진 일들을 나에게 들려주는 액자식 형태로 되어있다.

 

조지가 들려주는 이야기도 재미나지만 나의 눈길을 가장 먼저 끈 존재는 조지라는 인물이었다. 조지라는 인물은 일견 사기꾼처럼 보이기도 하고, 달리 보면 누군가를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어 하는 선한 인물 같기도 하다. 화자인 나를 대놓고 무시하는 못된 인물이기도 하고,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이나 에게 들러붙어서 밥이랑, 술이랑 얻어먹으려고만 하는 얄미운 존재로 묘사되기도 한다. 게다가 말과 행동이 전혀 일치하지 않는 인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이 인물이 그렇게 얄밉기만 한 것은 아니다. 뻔히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아자젤이라는 악마의 이야기를 듣는 처럼 자신이 겪은 이야기, 그것이 사실이든 혹은 지어낸 이야기든지 간에, 환상적인 이야기를 들려주는 조지의 모습은 한편으론 매력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아자젤과 조지가 벌이는 소원 들어주기는 결과적으로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선의에서 시작한 일이지만 악의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악마의 소원 들어주기. 설정 자체가 이상하기도 하다. 악마가 소원 들어주기를 하다니. 그것도 영혼을 담보로 하지도 않은 채.

 

단편적인 이야기들 속에 우리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보인다. 깨어진 사랑에 은근히 마음속에 품은 적대감이 드러나기도 하고, 낭비하는 시간처럼 보이는 순간이 내게 활력을 주는 시간임을 깨닫기도 한다.

 

동일한 구조의 단편이 반복되다 보니 지루한 느낌도 없진 않지만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을 풍자적으로 그린 이야기가 주는 즐거움이 넘치고, 아자젤이 벌인 예상치 못한 결과에 폭소를 금치 못하기도 한다. 유쾌함과 즐거움이 가득 담긴 재미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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